카가(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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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전의 3단 갑판 시절 항공모함 카가
단층갑판 개장 후의 항공모함 카가
'''加賀'''
1. 제원
2. 개요
3. 함생
3.1.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3.2. 바다 독수리 꼬치구이 제조기
3.3. 개장
3.4. 실전
4. 평가
5. 후일담
6. 매체에서의 항공모함 카가


1. 제원


항목
개장 이전
개장 이후
운용국가
[image] '''일본 제국'''
함선 분류
항공모함
다음 함급
소류급 항공모함
조선소
가와사키, 요코스카 해군 조선소
모항
규슈 나가사키현 사세보
기공
1920년 7월 19일
진수
1921년 11월 17일
취역
1929년 11월 1일
격침
1942년 6월 4일
승무원
1,269 명
1,708 명
기준 배수량
26,900 t
36,500 t
만재 배수량
38,200 t
38,813 t
전장
238.5 m
247.65 m
전폭
29.6 m
32.5m
비행 갑판
171.30 m x 30.48 m,
55.02 m x 24.38 m (발함갑판)
엘레베이터 2 기
248.576m x 30.48m 엘레베이터 2 기
추진
4 축
엔진
브라운·커티스식 터빈 4기 4축
브라운·커티스식 터빈 2기
함본식 터빈 2기 4축
보일러
로호함본식관전소관 12기
로호함본식관전소관8기
출력
91,000 hp
127,400 hp
속력
27.5 knot
28.3 knot
연료
중유 5,385 t
항속 거리
8,000 nmi / 14knot
10,000 nmi / 16knot
무장
20cm/50 연장포 2기 4문
20cm/50 단장포 6문
12cm/45 2연장 고각포 6기 12문
20 cm 단장포 10기 10문12.7 cm 연장 고각포 8기 16문25 mm 연장 기관총 11기 22문
장갑
현측 장갑 : 5 인치 VC 스틸 (경사 15도)
함재기
나카지마 3식 함상 전투기 : 16 대
미쓰비시 10식 함상 정찰기 : 16 대
미쓰비시 13식 함상 공격기 : 28 대
총 60기
'''1936년'''
상용 72기, 보충 18기
'''1941년'''
미쓰비시 0식 함상 전투기 (A6M) : 21 대
아이치 99식 함상 폭격기 (D3A) : 27 대
나카지마 97식 함상 공격기 (B5N) : 27 대
착함 식별
''''''

2.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정규항공모함 카가(加賀, 가하).
본래 카가급 전함의 1번함으로[1] 건조하고 진수되었으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항공모함으로 개조했다.

3. 함생



3.1.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본래 88함대 계획의 3번함, 4번함을 맡은 카가급 전함의 1번함으로[2] 건조되고 있었으나, 건조중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원래는 개조되지 않고 완전해체될 예정이었으나, 항공모함으로 개장될 예정이던 아마기관동대지진으로 인해 건조대 위에서 크게 파손되는 바람에[3] 아마기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개장 재료들로 카가가 대신 개조되었다.
이 때 토사와 카가 중 카가가 선택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토사의 건조가 카가보다 빠르게 이루어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사는 이미 60% 이상이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려면 이미 만들어놓은 시설을 다시 대대적으로 철거하는 수고를 들여야 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 카가는 토사보다 건조의 진척도가 낮아 철거해야 할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토사와 달리 카가는 기관부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탑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건조가 더 많이 진행되었던 토사는 폐기되고, 건조가 덜 진행되어 있었던 카가가 항공모함으로 개장되게 된 것이다.

3.2. 바다 독수리 꼬치구이 제조기


비슷한 시기에 건조된 아카기와 마찬가지로 3단 비행갑판에 주포로 무장했었다. 그리고 이 둘에 앞서 건조된 호쇼급 항공모함의 수직으로 솟은 연돌 구조가 난기류를 불러와서 함재기를 운용하는데 걸리적거린다고 하여 아카기와 카가는 이를 대체하기위한 연돌 구조를 가지게 된다. 아카기는 비행갑판 아래로 휜 연돌을, 그리고 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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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괴상한 구조의 연돌에서 나오는 열기로 인해 카가의 연돌 근처에서 일하는 수병들은 멀리 안나가고도 열대성 기후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뒤쪽으로 뻗은 연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오히려 착함을 시도하는 함재기의 시야를 가려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카가의 별명은 '''바다 독수리 꼬치구이 제조기'''가 되었다. 함내 기온이 무려 40도에 달했다고 한다.
사실 이 방식은 일본만의 창의적인 뻘짓은 아니고 영국이 '''1차대전 말기''' 건조했던 아거스급 항공모함이 원조로 카가뿐만 아니라 미국의 레인저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이 진작에 내다버린 방식[5]을 도입한 것은 뻘짓이라고 할 수밖에, 결국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재개장을 해야 했다.

3.3. 개장


이는 3단 갑판+주포운용의 비효율성과 맞물려 결국 개장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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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된 카가.
개장은 아카기와 비슷하게 진행되었으나 속도가 아카기보다 느린 편인데, 이는 함체 자체가 전함이었다는 탓이 크다. 원래 순양전함은 속도를 중시하기 때문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더라도 엔진이 강력하고 함체의 형상도 속도를 크게 낼 수 있어서 속도가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함의 경우에는 속도보다는 방어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함체도 그렇게 만들어지며, 엔진도 배수량의 제한에 걸려서 순양전함보다 출력이 떨어지는 엔진을 장착한다. 이에따라 설계 자체가 아마기급 순양전함이 카가급 전함보다도 더 크고[6] 빠른[7] 함선이었다.
때문에 전함에서 개장된 항공모함은 갑판이 상대적으로 짧고 속도가 느려지기 십상이다.[8] 하지만 일본은 근성으로 카가를 개조해서[9] 아카기보다는 느리지만 어찌되었든 주력 항공모함으로 간신히 쓸 정도로 속도를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크기의 경우에도 태생이 순양전함 베이스였던 아카기보다는 당연히 작았지만, 그나마 원본이 되는 카가급 전함 자체가 전장 234m의, 당대의 전함들 중에선 최상위권에 들어갈 만큼 크기가 큰 함선이었던 덕분에 항공모함으로 써도 괜찮을 정도이긴 했다.[10]
개조후에는 항해시의 안정성이 향상되어 최고 속도는 떨어졌지만[11] 대신 항속거리가 크게 상승했다. 진주만 공습을 위해 일본군의 항공모함들이 집결할 당시, 다른 항공모함들이 4일 동안 항해한 거리를 속도가 가장 느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3일만에 주파한다든가, 진주만까지 가는 과정에서도 일본의 최신형 항공모함이었던 쇼카쿠급 항공모함이 파도에 20도씩이나 롤링을 하는 와중에도 태생이 전함이었던 카가는 3도 정도 밖에 흔들리지 않았다.
또한 비행갑판이 높고 넓은지라 착함과 갑판 작업등이 용이해 파일럿이나 작업원들에게는 편한 항공모함으로 평이 좋았다.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당초 진주만 공습은 카가와 쇼카쿠, 즈이카쿠 3척만으로 행할 계획도 검토되었다고 한다.[12] 최신형인 쇼카쿠급을 제외하면 일본군 내에서 가장 우수한 항공모함으로 평가되고 있던 셈. 그러나 아주 장점만 있던 것은 아니라서, 전함 함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최고속도가 29노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이 받쳐주지 않을 경우 뇌장을 장착한 97식 함상공격기의 이륙이 빡셌다. 전쟁 초기부터 이런 문제가 있었으니 전쟁이 장기화되었을 경우 신형 함재기는 탑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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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추가 개장 계획도 있었던 듯하다. 남아있는 자료상으로는 다이호와 비슷한 형태. 다만 이 개장안 자체는 탑헤비 문제로 인해 채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3.4. 실전


중일전쟁 당시는 일본 해군에서 가장 활약한 함 중 하나였다. 다른 일본의 항공모함들 중 아카기는 출격 없이 일본에서 한창 개수중이었고, 류조호쇼의 경우는 카가의 지원역였던지라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카가의 파일럿들은 일본군 내에서도 압도적으로 실전 경험이 많았다.
진주만 공습에는 아카기, 소류, 히류, 쇼카쿠, 즈이카쿠와 함께 참가하였고, 이후에도 그럭저럭 많은 전과를 올렸다. 다만 대부분의 전투가 지상기지나 비행장 공습이었고, 해전에 투입된 적이 없는지라 격침 전과는 소소한 편. 일단 진주만을 제외하면 수송함 1척의 단독격침과 구축함 1척의 공동격침 전과가 있다.
'''그리고 얼마 뒤...'''

"적기 직상! 급강하!" - 카가의 승무원이 돈틀리스를 보고 한 말.[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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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가의 피탄 구역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 항모 엔터프라이즈에서 출격한 돈틀리스에 의해 침몰했다. 다른 함선들보다 카가의 경우는 진짜로 재수가 옴붙은 경우인데,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이 손발이 안 맞아 대다수가 카가에게 집중되는 바람에 무려 50발의 폭탄이 카가만 노리고 떨어져 폭탄을 모두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군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명중탄은 5발.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10발 전후로 잡고 있다.
게다가 폭탄이 하필이면 함교를 직격하는 바람에 함장 이하 고위급 장교가 몰살해서 함내 지휘계통이 끊어졌다. 그래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못한 채 함 자체가 불바다로 변한 것이다. 함장 오카다 지사쿠 대좌가 전사한 후 함내의 항공장교가 함장직을 인수하기는 했지만 비행갑판을 뒤덮은 불바다에 별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퇴함해야 했다.
이후 4시 25분 2차례의 대폭발이 더 발생했으며, 구축함 하기카제의 포술장의 증언에 의하면, 피탄 직후부터 함 중앙부에 발생했던 균열이 해수면까지 이어져 폭발이 발생해 전복되었고, 선미부터 가라앉으며 침몰했다고 한다. 다만 구축함이 자침시키기 위해 발사한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는 카가의 일부 생존자들의 주장도 있다. 나중에 나왈급 잠수함 노틸러스가 이미 숨이 간당간당하게 붙어만 있는 카가를 소류로 착각하고 뇌격을 가하긴 했으나 1발은 어뢰발사관에 걸려 발사되지 않았고 2발은 빗나갔으며 1발은 당시 미군 어뢰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불발되었다.

4. 평가


중일전쟁에서 활약하며 1항전의 기상을 보여주었고 아카기와 함께 태평양 전쟁의 신호탄격인 진주만 공습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그 기상이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나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분노한 미국을 이기지 못하고 5분만에 아카기, 소류, 히류와 함께 침몰하는 것으로 허망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이 일본에겐 태평양전쟁의 시작과 몰락을 보여주는 항공모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이즈모급 항공모함 2번함에 함명이 계승되었다.

5. 후일담


3단갑판 시절의 중일전쟁 무렵에는 함내 군기가 엉망이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상급 병사들의 공공연한 갈굼은 물론이고 함내의 식량을 공공연히 훔치다 걸린 병사들이 매달리는 형벌도 흔히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문제의 개똥같은 연돌이 뿜어내는 열기가 카가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정신과 도덕성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것이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 개수 이후로는 딱히 이렇다할 문제는 없었던 모양.
사실 함내 군기문제는 일본 해군의 전함이나 항공모함 같은 대형함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들이다. 대형함들은 소/중형함들에 비해 인사이동이 잦았고, 어차피 조만간 안볼 얼굴들이니 서로간에 막 대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특히 전함들은 일본군 사정상 실전에 투입될 기회가 적었고, 정박지에서 강도높은 훈련만 줄창받았던터라 그 스트레스를 후임 괴롭히기로 풀었다고 한다. 덕분에 당시 일본 해군의 전함에는 하나같이 '오니', '야차', '지옥' 등의 별명이 붙어있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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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스카에 이질'''
해석: 현재 일본 요코스카 군항에 정박중인 항공모함 카가에 이질이 발생하여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8일까지 확진으로 판정된 환자가 56명, 의심 환자가 70명 총합 120여명 이라고 함. 이 환자들은 요코스카 해군병원에 격리되었으며 그로 인해 관함식을 눈앞에 둔 진수부 당국은 대공황에 빠졌다고 한다.
1928년 11월 10일 국내 동아일보 기사에도 실린적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함내에 이질(적리병)이 돌아 똥싸개가 되는 바람에 눈앞에 있는 관함식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 진수부가 대공황에 빠졌다는 기사이다. 이질은 훗날 항공모함 아카기에서 1933년, 34년 두차례나 창궐하여 수병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괴악한 연돌 구조로 인한 함내 비 정상적인 높은 온도'''가 이질의 창궐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추정된다.
2019년 10월 18일. 미국의 탐사업체인 벌칸에서 침몰한 카가의 선체를 발견해 촬영한 영상이 나왔다.#네이버뉴스 #BBC뉴스 #조금 더 자세한 뉴스 뒤이어 아카기도 발견되었다. 이로써 1998년 로버트 발라드[16]에 의해 발견된 요크타운의 잔해에 이어서 미드웨이 해전 침몰함선의 두번째 발견이 되었다.

6. 매체에서의 항공모함 카가


1943에서는 2스테이지, 1943 改에서는 1스테이지 보스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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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 갑판 시절
단층갑판 개장 후
군함 관련 게임에서는 아카기보다 살짝 윗등급으로 나오는 게 전통. 네이비필드에서 일본군 4.5차/5차 항모로 나오는데, 사실상 아카기의 상위호환 취급이다. 4.5차가 3단 갑판 시절이고 5차가 단층 개장 후.
네이비필드2에서 일본 11티어 항모로 나온다.
월드 오브 워쉽 8티어[17] 골쉽으로 출시 되었다. 다른 동티어 항모를 압도하는 106기의 비행기 탑재량에 한번에 뇌격기/폭격기가 4대씩 공격하는 우월한 화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함재기가 7티어 함재기인데다가 표적 위치를 잘못잡아 헤매는 동안 낙엽처럼 떨어지기 때문에 고티어 일항모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함장의 경우 카가가 가진 화력을 끌어내기 힘들다. 리워크 후 7티 함재기를 받았지만 이젠 10탑을 간다.... 예비기 많다고 무턱대고 꼬라박다간 사이판보다도 빨리 깡통이 될 수 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컬렉션에서 아카기와 함께 3단 갑판의 사진으로 등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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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 일본 주력 항공모함으로 등장한다.
함대 컬렉션의인화되어 등장하는 칸무스카가(함대 컬렉션) 참고.
전함소녀의인화되어 등장하는 캐릭터는 카가(전함소녀) 참고.
벽람항로의인화되어 등장하는 캐릭터는 카가(벽람항로) 참고. 원래 전함으로 만들어지다가 항공모함으로 바뀐 것을 참고했는지 전함 버전 카가도 소개됐다.
미드웨이(2019년 영화)에서 등장한다. 아카기의 한 일본군 장교가 격납고 내부에 어뢰와 폭탄, 항공유로 가득한 광경을 보며 “여기는 완전히 화약고인데..”라며 우려한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아카기와 같은 상황이었던 카가도 디킨스의 일격을 맞고 연쇄 대폭발을 일으키며 격파된다. 그리고 무의미한 데미지 컨트롤이 이어지다가 소화기를 작동할 전력마저 차단되어 가솔린과 화재 그리고 어뢰라는 삼중고가 겹쳐서 함 전체가 날라가는 듯한 거대한 2차 폭발이 이어지면서 완전히 침몰한다.
워 썬더 에서 과달카날 맵에서 제대로 등장한다. 또한 역사기반 캠페인에서도 일본 진영에서는 수비, 미국 진영에서는 운명의 5분 상대로 등장한다.


[1] 영어권 측에서는 토사급 전함 2번함으로 분류하나, 본래 건조하던 국가인 일본의 분류를 따라 카가급 전함 1번함으로 기재한다.[2] 영미권에선 토사급, 일본에선 카가급 전함이라 한다. 이리 부르는 이유는 88함대 계획의 순번 상 카가가 3번함, 토사가 4번함이었기 때문에 일본 측에서는 이 순서를 따라 카가를 1번함으로 보는 것이며, 영미권에서 토사급 전함이라 부르는 것은 카가보다 토사의 선체가 먼저 기공되었기 때문에 토사를 1번함으로 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건조하던 국가인 일본의 분류를 따라 카가급 전함으로 기재한다.[3] 배의 척추나 다름없는 용골이 부서져서 수리불가 판정을 받았다.[4] 여담으로, 위 이미지의 카가의 각도가 워낙 특이하고 아스트랄한 모습이라 디젤펑크 일러스트중에 보정 없이 슬쩍 꼽사리 껴있기도 한다. 흠좀무한 건 그렇게 보정 없이 끼워놔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5] 결국 영국과 미국은 그냥 연돌을 더 위로 올리는 것으로 해결했다.[6] 아마기급이 카가급보다 20미터 더 길고 기준 배수량도 2,000톤 더 무거웠다.[7] 아마기급 130,000마력 30노트, 카가급 90,000마력 26.5노트.[8] 프랑스의 베아른급 항공모함이 이런 경우에 걸려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당장 원본이 되는 함선 자체가 '''작은 크기 대비 뛰어난 공격력과 방어력'''을 내세우던 함선이었으니 베아른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셈이다.[9] 그리고 일본은 상대적으로 전함에 고속을 추구(위의 베아른급 항공모함이 속했던 노르망디급 전함은 32,000마력 21노트)했다보니 그나마 항모로써 유리한 편이었다.[10] 당대의 타국 전함들과 크기를 비교하자면, 미 해군의 전함들은 표준형 전함의 최종형이라는 콜로라도급 전함조차도 크기가 190m에 불과했고, 건조가 취소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1920) 역시 202m 정도였다. 이탈리아의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은 대개장 후 기준으로 전장 186m,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196m, 프랑스의 리옹급 전함은 194.5m의 크기를 가지는 등 카가급과 동시대의 전함들은 200m를 넘기지 못하는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11] 일단 오버로드시 30노트까지는 나왔다는 소리도 있다. 다만 실제로 30노트가 나왔더라도 연비는 상당히 좋지 않았을 것이다.[12] 1, 2항전의 파일럿들을 3척에 꽉꽉 채워간다는 계획이었는데, 야마구치 다몬이 극구 반대했던 모양이다. 결국 진주만 공습은 어떻게든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의 조종사들을 긁어모아 5항전을 결성해 머릿수를 늘려서 실행.[13] 물론 일본도 이 문제를 인식해서 항공모함용 캐터펄트를 개발해 카가에 탑재할 계획을 세우고 개발에 나섰으나 개발에 실패했다. 그리고 카가가 침몰하면서 항공모함용 캐터펄트 개발은 영원히 없던 일이 되었다.[14] 이것이 미드웨이 해전의 대 역전극을 알리는 '''운명의 5분'''의 시작이다.[15] '지옥 공고에 귀신 야마시로, 소문난뱀 나가토, 이세에 갈까, 휴우가에 갈까, '''해병단에서 목이나 맬까.''' 지옥 하루나에 귀신 공고, 나찰 기리시마, 야차 히에이, 타지마라 야마시로 귀신보다 무섭다.' 괜히 이런 노래가 '''자국민들 사이에서 유행'''한 게 아니다.[16] 타이타닉, 비스마르크를 발견해낸 미 해군 중령 출신의 해저탐험가이다[17] 항모 리워크 후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