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다코타급 전함
1. 1920년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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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발의된 미국의 해군 건조계획에 따라서 계획된 전함들 중 마지막 전함이다. 1917년 초기 설계가 완성되었으나 1차대전 대서양에서 유보트와의 전황 격화와 유틀란트 해전의 교훈을 반영하느라 1920년대 설계가 마무리 되어 건조가 시작되었으나 워싱턴 군축 조약에 의해서 6척 모두 건조가 취소되었다. 각각의 진행율은 최대 30%선.
제원에서 볼수 있지만 그 당시 미국이 주력으로 건조하려했던 전함중 가장 큰 전함으로 다수 건조하여 주력으로 사용하던 일명 표준 전함보다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늘어난 배수량에도 불구하고 추진체계를 4기로 늘리고 최대 6만 마력에 최대 속도를 23노트를 목표로 하였는데 3만 마력으로 21노트로 고정되었던 표준전함에 비해서 우위에 설수 있었다.
주포는 16인치 3연장이고 4개의 포탑으로 계획되었는데 2차대전 몬태나급 전함이 설계가 되기 전까지는 최대 주포를 가진 전함이었다. 부포는 6인치 단장포를 케이스 메이트로 12문을 장착하고 나머지 4문을 개방형으로 장착하기로 되어있었다. 이로 인해서 그 당시로서는 역대 미국 전함들 중 가장 큰 배수량을 가진 전함이 될 예정이었다. 이전의 표준 전함들이 6인치급 부포를 탑재하지않고 5인치급 부포탑을 사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부포의 구경이나 배치 형태는 조금은 이례적인 편이었다.[1]
워싱턴 조약에서 전함의 최대 배수량이 3만 5천톤으로 제한되자 이를 초과했던 사우스 다코타급 전체는 건조가 취소되었다. 주포의 일부가 이미 완성되어 있었는데 이 주포들은 해안포로 전용되었다.
1.1. 제원
1.2. 대중매체 등장
- 월드 오브 워쉽의 가상의 현대화 개장 버전에 캔자스란 이름으로 2차 트리 8티어 미국 함선으로 등장한다.
- 전함소녀 중국서버에 네임쉽 사우스다코다가 등장한다.
2. 1939년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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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함 앨러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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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쉽 사우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모두 4척의 동형함이 건조된 만재배수량 44,500여t의 전함이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제약인 기준배수량 35,000t 안에서 16인치 주포, 대응방어, 27knot의 속도를 달성했다.
2.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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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함 USS 인디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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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함 USS 매사추세츠
2.2. 미국 의회의 쇠사슬에 묶인 설계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척이 회계연도 1937년(FY37)의 예산에 배정되었고 장관회의에서는 1938년도 예산에 노스캐롤라이나급 2척을 추가로 더 배정하려 했다. 하지만 해군참모총장을 시작으로 해군 수뇌부 거의 전부가 완전히 새로 설계된 전함을 원했고 1937년 3월에 설계작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설계 도중인 1938년 중반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일본이 파기한 이후 아직 조약에 남아있던 영국과 미리 협의한대로 미국이 배수량 에스컬레이션 조항을 발동하여 기준배수량에 추가로 10,000톤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미국 의회가 차기전함의 배수량을 35,000톤으로 승인했기 때문에 설계는 그대로 35,000톤의 틀에 묶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이 시기부터 시작된 아이오와급 전함 설계에 추가 배수량이 반영되었다.
사우스다코타급의 설계가 시작될 당시 해군측이 노스캐롤라이나급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불만은 다음과 같았다.
- 기술국 - 노스캐롤라이나의 설계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긴급히 설계가 변경되었으므로 구식 기술과 신식 기술이 대충 짬뽕된 것이라서 특히 기관등에 좀더 근본적인 설계 혁신이 요구되며, 수중탄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할 필요가 있음. 참고로 수중탄의 위협은 노스캐롤라이나급의 설계 도중에 이미 대두되었으나 설계가 거의 완료된 단계여서 변경할 시간이 없었다.
2.3. 뼈를 깎는 노력
전함의 설계에서 화력, 방어력, 속도는 모두 '''배수량'''이라는 틀 안에 매여있는 것이고, 배수량에 상한선이 있을 때 어느 한 요소를 증강하는 것은 다른 요소들의 희생을 수반하는 것이다.[2]
사우스다코타급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급과 마찬가지로 35,000톤이라는 상한선이 주어진 가운데, 다른 요소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노스캐롤라이나의 14인치 주포탄에 대응하는 장갑을 뛰어넘는 방어력을 달성해야 했으므로 설계는 대단히 빡빡한 형태, 구체적으로는 '''중량 절감'''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다.
- 16인치 Mark 5 포탄을 막는 것을 기준으로, 현측장갑 경사도 15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장갑 두께를 338mm(13.3인치)[3] 로 늘려야 하기 때문에 각도를 19도로 늘리고, 두께를 305mm(12인치)에서 310mm(12.2인치)로 약간 늘리는 수준으로 조정하였으며, 내장형으로 부착했다.
- 수중탄에 대한 대책으로 현측장갑의 하단을 함저부까지 연장한다. 배수량 문제로 인해 기존의 수중방어체계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이전 함급과 동일한 TNT 700lb(318kg)에 대응하는 새로운 수중방어체계를 도입한다.
- 장갑의 강화로 인해 단위길이당 장갑 중량이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종래 기관실에 있던 증류기나 발전기 등등의 시설을 지령실 바로 밑에 몰아넣고 현측의 5인치 양용포탑을 2기 줄이며, 함체의 총길이는 221m에서 207m까지 크게 단축한다.
- 선체길이의 단축으로 인한 속도저하를 막고 추가적인 속도증강을 위해 신형 기관을 탑재하여 출력을 증강해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의 출력인 121,000SHP보다 강력한 130,000SHP의 출력을 달성한다.
2.3.1.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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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포의 유지 -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같은 16인치 45구경 Mark 6 3연장 주포탑 3기를 유지했다.(사진은 영화 언더시즈에 나온 사우스 다코타급 4번함 앨라배마[4] 의 16인치 포.)
- 16인치 포탄에 대한 대응방어 - 16인치 45구경 함포에 대한 안전지대(immune zone)의 내측을 19,000m까지 확보하려면 최소 15.5인치의 현측장갑이 필요했는데, 이를 상기 언급된 경사장갑으로 달성하여 16인치 마크 5 함포 마크5 철갑탄에는 16,200~28,300m, 16인치 마크6 함포 마크8 철갑탄에는 18,700~24,100m의 안전지대를 가진다고 보았다.
- 수중탄 방어 - 현측장갑 하부를 그대로 연장하여 함저까지 늘어뜨렸다. 구체적으로는 현측장갑이 310mm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가면서 차츰 얇아져 함저부에서는 25mm에 이르게 되어 있었고, 수선부 이하를 강타하는 수중탄을 견뎌내는 한편, 그 자체가 어뢰방어격벽의 일부로써 작용하도록 했다.
- 조타성능의 향상 - 함체가 짜리몽땅해지면서 구(球)형태와 가깝게 되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조타하기가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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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화력의 증강 - 현측의 5인치 양용포탑이 8기로 2기 줄었으나, 전체적인 대공포의 양이 증가하였으며, 특히 5인치 - 40mm - 20mm의 조합은 카미카제 등장 이전까지는 2차 대전 군함들 중에서도 최고의 대공화망 조합을 자랑한다.[5] 그리고 대공 레이더와 대공 사격 관제 레이더 더 나아가 CIC라는 통합 지휘 시스템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대공화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수 있었는데. 이는 1942년에 벌어진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를 엄호하며 격추한 적기가 26기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그리고 양용포탑이 2기 줄어든 것은 기함설비가 추가된 1번함 사우스다코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후 2, 3, 4번함은 다시 5인치 양용포탑 10기를 설치해서 대공화력이 더 증강되었다.
2.3.2. 단점
주로 기준배수량을 맞추기 위해서 희생한 부분들이다.
- 수중방어력의 약화 - 기존의 어뢰방어구획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같은 대응능력을 갖춘 새로운 구조를 채택했으나 이전 구조보다 덜 효과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 현측장갑의 내장 - 전투 후 장갑판을 수리할 때 우선 외판을 모두 들어내야 하는 등 배의 유지보수가 번거로워졌다.
- 과적 및 거주성 악화 - 설계 당시보다 대공화기나 장비 등이 대거 증설되고 운용인원까지 늘어나서 과적(overload)이 발생, 실제로 흘수선이 최대 11 m에 달했으므로 만재시에는 미국 동부 연안의 일부 항구에 진입할 수 없었으며, 더불어 거주성도 나빠졌다.
- 비유선형 선체 - 수중저항이 증가하여 출력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속도는 만재 배수량 상태에서 노스캐롤라이나와 비슷했다.
- 능파성 저하 - 함수부의 부력저하로 큰 파도에 잘 못견딘다. 카미카제의 대책으로 함수부에 40mm 4연장 기관포가 탑재되었으나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울 지경이고 악천후엔 조타에 상당히 지장을 주었다.
1910년대 말의 테네시부터 노스캐롤라이나에 이르기까지는 어뢰방어구획을 5개의 격실로 나누고 각각의 격실에 빈 곳과 액체(주로 중유)를 번갈아 가며 배치하는 어뢰방어구획을 채택하였다. 특징은 비교적 얇고 탄성이 높은 격벽을 채택하여 하부에서 작렬한 어뢰나 기뢰 등의 폭발력이 빈 곳과 액체, 격벽(격벽이 우그러들면서 폭발력을 흡수) 등을 차례차례 통과하면서 점차 폭발력을 흡수하도록 하였다. 기존 어뢰방어구획은 실제로 진주만 공습에서도 위력을 발휘했고, 해당 구조를 채택하고 있던 전함 캘리포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의 경우, 명중한 어뢰는 단 1발도 수중방어체계를 완전히 관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침수가 된 이유는 측면장갑과 수중방어체계 사이의 구간이 반복된 어뢰의 타격으로 인해 금이 갔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점을 생각할 때 항공어뢰의 장약량은 수상함 및 잠수함용 어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적어도 항공어뢰에 대해서는 안전하다고 볼 수 있으며, 그보다 강력한 어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우스다코타에서는 이 구조를 버리고 경사진 현측장갑이 그대로 함저까지 연장되어 수중탄이나 어뢰와 기뢰 방어를 겸하는 구조를 채택하였다. 그 이유는 구조상 경사장갑과 5중 격벽을 겸하는 것이 곤란했으며, 설계국이 실시한 1938년의 수조 실험에서는 하부까지 연장된 현측장갑이 그 자신은 우그러들지 않은 채 어뢰의 폭발력을 상부로 확산시키는 결과가 나타나, 이전의 얇고 탄성이 높은 격벽 대신 연장된 현측장갑(탄성은 낮지만 강도는 보다 높은)을 배치함으로써 안쪽의 격벽은 오히려 더 안전해질 것으로 보았다. 설계국은 이런 설계를 통해 수중방어력을 증강하는 한편, 넓은 공간도 확보하고 중량도 다소 감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기에 어뢰방어구획의 격실도 5개에서 4개로 감축했고 구획 자체의 폭도 5.64m에서 5.46m로 축소했다.
그러나 사우스다코타급의 수중방어체계는 노스캐롤라이나급과 마찬가지로 TNT 700lb(318kg) 수준에 대응하는 정도로 그보다 많은 폭약을 탄두에 실은 일본 해군 어뢰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했으며, 미국 해군도 Torpex 같은 TNT보다 강력한 폭약을 사용하여 어뢰의 파괴력이 늘어나게 돼 '''기존의 수중방어체계로 아군 어뢰에 버틸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1939년에 이뤄진 비슷한 실험에서는 이 신형구조가 이전보다 덜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와버렸다. 하지만 1번 함은 이미 기공된 시점에서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고, 격실에 액체를 넣거나 비워둘 곳을 바꾸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전쟁 중 '''수중방어체계가 TNT 318kg 수준에 대응하는 5중 격벽 구조였던 노스캐롤라이나가 일본군 잠수함이 쏜 탄두에 400kg 폭약이 들어간 잠수함용 산소어뢰 1발'''에 피격된 후 진주만에서 1개월 동안 수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 해군 당국은 신형 전함 전반의 수중방어력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조사를 시행했으며, 여기서는 기존의 문제점인 줄어든 격실 수나 구획의 폭 외에도 현측장갑 하단부와 최종격벽간의 거리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줄어든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어뢰에 맞으면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같은 수중방어체계였던 아이오와급 전함은 격실에 액체를 넣거나 비워둘 곳을 바꾸고 기계실 내부구획을 수정한 선에서 마무리된 상태였다. 그런데 구조를 고치게 되면 아이오와급 전함의 속도가 줄어드는 문제가 있어서 그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42년도에 건조가 시작된 일리노이와 켄터키 경우 속도가 줄어드는 문제가 없는 선에서 구조개량이 이루어졌는지 어뢰방어력 향상이 예상되었지만, 어느 함선도 완성되지 못했다. 결국, 이 문제는 몬태나급 전함의 설계에서야 수정된다. 다행히도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아이오와급 전함은 실전에서 어뢰공격을 받은 적이 있지만 피격당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2.4. 실전에서
1942년 11월 14일 과달카날 해전 2부 야간, 사우스다코타는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번함 워싱턴 및 구축함 4척과 함께 과달카날섬 160km 부근에서 일본의 곤도 노부다케 제독이 이끄는 함대(전함 키리시마,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1척)와 조우했다. 사우스다코타는 이 야간해전에서 전기 회로 문제로 인해 말썽을 겪었고 5,200m~9,000m 이내의 '''지근거리'''에서 일본 해군의 집중포화를 받아 상부구조물에 달린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 통신 안테나들이 부서지고 망가지는 등 큰 피해를 봐 전투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지만, 다행히 구조나 부력 면에서는 치명상을 받지 않은 채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일본군의 상태는 아래와 같았다.
- 선제발견 - 사우스다코타의 레이더는 전기 회로의 고장 재발로 인해 작동하지 않았던 시점에 일본군은 탐조등으로 비추어 사우스다코타를 발견했다.
- 지근거리사격 - 5,200m ~ 9,000m 이내라는 초근접거리[6] 에서 일제사격을 실시했다. 특히 키리시마는 가장 가까운 거리인 5,200m에서 탐조등까지 비추면서 사격을 했다. 여기에 더해서 키리시마는 개량되었다는 1식 철갑탄을 사용했으며, 키리시마의 14인치 45구경 주포의 경우, 잘 쳐주어야 동급이고, 보통은 약간 아래라고 평가받는 미국의 구식 14인치 45구경 Mark 1 주포의 위력이 5,490m에서 측면장갑 437mm를 관통 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할 경우, 충분히 스펙상으로는 사우스다코타의 측면장갑을 관통 가능했다. 미국 구식 14인치 주포 일본 14인치 주포
- 아군의 지원군은 있으나 적의 지원군은 없음 - 일본군은 중순양함과 경순양함, 구축함의 지원세력이 있었으며, 구축함 1척의 손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상없이 살아남아서 사우스다코타에 대한 집중포격전시도 같이 참여한데 반해, 미국의 지원세력은 구축함 4척뿐. 그나마 포격전이 벌어지기도 전에 이미 다 격침되거나 대파돼서 표류중인 상태였다. 게다가 동료 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은 레이더 장착위치 문제로 인해 키리시마를 레이더로 포착 했음에도 레이더 상에서 사라진 사우스다코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격을 늦추고 있었다.
- 철갑탄 준비 - 과달카날 해전 1부때 목숨을 걸고 돌격한 미국 순양함 함대와 사투를 벌린 경험을 살려, 순양함 이하는 다 철갑탄을 미리 장전한 상태고, 전함인 기리시마는 총 삼식탄 68발, 영식탄 22발, 1식 철갑탄 27발을 발사했다(키리시마의 전투상보). 결과적으로 일본 함대가 사우스다코타에게 이론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포탄은 이 1식철갑탄 27발 뿐이었다.[7]
- 명중 포탄 - 착탄 흔적을 조사한 결과 최소한 26발의 포탄에 맞았으며, 구경별로는 14인치 1발, 8인치 18발, 6인치 6발, 5인치 1발이었고, 거의 모든 포탄이 철갑탄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피해를 줄 수 있는 건 14인치 1발이 전부였고 사우스다코다급은 애초에 16인치 대응장갑이다.
- 포탄 집중지역 - 26발중 16발이 상부구조물, 특히 마스트 부위에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통신 안테나, 내부 통신용 회로, 사격통제장치, 레이더 등 전자장비에 피해가 집중했다.
- 장갑부 피해 - 6인치 2발, 8인치 3발, 14인치 1발이 장갑부에 명중했고, 신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였으나 장갑이 관통된 부위가 없다.
- 수중탄 피해 - 8인치 1발이 수중탄으로 명중했고, 신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나 폭발흔적만 남기고 관통되지 않았다.
- 포탑 피해 - 14인치 1발이 3번 주포탑 바벳에 명중했고, 신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나, 깊이 1.5인치, 직경 15인치 정도의 폭발 흔적과 수직으로 난 균열이 몇 군데 발생했다.
- 침수 피해 - 수선 하부의 비장갑구획에 명중한 몇몇 포탄으로 인해 0.75도의 경사가 발생했으나 이 정도의 경사는 약간의 트림 조정으로 금방 해결했다.
일본군의 철갑탄은 정작 명중해도 작렬하지 않거나 혹은 신관 작동이 너무 늦어서 상부구조물을 뚫고 지나간 뒤에 작렬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당시 일본 해군이 수중탄 효과를 중시하여 신관 지연시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일단 포탄이 수면에 격돌하여 신관이 작동한 후에 지나치게 일찍 작렬하면 피해가 미미하므로 수면 돌입 이후 함체에 닿을 때까지의 시간을 고려하여 지연 시간을 길게 잡은 것이다. 그러나 포탄이 반대로 수선 상부에 명중할 때는 길게 잡은 지연시간이 오히려 독이 되었는데, 관통 도중에 신관이 망가져서 불발된다거나 혹은 얇은 격벽을 다 뚫고 지나간 후에야 뒤늦게 작렬하는 식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해전 후 미국 해군에서는 사우스다코타의 피탄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고 마지막에 이런 문구를 넣었다.
피해 보고서 원문.
다만 전후 미국의 연구가 Robert Lundgren은 미함선국의 피해 보고서에 의문을 표하며 다음과 같은 논문을 제시 했다. http://www.navweaps.com/index_lundgren/South_Dakota_Damage_Analysis.htm
그 외에 운용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고를 당하기도 했었다. 동형함들도 만만치 않아서 인디애나는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인 워싱턴에 받쳐서 하마터면 침몰할 뻔 했다.
아래는 그 안습한 이야기를 서술해놓은 것이다.
- 1942년 8월 16일에 취역후 최종 재조정을 받고 필라델피아를 출발해 파나마 운하를 거쳐 9월 4일 통가의 누쿠알로파에 도착했다. 이틀 후 라하이 수역을 지나던 사우스다코타는 해도에 표시되지 않은 암초와 충돌해 파손을 입어 9월 12일에 진주만으로 가서 수리를 받았다.
- 1942년 10월 26일 산타크루즈 해전 도중 40대 정도의 항공기가 사우스다코타와 엔터프라이즈에 공격을 가해 사우스다코타는 1번 주포탑 상부에 250kg의 폭탄을 맞았고 적기는 26기를 격추했다고 보고했지만, 격추중복보고가 있을 가능성도 있어 실제 격추 숫자는 더 적을 수도 있다.
- 1942년 10월 30일 새벽 4시 14분, 사우스다코타는 구축함 마한(Mahan)과 충돌사고를 일으켰는데 마한은 선수가 구부러지면서 대파되었다. 이에 두 함정은 누메아로 귀환해 사우스다코타는 공작함 베스탈로부터 응급수리를 받았다.
- 1942년 11월 14일에 벌어진 과달카날 해전 2부에서 앞서 언급된 대로 전기 회로 문제로[8] 인해 말썽을 겪었고, 일본 해군에게 집중사격을 받아 피해를 보았다. 해전 종료 후 사우스다코타는 누메아에서 응급수리를 받은 후 12월 18일에 뉴욕에서 대수리에 들어가 1943년 2월 25일에 다시 복귀했다.
- 1945년 5월 6일, 보급함 랑겔에서 보급중이던 16인치 주포탄약고의 폭발사고로 인해 사우스다코타도 화재가 발생하여 탄약고 4곳이 폭발하고 2번 양용포가 불타 3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을 입었다.
물론 저 정도의 사고는 2차 대전 당시에는 있을 수 있는 사고였다. 전후에 아이오와급 전함들도 뻘밭에 걸치거나 구축함과 들이받는 사고는 있었고, 1989년에 1번함 아이오와가 주포탑이 폭발한 사고가 있었다. 미주리도 한국전쟁 중 함장의 심장병으로 인해 본국에 돌아가야 했던 전력이 있고 전투 중 전함이 적탄에 피격되는 일은 그다지 신기해야 할 일도 아니다. 즉, 사우스 다코타만 저런 사고가 터진 것은 아니란 말이다.
사우스다코타의 첫 함장이던 토마스 개치(Thomas Leigh Gatch) 대령은 함 승조원들의 위생 상태 등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서 승조원들은 세탁이나 샤워 등을 잘 안 했고, 배의 청결상태도 개판이었다. 그러나 개치 대령이 단순히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딴 거보다 우린 실전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그런 것이었고, 이러한 혜안으로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 사우스다코타는 하루에만 적기 26기를 격추했으며, 이는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격추당한 일본군 항공기의 23.92%나 되는 수치로 그의 생각은 옳았음이 아주 잘 드러났다. 사우스다코타와 함께 16문의 40mm 보포스를 장착했던 엔터프라이즈는 7기를 격추했다.
더 재미있는 점은, 보통 이런 성향을 가진 지휘관이라면 야전 경험이 많은 베테랑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토마스 개치 대령은 이 사우스다코타 함장 자리가 그의 군 인생 최초의 함장 자리였고 그 전에는 해군 법원 재직과 사관학교의 포술 이론 강의 등 행정 및 참모 위주의 경험을 쌓았던 '''책상물림'''이었다. 개치 대령은 이런 출신 배경 때문에 다른 야전 경험이 많은 제독들에게 질시를 조금 당했다고. 그도 그럴게 사우스다코타와 같은 신형 함선의 초대 함장 자리라면 당연히 '끗발'이 세기 마련이고 해당 인사도 그에 맞는 경력을 가진 인사가 배치되는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런 '책상물림'이, 그것도 이전까지는 아예 함장 경험이 없던 사람이 함장 자리를 맡았으니 질시를 당했던 건 당연했다.
그래도 토마스 개치 대령은 함장 자리를 포커쳐서 따낸 건 아닌지 이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함선을 잘 지휘했고, 이후 과달카날 해전 때 사우스다코타가 정전으로 장님 신세가 된 상황에서도 잘 버텨서 함선과 승조원들을 구하였다. 다만 이 산타크루즈 해전 때 사우스다코타의 함교가 공습을 받으면서 개치 대령 본인도 목에 부상을 입고 약 1달간 치료를 받은 뒤 퇴원하였고, 과달카날 해전 이후엔 부상의 후유증으로 더 이상 함선 근무가 곤란해서 1943년 2월 부터는 함선 근무를 종료하고 법무 분야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며 중장까지 진급하였다. 즉 토마스 개치에겐 이 사우스다코타 함장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함선 근무 경력인 셈이다.
2.5. 전함X
사우스다코타의 별명중 하나로 '''Battleship X'''가 있는데 이는 미국 매체에서는 한결같이 당시 신형 전함이었던 사우스 다코타의 운용 상황을 언론에 노출시킴으로써 일본군이 알게 되는 것을 꺼린 미국 해군이 붙인 별명이라고 되어 있다. 결국 사고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근거없는 낭설이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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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된 사우스 다코타의 별명은 Battleship X 말고도 The Old Nameless가 있다.
2.6. 임무를 완수하다
이런 사고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사우스다코타는 대서양에서 영국 함대와 함께 작전하기도 하고, 태평양에서도 길버트, 나우르, 퀘젤린, 마주로 등 미군의 주요 상륙작전에 함포지원사격 및 대공방어사격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45년 7월 14일에는 이와테 현의 가마이시 제철소를 포격하여 미국 전함으로는 최초의 일본본토 포격을 기록하였으며 8월 29일에는 도쿄 만으로 입항하여 항복조인식에도 참석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공훈으로 13개의 종군성장을 수상했다.
그런데 전후에 동등한 공방 능력을 갖추고 '''엄청나게 빠른 속력'''을 가진 아이오와급 전함에 밀려 사우스다코타는 신예 전함인데도 불구하고 오버홀 후 그대로 예비함이 되었다가 제적 후 해체되었다.
하지만 '''35,000톤이라는 제한을 준수'''하면서 KGV급의 중장갑, 야마토급 전함 다음가는 주포화력, 타국 전함의 3척분에 해당하는 대공화기, 타국 전함의 절반의 용적에다 13만 마력을 꾸겨 넣어서 27노트대를 달성한 것만으로도 사우스다코타의 가치는 충분히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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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동형함인 매사추세츠와 앨라바마가 기념함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다는 점에서 여한이 없을 듯 하다.
위는 기념함이 된 앨라바마의 영상.
2.7. 대중매체 등장
-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의 퍼시픽 한정 전함으로 등장한다.속력은 7노트(27노트->20노트) 가량 너프 당했지만 전함 중 언락유닛인 야마토와 아이오와를 제외하고는 모든면에서 우수한능력치를 보여준다. 미해군의 함대전 미션에서 주력 전함으로 자주 나오며 2차 과달카날 해전미션에서는 단함으로 일본해군의 뇌격대를 격파하고[9] 전함이 포함된 일본함대까지 박살내는 위엄을 보여준다.
- 네이비필드에서 미국 3차 전함으로 나온다.
대공 격추 이력덕분인지 게임 내에서 자체 대공방어력이 가장 강력한 함선으로 구현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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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비필드2에서 미국 10티어 전함으로 나온다.
- 문명 6의 전함으로 등장한다. 다만 늘 아이오와급이 나왔던 전작들과는 달리 아기자기해지고 귀여워진(?) 그래픽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줄이다보니 사우스다코타급이 선택된 느낌이 강하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4번함 앨라배마가 8티어 미국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 본래는 그간 애써준 슈퍼 테스터들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추가된 함선이었으나, 다른 함선도 아닌 '사우스 다코타급 전함이 슈테 전용이다'는 사실에 분노한 미국 유저들을 중심으로 항의가 빗발침에 따라 일반 프리미엄 함선도 추가되었다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3번함 매사추세츠도 실장되었다. 방공과 기동, 방뢰에 집중한 앨라배마와는 다르게 독일 전함처럼 부포와 근접전에 치중한 스탯을 가지고 있다.[10]
- 콘솔 버전인 월드 오브 워쉽 레전드에서도 4번함 앨러배마가 7티어 미국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 글로벌XP로만 구매가 가능하다.
- 강철소녀에 1번함 사우스다코타, 3번함 매사추세츠, 4번함 앨라배마가 등장한다. 셋 모두 전함다운 거대함을 보여준다.
- 벽람항로에 SSR급 전함으로 1번함 사우스다코타와 3번함 매사추세츠, 4번함 앨라배마가 등장한다. 사우스다코타는 미국 원주민을 떠올리는 외모인데 이름을 따온 사우스다코타 주가 본래 수우족이라 불리는 원주민 부족이 자신들을 다코타족이라 부르며 살았다는 걸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 Naval Creed:Warships에서 3번함 매사추세츠가 4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노스캐롤라이나와 같은 주포애 더 단단한 함체, 미친 대공수치와 짧은 함체로 나오는 좋은 기동성 덕에 4티어 내애선 좋은 전함으로 평가받는다, 거기다 나크의 노스캐롤라이나처럼 이 함선도 노시타 다만 제한적인 각에서 터지는 것을 보니 완전한 노시타 함선은 아닌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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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쉽 플릿 커맨드에서 사우스 다코타가 5성급의 전함으로 등장한다. 기술력과 설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전함인만큼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은 크기로 인해 적의 탄환이 빗나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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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리스트들이 USS 미주리를 점거하고 이를 홀로 눈치챈 지나가던 네이비 씰 출신 주방장이 해상에서 다이하드 찍 는 영화인 언더시즈의 실제 촬영은 사실 아이오와급 전함 3번함 미주리가 아닌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4번함인 앨라배마에서 진행되었다. 위에서 전술된 대로 당시 미주리가 기타 아이오와급 자매함과 마찬가지로 현역이던 시기여서[11] 어쩔 수 없이 당시 해상 공원이던 앨라배마에서 찍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눈썰미 좋은 밀덕이 보면 '으응?' 할 만한 부분이 몇몇 보인다. 허나 애초에 이 영화 자체가 전함이 주역이 되는 함대함 포격전도 아니고 그냥 배경이 전함일 뿐이고, 작 중 주요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간대가 밤이어서 개봉 초기에는 의외로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는 후문도...
3. 관련 문서
[1] 여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건조가 시작되었던 렉싱턴급 순양전함도 역시 설계변경을 통해서 비슷한 무장형태(16인치 2연장 4문+6인치 케이스메이트 부포14문)을 장착하게 된다. 다만 이쪽은 순양전함답게 33노트를 내기 위해서 장갑을 줄이고 엔진출력이 18만 마력.[2] 물론 배수량 제한을 씹고 최고스펙으로 만들어낼 순 있다. 불가능하진않다. 다만 그렇게 한척 뽑아내면 옆나라도 그걸보고 그것을 능가하는 배를 만들어내게되고 그럼 이제 그걸 뛰어넘는 배를... 이라는 무한연쇄가 이어진다. 그럼 그게 한두푼이 아니니 국가 재정이 폭삭 주저앉게되고...그래서 만들어진게 여러 해군조약들이다.[3] Battleships: United States Battleships, 1935-1992 90쪽.[4] 영화 촬영 당시에는 미주리가 아직 현역이었던 관계로, 장면 대부분은 당시 공원으로 남아있던 사우스다코타급 4번함인 앨라배마에서 찍었다.[5] 카미카제 등장 이후에는 화력이 약한 40mm를 3인치 대공포로 교체했다.[6] "5km가 초 근접거리라니?"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전함대 전함전에선 망원경이 아닌 맨눈으로 상대함이 보이기만 한다면 초근접 ~ 중거리 전투이다. 함의 사이즈와 함포의 구경등을 사람과 소총에 비유한다면 5km거리의 함대함전은 15m 거리에서 M16 소총을 들고 서로 자동으로 놓고 쏘고 있는 것이다.[7] 왜 전함은 고폭탄이고 순양함은 철갑탄을 장전했는지 의아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함대사령관인 곤도 제독이 사우스타코타와 워싱턴을 위시한 미 함대를 순양함으로 이루어진 함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스타코타급을 중순양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휘하 순양함과 구축함에게 미 함대를 상대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함은 과달카날에 대한 함포사격을 목적으로 했었기 때문에 철갑탄이 아닌 고폭탄을 장전한 것이다.[8] 적 구축함과 교전 중 127mm 포탄 1발이 상부구조물에 명중했는데 보수작업을 하던 고참 기술병이 안전수칙을 어겨 전기계통이 한꺼번에 나갔고 전기가 돌아왔다가 다시 떨어지는 문제를 꺾었다.[9] 다만 시작하자마자 후진해주지 않으면 학익진을 펼친 구축함들의 부채꼴 뇌격에 용궁으로 갈 수도 있다.[10] 세팅시 11.3km부포에 기존 앨라바마보다 낮은 시그마 수치[11] 아이오와급 문서에도 나와있듯 아이오와급은 워낙 전략적으로 중요해서 2차대전 종전 이후에도 여러번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하며 그 재취역 시기 동안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걸프전 등에서 실전을 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위 영화의 배경이 될 수 있었겠지만. 물론 현재는 취역된 아이오와급 4개 함 모두 영구히 퇴역했다(취역하지 못한 5번함 일리노이와 6번함 켄터키는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