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미노루
1. 프로필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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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크라스 MISSION 소속의 프로레슬러 겸 前 종합격투기 선수.'''"
俺達 鈴木軍 !一番 。"
(우리들 스즈키군이! 제일이다.)'''
1968년 6월 17일생으로, 1988년 6월 23일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하였으며, UWF, 판크라스 등을 거치며 종합격투가로서 활동하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러로 복귀한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세계적으로 부흥하고 있는 2010년대 후반 시점에는 신일본 최대의 순수한 악역 군단인 스즈키군의 수장으로 활약한다.
3. 커리어
3.1. 신일본 프로레슬링 및 판크라스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스즈키 미노루는 고등학생 때 아마추어 레슬링을 시작해 전국대회 준우승을 거두었고, 졸업 후에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해 1988년에 이이즈카 타카유키와의 시합으로 데뷔했다. 안토니오 이노키의 마지막 심부름꾼으로, 그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으며 성장했다. 1989년 3월에 당시 맹위를 떨치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창설자이자 실력자 안토니오 이노키와도 싱글매치로 대결을 펼치며, 신인으로서도 파격적인 대우를 받던 그는 마에다 아키라가 창설한 UWF로 '되살아난 사무라이' 후나키 마사카츠와 함께 이적했다.
1989년 5월에 타무라 키요시와의 시합으로 UWF 활동을 시작한 스즈키 미노루는 1991년에 UWF가 분열되자 후지와라 요시아키가 만든 단체 '프로페셔널 레슬링 후지와라 구미'로 이적했다. 당시 후지와라 구미는 '프로레슬링의 신' 칼 곳치를 고문으로 삼았는데, 스즈키 미노루는 곳치에게 교육을 받으며 더욱 실력을 높였고 이후에도 그를 스승 중 한 명으로 존경한다.이적한 가장 큰 이유는 UWF 사람들이 신일본을 관뒀기 때문이죠. 후지와라 씨[23]
가 언제나 연습을 함께 해주셨고 그런 후지와라 씨와 마에다 씨들이 나가버렸습니다. 이래저래 하던 중 신일본은 UWF와 차별화를 꾀했고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합 도중에 역십자 꺾기를 쓴 것 뿐인데 '넌 UWF에 물들어 있는거냐?'라는 소릴 들었습니다. 선배에게 찍혔죠,"
스즈키 미노루, 최강 레슬러로의 길은 '이노키의 원수를 갚는다'에서 시작되었다 (2019년 4월 7일. web Sportiva) (공국진 역)
1993년에는 친구 후나키 마사카츠와 함께 후지와라 구미를 떠나 종합격투기의 시초가 된 단체인 판크라스를 설립했고, 같은해 9월 이나가키 카츠오미와의 대결에서 3분여만에 슬리퍼로 승리하며 본격적인 종합격투기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상대를 수 분 안에 초살시키는 '면도날 파이터'로서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후나키 마사카츠와 초기 판크라스를 양분하는 에이스로 활약했으며,[24] 1995년 5월 13일에 열린 Pancrase - Eyes Of Beast 4에선 무릎과 발목 공략으로 초대 킹 오브 판크라시스트 챔피언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한 켄 샴락에게 '''2분만에''' 승리를 거두며 제2대 킹 오브 판크라시스트 챔피언에 등극, 본인의 격투기 커리어 사상 최고의 영예를 거머쥐었다.[25]
그러나 세계적으로 브라질리안 주짓수를 기반으로 한 그레이시 가문을 필두로 하여 판크라스의 '하이브리드 레슬링'의 진화형인 이종격투기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주짓수를 배제하며 하이브리드 레슬링만을 계속해서 추구하던[26] 스즈키의 몰락이 1996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고작 판크라스 입문 반년차였던 콘도 유키와의 대전에서 내내 두들겨 맞으며 판정패한 것이 쇼크의 시작이었고, 그해 말부터 목의 헤르니아 부상 등으로 이듬해 중반까지 장기 결장까지 하게 되었다.
이 부상 이후로 격투가로서 완전히 하락세에 접어들어 초기에 켄 샴락과 대등하게 싸우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점점 듣보잡들에게만 간신히 승리하고 패하는 경기에서는 너무나도 철저히 기술 부족으로 박살이 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 사이에서도 한계가 왔다는 비판을 듣게 되었고, 안티팬들에게는 훌륭한 까임 소재가 되어 내내 까였으며, 나중에는 아예 타 단체들에게도 대놓고 도발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극후반부인 2002년 5월 40대 후반이었던 노장 루차도르 엘 소랄과의 경기에서 급소를 맞고 경기속행 불능으로 반칙승을 거뒀는데 오히려 '노장과 겨루는 주제에 추태를 보였다'며 스즈키가 무진장 까이고 반칙패한 엘 소랄이 환호를 받을 정도로 역반응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스즈키의 종합격투기 커리어 말년과 프로레슬러로서의 복귀 ('프로레슬링이라는 연금을 타먹는 남자' 스즈키 미노루 by 칼럼니스트 정윤하)
3.2. 프로레슬링 귀환 그리고 독립군
그렇게 나날히 비난과 역반응이 깊어지던 와중 엘 소랄전의 다음 경기인 2002년 11월의 판크라스 요코하마 대회에서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인 수신 선더 라이거#s-2와 종합격투기 룰로 시합을 펼쳐 승리했지만 패배한 라이거가 더욱 각광을 받는 것을 보고 프로레슬링 무대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다.[27][28] 2003년 4월에 판크라스의 프로레슬링 전문 부서인 '판크라스 MISSION'을 설립하고, 6월 13일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했다.
당시 프로레슬링 업계는 종합 격투기의 대두로 인한 인기 하락 및 프로레슬링 무대에 격투가들이 참전해 좋지 못한 시합을 펼친 일 등이 있었기에 스즈키 미노루도 팬들로부터 무시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프리 계약 신분으로 여러 단체를 떠도는 한편 실력을 키워서 여러 명승부들을 만들어내며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함께 IWGP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하는 한편 텐잔 히로요시 및 사사키 켄스케가 갖고 있던 IWGP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패했다. 2004년부터 프로레슬링 NOAH에 출장해 IWGP 태그팀 타이틀을 노아에서 방어하거나, GHC 헤비급 챔피언이던 코바시 켄타에게 도전했지만 패배했다. 한편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태그팀을 맺어 GHC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하고, 아키야마 준과 명승부를 펼쳤다.고향인 신일본 프로레슬링. 유일하게 이야기 상대가 되어준 것은 타카야마였다. 시합을 마칠 때마다 "내 시합 어땠어?"라고 물었다. 그런 스즈키에게 타카야마는 말했다. "스즈키 씨의 프로레슬링은 재미없어.".
필사적으로 현대의 기술을 쓰려고 했습니다. 녹아들고 싶어서요. 다른 선수의 기술을 써보거나, 낙법 연습을 해보거나 했죠. 하지만 타카야마는 그것이 재미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을 모른다, 낙법을 취하지 않는다, 그것이 스즈키 미노루잖아요'라고요. 누구보다 강한 펀치,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그라운드 테크닉. 즉, 제 인생이야말로 제 무기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이 타카야마입니다."
스즈키 미노루, 최강 레슬러로의 길은 '이노키의 원수를 갚는다'에서 시작되었다 (2019년 4월 7일. web Sportiva) (공국진 역)
이후 2006년에 신인 때부터 라이벌이던 사사키 켄스케의 데뷔 20주년 흥행에 참가했다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비난하는 멘트를 남겼고, 당시 전일본 소속이던 혼마 토모아키가 도전해오자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가서 9월에 전일본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게다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는 역대 3명 밖에 없는, 챔피언 카니발 리그전 2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또 2004년도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기능상 & 최우수 태그팀상, 2006년도 프로레슬링 대상 MVP, 2008년도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태그팀상을 수상했다.
3.3. 스즈키군 및 프로레슬링 NOAH 침공
2004년 이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전하지않던 중 2011년 5월 3일 대회에서 악역군단 '코지마 군(가칭)'의 리더인 코지마 사토시를 습격하며, '코지마 군(가칭)'의 멤버인 TAKA 미치노쿠 & 타이치와 함께 스즈키군을 결성했다. 단번에 악역군단 리더로서 자리잡아 7년 동안 신일본에서의 공백을 잊게 만들 정도의 존재감과 활약상을 보였으며, 랜스 아쳐와의 태그로 G1 태그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 후 스즈키 군의 행보는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나, 스즈키 미노루 개인은 2012년 10월 타나하시 히로시와의 IWGP 헤비웨이트 타이틀전, 2014년 8월 AJ 스타일스와의 G1 클라이맥스 예선전에서 전세계 팬들의 주목을 모으는 명경기를 만들어 여전한 실력과 카리스마를 어필했다. 이 두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선정한 2012년, 2014년 올해의 경기다.
2015년부터 프로레슬링 NOAH에 스즈키군 멤버 전원을 이끌고 침략을 하면서 화제가 되더니, 3월 15일에는 처음으로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는 한편 스즈키군이 프로레슬링 NOAH의 모든 타이틀을 독식했다. 2015년 8월에 타카야마 요시히로를 상대로, 2015년 9월 19일엔 오사카에서 스기우라 타카시를 상대로 GHC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했다. GHC 헤비급 타이틀을 거는 대신 프로레슬링 NOAH의 해산을 조건으로 12월 23일에 열린 NOAH Destiny 2015에서 글로벌 리그 우승자인 마루후지 나오미치에게 패배했다.
3.4.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귀환 그리고 그 이후
스즈키군에 합류했던 스기우라 타카시에게 패하며 프로레슬링 NOAH 침공을 마친 후 2017년 1월 5일 뉴 이어즈 대쉬에서 스즈키군과 함께 CHAOS 멤버들을 습격하며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복귀해 오카다 카즈치카의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했다. 복귀 이후 상대를 가리지 않고, 깽판을 치고 다녔다. TV 아사히 아나운서이면서 신일본 프로레슬링 경기 캐스터이기도 한 노가미 신페이는 린치 당한 이후 트라우마까지 얻었다고 할 정도로 막장행보를 이어나갔다.
자신들에게 반칙이나 행하는 놈들이라 욕하는 신일본 레슬러들에게 '그건 니들이 정한 규칙 아니냐.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건 합법이다.'라며 까더니,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경기 조인식 때 오카다 카즈치카의 다리를 공격했다. 그리고 2월 5일 더 뉴 비기닝 in 삿포로에서 오카다 카즈치카의 부상당한 다리를 집요하게 노리지만 긴 경기 끝에 오카다의 레인메이커를 맞고 패배하는데, 지고 나서도 소름돋게 웃었다.[29]
뉴 재팬 컵 2017에 참가했지만 스즈키군이 괴롭혔던 시바타 카츠요리를 1라운드에서 만나 분전 끝에 패배했다. 그리고 영 라이온이나 심판 등 가릴 것 없이 린치를 가하는 한편 고토 히로오키와 신경전 및 난투극을 이어가다가 2017년 4월 27일에 고토를 이기고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그리고 CHAOS 멤버들과 대립하는 한편 그들을 상대로 방어전을 가졌다.
키즈나 로드 2017에서 YOSHI-HASHI와 방어전을 가지던 중 세컨드로 나온 오카다 카즈치카를 공격했다. 오카다 카즈치카와 스즈키 미노루는 G1 클라이맥스 27에 같은 조로 편성이 되어 8월 8일에 자신의 고향 요코하마에서 오카다와 경기를 가졌는데, 치열한 혈투 끝에 레인메이커를 맞고 둘 다 쓰러진 후 30분 시간초과로 무승부가 되었다. 이 경기는 G1 클라이맥스 27에서 케니 오메가와 가졌던 경기와 마찬가지로 데이브 멜처에게서 4.75성을 받았다.
G1 클라이맥스 27에서 야노 토오루에게 롤업으로 패했다. 게다가 킹 오브 프로레슬링 2017에서 잭 세이버 주니어와 함께 고토 히로오키 & 야노 토루를 상대했는데, 또 로블로에 이은 롤업으로 패한데다가 야노에게 자신의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 벨트를 도둑맞았다.''' 이에 야노 토루를 자신의 타이틀 매치 도전자로 지명해 파워 스트러글 2017에서 불로프 데스 매치로 승리를 거두며 야노를 상대로 복수에 성공했다. 신일본과 RPW의 합동 흥행인 글로벌 워즈 2017 둘째날 흥행에서 맷 리들과 경기해 승리하는데, 이 대진은 2018년에도 북미에서 인기를 끌게 된다. 고토 히로오키가 NEVER 오픈웨이트 타이틀전을 제안하면서 세컨드의 난입 없는 삭발 매치를 제의하자 이에 응했고, 레슬킹덤 12에서 고토에게 패해 타이틀을 잃은 뒤 스즈키군이 스즈키 미노루를 탈출시키려했으나 스스로 링 위로 올라가 자신의 머리를 깎았다.
레슬킹덤 12 다음 날의 흥행인 뉴 이어 대쉬에서 정규군과 다자간 태그팀 경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상징과 같던 악마의 열매 모양 스타일에서 변한 삭발한 모습을 보인다. # 그리고 당일 경기가 끝난 이후 타나하시 히로시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IWGP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에 도전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1월 20일에 잭 세이버 주니어와의 태그로 머스태쉬 마운틴(타일러 베이트 & 트렌트 세븐)을 이기고 RPW 브리티쉬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리고 더 뉴 비기닝 in 삿포로 2018 흥행 첫날 메인이벤트에서 32분여간의 격전 끝에 집요하게 타나하시 히로시의 다리를 노리며 끝내 레프리 스톱으로 IWGP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을 차지한다.
IWGP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을 탈환한 이후 마카베 토우기를 상대로 신일본 창단 기념일 2018에서 타이틀을 방어한 이후 다인 태그팀 매치 등으로 충돌이 잦아진 나이토 테츠야의 도전을 받는다. 그래서 레슬링 불의 나라 2018에서 둘간의 타이틀전이 확정되었고, 경기 막판에 연속 따귀 공격과 데스티노를 연달아 허용하며 타이틀을 뺏긴다. 본인의 데뷔 30주년 기념 흥행을 열었는데, 이 흥행의 첫날인 2018년 6월 24일에 스즈키 미노루는 야외의 링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오카다 카즈치카와 경기를 가져 30분 시간 초과 무승부를 기록했다. 2018년 7월 1일엔 RPW와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합동 흥행인 스트롱 스타일 이볼브드 UK에서 이시이 토모히로를 이기고 RPW 브리티쉬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한다.
2018년 10월 24일에 RPW와 신일본의 합동 흥행인 글로벌 워즈 2018에서 RPW 브리티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다시 이시이 토모히로에게 빼앗긴다. 하지만 태그 매치 및 경기 후 난투극으로 두 사람은 계속 싸워댔고 결국 파워 스트러글 2018에서 RPW 브리티쉬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하게 되어 치열한 승부 끝에 이시이 토모히로가 승리를 거둔다.
그 후 2019년 여름 G1 클라이맥스 29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는 대이변이 발생하고, 스즈키는 이에 대해 격렬한 분노를 표출한다.[30][31]
대회 중간, 마지막날까지 긴장하고 있으라며 경고를 해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다. 결국 마지막날 8월 12일 대회에서 열린 스즈키군과 오카다&타나하시의 태그팀 시합에서 승리한 후, 오카다의 IWGP 헤비급 챔피언 벨트에 도전장을 낸다. G1에 참전하지못해 분노를 키웠고, 가장 힘이 빠졌을 마지막날을 노렸다며 오카다를 도발한다.이건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하는 말이다..... 어째서! 날 G1에 출전시키지 않는거냐! 그렇게나 눈에 거슬리냐? 그렇게나 위험하냐? 그렇게나 너희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오카다를 이렇게 괴롭히기 때문이냐? 공국진 역
그리고 로얄 퀘스트 흥행에서 오카다를 상대로 타이틀 매치를 치뤄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줬지만 결국 패배했다.
이 후 디스트럭션 2019 들어서는 이전부터 대립의 기운이 쌓이고 있던 수신 선더 라이거와의 본격적인 대립을 시작, 라이거의 가면을 벗겨버리는 모욕을 선사했으나, 2012년 이후 7년만에 등장한 '''귀신 라이거'''에게 당하는 등 대립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킹 오브 프로레슬링 2019에서 스페셜 싱글매치를 치루는 게 확정됐다. 스즈키는 배틀 라이거 기믹을 꺼내든 라이거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링 위에 쓰러진 라이거를 향해 큰 절을 하며 예를 표하고 대립을 마무리했다.
레슬킹덤 14에서도 싱글 경기 없이 제 1일차 2경기 스즈키군 vs 로스 인고의 스페셜 8인 태그 매치에서밖에 출전 기회가 없었으나 2일차 쥬스 로빈슨과의 IWGP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타이틀전에서 승리한 존 목슬리 앞에 테마곡까지 틀며 정면에서 난입해 목슬리를 공격, 슬리퍼 홀드에 이은 곳치식 파일드라이버로 목슬리를 링바닥에 고이 눕혀버리고 자신이 프로레슬링의 왕이고, 걸어온 싸움을 받아주겠다고 말하며 US 챔피언에 도전할 것을 선포했다.
경기는 체어 일기토부터 테이블 파워밤까지, 치열한 범프의 경기가 펼쳐졌다. 접전 끝에 무려 두 번의 데스 라이더를 맞고 패배했다. 목슬리는 패배 후 퇴장하는 스즈키에게 존경의 인사를 건냈다. 이 경기 이후부터 목슬리가 AEW에서 슬리퍼 홀드나 곳치식 파일드라이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목슬리가 스즈키에게 상당한 리스펙트가 있었다는게 인터뷰로 드러났고, 현재도 캐릭터나 경기 운영에 있어서 목슬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은 확실한 셈.
이후 SUMMER STRUGLE in 진구 에서 211일간 방어하고 있던 타카기 신고를 상대로 벨트를 따냈다. 이로서 역대 최고령 NEVER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리고 2020년 G1 클라이맥스 30에 참여한다.
3.5. 획득 타이틀
IWGP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 타이틀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십 타이틀 (2회)
IWGP 태그팀 챔피언십 타이틀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타이틀''' (2회)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타이틀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타이틀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타이틀'''
GHC 태그팀 챔피언십 타이틀
- RPW
RPW 브리티쉬 태그팀 챔피언십 타이틀
- 판크라스
4. 종합격투기 전적
- 주요 승: 이나가키 카츠오미, 버논 화이트, 제임스 매튜스, 켄 샴락(2), 후케 타카쿠(3), 토마스 퍼켓, 모리스 스미스, 렘코 팔듈, 토드 비오르네턴, 맷 흄, 제이슨 델루시아(2), 그레고리 스미스, 크리스토퍼 데위버, 래리 파파도풀로스, 토드 메디나, 가이 메츠거, 이토 타카후미, 조엘 서튼, 자짓 싱, 쿠보타 코세이, 토니 로호, 존 로버, 숀 도허티, 엘 소랄, 쥬신 라이거, 한스 니만
- 주요 패: 바스 루텐(2), 후나키 마사카츠, 야마다 마나부, 프랭크 샴락(2), 가이 메츠거, 콘도 유키, 버논 화이트, 제이슨 델루시아, 야마미야 케이이치로(2), 세미 슐트, 후케 타카쿠, 타카하시 카즈오, 오마 보이체, 시부야 오사미, 키쿠타 사나에, 데니스 강
5. 여담
-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스즈키 미노루의 테마곡인 '風になれ(바람이 되어라)' 는 일본의 베테랑 여가수 나카무라 아유미가 스즈키 미노루의 의뢰로 만든 곡. 스즈키 미노루는 프로레슬러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중학교 3학년 이후 프로레슬러가 된 자신의 테마곡은 나카무라 아유미에게 맡기고 싶었다고 했고, 실제로 프로레슬러가 된 이후 스즈키의 의뢰를 나카무라가 흔쾌히 수락하며 스즈키의 꿈이 실현되었다.[32] 스즈키 미노루가 프로레슬러로서 인기를 구가하면서 테마곡도 덩달아 큰 인기를 끌어 하이라이트의 '카제니나레(風になれ)' 부분을 일본 뿐만 아니라 서양 관중들도 같이 외쳐줄 정도다. 레슬킹덤 7에서도 나카무라 아유미가 테마곡을 직접 라이브로 불렀고, 스즈키 미노루의 데뷔 20주년 흥행에서도 라이브로 불렀다.
- 별명이 '세상에서 가장 성질 더러운 사나이'였던데다가 악역이 더할나위없이 잘 어울리는 천상 악역이지만 2ch에서는 "정말로 스즈키가 세상에서 성질이 제일 더럽다면 세상은 정말 평화로울 것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착한 사람이다.[33] 타이치가 2014년 5월 말에 불륜을 저지른 게 발각되었을 때 그를 질책하면서도 내치지 않고 스즈키군으로 데리고 다녔으며, NOSAWA 논외가 대마초 소지 누명을 썼을 때도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한다고 표명하였고,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경추 완전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오자 TAKAYAMANIA를 발촉해 그를 꾸준히 돕는 등 동료들에게도 신뢰가 깊고 따뜻한 것으로 유명하다. 선배 수신 선더 라이거#s-2도 자신의 유튜브에서 썰을 풀면서 "이런 말 하면 영업방해로 신고당할지도 모르지만...그래도 사실 팬들은 다 알잖아?"이라면서 간접적으로 스즈키의 착한 인성을 인증했다.
- 지금의 아내와는 재혼으로 20대 말쯤에 한 번 이혼한 적이 있다. 스즈키가 지금의 아내에 대해서 말하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이라고(...) 자녀는 아들이 한 명 있다는 것 외에는 불명.
- 취미는 낚시로,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8세 때 판크라스 경기 도중 큰 부상을 입고 설상가상으로 이혼까지 했을 때 친구에게 권유받아서라고 한다. 도쿄 스포츠 인터뷰에서는 "은퇴하면 낚싯배점이나 낚시꾼을 할까. 아마 평생 계속해 나갈 거 같아"라고도 말한 적도 있으며, 낚시 관련 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다.
- 2007년 1월에 전일본 오키나와 대회에 참전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방문했다가 요나바루 경찰서에서 일일 서장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도쿄 스포츠에는 "미노루 체포"라는 표제가 실려 있었다고(...)
- 도쿄 시부야구 진구마에에 '파일 드라이버'라고 하는 개인 샵을 운영하고 있다. 스즈키군의 티셔츠나 기타 굿즈, 자신이 디자인한 버전의 악마의 열매 장식품이나, 그림 및 옷 등을 팔고 있다. 다만 본업은 아니다보니 대리인이 주로 가게를 운영하며, 가게의 스태프들은 자신의 판크라스 MISSION 소속 선수를 포함하여 모두 레슬링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곤란한 인디 레슬러들이다. 위치는 東京都渋谷区神宮前6丁目27−8 京セラビル로 국립 요요기 경기장 근처라서 시부야역보다 하라주쿠역 혹은 도쿄메트로 메이지진구마에<하라주쿠>역에서 가는 게 더 빠르다.
- 스탠스 삭스와 신발 마니아로, 인스타에는 거의 매일 'Today's STANCE'라는 이름으로 그날 신은 스탠스 삭스와 거기에 맞춰 신은 신발 사진이 올라온다. 라떼 아트도 굉장히 좋아해서 이 두가지의 인스타 사진 지분율이 거의 60%에 달한다.
- 모자도 굉장히 좋아하며, 사석에서는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는 듯 하다. 모자 컬렉션도 굉장히 다양한데 가장 자주 쓰고 다니는 건 페도라.
- 소문난 원피스 빠여서 머리의 스크래치는 전부 악마의 열매의 문양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일본 예능 스마스마에서 한 원피스 퀴즈에 나와 꽤나 선전하더니, 7회 대회에선 기무라 타쿠야를 꺾고 우승도 차지한 적이 있다.[34] 이외에도 NOAH의 시오자키 고의 피니쉬를 고 프레셔[35] 로 지어주더니, 원피스 작가인 오다 에이이치로를 스즈키 군에 가입시켰다.(...)# 이전부터 원피스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에피소드에 출연하는 등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36]
-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개그 시합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개그 시합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DDT 프로레슬링의 개그끼 넘치는 흥행에도 참가해 예능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메카 머미와 웃긴 시합을 만든 한편 2017년 6월 1일엔 관중들이 없는 도쿄돔에서 DDT 로스터에다가 텐류 겐이치로 등 유명한 프로레슬러들의 참여 속에 DDT의 사장 겸 선수인 타카기 산시로와 웃긴 경기를 만들었다.
- 나가타 유지와는 데뷔 이전 아마추어 레슬링 시절부터 라이벌이며, 레슬킹덤에서만 3번을 격돌했다. 그 이외엔 사사키 켄스케와 태그팀 타이틀을 같이 차지하기도 하는 등 선의의 라이벌 관계다. 비공식 라이벌로 야노 토오루가 있다. 링 위에선 성질이 더럽고 급한 스즈키 미노루에게 능글맞고, 느긋하며 음모로 가득 찬 야노 토오루는 최악의 상성이라 스즈키가 작정하고 덤볐다가 야노의 음모에 빠져 패배하거나 굴욕을 당한 경우가 꽤 된다.
- 신일본 프로레슬링, 전일본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 NOAH의 메인 타이틀을 모두 석권하며 그랜드 슬램을 차지한 선수들은 스즈키 미노루와 친분이 있는 '제왕'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머슬 볼케이노' 사사키 켄스케가 있다. 스즈키 미노루는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해야 가능하다.
- 2016년 일본의 황당 괴수 영화 '대괴수 모노'에 출연했는데, 평소에는 이부시 코타로 싸우다가 열받아 파워 업하면 스즈키 미노루가 된다는 설정이다(...).
- 2010년대 이후 모습만 본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신일본 초기와 판크라스 시절엔 흐트러짐 없는 리젠트 헤어 스타일의 만화에서 갓 나온 잘나가는 폭주족같은 훌륭한 비쥬얼의 소유자로 판크라스 시절엔 한 잡지에서 조사한 '안기고 싶은 남자' 순위에도 든 적이 있다. 나이를 먹은 후에도 프로레슬링 무대상의 캐릭터 때문에 얼굴을 구기고 다녀서 그렇지 가만히만 있으면 원판 자체가 훌륭한지라 미중년 축에 속한다.바람갑의 변천사
- 철권 3에서 2대 킹의 모션캡처를 담당했다. 이때 킹의 연속잡기 기술명 중에 "벨우드 스페셜 콤보"라는 것이 추가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스즈키의 성을 영어로 읽은 것에서 유래하며(Bell=鈴/wood=木), 모션 캡처를 담당한 그를 기념하여 넣은 것이라고. 또한 그의 고유 무브인 사카오토시는 항상 포함되어왔다. 아머킹 역시 그의 상징기인 슬리퍼 홀드 이후 파생되는 연속잡기 기술을 기술커맨드에 포함시켜왔다. 철권 7에서 아머킹이 없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나 했으나, 아머킹이 시즌 2 신규 DLC 캐릭터로 참전하고 연속 잡기 기술로 역시나 슬리퍼 홀드 → 사카오토시를 들고 나왔다.
6. 둘러보기
[1] 본명의 이름 부분을 히라가나로 썼다.[2] 명실상부 스즈키 미노루 최고의 상징기. 스즈키 미노루는 이 기술을 일컬어 '2살짜리 어린애도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하지만 본인의 넘쳐흐르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때리는 상대의 뺨을 찢어놓는듯한 한 방 한 방의 살벌한 임팩트는 결코 아무나 따라할 수 없다. 여담으로 2006년 초 NOAH에서 가진 아키야마 준과의 매치에선 서로 200발이 넘는 뺨 때리기 대결을 펼친 적도 있다.[3] 빅 붓 자체는 기본기에 가깝지만 의외로 신일본에서는 사용자가 몇 안 되는데, 그 몇 안 되는 사용자 중 한 명. 178cm이라는 레슬러로서 크다고 보기는 힘든 키에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cm 이상의 키 차이가 있는 오카다 카즈치카의 턱에 빅 붓을 꽂을 수 있는 훌륭한 신체 능력을 보여준다. 주로 코너식으로 사용하는 편.[4] 레슬링 기술로써는 상대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고통을 주면서 스즈키의 극악함을 어필할 수 있는 '스즈키다운 기술' 중 하나에 불과하나, 이 기술의 진정한 진가는 판크라스 시절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그 켄 샴락'''을 '''두 번'''이나 잡게 해 준 기술이라는 것. 1995년 5월의 두 번째 경기에서 2분 14초만에 이 기술로 승리를 따내며 판크라스 무제한급 2대 챔피언이라는 스즈키의 격투기 인생 최고의 영예를 안겨준 기술이다.[5] 스즈키 커리어 초기에 신일본을 그만두는 계기가 된 기술. 마에다 아키라, 후지와라 요시아키 등 실전주의의 UWF소속 선수들의 탈퇴 이후 스즈키는 이 기술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UWF에 물들었냐"며 선배에게 찍히고 UWF로 이적하였다.[6] 로프로 밀어붙인 링 안에 있는 상대의 팔을 잡고 그대로 로프 바깥쪽으로 거꾸로 매달리며 트라이앵글 초크를 시전하는 기술. 물론 프로레슬링 룰이 있는지라 4초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기술이지만 다른 사용자가 없는 스즈키 미노루의 상징기이다.[7] 인버티드 페이스록 테이크오버. 상대의 등 뒤에서 슬리퍼 홀드로 목을 조르다가 상대의 몸을 자신의 등 위에 태우듯 당겨서 얼굴부터 바닥에 떨어트리는 기술로, 슬리퍼 홀드의 파생기. 원래는 칼 곳치에게 배운 기술로 백병전에서 상대의 목을 부러트릴 때 쓰던 기술이나 프로레슬링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스즈키가 안전하게 개량해서 자신의 오리지날 무브로 써먹고 있다. 사카오토시에 대해서(공국진 역) 실전 기술을 프로레슬링에 접목해 싸우는 스즈키 미노루의 기술다운 실전성이 돋보이는 기술. 뜻은 일본어로 '거꾸로 떨구기'. 2010년대 후반부터는 사용하지 않으나 철권 7 아머킹의 연속 잡기의 일부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8] 스즈키의 장외전 상징기. 양손으로 들어서 풀스윙으로 주로 등을 내리치는 가장 정석적인 체어샷을 보여준다.[9] 스즈키의 첫 번째 스승, 안토니오 이노키의 상징기. 상대를 한계까지 조여 이 기술로 승리를 가져가는 경우도 있으나, 목이 졸려 반쯤 넋이 나간 상대에게 곳치식 파일 드라이버를 꽂아버려서 상대를 완전히 넉아웃시키는 것이 스즈키의 진정한 필승 전법. 2019년 중반기부터는 전초전에선 딱 1초쯤만 걸고 바로 곳치식 파일드라이버로 들어가는 경우가 늘었다(...)[10] 크레이들 파일드라이버. 후지와라구미 시절 고문이자 평생 존경하는 두 번째 스승 칼 곳치에게 영감을 받아 스즈키 미노루 본인이 직접 개발한 파일 드라이버의 일종. 1989년 8월 UWF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이후 30년 넘게 이어져온 피니셔로, 손을 상대의 다리 사이에서 잡아 클러치한 다음 사용해서 위력을 높인 것이 가장 큰 특징. 본래는 상대를 들어 올린 후에 클러치를 하고 찍는 방식이었지만, 칼 곳치를 만나 조언을 받은 후 상대를 '''들어올릴 때''' 클러치를 하는 방식으로 개량했다. 상대를 완전히 고정한 다음에 찍기 때문에 실로 무식한 위력을 자랑하는 기술로, 스즈키 미노루 최강의 필살기이자 칼 곳치를 사사했다는 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기술이기도 하다. 기술 이름은 본인이 붙인 것이 아니고 쓰다보니 어느샌가 붙게 되었지만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이 붙어있으니까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그대로 놔뒀다고 한다.[11] 판크라스에 소속된 격투가 시절 날카로운 싸움 방식에서 나온 별명.[12] 전일본 참전시절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을 차지했을 즈음의 별명. 물론 성악설에 기반한 별명이다.[13] 2011년 신일본에서 스즈키군을 결성한 이후 사용하기 시작하여 2018년까지 사용한 별명.[14] 2018년에 타나하시 히로시를 이기고 IWGP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 된 후부터 세상의 보물(여러 프로레슬링 단체들의 챔피언십 타이틀)들을 모조리 왕이 차지하겠다면서 프로레슬링의 왕이란 별칭을 자처한다.[15] 테마곡 '風になれ(바람이 되어라)'에서 따 와서 프로레슬링 갤러리에서 붙여준 별명.[16] 中村あゆみ. 오사카 출신. 1984년 아이돌로 데뷔했을 때 부터 허스키한 보이스로 유명했으며, 이후 여성 솔로 가수로 전환, 1998년에서 2004년까지 공백기를 거친 후 현역으로 활동 중. 2019년에 데뷔 35주년을 맞이하였다. 대표곡은 翼の折れたエンジェル(날개 꺾인 천사).[17] 여기까지 두 곡은 모두 UWF시절 쓰던 곡이었다. 나카무라 아유미의 열렬한 팬이었지라 이때부터 나카무라 아유미의 곡들을 입장곡으로 썼다.[18] 태양빛 속에서. 이 곡까지 위에 두 곡은 후지와라구미 시절의 테마곡.[19] 미드나잇 할렐루야. 후나키 마사카츠와 판크라스를 설립한 이후에 쓰던 테마곡.[20] 뜻은 '바람이 되어라'. 오직 자신의 팬임을 공언하고 다니던 스즈키 미노루를 위하여 나카무라 아유미가 만든 곡. 당시 나카무라의 소속사의 협력으로, 인디 한정으로 발매되었다. 판매가 중단된 후에는 스즈키의 활약으로 음반의 레어도도 같이 높아져 인터넷 경매 사이트 등에서 고액으로 거래됐으나 2014년 베스트 음반인 『Ayumi of AYUMI, 30th Anniversary All Time Best』에 이 오리지널 버전이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며 품귀현상이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스즈키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곡이 먼저 완성되고, 그 후에 곡명을 붙였다고 나카무라가 회고한 바 있다.[21] 가장 유명한 버전. 전 버전들에 비해 확실히 허스키해진 보컬이 특징. 2006년부터 쓰이던 「風になれ-Rough-Mix-」의 CD화 요청이 많아져 2012년 10월 나카무라 아유미와 스즈키 미노루가 미팅을 거친 결과 발매가 확정되어 CD화되었다. 신일본 레슬 킹덤 7에서 나카무라 아유미가 이 버전을 직접 열창하였는데, 이날이 마침 CD의 발매일이었다.[22] '프로레슬링의 왕'을 자칭하기 시작한 2018년부터 쓰이는 신버전. 도입부를 바이올린이 담당하며, 스즈키보다도 연상인 나카무라 아유미의 목 상태를 고려하여 반음이 낮아졌다.[23] 후지와라 요시유키. '관절기의 귀신'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우던 관절기의 대가. 88년까지 언더카더로 있다가 그만둔 후 프로레슬링계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24] 후나키 마사카츠와는 94년 10월 유일한 대결을 펼쳤고, 리어 네이키드 초크에 걸리면서 2분여만에 패배하였다. 이후 프로레슬링으로 복귀하기까지 사이가 틀어진 둘 사이에서의 대전은 없었다.[25] 이 타이틀은 같은 해 9월 1일에 열린 Pancrase - 1995 Anniversary Show에서 15분여만에 길로틴 초크에 항복하며 바스 루텐에게 내줬다.[26] 이 건으로 친구였던 후나키 마사카츠와 앙숙이 되었다. 당시 종합격투기의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한 주짓수를 스즈키 미노루는 개인적으로 싫어하여 도장에서 훈련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다른 격투 단체들과 기술적으로 큰 차이를 만드는 계기가 되자 후나키 마사카츠가 지적했기 때문. 이 악연은 후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이던 무토 케이지가 프로레슬러가 된 둘의 경기를 부킹하는 방식으로 이어나간다.[27] 사실 위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로레슬링 판으로의 복귀는 계획된 것이었다. 원래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함께 신예로 있던 사사키 켄스케와 종합격투기 룰로 붙고, 이를 계기로 다시금 신일본에 출전하려는 계획이었으나, 초슈 리키가 WJ를 설립해서 신일본을 탈단할 때 사사키 켄스케도 합류하며 사사키가 신일본이랑 멀어지게 되자 수신 선더 라이거가 사사키 켄스케 대신 스즈키 미노루와 종합격투기 룰로 붙게 된다. 여담으로 이 경기부터 스즈키 미노루 특유의 캐릭터가 확립되기 시작했다.[28] 두 사람의 대결은 이후 2004년에 사사키 켄스케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돌아와 챔피언이 되었을 때 스즈키 미노루가 도전하며 오사카돔에서의 IWGP 헤비웨이트 타이틀전, 2007년 8월 26일에는 역으로 챔피언인 스즈키 미노루에게 사사키 켄스케가 도전하며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상 처음으로 프리 계약 신분의 선수들끼리 삼관 헤비급 타이틀전을 갖게 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2007년 8월 26일의 경기는 명승부라 일컬어지지만 2004년의 경기는 안토니오 이노키가 메인이벤트 대진을 변경하는 등 전횡을 일삼던 시기라 빛이 바랬다.[29] 데이브 멜처는 괴수영화의 괴수가 또 돌아올 것을 암시하는 웃음이었다는 언급을 하면서 이 경기에 4.75성을 주는 한편 레슬킹덤 11에서 오카다 카즈치카 vs 케니 오메가의 경기가 없었다면 올해의 경기급이라고 호평했다. 또 적지 않은 나이지만 트리플 H마냥 자신의 위상을 엄청 높게 잡지 않고도 충분히 훌륭한 경기를 만드는 스즈키 미노루의 능력 또한 극찬했다.[30] 그 후 스즈키의 불참 원인을 원인을 추측하던 도중 제법 그럴싸한 레딧발 썰이 나왔는데, 스즈키가 화려한 기술을 배제하고 실전 베이스의 기본기를 베이스로 하고 있어 티가 잘 안 날 뿐이지 스즈키 미노루의 몸 상태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데미지 누적으로 인해 후방낙법을 정석대로 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는 것.[31] 그런데 굳이 스즈키의 몸상태가 워크 위장상태냐 슛으로 심각한 상태냐 따질 거 없이 올해 G1 클라이맥스가 전체적으로 "노장라인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선수선발을 하긴 했다. 스즈키 미노루도 엔트리 미포함이긴 했지만 꾸준히 G1 참전 시켜달라고 했던 코지마 사토시도 이번 G1은 탈락, 마카베 토우기마저도 이번 G1은 탈락했다. 논외에 가까운 이시이와 타나하시를 제외하면 2000년대 초반 데뷔였던 '''고토 히로오키와 야노 토루가 이번 G1 출전 연령대의 마지노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선 "부상병동"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토,이부시,타나하시는 출전 확정인데 왜 스즈키,마카베가 못나오냐 라고 할 수 있지만, 이건 이번 G1클라이맥스의 일정 탓도 크다. 원래 G1이 거의 쉼 없이 일정을 소화하는데다, (비경기 일에도 4인 내지는 6인 군단전 태그매치가 잡힐 때가 있다.) 27,28과는 다르게 댈러스 개막전이라는 해외흥행도 껴있어 지난 두 대회보다 일정이 더 살인적인 것도 크다. 즉, 많이 돌려말하긴 했으나, "나이 문제"에서 노장라인인 스즈키, 마카베는 자유롭지 못한 상황. [32] 이후 나카무라 아유미도 스즈키 미노루의 팬이 되었다.[33] 쵸노 마사히로, 덤프 마츠모토, 스탠 핸슨, 게도 등 실생활에서 좋은 사람인 악역 프로레슬러 사례는 많다. 하지만 일본 3대 단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흥행성 외에 본인의 친화력 및 인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34] 결승전에서 나온 문제가 성우 야오 카즈키가 맡은 배역을 모두 말하는 것이었는데, 이걸 맞추고 프랑키 목소리로 녹음된 알람시계를 얻었다.[35] 버티컬 슈플렉스로 들어올려서 파이널 컷으로 마무리짓는 고난이도 기술이다.[36] 스페셜 에피소드 '쵸파맨'에서 사회자 특별출연자 '카제노 미노루'란 이름의 레슬러 캐릭터로 나와 쵸파맨을 대신해 악당 우솝을 때려눕혔다.[★] A B C D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37] 슈퍼 메가톤 오오스모 파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