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모리 타이지
1. 프로필
2. 소개
불릿 클럽 소속으로 신일본에 프리랜서 참전 중인 일본의 프로레슬러.'''"It's Reborn!"'''
울티모 드래곤의 토류몬 출신의 일본인 루차도르로, 163cm이라는 레슬러로서 극히 불리한 키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루차 리브레 실력으로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최장 보유 기록(405일)이 말해주듯 프로레슬링 NOAH 주니어 전선의 최강자로 군림했고, 신일본 불릿 클럽 참전 이후에는 엘 판타즈모와 함께 불릿 클럽의 주니어 전선을 책임지고 있다.
3. 경력
3.1. 입단 전 ~ 커리어 전반기
초등학교 때는 그림이 취미었던 내성적인 아이였지만 중학생 때 고향인 타가죠 시에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이 와서 보러 간 것을 계기로 프로레슬링에 빠져 프로레슬러를 목표로 하게 되었으며, 토호쿠 공업 고등학교[18] 레슬링부에 진학해 48kg급 인터하이 베스트 8에 드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02년 토류몬에 응모하여 합격, 9기생이 되었고[19] 같은 해 5월 11일 멕시코에서 동기 하시모토 후미유키와 데뷔전을 치뤄 패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영 드래곤배'에서 우승하며 울티모 드래곤 체육관 3rd Class '토류몬 X'의 에이스로 기대를 받기 시작했고, 2003년 5월 11일에는 슈퍼 크레이지의 UWA 세계 웰터급 벨트에 도전하여 슈퍼스타 엘보우를 작렬하며 승리, 데뷔 1년만에 3년 5월 11일에는 슈퍼 크레이지의 UWA 세계 웰터급 벨트에 도전하여 슈퍼스타 엘보우를 작렬하며 승리, 데뷔 1년만에 싱글 타이틀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2003년 8월 디파 아리아케에서 열린 토류몬X 역상륙흥행에 참여한 후엔 동기인 쌍둥이 형제 사토 슈, 사토 케이와 함께 ~ 울티모 드래곤의 입김이 빡세게 들어간 레슬링 아이돌 그룹(...) ''''세일러 보이즈(セーラーボーイズ)''''를 결성하고 'キープ・オン・ジャーニー(킵 온 저니)'라는 곡을 발매하며 CD데뷔, 입장할 때 세 명이서 입장곡을 직접 부르면서 나오는 싸우는 아이돌로 쭉 활동했다.
1년여 뒤인 2004년 9월 토류몬X가 둘로 갈라져 그 중 토류몬 JAPAN[20] 이 울티모 드래곤에게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걷게 되었고, 토류몬X 멤버들은 일본 활동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이시모리는 9월 9일 고라쿠엔 홀에서 열린 토류몬X 파이널 흥행의 메인 이벤트인 UWA 세계 6인 태그 타이틀전 세일러 보이즈 vs CTU(자도&게도,타케무라 카츠시)에 킵 온 저니를 열창하며 출전했지만 16여분만에 사토 슈가 자도의 크로스페이스 오브 JADO에 탭을 치면서 최종전에서 패배를 기록했고, 벨트도 넘겨주고 말았다.
이후 몇 번의 타 단체 스팟 참전[21] 때만 제외하곤 다른 구 토류몬X 멤버들과 멕시코에 덩그러니 남겨져있던 이시모리는 2005년 4월 말 드래곤 게이트에서 행실불량과 직무태만을 이유로 그 전해 연말에 싸그리 짤린 군단 '''악관일색(悪冠一色)'''[22] 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새로운 토류몬 계열 단체 Dragondoor에 합류하였고, 에이스 후보로 활동하다가 다음해 2월 Dragondoor의 후신 단체인 프로레슬링 엘 도라도에도 합류하여 전달에 스승 코바시 켄타와 서로 죽여버릴 듯한 살육전을 펼친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KENTA에게 도전, 4월 23일 일본무도관에서 첫 노아 참전 겸 첫 타이틀전을 치뤘으나 20여분만에 고 투 슬립에 당하며 패배했다. 그리고 5월 17일 엘 도라도 합류 3달만에 엘 도라도 시부야 클럽 아시아대회를 마지막으로 퇴단, 프로레슬링 NOAH 레귤러 참전을 목표로 프리로 활동하겠다고 선언한다.
3.2. '노아의 주니어는 최강'의 일원이 되다
엘 도라도 탈단 이후에는 계속해서 NOAH에 스팟 참전을 이어왔지만 NOAH 이외에는 출장할 곳도 거의 없다시피했던데다 연습할 장소도 없어서 레슬러 생활을 이어나가려면 NOAH의 레귤러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각오를 다졌고, 2006년 7월부터는 지방 흥행을 포함하여 전 흥행에 참가하게 되었다.
프리랜서임에도 타이틀전 기회를 꽤 받아서 2007년 2월 24일에는 록키 로메로와 태그팀으로 스즈키 코타로 & 리키 말빈팀이 가지고 있던 GHC 주니어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에 첫 도전했으나 패배하였고, 2007년 3월 8일에는 앞서 스기우라 타카시가 '초룡' 타카이와 타츠히토(高岩竜一)한테 패하며 제로원 맥스에 넘어가있던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급 벨트를 되찾아오기 위해 제로원 맥스의 고라쿠엔 홀 흥행에 참전해서 타카이와에게 도전했으나 17분만에 데스밸리 드라이버를 얻어맞고 타이틀 탈환에 실패했다.
초여름에는 KENTA와 태그팀을 짜서 7월에 니혼테레비배 쟁탈 주니어헤비급 태그 리그전[23] 에 출전, 최종전에서 마루후지 나오미치 & 이부시 코타[24] 팀을 꺾고 첫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8월 31일 히로시마 대회에서 주니어 태그 리그 우승의 기세를 몰아 여전히 타이틀을 유지 중이던 스즈키 코타로 & 리키 말빈 팀에게 또다시 도전했으나 32분의 혈투 끝에 스즈키 코타로의 블루 데스티니(고리 넥브레이커)에 이시모리가 핀을 따이고 말았다.
이후에도 노아의 산하 브랜드인 프로레슬링 셈에도 참전하는 등 준소속 상태로 노력을 이어오던 이시모리는 드디어 2008년 1월에 정식 선수가 되었다. 두 달 뒤인 3월 20일 이시모리는 전해 11월 이후로 드래곤 게이트로 넘어가버린 벨트를 되찾기 위하여 KENTA와 함께 드래곤 게이트의 오오타 구 체육관 대회에서 챔피언 타카기 신고 & BxB Hulk팀에게 도전, 23분 54초 KENTA가 살벌한 킥 3연발을 타카기 신고의 측두부에 내리 꽂아넣고 3카운트를 따내는데 성공하며 헤비급 태그 왕좌를 탈취해냈다. 타이틀은 7월 13일까지 유지하고 있다가 3차 방어전에서 KENTA가 스즈키 코타로의 신 피니셔 레퀴엠에 핀폴당하며 DIS OBEY의 스즈키 코타로 & 카네마루 요시노부팀에게 넘겨주고 말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8월 23일 개최된 제 2회 니혼테레비배 쟁탈 주니어헤비급 태그 리그전에 또다시 KENTA와 출전해서 우승, 2연패를 거두었다. 기세를 탄 둘은 12월 일본무도관 대회에서 다시 스즈키 & 카네마루에게 도전했지만 또다시 레퀴엠에 가로막히며 무관으로 해를 넘겼다.
2009년 4월에는 DDT에 원정을 가서 이부시 코타랑 대결했으며, 5월 18일에는 디파 아리아케에서 리키 말빈과 GHC 주니어헤비급 챔피언 도전권을 놓고 대결했으나 패배했다. 6월에는 여태까지 태그 팀으로 쭉 지내왔던 KENTA와 결별하고 턴힐, 링기어도 노란 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고 6월 4일부터 새롭게 카네마루 요시노부와 태그를 결성했지만 6월 13일 노아의 맹주 미사와 미츠하루가 링 위에서의 사고로 사망하는 노아 사상 최대의 비극이 벌어지자 재편성을 위해 턴힐은 취소되고 결국 다시 KENTA와 함께하게 되었다. 곧바로 7월부터 열린 주니어 태그 리그에 KENTA와 참전해서 3년 연속 우승을 노렸으나 준결승전에서 숙적 카네마루 & 스즈키 팀에게 패배하며 3연패가 좌절되었다. 8월 1일에 디파 아리아케 대회 메인이벤트로 KENTA와 싱글전을 치뤘다 패배한 뒤 태그팀 해체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시모리는 10월에 열린 주니어 태그 리그에 참가했으나 1승 2패 1무(히라야나기 겐바와 나란히 링아웃)의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12월 6일에는 리키 말빈과 새로 태그 팀을 맺고 카네마루 & 스즈키가 아직도 가지고 있던 GHC 태그 팀 챔피언에 도전했으나 22분 26초 리키 말빈이 스즈키 코타로에게 쓰리 카운트를 내주며 패배, 한 해 내내 타이틀이랑 인연이 없는 가장 실속없는 한해를 보내게 되었다.
이듬해 1월 스즈키 코타로가 좌측 십자인대 단열상을 입고 장기 결장에 들어가면서 주니어헤비급 태그 챔피언을 반납하게 되자 다음 챔피언 결정을 위해 네 팀이 2월에 GHC 주니어헤비급 태그 왕좌 결정 토너먼트를 치루게 되었고, 기회를 노리던 이시모리는 리키 말빈과 함께 절치부심하며 출장, 바비 피쉬 & 에디 에드워즈를 1회전에서 이기고 2회전 겸 결승전에서 카네마루 & 히라야나기 겐바 팀을 만나 13분 48초만에 카네마루에게 450 스플래시를 작렬하며 장장 1년 반만에 다시 GHC 주니어 태그 챔피언 자리를 되찾았다. 이어서 3월 19일에는 멕시코로 원정을 떠나 AAA의 멕시코 시티 흥행에서 모리시마 타케시와 태그로 AAA 월드 태그팀 챔피언 니초 엘 밀리어네리오 & 조 라이더에게 도전해서 다시 한 번 450 스플래시로 9분만에 낙승을 거두며 AAA 월드 태그팀 챔피언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윽고 3월 28일에는 여세를 몰아 카네마루 요시노부의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도전장을 내밀어 경기 중에 부상당한 카네마루의 왼무릎을 집중 공략하면서 승리에 대한 집착을 보였지만 14분 30초경 비기 슈퍼스타 엘보를 간파한 카네마루가 그대로 이시모리를 접어버려서 핀을 시도했고 그대로 쓰리 카운트를 허망하게 따이고 말았다.
5월 23일 시오자키 고 & 아오키 아츠시와의 AAA 태그 타이틀 두 번째 방어전에서 시오자키의 고 프러셔에 당하며 벨트 하나를 잃은 이시모리는 5월 30일에 신일본의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에 처음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AKIRA와 카네모토 코지에게 패했지만 당시 신일본 주니어의 주축이었던 타구치 류스케를 개막전에서 격파한 것을 시작으로 케니 오메가, 타마 통가, YOSHI-HASHI를 연달아 잡아내며 노아 주니어의 무서움을 톡톡히 보여주며 4승 2패로 준결승에 올라 6월 13일에 프린스 데빗과 맞붙었지만 7분만에 죽창기 블러디 선데이에 당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다시 노아로 돌아와서 GHC 주니어 태그 타이틀을 두 번을 방어해낸 이시모리였으나 8월 22일 아리아케 콜로세움 대회에서 신일본의 카네모토 코지 & 타이거 마스크 4세와의 3차 방어전에서 말빈이 카네모토의 던지기식 타이거 수플렉스에 던져진 후 그대로 핀을 내주며 주니어에서 한 수 아래라 여겼던 신일본에 벨트를 뺏기는 굴욕을 당했다. 벨트를 찾아오겠다는 일념으로 10월에는 말빈과 주니어 태그 리그에 나갔으나 준결승조차 못 가고 고배를 마시며 3년 연속 연말에 벨트가 없는 징크스를 떠안게 된다.
다음 해인 2011년 3월 12일, 염원의 GHC 주니어 헤비급 타이틀을 위하여 태그팀 파트너 리키 말빈과의 주니어 왕좌 도전권전에서 승리한 이시모리는 3월 21일 후쿠오카 국제 센터에서 전해 12월 카네마루의 1년이 넘어가는 장기집권을 깨부수고 챔피언에 올라있던 스즈키 코타로에게 도전했지만, 19분 18초 타이거 드라이버에 핀을 내주며 어김없이 좌절을 겪게 된다. 4월에 KENTA, 카네마루, 히라야나기 겐바가 반체제 유닛 ''''NO MERCY''''를 결성하자 스즈키 코타로, 아오키 아츠시와 함께 ''''ANMU''''(Anti NO MERCY Unit)를 결성해 치열한 항쟁을 전개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5월 23일에는 아키야마 준과의 싱글 경기가 잡혀 아키야마가 링 인하는 사이에 드롭킥을 갈구며 기습했지만 불과 3분만에 아키야마의 죽창기 스타네스 더스트 알파가 이시모리의 후두부에 작렬하며 초살을 당하고 말았다. 7월에는 5회차를 맞이한 니혼테레비배 쟁탈 주니어헤비급 태그 리그전에 잭 세이버 주니어와 팀으로 나갈 예정이었으나 직전에 좌측 무릎 측부인대 손상이라는 부상을 입으며 출전을 포기했다. 회복 이후 9월 3일에는 NO MERCY의 수장이 되어있던 과거의 파트너 KENTA에게 도전했으나 10분만에 GTS에 무너지고 말았고, 그 뒤로도 별 소득 없이 연말을 보내며 해를 넘겼다.
부진이 길어지는 와중 맞이한 2012년. 1월에 소속 유닛인 ANMU에 '호완' 시오자키 고가 들어오는 등 세력이 커지자 이시모리는 '있을 곳을 잃었다'라는 이유로 ANMU를 탈퇴하고, 29일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스기우라 타카시가 새로 만든 유닛 ''''마루후지군(丸藤軍)''''에 정식 가입하면서 유닛을 옮겼다. 그리고 2월 25일 나카지마 카츠히코의 GHC 주니어헤비급 타이틀에 거의 1년만에 도전했지만 24분 20초 경 나카지마의 강렬한 오른발 하이킥이 이시모리의 머리에 그대로 꽃히며 KO를 당하고 말았다.
4월 10일 마루후지, 스기우라, 모하메드 요네, 리키 말빈과 이시모리가 소속되어있던 마루후지군의 정식 명칭이 ''''BRAVE''''로 결정되었고, 활동하던 도중 6월 13일 마루후지라는 강력한 파트너와 함께 스즈키 코타로 & 아오키 아츠시의 GHC 주니어헤비급 태그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스즈키 코타로의 타이거 드라이버를 견디지 못하며 또다시 스즈키의 두터운 벽을 넘지 못했다. 7월 19일에는 신주쿠 FACE에서 열린 토류몬 9기생 데뷔 10주년 흥행에 참여해서 오랜만에 동료들과 재회, 마사 타카나시와 함께 처음 '세일러 보이즈'를 함께 했던 곱상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괴상한 모습이 되어버린(...) 바라몬 슈, 바라몬 케이를 상대해서 1분 27초만에 양팀 링 아웃 무승부로 허무하게 경기가 끝났으며, 재경기를 치뤘지만 10분만에 다시 양 팀 링아웃으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3.3. 새로운 본 솔져
그 후 꾸준히 노아 주니어 헤비급의 핵심 선수로 활동하던 이시모리는 어느 순간 부터 임팩트 레슬링으로 원정을 떠나는 등 해외 활동에 조금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결국 2018년에 노아와의 계약 종료로 탈단하게 된다.
그 후 각종 흥행에 참가하던 이시모리는 어느날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떡밥을 꺼낸 2대 본 솔져 후보 중 한명으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그러던 2018년 5월 4일, 경기를 마친 윌 오스프레이에게 갑자기 타마 통가가 나타나 새로운 본 솔져를 소개한다. 그 정체는 바로 이시모리 타이지로 새로운 본 솔져로서 불릿 클럽에 가입해 활동한다.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25에서 준우승을 거두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레슬킹덤 13에서 KUSHIDA를 상대로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따내며 신일본 참전 후 첫 싱글 타이틀을 갖게 됐다. G1 슈퍼카드에서 열린 3-WAY 매치[25] 에서 드래곤 리에게 벨트를 잃게 됐다.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26에서 7승 2패로 마무리한 이시모리는 같은 스테이블인 엘 판타즈모와 함께 IWGP 주니어 태그팀 챔피언십에 도전하고 챔피언인 롯폰기 3K에게서 벨트를 빼았는데 성공한다. 이 벨트는 레슬킹덤 14 2일차에 열린 챔피언십 경기에서 롯폰기 3K에게 다시 빼았기게 됐다.
2020년 6월 코로나 19로 인해 외국인 선수들이 대거 불참하게 되면서 주니어급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뉴 재팬 컵 2020에 참가, 1라운드에서 영 라이온 가브리엘 키드를 만나 무난하게 승리했지만, 2라운드에서 천적 중의 천적 카네마루 요시노부와 재회하는 악재를 만났다.[26] 간신히 블러디 크로스로 카네마루에게 승리하고 상대전적에 첫 1승을 추가하며 3라운드에 진출했으나 3라운드에서 불멸의 오카다 카즈치카를 만나게 되었고, 오카다를 상대로 토류몬 선후배 대결을 펼치며 분전했으나 오카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3라운드 탈락으로 뉴 재팬 컵을 마무리했다. 이후 로스인고를 배신하고 불릿 클럽에 들어온 EVIL의 뉴 재팬 컵 우승과 2관 챔피언십 승리에 기여했고, 타카하시 히로무가 보유 중인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다. 그 결과 8월 29일 섬머 스트러글 in 진구에서 히로무를 상대로 챔피언십에 도전하게 됐다. 경기 당일 전초전에서 "YES!" Lock으로 박살을 내놓은 히로무의 어깨를 철저하게 공략하면서 Bone Lock[27] 으로 항복을 받아내 1년 반만에 다시 IWGP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4. 여담
-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헬스로 다져진 몸이 일품으로, 등근육도 대단하지만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무너짐이 없는 복근이 일본 프로레슬링계 전체에서 인정받는 명품으로 유명하다.
- 2009년에는 보디 빌딩의 대회 출장을 목표로 삼아 7월 26일 요코타기지에서 열린 센트럴 저팬 바디빌딩 챔피언십스 대회에 출전했으며 첫 대회만에 라이트급 준우승이라는 실적을 거뒀다. 사실 연인과 헤어진 것을 계기로 보디빌딩을 시작했는데, 준우승 이후 인터뷰에서 보디빌딩에 도전하고 뭔가 바뀌었냐는 질문에 "보디빌딩을 시작한 후 남성 팬은 증가했지만, 여성에게는 별로 먹히지 않았습니다... 꽤 특수한...세계니까요..." 라는 눈물겨운 답변을 한 적이 있다.
- 천적으로는 노아 시절부터 이어져온 카네마루 요시노부가 있다. 노아 시절 10번 붙어서 1무 9패를 당했으며, 이시모리가 신일본으로 이적하며 재회하게 되었는데, 추가로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에서 2패를 당하며 싱글전 총 전적이 1무 11패가 되었다. 이 징크스는 2020년 뉴 재팬 컵 2라운드 13번째 싱글매치에서 승리를 거두며 간신히 깨졌고, 트위터에 카네마루가 늘 들고 다니는 산토리 가쿠빈으로 만든 하이볼을 마시는 사진을 올리며 자축했다.
- 좋은 몸과 동안의 소유자지만 2020년 기준으로 아직도 미혼. 치와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 원래는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의 대표 더 그레이트 사스케를 존경해서 마스크맨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이시모리를 아이돌로 만드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던(...) 울티모 드래곤이 반대해서 맨얼굴로 데뷔했고 그게 쭉 굳어져서 포기했다.
- ~ 레슬링 아이돌 그룹 세일러 보이즈 계획을 통보받은 것이 불과 계획 실현 한달 전, 안무와 가사는 단 사흘만에 외워야 했다고 한다. 노래와 안무를 가장 빨리 익힌 것은 사토 케이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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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일본 참전 이후로는 악역 군단 불릿 클럽 소속으로 뛰고 있지만, 사실 제법 긴 커리어 중에서 제대로 악역 레슬러로 생활해 본 것이 불릿 클럽 참전 이후가 처음이다. 워낙 NOAH시절 베이비페이스 선역으로의 이미지가 강한데다가 이시모리의 인스타만 봐도 짐작이 가듯 이시모리가 워낙 모난 데 없이 성격이 좋은 사람인지라 일본 팬들 사이에서는 '귀여운 치유계 힐 레슬러'(...) 취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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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일본 프로레슬링 전체 로스터 내 최단신.[2] 신일본 프로레슬링 전체 로스터 내 최경량.[3] 핸드스프링으로 로프반동을 얻은 후 뒤로 점프하며 상대를 차는 기술로, 다른 사용자들과 달리 횡방향보다 종방향 움직임이 더욱 큰 것이 특징. 지금에야 사용자를 제법 찾아볼 수 있는 기술이지만, 이시모리가 이 기술을 처음 사용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카즈 하야시와 이시모리 이외엔 사용자가 없다시피하던 고난이도 기술이었다.[4] 코너에 몰린 상대가 프론트 드랍킥으로 반격하면 양 다리를 잡고 돌려버려서 상대를 관중석 쪽을 바라보게 세컨 로프에 앉혀놓은 다음에 로프반동 후 슬라이딩으로 밖으로 나가면서 그 속도를 살려 상대 허리를 잡고 뒤로 쳐박는 기술. 그냥도 쓰지만 주로 상대 뒷통수에 엔즈이기리 한 방을 먹여주고 쓴다.[5] 양 발 사이에 누워 있는 상대의 목을 낀 상태에서 타자가 스윙하듯 허리에 회전을 줘서 상대 목을 비트는 기술.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기술로 유명하며 카피닌자 이시모리답게 양 팔을 펼친 다음 드릴로 나사 돌리듯 한번에 확 돌리는 마루후지식을 그대로 쓰고 있다. 마루후지가 무릎 문제로 이 기술을 잘 안 쓰게 되면서 이 기술의 대표 사용자가 되었다.[6] 상대를 리버스 파일드라이버 준비 자세로 거꾸로 들어올린 후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으면서 세운 쪽 무릎에 상대의 한 쪽 어깨를 찍는 기술. 이후 같은 리버스 파일드라이버 자세에서 들어가는 사이퍼 우타키로 연결하기도 한다.[7] 리버스 파일드라이버 홀드 인투 더블 니 페이스브레이커. 리버스 파일드라이버 자세에서 상대를 위로 든 다음 양 무릎을 같이 세워 페이스버스터를 먹이는 기술. 이름이 굉장히 희한한 기술인데 이름의 유래는 아직도 스스로 밝힌 적이 없다.[8] 오모플라타 크로스페이스. NOAH 시절에 함께 활동한 대니얼 브라이언(당시엔 브라이언 다니엘슨)에게 전수받은 기술이다. 루차도르답게 라 미스티카식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응용력이 좋은 이시모리인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쓴다. 기술 이름은 대니얼 브라이언이 사용하는 동형기 Yes Lock의 명칭을 살짝 비튼 것.[9] 핸드스프링 백플립 엘보 드랍. 상대를 눕혀둔 후 상대 다리 방향으로 로프반동 한 번, 반대쪽으로 전력으로 달려가 핸드스프링을 한 다음 뒤로 450도 돌면서 엘보 드랍으로 떨어지는 초고난이도 기술. 스승 울티모 드래곤이 처음으로 고안해 낸 비실용적이지만 화려하기 그지없는 기술로, 이시모리가 이것을 실제로 해내면서 데뷔 초기부터 피니셔로 썼다. 워낙 고난이도인데다 시전 시간이 피플즈 엘보만큼 느려서 사용빈도가 자연스레 줄어든 후 봉인되었다.[10] revolución. 펌프핸들 싯아웃 사이드 파워슬램. 2010년 2월 개선시합에서 MAZADA에게 처음으로 사용한 기술. 뜻은 스페인어로 '혁명'.[11] 변형 크로스페이스. 2020년 8월 29일 진구 대회에서 타카하시 히로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때 처음 사용한 이후로 "YES!" Lock의 업그레이드판으로 사용 중인 피니셔. "YES!" Lock은 상대의 왼팔을 가랑이 사이에 넣는 오모플라타 상태에서 시전하는 반면, Bone Lock은 상대 왼팔을 자신의 어깨 위까지 올려 꺾는 각도를 훨씬 높여서 위력을 높인 것이 차이점이며 "YES!" Lock 시전 도중에 상대 팔을 올리며 Bone Lock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쟈니 가르가노의 가르가노 이스케이프와 동형기.[12] 리프팅 싱글 언더훅 싱글 니 페이스브레이커. 쉽게 말하면 블러디 선데이 시작자세에서 상대를 들어올린 다음 무릎을 세워 상대 얼굴을 떨구는 기술. 이름의 '블러디' 부분은 프린스 데빗의 상징기인 블러디 선데이에서 따온 것이라고 주간 프로레스에서 밝힌 바 있다.[13] Keep on journey. 토류몬 시절 테마곡이자 이시모리 타이지의 흑역사(...) 세일러복을 입은 아이돌 '세일러 보이즈' 기믹으로 지금은 캇파머리의 괴기파 악역 '바라몬 형제'로 유명한 쌍둥이 형제 사토 슈와 사토 케이(당시엔 사토 형제)와 데뷔한 이후 녹음해서 음반까지 내고 매 흥행마다 직접 부르면서 등장했다.[14] 드래곤 도어, 엘도라도 시절 테마곡. NAOKI가 DanceDanceRevolution(DDR)용으로 작곡한 곡으로, 이 때부터 유로비트계열 테마곡을 쓰기 시작했다.[15] 프로레슬링 NOAH시절 쓰던 테마곡. 원곡의 1분 부분부터였다.[16]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2대 본 솔져로 전격 참전하면서부터 사용한 테마곡. 여태까지 사용하던 유로비트풍 테마곡에선 벗어났으나 곡의 계열 자체는 일렉트로닉 계열로 유지 중이다.[17] '''Kagetora'''(카게토라)라는 링네임으로 유명한 선수. 토류몬 9기생으로 이시모리와 동기이며, 마찬가지로 이 경기가 데뷔전이었다. 다른 떠나간 동기들과 다르게 계속 드래곤 게이트 소속으로 활동 중.[18] 현 센다이 죠난 고등학교. YOH도 이 학교 출신으로 YOH가 6년 후배이다.[19] 동기로는 같이 흑역사 세일러 보이즈 시절을 함께한 사토 슈와 사토 케이(현 바라몬 슈와 바라몬 케이), Kagetora, 미나미노 타케시 등이 있다.[20] 여기서 갈라진 토류몬 JAPAN은 드래곤 게이트가 된다.[21] 이 때 울티모 드래곤의 부킹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스팟 참전하며 신일본 링에 처음 발을 들였다. '애수의 마스크맨' 엘 사무라이와 대결했으며, 7분을 못 채우고 수직낙하식 리버스 DDT에 핀을 내주며 패배했다.[22] 멤버는 '브라더' YASSHI, 콘도 슈지, 스가와라 타쿠야, 오오와시 토오루, 타카기 슈고.[23] NOAH에 처음 생긴 주니어 태그 리그전으로, 다름아닌 파트너 KENTA가 주니어헤비급 전선의 활성화를 위해 제창하여 실현시킨 리그전이었다.[24] 당시 프로레슬링 DDT 소속이었다.[25] 드래곤 리, 반디도, 이시모리 타이지[26] 1라운드 승리 이후 인터뷰에서 2라운드 상대가 카네마루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카네마루 알레르기를 호소하며 머리를 감쌌고, 급기야 카네마루 요시노부의 1라운드 상대이자 불릿 클럽과는 천적에 가까운 정규군의 영 라이온인 우에무라 유야를 응원하기까지 하며 카네마루가 탈락하길 절실히 기원했다.[27] 이 경기 때부터 "YES!" Lock에서 각도를 더욱 높인 버전을 Bone Lock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