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널 샌더스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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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ーネルサンダースの呪い
Curse of the Colonel
야구계의 저주 중 하나로, KFC의 할랜드 샌더스 조각상이 일본프로야구 팀 한신 타이거스의 우승을 방해한다는 도시전설이다.
한신 타이거스는 1935년에 창단한 전통있는 팀이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강자에게 치이면서 1984년까지 리그 우승은 6번[1] 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1985년, 한신은 랜디 바스-카케후 마사유키-오카다 아키노부라는 팀 역사상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와 4번 같은 1번 타자 마유미 아키노부 등의 강타선, 그리고 그해 발생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사망한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中埜 肇)의 영전에 첫 우승의 영예를 바치자는 투혼을 앞세워 1964년 이후 21년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그 뒤 일본시리즈에서도 세이부 라이온즈를 꺾고 구단 사상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한다.
사실 한신이 1985년 이전 마지막으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한 1964년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센트럴 리그 - 일본시리즈 9연패(일명 '''V9''')를 달성했고, 한신은 이 기간동안 준우승만 5번을 차지했기 때문에[2] 한신 팬들은 우승에 한이 맺혀 있었다. 이 때문에 오사카 시민들은 센트럴 리그 우승[3] 이 확정되자 모두 시내로 뛰쳐나와 우승의 기쁨을 나누었고, 한신 선수들을 닮은 사람을 찾으면 도톤보리 강에 던져버리면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었다. 물론 팀이 우승했다고 다짜고짜 아무나 던져버린 건 아니고 오사카에는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하거나 일본이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면 강에 뛰어드는 '도톤보리 다이브'라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팀의 외국인 강타자였던 랜디 바스를 닮은 사람은 끝내 찾지 못했는데, 이에 군중들은 근처 KFC 매장 앞에 세워진 창업주 할랜드 샌더스[4] 의 인형이 바스와 닮았다는 이유로 가져가려고 했다. KFC 직원들이 나와 제지했지만 이미 우승의 기쁨에 눈이 뒤집힌 군중들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있나. '''직원을 폭행하고 샌더스 인형을 도톤보리 강으로 가져가 헹가래를 한 후 강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샌더스가 강에 빠진 1985년을 마지막으로 한신은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승 다음 해인 1986년, 한신은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의 모습을 보였는데, 팀의 중심타자인 카케후 마사유키가 사구에 맞아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친 끝에 센트럴 리그 3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그것도 승률은 딱 5할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87년, 한신은 승률 .331로 '''창단 이래 최악의 승률'''을 기록하면서 우승을 차지한지 불과 2년 만에 '''리그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때 요미우리 TV 방송의 아나운서였던 모리 타케시[5] 가 방송에서 언급한 말인 "괴롭구만(なんぎやなあ)"이 유행어가 되면서 '커넬 샌더스의 저주'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한신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외국인 타자 랜디 바스가 병을 앓고 있던 아들의 치료 문제를 놓고 구단과 갈등을 빚다가 퇴출되었고 카케후 마사유키가 1986년 입은 부상으로 잃은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은퇴하고 마는 끝에 2년 연속 리그 꼴찌를 기록하는데, 바스가 떠난 이후 한신 구단 대표 후루야 신고가 도쿄의 한 호텔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구단 내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나온 1985년 이후의 결과는 폭망 그 자체. 한신은 1992년 2위를 기록한 걸 제외하면 2002년까지 계속 B클래스를 찍으며 '''66566(2)4466566664''' 라는 5+10, 합계 15자리 비밀번호를 생성하면서 한 동안 엄청난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찍은 최하위가 무려 10회! 5할 승률을 넘긴 건 상술한 1992년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 2위도 전통의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공동 2위, 그것도 승률은 '''67승 63패, 승률 .515'''로 5할 2푼을 넘기지도 못했다.[6] 한신이 그렇게 리그 밑바닥을 까는 동안 마유미 아키노부, 오카다 아키노부 등 남아있던 우승 멤버들도 서서히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사라져갔고, 그 빈 자리를 와다 유타카, 신조 츠요시, 히야마 신지로, 야기 히로시 등 새로운 멤버들이 채웠지만 1985년 우승 당시의 막강한 전력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여왔다. 한 술 더 떠 외국인 선수들은 아예 데려오는 족족 대차게 망해버렸다. 이 시기 마이크 그린웰이라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먹튀를 낳은 건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3년, 한신은 호시노 센이치 감독 하에 그동안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뿌리치고 다시 강팀으로 도약하여 18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을 열광시켰으나 그 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시리즈에서는 7차전까지 간 끝에 아쉽게 패퇴했다.[7] 이후 2005년에 다시 센트럴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으나, 그 해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일본시리즈에서 다소 만만하게 봤던 상대팀 치바 롯데의 이승엽, 이마에 토시아키, 후쿠우라 카즈야를 위시한 일명 '''마린건 타선'''[8] 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33-4라는 굴욕만 남긴채 4연패로 폭망했다.
이 이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도입되면서 2013년까지 일본시리즈에는 근처에도 가보질 못하다가, 2014년에 새로 입단한 한국산 돌부처를 시즌 막판과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아낌없이 갈아넣으면서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꺾고 9년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했다. 29년 만에 저주를 풀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었지만 결국 이번에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대로 1차전 승리 후, 2차전부터 타선이 물빠따 모드로 회귀하는 바람에 귀신같이 4연패를 당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자세한 사항은 한신 타이거스 문서의 2014년 단락과 오승환의 2014년 시즌, 2014년 일본시리즈 문서를 참조.[9]
한신 구단 측에서도 이 저주를 풀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다. 2008년 고시엔 구장 내에 KFC가 입점하게 되었을 때에는 한신의 응원 굿즈를 착용한 커널 샌더스를 세워놓았다. 샌더스의 저주가 야구팬들 사이에서 유명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KFC의 홍보전략인지는 몰라도 일본 곳곳의 구장에서는 KFC 앞에 자기 팀의 유니폼이나 응원 굿즈를 착용한 커널 샌더스를 세워놓는다.
그리고 2009년 3월 11일, 오사카시에서 도톤보리 강을 준설하던 중 한 잠수부가 강 바닥에 파묻혀 있던 샌더스 인형의 상반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하반신과 오른손 부위도 발견. 인형 몸통은 전부 발견했지만 안경과 왼손은 발견하지 못 했다고 한다.
샌더스가 발견되자 오사카시에서는 대대적으로 '어서와! 커널(おかえり! カーネル)'이라는 축제를 벌였고 히라마쓰 구니오 오사카 시장이 KFC 일본 사장에게 전달식을 가지는 등 엄청나게 열광했으며, 주요 스포츠지 1면은 샌더스 인형 이야기가 장식하는 등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KFC에서는 한동안 이를 보관하며 복구작업을 한 후 구단에 기증했고[11] 구단에서는 명예입단식까지 치렀으며, 위에 언급한 고시엔 구장 내의 커널과 함께 명물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로서 커널의 저주가 풀렸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저주가 풀려가다가 이 인형의 발견으로 인해 부활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해야 될 정도로 암담했다.
이 인형은 2010년에 개관한 한신 고시엔 구장의 구장 박물관(고시엔 역사관)에 전시 중이라고 한다.
일본TV 방송에 따르면 최초에는 도톤보리 강가에 불발탄이 있다는 제보가 있었고, 레이더에 잡힌 물건을 꺼내 올려보니 커널의 상반신이었다고 한다. 이에 공사업체 측이 오사카시청에 문의를 하였으나, 매스컴이 들러붙으면 귀찮으니 숨겨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상반신을 꺼내올린 시점에서 이미 몇몇 매스컴이 들러붙었고 다음날에는 도톤보리 강 양옆 인도를 끼고 방송사 카메라가 늘어서있었다고 한다. 이후 하반신 인양작업이 실시되었고, 작업감독은 이미 위치는 알고있었으나 너무 쉽게 꺼내올리면 재미없으니 못찾는 척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고 한다.
カーネルサンダースの呪い
Curse of the Colonel
1. 개요
야구계의 저주 중 하나로, KFC의 할랜드 샌더스 조각상이 일본프로야구 팀 한신 타이거스의 우승을 방해한다는 도시전설이다.
2. 기원
한신 타이거스는 1935년에 창단한 전통있는 팀이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강자에게 치이면서 1984년까지 리그 우승은 6번[1] 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1985년, 한신은 랜디 바스-카케후 마사유키-오카다 아키노부라는 팀 역사상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와 4번 같은 1번 타자 마유미 아키노부 등의 강타선, 그리고 그해 발생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사망한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中埜 肇)의 영전에 첫 우승의 영예를 바치자는 투혼을 앞세워 1964년 이후 21년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그 뒤 일본시리즈에서도 세이부 라이온즈를 꺾고 구단 사상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한다.
사실 한신이 1985년 이전 마지막으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한 1964년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센트럴 리그 - 일본시리즈 9연패(일명 '''V9''')를 달성했고, 한신은 이 기간동안 준우승만 5번을 차지했기 때문에[2] 한신 팬들은 우승에 한이 맺혀 있었다. 이 때문에 오사카 시민들은 센트럴 리그 우승[3] 이 확정되자 모두 시내로 뛰쳐나와 우승의 기쁨을 나누었고, 한신 선수들을 닮은 사람을 찾으면 도톤보리 강에 던져버리면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었다. 물론 팀이 우승했다고 다짜고짜 아무나 던져버린 건 아니고 오사카에는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하거나 일본이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면 강에 뛰어드는 '도톤보리 다이브'라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팀의 외국인 강타자였던 랜디 바스를 닮은 사람은 끝내 찾지 못했는데, 이에 군중들은 근처 KFC 매장 앞에 세워진 창업주 할랜드 샌더스[4] 의 인형이 바스와 닮았다는 이유로 가져가려고 했다. KFC 직원들이 나와 제지했지만 이미 우승의 기쁨에 눈이 뒤집힌 군중들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있나. '''직원을 폭행하고 샌더스 인형을 도톤보리 강으로 가져가 헹가래를 한 후 강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샌더스가 강에 빠진 1985년을 마지막으로 한신은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3. 저주의 시작
우승 다음 해인 1986년, 한신은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의 모습을 보였는데, 팀의 중심타자인 카케후 마사유키가 사구에 맞아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친 끝에 센트럴 리그 3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그것도 승률은 딱 5할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87년, 한신은 승률 .331로 '''창단 이래 최악의 승률'''을 기록하면서 우승을 차지한지 불과 2년 만에 '''리그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때 요미우리 TV 방송의 아나운서였던 모리 타케시[5] 가 방송에서 언급한 말인 "괴롭구만(なんぎやなあ)"이 유행어가 되면서 '커넬 샌더스의 저주'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한신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외국인 타자 랜디 바스가 병을 앓고 있던 아들의 치료 문제를 놓고 구단과 갈등을 빚다가 퇴출되었고 카케후 마사유키가 1986년 입은 부상으로 잃은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은퇴하고 마는 끝에 2년 연속 리그 꼴찌를 기록하는데, 바스가 떠난 이후 한신 구단 대표 후루야 신고가 도쿄의 한 호텔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구단 내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나온 1985년 이후의 결과는 폭망 그 자체. 한신은 1992년 2위를 기록한 걸 제외하면 2002년까지 계속 B클래스를 찍으며 '''66566(2)4466566664''' 라는 5+10, 합계 15자리 비밀번호를 생성하면서 한 동안 엄청난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찍은 최하위가 무려 10회! 5할 승률을 넘긴 건 상술한 1992년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 2위도 전통의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공동 2위, 그것도 승률은 '''67승 63패, 승률 .515'''로 5할 2푼을 넘기지도 못했다.[6] 한신이 그렇게 리그 밑바닥을 까는 동안 마유미 아키노부, 오카다 아키노부 등 남아있던 우승 멤버들도 서서히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사라져갔고, 그 빈 자리를 와다 유타카, 신조 츠요시, 히야마 신지로, 야기 히로시 등 새로운 멤버들이 채웠지만 1985년 우승 당시의 막강한 전력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여왔다. 한 술 더 떠 외국인 선수들은 아예 데려오는 족족 대차게 망해버렸다. 이 시기 마이크 그린웰이라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먹튀를 낳은 건 유명한 일화다.
4. 근황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3년, 한신은 호시노 센이치 감독 하에 그동안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뿌리치고 다시 강팀으로 도약하여 18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을 열광시켰으나 그 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시리즈에서는 7차전까지 간 끝에 아쉽게 패퇴했다.[7] 이후 2005년에 다시 센트럴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으나, 그 해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일본시리즈에서 다소 만만하게 봤던 상대팀 치바 롯데의 이승엽, 이마에 토시아키, 후쿠우라 카즈야를 위시한 일명 '''마린건 타선'''[8] 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33-4라는 굴욕만 남긴채 4연패로 폭망했다.
이 이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도입되면서 2013년까지 일본시리즈에는 근처에도 가보질 못하다가, 2014년에 새로 입단한 한국산 돌부처를 시즌 막판과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아낌없이 갈아넣으면서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꺾고 9년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했다. 29년 만에 저주를 풀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었지만 결국 이번에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대로 1차전 승리 후, 2차전부터 타선이 물빠따 모드로 회귀하는 바람에 귀신같이 4연패를 당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자세한 사항은 한신 타이거스 문서의 2014년 단락과 오승환의 2014년 시즌, 2014년 일본시리즈 문서를 참조.[9]
5. 어서와! 커널
한신 구단 측에서도 이 저주를 풀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다. 2008년 고시엔 구장 내에 KFC가 입점하게 되었을 때에는 한신의 응원 굿즈를 착용한 커널 샌더스를 세워놓았다. 샌더스의 저주가 야구팬들 사이에서 유명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KFC의 홍보전략인지는 몰라도 일본 곳곳의 구장에서는 KFC 앞에 자기 팀의 유니폼이나 응원 굿즈를 착용한 커널 샌더스를 세워놓는다.
그리고 2009년 3월 11일, 오사카시에서 도톤보리 강을 준설하던 중 한 잠수부가 강 바닥에 파묻혀 있던 샌더스 인형의 상반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하반신과 오른손 부위도 발견. 인형 몸통은 전부 발견했지만 안경과 왼손은 발견하지 못 했다고 한다.
샌더스가 발견되자 오사카시에서는 대대적으로 '어서와! 커널(おかえり! カーネル)'이라는 축제를 벌였고 히라마쓰 구니오 오사카 시장이 KFC 일본 사장에게 전달식을 가지는 등 엄청나게 열광했으며, 주요 스포츠지 1면은 샌더스 인형 이야기가 장식하는 등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KFC에서는 한동안 이를 보관하며 복구작업을 한 후 구단에 기증했고[11] 구단에서는 명예입단식까지 치렀으며, 위에 언급한 고시엔 구장 내의 커널과 함께 명물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로서 커널의 저주가 풀렸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저주가 풀려가다가 이 인형의 발견으로 인해 부활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해야 될 정도로 암담했다.
이 인형은 2010년에 개관한 한신 고시엔 구장의 구장 박물관(고시엔 역사관)에 전시 중이라고 한다.
일본TV 방송에 따르면 최초에는 도톤보리 강가에 불발탄이 있다는 제보가 있었고, 레이더에 잡힌 물건을 꺼내 올려보니 커널의 상반신이었다고 한다. 이에 공사업체 측이 오사카시청에 문의를 하였으나, 매스컴이 들러붙으면 귀찮으니 숨겨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상반신을 꺼내올린 시점에서 이미 몇몇 매스컴이 들러붙었고 다음날에는 도톤보리 강 양옆 인도를 끼고 방송사 카메라가 늘어서있었다고 한다. 이후 하반신 인양작업이 실시되었고, 작업감독은 이미 위치는 알고있었으나 너무 쉽게 꺼내올리면 재미없으니 못찾는 척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고 한다.
6. 기타
- 사실 강에 던져져야 했던 인형은 커널 샌더스가 아니라, 도톤보리 강 명물인 쿠이다오레인형(食い倒れ人形)이라는 식당 홍보용의 북치는 자동인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제지당하니 꿩대신 닭이라고 샌더스가 던져진 것이라고.
이 수몰 위기는 이후에도 다시 나타나는데, 1992년에 다시 한신 타이거스가 잘 나가기 시작하고 당시 한신 외야수 카메야마 츠토무(亀山努)와 쿠이다오레인형이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팬들이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나자, '내는 수영 몬합니데이(わて、泳げまへんねん)' 라고 쓰인 간판과 물안경, 튜브 등의 특별 코스튬을 뒤집어쓰고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저항했다.[12]
- 커널의 저주는 한신의 신인 지명에서도 한동안 위력을 떨쳤다. 한신은 고졸 투수 시마다 아키히로를 데려오는 데 성공한 1984년 드래프트를 마지막으로 대형 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12번의 전구단 지명권 제비뽑기에서 한동안 1순위 제비를 뽑지 못했다. 이 시기 한신이 놓친 대형 유망주 중에는 키요하라 카즈히로(세이부), 노모 히데오(킨테츠), 마츠이 히데키(요미우리) 등 레전드급이 여럿 있었고, 나카타 쇼(닛폰햄), 키쿠치 유세이(세이부) 등 리그의 스타로 성장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이 징크스는 2012년 드래프트에서 후지나미 신타로를 지명하는 데 성공하면서 끊기게 된다.
- 킬라킬의 오사카 수학여행 편(16편 06분10초 경 장면) 에서 강 위에 상반신이 나온 샌더스 상이 등장한다.
- 은수저 Silver Spoon에서는 교내 쓰레기 청소 도중 발견한 커널 샌더스 인형의 처분을 논의하던 중, 쓰레기더미가 무너져 내리자 '켄터키 할아버지의 저주'라고 외친다. 아마도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 하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7년 2월 12일 방송에서 이 저주의 내용이 익스트림 서프라이즈에 소개되었다.
7. 관련 문서
[1] 단일리그 시절 4회, 양대리그 전환 후 센트럴 리그 우승은 2회.[2] 일본시리즈 준우승 5번이 아니라 센트럴 리그 2위를 5번 한 것이다.[3] 일본시리즈 우승이라는 말도 있으나 일본어 위키피디아에는 센트럴 리그 우승 때 벌어진 일로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 일본 야구팬들은 리그 우승만 해도 한국시리즈 우승한 것처럼 엄청 기뻐한다.[4] '커널 샌더스'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켄터키 주에서 샌더스에게 부여한 명예 칭호 '대령 (Colonel)'에 성을 붙여서 '커널 샌더스'라고 부른 것이다.[5] 간사이 지방에서는 유명 아나운서로, 2015년 정보스포츠국 정보 프로그램 센터 차장을 맡고 있다. 방송국이 니혼 TV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안티교진에 한신 팬. 참고로 도쿄 출신이다.[6] 사실 그 2위도 1992년 센트럴 리그가 우승 팀 야쿠르트와 최하위 팀 주니치가 단 '''9게임'''밖에 차이가 안 날 정도로 박터지는 순위 다툼이 벌어진지라 어부지리로 얻은 것에 가까웠다. 1985년 이후로 계속 부진하던 팀이 이 정도면 꽤 선전한 거였다만 그 다음해부터 다신 폭망한 게 문제였다.[7] 당시 일본시리즈는 2009년 한국시리즈처럼 '''모두 홈팀이 이겼다.''' 이해가 홀수 해라서 퍼시픽 리그 팀인 다이에한테 홈 어드밴티지가 부여되었고, 한신은 후쿠오카 돔 원정 경기에서 2연패 후 홈구장인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역 3연승으로 우승 직전까지 갔다가 이후 또다시 후쿠오카 돔 원정 경기에서 2연패를 당하면서 패패승승승패패로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8] 마린건은 마린즈('''Marine'''s)+기관총(=머신건, Machine '''Gun''')의 합성어로, 당시 마린즈의 타선이 1990년대 후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짧은 황금기를 이끈 역대 최고의 교타선 '''머신건 타선'''과 유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9] 참고로 한신은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한테도 1964년 일본시리즈에서 처발린 흑역사가 있다. 그것도 유일한 '''간사이시리즈'''에서 말이다.[10] 위에는 발굴, 밑에는 구출이라 쓰여져 있다.[11] KFC 도톤보리점에 다시 갖다놓으려고 했지만 해당 점포가 폐점하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어졌다.[12] 이 해, 결국 한신은 요미우리와 공동 2위로 시즌을 마쳤다. [13] 삼성은 2002년에 시동 걸더니 통합 2연패와 통합 4연패를 달성하여 총 7번, 캔자스시티는 2014년 월드 시리즈에서 범가너의 원맨쇼 때문에 좌절되었던 시행착오를 딛고 2015년 월드 시리즈를 제패했다. 재미있는 것은 세 팀 모두 2014년에 우승 기회를 얻었는데, 삼성만 우승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