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랜드 샌더스
1. 소개
풀네임은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 보통은 샌더스 대령(Colonel Sanders, 커널 샌더스)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1][2]
근성의 상징이며 세계적인 치킨 체인점인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창립자이면서 KFC 앞의 커다란 할아버지 상으로 유명하다.
2. 생애
1890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났으며 6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가 토마토 통조림 공장에서 생계를 꾸리느라 샌더스는 어린 동생들을 위해 일찍이 요리를 깨우쳤다. 12세에 어머니가 재혼을 하자 부모와의 사이가 나빠졌고, 2년 후 고향을 떠나 농장과 시내 전차에서 일했다.
1907년 17세 때 생계를 위해 나이까지 속여가며 미 육군에 입대한다. 19세에는 조세핀 킹과 결혼한 후 세 명의 아이를 낳는다. 이후 샌더스는 첫 레스토랑인 샌더스 카페를 운영하다 종업원인 클라우디아 레딩턴과 불륜을 하게 되고 조세핀 킹과 1947년에 이혼한 뒤 2년 후에 클라우디아와 재혼한다.
17세부터 육군 사병 생활을 하면서 법률을 익혔으며, 보험을 비롯해 타이어, 램프를 파는가 하면 페리선 장사라든가 산파까지 맡았다. 그러나 본인의 성급하고 과격한 성격 때문에 싸움질로 사업이 아예 틀어진 게 부지기수였다. 40세가 되어 어느정도 돈이 생기자 육군에서 전역하고 그동안 연구해 놓은 자신의 요리법을 바탕으로 켄터키 주 코빈의 국도 주변 로열 더치 쉘 주유소 옆에 작은 식당을 차려서 트럭 운전사들에게 햄과 스테이크 등을 팔기 시작했고, 건너편에 '샌더스 카페'도 차렸다. 장사가 호황을 보이자 경쟁자인 스탠더드 오일 주유소 주인 맷 스튜어트가 간판에 페인트를 칠해 영업을 방해하자, 샌더스는 "한번 더 그러면 머리통 날라간다"며 으름장을 놓고 간판을 고쳤다. 이에 스튜어트가 다시 페인트를 칠하려 하자 샌더스는 직원들과 함께 총을 들고 싸웠다. 그 결과 샌더스의 직원 1명이 스튜어트의 총에 맞아 죽었고, 스튜어트도 샌더스의 총에 맞아 어깨를 다쳤다. 스튜어트는 살인죄로 18년형을 받은 반면, 샌더스는 정당방위를 인정받고 지역 주유소 시장을 장악했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프라이팬보다 더 빠른 후라이드치킨 요리법을 강구해내 '압력솥 방식'을 고안했고, '11가지 비밀재료'도 이때 창조했다. 1939년 요리평론가 던컨 하인즈가 샌더스 카페를 저서 <Adventure is Good Eating>에 선정한 후 전미에서 맛집으로 유명해졌고 1950년에는 켄터키 커넬이라는 명예 호칭까지 수여받았다. 이 유명세로 이듬해에 주 상원의원까지 도전하지만 두자릿수의 근소한 표차로 낙선하였다.
새옹지마인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휘발유 배급제가 실시돼 주유소 이용객이 줄어 장사가 안 됐고, 1955년에 그의 식당 근처 도로를 대신해서 새로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손님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식당에 화재가 나는 연속되는 불행을 겪는다. 65세가 되던 해에 결국 식당은 폐업했다.
남은 재산이라고는 월 105달러의 사회 보장금과 낡은 트럭 한 대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 할랜드 샌더스는 다시 사업을 하기로 결심, 트럭에 요리도구를 싣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요리 비법을 팔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수백번의 시도끝에[3] 웬디스 창업주인 데이브 토마스가 자신의 식당에서 샌더스의 요리법으로 만들어진 치킨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샌더스에게 치킨 1조각당 $0.04의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계약을 맺는다. 한동안 미국 남부의 가정식 같은 취급을 받던 후라이드 치킨이 전국으로 확산된 순간이었다. 이후 샌더스는 사업가 피트 하먼(Pete Harman)과 계약해서 마침내 KFC 1호점을 탄생시킨다. 재밌게도 이 1호점은 켄터키가 아닌,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 시티에 문을 열었고, 지금도 할랜드 샌더스와 KFC의 역사를 간직한 기념관과 함께 영업중이다. #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던 1964년에는 지역 사업가 존 Y. 브라운과 잭 매시에게 지분을 파는 대신, 초상권 명목으로 로열티를 내도록 했다.
지분 매각 후 샌더스는 자신을 샌더스 대령이라고 칭하며 흰 양복을 입고 홍보대사 겸 마스코트를 자처하고 장학 재단을 설립하는 등 왕성히 활동했는데, 안 좋은 일도 많았다. 1966년 KFC 주식상장 후 주주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했는데, 제1회 주주회의에서 경영진이 내 이미지만 망친다고 40여분 간 경영진을 욕했다가 가맹점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이후에도 대변인으로서 꼬장꼬장한 모습을 보이며 KFC를 고소하려 했고, 1970년 <더 뉴요커>지 인터뷰에서 KFC의 새 그레이비 소스 레시피를 두고 "저건 개도 안 먹겠다"며 비난을 가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샌더스는 1980년에 급성 백혈병으로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4] 장수의 비결은 육군 복무 시절 습관화된 규칙적인 생활이라고 한다. 그의 모습은 오늘날 전 세계에 퍼져있는 KFC 체인점 앞에 서있는 플라스틱 상과 KFC의 마스코트 엠블렘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켄터키주 의사당 앞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샌더스 대령의 상징이라면 단연 '''하얀 양복'''이다. 이 옷은 사실 그의 '''여름 양복'''이었는데, 그가 어느 겨울날 큰 계약 때문에 양복을 입어야 했는데 '''겨울 양복을 세탁해 놓는 바람에 별 수 없이 입은 여름용 하얀 양복이 좋은 이미지를 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여름과 겨울 각각 한 벌씩, 양복이 두 벌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실제로 크게 성공하고 나서 KFC의 마스코트를 자처하던 시절엔 공적인 자리에선 무조건 흰 양복만을 입었다고 한다.[5][6]
그 외에도 이미지 메이킹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이라 양복 말고도 스트링 타이[7] 를 항상 하고 다녔는데 이 역시 상징이라면 상징. 주지사한테 받은 저 대령 칭호도 열심히 써먹었다. 특유의 염소 수염은 흰 머리에 맞게 끔 염색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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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그는 영면 후 이 차림으로 안장 되었다. 인생의 가장 전성기 복장으로 잠든 셈.
이런 일화로 인해 끈기의 사업가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말년(1970년대 후반)의 TV 광고 출연 장면도 재미있다.
다만 KFC 창립까지 1,009번이나 시도한걸로 알려졌지만 사실 과장된거고 위에 써논 것 처럼 대략 600번 이상의 시도를 한 것이라고 그의 둘째 부인이 증언했다. 당시 그녀가 샌더스를 따라다니며 도와줬다고 하니 사실일듯. 그래도 '수백번의 실패를 거듭하여 창업에 성공한 것'으로 결코 우습게 볼만한 사례는 아니다.
또한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의 창립자인 샌더스가 90세라는 고령까지 장수했기에 종종 가공 식품과 패스트푸드의 해로움에 대한 갑론을박의 논거가 되기도 한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시제품 치킨으로 저녁을 해결했음에도 90세까지 살았기 때문[8] . 하지만 샌더스의 장수의 비결은 분명 자신이 밝힌대로 군 생활 동안 체득한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큰 기여를 한 거라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이는 라면을 매 점심마다 먹었던 안도 모모후쿠의 장수의 비결이 라면이 아니라 골프 등 운동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배스킨라빈스 31의 설립자인 버트 배스킨이 54세로 급사한 경우처럼 정반대도 얼마든지 있으므로 사람에 따른 차이 역시 감안해야 한다. 담배 피고도 장수하는 골초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담배 피는 게 좋은 건 아니듯이 말이다.
2.1. 성격
인자한 모습과 친근한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기준에서도 꽤 한 성질 하던 사람이었다. 체인점의 전국적인 증가로 KFC의 규모가 커지면서, 후에 스미노프를 생산하는 휴블레인에 2억 8천 5백만불에 인수 된 후, 규모가 커지다 보니까 값싼 재료의 사용 빈도가 늘어나며 제품의 질이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샌더스는 자신이 KFC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주주가 아니어서 이익을 얻지 못해 회사와 여러 갈등을 빚을 만한 기행을 자주 벌였다.
1970년대에 경쟁사였던 처치스 치킨의 바삭한 닭튀김에 경쟁하기 위해 회사에서 크리스피 치킨을 신메뉴로 내놓았을때, 샌더스는 이 메뉴를 "반죽 튀김이 묻은 치킨" 이라고 깠다. 안 그래도 품질 하락 때문에 팬들로부터 수많은 질문들을 편지로 받아서 힘들었던 샌더스는, 이것을 계기로 테네시로 본사를 옮긴 후 자신의 집이 된 건물에 자신의 부인에게서 따온 "커널스 레이디" (The Colonel's Lady, 대령의 부인)라는 이름의 식당을 새롭게 열었다. KFC에서 사용되던 조리법을 그대로 사용했는지는 모르나 닭튀김도 제공되었는데, 이걸 빌미로 휴블레인이 샌더스를 고소하자 샌더스는 기다렸듯이 휴블레인 측을 "주정뱅이"라고 비하[9] 하고, 자신의 명예를 실추하고 있다며 맞고소를 하였다. 후에 휴블레인이 샌더스에게 1백만불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샌더스는 자신의 새로운 식당의 이름을 "클라우디아 샌더스 디너 하우스(Claudia Sanders Dinner House)"로 변경하는걸로 합의하였다. 지금도 이 식당은 경영 중이다. 근데 합의를 한 후에도 KFC의 한 체인점의 그레이비를 맛보고는, "수돗물에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 만드는, 벽지 도배용 밀가루풀[10] 같은 맛"이라고 신문기자와의 인터뷰에 혹평하기도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 평소에도 걸어다니다 KFC 체인점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서 메뉴들을 시식했고, 만약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맛이 난다 싶으면 즉시 땅바닥에 집어던지고 쌍욕을 퍼부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해봐야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이 줄어들었으면 줄어들었지, 늘어날 리는 없을텐데도 계속해서 자신의 손을 떠난 회사에게도 자신만의 엄격한 잣대를 고집한 것을 보면 본인의 레시피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대단했던 모양. 말년에도 KFC가 원가 절감에 눈이 멀어 자신의 레시피를 다 망쳐놓았다고 맹비난을 하곤 했다.
또 다른 일화로 젊을 적 로열 더치 쉘 주유소 옆에 식당을 경영했을때, 자신의 식당을 홍보하기 위해 그려놓은 광고들이 근처의 스탠다드 오일 주유소를 경영하던 경쟁자 맷 스튜어트에게 반달리즘을 당하는 걸 알아내자, 쉘 회사의 간부 두명을 데리고 그 경쟁자의 주유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 경쟁자가 총을 난사하며 간부 한명을 죽게 하는 등 반갑게(?) 반겨주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총으로 화답하며 그 경쟁자를 저지했다. 샌더스는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았고, 맷 스튜어트는 살인죄로 구속되어 징역 18년을 선고받았지만, 수감 2년만에 자신이 죽인 쉘 간부의 유족들에게 뒷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보안관 대리에게 살해당했다.# 다만 이 당시 샌더스가 영업을 하던 지역은 당시 미국에서도 치안이 대단히 나쁜 지역이었으며, 총격전 정도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상인 곳이었다. 본래 괄괄한 성격인 것도 있었겠지만 이런 위험한 곳에서 장사를 하면서 더 거칠어진 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결벽증이 의심될 정도로 청결에 집착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대 초반에는 석탄을 나르는 일을 했는데, 매일 일이 끝나고 나서 어찌나 꼼꼼히 씻었는지 하루종일 석탄을 갖고 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모를 정도로 깔끔한 차림으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물론 샌더스가 성질을 부리기만 했던 것은 아니며 상당히 훈훈한 일화들도 많은데, 장사가 가면 갈수록 잘 되어가서 먹고 살만해지자 스스로 노새를 타고 애팔래치아 산맥의 산중에 위치한 마을들을 찾아가 식자재 등을 나눠주는 등 빈곤층을 위해 직접 봉사 활동도 많이 다녔다. 한번은 의사도 없는 이 마을의 한 임산부가 출산을 하게 되자 스스로 산파를 자처했는데, 문제는 태아의 자세가 틀어져 있어 자칫하면 아이와 산모 둘 다 위험할 수 있었다. 샌더스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산 아래 마을의 의사를 찾아갔으나, 마침 거나하게 술을 마셨던(...) 그 의사는 배째라는 식으로 샌더스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자 샌더스는 군말없이 바로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산탄총'''을 챙긴 후 다시 의사에게 갔고, 곧바로 의사를 '''설득'''해 임산부에게 데려갔으며 덕분에 산모와 아이 둘 다 무사했다. 아이 어머니는 자신과 아이의 목숨을 구해 준 샌더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아이 이름을 "할랜드"로 지었다고 한다.# 훗날 자신의 본명보다도 더 유명해진 커넬 샌더스의 어원인 켄터키 주 명예대령 칭호를 부여 받게 된 것도 그의 이런저런 봉사 활동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주지사가 부여해준 것이다.
3. 광고에서
이 할아버지의 높은 인지도로 인하여 돌아가신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KFC 광고에서 많이 사용되고 계신다. 심지어 소울 칼리버 6의 커스터마이징에도 공식 인증과 함께 샌더스 대령 커스텀을 내놓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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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코믹스와 홍보용 콜라보 에피소드에서는 선한 할랜드 샌더스 대령과 지구-3에서 건너온 악한 할랜드 샌더스 대령이 나오는데, 악한 샌더스 대령이 정성이 안 들어가게 튀긴 프라이드 치킨을 팔고 은행을 털자, 선한 샌더스 대령이 직접 나서서 악한 샌더스 대령을 막아내고 다시 지구-3으로 돌려보낸다. 이를 본 플래시와 그린 랜턴이 저스티스 리그 가입을 권하지만, 은퇴를 하면 가능하다고 거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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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랜턴과의 콜라보에서는 샌더스 대령이 그린 랜턴이 되어서 할 조던과 함께 라플리즈와 대항을 하고, 라플리즈에게 KFC에 오면 징거버거를 먹을 수 있다고 설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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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어머니의 날에는 춤을 추는 광고도 나온 바 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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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연계해서 광고용 트위터에서 남성 입장에서 좀 부담스러운 사진을 올렸었다.[12] 본인과 같은 종인 가상 인플루언서 imma와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치킨 광고로 유명한 로보캅을 샌더스화 하여 광고를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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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KFC가 한 트위터 유저에게 보낸 상품이다. 해당 유저는 KFC의 트위터 계정이 팔로우하고 있는 11명 중 5명은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들이고, 나머지 6명은 Herb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발견하여 커널 샌더스에게 업혀있는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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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2K18에선 특별 게스트로 참전. PPV의 스폰서가 KFC라 그런 건지, 샌더스 대령이 치킨을 혼내주는 CM의 인기를 등에 업고 당당하게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출전했다. 피니셔는 팔콘 애로우. 재비어 우즈의 업업다운다운에서 샌더스 대령역을 맡은 커트 앵글과 치킨 역을 맡은 히스 슬레이터가 대전을 펼쳤는데 결과는 커트 앵글이 조작한 샌더스 대령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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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 KFC에서 미연시를 만들어버렸다! 스팀링크
4.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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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와 숙적이라 수많은 짤들을 배출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무겐에서도 나오는데, '''오스왈드의 조커를 치킨으로 쓴다(!!!).''' 치킨 막대기로 127식 규화 비스무리한 콤보를 쓴다던가, 아니면 치킨은 기술 중에 하나이고 주요 전투는 지팡이에 검이 숨겨진 소드 스틱이라는 등 개그가 따로 없다. 그러나 캐릭터 성능은 일반캐 중에서 강캐에 속할 정도로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이건 라이벌인 로날드도 마찬가지.
귀귀의 웹툰 작품 열혈초등학교에 나오는 등장인물 김퍽춘 (...) 교감도 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외모도 그렇고, 이름도 KFC의 이니셜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판타시 스타 포터블 2 인피니티에서는 콜라보레이션 기획으로 파트너 캐릭터로 등장한다. 지팡이를 휘둘러 몬스터들을 두들겨 패시며 불이나 냉기도 다루는 포스 캐릭터, 파트너 카드도 얻을수 있다.
극장판 은혼 완결편 요로즈야여 영원하라에서는 골목길에 세워진 푸짐하게 생긴 켄터키 할아버지의 마네킹으로 등장한다. 맨 처음 히라가 겐가이가 양팔에 대포를 붙이는 요상한 개조를 하다가 걸렸고, 이어 가츠라 고타로가 그 마네킹에 다시금 타카스기 신스케 복장을 입히다가(...) 걸려서 감옥에 갇힌다. 그런데 사실 그 마네킹은 콘도가 스토커짓을 하기 위해 변장해서 서 있었던 것. 결국 양팔에 붙인 대포가 멋대로 폭발해서 근처 상가가 불바다가 된 죄로 콘도도 감옥에 갇힌다.
사우스 파크의 Medicinal Fried Chicken 에피소드에 등장했다. 제이미 올리버를 원수로 여기는 마피아처럼 나왔다. 방영당시 커넬 샌더스는 이미 고인이었으니 어찌보면 사우스 파크라서 가능한 고인드립(...).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2의 도전과제 중 하나인 Colonel Sanderson은 미션 중 10초에 닭 7마리를 죽여야 하는 과제이다. 주요 등장인물인 개리 '로치' 샌더슨과 KFC 샌더스 대령의 이름을 이용한 말장난 같다.(도전과제 아이콘도 KFC의 치킨버켓 모양)
으쌰으쌰 우비소년에서 외계인이 지어낸 거짓 회상에서 나오는데 김 회장으로 나온다. 국밥 집에서 쓰러진 그와 파트라슈를 보고 양자로 삼았다. 하지만 SBS 방영판에서는 간접광고 때문에 상표 명칭을 변형해서 나왔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 한국군 KF-16C의 성능이 워낙 사기적이라 외국인들은 '''KF'''-16'''C'''가 뜨면 샌더스 대령이 전투기를 몰고왔다고 드립친다.
1980년대 중순 일본 만화를 한국화로 표절 해적판으로 낸 권법소년에서 무술 수련을 위하여 KFC 매장 앞에 있는 샌더스 상을 신나게 두들겨 패는 게 나오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일본과 달리 KFC는 서울 및 일부 지역에서만 있다보니 없던 지역이 많아서 '대체 이 노인상은 뭐지?'하고 알 수 없던 국딩들이 많았다.
비슷한 사례로 1990년대 초반 모 한국만화에서 샌더스 인형으로 분장하고 있던 빌런 졸개가 주인공을 소드 스틱으로 공격하는 장면도 나온 적 있는데, 비수도권 어린이들 중에서는 '대체 이 노인상은 뭐지?'라는 반응도 있었다고. [13]
5. 기타
- 원조인 미국이나 한국에서보다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일본에서 KFC 가 크리스마스 때 등 치킨요리의 대명사로 인기가 높아서인지 일본에서는 산타클로스 못지않은 서양 할아버지의 대표라는 인상으로 서브컬처 등에서 출연빈도도 높고 사랑받는 캐릭터이다.
- KFC 앞에 있는 샌더스 조각상이 쓴 안경은 실제로 도수가 있는 볼록렌즈였다. 샌더스의 생전 모습에 가깝게 재현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새로 생기는 지점의 샌더스 상에는 안경알이 없고, 기존 지점에 있던 안경들도 알이 실종되거나 일부러 빼면서 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는 안경알이 있는 샌더스 상을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 일본프로야구 팀 한신 타이거스에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커널 샌더스의 저주를 참조.
- 1985년에는 일본 도쿄 에비스에 있는 KFC 매장 앞에 있는 할랜드 샌더스 인형이 없어졌다가 한참 뒤에야 공중전화 부스에서 겨우 찾은 일화가 있었는데 이 일화는 MBC의 타임머신(24회, 2002년 05일 12일 방송분)에서 "치킨 노인 가출 사건"(...)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로 재현해서 방영된 적이 있었다.[14][15]
-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남쪽으로 168마일(269km) 떨어진 지점 켄터키주 코빈에 KFC를 1호로 개업한곳으로 Harland Sanders Cafe and Museum 카페와 박물관이 있는데 들어가보면 할랜드 샌더스 대령의 동상이 있다.
- # KFC가 WWE를 스폰서하면서 제작된 광고로 WWE 프로레슬러 더 미즈가 닭 역할, 돌프 지글러가 샌더스로 분장하여 촬영하였다. 해당 촬영시 관중들은 미리 섭외를 한 보조연기자들이 아니라 실제 레슬링을 보러 온 관중들로 WWE의 주간쇼 중 하나인 스맥다운 방송 종료 직후 촬영되었다고 한다.[16]
- 한국에서는 이름을 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6. 참고 자료
- ㅍㅍㅅㅅ 기고문: 원본은 Menuism에 기고된 칼럼
다.
[1] 오죽하면 이것 때문에 '커널 샌더스'가 본명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대 한국 신문광고에서조차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만든 커널 샌더스 씨라고 광고하던 적도 있다. 지금도 '''한국 KFC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커널 샌더스 대령'''이라고 쓰는 실수 를 저지르기도 했다. 커널 샌더스 혹은 샌더스 대령이라고 해야 옳으며 이 항목도 커널 샌더스로도 들어올 수 있다.[2] 원래 colonel은 계급 뿐만 아니라 미국 남부에서 중년 신사를 일컫는 존칭이기에 ( 한국의 영감과 비슷하다. 원래 영감도 노인이 아니라 종2품/정3품 이상 벼슬아치에게 부르던 명칭이었다.) 해당 계급에 이르지 않았거나 군 경력이 없는 이에게 붙는 경우도 있으나, 할랜드 샌더스는 친구이자 켄터키 주지사였던 로렌스 웨더비로부터 실제로 주방위군 명예 대령으로 위촉 되었으므로 실제로 대령이기도 하다. (켄터키의 명예 대령 제도는 지금도 존재한다. 켄터키와 관련된 인물 중 명예로운 업적을 가진 인사들을 선정하여 위촉한다. 켄터키 주에서 부여하는 최고 수준의 명예로 현대 영국의 기사작위와 비슷한 개념이다.) 샌더스 대령을 자칭하게 된 것도 이 이후의 일이다.[3] 1,009번만에 성공한걸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대략 600에서 790번 사이라고 그의 둘째부인이 말했다.[4] KFC가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불과 4년 전이다.[5] 그런데 KFC 노량진역점의 샌더스 상은 어째서인지 '''재킷이 검은색으로 나왔다'''…[6]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자신의 상징이 된 것을 친숙한 소재로 이미지 메이킹에 잘 활용한 다른 사례로는 더글러스 맥아더의 콘콥 파이프가 있다. 해당 문단 참조.[7] 국내의 몇몇 중, 고등학교의 여학생 교복에 달려 나오는 일종의 넥타이와 비슷한 타이.[8] 병사의 원인도 급성 백혈병으로 페스트 푸드가 원인이 아니였고, 병에 걸리기 전까지 광고에 출연할 정도로 정정했다.[9] 상술했듯이 보드카 스미노프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것.[10] 샌더스 본인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든 걸 먹어봐서, 그 맛을 안다고... 사실 이걸 물에 넣고 끓인 게 수제비이므로 그리 못먹을 건 아니다. 최소한 프라이드 치킨보단 건강에도 좋고...[11] 해당 영상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남성 스트립 댄스쇼인 치펜데일스 (Chippendales)와의 콜라보 광고이다. 풀 영상에서는 마지막에 엉덩이에 기념 문구 단어를 하나씩 적은 흰색 삼각팬티로 끝나는(…) 좀 부담스러운 광고.[12] 여성들은 섹시한 미노년이라고 좋은 평을 내렸다.[13] 이 당시는 KFC라는 약어가 아니라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풀 네임을 그대로 썼다. 특유의 샌더스 인형 상을 장사 시작하면서 가게 앞에 내놓는 장면도 있다.[14] 해당 에피소드의 내용을 보면 술 취한 행인이 매장 앞에 있는 할랜드 샌더스 인형을 길 잃은 할아버지로 착각해서 행인의 집으로 문제의 인형을 데리고 왔다가 다음 날 아침에 술이 깨고 정신 차려서 일어나 보니 길 잃은 할아버지인 줄 알았더니 문제의 매장 앞에 있는 할랜드 샌더스의 인형이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문제의 해당 지점은 발칵 뒤집어 지면서 할랜드 샌더스 인형이 사라지는 날벼락을 맞았고, 결국 이곳 저곳을 수소문하다가 결국 그 행인은 치킨 체인점에 전화를 걸어서 "나, 커널 샌더스야... 길을 잃었어..."라는 할아버지 목소리를 구사, 공중전화 부스에 문제의 할랜드 샌더스 인형을 집어넣었으며, 직원이 한참 동안 추적한 끝에 공중전화 부스에 박혀 있는 할랜드 샌더스 인형을 어렵게 발견했다는 내용이었으며, 후에 나온 신문 기사에는 일명 "K씨 유괴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나간 적이 있었다.[15] 여담으로 아따맘마에서 해당 내용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에피소드가 방영된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파티에 쓸 케익을 사오기로 출근하기 전에 약속을 했던 아빠가 그날 회식 자리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취해서 귀가하는 중에 케익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 인형(제과점 앞에 세워져 있었다)을 통째로 들고 집까지 가져온 것. 엄마와 아리는 충격에 빠졌고 당시 아직 아기였던 동동은 놀라서 빽빽 울어댔다. 평소였다면 아빠가 가져온 물건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을 엄마도 그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서 한밤중에 아빠와 둘이서 그걸 들고 원래 있던 자리에다 갖다 놓고 왔다고....[16] 하필 광고가 알려진게 섬머슬램 때였는데 하도 섬머 슬램 엔딩이 안 좋아서 팬들이 장난삼아 PPV 최고의 경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