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의 저주들

 

1. 설명
2.1. 와후 추장의 저주
2.2. 삼성 라이온즈 관련
2.2.1. 올드 유니폼의 저주
2.2.2. 류중일의 저주
2.2.2.1. 관련 문서
2.9. 붉은 유니폼의 저주
2.10. 3위의 저주
3. 2년 주기
3.1. 실패 이후 성공
3.2. 김태형 2년 주기 저주
4. 완료형
4.2. 밤비노의 저주
4.3. 검은 양말의 저주
4.4. 윌리엄 펜의 저주
4.5. 노무라 카츠야의 저주
4.6. 달구벌의 저주
4.7. 두산 베어스 10번의 저주


1. 설명


각 나라의 프로야구계에서는 오랫동안 우승 못하는 팀들의 이유를 저주로 설명하는 경우를 소개하는 페이지. 물론 팬들이 이런 오컬트를 믿는것은 아니고, 해당하는 팀들의 경우 팜 시스템, 프런트와 경영자의 판단 미스 등등의 온갖 악재들이 복합적으로 쌓였기에 우승을 못한 것이다. 저주라는 말은 이런 복합적인 악재들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일종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저주받는 대상 그 자체가 원인이 되는 경우는 김성근의 저주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2. 현재진행형



2.1. 와후 추장의 저주


MLB에서 유래 깊은 염소를 때려잡고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커다란 저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1948년을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했는데, 이는 ML 30개 팀 가운데 네 번째로 긴 기간이다.[1] 팀 로고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바탕으로 한 마스코트인 '와후 추장'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웃고 있는 모양으로 박아넣어 원주민들의 원한이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는데, 일명 '와후 추장의 저주(Curse of Chief Wahoo)'라고 한다.
[image]
클리블랜드는 1948년 우승 이후 6년 뒤인 1954년 108승을 거두고 아메리칸 리그를 제패하며 월드 시리즈 진출에 성공하지만, 상대인 뉴욕 자이언츠와의 1차전에서 윌리 메이스의 레전설 호수비인 '''더 캐치'''가 나오면서 졌고, 이후 4연패로 준우승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밥 펠러, 밥 레몬, 루 부드로, 래리 도비 등 전성기를 이끈 스타들이 순차적으로 팀을 떠나면서 암흑기가 도래했고 1995년 중부지구+아메리칸 리그를 제패할 때까지 무려 '''41년'''을 패배의 시간으로 보내야 했다.[2] 거기다 비슷한 처지였던 시카고 컵스어니 뱅크스, 빌리 윌리엄스, 퍼거슨 젠킨스, 라인 샌드버그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어 간간히 중상위권을 왔다갔다 했지만, 클리블랜드는 그마저도 없었다[3]. 그러다 1980년대 말부터 대대적인 팀 리빌딩을 단행해 알버트 벨-찰스 내기-샌디 알로마 주니어-짐 토미-매니 라미레즈-카를로스 바에르가를 팜에서 발굴하고 케니 로프턴-오마 비즈켈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1995년부터 알중부의 패자로 군림하는 데 성공하지만, 저 시기에 끝내 월드시리즈와 인연울 맺지 못했다.
그 내용을 설명하면 1995년 41년만에 진출한 월드 시리즈에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게 2승 4패로 졌고[4][5], 1997년 플로리다 말린스에게 마무리 호세 메사가 7차전 9회말 2사에 동점을 허용하고 11회말 에드가 렌테리아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3승 4패로 패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성적이 좋은 건 아니라서 리그 우승을 한 2번을 제외하고 1996년엔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8~99년에 보스턴 레드삭스, 2001년엔 시애틀 매리너스에게 패했다. 가장 최근에 월드시리즈에 가까웠던 2007년 ALCS에선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3승 1패로 앞서가다 3연패를 당해 다잡은 월드시리즈 진출을 놓친 적이 있다.[6]
이 저주를 의식한 것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클리블랜드는 2011년 기존의 홈 유니폼을 제외한 리트로 스타일의 홈 유니폼과 원정 유니폼, 얼트 유니폼(원정) 착용 시 경기에 쓰는 모자와 헬멧의 패치를 와후 추장 로고에서 알파벳 C로 바꾸었고 공교롭게도 2011 시즌에는 초반 지구 1위의 호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중부지구 1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15게임이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2위에 그치고 말았고, 2위 주제에 승률이 겨우 0.494로 당연히 와일드카드 획득도 실패. 막판까지 치열했던 와일드카드 열전에 대해 알고 싶다면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를 참조하자. 2013년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깨지면서 66년째 우승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에 중부지구 1위를 차지하고 2016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3:0으로 스윕하고 2016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 만약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면 우승을 노려볼 만하다. '''그리고 드디어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꺾고 2016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상대편으로는 NLCS에서 시카고 컵스가 올라와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클리블랜드는 9년 전 보스턴에게 패퇴한 것과 똑같이, 3승 1패로 앞서다 3연패를 당해 고배를 마셨다. 르브론 제임스의 캐브스하고 비교되는 대목.[7] 결국 이 저주는 계속해서 남게 되었고, 후술하는 다른 하나의 징크스가 108년만에 깨졌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레귤러시즌에서 22연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기록을 경신한 후 승률 1위로 포스트시즌 진출. 그러나...ALDS에서 첫 2경기를 승리로 이끈 것이 무색한 눈이 썩는 야구를 선보이며 뉴욕 양키스에게 2:3로 리버스 스윕당하면서 저주가 현재진행형임을 인증했다. 인디언스는 이번 시리즈에서도 모자에 와후 추장을 아직도 쓰고 있었다. 이쯤되면 진지하게 로고를 완전히 바꿔버려야 할 듯.
2018년을 마지막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구단 측에서 유니폼을 포함, 그라운드에서 모두 와후 추장 로고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항목의 저주 때문은 아니며 와후 추장 로고의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되었던 인종 차별 논란 때문에 구단에서 없애기로 결정했고, 커미셔너의 승인까지 받았다고 한다. 인디언스의 레전드 짐 토미 역시 자신의 명예의 전당 명패에 와후 추장 로고를 달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저 디자인을 좋아하는 팬들은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그리고 정규시즌엔 중부지구가 다 리빌딩 모드로 들어가며 꿀지구가 된 걸 놓치지 않고 무난하게 지구 우승을 했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타선이 '''3경기 합쳐서 9안타'''에 불펜이 무너지며 탈락했다.
2016년 10월 30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송에서 이 저주에 대한 내용이 익스트림 서프라이즈로 소개되었으며 때마침 클리블랜드가 진출한 월드 시리즈 개최 시기라 이를 의식한 편성인 듯하다.

2.2. 삼성 라이온즈 관련



2.2.1. 올드 유니폼의 저주


이미 풀렸던 져주기 게임의 저주의 변형이기도 하다. 올드 유니폼 이벤트를 하면 꼭 끝이 좋지 못한데, 혹자는 준우승의 원한이 서려서 그렇다고... [8] 특히나 통합 2연패(2005, 2006)와 4연패(2011 ~ 2014) 당시에 올드 유니폼 데이는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한 시즌을 보면,
  • 2008년: 감독 선동열[9]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 시즌. 최종순위는 4위로, 톰 션오빠몰라가 깽판을 쳐서 포스트시즌 진출을 못 할뻔 했다. 그리고 다음 해는...
  • 2015년: 2001년 이후 14년만의 업셋 준우승(1승 후 4연패). 도박 사건이 발생하여 투수 3명이 이탈했고, 그 중 2명은 더 이상 삼성 소속이 아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상위권이고 가을야구도 나갔다.
  • 2016년: 클래식 시리즈 이벤트에 사용. 그 결과는 2008년, 2015년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 2017년: 지난해와 같이 클래식 시리즈 이벤트에 착용. 그리고 4할 승률이 붕괴되어 창단 최초로 3할대 승률로 마무리했다.
  • 2019년: 이전까지 입었던 1984 유니폼 대신 1982 유니폼을 도입하고 2017년처럼 클래식 시리즈에서 착용. 해당 시리즈는 2승 4패에, 올라갈려고 하면 자꾸 미끄러져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4년 연속 실패하니, (마침 선전하고 있던) 같은 연고를 쓰는 대구 FC에 관심도에서 밀리고 자주 비교당하는 것은 덤이다.[10] 시즌 후 데이터 야구를 표방하려는 듯, 김한수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고 전력분석팀장을 지냈던 허삼영 감독을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 그와 동시에 진갑용, 김태한 등 5명의 코치와 재계약하지 않았다.
  • 2020년: 1989 유니폼을 입으며, 88고속도로 씨리즈와 클래식 시리즈에서 착용. 한 때 4등까지 올라가서 적어도 와일드카드 시리즈는 기대할 수 있었으나 딱 올드 유니폼 착용할 즈음부터 팀이 DTD를 타기 시작했고, 그대로 추락하여 가을야구에 나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삼성 라이온즈가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하지 않아야 할 충분한 명분이 생겼다. 올드 유니폼 데이를 원하는 팬들에겐 안타까운 기록. 착용하지 않았던 2018년에도 탈락해서 부진과 올드 유니폼 연관성이 옅어졌지만 혹시나 와일드카드전에 기적적으로 진출했다면, 올드 유니폼은 흑역사+관짝행+금지어 콤보를[11] 얻어맞을 수 있었다.

2.2.2. 류중일의 저주


2011년 류중일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 감독 부임 이후, 2020년까지 매 해 페넌트레이스에서 류중일 감독이 맡았던 삼성이나 LG를 상대로 '''가장''' 우세를 거둔 팀의 감독들에게 해당 시즌 또는 이후 시즌에 영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저주. 다만, 2년 연속으로 같은 팀의 감독이 두 시즌 연속으로 가장 우세한 팀이 되면 그 대상이 되지 않는다.
드물게 팀 전체로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류중일의 저주'이기 때문에 2017시즌 기준 삼성 감독인 김한수 감독과는 '''아무 상관 없다'''. 일단 승패마진이 0이면 효과에서 제외되며, 두말할 것 없이 기록으로 보자면,
'''팀 및 해당 시즌'''
'''전적'''
'''감독'''
'''결과'''
11시즌 한화
9승 10패
한대화
당해 시즌에는 야왕 돌풍이 일었지만, 다음 시즌에는 8위에 고정되어 있었고 결국 12시즌 도중 '''경질.'''
12시즌 두산
7승 12패
김진욱
당해시즌에는 롯데에게 13년만의 포스트시즌 승리를 안겨주지 않나, 13년 KS 3승 1패에서 내리 3연패 당하는 바람에 '''경질.'''
13시즌 LG
7승 9패
김기태
프런트와의 갈등과 성적부진 때문에 14시즌 도중 '''야반도주.'''
14시즌 두산
6승 10패
송일수
당해시즌 6위를 기록하며 시즌 종료 직후 '''경질.''' 이 기록 때문에 11년만에 처음으로 LG에 밀려나 2016시즌 잠실 개막전을 LG에 뺏겼다.
15시즌 한화
6승 10패
김성근
김성근 감독뿐만 아니라, 팀 역사상 최악의 기록을 갱신했다. 그리고 본인은 17시즌 도중 '''경질.'''
16시즌 롯데
5승 11패
조원우
'''느그가 프로가? ㅋㅋㅋㅋ'''로 요약 끝.(...) 당해시즌에 제대로 홍역을 치렀고 17에는 오히려 오랜만에 가을야구를 했으나 18에 다시 7위를 기록하고 '''경질.'''
18시즌 두산
'''1승 15패'''
김태형
반대로 류중일이 저주에 휩쓸리고 두산은 우승하는 줄 알았으나 SK에게 뒤집기 우승을 허용. 그러나 이 다음 시즌인 19시즌도 가장 승률이 높아 저주 '''대상 제외'''
19시즌 SK
6승 10패
염경엽
당해 시즌 역전 우승을 허용 후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에게 스윕패. 20시즌 팀 창단 역대 최악의 성적을 찍음과 더불어 본인은 건강문제로 병원신세를 졌고 결국 시즌 후 '''자진사퇴'''
20시즌 키움
6승 10패
손혁
당해 시즌 중 경질에 가까운 '''자진사퇴'''
  • 13 염경엽이 7승 1무 8패로 끼는 경우도 있으나 1무가 끼어 가장 크게 가져간 케이스에 해당되지 않으며 이후 19시즌 SK에 가서 저주의 희생양이 되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감독직 9시즌동안 제외 대상인 두산을 빼면 모두 저주에 희생양이 되었다.
이중에서 제일 억울할 것 같은 팀(?)은 11시즌 한화와 13시즌 LG. 겨우 1~2경기 더 가져간 죄로 저주에 희생당해버렸다. LG야 다음 시즌에 가을 DNA 모드 발동해서 비껴갔지, 한화는 뭐... 0.5경기 더 가져갔다고 봐주는 건 없는지, 넥센은 2014년 한국시리즈부터 시작해서 포스트시즌에서 3연속 탈락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게다가 김진욱 감독은 kt에서도 고생했다.[12]
결론적으로 팀 상황이 안 좋은데 무리하게 한 팀만 잡으려 들다가는 다른 쪽에서 문제가 터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팀 확실히 잡았다고 설레발 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관련 항목에 큰 수의 법칙을 넣은 것도 그 이유. 사례 중 12시즌, 16시즌 두산과 13시즌 넥센을 제외하면 감독들의 오판과 선수층 문제가 겹쳐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팀들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나 반박 등은 여기 참조.

2.2.2.1. 관련 문서


2.3. 커넬 샌더스의 저주


해당 문서 참조.

2.4.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들이 프로에 와서 부진한다는 징크스. 최정, 김현수 이후로 깨졌다고 볼 수는 있는데, 완전히 깨졌다기엔 또 애매하다.

2.5. 김성근의 저주


김성근이 경질되는 팀마다 한동안 부진하게 되는 저주. 야구계에선 '''김성근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한포기 남지 않는다'''는 식으로 회자되곤 한다. 대체로 선수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는 김성근 특유의 무리한 지옥훈련과 투수 혹사#s-4.1, 쥐어짜기로 대표되는 운영 스타일의 후유증으로 본다. 다만 아래 사례 중에서 쌍방울은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주전선수를 모두 팔아치우면서 자초한 것이라 딱히 김성근의 저주라고 하긴 힘들다.
  • OB 베어스 - 1989년 5위, 1990년 7위(1991년부터 8개구단 체제가 되므로 최하위) 1991년 8위. 김인식해제했다.
  • 태평양 돌핀스 - 1991년 5위, 1992년 6위, 1993년 8위. 이 쪽은 다만 김성근이 와도 태평양 자체가 답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듬해 1994년에는 태평양 돌핀스가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에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 저주가 해제. 이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가 4회 우승으로 저주 해제에 확인사살을 하였다.
  • 삼성 라이온즈 - 김성근이 팀을 망친 사례. 져주기 게임의 저주까지 겹쳐서 삼성을 암울하게 했다. 김응용2002년에 해제.
  • 쌍방울 레이더스† - 모기업이 외환위기로 기울어서 해체되었다. 당시 쌍방울은 1991~93년도 태평양 돌핀스보다 훨씬 심각했으며 다음 해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팀 자체가 해체되어서 저주라고 보기도 어렵다. SK 이상으로 김성근 감독의 진짜 전성기로 보는 야구팬들과 높은 페이롤로 인해[13] 성적을 낸 것이라고 보는 야구팬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 LG 트윈스 - 이 문서가 만들어진 가장 큰 원인. 6668587667, DTD의 최대 피해자, 이쪽은 구단이 계약 기간도 안지키고 경질시켰으면서 그 뒷수습이나 대안 마련에 완벽하게 실패했기 때문에 이는 빼도 박도 못한다. 그나마 2013 시즌(김기태), 2014 시즌(양상문) 연속 4강 진출 이후로는 흘러간 이야기가 되었다. 야수 노쇠화로 인해 2015시즌은 성적이 안 좋았으나 이는 리빌딩 과정에서의 진통으로, 김성근의 저주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2016 시즌 초반 부진을 극복하고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한 뒤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저주가 깨졌음을 증명했다.
  • SK 와이번스 - 저주가 늦게 발현된 사례. 김성근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2011년 말 이만수 감독대행은 김성근이 넘겨준 3위를 유지하고 포스트시즌에서 최종 순위 2위를 했다. 그 다음해인 2012년엔 시즌 2위를 유지했다. 2013년에는 가뜩이나 얇은 투수진이 더 열악해져 7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나 2014시즌에는 최종전까지 4강 싸움을 했고 2015시즌에는 와일드카드로 가을 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것의 좋은 사례(?). SK도 김성근 해고하고도 한국시리즈 2번이나 진출했고 13, 14시즌은 주축 선수들의 이탈과 용병농사 실패, 초보감독의 운영 미숙, 리빌딩 과정에서 찾아온 자연스런 하향세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게다가 15시즌에는 결국 그 김성근네 팀을 꺾고 가을 야구를 하는 데 성공해서 풀린 저주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김성근이 팔을 갉아먹은[14] 투수들의 하향세도 한몫 했을거다. 그리고 경질 후 7년이 지난 2018년 팀이 두산 베이스를 상대로 역대 최다 게임차의 뒤집기 우승의 신화를 왕조 시절만큼 강하지는 않은 불펜을 상쇄하는 빅볼 야구로 이뤄내면서 일부 감독팬들의 설 자리는 더 줄어들었다.
  • 한화 이글스 - 저주를 선불로 받은 사례. 하지만 그 덕택에 한국 야구계에서 김성근의 저주는 김성근 본인이 자초해 왔음을 증명하는 웃지 못할 긍정적 효과도 따라왔다. 2017년 시즌 중 김성근이 경질되고 이상군 대행이 팀을 빠르게 추스렸기 때문에 저주에서 빨리 벗어났다. 그리고 명장으로 칭송받던 3김(김인식, 김응용, 김성근)의 시대를 암흑기로 보낸 한화는 인간승리의 선수 경력을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신인 감독이 온 2018년 외부 지원도 유명세 있는 용병도 없이 무려 3위(!)를 찍으며 11년간의 기나간 암흑기를 끊어냈다. ......라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지만 2019년 뒤에서 2등, 그리고 2020년 현재 팀이 말 그대로 터져나가면서 후불로 저주를 받고 있다. 심지어 2018년에 3등한 전적 덕에 김성근 탓도 못하게 생겼다.

2.6. 노히트 노런의 저주


KBO 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면 롱런하지 못한다는 저주가 있다.
2019년 기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외국인 투수는 4명인데, 그 4명 전원은 노히트 노런 후 부진의 늪에 빠져 방출의 운명을 겪었다.
해당 문서 참고.

2.7. JTBC의 저주



이는 야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8. 홈런존 저주




2.9. 붉은 유니폼의 저주


2015년 이후로 SK 와이번스가 붉은색 유니폼을 입으면 해당 경기를 지거나 부진에 빠지는 저주. 본래 빨간색은 2006년 SK그룹의 CI 변경 이래 현재까지도 상징색이고, 구단의 최전성기(일명 왕조 시절)에 입었던 원정 유니폼도 붉은색이었으며, 4번의 우승 중 2을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확정지었던 만큼[15] 팬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았던 유니폼이지만(저주 이후에도 이러한 의견은 변하지 않을 정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015년 원정 유니폼을 회색으로 변경한 이후에 붉은 유니폼을 입으면 영 좋지 못한 꼴을 보게 되었다.[16]
SK 와이번스/유니폼 문서에서 해당 유니폼 문단과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좋다.
  • 2016년: 가을 DNA 에디션 유니폼을 2016년 추석연휴 기간이었던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홈 경기에서 입었지만 이 유니폼을 입고 9연패[17]를 기록하며 5강 싸움에서 멀어지며 6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 2018년: 9월 8일 조동화 선수의 은퇴를 기념하여 붉은색 기념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뤘으나 상대 선발 이영하에게 막히며 3대0으로 패배. 하지만 시즌 자체는 정규리그를 2위로 마치고 한국시리즈에서는 14.5경기차를 업셋하며 8년만의 우승으로 마감지었으니 저주에서 예외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 2019년: 9월 25일 홈 최종전과 잔여 원정 4경기를 2019 레드 데이 유니폼을 입고 치뤘다. 성적 자체는 4승 1패로 좋은 편이었으나 그 1패 때문에 9경기차를 뒤집히며 1위에서 2위로 추락하였다. 이후 포스트시즌 원정경기에서도 착용했지만 이 유니폼을 입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패하며 구단 최초 플레이오프 탈락과 포스트시즌 스윕패를 당하는 흑역사를 기록하였다.
  • 2020년: 붉은 유니폼이 일시적으로 입는 유니폼이 아닌 주말 원정 경기마다 입는 제 4의 유니폼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이 유니폼을 입은 해 야구 내적으로는 창단 후 최하 순위인 9위, 창단 최다 92패, 두 번의 두자릿수 연패 등의 각종 흑역사를 써내려갔으며 야구 외적으로는 감독의 건강 문제와 선수단 사건사고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등 창단 후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2021시즌을 앞두고 구단이 신세계그룹으로 인수되어 당분간 붉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기는 힘들 전망이다.

2.10. 3위의 저주


2016년 넥센이 3위로 마감하고 이듬해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이후 현재까지 계속 최종 순위 3위로 시즌을 마치면 이듬해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저주가 생겼다.
'''팀 및 해당 시즌'''
'''당해 성적'''
'''이듬해 성적'''
'''이듬해 감독'''
'''결과'''
2016년 넥센
'''3위'''
'''7위'''
장정석
2016년에는 준플레이오프가 끝나고 자진 사퇴한 염경엽 감독을 이어 지휘봉을 잡았지만 좋지 않은 경기 운영을 보이며 5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7년 롯데
'''7위'''
조원우
2017년 8월부터 엄청난 UTU를 보였던 모습과 달리 2018년에는 조원우 감독이 다시 조석두의 모습을 보이며 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8년 한화
'''9위'''
한용덕
제라드 호잉 으로 2018년 6월까지 6할 승률을 기록하는 등 SK와 2위 싸움을 하다 최종 3위로 암흑기를 청산했다. 시즌 후 탈삼진왕 키버스 샘슨을 포기하고 더 강력한 용병 투수 워릭 서폴드채드 벨를 데려왔지만 2019년에는 뒤에서 롯데와 2위 싸움을 하며 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9년 SK[18]
'''9위'''
염경엽
2019년 정규시즌 극후반에 1위에서 2위로, 플레이오프 스윕패로 2위에서 3위로 미끌어지면서 포스트시즌에 탈락했다. 그래도 전 3팀과는 달리 저주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염경엽 감독이 쓰러지고 타자들의 극심한 부진, 닉 킹엄리카르도 핀토의 부상과 부진으로 자신의 역할을 못해주면서 시즌 내내 한화와 어둠의 한국시리즈를 펼쳤다. 그러면서 4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20년 kt[19]
'''???'''
이강철


3. 2년 주기



3.1. 실패 이후 성공


한국 야구 국가대표는 큰 대회에서 죽을 쑨 뒤 2년 후의 다른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

3.2. 김태형 2년 주기 저주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2015 시즌부터 두산과 한국시리즈를 맞붙은 팀은 우승 여부에 상관없이 2년 뒤에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하였다. 그에 더해 김태형 감독과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감독은 이유를 막론하고 2년 안에 팀을 떠나게 된다.
'''팀 및 해당 시즌'''
'''당해 성적'''
'''이듬해 성적'''
'''2년 뒤 성적'''
'''감독'''
'''결과'''
2015시즌 삼성
준우승
9위
'''9위'''
류중일
다음 시즌 9위라는 구단 역사상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하였고 2016시즌 종료 후 '''재계약 포기.''' 이후 류중일은 기술고문 자격으로 구단에 남아 있다가 2018시즌에 LG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016시즌 NC
준우승
4위
'''10위'''
김경문
2018시즌 중 창단 첫 10위로 추락하면서 '''자진사퇴.''' 이후 유영준 단장이 감독대행을 맡아 시즌을 치루었지만 탈꼴지에 실패하고 창단 첫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
2017시즌 KIA
우승
5위
'''7위'''
김기태
2019시즌 중 창단 첫 10위로 추락하면서 '''자진사퇴.''' 이후 박흥식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수습하며 7위로 시즌을 마감.
2018시즌 SK
우승
3위
'''9위'''
트레이 힐만
개인사로 인해 이미 정규시즌에 '''재계약 포기''' 의사를 밝히고 시즌 후 그대로 팀을 떠남.
2019시즌 키움
준우승
5위
???
장정석
당해 시즌 종료 후 계약만료. 이후 구단 내부 알력다툼에 의해 '''재계약 불발.'''
2020시즌 NC
우승
???
???
이동욱
2021시즌 종료 후 계약만료. 하지만 구단 최초 우승 감독인 만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재계약이 유력해 보인다. 현재로써는 저주 '''대상 제외'''가 유력한 상황.
심지어 선수시절 우승 때도 이 저주가 있었다. (1995시즌 롯데: 준우승 → 1996시즌: 5위 → 1997시즌: 8위. 다만 당시 롯데 감독이었던 김용희 감독은 1998시즌 후 경질되었다.)

4. 완료형



4.1. 염소의 저주




4.2. 밤비노의 저주


'''염소의 저주와 함께 가장 유명했던 야구계의 저주.''' 보스턴 레드삭스는 1901년 창단한 이후 1918년까지 5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명문팀이었다. 하지만 레드삭스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1912년에 새로 지은 야구장인 펜웨이 파크를 건설하는 데 융자받은 돈을 갚기 위해 1919년 12월 26일에 트레이드 팀의 간판타자[20]로 전 시즌에 홈런 신기록을 세운 베이브 루스를 12만 5천 달러, 거기에 향후 37만 5천 달러를 빌리는 조건을 덧붙여 뉴욕 양키스로 현금 트레이드했다.
지금이야 루스 급의 선수를 12만 5천달러에 구입했다고 하니 헐값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양키스는 루스 영입에 구단의 운명을 건 것이다. 당장 양키스의 당시 구단주 제이콥 루퍼트가 양키스를 당시 돈 48만 불로 양키스를 구매했다. 여기에 루스의 연봉도 수만 달러였으므로 구단 인수 비용의 절반을 선수 한 명을 사는 데에 쓴 것이다.
이후 양키스는 루스의 미친듯한 홈런 행진 덕분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고 명문팀으로 성장해 2009년 우승을 포함해 모두 27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반면, 레드삭스는 베이브 루스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해인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무려 '''15년 연속 5할 미만 승률'''이라는 비참한 기록을 작성하게 되며, 2004년에 우승할 때까지 네 번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그치고 그 중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21] 특히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3승 2패로 앞서고 있던 뉴욕 메츠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 연장 10회말 동점 2아웃 상황에서 1루수 빌 버크너가 공을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는('''알까기''') 실책으로 무너지며 영상 7차전마저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하자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루스의 애칭을 따 '밤비노의 저주'라 부르기 시작했다.
저주를 풀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끝에 레드삭스는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3연패 뒤 4연승으로 역스윕하며 월드시리즈에 진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시리즈 셧아웃으로 꺾고 우승함으로써 86년 만에 저주를 풀었다.
이후 레드삭스는 2007년에 샌디에이고-필라델피아-애리조나를 차례대로 셧아웃시키고 올라온 록토버 콜로라도 로키스를 시리즈 셧아웃시키면서 팀의 일곱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3년 10월 31일 95년만에 펜웨이 파크에서 8번째 우승을 확정지었고 2018년 10월 29일 9번째 우승이자 21세기 4번째 우승을 하면서 저주에 확인사살을 찍고 확고한 명문구단으로 등극한다.
단, '밤비노의 저주'라는 명칭은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빌 버크너의 알까기 사건 이후 7차전에서 무너진 것을 보고 모 기자가 처음으로 '밤비노의 저주'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1918년 이후 다시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는 데에는 8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실제로 밤비노의 저주라는 명칭이 쓰인 시점부터 저주가 깨진 시간까지는 단 1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

4.3. 검은 양말의 저주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1919년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인 블랙삭스 스캔들을 일으킨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저주.
당시 구단주인 찰리 코미스키가 지독한 수전노였기 때문에 급여를 짜게 주는 것은 물론 선수들에게 유니폼 세탁비도 받을 정도였다.[22] 결국 돈이 필요했던 화이트삭스 선수 조 잭슨 외 7명은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도박사와 짜고 승부를 조작했다. 이후 8명은 야구계에서 영구퇴출 당했고 화이트삭스는 우승을 못하는 것은 물론 연고지에서의 인기도 시카고 컵스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안습의 세월이 86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안습의 세월을 달리다가 2005년 포스트 시즌에 갑자기 미친 저메인 다이와 조 크리디, A.J. 피어진스키의 사기짓 등의 활약으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시리즈 셧아웃으로 꺾어 88년만에 통산 3번째 우승을 거두며 저주를 풀었다. 또한, 월드시리즈를 4전 전승으로 우승한 통산 19번째 팀이 됐다. 무엇보다 지역 라이벌 시카고 컵스보다 우승을 먼저 했으니 기쁨도 두 배.

4.4. 윌리엄 펜의 저주


필라델피아의 모든 프로팀(필라델피아 필리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필라델피아 이글스,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이 우승을 하지 못하는 저주.
필라델피아 시가 속한 펜실베이니아 주를 건설한 윌리엄 펜이란 사람을 기려 1871년 신축한 필라델피아 시청 건물 꼭대기에는 37피트(약 11미터) 크기의 펜의 동상이 세워졌다.[23] 그리고 필라델피아에는 시청보다 높은 건물을 안 짓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그런데 1987년에 필라델피아에 945피트(약 288미터)짜리 고층 빌딩이 세워졌다.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야구), 필라델피아 이글스(미식축구),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농구),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아이스하키) 등 필라델피아 시를 연고지로 하는 모든 프로팀이 21년 동안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는 사달이 벌어졌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이를 가리켜 펜이 자기가 서있는 높이보다 높은 건물이 세워지자 '''열폭해서''' 저주를 걸었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저주를 깨기 위해 2007년 6월에 신축한 975피트(약 297미터) 높이의 빌딩 꼭대기에 윌리엄 펜의 인형을 갖다놓았다. 얼마 후에 인형이 도둑맞자 2008년 월드 시리즈를 앞두고 급히 작은 윌리엄 펜 인형을 구해다 대신 세워두었다. 이 덕분인지 2008년 월드 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4승 1패의 성적으로 필라델피아 팀으로는 25년 만에[24]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슈퍼볼 LII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드디어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저주도 완전히 박살났다.
이는 2017년 6월 25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4.5. 노무라 카츠야의 저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약했던 노무라 카츠야가 플레잉매니저 시절인 1977년 시즌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아내(당시는 애인) 노무라 사치요의 막장행각[25]으로 인해 감독직을 사임하고 난카이를 떠나면서 기나긴 저주가 시작되었다. 노무라가 떠난 다음 해인 1978년부터 중간에 1988년 난카이 전기철도가 다이에에게 구단을 매각해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로 이전한 후 1997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최장기간 B클래스 기록'''인 6565655664546546456를 세웠다.(참고로 6이 꼴찌)
이후 1993년 80년대에 세이부 라이온즈를 강팀으로 만들었던 GM 네모토 리쿠오가 부임해 세이부에서 한 것처럼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트레이드와 스카우트 등으로 좋은 선수들을 연이어 영입하고 1995년 왕정치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심기일전하기 시작하여 드디어 1998년 리그 A클래스를 찍으며 비밀번호를 끊었고, 1999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센트럴리그 우승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일본시리즈에서 4승1패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3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기나긴 저주가 깨지게 되었다.(다만 네모토 리쿠오는 이해 4월 사망해 일본시리즈 우승을 보진 못했다.) 2000년 일본시리즈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밀려 준우승 했지만 2003년에는 '호응(호랑이와 매) 시리즈', '산요 신칸센 시리즈'라 불린, 호시노 센이치가 지휘하던 한신 타이거즈와 명승부를 거두며 다시 한 번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4.6. 달구벌의 저주


2002년 이전까지 KBO에서 가장 유명했던 저주로 일명 져주기 게임의 저주. 1984년 삼성 라이온즈는 전기리그 우승으로 이미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따낸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김영덕 감독은 상대적으로 껄끄러운 OB 베어스[26]보다 만만했던 롯데 자이언츠[27]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간택(?)하게 되고, 후기리그 마지막 2연전을 롯데에게 모두 내주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우선 트리플 크라운 만들기 작전을 위해 이만수장효조를 10경기 전부터 내보내지 않았고, 첫 번째 경기를 2진급 선수들로만 구성해 내보냈는데, 문제는 롯데가 그 2진급 선수들에게도 탈탈 털렸다는거. 초반부터 롯데가 탈탈 털리자 김영덕 감독은 아예 노골적으로 져주라고 지시하며 7-0으로 앞선 경기를 9-11로 져주는 위엄 돋는 업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경기에서는 전날보다 노골적으로 져주기 승부를 기록하며 롯데의 후기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당시 이만수와 함께 수위타자 부문에 경쟁했던 홍문종은 당연히 덤으로 9연속 고의사구를 당했다...
같은 시간 OB 역시 해태를 상대로 2연승을[28] 거두었지만, 롯데가 삼성에게 2승을 헌납받으면서 한국시리즈는 삼성과 롯데의 경기로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롯데는 최동원[29]만 아니었으면 삼미슈퍼스타즈와 꼴찌다툼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팀이었고, 삼성은 김시진, 김일융 등 최동원에 견줄법한 에이스만 두 명이었고, 이만수, 장효조 등 KBO 역사를 통틀어도 이름을 남길만한 네임드 선수들이 쟁쟁했다. 7차전짜리 시리즈에 하나에 선발투수가 많아야 3경기 정도 나올 수 있고, 최동원이 나온다고 한들 롯데의 전력으로 김시진이나 김일융을 상대로 이기리라는 보장도 없었다.[30] 그리고 그리고 결국 한국 야구계에 길이 남을 결과를 낳았다.
그 뒤 84년 이후 삼성은 86년, 87년, 90년, 93년, 01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패했고, 이기간중 한국시리즈 12연패, 한국시리즈 잠실 구장 10연패라는 흠좀무한 대기록을 작성하면서 85년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82년 준우승을 포함하면 한국시리즈 6회 진출 모두 준우승이라는 위업마저...
그러다가 2001년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을 모셔오고, 발비노 갈베스의 활약으로 87년 이후 간만에 페넌트레이스 출범이후 첫 우승을 기록하며 93년 이후 9시즌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투수진의 전체적인 난조로 그만 2승 4패, 페넌트레이스 체제 출범이래로 3번째, 프로야구 통산 4번째 한국시리즈 직행팀의 준우승이라는 뼈아픈 기록을 다시한번 작성해야했다. 이 준우승은 김응용 감독의 첫 준우승이기도 했으며, 이때 삼성은 '정말 안되는 것인가?'란 주제로 인터넷 야구 게시판이 크게 달구어졌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2년 이승엽-마해영의 극적인 홈런 2방으로 장장 19시즌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내며 삼성은 달구벌의 저주에서 벗어나기에 이른다. 82년부터 치면 21시즌, 8번째 한국시리즈를 맞아 거둔 우승이었다. 그 이후 2003년 최강타선을 이끌었음에도 4위(정규리그 성적, 3위). 2004년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다가 2005년, 2006년 우승, 2007년, 2008년에는 연속 4강, 2009년에는 한번 탈락(5위), 2010년 준우승을 하다가 다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통합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4.7. 두산 베어스 10번의 저주


'''윤동균'''에서 시작해 '''최준석, 박세혁'''으로 끝난 징크스
이 저주는 OB 베어스의 전 감독 윤동균과 연관이 있는데, 이는 윤동균이 현역 시절 달던 번호가 '''10번'''이었고, 한때 영구결번까지 갔지만 1994년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물러나면서 슬그머니 해제, 그 후 두산 베어스로 가면서 10번을 단 선수들이 이상하게 부진을 겪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타자는 문희성으로 1997년 입단 이후 1년 동안 10번을 달고 뛰었다. 그러나 문희성은 이후 2군을 전전하는 2군 본즈가 되어 2005년 시즌을 제외하면 만년 2군, 백업을 전전하다가 잠시 버스기사를 하기도 하고 현재는 사회인 야구에서 뛰고 있다.
이후 10번을 단 선수는 강혁 한양대-OB 사이 이중등록으로 영구제명까지 갔다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복권되어 당시 지명권을 소유한 두산으로 5억 7천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면서 10번을 달게 된다. 그러나 당시 두산은 1루수로 타이론 우즈가 있었고, 거기다 해태에서 최훈재를 영입한 상황. 자리가 없어진 강혁은 대타를 전전하다 2001년 SK 와이번스로 이적, 이후 2004년 병역비리 사건 때 방콕 아시안게임 직전 병역 면탈을 시도했던 사실이 드러나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받은 병역특례가 박탈되고 공익요원으로 입대하면서 선수인생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강혁이 이적한 후 이번에는 심재학이 2001년 2월 두산으로 오면서 10번을 달게 되었다. 심재학은 2001년 한국시리즈의 우승 주역이 되었고 더불어 성적도 타격 2위인 0.344에 홈런 24개, 88타점을 기록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했지만, 2002~2003년에 무력하게 부진에 빠졌다. 결국 2004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10번의 주인은 사라졌다.
이후 트레이드된 황윤성이 10번을 달았지만, 그 또한 2005년 5월 현대 유니콘스 전에서 그라운드 홈런을 친 인생경기를 제외하면 큰 존재감은 없었고, 최준석이 2006년 이적 이후 2007년부터 10번을 달게 되는데, 최준석은 2007년 16홈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5번 타자로 맹활약하며 '''저주를 사실상 깨트린다.''' 그러나 고질병인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기 시작하고 김진욱이 감독이 1루수를 오재일과 플래툰 기용하면서, 2012년과 2013년을 연속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2013년 포스트시즌 맹활약하였고 이후 FA때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컴백, 부활에 성공한다.[31]
최준석이 떠난 후 10번은 2011년 말 한화 이글스에서 2차 드래프트로 영입한 김강이 달고 있었는데, 김재환, 오재일 등에 밀려나면서 2군을 전전했고 끝내 두산 유니폼을 입고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한 채 2016년 9월에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래도 2군 코치로 금세 재취업했다.
그 뒤 2017년 홍상삼의 제대 및 1군 합류로[32] 박세혁이 47번에서 10번으로 등번호를 교체했다. 양의지의 백업 역할을 잘 수행했고, 양의지의 엔씨 이적 후에는 두산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는다. 박세혁은 2019년 정규시즌 최종전 두산의 우승을 확정짓는 끝내기 안타를 쳤고 한국시리즈 3차전 MVP를 받으며 2019년 두산의 역전 우승에 크게 기여한다.

[1] 시카고 컵스는 10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88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86년이 걸려서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현재 이 팀들의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는 시카고 컵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3회, 보스턴 레드삭스는 9회다.[2] 밥 펠러는 단순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스타만이 아닌 톰 시버, 그렉 매덕스, 밥 깁슨, 클레이튼 커쇼와 같이 라이브볼 시대 최고의 투수로 뽑히는 인물이었으니 그가 은퇴한 후로는...[3] 위의 시카고 컵스 스타들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4] 이 때 6차전에서 결승 홈런을 친 데이비드 저스티스는 2년 뒤 클리블랜드로 이적했다.[5] 웃긴 건 당시 애틀랜타는 90년대 NL 서부지구의 패자로서 90년대에 총 5번이나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만 1995년 월드 시리즈에서만 우승하고 나머지는 다 준우승을 했다. 그 유일한 우승의 제물이 된 것.[6] 그 이후 보스턴은 콜로라도를 상대로 스웝을 하고 우승했다.[7] 그들은 1승 3패 후 3연승으로 저주를 깨고 역사를 세웠다.[8] 오른팔 大邱, 왼팔 Lions가 우승 유니폼이지, 오른팔에 사자 로고 있는 건 우승을 경험한 적이 없다.[9] 투수코치 선동열은 여전히 평가가 좋다. 특히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현장 1년 공백기를 뚫고 진가를 발휘했다.[10]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비교기사가 올라오는 것, 언플 열심히 하는 삼성 기사와 성적으로 보여주는 대구 FC 기사의 수가 큰 차이가 안 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 그리고 삼성 왕조 시절 팬들이 대구 FC로 넘어온 정황이 응원가(엠프 없는 엘도라도 등)와 기사 댓글에서 보인다.[11] 요미우리 자이언츠 아디다스 초기 검은색 유니폼이라는 예가 있다. 1번 시드에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탈락이라는 망신도 당했고, 매출도 영 좋지 않았는데다 검은 유니폼을 버린 이후 기적적인 역전 리그 우승을 하면서 검은 유니폼은 말 그대로 금지어 취급에다 완벽하게 매장당했다.[12] 이전에는 16시즌 두산도 있었지만, 그래도 준우승이라는 점이 참작되어 삭제되었다.[13] 당장 9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려 리그 최강팀이었던 해태는 물론이고 당시 든든한 자금력을 앞세워 부자구단이라고 불렸던 삼성, 현대보다도 연봉총액이 높았다는 소리.[14] 전병두, 채병용.[15] 그 외에도 2007년 우승 당시에는 흰색 홈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확정지었지만 초반 2연패 이후 붉은 원정 유니폼을 입고 3연승에 성공하며 시리즈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당시 SK의 김성근감독도 이것을 의식하여 홈 경기인 6차전에서 점퍼 안에 몰래 붉은색 원정 유니폼을 입었을 정도.[16] 근데이제 입을일 없다 흰색도 빨간색도 회색도(...)[17] 9월 10일 한화전~ 9월 23일 kt전[18] 정규시즌에서는 2위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에 패하면서 최종 3위.[19] 정규시즌에서는 2위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패하면서 최종 3위.[20] 1917년까지는 간판투수였다. 이후 외야수로 옮겼지만 아직 투수로도 출장했다.[21] 그것도 항상 3승 4패로 한 끗 차이로 우승하지 못했다. 특히 1975년엔 7차전에서 3-0으로 앞서다가 4-3으로 역전패, 1986년엔 밑에 언급했듯이 6차전에서 알까기 후, 7차전에서 패배[22] 당시 화이트삭스의 에이스였던 에디 시코티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기 싫어서 일부러 기용하지 않아서 옵션을 채우지 못하게 하거나, 웬만한 타팀 선수들이 1만 달러는 받았지만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조 잭슨의 연봉이 달랑 6천달러였다는게 대표적인 예시.[23] 참고로 시청 건물의 높이는 548피트인데, 548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레전드 3루수인 마이크 슈미트의 통산 홈런수이기도 하다.[24] 1983년 시즌 NBA의 세븐티식서스와 MLB의 필리스. NHL의 플라이어스는 1975년 이후 아직도 스탠리 컵 우승이 없다.[25] 선수 부인들을 갈군다든가, 선수 기용에 간섭한다든가 등등.[26] 김영덕 감독이 OB 선수들의 뒷통수를 쳐버리고 삼성 감독으로 온터라 84년 전기리그에서 두 팀 간에 난투극이 있기도 했고, OB는 84년 전후기 통합승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삼성 못지않은 강팀이었다. 그리고 사실 2019년 기준으로 KIA,삼성 바로 다음으로 우승 횟수가 많은게 두산이다.[27] 전기리그 상대전적이 9승 1패였다.[28] 이쪽도 만만치 않아서.. OB가 2승을 날로 먹는 대신 해태 김일권에게 도루 기록을 헌납했다고 한다.[29] 1984년 시즌 성적 27승 13패 방어율 2.40. 한시즌 80경기이던 시절이다.[30] 져주려고 내보낸 삼성 2진급한테 7-0으로 털리던 팀이고, 실제로 최동원의 삼성전 페넌트레이스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31] 다만 최준석은 롯데에서는 25번을 달았다.[32] 2016년 시즌 중 제대, 홍상삼은 2016시즌에 27번을 달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