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스 그랜더슨

 

'''커티스 그랜더슨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201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득점왕'''
마크 테세이라
(뉴욕 양키스)

'''커티스 그랜더슨
(뉴욕 양키스)'''

마이크 트라웃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26번'''
마이크 디페라이스(2004)

'''커티스 그랜더슨(2004)'''

밴스 윌슨(2005)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28번'''
그렉 노튼(2004)

'''커티스 그랜더슨(2005~2009)'''

윌 라임스(2010~2011)
'''뉴욕 양키스 등번호 14번'''
에릭 힌스키(2009)

'''커티스 그랜더슨(2010~2013)'''

브라이언 로버츠(2014)
'''뉴욕 메츠 등번호 3번'''
오마 퀸타니야(2013)

'''커티스 그랜더슨(2014~2017)'''

미정


'''이름'''
'''커티스 그랜더슨 주니어
(Curtis Granderson Jr.)'''
'''생년월일'''
1981년 3월 16일 (43세)
'''국적'''
미국
'''출신지'''
일리노이 주 블루아일랜드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2년 드래프트 3라운드 (DET)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04~2009)'''
'''뉴욕 양키스 (2010~2013)'''
뉴욕 메츠 (2014~201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7)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8)
밀워키 브루어스 (2018)
마이애미 말린스 (2019)


1. 개요


전직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외야수. 발도 빠르지만 타구를 날리고서 언제나 전력질주 하는 성실한 모습 때문에 팬에 비해 안티는 거의 없는 편. [1]

2. 선수 시절



2.1.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image]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
고등학교 시절에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에서 다시 괜찮은 활약을 선보이면서 2002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지명되어 프로 무대로 들어갔다. 다만, 탈아마추어급의 괴물같은 실력을 뽐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순번은 낮은 편.
하지만 마이너에서 굉장히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며 2004년에 이미 메이저리그 맛을 봤고, 2006년에 드디어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하며 19홈런을 치며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이바지했지만, 그 해 삼진 1위를 먹는 한계를 보이기도. 하지만, 2007년 재능을 터뜨리면서 23홈런 74타점에 38개의 2루타, 23개의 3루타[2][3], 26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즉, 20-20-20-20[4]을 기록하며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부상했다.
2008년에도 22개의 홈런을 치고, 13개의 3루타로 3루타 1위에 오르면서 활약했고, 2009년에도 30개 홈런을 치면서 디트로이트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팀 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2009년에 타율이 급락하면서 공갈포의 기미가 보이자, 디트로이트는 과감하게 장기계약을 맺었던 그랜더슨을 3각 트레이드를 통해 뉴욕 양키스로 보냈다.

2.2. 뉴욕 양키스


[image]
뉴욕 양키스 시절.
뉴욕 양키스에서의 첫 해인 2010년에도 24개의 홈런을 쳤지만, 디트로이트에서의 마지막 해 보여준 공갈포 기질이 여전히 발동. 타율이 0.247에 불과하다. 반대로 양키스가 내준 이안 케네디는 엄청 잘 나가는 바람에 아깝나 싶었는데... 2011년 홈런이 폭발했다! 시즌 절반도 지나기 전에 벌써 17개 홈런을 치면서 활약하더니 시즌 최종성적은 타/출/장 0.262 0.364 0.552 41홈런 119타점 25도루 OPS 0.916으로 낮은 타율만 아니면 가히 MVP로도 손색이 없을 스탯을 찍었다.[5] 윌리 메이스에 이어 40홈런-20도루-10 3루타 고지에 오른 역대 2번째 선수가 되었다. 양키스 프랜차이즈 역사로 봐도 조 디마지오-미키 맨틀에 이어 중견수로서 40홈런을 달성한 역대 3번째 선수이자 50년만에 나온 양키스 중견수의 40홈런이다.
2012년 초반, 홈에서 16경기만에 1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1926년 베이브 루스의 19경기보다 빠른 프랜차이즈 기록을 만들어냈다.'#' 2012년을 .232 .319. .492 43홈런 106타점으로 마감했는데, 195삼진으로 양키스 선수의 단일시즌 삼진 기록도 경신했다.[6] 8월 이후 1할대 타율에 머무르면서 비율 스탯을 많이 까먹고 말았다. [7] 아쉬운 점을 또 하나 들자면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2홈런을 몰아치며 홈런왕 미겔 카브레라를 1개차까지 쫓았는데 마지막 타석에서 그냥 교체되었다(...)[8]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는 양키스가 졸전끝에 디트로이트에게 완패하는데 일조하면서 팬들에게 을사오적 격인 양키 4적이라고 까였다.
수비지표인 UZR가 점점 하향세를 보여 수비 면에서 기여도가 점점 떨어지는 탓에 2013년에 들어서면서 좌익수로 뛰기 위해 브렛 가드너와 포지션을 바꿔 스프링캠프에서 적응하려는 시도가 보였으나 시범경기 첫 타석에서 J.A. 햅의 투구에 손목을 맞아 골절되면서 시즌 개막 후 한달 이상을 결장하게 되었다. 그랜더슨이 좌익수로 경기에 나선 경험의 거의 전무[9]하기 때문인지 포지션 변경도 일단은 없던 일로 되어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거기다가 버논 웰스가 들어오면서 웰스가 좌익수를 보고 있으니 포지션 변경은 없을 듯... 이었지만 마이너 리햅에서 코너 외야수로 뛰었으며 복귀 이후에도 브렛 가드너가 출장한 경기에서는 좌익수와 우익수를 번갈아 출장했다. 그러나 복귀한지 8경기만에 세자르 라모스의 투구에 왼손 새끼손가락에 골절상을 입으며 또 다시 4-6주간 결장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부상자가 거듭해서 속출하고 있는 팀의 입장에서도 안타깝고 FA를 앞두고 있는 선수 본인에게도 매우 안타까운 시즌이 진행되었다.
그랜더슨의 2013년은 .229 .317 .407 7홈런 15타점으로 최악의 시즌이 되었다. 8월에 다시 복귀한 이후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9월에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FA가 되면서 본인은 양키스 잔류를 첫 번째 옵션으로 생각했지만 양키스의 오프시즌 행보가 $189m 프로젝트와 외야수 포화현상으로 인하여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흘러가면서 고향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슬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쿠바 출신인 호세 어브레유와 계약하면서 관심을 끊었지만 다년 계약을 받고자 양키스의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하면서 시장에 나왔다.[10] 굵직한 루머는 적었지만 뉴욕 메츠와 계속 링크되더니 결국 4년 $60m에 계약했다. 뉴욕 메츠와 계약 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링크는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가 떴다.

2.3. 뉴욕 메츠


[image]
뉴욕 메츠 시절.
메츠 입단식에서 '''진정한 뉴요커는 메츠팬이다''' 드립을 쳤다. 2014년 5월 5일을 기준으로 타율 .173 OPS .550의 최악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마구잡이 스윙은 여전하고 양키 스타디움을 벗어나자 유일한 장점인 홈런도 줄어 고작 2개를 기록중. 2014 FA 최고의 먹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5월 달에 홈런 5개를 치며 장타가 살아나는듯 하더니, 6월달 타율은 3할을 넘어가고 장타력도 전성기에는 못미치지만 어느정도 회복된 모습을 보이며 데이비드 라이트까지 부진하는 타선에서 그나마 사람다운 활약을 하고 있다. 시즌 초반 -1.0 아래까지 떨어졌던 fwar도 1.0 언저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나마 시즌 초반의 삽질을 만회했다. 어느 정도 반등하긴 했으나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20홈런 66타점에 .227/.326/.388/.714 정도의 스텟으로 시즌을 마쳤다. 데이빗 라이트가 역대 최악의 성적(.269/.324/.374/.698)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나마 선방했다는 반응.
2015년에는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랜더슨 특유의 공갈포 기질은 여전하지만, 지난 시즌보다는 OPS가 거의 0.1 정도가 더 높아 OPS형 타자의 마지노선으로 보이는 0.8 이상은 찍어 주고 있다. 팀도 작년과 다르게 순항하면서 9월 6일까지 지구 1위를 기록 중이다. 5할이 간당간당한 워싱턴, 그리고 NL 최하위 3형제들이 모두 동부지구에 있는 덕분에(특히 애틀랜타는 11연패 중) 거의 다가온 지구 우승에도 어느 정도 공헌하고 있다. 먹튀 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로는 하고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2년간 합산 fwar가 6.3이니 같은 시기 계약했던 추신수, 제이코비 엘스버리보다 가성비가 좋은 모습이다.

2016년에는 다시 2014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외야 포지션에 워낙 몸값 못하는 선수들이 많아서 큰 두각을 보이지는 않지만 메츠팬들의 입장은 몸값과 비교하자면 아쉽다는 평. 2할3푼대의 타격에 30홈런, 59타점, 3할 초반의 출루율은 빼도박도 못하는 공갈포. 보통 이런 유형의 타자들은 하위타선에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안습이었던 메츠 타선 탓에 그랜더슨이 4번 타자를 맡는 경우도 잦았다. 그래도 이 시즌 종료 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하였다. 오프시즌 동안 뉴욕 메츠에서 진행한 자선 행사와 본인의 재단 행사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메츠 팬들은 경기장 내에서도 무수한 더 캐치와 홈런 포의 모습과 경기장 외의 모습 모두 사랑하며 애정을 듬뿍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오프시즌에 트레이드 루머에 말려들어갔는데 우익수만 보는 브루스(13M)와 우익수가 주 포지션인 그랜더슨(15M)이 겹치기 때문에 프런트에서는 오프시즌 과제인 교통정리와 중견수 보강을 위해 둘 중 하나를 트레이드 하여야 했는데, 정작 보내버리고 싶은 브루스 보다는 그랜더슨이 인기가 있었고 실제로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과 얘기가 오갔을 정도였지만 두 선수 모두 유망주 희생이 강요되었기에 트레이드는 무산되었고 이번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좌익수와 중견수 수비 연습을 해야할 판이다.
.

2.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image]
풍기질만 하고 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한국시간 2017년 8월 19일 다저스로 뜬금없이 전격 트레이드되었다. 반대급부는 추후지명 불펜 유망주 제이콥 레임. 이적 후 8월 21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그랜드 슬램을 기록하는 등 마이너로 강등된 작 피더슨의 빈자리를 쏠쏠하게 메워주는 활약을 보이고 있나 했지만........답이 없는 타격에 데뷔 초의 공갈포 기질이 다시 돌아오면서 신나게 까이고 있다.[11] 다저스 이적 후의 모습은 '''삼진 아니면 홈런''', 그마저도 11연패 기간 중에는 홈런도 없이 폭삼만 가득했다는 그야말로 보는 사람을 혈압 올리기에 딱 좋았던 상황. 결국 11연패를 찍은 다음 날, 데이브 로버츠 감독에 의해 플래툰을 돌린다는 결정이 나왔을 정도인데 본인도 어느 정도 인지를 한 것인지 군말없이 받아들인 것이 다행이었다.[12] 플래툰을 돌릴 만했던게 9월 30일 기준 .152의 타율에도 7홈런.(...) 그나마 플래툰으로 강등이 된 이후엔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를 기점으로 11경기에서 .267 / .371 / .633에 3홈런을 기록하면서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게 위안거리였지만, 현재의 페이스로는 포스트시즌 엔트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가 결국 답이 없는 다저스의 좌익수 사정상 엔트리에 합류했고[13] 그리고 팀이 완승을 거둔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는 말 그대로 망했다. 그런데 2차전에서 5회 대타로 출장하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구원투수 지미 셔피를 상대로 좌전 안타 이후 추가 진루를 하는 데에 성공, 다저스 타선의 포문을 열었고 그랜더슨의 이 안타와 함께 다저스는 이 이닝에만 4득점에 성공, 그나마 1차전의 아쉬운 부진을 만회할 수 있었다. 나머지 타석에서는 삼진 하나를 먹고 안드레 이디어와 더블 스위치로 교체. 좌투수를 상대로는 선발 라인업에서 계속 빠지는 것으로 보아 포스트시즌에서는 플래툰 내지는 꾸준히 대타 툴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안드레 이디어와 2차전에서 더블 스위치로 교체될 당시 둘이서 하이파이브를 나누기도.(...) 그리고 3차전은 또 뜬공 하나와 삼진 하나로 망하고 키케 에르난데스와 좌우놀이를 당했다. 아 옛날이여... 그리고 오랜만에 선발 라인업으로 들어선 NLCS 4차전에서는 자신 혼자서 - 4타수 무안타 4삼진을 기록했다. 덤으로 삼진 먹었는데 파울이라 우기고 다시 와서 삼진 먹는것은 백미.
결국 구단도 끝까지 기다려주다가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 코리 시거의 로스터 복귀와 브랜든 맥카시의 로스터 합류를 위한 월드 시리즈 로스터 정리 과정에서 카일 파머와 함께 2017년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14] 구단도 월드 시리즈에서는 12인 투수 엔트리에 코리 시거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랜더슨을 뺄 수밖에 없던 상황.[15] 사실상 2017년 시즌을 마감함과 동시에 시즌 종료 후 FA로 풀리는 그의 행보에 주목을 해야할 상황.
그런데 2017년 월드 시리즈에서 그랜더슨 영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작 피더슨이 귀신같이 맹타를 휘두르자 김형준 위원은 그랜더슨 영입은 작 피더슨의 각성을 위한 큰 그림이 아니었나 하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피더슨의 이러한 분전에도 결국 다저스는 우승에 실패했다.
본인은 아직 은퇴 의사는 없으며, FA를 통해 새 팀을 찾겠다고 밝혔다.

2.5. 토론토 블루제이스


[image]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시즌 종료 후 1월경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1년 5M의 계약을 맺었다.시즌 초반에는 만루홈런도 쳐주고 타율도 3할을 찍는등 선전하였으나,5월이후 팀이 하향세를 타기 시작하자 덩달아 기록이 떨어져서 중반 이후는 타율 2할 4푼대에서 오락가락하였다.
5월 24일 LA 에인절스 전에서는 수비로 일내는 듯 싶었으나, 주루에서 본헤드 플레이를 시전하면서 팀의 1점 차 패배의 역적이 되었다. 3-1로 앞서던 6회 2사 1,2루에서 마이크 트라웃의 좌전안타 타구를 수습해 3루까지 폭주하는 칼훈을 아웃시켰고, 이것이 산책주루를 시전한 말도나도의 홈인보다 빨라 1실점을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3-5로 역전당한 9회말 공격에서 2루타를 쳐 무사 2, 3루를 만들었으나, 켄드리 모랄레스의 홈런성 타구가 외야수에게 잡힐 줄 알고 뒤늦게 3루로 뛰는 바람에 득점에 실패했고, 테오즈카 에르난데스의 얕은 우익수 뜬공 때는 반대로 칼훈에게 홈에서 저격당한다(...)

2.6. 밀워키 브루어스


[image]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
그러나 이 서술과 달리 그래도 밥값은 하고 있었고, 그와중에 팀은 지구 4위로 떨어지며 그를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고 결국 8월 30일 웨이버 트레이드로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밀워키가 그를 영입한 이유는 팀에 좌타대타로 쓸만한 선수가 극도로 부진중인 에릭 테임즈밖에 없다는 것..또한 선수단이 상대적으로 젊고 큰경기 경험이 적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플옵 출장경력 36경기에 빛나는 그랜더슨이 클럽하우스 리더역할을 수행해 줄 수 있는 베테랑이기도 해서 그렇다.
밀워키에서의 데뷔전은 대타로 나와 치뤘는데 볼넷을 골라냈다. 두번째 경기에서는 선발로 나와서 안타는 없었지만 2볼넷을 골라내며 테이블세터 역할을 잘 수행했다.
8월 12일 컵스전에선 리드오프로 출장해 4타수 3안타 1홈런으로 대활약하며 팀승리를 이끌었다. 2루타 없는 힛포더사이클.
현재 밀워키에서의 성적은 8경기 11타수 5안타(2홈런) 3타점, 5볼넷 4삼진으로 표본은 적지만 볼넷이 삼진보다 많다! 심지어 OPS는 1.829로 20할에 가까운 수준.
여태까지 밀워키로의 이적은 본인에게나, 밀워키에게나 엄청나게 이득인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어쨌든 베테랑으로서 대타로나 클럽하우스 내부로나 좋은 평가을 받았다.

2.7. 마이애미 말린스


이후 2019년 2월 5일 마이애미 말린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워낙 팀이 개판인 상황이라 팀의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5월 19일 경기에서 8회말에 쐐기를 박는 솔로홈런을 기록하면서 샌디 알칸타라의 통산 첫 완봉승을 도왔다.[16] 하지만 현실은 그만 은퇴나 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망했다.

3. 은퇴


시즌 후 마이에미와 계약이 끝났고 2020년 1월 31일 SNS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발은 빠르지만 톱타자로 쓰기에는 출루율이 떨어지는 편. 이유는 타율이 낮기 때문인데, 삼진을 많이 당하는 타자인데다 특히 '''심각한 좌상바다.''' 통산 좌투수 상대타율이 0.220을 간신히 넘는 수준. 거기에 삼진과 장타율까지 비교하면 더 심각하다. 빠른 발로 만드는 2루타와 3루타로 이를 극복하고 괜찮은 장타력으로 커버하는 선수이다. 한국이라면 1번보다는 5,6번을 칠 타입의 선수.
다만 좌상바 기질은 2010년 후반기부터 많이 고쳐지긴 했다. 케빈 롱 타격코치와 타격폼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스트라이드를 줄이고 뱃의 위치를 좀 더 세우기로 했는데 왼쪽 어깨가 빨리 열리는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그 결과 2011년에는 좌투수 상대로만 16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또한 삼진을 많이 당하기도 하지만 볼넷도 은근히 많다. 기복이 심한 편인 것은 여전히 단점으로 꼽힌다.
스윙 메커니즘이 우측 펜스가 짧은 양키 스타디움과 알맞는 모습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산 커리어 기록을 보면 홈/원정에서의 스플릿 차이가 거의 없는 선수인데 양키스로 오면서 홈런이 크게 늘어나긴 했다.
양키스 시절 타격에서의 기여도는 팀내에서 상위권에 자리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수비 기여도는 오히려 리그 최악에 가까워졌다. 특히 수많은 중견수 깊은 타구에 만세를 부르다가 2루타, 3루타를 헌납하는 타구판단미스가 갈수록 심해진게 문제.
게다가 FA가 되는 2013시즌 이후 만 33세를 맞이하기 때문에 장기 계약을 주기에는 부담이 간다는 문제점이 있어 장기 고액연봉자들이 많이 있고 페이롤을 감축하는 과정에 있는 양키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계약 기간까지만 함께 하자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결국 양키스도 픽을 얻는 것에 만족했다.

5.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04
DET
9
28
6
1
1
0
2
0
0
3
8
.240
.321
.360
.681
0.1
2005
47
174
44
6
3
8
18
20
1
10
43
.272
.314
.494
.808
1.1
2006
155
679
155
31
9
19
90
68
8
66
'''174'''
.260
.335
.438
.773
4.0
2007
158
676
185
38
'''23'''
23
122
74
26
62
141
.302
.361
.552
.913
7.9
2008
141
629
155
26
'''13'''
22
112
66
12
71
111
.280
.365
.494
.858
4.1
2009
160
710
157
23
8
30
91
71
20
72
141
.249
.327
.453
.780
3.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10
NYY
136
528
115
17
7
24
76
67
12
53
116
.247
.324
.468
.792
4.0
2011
156
691
153
26
10
41
'''136'''
'''119'''
25
85
169
.262
.364
.552
.916
6.9
2012
160
684
138
18
4
43
102
106
10
75
195
.232
.319
.492
.811
4.0
2013
61
245
49
13
2
7
31
15
8
27
69
.229
.317
.407
.723
1.2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14
NYM
155
654
128
27
2
20
73
66
8
79
141
.227
.326
.388
.714
1.2
2015
157
682
150
33
2
26
98
70
11
91
151
.259
.364
.457
.821
5.3
2016
150
633
129
24
5
30
88
59
4
74
130
.237
.335
.464
.799
3.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17
NYM/LAD
147
527
95
24
3
26
74
64
6
71
123
.212
.323
.452
.775
2.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18
TOR/MIL
123
403
83
22
2
13
60
38
2
54
106
.242
.350
.431
.781
0.9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19
MIA
138
363
58
17
1
12
44
34
0
41
98
.183
.281
.356
.637
-1.4
'''MLB 통산
(16시즌)'''
2057
8306
1800
346
95
344
1217
937
153
924
1916
.249
.337
.465
.803
47.6

6. 기타


  • 마이너 시절 $46만 9000달러의 계약을 맺으며 입단했으니 대부분의 유망주들보다 좋은 조건이였으나, 그도 마이너 생활은 끔찍했다고 회고했다. 처음 받은 월급이 세전 $850이여서 벙쪘었고, 돈이 없어서 동료들과 쇼핑몰 푸드코트에 가서 점심을 먹을때 반은 남겨서 저녁으로 먹었다고 한다. 숙소에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점심 후 10시간 뒤에 저녁을 먹을때까지 음식이 상하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팀동료들도 칼로리가 부족해서 근육을 키우는게 매우 힘들었다고...[17]
  • 그랜더슨 자신은 일리노이 출신이지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팬이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전국방송에 당시 최강팀으로 꼽히는 애틀랜타 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많이 접했다고 한다. 출신지에는 대체적으로 시카고 컵스의 팬이 많았지만 본인은 Saved by the bell이라는 시트콤에서 틈만 나면 컵스를 깐 것에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컵스의 성적에 실망했던 듯. 또한, 경기에 나서면 항상 스타킹을 끝까지 올려서 신는데, 이는 니그로리그 출신이자 흑인의 메이저리그 활동의 선구자인 재키 로빈슨사첼 페이지가 입던 스타일로 존경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 메이저리그에서 얼마 없는 학사학위 취득자이기도 하다. 어린이를 위한 단체를 설립하여 운영 중이며 2008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내기도 했다. 해외 야구 보급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영국, 네덜란드, 남아공, 뉴질랜드, 중국 등 여러 국가에 방문한 바 있다. 이처럼 많은 사회 활동에 참가하면서 훌륭한 인성에 대한 호평을 받고 있다. 아무래도 교사 출신인 부모님의 영향을 적잖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image]
  • 2012년 12월 2일부터 4일까지 MLB를 대표하는 홍보대사로 한국을 방문했다. 12월 2일에는 SOS 서울 어린이마을에 방문하였고, 타임스퀘어에서 사인회를 가지며 유쾌한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자신의 트위터에 한때 팀동료였던 박찬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3일에는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팬미팅을 가졌다. 원래 1시간 30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일정상 30분도 안돼서 끝났고 개별 사인도 금지되었다고... 덕분에 팬미팅에 참가한 한국의 양키팬들은 매우 실망했다 카더라. 팬미팅이 끝난 후에는 서울중학교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야구 클리닉에 참여했다.
  • 2013년엔 네덜란드 출신인 릭 밴덴헐크가 2009년에 유럽에 야구를 전파하려는 의도로 만든 '유러피언 빅 리그 투어'에도 같이 참가했다.
  • 컴투스의 모바일게임 MLB 9이닝스 18에서는 기묘하게 매시즌 고평가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11시즌 프라임 카드는 당연하지만 정확이 약간 부족할 뿐 어마어마한 파워와 충분한 선구 스탯, 빠른 발과 적당한 수비 스탯을 가진 상급 카드로 등장하며, 심지어 풍기질만 하고 갔던 17 시즌 다저스 일반카드와 대타 후보였던 18년 밀워키 시즌마저 굉장히 고스텟의 알짜배기 카드로 나왔다. 그 때문에 유저들 사이에선 '컴투스 대주주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1] 물론 이것도 단순히 지나치게 못해서가 문제였다. 다만 국저스의 영향도 있었던 것이 다저스가 연패에 빠지자 같이 부진하고있던 아드리안 곤잘레스와 묶여 팀 케미스트리를 해치고 있다는 루머로 욕을 엄청 먹었다. 그랜더슨의 성장 배경과 평상시 경기를 대하는 태도, 이후 행보를 본다면 다저스 시절에'''만''' 성격이 갑자기 변한 게 아닌 이상 팀 케미스트리를 해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2] 현대야구에서 시즌 20개 3루타가 정말로 드문 기록이었기에 그랜더슨의 시즌 20개 이상 3루타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3] 2000년 이후 그랜더슨, 롤린스(2007), 크리스티안 구즈만(2000) 3명만이 20+ 3루타를 쳐냈으며 1950년 이후로 확대하더라도 7명뿐이다.[4] 정말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2007년 지미 롤린스가 달성하면서 그 해 양대리그에서 모두 탄생했다.[5] AL에서 타점, 득점 1위. 홈런 2위를 차지했다. 8월까지는 유력한 MVP 후보였지만 9월에 .205, .300, .375의 부진한 성적을 찍으며 스탯을 많이 깎아먹었고 결국 막판 부진과 낮은 타율이 걸림돌이 되어 4위에 그쳤다. 1위가 투수인 저스틴 벌랜더였고 2위와 3위가 플옵에 오르지 못한 팀의 선수들인 자코비 엘스버리호세 바티스타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이다.[6] 이 기록은 2017년에 애런 저지가 208삼진으로 경신한다.[7] 이는 브렛 가드너가 4월 중순에 팔꿈치 부상을 당한 이후로 대체할 수 있는 중견수가 없어 거의 휴식일 없이 풀타임을 뛴 영향도 어느 정도 있다.[8] 미기는 이로써 단독 홈런왕을 차지했고, 결과적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했다. [9] 2012년까지 2005년에 54.2이닝, 2007년에 5이닝만 좌익수로 뛰었고 그 외에는 모두 중견수로 나섰다.[10] 나이가 33세인지라 다년 계약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찬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11] 웨이버 트레이드에서 외야수 한 명을 찾을 만했던게 작 피더슨이 8월 한 달간 단 8푼의 타격으로 뒷목을 잡게 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랜더슨까지 이중으로 뒷목을 잡게 만든 거.[12] 플래툰행 결정이 많이 늦은 편이었다. 후술한 대로 좌상바 기질을 탈출하지 못했던 점 때문.[13] 9월에서야 제대로 시즌을 치른 안드레 이디어까지 엔트리에 승선을 시켜야 했을 수준으로 작 피더슨이 마이너에서 복귀한 이후에도 답이 없는 타격을 선보인 것이 가장 컸다. 작 피더슨을 포기하고 데리고 간 것. [14] 반지를 2년 연속으로 공짜로 획득했다.(...)[15] 키케 에르난데스가 직전 경기에서 인생경기를 펼친지라 도저히 뺄 수가 없었고, 찰리 컬버슨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NLCS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에 시거의 자리를 비우기 위해 제외할 수 있는 선수가 그랜더슨뿐이었기 때문이다.[16] 이 경기는 1시간 57분만에 끝났다.[17] http://bleacherreport.com/articles/2700299-this-is-what-its-like-to-chase-your-pro-baseball-dreamsfor-12-bucks-an-h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