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등장인물
1. 주역
손님을 두고 왔어."
서울특별시에 사는 평범한 개인 택시 기사. 1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기사로, 11살짜리 딸과 함께 단 둘이서 동료 택시기사 강동수의 집 반지하에 세들어 살고 있다.[1] 과거 중동 건설 붐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화물차 기사로 근무한 경험 덕분에, 영어 단어를 나열해서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할 줄 안다.[2] 개인택시를 몰지만, 아내의 병원비로 돈을 다 쓰고 이제 겨우 빚을 다 갚은 상황이다. 택시도 겨우 장만했으며, 사글세를 내지 못해 4달치 10만 원이 밀려있는 처지다. 전라남도 광주시에 가면 10만 원을 준다는 외국인 호구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피터를 만나 광주로 향한다.[3] 영화 초반에는 서울에서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대학교에 비싼 돈 주고 가서 한다는 게 고작 시위냐?" 같은 반응을 보이고 광주에 가서도 재식에게 그런 식으로 나무라지만, 광주의 참상을 직접 보고 나서는 오히려 식당에서 광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착잡하게 바라보는 등 심경의 변화를 드러냈다.[4][5] 광주에서 머무르다가 딸 생각이 간절해져 서울로 돌아가다가 피터 생각에 울면서 차를 다시 광주로 돌리고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하는 장면은 아마 본작 최고의 명장면일 것이다. 병원에서 다시 만난 피터에게도 "아이 택시드라이버, 유 택시 손님!"하며 책임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부상당한 시위자들을 구출하러 직접 가는 등, 그냥 서울로 갈 수도 있었을텐데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광주시민들을 도와준다. 만약 이 사람과 기자, 그리고 아래의 중사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베일에 쌓인채로 폭동이라 불렸을 것이다.[6]
>"아빠가... 서울특별시에 사는 평범한 개인 택시 기사. 1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기사로, 11살짜리 딸과 함께 단 둘이서 동료 택시기사 강동수의 집 반지하에 세들어 살고 있다.[1] 과거 중동 건설 붐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화물차 기사로 근무한 경험 덕분에, 영어 단어를 나열해서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할 줄 안다.[2] 개인택시를 몰지만, 아내의 병원비로 돈을 다 쓰고 이제 겨우 빚을 다 갚은 상황이다. 택시도 겨우 장만했으며, 사글세를 내지 못해 4달치 10만 원이 밀려있는 처지다. 전라남도 광주시에 가면 10만 원을 준다는 외국인 호구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피터를 만나 광주로 향한다.[3] 영화 초반에는 서울에서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대학교에 비싼 돈 주고 가서 한다는 게 고작 시위냐?" 같은 반응을 보이고 광주에 가서도 재식에게 그런 식으로 나무라지만, 광주의 참상을 직접 보고 나서는 오히려 식당에서 광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착잡하게 바라보는 등 심경의 변화를 드러냈다.[4][5] 광주에서 머무르다가 딸 생각이 간절해져 서울로 돌아가다가 피터 생각에 울면서 차를 다시 광주로 돌리고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하는 장면은 아마 본작 최고의 명장면일 것이다. 병원에서 다시 만난 피터에게도 "아이 택시드라이버, 유 택시 손님!"하며 책임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부상당한 시위자들을 구출하러 직접 가는 등, 그냥 서울로 갈 수도 있었을텐데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광주시민들을 도와준다. 만약 이 사람과 기자, 그리고 아래의 중사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베일에 쌓인채로 폭동이라 불렸을 것이다.[6]
에필로그에서는 평범하게 택시 운전을 하며 지내지만 그 일 이후로 손님을 대하는 모습에 변화가 보인다.[7] 이후 힌츠페터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보며 그를 그리워한다.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피터와 헤어질 때 피터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자 가짜 연락처와 사복다방 성냥을 본따 김사복이라는 이름을 적어 준다. 실존인물을 찾지 못했던 당시, 가명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복권된 이후에 힌스페터가 언론을 통해 찾아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본인의 신분을 숨긴 것이라는 설을 차용한 것인데, 실제로는 광주 민주화 운동 발생 이후 4년 뒤에 사망해서 2000년 즈음에는 이미 고인이었다. 실존인물 김사복은 평소 인권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영어가 유창했으며, 힌츠페터에게 직접 브리핑을 했을 정도로 주도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극중에 묘사된 만섭은 실제 인물과는 거의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 수준의 각색이다. 하지만 영화 제작 당시에만 해도 '힌츠페터를 도운 한국인 택시기사가 있었다'는 점 외에는 김사복에 대해 알려진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택시운전사/탐구 문서 참조.
가만 보면 날강도 기질도 있는데, 집주인한테 돈을 빌려서 집세를 갚으려 하고, 정비소에서 안 그래도 싸게 불러준 수리비에서 더 깎아서 내고, 무엇보다 이 영화 스토리의 시발점 사건이기도 한 남의 예약 손님을 가로채는 얌체짓까지 했다(...).[9]
서독 ARD/NDR 소속 기자. 나이는 44세[10] 일본에 체류하던 중, 한국의 소식을 듣고 광주로 찾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작중에서는 '피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는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의 Jürgen Hinzpeter에서 따왔다.[11] 이 아이디어는 위르겐 힌츠페터 본인이 직접 제시한 의견이라고 한다. 당초 장훈 감독은 이름을 바꾸려 했으나, 힌츠페터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고. 안타깝게도 실제 힌츠페터는 영화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2016년 1월 별세하였다. 작중에서 다른 인물들에 대비하여 취재에만 열을 올리고, 그에 대한 당위성 등이 제시되지 않아 평면적이라고 보일 수 있는 캐릭터이다.[12] 이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실존 인물에 대한 서술을 확인할 것. 배우와 감독 사이에서 캐릭터 해석에 대한 이견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무난한 평면적 인물이 된 것 같다고 감독 또한 아쉬워했다.
[13] . 만섭 일행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하고 하룻밤 재워주기도 하고, 후반부에서는 동료 기사들과 함께 만섭의 광주 탈출을 도와준다. 동료 기사가 그의 앞에서 대놓고 우유부단하다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정 많고 사려 깊은 인물. 마냥 사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만섭이 아내 없이 딸을 혼자 키우는 것을 눈치 채곤 동료 기사가 만섭의 처에 대해 묻는 것[14] 을 제지하는 등 눈치도 있다. 작중 언급이나 주위 분위기로 봐서는 광주 택시 기사 패거리의 큰형님 쯤 되는 듯. 김만섭과 피터와 재식이가 황태술의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왜 기자가 됐냐"는 재식이의 질문에 피터가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자, 황태술이 "화투냐"고 물으면서 '나도 소싯적에는...' 이라는 애드립을 한다. 타짜와 타짜: 신의 손에서 유해진이 연기했던 배역인 고광렬 패러디.
광주 적십자병원에서 만난 광주의 개인 택시 기사[15]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는 명백히 나오지는 않는다.[16] 피터를 만난 대학생들이 영어를 못해 쩔쩔매다가 팝송마니아라 영어를 조금 한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피터의 말을 통역하게 된다.[17] 그리고 이때부터 통역관 역할로 두사람과 같이 다니게 된다. 대학생이긴 하지만 작중 본인 언급으로는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에 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만섭이 "한 곡 뽑아보라"고 했지만, 본인은 기타 담당이라고.[18] 주인공 일행과 함께 방송국에 불이 나는 것을 보고 상황을 보러 갔다가 사복조장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 자신을 미끼로 희생하여 사복조로부터 만섭과 피터가 도주하게 한다. 이 후 병원에서 시체로 나오는데, 황태술의 말로는 "사복조가 논두렁에 버리고 갔다"고. 처음 피터와 만나고 헤어졌을 때도 눈물을 흘리며 영어로 "약속해줘요. 꼭 이 참상을 밖에 알리겠다고"라고 강한 의지를 보여줬으니, 그로서는 자기가 원하던 형태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이 확인되었을 때 피터도 옆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데, 이는 자신이 아직 어린 대학생인 재식을 방패삼아 살아남은 것이 매우 마음에 걸렸고, 거기에 재식의 죽음을 확인하면서 충격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대학생. 당시 상황이나 작중 대사로 보면 전남대학교 재학생으로 추측된다.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는 명백히 나오지는 않는다.[16] 피터를 만난 대학생들이 영어를 못해 쩔쩔매다가 팝송마니아라 영어를 조금 한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피터의 말을 통역하게 된다.[17] 그리고 이때부터 통역관 역할로 두사람과 같이 다니게 된다. 대학생이긴 하지만 작중 본인 언급으로는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에 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만섭이 "한 곡 뽑아보라"고 했지만, 본인은 기타 담당이라고.[18] 주인공 일행과 함께 방송국에 불이 나는 것을 보고 상황을 보러 갔다가 사복조장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 자신을 미끼로 희생하여 사복조로부터 만섭과 피터가 도주하게 한다. 이 후 병원에서 시체로 나오는데, 황태술의 말로는 "사복조가 논두렁에 버리고 갔다"고. 처음 피터와 만나고 헤어졌을 때도 눈물을 흘리며 영어로 "약속해줘요. 꼭 이 참상을 밖에 알리겠다고"라고 강한 의지를 보여줬으니, 그로서는 자기가 원하던 형태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이 확인되었을 때 피터도 옆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데, 이는 자신이 아직 어린 대학생인 재식을 방패삼아 살아남은 것이 매우 마음에 걸렸고, 거기에 재식의 죽음을 확인하면서 충격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2. 광주 인물
[19] 소속의 기자. 피터와 마찬가지로 올곧은 기자로 뜻이 맞는 몇몇 동료 기자들과 실상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지만[20] , 언론통제 및 검열로 좌절[21] 한다.[22] 만섭보다는 훨씬 영어 실력이 유창하며, 따라서 광주 시내의 시위현장을 같이 취재할 때는 피터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의사소통을 한다.
광주 지역신문인 전남매일신문사[26] 택시 회사에서 만섭의 차를 고쳐주는 장면 이후로는 태술과 함께 서울에서 온 만섭과 피터를 도와준다. 현장에 뛰어들어 택시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고립된 시위자들을 구출해 내고, 마지막엔 온 힘을 다해 희생하여 보안사 사복조들이 만섭과 피터를 쫓는 것을 막아낸다. "꼭 광주의 참상을 밖에 알려 달라"는 의지 하나로 한 몸 바친 것이다. 차순배가 연기한 차 기사는 원래 성이 오 씨였으나, 배우의 성에 맞춰 차 기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신 기사나 류 기사도 배우와 배역의 성이 동일하다. 세 명 다 차가 망가지고 쓰러진 것 같은데 잘 도망간 것으로 추정이 된다.[27][28] 보안사 사복조들은 저 셋을 체포하느니 만섭과 피터를 잡는 것이 급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보안사 요원들과 동귀어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태술의 동료 택시 기사들로, 극중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세명 모두 병원 앞에서 '형님'인 태술과 함께 최 기자를 승차거부하는 장면으로 첫 등장. 만섭이 유턴 사건을 일으켰을 때는 피터의 편을 들었지만참고로, 담당 배우가 아따맘마의 아빠로 유명한 그 손종환성우가 맞다.
- 홍용표 母 (이용이 扮)
만섭이 영화 초반에 유턴 사건을 일으키는데 그 때 길가에 쓰러져있는 노파를 지나치지 못하는 바람에 광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노파가 바로 용표의 어머니였다.
3. 계엄군
보안사 소속 군인. 말 그대로 사복 차림으로 시민으로 위장하여 시위대를 잡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위대 당시 자신의 손을 잡고 도망치려는 남자를 붙잡고 여러 번 주먹질을 한 뒤 부하들에게 데려가라고 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30] 멀리서 카메라를 들고 시위 현장 곳곳을 촬영하고 있는 힌츠페터를 보고는 단숨에 외신기자임을 직감하고 잡아들이려 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기자의 정체와 그와 같이 다니는 일행들까지 알아내고는 세 사람 모두 잡아들이려 한다. 그러다 광주 MBC 방송국 화재 현장에서 떨어진 필름을 주우러 내려온 재식을 잡아들인다. 같은 시대를 다룬 <변호인>의 '차동영 경감'(곽도원 분)에 해당하는 캐릭터. 자신과 국가의 의지에 반하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로 몰아가는 게 일품이다. 상당히 잔인하며 냉혹하다. 특히나 배우의 인상이 매우 사나워 더욱 더 돋보이는 부분이다. 박 중사나 광주시민들과는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신념에 투철한 사람. 위에서 명령하니까 사복조장 일을 하는 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비뚤어진 애국심의 좋은 예.[31] 마지막에는 부하들과 관용차인 쌍용 코란도(구)를 타고 피터 일행을 저지하려 했으나 광주 택시기사들에 의해 저지된다.
31사단[35] 소속 육군 중사. 1회성 카메오지만 주연급의 임팩트를 남긴 캐릭터.
극중 피터와 만섭이 간 샛길의 검문조장이다. 반말과 욕설로 윽박지르는 부하 군인들과는 달리 고압적인 태도이기는 해도 일단 존댓말로 피터와 만섭에게 하차를 요구하고 택시를 수색한다. 결국 트렁크에 숨겨져 있던 필름 가방과 서울 택시 번호판이 발각되어 만섭과 피터는 할 말을 잃고 무서운 정적이 흐른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중사는...
고증 오류로, 당시 육군 명찰엔 장교만 성씨 영문 이니셜을 새기고 사병은 군번을 새겼는데, 박중사는 하사관 즉 사병임에도 장교 양식의 명찰을 부착하고 있다. 아래의 육군 병사들은 제대로 사병용 명찰을 달았다.
극중 피터와 만섭이 간 샛길의 검문조장이다. 반말과 욕설로 윽박지르는 부하 군인들과는 달리 고압적인 태도이기는 해도 일단 존댓말로 피터와 만섭에게 하차를 요구하고 택시를 수색한다. 결국 트렁크에 숨겨져 있던 필름 가방과 서울 택시 번호판이 발각되어 만섭과 피터는 할 말을 잃고 무서운 정적이 흐른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중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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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오류로, 당시 육군 명찰엔 장교만 성씨 영문 이니셜을 새기고 사병은 군번을 새겼는데, 박중사는 하사관 즉 사병임에도 장교 양식의 명찰을 부착하고 있다. 아래의 육군 병사들은 제대로 사병용 명찰을 달았다.
[39] 실제로 이렇게 군복무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진압에 동원되었다가 나중에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고 PTSD에 시달린 사람들도 있다.
박 중사와 함께 광주 비포장 검문소에서 차량을 단속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광주를 빠져나가는 김만섭과 피터가 탄 택시를 발견하자 멈춰세우고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묻고 집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김만섭이 주소를 말하지 못하고 서울 말씨를 쓰자 수상하다고 느끼고 쌍욕을 내뱉으며 반말을 하고 총을 들이댔다. 수상한 두 사람을 내리게 하고 외국인인 피터에게도 '외국인이라고 봐줄 줄 알아?'라고 독설을 계속 퍼부으며 덤벼드는 무례한 행동을 보였다. 고압적인 태도이긴 해도 존댓말을 쓰긴 했던 박 중사와 달리 반말을 까고 쌍욕을 하면서 총까지 들이대는 행동 때문에 사복조장 못지않게 욕을 많이 먹는 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현장 투입 전 설명을 들을때도 단순 시위 방어 정도가 아닌 빨갱이/폭도의 내란으로 들었을테니 이러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언론통제가 심하던 독재정권 시절에 박 중사처럼 정부 보도를 믿지 않고 자기 소신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오히려 특이한 경우이고 이 병사들처럼 단순히 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보통이었을 것이다.4. 그 외
[40] 의 만섭의 외동딸. 아내를 잃고 상심하여 술을 마시던 만섭이 단 하루만에 술을 끊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41] 상구가 자신을 놀리자 상구를 때려 얼굴에 상처를 낼 정도로 자존심이 센 반면, 부처님 오신 날에 소풍을 가자는 만섭의 권유에 아빠 휴일에 돈 벌어야 하지 않느냐며 아버지를 걱정하는 성숙한 모습도 보인다. 사실 실존인물 김사복에겐 딸 대신 20대의 아들 2명이 있었다.[42] 때문에 영화 극중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11세광주에 내려갈 때에도 생존해 있었다.
만섭의 사별한 아내. 극중 사진으로만 등장하며 실제 김사복의 아내는 김사복이 - 독일방송 아나운서 (안톤 숄츠[43] 扮)
5. 특별 출연
기사식당에서 돼지불백을 사주고, 은정과 상구가 싸우면 자기 아들 상구를 혼내는 등, 만섭을 많이 배려해준다. 세입자인 만섭이 집주인에게 사글세 빌려 달라고 할 정도이니. "10만원만 빌려 달라"는 만섭의 말을 듣고는, "밀린 집세 갚겠다고 집주인한테 돈 빌려 달라는 놈은 처음 본다" 며 웃는다. "나도 최근에 막내 결혼 시킨다고 마누라 몰래 다 갖다줘서 개털"이라고 말하는 건 덤.
만섭의 동료 택시 기사이자 세들어 사는 집의 주인, 상구의 아버지. 반찬이라곤 김치 뿐인 도시락을 먹는 만섭에게 [45] 이었는데, 상구네 역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독촉하는 것. 실제로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아이 키우는 법을 몰라 쩔쩔매는 만섭에게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는가 하면, 말로는 은정이 때문에 상구가 다쳤다며 툴툴거리면서도 저녁거리로 "은정이와 같이 먹으라"며 국을 사다주는 등[46] 심성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만섭이 순천에서 동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때도 "아이가 밤새도록 아빠 오기만을 기다렸다"며 왜 이리 안 들어오냐고 타박을 준다. 또 아빠를 기다리는 은정을 상구가 또 괴롭히려 들자, 자식부터 싸고 돌았을 평소와는 달리 아들에게 "친구 좀 그만 괴롭히라"고 야단치고 은정을 챙겨주는 등, 나름 부녀를 각별히 배려하는 편.
상구와 싸워 은정의 이마에 큰 상처가 나자 만섭이 이를 따지러 갔다가 되려 사글세를 갖고 만섭을 구박하며 등장. 만섭에게 "너무 오냐오냐 키우지 마라", "지키지도 못 할 약속은 하지도 마라"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작품에서나 보이는 갑질하는 주인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 밀린 집세가 10만원[47] 그래도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받아주고 만섭이 점심먹을 공간을 내주는 걸 보면 만섭과는 이래저래 막역한 사이로 보인다. 이후 정비를 받으러 온 만섭에게 차가 성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하며 전체적으로 한번 손좀 봐야한다고 그의 차량 상태에 대한 경고를 해준다.[48]
서울에서 정비소를 운영하는 사장. 사이드미러 수리비를 싸게 부르지만, 만섭이 그보다 적은 값을 부르고 억지로 돈을 쥐어주자 이건 아니라며 소리지른다.- 광주신문사 부장 (류태호 扮)
[1] 이 때문에 작중 사글세 때문에 돈을 빌려달라는 만섭에게 "집주인한테 돈 빌려서 집세 낸다는 녀석 처음 본다"라는 대사가 있다.[2] 지금도 그렇지만 설계사가 영미권이나 유럽 국가들이 많기 때문에 영어를 싫어도 쓸 수밖에 없다. 허나 송강호는 영어는 거의 못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 덕택에 설국열차를 찍을 당시에 번역기를 동원해서 커티스와 대화하는 신이 나온다.[3] 사실 기사식당에서 그 말을 한 회사 택시 기사가 광주로 갈 예정이었으나, 만섭이 가로채버렸다.[4] 사실 순천에서 보았던 신문엔 "폭도와 깡패, 빨갱이들이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내보냈고, 광주신문은 검열을 거쳤으며, 광주와는 그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인근에 있는 전라남도의 다른 지역에서도 광주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 그대로 믿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만섭이 허기를 잠시 달래로 온 전라남도 순천의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사람들이 저대로 믿었겠는가... 물론 이 과정에서 의구심을 느낀 사람들이 광주에 침투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해내기도 하였다.[5] 다만 이는 작중 초반 만섭의 행동에 기초하여 생각 해 본다면 큰 변화라 보기엔 애매한게, 곧 출산하려는 부부를 병원에 데려다 준 후 지갑이 없다는 손님의 말에 '내가 이렇게 떼인 택시비만 모아도 집 하나는 샀다'고 말하면서도 손님이 먼저 내민 명함 하나 받고 떫떠름해 하면서도 초산 시 주의점 등 여러가지 조언을 하며 보낸다.[6] 물론 이건 영화에서의 이야기고, 현실에서는 당시 광주에 여러 외신기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래의 계엄군 중사와 같은 당시 이후로는 훗날 양심선언자가 되는 계엄군 출신들이 기무사의 반란 진압 이전과 진압된 이후 시기에 속속들이 양심증언들이 나오면서 아래의 계엄군 중사는 사실상 노렸든 아니든 지금 이날에 양심증언자로서의 계엄군 출신자들을 상징하는 셈이다.[7]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손님이 타는데, 돈을 적게 가지고 왔다고 하자 알았다며 봐준다.[8] 실제 고증을 배제한 영화 자체적인 맥락으로 보면, 군부에서 외국인 기자를 도와준 본인을 추적할까봐 일부러 가짜 신상을 알려줬음을 유추할 수 있다.[9] 다만 예약 손님 가로채기는 제외하고 집주인에게 돈 빌려 빚 갚기는 집주인이 오래 지낸 친구였기에 말이라도 꺼내볼 수 있는 것이고, 정비소의 수리비 후려치기 씬도 정비사와 오래 거래한 단골+친구였기에 가능한 것이 곳곳에 보인다. 사실 오래 지내고 거래도 오래 한 사람들이니까 저렇게 웃어넘기는 것. 만일 그렇지 않다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욕먹기 딱 좋은 행동.[10] 1980년 당시 (한국 나이로) 44살이고 2003년 당시 67살이면, 1937년 7월 6일생.[11] 영화에서도 도쿄의 프레스 센터에서 다른 기자들하고 통성명할 때도 "편하게 피터라고 부르라"고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다.[12] 사실 기자로서 사건이 있을 법한 지역에 취재를 오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또한 처음에는 단순 취재로 생각했다가 광주의 참상을 보고 점점 진심으로 걱정하고 의무감을 띠는 등, 변화를 겪는 게 보이긴 한다. 다만 행동이 좀 어색한 부분이 있는데, 뻔히 적대적일 게 뻔한 군인들이 코 앞에 있는데 몸도 숨기지 않고 촬영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답답해 보인다. 나름 베테랑 기자라는 사람이.[13] 개인 택시 기사지만, 신일 택시라는 회사 택시 기사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개인 택시로 옮기기 전에 이 회사에서 일했던 것인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추격전 장면에서는 맨 앞에 바리케이드로 세워 총격에 현가장치가 망가진 본인의 택시 대신 그 회사 택시 중 하나를 타고 왔다.[14] 택시 회사에서 정비가 늦어져 서울을 오늘 내로 가지 못한다고 하자 "어린 딸이 혼자 집에 있다"는 만섭의 말에 차 기사가 "아이 엄마는 뭐하느냐"고 묻는다. 난처해하는 만섭을 보고 태술은 만섭의 처지를 눈치챈다.[15] 이름은 단순히 그 자식이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5.18 광주 당시 어느 정도 배웠고, 의식이 깨어 있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재식처럼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의문을 가졌을 것이므로 단순한 우스갯소리로만은 볼 수 없는 이름이다.[16] 유추해 본다면 전남대나 조선대 재학생으로 추측된다.[17] 처음에는 외국인을 마주했다는 당혹감 때문인지 약간 버벅거리기는 했지만 이후에는 긴장감이 풀리면서 점차 유창한 영어실력을 드러내게 된다.[18] 그래서인지 노래를 부를 때 입으로 손에 없는 기타 소리를 기가 막히게 내며 흥을 돋우지만, 이내 노래 실력을 보여주자 만섭과 태술이 "시위대가 잡아가도 할 말 없을 노래 실력"이라며 혹평을 날렸다. 이에 "저는 기타 담당이라 노래는 별로라고 미리 말했다"며 변명하는 모습이 참 재미있는 스틸컷. 패션이나 머리 모양, 기타 담당 포지션 등으로 보아, 영락없는 송골매의 배철수가 모티브인 듯하다. 하지만 198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5.18 광주를 주제로 한 노래인 '바윗돌'로 대상을 받은 정오차씨와, 1984년, 5.18 광주를 모티브로 한(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노래인 '바위섬'을 발표하여 크게 히트를 친, 5.18 당시 전남대학교 2학년이었던 김원중 씨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19] 윤전실 장면에서 한문으로 신문 이름이 나오며, 1980년 당시 검열당했던 실제 언론사다. 같은 해 11월 언론통폐합으로 광주일보에 흡수되면서 폐간됐다.[20] 맨 처음에 태술을 비롯한 택시 기사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잘못된 기자라고 매도하며 승차거부를 했다.[21] 실제로 이때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은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기자 일동." 이라는 공동 사직서를 제출한다.관련기사[22] 심지어 이 때 검열을 직접적으로 한 것도 보안사, 안기부가 아니라 신문사의 사장이었다. 이런 신문을 내면 곧바로 보안사로 신문사 직원 전원이 끌려가고 신문사는 문 닫을 게 뻔했기에, 즉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막은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 특히 전직 언론인 출신 소설가 김훈의 경우 왜 전두환을 찬양했냐고 하니 별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폭력에 굴복했다고 담백하게 말했다. 자신이 그런 기사를 쓸 것이니 동료 작가를 풀어 달라고 했다고. 당시 폭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23] 영화 사도에서 박 내관 역, 응답하라 1988에서 치타 여사의 전국노래자랑 예선 탈락의 '''원흉'''인 계란장수 역을 맡은 바 있다.[24] 연극 무대에서 주 활동하며 MBC의 김진민 PD의 연출작 로드 넘버 원, 오만과 편견 등의 출연한 바 있다.[25] 배우들에게 방언 연기를 지도한 경력이 있는데 재식 역의 류준열과 내부자들의 이병헌에게 전라도 방언을 지도했었다. 그 외 영화 신세계에서 이중구의 오른팔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26] 앞뒤 사정을 모르고 필름 가방이 없어져 피터가 화난 모습만을 봤으니 만섭의 편을 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피터가 만섭한테 준 돈을 자기 마음대로 빼앗아서 다시 돌려준 오지랖을 부리기도 했다.[27] 단, 살아남은 자는 차 기사 뿐일거다. 류 기사는 아예 보안사들한테 치여서 차가 완파된데다가 사망했을가능성이 높고, 신 기사는 보안사차를 쳐서 한대를 없에는 도중 결국 자신도 부상입어 쓰러졌지만 사망인지는 판정이 않났다. 만약 신 기사가 살아났으면 되늦게 일어나 도망쳤을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자는 차 기사 뿐일 확률이 높다.[28] 이것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엄연히 타지에서 파견 온 보안사 요원들보다 기사들이 광주 지리에 대해서는 훨씬 잘 안다. 그리고 차량과 차량이 부딪히는 사투를 벌였는데 보안사 사복조들 역시 기사들 못지 않은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아무리 단련된 신체와 총기를 내세운다고 한들 다시 정신을 챙겨서 맨 몸으로 기사들을 추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29] 영화 검사외전에서 강동원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다 용역 깡패들에게 얻어맞아 병실에 눕는 동료 역을 맡은 바 있다.[30] 이 남자는 사복조장 또한 자신과 같은 시위대라고 여긴 것이다.[31] 특히 만섭이 택시기사가 되기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에서 피땀 흘려 돈을 벌어서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이미지가 강해진다.[32] 크레딧에서는 권 중령으로 표기되지만 극중 군복 명찰과 탁자 명패를 통해 이름을 알수있다.[33] 크레딧에서는 비포장 검문소 중사로 표기되지만 극중 군복 명찰을 통해 이름을 알수있다.[34] 송강호는 함께 촬영한 밀정에서 엄태구의 인상이 깊었는지 직접 감독에게 "이 친구 잘한다. 에너지가 강하다"라고 말했고 이에 감독은 엄태구에게 연락을 해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35] 보안상의 문제인지 부대 마크는 이전에 쓰던 31사단 마크를 그대로 쓰지 않고 색만 바꾸었다.[36] 실제 5.18 당시 광주에는 다른 외신 기자들도 있었다. 이 군인이 발견했던 것도 원래는 번호판이 아니라 과자통에 감추어진 필름이었다.[37] 본명은 한성용으로, 비포장 검문소 경비병이다. 군복의 명찰을 통해 이름을 알수있다.[38] 영화 연평해전에서 극중 박동혁 수병을 괴롭히는 선임 이용세 수병 역을 맡은바 있다. 워낙 리얼해서 악역 같으면서도 인간적인 인물상의 복잡함을 잘 표현해 찬사를 받았지만 반면 "기분은 좋은데 욕을 먹네요."라 할정도로 배우 본인은 상당히 스트레스가 심각했던 모양이다.[39] 당시 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피터와 만섭은 "북한 빨갱이들과 손을 잡고 적국을 돕는 가증스러운 배신자들"이었을 것이기에 이렇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징집된 병사라면 20대 초반의 일반인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부의 명령에 의문을 품고 자기 의지대로 행동한 박 중사가 사실 특이한 경우.[40] 1980년 당시 (한국 나이로) 11살이고 2003년 당시 34살이면, 1970년생. 현재 만 54세.[41] 술을 마시고 만섭이 집에 들어왔을 때 어머니의 옷을 안고 울고 있는 은정의 모습을 보았다고.[42] 이 아들 2명은 단순 계산으로 현재 50대 후반쯤으로 예상할 수 있다.[43] 독일 공영방송 ARD 기자.[44] 크레딧에서는 상구 아빠라고 언급되고,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통화하는 장면에서 이름만 언급된다. 후반부에 상구 엄마가 상구를 혼낼 때 "강상구!" 라고 부르면서 강씨임이 밝혀진다.[45] 현재 가치로 따지면 80~100만원 정도.[46] 처음에 딸이 끓인 줄 알고 칭찬하다가, 상구 엄마가 줬다고 말하자 바로 뱉고는 '어쩐지 맛이 짜더라.'라고 투덜거리는 개그신도 나온다.[47] 처음에 수리비를 거의 부품값만 받는 수준인 5천원을 불렀는데 만섭이 비싸다며 4천원을 부른다. 이에 실랑이를 벌이면서 차가 상태가 안 좋다며 이러다가 퍼진다고 경고하는데, 만섭은 "에이 재수없는 소리!"하면서 기분 나쁜 척하면서 "3천원만 받아!"라고 돈을 쥐어주고 도망치는 기적의 에누리 기술을 보인다.[48] 이것이 복선이 되어 광주에서 만섭의 차가 고장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