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영화)
1. 개요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비극, 제2연평해전 실화를 바탕으로,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군인들의 굳건한 용기와 책임을 보여준 대한민국 해군의 젊은 참수리 357호정 승조원들의 이야기.
순화가 상당히 되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전쟁 영화인 만큼, 전투 장면에서 잔인한 표현이 많이 나오는 편이므로, '''피 튀기고 사지가 절단되는 장면'''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관람에 주의를 요한다. 실제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관람하다가 충격 먹고 나왔다는 관람객 들도 많다.[1] 등급판정이 더 높게 나오는 게 정상적일 만큼 표현을 강하게 했으나, 전쟁영화란 점에 더불어 연평해전을 주제로 한다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관람 가능 연령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2. 개봉 전 정보
- 영문 제목은 북방한계선을 뜻하는 'Northern Limit Line' 즉 NLL이다. 제작 초기에 붙여진 영화 가제는 NLL: 연평해전 이었다.
영화 개봉과 함께 연평해전이라는 제목으로 재 출간되었다.
- 원작자인 최순조는 김학순 감독과 함께 영화에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김학순 감독은 평양에서 대사 없이 잠깐 등장한 인민복 차림의 고위 관료, 최순조 작가는 조선인민군 해군 장령 역을 맡았다.
- 개봉 전 6월 1일, 시사회가 있었다. 왕십리 CGV에서는 언론시사회, 코엑스 메가박스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던 일반인들을 주 대상으로 한 시사회가 있었으며 코엑스 쪽은 20시경에 상영이 이루어졌다. 제작사 측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참가 대상 인원은 2천명으로, 나머지 참여자들은 예매권을 선택한 듯 하다. 상영관은 4관 + 다른 몇개 관(확인 불가능). 크라우드 펀딩 참여자 외에, 영화에 투자한 기업은행 쪽에서도 초대권을 돌려서 이쪽으로 참여한 인원도 상당수가 있다. 일반 상영이 아니고 펀딩에 참여한 이들만 참석하는 시사회였음에도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 다소 특이했다.
- 정식 개봉은 2015년 6월 10일이었으나 1일의 시사회 이후 5일에 갑자기 24일로 개봉이 연기되었다. 메르스 유행 등으로 나들이하는 사람들이 급감한 것, 강력한 경쟁자인 외화들의 개봉 탓인 듯 하다.
3. 예고편
예고편 후반부에 나오는 음악은 OST가 아니라 배틀필드1 싱글플레이 트레일러 음악 Really Slow Motion의 'Suns and Stars' 이다. 영화상엔 나오지 않고 예고편에서만 쓰였다.
일본판 타이틀은 '노던 리미트 라인 남북해전(ノーザン・リミット・ライン 南北海戦)'
4. 시놉시스
5. 등장인물
5.1. 주역
참수리 357호정
5.2. 참수리 357호정
참수리 357호정
갑판병. 이후 병장 만기전역 한다. 실제로는 권기형 수병이 박동혁 수병의 후임이었으나 영화에선 동기로 나오는데, 기수 차이도 별로 안 나고 금방 친해져서 동기처럼 말 놓고 지냈다고 한다. 영화 스탭롤에 첨부된 생존자 인터뷰에서도, 박동혁 수병을 "동혁이"라고 부른다. 영화 초반에 해군 고속정 승조원들의 생활상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수병을 괴롭히는 선임이다. 전라도 광주 출신 고아로 영화 속 주인공 비중을 차지한 박동혁 상병를 갈구는 모습만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비호감만 심어준다. 그래도 연평해전 당시에 나라를 지킨 참수리 357호정 해군들 중 한 분일텐데 마지막엔 갱생하고 좋게 끝나지 않을까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정작 전투가 일어나자 다른 대원들은 죽어라 싸우는데에 비해 본인 혼자만 숨어서 벌벌떨기만한 전형적인 소인배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가 박 의무병에게 뺨을 맞고 정신차려라고 일침을 받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싸우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무 활약이 없었다. 가상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지만, 리얼한 전라도 사투리 연기가 돋보였다.
357호정 승조원. 극 중 가공의 인물로 박동혁 - 조천형 하사 (김지훈 扮)
- 황도현 하사 (장준학 扮)
병기사, 21포 사수. 실제로는 22포 사수였으나 영화에서는 21포 사수로 등장하였다. 사후 1계급 특진하여 중사 진급 한다.
- 서후원 하사 (주희중 扮)
5.3. 그 외
한상국 상사의 부인. 실제 한 상사의 부인 김한나(개명 전 이름은 김종선.) 씨를 모티브로 한 가공의 인물. 영화에서는 사건이 발생한 날 오전에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나오던 중 텔레비전 뉴스 속보를 통해 이 사건을 접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한상국 상사와 김한나 씨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고 한다.
232 편대장. 당시 실제 232 편대장이었던 김찬 소령을 모티브로 한 가공의 인물.
- 이대준 소좌 (박정학 扮)
실제로 제1연평해전당시 갑판장 직책의 상위 계급이었으며, 김정일의 특별지시로 도발활동 이전 평양에서 김정일의 손에 진급함으로서 684의 함장으로 부임, 제2연평해전에서 황창규 중사의 포탄에 전사한 북한 해군의 등산곶 684호의 함장 김영식 대위를 모티브로 한 가공의 인물. 해당 인물의 실명을 거론하기에는 그의 세 딸들은 북한 로동당 등 온갖 부서의 협찬이 들어오는 명문 학교에 다니는데다가 김영식은 생전의 유능함과 자신의 해병들과 선후배 군관들 가리지 않고 강인하고 참되었던 자신의 직무를 군말없이 다해왔던 충성스러우며 강직한 인품으로서 이미 생전에도 말없이 인망이 높았던데다 공화국 영웅 칭호 중 상당히 높은 전사후 예우를 받는 군관이기에 함부로 거론했다간 북한 정부 측 대남공작부서들의 움직임 위험 등도 있어 픽션을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5.4. 특별 출연
[8] 를 모티브로 한 가공의 인물.
참수리 358호정 정장. 당시 실제 358호정 정장이었던 최영순 대위 윤영하의 수병의 어머니. 극중에서는 1급 청각장애인으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 박 수병의 모친 이경진 씨를 모티브로 한 가공의 인물. 다만 이경진 씨는 실제로는 청각장애인이 아니다. 당시 영화 제작진이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말 못할 슬픔" 을 실체화 하기 위해 극중 박 수병의 모친을 청각장애인으로 설정한 것. 당연히 영화 제작진 측은 박 수병의 모친께 이러한 설정에 대해 동의를 구했으며, 이경진 씨는 이에 동의하셔서 이런 설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박동혁 6. 평가
'''흥행은 성공, 하지만 싸늘한 평가'''[9]
주목도나 흥행에 비해 평론들이 정말 적었다. 이에 대하여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 때문에 평론을 했다가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기피한다는 주장이 있다. 연평해전 영화의 낮은 완성도를 지적하며 낮은 평점을 내릴 경우 영화가 개봉될 당시 사회 전반에 조성된 연평해전 용사들에 대한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 되기에 영화에 대한 평론을 자제하는 것이 당시의 추세였고, 이런 무형의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외신들로부터는 혹독한 비평을 받으며 디 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낮은 평점을 받는 굴욕을 겪었다.
다만 이 주장에는 변호인, 26년, 남영동1985, '''천안함 프로젝트''', '''다이빙벨''' 등 연평해전 못지않게 정치성 논란이 심했거나 더했던 영화들에는 평론이 많은 것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국제시장을 두고 일어난 갑론을박을 생각한다면 위의 설명이 타당하다. 당시 허지웅은 그가 한 국제시장에 대한 신랄한 악평으로 한 동안 그는 종편 시사코너에서 까임의 대상이 되었고, 모 사이트의 집단 사이버 린치를 당해야 했다. 그러한 일련의 사건 직후라서 평론가 사이에서 정치적 논란이 될 법한 평을 기피하게 했다고 설명 할 수있다.
개봉전 시사회 이후 씨네21에선 '해군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피상적인 면에 그친 편'으로 평작으로 평가했다.
이동진은 평점을 10점 만점 중 4점을 주면서[10] 영화가 클리셰 투성이인 점과 전투장면의 낮은 연출 수준, 너무 평면적인 인물묘사, 불필요한 인물의 추가 등을 비판했다.# 그리고 이후 4점에서 3점으로 하향조정하며 확인사살을 했다.(...) 2020년 기준, 이동진은 이 영화에 별 두 개를 주었다. 영화잡지 시네21의 송경원 평론가는 "만들어진 애국, 빗나간 눈물. 앙상하고 엉성하다."라는 평과 함께 별 다섯개 중 두 개를 주었고, 김현수 평론가는 130분 과정 예비군 안보교육이라는 평과 함께 별 다섯개 중 두개 반을 주었다.#
외신의 평가는 더욱 혹독해서 뉴욕타임즈는 연평해전이 이야기 전개방식이나 캐릭터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낮은 완성도로 밀덕들의 인내심을 자극한다고 비판했으며, 애국심에의 호소는 자국에서나 통하지 이런 미숙한 영화로는 외국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평하였다. 애국을 외치며 건배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계속 하다보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버린다고 조롱하며 100점 만점에 30점을 부여하였다.# LA타임즈 역시 극 인물들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들어간 장면들은 지루한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마치 국가추도행사에 멀뚱히 서있는 불청객이 된 기분이 들게한다며 비판하였다. LA타임즈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40점.# '트위치필름'의 피어스 콘란은 연평해전 영화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략이 한국영화시장엔 먹혀들어서 평론가들로부터는 까방권을 획득했을지 모르나, 이런 한국의 국가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엉성한 편집, 지루한 이야기 전개와 실망스런 전투씬에 대해 비판하였다.# 현재 메타크리틱 점수는 35점을 기록하고 있다.#[11] 필름 저널 인터내셔날의 데이비드 노 기자 등 일부 호평한 이들도 있다.## 전반적으로 기술적인 문제나 스토리 전개 방식 등에 대한 지적과 낮은 완성도, 애국주의에 지나치게 호소하는 방식이 영화의 문제점으로 거론되었다. 해군 지원으로 영화가 약간 국방부 홍보물 냄새도 나고, 연출이나 내러티브에서 올드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한국적 정서[12] 를 기준으로 짜여진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해 들을 필요가 있다.[13] 미국에서 연평해전은 소규모 상영관에서 제한상영을 하였다.
평론가 외에도, 작중에도 등장하는 해전 당시 준장 계급으로 777사령부예하 모 부대 지휘관을 맡았던 퇴역 육군 소장 한철용 장군이 북한의 사전 도발 징후를 포착했으나, 김대중정권 당시 상부에서 이를 묵살해 억울한 죽음을 유발한 점을 묘사하지 못했다며 영화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 했다.#
대중의 평가는 개봉당시에는 호평이 다수였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연평해전이 막을 내리고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해진 현재의 시점에선 완성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포털사이트의 평점을 대중들의 평가와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당장, 완성도가 낮다고 비판받고 있는 영화 귀향만 하더라도 네티즌 평가가 9.2점, 관람객 평가가 9.4점이란 고득점이 나오고 있지만, 이것은 영화에서 다룬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객들의 공감대가 점수로 반영된 것이지, 영화의 완성도가 높다고 그런 높은 점수를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평해전 영화 역시 개봉당시에는 연평해전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을 실제 연평해전 사건에 대한 비판과 동일시하는 소수의 극성네티즌들 때문에 영화에 대한 비판이 거의 금시시되는 분위기였으며, 이 영화에 고득점을 준 관객들의 의견은 영화의 완성도에 고득점을 줬다기 보다는 실제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보는 것이 옳다. 다만 평론의 경우 정치적 성향이 진보에 속하는 평론가가 절대다수인만큼, 관람각 평점과 함께 고려해서 보아야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해외 평론가들로부터도 하나같이 조롱이나 다름없는 악평을 받았기에 진보, 보수를 떠나 연평해전은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아닌 것으로 봐야한다.
사이트 성향에 따라 평점 차이가 있다. 네이버는 네티즌 평균 평점이 9.08점, 다음은 6.5점이다.
6.1. 상세평
해군 장병들의 일상을 다룬 전반부와 교전을 다룬 후반부로 나뉘는데 예산 탓인지 둘의 퀄리티 차이가 굉장히 큰 편이다. 일상 쪽은 구성 자체가 좀 어수선하고 고증도 좀 문제가 있지만, 후반부 전투 장면은 박진감과 처절함을 제법 잘 살렸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공군을 다룬 R2B: 리턴 투 베이스가 신파, 러브라인을 첨가했다 산으로 가버린 것과 달리 철저히 해군의 현실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전쟁을 다룬 포화속으로나 고지전처럼 순국선열들을 모독하는 사실 왜곡 없이[14] 최소한의 각색[15] 만을 거쳐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점, 실제 전투 시간과 똑같이 30분으로 맞춘 전투 장면에서 자랑스런 승전보다는 처철함에 포인트를 맞춘 점, 월드컵이란 큰 축제로 인해 잊힌 전투를 묘사했지만 월드컵이나 월드컵에만 열광하는 국민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대신 357 승조원들에게도 월드컵은 큰 위안이자 기쁨이었으며 고달픈 군 생활을 이겨내는 힘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해[16]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자는 취지에 충실한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소위 똥군기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들어간 장면들도 나오는데, 군의 전폭적인 협조하에 제작된 작품에서 이를 다룰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시대가 변했음을 반영하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하는 의견들이 있다. 다만 똥군기를 행하는 수병 자체가 가상 인물이고, 보통 짬 좀 차고 발령오는 의무병[17] 한테 할 행동도 아니기에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도 있으나 인간성이 나쁘기만 하면 하기는 해서 큰 의미는 없다. 인원이 적고 업무는 힘든 참수리는 다른 보다 큰 배라면 걸리면 뒤집어질, 출항 중 당직자 외 총원 낮잠(!)같은 것도 가능할 만큼 내부군기는 중대형함보다 널널한 경우가 많다. 특히나 의무병은 참수리에서 유일한 구호인력이기에(의무장이 타면 의무병이 없고, 반대로 의무병이 타면 의무장이 없다.) 상병 짬이면 어지간한 돌아이가 아닌 이상 터치를 잘 안하는 편이다. 이는 그냥 이용세 병장이 똘아이였거나, 전임 의무병 혹은 육상 의무대 등에서 뭔가 의무병과의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의무병에게만 의도적으로 독을 피우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작중에서 박동혁 수병의 동기인 권기형 수병과는 서로 안고 부대끼며 잘만 지내며, 박동혁 수병 외 다른 수병들에게 독피우는 장면도 안 나온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교전이 벌어지고 박동혁 수병이 자기 몸 돌보지 않고 뛰어다닐 때 평소 그를 마마보이라며 갈구던 이 수병은 안전한 격실에 숨어 덜덜 떨기만 한다는 점과 박동혁 수병의 수정펀치를 맞고도 끝까지 정신 못 차린다는 점이다. 군이 지원한 영화, 그것도 연평해전이란 해군에겐 엄청난 무게감을 지닌 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이런 비겁자 캐릭터가 나왔다는 점에서 연평해전 참전 용사들을 추모와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에 굳이 왜 나라를 지킨 연평해전 해병들 중에 부정적인 인물이 있냐 라는 비판이 있다. 이 수병 역을 맡은 배우 한성용은 욕 먹는데 기분은 좋다 다소 엄하고 웃기게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했는데, 이 인터뷰에 따르면 시간 관계상 삭제되어 영상에 나오지 못한 설정으로 이 수병이 어머니가 없이 자란 탓에 어머니에 대한 애정 표현을 서스럼없이 하는 박동혁 수병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18]
박동혁 수병의 사망 장면 뒤의 마지막 장면이 특히 호평을 받았는데, 만약 교전이 없었다면 357 승조원들의 그 날 밤은 어땠을까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축구 경기를 즐기며 대표팀을 응원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눈물을 선사했다. 특히 부임 직후부터 깐깐한 지휘관에서 점차 관대한 면이 늘어나던 윤영하 소령이, 마지막엔 얼굴에 태극기까지 그려넣고 승조원들과 함께 축구를 보러 나타나는 모습이 압권이며 박동혁 수병을 항상 괴롭히던 이 수병이 박동혁 수병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까지 나온다.
영화 중간에, 승조원들이 구보를 하던 중 마주친 역시 구보 중인 SSU 대원들 중 한 명이 한상국 하사와 친밀하게 인사를 나누는 부분이 있는데, 동기 내지는 친한 사이 등으로 설정되어 있는 대원으로 영화 마지막 무렵 침몰한 357호정의 조타실에서 한상국 하사의 시신을 수습한 SSU 대원이 그이다. 3D 버전에선 이 SSU 대원이 잠수 후 한상국 하사가 타륜을 붙잡고 있어서 침몰한 고속정의 위치가 바로 잡혀 있다, 이제 가자 같은 대사를 하며 끌어올리는데, 편집 실수인지 2D 버전에선 이 대목에서 아무 대사도 나오지 않는다. 다운로드 판에서는 대사가 제대로 나온다.
악역으로 나오는 인민군 해군의 해병들과 군관들도 물론 분노를 자아내는 도발에 참여한 악역들이긴 하지만, 기존의 군에서 지원해 준 영화에서 나오는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극도로 잔인하고 비열하여 사람 같지도 않아 죽어 마땅한 호전적 순수악으로서의 악역들과는 거리를 두는,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된 편이다. 684의 승조원 해병들은 살인을 즐기고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는 모습보다는, 같이 총탄이나 파편에 맞고 불에 타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이를 피해 엄폐물에 숨어 비명을 질러대는 등 적군이지만 참수리 357의 승조원들처럼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민족이자 동병상련의 인간임을 잊지 않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편이다.
전투가 끝나고 퇴각할 무렵, 시체와 부상자 투성이가 된 684호의 갑판을 한 번 훑고 지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꼴좋다기보다는 쟤들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한 광경을 연출해 놨다. 그래도 국군과는 달리 신체 훼손 장면이 없다시피 해서 국군만큼 불쌍하진 않다는 게 함정이었으나,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 해병들, 총탄에 몸이 걸레짝이 된 채 전신에 피칠갑을 한 해병들, 포탑에서 방아쇠를 놓지 않은 채로 조천형 중사보다도 더한 몰골으로 처참하게 전신이 피투성이와 화상투성이가 된 채로 힘없이 널브러진 채 처절한 표정으로 죽어 있는 해병들까지. 전투가 끝날 때쯤, 북한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만 아니라면 전투가 끝나고 초토화된 두 함정들을 나란히 보여줄 때 "전쟁이란 게 폐허밖에 안 남기는 저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정도. 684의 함장을 연기한 박정학의 인터뷰에 따르면, 시간 관계상 삭제되었지만 684가 출동하기 전 함장이 부하 해병[19] 들에게 고기국을 배식하며 많이 먹으라며 격려하는 등, 보다 인민군 해군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장면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스탭롤에서 북한라면병사, 북한군흉터같은 배역들이 나오는데, 아마 삭제 장면들에 포함된 배역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였던 것 같다. 시간상 반영은 되지 못했지만, 역시 북한의 조선인민군을 그냥 닥치고 악질로만 묘사하던 군의 지원을 받은 기존 영화들과는 차별화를 많이 꾀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민족의 동병상련으로서, '''한 쪽은 정부와 상부의 정치적 실책으로, 한 쪽은 김정일 수뇌부의 복수심과 권력 유지를 탐하면서도 두 얼굴으로 남한을 대하는 사업적 욕망의 희생양이 되어 최전선으로 명령 하에 내몰려져야만 했던 어린 684와 해상저격여단의 해병들과 젊고 유능한 군관들[20] 이었단 점을 미루어본다면, 피투성이가 된 채 처참히 물들어버리고 만 남북의 갑판이 스쳐지나가며 비춰질 때 분단과 전쟁이 겹쳐오며 정치적 욕망이 만들어내고 만 최악의 민족의 비극'''으로서의 묘사 또한 상당히 잘 되어 있어 선전물이자 실화기반 전쟁 영화로서의 픽션요소 중 상당히 혁신적이고 감성적인 요소로서의 삽입이 상당히 잘 되어 정치적 올바름 강조 등의 이슈는 적거나 전무했던 편. 이런 요소가 있음에도 다소 불필요한 시나리오적 각색과 품질이 준수한 외형만 생각한 엉성한 장비고증이 결국 뒷발목을 잡아버렸다. 더해서 김정일과 3호청사 직원들과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 연락군관들, 김윤심 전 조선인민군 해군사령관에 대한 캐스팅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기에 빌런으로서의 묘사를 684 해병들과 군관들에게 몰아줬다는 느낌이 강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느껴진단 것.
7. 흥행
개봉 당일인 6월 2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예매율 26.9%(47,769명)로 전체 예매율 1위를 기록했고, 개봉 당일 관람객 누적수는 총 153,380명으로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네이버와 다음에서도 예매 1순위에 올랐다. 개봉일 15만 명이라는 성적은 한국 영화의 경우 거의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긴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봉 자체가 의문시되던 과거의 우려는 싹 잠재워버린 수준이다. 다음날인 25일에는 당일 관객수가 170,116명으로 전날보다 10% 증가하는 등 호조를 보이고 있다. 참고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240만 명이다.
25일에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의원회관에서 그간 영화 제작에 큰 기여를 했던 이병석, 신기남 두 의원의 주최로 상영회를 가졌다. 영화 후원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새누리당 뿐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도 참석했다.
2~3일차까지 박스 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27일 토요일에는 주말 버프에 힘입어 전일 대비 관객 수 90% 증가, 총 누적 관객수 994,118명을 기록해 100만 명에 근접했다. 28일 아침 7시에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배급사가 발표했다.# 그리고 개봉 첫 주에 143만 1097명을 동원하며 누적 관객수가 143만 1,097명이 되었다. 또 누적 매출액은 111억 1498만 2159원으로, 2주 연속 박스오피스를 차지했던 쥬라기 월드를 꺾고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다.
제2연평해전 13주기인 29일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일 관객 수 218,358명을 기록, 누적 관객 수는 손익분기점인 관객 수까지 불과 약 75만 명을 남겨 둔 1,656,701명을 기록했다. 7월 1일에는 드디어 관객 수 2,000,000명을 돌파했는데, 이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국제시장이 2백만 관객 누적 수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기간과 동일하다. 두 영화와 달리, 성수기도 아닌 6월 말 경에 개봉한데다, 보통 개봉한 주보다는 관객 수가 줄어드는 편인 2주차에 되려 관객 수가 상승하는 등 이례적인 성공을 보여, 주연 배우 진구와 이현우가 감사 인사를 표하기도 했다.#
7월 2일에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개봉과 동시에 당일 관객 수 1위를 기록하여 2위로 내려갔으나, 165,724명이 관람해 누적 수가 손익분기점까지 불과 약 17만명 가량만 남겨 둔 2,234,092명을 달성했다. 누적 매출액만으로는 16,937,157,259원을 달성, 손익분기점으로 언급되는 제작비의 2배를 이미 돌파했다. 7월 3일에는 당일 관객 수 2위를 유지한 채 누적 관객 수 2,462,571명을 기록해, 마침내 관객 수로도 손익분기점을 넘어 흥행에 성공했다.
7월 5일 누적 관객 3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이에 또 다시 주연 배우 3인과 이청아, 천민희, 김동희가 손글씨 인증샷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개봉 2주차에는 전국 913개관에서 2만 9088회 상영되었는데, 주말에는 비록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에 밀려있는 상태지만, 평일 기록까지 합산한 주간 박스오피스에선 2주 연속 1위를 지켰다. 2주차까지 323만 2516명의 관객을 불러모았으며 누적 매출액은 246억 9578만 1490원이다.
7월 6일에는 누적 관객수 350만을 돌파함과 동시에,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밀어내고 다시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했다.# 7월 8일까지 이 순위는 유지되고 있다. 한 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내줬던 200여 상영관 중 절반인 100관 가량이 다시 연평해전에 할당되었다.
7월 9일에는 손님이 개봉과 동시에 치고 올라오며 당일 관객수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다시 2위로 순위가 내려갔다. 상영관 역시 250관 정도 줄어들었으며, 경쟁작이었던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와 비슷한 일일 성적을 거뒀다. 또한, 총 누적 관객수 3,823,442명을 달성하여 한국 영화 누적 관객수 순위 100위를 달성했다. 다음날인 7월 10일에는 손님이 3위로 내려가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와 함께 1계단씩 상승해 각각 1/2위를 재탈환했고, 누적 관객수가 4백만에 가까운 3,987,771명에 이르렀으며, 한국 영화 누적 관객수 순위 98위로 올라갔다.
7월 11일에는 누적 관객수가 4,349,925명에 이르러, '''올해 개봉 한국 영화 중 최초로 누적 관객 수 400만명을 돌파'''했으며, 한국 영화 누적 관객수 순위 역시 92위로 상승했다.
7월 12일에는 누적 관객수를 450만명을 달성(총 누적수는 4,694,953명)하였으며, 누적 관객수 순위도 76위로 급등했다.
개봉 3주차에는 전국 907개관에서 2만 6119회 상영되었으며 146만 353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누적 관객 수가 469만 6013명이 되었고, 누적 매출액은 355억 9460만 4085원이 되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게서 다시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한 것은 물론이고 《인사이드 아웃》과 같은 평단과 관객들의 극찬을 받은 쟁쟁한 경쟁작들 역시 물리치며 2015년 들어 계속된 침체기에 빠진 한국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가 되었다. 7월 14일에는 일일 관객수 순위를 인사이드 아웃에 1위를 내주고 2위로 내려갔으나, 누적 관객수 4,876,575명을 기록하고 한국 영화 누적 관객수 순위를 60위로 올렸다.
7월 16일에는 '''2015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최초로 누적 관객수 500만명을 돌파'''(총 누적수는 5,054,070명)하였으며, 누적 관객수 순위도 57위, 역대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38위를 달성했다. 이에 주연 배우 김무열과 이현우가 동영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이에 대해 영화 시장 분석가 김형호가 "영화의 만듦새가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할 단계를 넘어섰다는 뜻, 이제 흥행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영화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7월 19일에 누적 관객수 550만명(총 누적수 5,585,000명)을 돌파하였다. 누적 관객수 순위는 44위, 역대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는 30위를 달성. 비록 인사이드 아웃에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주었으나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계속 해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개봉 4주차에는 전국 747개관에서 2만 2,330회 상영되어 88만 9,083명을 불러모아 누적 관객수가 558만 5,000명이 되었다. 또 66억 6,800만 9,245원을 벌어서 4주차까지 누적 매출액 422억 6,194만 3,330원을 기록했다.
7월 21일에 570만명(총 누적수 5,715,201명)을 돌파하며 누적 관객수 순위는 42위,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는 28위로 올라갔다.
개봉 5주차에는 누적 관객수가 590만명(총 관객수 5,930,925명)이 되면서 ''2015년 개봉 한국 영화 중 최초로 600만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전국 448개관에서 4142회 상영되어 전주보다 71.9% 하락한 14만 9401명을 불러모았고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 그리고 5주차에 11억 4680만 2900원을 벌어 총 누적 매출액이 447억 9922만 9330원이 됐다. 현재까지의 스코어로 누적 관객수 순위 40위를 기록하고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는 28위를 유지하고 있다.
마침내 7월 29일, 누적 관객수 6,005,980명을 달성해 '''2015년 개봉 한국 영화 최초로 600만 돌파에 성공'''했다. 배급사는 이를 기념해 관객 손글씨와 제작진이 관객에게 전하는 감사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공개했다. 또한, 600만 돌파를 기념하여 도내 극장이 없어 영화를 보기 위해선 육지로 가야 하는 연평도 주민들과 해병대 연평부대 장병들을 위해 현지에서 29일 총 3차례 나누어 연평해전을 특별 상영하기도 했다.#
개봉 6주차에는 여러 신작들의 개봉에도 불구하고 전주보다 3단계 하락한 주간 박스오피스 6위를 차지하며 뒷심을 발휘했다. 이젠 힘이 많이 빠진 상태이지만 후에 개봉한 《픽셀》마저 꺾었다. 6주차에는 전국 444개관에서 4177회 상영되었으며 전주보다 72.8% 하락한 9만 3,981명의 관객을 불러모아 누적 관객수가 602만 4,892명이 되었다. 또 6주차에는 6억 4995만 4,800원을 벌어서 누적 매출액이 454억 4,907만 2,130원이 되었다.
배급사 N.E.W.는 7월 8일부터 15일까지, 참수리 357호정에서 따온 357만명 관객 동원 기념으로 20자평 이벤트를 실시하기로 했다. 당첨자 20명에게 배우의 친필 사인이 담긴 포스터와 손수건 증정, 동반 1인 포함해 오는 18일 평택 해군 2함대에서 제2연평해전 전적비 참배, 참수리 357호정 견학, 6용사 유도탄 고속함 승조, 영화 속 꽃게라면 취식 등의 기회가 제공된다. 실제 이벤트에는 당첨자 20명과 동반자 1명 총 21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배급사는 7월 16일부터 오세아니아, 17일부터 북아메리카 지역을 시작으로 해외 개봉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7월 17일에 뉴욕, 뉴저지에서의 개봉이 확정되었다. 미국 개봉 타이틀은 영제인 Northern Limit Line 그대로다.
미국 개봉 첫주에 총 10만 8,225달러를 벌어들이며 '''2015년 북미 개봉 영화 오프닝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8월 10일 현재 6,037,434명으로 역대 4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극장 상영이 끝난 뒤 최종 누적 관객 수는 6,040,137명, 2015년 8월 말 기준 역대 42위이다.
7월 2일 기준으로, 관객들 중 연령별로는 20대가 52%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고, 30대가 22%, 40대가 15%, 그다음은 50대, 10대, 60대 순이다. 현 20~30대가 해전 당시 월드컵 응원에 열광적이었던 10~20대들이 다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있는 비율이라는 평이다.
해군은 개봉 첫 주에 가급적 많은 해군 장병이 연평해전을 관람할 수 있도록 전투휴무일 지정 및 부대 내 상영을 실시했다.
현재 네이버 N스토어에서 합법적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판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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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9일에 DVD가 출시되었다. 감독판이 수록된 2장의 디스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2월 말 알라딘에서 일시 품절되는 등 꽤 많이 팔린 듯하다.
8. 탐구
8.1. 제작 과정
보통 상업영화의 경우 배급사를 통해 안정적인 제작비를 투자받는게 일반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자의 입김이 작용할 수 밖에 없는 상업영화 세계에서 자칫 민감한 정치적 소재가 될 수 있는 이번 영화같은 주제는 충분히 배급사의 입장에 따라 원래 의도했던 각본과 기획의도가 틀어지게 될 위험성이 높은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이 영화는 해군 등의 제작 요청 즉 외주에 따른 것이 아닌, 김학순 감독 개인이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을 추모할 영화를 제작해야겠다는 동기를 가지고 직접 추진하기 시작한 것[21] 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원래 이 영화는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사로 확정된 상태였지만 알 수 없는 이유[22] 촬영개시를 임박한 시점에서 제작에서 발을 뺐다. 덕분에 김학순 감독이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잡아 대출을 받는 등 사비를 털어 보태고 일부 영화 제작 취지에 공감한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재능기부를 받는 등 충분한 제작비를 충당할 길이 없어진 제작진에게는 소규모 투자인 크라우드 펀딩의 자금력 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심각했냐면 진기사에서 촬영하던 배우들은 예산이 부족해 모든 식사를 병영식당에서 현역들과 같이 해결했으며 촬영 현장 인원이 너무 부족하여 주기적으로 현역 장병들의 지원을 받아서 여러 촬영들을 해낼수 있었다.
크라우드 펀딩은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졌는데, 고정된 액수별로 투자를 할 수 있었고 액수별 리워드는 다음과 같았다.
- 5,000원: 영화 제작 진행상황을 이메일로 제공
- 20,000원: 상동 및 시사회 초대권 2매 혹은 영화 예매권[23] 2매 중 택1
- 50,000원: 상동 및 영화 DVD 1개[24]
- 100,000원: 상동 및 작가 친필 사인 소설 연평해전 1권
- 300,000원: 상동 및 감독 친필 사인 한정판 포스터 1장
- 1,000,000원: 상동 및 제작진 초청 감사모임 초대권 2매
스튜디오 촬영이 가능해진 만큼, 해전 장면 역시 일단 스튜디오에서 녹색 가림막을 배경으로 한 세트를 만들어 촬영하고, 해상에서 함정들을 기동시킨 뒤 이를 합성하는 식으로 만들어 보다 실감나는 연출이 가능해졌다.관련영상
정리하자면 CJ E&M Pictures이 도중에 빠지면서 영화 자체가 못 나올 위기에 놓였는데,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가 이를 대신하여 동참한 덕분에 겨우 제작될 수 있었던 셈이다. 영화에 대한 정치 및 이념적 잣대, 편가르기식 평가의 공허함을 다시금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 중 26년(영화)에서 곽진배 역을 맡았던 진구, 화려한 휴가에서 김 신부[27] 역을 맡았던 송재호 등 소위 진보 성향의 영화에 비중있는 역으로 출연했던 이들이 많았다는 점 역시 이를 방증한다. 애초에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싸운 군인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은 진영논리를 떠나서 해야하는 당연한 일이다.
영화 개봉까지 7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는데, 새정치민주연합 신기남 의원[28] 과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 두 사람의 영향이 컸다. 이 두 국회의원은 오랜 기간 제2연평해전 전사상자 후원회로 유가족들과 인연을 맺었다. 연평해전이 잊혀져갈 때에도 끊임 없이 관심을 독려해오고 크라우드 펀딩을 제안하고 진행했을 정도로, 영화 연평해전 제작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두 정당의 성향 차이를 생각하면 의미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들, 특히 이전 정권부터 제작되어 왔다는 점과 해군 외엔 정부 지원이 적었던 점, 제작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이가 민주당 인사라는 점, CJ가 아닌 NEW가 배급사라는 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논란이 된 비슷한 부류의 영화들과 달리 논란에서 좀 자유롭게 되는 반사이익(?)을 얻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시민들의 크라우드 펀딩 모금액이 제작비의 다수를 차지한다.
8.2. 해군의 제작 지원
R2B: 리턴 투 베이스가 공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면, 이번 영화는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된다. R2B는 철저한 상업영화로서 공군 입장에서는 홍보에 기대를 걸고 지원을 해줬다면, [29]
제작 초기부터 해군측에서는 촬영장소에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참수리급 고속정[30] 과 진해기지사령부 부지[31] 등을 촬영용으로 지원해주고, 그 외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 제작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DVD 코멘터리에 따르면 어느 정도로 촬영협조가 이루어졌냐 하면, 소품으로 사용한 윤영하와 최윤정의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사진'''을 실제 해군사관학교에서 촬영하는걸 허용해주었다. 다른 영화라면 이 정도면 그냥 배경 합성한다.
공군 또한 스폰서로 들어가 있는데, 영화 말미에 잠깐 등장하는 전투기들의 출격 장면에 쓰인 영상과, 영화 초반부의 부상당한 357호정 승조원들을 연평도의 패드장에서 국군수도병원까지 이송하는 HH-60P 탐색구조용 헬리콥터 2대가 등장한다. 해군도 UH-60P를 운용하나 영화에선 공군 헬기가 나왔다.
8.3. 고증
- 복장 고증은 해군에서 직접 나서서 자문한 결과 전반적으로 완벽하나, 일부 홍보성 내지는 예산 문제인지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있다. 승조원들이 당시엔 보급되지 않았던 신형 방탄모를 쓰고 있는 점이 지적되었는데, 제2연평해전 직전 MBC 뉴스데스크에 나온 2함대 고속정 대원들의 전투 배치 모습을 통해 구형 '화이바' 재질의 고속정용 돔형 방탄모를 쓰고 있는 모습이 확인되었다.[32] 10여 년이 지난 시점이긴 하나, 구형 고속정 방탄모들이 일부 치장 물자로 남아 있는 등 구하기에 어려움이 없음에도 신형을 쓴 이유는 불명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나 당시 복장 고증에 가장 가까운 복장을 한 사람은 극중 등장한 전화수뿐이다(...). 의무병이 흰색 안전모가 아니라 다른 승조원들과 같은 방탄모를 쓴 것도 고증 오류라는 지적이 있었으나, 이는 당시 357호정에선 그랬다는 357호정 출신 참전용사의 증언이 있었으므로 이 부분은 해결되었다. 당시 승조원들의 구명조끼 뒤에 '참 357'이라는 문구와 그 밑에 승조원 넘버가 적혀 있었으나[33] 그것 대신 큼직한 참수리 마크를 넣은 것도 오류 중 하나인데, 현용 구명조끼가 아닌 자체제작 구명조끼를 그대로 써서 그런 듯하다. 또 당시엔 부력방탄복이 없어 방탄복 보관함이 있었음에도 방탄복을 입는 연출이 아예 없었는데, 제1연평해전 기준으로 이 둘을 같이 입는 것이 불가능해 둘 중 하나만을 착용했다는 증언이 있는 바 제2연평해전 때도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었으나, 연평해전 개봉 후 최근에 실시한 이희완 소령의 강의 영상에서의 증언과 참수리 357호정 훈련영상에서 본 것처럼 방탄복을 입고 구명조끼를 덧입고 있었음이 확정되어 결국 고증 오류로 판명되었다. 해군 측에서 보안문제로 군수물자창고를 개방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으로 상당히 답답한 부분.
- 개인 피복류의 경우, 전반적으로 고속정 대원들이 정복을 너무 많이 입는 것이 지적되었는데, 해군의 홍보물 역할도 어느 정도 해야 하는 탓에 일종의 가오잡이(?) 용으로 착용 장면을 늘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 물론, 사정에 따라서 얼마든지 평균보다 자주 정복을 입을 수도 있긴 하므로,[34] 아주 말이 안 되는 부분은 아니다. 작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고속정복은 기성품이 아니라 새로 맞춘 것들인데, 배우들을 돋보이게 하려는 측면과 더불어 현용 고속정복과 당시의 고속정복 재질이 차이가 나는 점도 반영한 것이다. 단, 조타장 한상국 하사가 부사관 하정복을 입고 위관급 장교용 정모를 든 사진이 개봉 전에 공개되어 한 소리 들었는데, 사진도 곧 수정되었고 영화에서도 편집하며 지웠는지 해당 구도의 장면이 등장하지 않았다. 2002년 당시에 입던 흰색 해군 하체육복이나 구형의 좀 어두운 색상의 얼룩무늬 전투복이 나오는 등 국산 영화치곤 세세한 복장 고증 부분에서 신경 많이 쓴 티가 나는 편이다. 샘브레이가 2002년 당시에 쓰이던, 앞가리개가 달리고 맨 위 단추가 없는 구형이 아니라 현용 일반 셔츠형이 등장하는 고증 오류가 있는데, 예산 등의 이유로 이는 반영하지 못한 듯하며, 대신 샘브레이를 입은 수병들을 최대한 멀리서 잡거나 뒷모습만 찍는 등으로 이를 커버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35] 또한, 영화 초반 군항을 항공 촬영한 장면에서 살짝 지나치는 유조차 옆에 있던 인원 한 명이 신형 화강암 무늬 디지털 전투복을 입고 있는데, 일부러 넣은 것은 아니고 촬영 당시 유류 작업을 병행하다 찍히면서 여러 사정으로 편집을 못 하고 그냥 넣은 부분으로 보인다. 또한 해당 유조차의 번호판을 살펴보면 진해에 위치한 모 군수부대 소속 차량인데 해당 부대 역시 재진지역 유류 수송을 담당함으로 영화의 배경인 2함대와는 맞지 않다.
- 교전 중 비상 대응을 위해 공군 전투기들이 출격하는 장면에서 F-15K가 등장하는데, 교전 당시인 2002년에는 공군에 아직 F-15가 배치되어 있지 않았고 연평해전 당시 비상 대기하던 전투기는 F-4와 F-5였다.[36] 제작진이 고증에 최대한 신경을 썼다고 감안해볼 때, 이는 일반인들도 관람한다는 걸 생각한 공군의 의중이라고 할 수 있다.[37]
- 당시 참수리급 고속정에는 소병기 조작인원 전용 방탄판과 노천상태의 함교에 용접되어 추가 증설 장갑판[38] 과 플레어/채프 발사대가 없었고, 현문용 연설대도 당시는 갈색이었으며,[39] 전체적으로 회색 컬러이자 또 흰색 '대한민국해군' 글귀가 푸른 바탕에 새겨져 있는 영화 속 연설대와 달리 평평한 갈색 민바탕에 '대한민국해군' 이라는 검은 글씨가 위에 새겨져 있었고, 참수리 마크 대신 편대 마크가 연설대 중앙에 붙어 있었으며 연설대 옆엔 구형 방탄헬멧을 쌓아두는 죽부인 형태의 보관함이 있었다. 폭뢰 투사레일 자체도 YUB(항만 경비정)의 눕혀진 형태의 소형 레일과 동일했다. 또 M60 포방패에 적힌 문구는 고증은 맞으나 안전문구, 해군의 다짐 문구가 생략된 것과, 61포와 62포 글귀 밑에 적혀 있었던 당시의 일발필중 문구와는 달리, 글씨를 따로 떼어서 둔 것도 약간의 오류이다. 현용 참수리를 빌려 사용하는 와중에 영화 찍겠다고 그걸 다 뜯어낼 순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일일이 CG처리할수도 없어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 촬영이 병행되면서 세트장을 고증에 맞게 개장 이전의 고속정의 모습으로 꾸밀 수도 있었으나, 이러면 실제 고속정에서 촬영한 영상들과 조합하면 같은 배인데도 모양이 들쭉날쭉해지게 된다. 대신, 기관총의 경우 제2연평해전 이후 증설된 K-6 중기관총을 철거하고 당시에 쓰던 M60 경기관총을 거치하여 고증을 맞추었다. 거치대 갑판 바닥에 60이라고 도색되어 있던 것도 재현했다. 작중 윤영하 대위가 공작원들에게 겨누는 권총이 K5 권총인 것도 고증 오류라는 지적이 있다.이는 당시 357호정에선 보급된 지휘관용 권총 3자루 전부 M1911A1 45구경 반자동 권총 3자루였을 텐데, 1989년 생산된 것이라 해도 M1911 계열 개량형들이 주류인 당시 해군 함정에도 K5가 있다는 것 자체가 고증 오류이다. 왜 육상 병기고에 흔함에도 굳이 해군에선 함정이나 특수전 등 일부에만 있어 보기 더 어렵고 힘든 K5를 가져온 것인지 당최 납득이 안 간다는 의견이 많다.[40] 신형 헬멧이랑 참수리 마크, 연설대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는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그리고 영화 도중 배경에 윤영하급 고속함이 나오는 점 또한 상당히 의아하다.
- 박동혁 수병이 물에서 건져진 김태중 수병에게 CPR을 하는 장면에서 제일 먼저 가습압박을 하는데, 2002년에는 기도확보, 인공호흡 2번, 가슴 압박 30번 순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가, 2007년에 기도 확보, 가슴 압박 30번, 인공호흡 2번으로 바뀌었다. 고증 오류라기보다는, 작중에서 FM대로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는다.
- 전투 장면에서도 고증 문제는 있다. 전투 초반 사격 명령 정도만 내리고 전사한 윤영하 대위가 한동안 지휘를 계속한다든가, 해군 PCC가 전투에 참여해 358 대신 대미지를 입힌다든가 하는 부분이다. 일단 윤영하 대위의 사망 장면은 실제 사건처럼 정장이 즉사하는 걸로 묘사할 경우 박진감이 떨어지기에 어느 각색을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41] 서구권의 실화를 극화한 작품들(론 서바이버, 아메리칸 스나이퍼 등)과 마찬가지로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참수리 357호정의 발칸포들 역시 초반이 아닌 중반즈음에 무력화된 것을 그대로 시간에 맞춰 재현했다. 또한, 위의 발칸 문제는 수동으로 전환하여 모든 포탄을 다 썼다는 증언이 있고 더해서 몇몇 왜곡된 저서로 인해 모르는 사실이지만 분명히 급탄기가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것과 20mm 발칸포 탄약은 수거작업 당시 거의 소진된 채로 있었다는 참전용사들과 수거를 담당한 장병들의 증언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기에 경우에 따라선 오류가 아닐 수도 있다.
- 실제로나 영화상에서나 당시 수병들 중에선 가장 분투했던 인물인 권기형 수병의 경우 실제로는 인민군 해군의 684호의 전차포 초탄 발사 이후 전포 사격 개시 때 총탄이 소총의 총열덮개를 관통하고서 그대로 사선으로 뚫고 가 손가락이 잘려나갔다.[42] 그 직후 후임인 일병에게 엎드리라고 외친 뒤, 총열덮개와 총열을 적탄이 관통한 탓에 안전상 작동불능이 된 소총을 버리고, 부상자들의 소병기를 한 자루 집은 채 이성을 반쯤 잃고 제대로 엄폐하지도 않은 채 반격을 했다고 하는데[43] , 한쪽 손만으로 탄창을 네 개나 갈아 끼우며 계속 응사했다니 엄청나게 용맹했던 듯하다. 영화 상에서는 전투 중반 이후에 손가락이 절단 되며, 박동혁 수병에게 부장의 다리 상처를 먼저 돌보라고 이른 뒤, 비교적 이성적인 태도로 절단 부위를 싸맨 채 엄폐한 상태로 자세로 적들과 계속 교전한다. 영화 상에서는 예산 혹은 시간 문제로 인해 구현되지 못했으나, M60을 난사하던 박동혁 수병이 소총탄과 포탄 파편에 피격[44] 되어 창백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것을 보자 이내 정신이 나가버리고 극에 달한 분노가 그대로 터져버려 좌현 거치대에 있는 남은 M60 기관총을 잘려나간 손으로 부여잡고 그대로 등산곶 684호정에 전부 난사했다고 한다. 심지어 전투 후반에 병기장 황창규 중사(예비역 상사) 41포 사격을 끝마치고 포 밖으로 나왔을 때, 포탄의 잔탄 확인조차 하지도 않고 41포를 수동조작하여 684호에 발사하려는 것을 황창규 중사가 말리기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 북한 해군 고증의 경우, 등산곶 684호의 주포 디자인은 원래 T-34/85 전차의 포탑 형태가 아닌, 후면이 개방된 마름모꼴 수동 포탑으로, 청진급 경비정처럼 선수 85㎜ 전차포 밑에 있었던 특유의 사각형 받침대 구조물이 북한이 생산한 경비초계형 S·O-1급 자체에는 없었으며, 해당 구조물의 북 해군 편제와 실제 사진에서도 85㎜ 전차포 탄약수와 포수 둘 다 해병 하전사나 사관이었는데, 한 사람이 군관으로 나오는 점 등에서 고증 오류를 범했다. 대잠초계형의 S·O-1급 고속초계정에만 장착되는 RBU-1200 대잠로켓 발사기를 달아놓은 점과, 또 ZPU-4 14.5㎜ 4연장 고사총이 있던 684의 함교 뒷편 포대에 디자인 자체가 고사총은커녕 40㎜ 보포스 구형 단장포 수동식 포탑을 조잡하게 올려 놓았다는 지적과, 14.5㎜ 고사총 포대의 위치가 원본보다 지나치게 낮은데다가 고사총 포대는 계단형식조차도 아닌 사다리를 타고 이동하는 방식이기에 기본적 이동통로조차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으며[45] , V-11-M 37mm 쌍열기관포가 장착된 함미 주갑판의 두 포탑들 또한 CG로 대충 처리해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S·O-1급 연안 초계정은 운용국이 거의 북한 밖에는 많이 없으며 타국에 있는 함정들은 고철이 되었거나 노후화가 심각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며, 또다른 운용국들은 한국과 국교관계 접점이 적거나 변변찮은 해군 함정이 없을 정도로 상당히 가난한 국가들이다. 80억이라는 제작비로는 이들을 대여 혹은 구입해오거나, 레플리카 등을 제작하기엔 택도 없는데다 ZPU-4와 V-11-M 모두 공산권 무기인지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등지의 세계구급 영화사들의 예산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적기 때문에 정치적/금전적 부분 등으로 인해 대여도 곤란하다. 오히려 포탑 포방패 부분에 북한 해군의 단골문구인 '일당백' 을 북한식 글씨체로 적어준 것들과, 중증 밀덕후 아니면 아무도 신경 안쓰는 함미 주갑판 부분들까지 나름대로 세트 제작과 준수한 퀄리티의 CG 재현[46] 을 통해 신경을 썼다 할 수 있다. 이건 대자본을 때려박으며 제작된 기존 한국 전쟁 영화들보다도 나아진 점이다. 전차 고증한답시고 T-34/76 전차 실물을 임대했다 제작비 부족으로 다른 고증들을 완전히 말아먹은 로드 넘버 원 같은 예들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다만 형태상으로 보면 대청급 고속초계정과 684호를 어색하게 섞어놓은 듯한 모습임이 차단기동 중 충돌장면에서 밝혀져 상당히 말이 많다.
- 684호정의 함장 김영식 대위는 이대준 소좌라는 가상 인물로 등장한다. 684 승조원들이 하복 착용 시기인 6월에도 검정색 동계 피복을 입고 있는데, 함정의 경우 흰색 하복이 세탁의 어려움 등으로 여름에도 동계 피복을 입기도 하므로 아주 틀린 것은 아니나, 육상에서 작전 계획을 짜는 장면에서까지 동근무복을 입고 있는 것은 부적절한 부분이다.[47] 해군 장령은 하정복을 입고 있었던 걸 보면, 제작진이 일부러 혹은 모르고 그런 건 아니고, 예산 탓일 가능성이 크다. 계급장 여러 개와 옷 여러 벌 맞춤제작이니 돈이 만만하진 않을 것이다. 북한 경비정 승조원들의 무장이 다소 섞인 것이나 저격수가 현대 해전에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몰라서 하는 소리로 오히려 제작진이 신경을 많이 썼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북한 해군은 실제로 고속정간의 근접전 등에 투입하기 위해 저격수를 운용[48] 하기 때문이다. 제1연평해전 때도 참수리 325호정의 정장 안지영 중령(당시 대위)이 북한 해군의 저격수에 의해 방탄복에 총격을 당해 부상당한 바 있다. 684 승조원들 중 73식 대대기관총 사수[49] 도 보이는데, 해상저격여단 병력을 증원해 태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보총들이 섞이는 문제에 대한 지적도 반박이 가능한데, 2018년 북한의 열병식 당시 서해함대의 어뢰정 전대 등의 무장을 보면 의전행사용으로 88식을 든 기수 옆의 보총수를 제외하고는 전원 구명조끼 차림에 가목식의 68식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동년 9월 20일 침몰한 북한 공작선엔 특수부대원들이 승조하고 있었는데, 당시 특수부대원들의 무장은 가철식 88식 보총이었고, 이를 미루어보아 통상 해병 주무장은 가목식 68식 보총이나 당시 증원되어 승조한 해상저격여단의 저격병들은 가철식 88식 보총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예산 문제인지 해상저격여단 병력들은 기본 가목식의 AK-74를 쓰고 있어 상당히 안타까운 점. 저격총과 기관총 외에도, 684의 해병들이 전투 중 7호 발사관을 여러 발 발사했고 31식 60mm 박격포로도 함상 공격을 가해왔는데, 예산 문제로 이는 구현되지 않았으며, 대타로 나올 동형의 RPG-7 역시 영화 예산 생각을 해보면 만만한 가격은 아닌데다 60mm 박격포를 쓰는 장면을 끌어쓰기에도 다소 시간적 무리가 있다. 684의 함장이 초반부에 북한 공작원들 틈에 섞여서 도발 전에 미리 어부로 변장하고 정탐하는 역할로 등장[50] 하는데, 실제 북한 어선 상당수가 해군에서 관리 및 운용하는 배라는 정보가 있다. 실제론 김영식 대위는 1999년 684호의 퇴각 당시 갑판장 상위 계급이었으며, 지휘관들이 대부분 전사했던 상황에서 본인의 부하 해병들과 군관들을 지휘하는 모습이 1999년 제1연평해전 때 보도화면에 나온 바 있다. 또한 김윤심 사령관과 3호청사 직원들이나 오극렬 등 실제 인사들은 절대 이름조차도 언급되지도 않았고, 그 뿐 아니라 684와 388에 8전대사령부에서 통신이 오는 것을 중계하여 명령하달을 도운 신천통신중계소와 북한군 지통실 재현 하나 안 한 점 등은 상당히 지적받는다. 더해서, 60mm 정도의 소형 박격포를 든 해상저격여단 병력들이 포탄 적재 박스를 들고 684가 아닌 388호로 뛰어가는 최악의 동선오류마저 범했다. 예상 외로 수많은 이들이 관여된 스케일이 큰 사건이라 더더욱 실망이 크단 것.
- 영화 중 박동혁 수병의 동선도 각색이 들어갔다. 난생 처음겪는 처참한 상황에 일시적인 공황 상태에 빠졌다 윤영하 정장의 독려와 전우들의 참혹한 모습에 정신을 가다듬고 구호 활동을 펼치고, 서후원 하사가 전사한 후엔 684에 M-60을 쏘다 총상을 입고 쓰러진다. 사망 장면에서 비교적 신체가 온전한 상태에서 숨을 거두지만 이는 관객들이 받을 충격을 고려해 순화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박동혁 수병이 입은 부상은 훨씬 처참했다. 박동혁 수병은 단순히 총알 몇 발 맞은 수준의 총상이 아닌, 온몸에 파편이 박혀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심한 장기손상으로 물만 마셔도 설사가 계속될 정도의 중상을 입었으며, 사후 유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온 포탄 파편이 3㎏에 달할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옆구리가 고폭탄 화상으로 익어 있었고, 절단된 다리에서는 지혈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피가 흘렀으며, 거의 전신출혈 수준으로 심각했다.
- 영화에서 박동혁 수병의 모친은 청각장애인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실제 박 수병의 모친은 청각장애인이 아니다. 다만 이 설정은 의도된 것으로 감독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해 박 수병의 모친에게 미리 허락받고 그렇게 설정했다고 한다.#[51]
- 의무병 박동혁 수병이 357정에 발령왔을 때[52] , 전 근무지인 천안함에서 어느 정도 함정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리버리해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PCC는 고속정에 비하면 생활 환경이 훨씬 나은 곳이고[53] 해군이라도 다른 배나 육상 부대의 생활 여건은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쪽으로 발령나지 않는 이상 전역할 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고속정 거주 환경의 열악함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이런 장면들이 나왔을 수도 있다. 각종 창작물에서도, 새로 전입 온 인원이 허둥대는 모습을 통해 그 근무지의 열악함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모습은 흔히 나오며, 내레이션으로 이런 걸 땡치면 재미와 작품 자체의 질을 떨어뜨리기 십상인 영화는 더더욱 흔하다. 다만, 첫 장면에서 박동혁 수병이 부두에서 내리고는 처음 오는 장소를 보는 듯이 두리번 거리는 장면은 상당히 어색하다. 2함대에서 어느 정도 근무했다면 참수리급 고속정들이 계류 되어 있는 부두 쪽을 업무상이든 개인시간에 구경이든 안 가봤을 리가 없었을뿐더러 박동혁 수병이 근무했던 천안함이 계류된 부두와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다.
- 윤영하 대위와 박동혁 수병의 전입일도 실제와 다르다. 영화 상에서는 갓 새로온 정장과 의무병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윤영하 대위는 2001년 1월, 박동혁 수병은 2002년 4월로 각각 1년 반과 2달가량 영화 속 시점보다 앞서 부임했다.
- 윤영하 대위가 상사 계급의 갑판장을 다소 하대하는 듯한 모습도 어색하다. 30세 언저리의 대위와 40대의 상사라면 기본적으로 상호 존중이 일반적인 모습인데, 일단 윤영하 대위가 정장으로 부임 받아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인원 보고시 대화를 보면 갑판장에게 존댓말은 써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태도가 너무 뻣뻣하다. 물론 소위, 중위와 달리 대위 특히 해상 지휘관들의 권위가 타군에 비해 큰 해군 특성상 정장쯤 되면 부사관들에게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사 계급의 직별장, 그것도 함내 군기를 담당하는 등으로 서열이 높은 부사관이 주로 배치되는 갑판장을 대하는 태도가 현실과는 다소 괴리가 있다. 조천형 하사 딸의 돌잔치 때 갑판장이 술을 따라주려는데 거절하는 장면 등도 그러하다. 물론 당시는 한상국 하사의 손 상태를 체크하기 위함이었다지만 상사 정도 되는 직별장이 술을 권하면 일단 먼저 한잔은 받는 게 통상적일 것이다.
-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의 과거도 각색이 들어가 있다. 해사 18기[54] 로 입학하여 4년 뒤 소위로 임관, 공교롭게도 아들이 전사하기 딱 32년 전인 1970년 6월 29일 대위 계급으로 50t급 경비정 PB-3의 정장이었던 그가 북 해군 간첩선을 나포하여 같은 해 7월 18일 인헌무공훈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딱히 상부로부터 체포한 공작원을 사살하라는 지시를 받았거나, 이를 거부해 징계성 전역을 한 것은 픽션이다. 군사 정권 치하라서 사관학교 출신들이 전역 후 민간의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기 용이했던 시절이라 지금보다 만기 전역을 택하는 비율이 높았으므로, 그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해군 입장에선 항복한 공작원을 사살하라는 지시 자체가 법적 문제의 소지가 있는 명령이라 해군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부분인데, 이를 영화에서 그냥 다루도록 놔둔 것이 의외인 점이다. [55] 과거 윤두호가 해군 하정복 차림으로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교복 차림의 윤영하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뒤이어 나오는데, 윤영하 소령은 1973년생이므로 최소 13~4년은 경과했을 1980년대에 대위로 전역한 윤두호가 현역일 리가 없었다. 이는 당시엔 지금보다 예비역들의 군복 착용이 잦았던 시절이므로, 예비역 모임 등에 다녀와 옷을 갈아입기 전에 아들과 대면했다는 설정이 있다면 고증 오류는 아니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윤두호가 착용한 하근무복에 달린 무궁화 밑받침 없는 구형 대위 계급장과, 그가 쓴 2000년대 초에 폐지된 카키색 커버의 정모는 고증에 맞다. 그가 어린 윤영하 앞에서 입고 있던 하정복에 윤두호가 예편할 당시의 구형 병과장이 아닌 현용 병과장이 자수된 대위 견장이 달린 점은 고증 오류이다. 또한, 공작원을 나포할 때 윤두호가 겨눈 권총은 그 시기에는 존재할 수가 없는, 1989년부터 생산된 K5 권총[56] 이고, 그가 항명 행위로 인해 헌병들의 차를 타고 조사를 받으러 가는 장면에서, 당시엔 총원 해병대 헌병이었던 군기헌병들이 해군 헌병들로 나오는 고증 오류도 있다.
- 2함대 지휘통제실의 모습도 실제와는 많이 다른데[57] , 각 함대 지통실은 2급 비취 인가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헌병이 상시 출입을 통제하는 등급 높은 보안 시설이고, 내부 장비들 또한 마찬가지므로 이를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기에 적당히 그럴싸하게 꾸민 것이다.
- 고 한상국 하사의 영현이 수습된 뒤, 이를 호송하는 참수리에 대함 경례를 하는 PCC는 함번이 761인 김천함인데, 이 함정은 당시엔 반대편 1함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없이 바쁜 2함대 함정을 영화 찍으려고 차출하는 건 말도 안되므로, 해군교육사령부 실습전대 함정으로 주 촬영지인 진해에 대기중인 김천함이 동원된 것이다. 김천함은 2012년 남원함과 자리바꾸는 형식으로 3함대로 재배치되어 실습전대 상시 차출함정이 되었다가 2015년 12월 31일 퇴역하는 서울함 및 참수리 4척과 함께 전역식을 하고 예비함으로 전환되었다.
- 박동혁 수병이 사망하는 장면에서의 의학적 처치에도 오류가 있다. 분명 EKG 상에는 무수축으로 나오는데 군의관들이 박동혁 수병에게 CPR을 하면서 제세동을 한다. 심정지 환자에서 제세동은 심실세동 혹은 무맥성 심실빈맥일 때에만 시행하며 무수축인 상황에서는 가슴 압박과 인공호흡만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고 제세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딱히 의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는 영화도 아니기에 제작진이 의학적 지식 관련해서는 전혀 자문을 구하지 않고 적당히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 드라마, 영화에서 CPR 장면은 의학드라마가 아닌 이상 고증에 맞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라서 딱히 이 영화만 잘못한 것도 아니다.
- 한상국 하사의 시신이 수습될 때 바다속에 잠겨있던 것 치고는 시신의 상태가 너무 온전하다. 하지만 특수분장으로 퉁퉁 불어터진 시신을 연출해봤자 끔찍한 외형으로 혐오감만 줄 뿐 누가 고증 잘 했다고 알아주지도 않을텐데 이걸 보고 오류라고 하긴 뭣하다.
- 그 외 몇 가지 시대적 오류로, 박동혁 수병이 전입오는 장면에서 나온 우체국 박스를 잘 보면 QR코드가 찍혀 있다. QR코드 자체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부분적으로 사용되었고 코드를 판독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된 휴대전화가 몇 종 있었지만 대중화되기 전이다. 그 외에도 영화 초반부에 국군수도병원 이송 장면에 봉고 III 개조 앰뷸런스가 나오는데, 해당 차량은 2005년에 출시되었다. 박동혁 수병과 한상국 하사가 버스 터미널[58] 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2002년에는 볼 수 없는 버스들인 동양고속 소속의 기아 뉴 그랜버드 썬샤인(2007년 11월 출시, 2008년 시판)이 나오거나 쏘나타의 6세대 모델인 YF(2009년 9월 출시)가 뒷 배경에 잡힌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영화 찍는다고 군 관계자 및 일반인들의 병원과 대중교통 이용까지 방해할 순 없었기 때문 인 듯하다. 또한 극초반에 나오는 해군 유조차는 타타대우 노부스 차종인데 이 차종은 2004년에 출시되었으며, 유조차의 번호판이 흰 번호판인데 이는 2006년에 개정된 것이다. 예산 문제로 진기사나 군수사 등의 현용 유조차를 동원했거나 마침 급유 중일 때 군항을 찍은 것인 듯하다.
- 초코파이 덕후와도 같은 김태중 수병이 항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초코파이는 2000년대 초반에 유통되던, 고증에 맞는 포장 비닐에 싸여 있다. 아마 자체제작 의뢰의 가능성이 있다.
- 더해서 몇몇 참수리들은 포방패에 거치된 K-6 중기관총들을 M-60으로 교체하지 못했다. 해군 배라서 사실 두 정만 빌려준 것도 예사다만... 더해서 작중 357과 358의 승조원들은 예로부터 일신되어 사용되어 온 현용 디자인의 카포크 자켓 형식의 현용 구명조끼가 아닌 자체제작한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데, 하필 현역 군인인 조역 담당 승조원들은 붉은 카포크 재킷을 그대로 입고 나온 점이다. 자잘한 오류로 가족 거주지가 시흥이나 인천이었을 윤 소령의 집이 경기도 안산으로 표현된 것들이 있다.
9. 논란
9.1. 최영순 대위 성별 전환
실제 358호정 정장이었던 최영순 함정중령(당시 대위).[59]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실존 인물인 와중에 참수리 358정 정장이 최윤정 대위라는 여자 캐릭터가 되어 논란이 일었다. 실제 358호정의 정장은 남성인 최영순 항해대위였는데, 픽션이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사실 고증을 중시한다던 영화에서 흥행을 위해 멀쩡한 남자를 성전환 시켜버려 밀덕들을 중심으로 연평해전의 실제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반발이 컸다. 이것은 누가 봐도 당시의 참전 용사를 자신들 입맛에 맞게 희화화한 셈이라 여길만한 것이기에 더욱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윤 소령의 유품들 중에는 그의 남동생과 찍은 유년기 시절의 사진까지 있어 차라리 이청아를 캐스팅 하지 말아야 했다는 의견이 영화 리뷰 댓글 란에 나오기도 했다.
또한,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2002년 6월 29일 당시 해군의 여군 전투병과 장교는 2001년에 임관하여 중위 진급을 앞둔 학사장교 96기와 전날 28일 임관식을 치르고 초군반도 들어가기 전인 97기가 전부였기 때문에 고증에도 문제가 있다.[60] 최초의 여군 고속정 정장은 2012년에야 배출되었고, 그것도 후방인 제3함대 고속정에만 배치되고 있다. 그 동안 대한민국 국군은 육해공군 공통으로 잠수함, 고속정, 전차 등 규모가 작으면서 고립된 전투 차량이나 함정 내에 탑승하는 보직에 여군은 일절 배치하지 않았었다. 2015년 잠수함 승조원 중 여군을 선발하기로 하면서 기갑을 제외하고 풀린 상태다.
거기다 한국 영화 특유의 억지 스러운 러브라인 만들기로 갈 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우려가 심했다. 일단 뚜껑을 열어본 결과 작중 러브라인은 없고 그저 친한 해군사관학교 동기로만 나오며[61] , 이 설정 변경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도, 크게 돋보이게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뭣하러 비판을 감수해가며 남여를 바꿔버렸는지 당최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다.
다른 어른의 사정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드러난거만 보자면 사실성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관객들을 고려해 분위기 전환용으로 넣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증같은 것에 아무 관심이 없는 일반인 관객들 입장에서는 사실성이야 어쨌든 좀 이쁜 여자가 잠깐 이라도 나와주는게 훨씬 재밌고 볼만하기 때문이다. 리뷰를 주로 작성하는 매니아나 고증을 중시하는 밀덕층에서야 한 소리 듣겠지만 흥행을 좌우하는건 일반 관객들이므로 상업영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러브라인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윤정 대위가 생도시절 윤영하 대위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흐뭇(?)해 하는 장면도 윤영하 대위의 전사를 가슴 아프게 하는 장치로서 역할을 어느정도는 한다.
김학순 감독은 이에 대해 "원래 남자였는데 대위 중 여자도 있기에 사실감을 높이고자, 또한 윤영하와의 애틋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 이청아를 캐스팅하고 성별을 바꾼 것이다"라고 답했다.
실제 358정 정장이었던 최영순 중령은 학군 41기로 해사 50기인 윤영하 소령과 형제같은 사이였다고 한다. 해전 직후, 뉴스 인터뷰에서 윤영하 소령의 전사 사실을 직접 언급하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26일 영화를 감상했으며, 영화에 대해 자신이 여자로 나오는 것과 윤 소령의 전입 날짜 등을 빼면 거의 사실과 같다고 평했다. 자신을 극중 성전환을 시켜버렸지만 이에 대해 딱히 불만을 표하지 않은 대인배이다. 애초에 최영순 중령이 미리 시나리오 검수에 동참했으므로 동의를 받았다고 할수 있다.
한국 해군을 다룬 영화 중, 여성이 진출하지 않은 분야에 여군 캐릭터를 배치한 고증 오류를 범한 또 다른 작품으로는 <블루>와 <대한민국 1%>가 있다. 이 역시 상업성을 위해 고증을 일부 포기한 부분으로, 각각 여군이 배치되지 않는 분야인 심해잠수사(장교(소령))와 해병 수색대원(부사관(하사))이 등장한다.
9.2. 김태중 수병
조금 황당하지만, 작중 개그를 전담하는 캐릭터인 김태중 수병이 김대중과 이름이 유사한 돌려까기용 캐릭터라는 주장이 있다. 드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캐릭터의 이름이 김대중과 유사하다.
- 영화 속 등장인물 가운데 유독 김태중 수병의 명찰이 부각된다.
- 실존인물에서 모티브를 따 온 인물이라는데, 그렇다면 그들을 모티브로 한 김태중 수병을 희화화해 교전에 참전한 장병을 욕되게 해야 했을지 의문스럽다.
영화 속에서 그만 유독 명찰이 부각된다는 건 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나온 주장이다. 다른 주연급 캐릭터들은 이미 이름이 수시로 언급되니 명찰을 일일이 비춰 줄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순 없다.
또한 실존 인물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가상 인물에게 개그나 악역 등의 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화 영화라면 흔히 보이는 것이니만큼 그거 자체를 탓할 수도 없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무의공 이순신이 툭하면 예산 타령하는 개그 캐릭터로 나오는데, 설마 진짜 무의공이 경리 장교(?) 출신이라 돈타령만 하고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각본은 엄연히 사전에 유가족들과 참전자들의 동의하에 집필된 것이고, 실존 및 가상 인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음모론은 설득력을 잃는다.
또한 김태중 수병이 작중에서 분명 개그 캐릭터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비웃음 사기 좋은 이른바 꼴통이나 고문관 스타일의 캐릭터는 아니다. 화장실에 숨어 초코파이를 먹는 것도 권기형 수병이 이야기했듯 짬에 비해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는 스타일이라 그렇지 일 못한다고 갈굼당하는 바람에 간식도 숨어 먹는 처지가 아니고, 작중 그가 한 실수라고 해 봐야 전투배치 중 병기사가 나눠주던 탄창 하나 떨어뜨렸다 다시 주은 게 전부고, 그마저도 이후엔 전혀 실수하지 않았다. 한상국 하사가 박동혁 수병 외박 보내주려고 섭외한 여자를 보고 숨어서 보던 수병들이 좌절(?)한 뒤 김태중 수병을 니 여동생 왔나보다 하며 밀치는 것도 그냥 장난이지 진짜 못나서 갈구는 분위기도 아니며, 게다가 최후의 전투 배치 전 신문선 해설위원의 성대모사를 하는 장면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를 듣던 승조원들이 웃고 즐기는 장면을 통해 더더욱 꼴통 고문관이라 갈굼받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김태중 수병은 이 수병처럼 무섭다고 중간에 격실에 숨어서 벌벌 떨지도 않고 소병기 요원으로서 부상까지 입어가며 처절하게 싸웠다.
만약 정말로 김대중 희화화에 쓸 캐릭터를 만들 생각이었다면 이보다 더 무능하거나 욕나오는 부정적인 캐릭터로 만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박동혁 수병을 괴롭히다 정작 총탄 앞에선 벌벌 떨던 이 수병에게 김태중 명찰을 달아놓는다거나.
오히려 김대중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음모론이 되려 고인의 위상을 깎아먹는다며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연평해전 당시 보도에서 김택중 일병의 이름이 오타로 김태중으로 나온 적이 있는데, 이후 나온 생존자 인터뷰 등에선 김택중으로 이름이 제대로 나온다.
9.3. 전사자들의 비중
전사자 중 황도현 하사, 서후원 하사의 작중 비중이 너무 낮다. 여섯 명의 전사자 중 윤영하 대위, 한상국 하사, 박동혁 수병의 경우는 주역이니 당연히 비중이 높고, 조천형 하사의 경우 딸 돌잔치 장면과 전사할 당시 가족사진이 적의 포화에 불타 버리는 등의 연출로 인상을 남긴 편인데, 황도현, 서후원 하사는 전투 장면을 제외하면 비중이 매우 낮다. 처음 박동혁 수병이 전입 왔을 때 지나가면서 인사 한 번씩 한 것을 제외하면 인상적인 출연이나 대사가 거의 없다. 실존한 고 황도현 중사는 상당히 시를 읊어주는 일을 좋아했으므로 차라리 돌잔치 장면에서 시 한편 읊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여자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시사회 당일 유가족들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이 감독도 이 점에 대해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 미리 사과를 했고 유족들은 아쉽긴 하지만 사건을 알리는 데 더 의의가 있기에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실 2시간, 그것도 막판은 전투에 할애해야 하는 영화 한계상 6명 전부를 비중 있게 다루긴 힘들다. 가상 인물인 이 수병 이나 김태중 수병 보다 비중이 낮은 걸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 둘은 주연인 박동혁 수병의 내무 생활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다.
비록 전반적인 등장 횟수는 적으나, 전사 장면만큼은 다소 신경 쓴 듯하다. 황도현 하사의 벌컨 포탑이 피격당한 뒤 힘없이 빙글빙글 도는 장면은 꽤나 임팩트 있었고, 서후원 하사의 죽음은 박동혁 수병이 북한군들에게 분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62] 그리고, 위 사진처럼 마지막 장면에서 이 두 부사관들이 맨 앞에 위치해 있는데, 출연 횟수가 적었던 점을 조금이나마 만회하려고 이런 배치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9.4. 진영 논리
이 영화의 정치성 논란과 관련해 특히 주목받는 점은 김대중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폐막식과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요코하마에 가는 뉴스 장면을 영화에 등장시킨 것이다. 정확히는, 대놓고 김대중의 이 행보에 대해 분노하거나 비판하는 언행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가 TV로 국군수도병원 로비에서 이 뉴스 화면을 보고 불쾌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십여 초가량 나온 것으로 논란을 삼는 것이다.
이후 인터넷상에서는 이 영화의 정치성 관련해서 상당한 토론이 있었으며, 당초에 이 문단에서 "연평해전(영화)/정치성 논란"이라는 새로운 문서로 분리되었지만, 수많은 반달과 토론 끝에 문서를 삭제하고 현재의 서술로 변경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합의된 사항이니만큼, 편집에 신중을 요한다.'''
이 장면에 대하여 정치적인 논란이 존재한다는 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영화의 주제와 다소 벗어남에도 불구하고, 본래 시나리오에 없던 내용이 감독의 임의로 추가된 점.
- 정상회담에 간 것을 영화상에서 제외시켜서 김대중의 부정적인 기존의 인식을 강화했다는 점.
- 명량, 국제시장의 사례처럼 정치적 마케팅이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이를 이용했다는 의견 등이 있다.
- 10초 내외의 짧은 노출 시간으로는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투영하기 어렵다는 점.
- 장병들의 희생과 대조되어 월드컵을 즐기는 국가와 국민의 축제 분위기를 강조하는 것에 효과적인 장면이라는 점.
- 유가족들이 정부에 대해 가지는 불만을 적절히 묘사한 장면이라는 점 등이 있다.
영화 외적인, 김대중 정권의 대응 태도에 대한 논란 자체는 제2연평해전 문서에서 다루고 있다. 이 문단은 영화와 관련된 논란을 설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건 배경을 서술해줄 뿐이며, 판단은 위의 논거들과 비교해 각자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9.5. 박근혜 정부의 개입
KBS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수익금 배분에 관여했고, 연평해전 같은 영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도록 영화 수익금 환원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朴 청와대, 영화 ‘연평해전’ 수익금 배분 개입
10. 여담
-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는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대 후반, 국가보훈처에서 제작한 안보영화 그날[63] 이 첫 작품이다. 해군 신병들과 부사관후보생들은 기군단에서 한번쯤은 보게 되며, 일부 예비군 훈련장 등 다른 해군 및 육공군 부대에서도 전투 장면만 편집해 만든 짧은 영상을 틀어주기도 한다. 다만 저예산 영화 티가 나는 실로 파멸적인 퀄리티를 자랑한다(...) . 때문에 이제 드디어 제대로 된 영화가 나왔으니 그날 대신 연평해전을 틀어주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2016년 현재 예비군 훈련장에서 연평해전을 틀어주는 것이 확인되었다.
- 우리민족끼리에서 영화와 관련된 망언을 했다.
- 제2연평해전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 아직까지 순직자로 되어 있는 6명의 장병들에 대해 지금이라도 전사자로 격상시키자는 움직임이 제기되었다.
- 영화에 삽입된, 2002년 6월 14일에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의 2함대 장병들의 월드컵 응원 장면과 윤영하 대위의 인터뷰는 iMBC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MBC는 고인들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긴 촬영 영상을 유가족에게 제공하었다.)
- 2015년 7월 13~15일 서울 일부 학교에서 이 영화를 학부모들의 동의 없이 돈을 걷고 학교 수업시간을 3~4시간 빼서 학생들에게 단체관람을 시켰거나 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반대로 전교조와 오마이뉴스가 이 사건을 과장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 보수 성향의 신문과 종합편성 채널들은 연일 이 영화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신문 1면, 2면 등 앞면을 몇날 며칠동안 연평해전에 관한 기사로 도배하는데 할애했다. 예전부터 제2연평해전에 대해서 보수 언론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평론가들에게 평론을 적을것을 강요하는 듯한, "변호인은 되고 연평해전은 왜 안돼?" 라는 투의 카드 뉴스를 내보냈다. 이 때 이들 언론들의 과도한 홍보성 기사를 지적하는 여론이 진영 불문 적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이들 보수 언론들이 암살 때 보인 반응이 연평해전 때와 너무 상반된다며 비판받기도 했다.
- 진보 성향 언론들은 이 영화에 대해서 별 언급을 하지 않거나 내용을 비판했다. 미디어오늘에서는 이 사건과 아무런 연관없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와 억지로 엮어 정부를 까려다 욕만 먹었다. # 대표적 진보 언론인 한겨레에서도 영화의 흥행과 관련해 구글 트렌드 검색 결과 연평해전의 관심도가 0에 가까운데 흥행을 한 것이 이상하므로 단체관람으로 띄운 것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가, 해당 알고리즘의 한계로 인한 착오였다고 변명하며 사과 기사를 올렸다.# 이 때 보인 태도로 인해, 진보 언론들은 보수 언론이 암살이 자신들에게 불편한 영화이니 언급을 안 하는 거 아니냐고 되도 않는 의혹을 제기했다 자업자득으로 역풍을 맞기도 했다.
- 메르스 때문에 전군 휴가 및 외출 금지령을 내렸던 군에서 연평해전이 개봉하자 단체관람이 이어졌다(# # #)며 군인들을 단체관람시켜 띄운 것이라는 음모성 주장이 있으나, 휴가 및 외박/출 정상화는 연평해전 개봉 이전인 6월 15일에 결정된 것(#)으로 영화와는 무관하다.
- 2015년 7월 10일, 해군은 한상국 상사의 전사일을 제2연평해전 당일인 2002년 6월 29일에서 그의 시신을 인양한 같은 해 8월 9일로 변경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1계급 특진 계급을 중사에서 상사로 올려 진급시켰다. 해군이 실종 상태였던 한상국 상사를 교전 당일을 전사일로 지정하여, 진급을 이틀 앞뒀던 한상국 상사가 관련 규정에 의거 진급이 취소되었다가 특진하면서 받은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유가족들은 이로서 상사 전사자 유가족들에 해당하는 혜택들을 상향 적용받을 수 있게 되었다.
- 영화가 끝나고 스탭롤 자막이 올라가는 중에 당시 연평해전 생존자들의 인터뷰 영상 및 희생자 6명의 생몰연대와 함께 생전 모습이 담긴 실제 사진이 나온다.
- 연평해전 OST는 6월 25일, 네이버와 멜론 등에서 유료 다운로드 방식으로 발매되었다. 로제타시네마 측과 전화 통화를 통해 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CD 등의 발매 예정은 없는데, 전반적으로 CD 등 오프라인 음반이 잘 팔리지 않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라고 한다. 작중 조천형 하사의 딸 돌잔치 씬에서 기타를 치며 부르던 노래인, "트리키 바운스"라는 밴드의 "가을을 타고"라는 곡[64] 역시 연평해전 OST 앨범에 수록되었다. 배경 음악 대부분은 목영진 음향감독의 지휘 아래 60인조의 악단인 체코의 프라하 필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총 12시간에 걸쳐 연주, 녹음한 것이다. OST들은 전반적으로 호평받고 있는데, 특히 영결식 장면에 쓰인 곡과 엔딩 부분에 나온 에필로그 곡이 평이 좋다. 영결식 곡은 2015년 9월의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합동묘역 조성 및 이장식 때도 식 종료 후 연주되었다.
- 참수리급을 공여받은 해외 해군에서 이 영화를 진지하게 자막달아 정훈교육에 쓰지 않을까(....) 하는 일부 밀덕들의 반응이 있었다.
- 2017년 현충일 KBS 1TV에서 특선영화로 방영되었다.
- 한때 유튜브에서 연평해전에 지역락이 걸렸고 한국 ip로는 시청이 불가능했던 것 때문에 인터넷 검열로 차단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2019년 3월 27일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배급사인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측은 "지난해 중반 만료된 '연평해전' 서비스 계약 연장이 누락되면서 한동안 서비스가 중단됐던 것"이라며 "최근 계약을 연장하고 화질 개선 등 소재 교체 작업을 거쳐 28일 저녁부터 서비스가 재개됐다"라고 밝혔다. 유튜브 관계자 역시 "같은 영화라도 지역·국가별로 배급사가 다르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유료로 판매되는 영화는 서비스 계약이 체결된 지역의 거주자만 구매할 수 있도록 지역 차단 설정이 되어 있다"며 "한동안 '연평해전'에 '국가에서 차단된 동영상'이라는 문구가 떴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 역시 제보를 통해 받은 해당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편 이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몇몇 기자들은 실질적인 사유로서 국내기업에서 독점 판매되고 있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서비스 할 수 없도록 보이콧을 했던 것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배급사 측 및 여러 관계자들이 위와 같이 해명하고, 3월 28일부터 유튜브에서 다시 정상적으로 서비스[65]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당 영화가 마치 서비스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선동하는 거짓 정보들이 나돌고 있으니 주의하기를 바란다.
11. 관련 문서
[1] 딱 영화 핵소고지를 생각하면 된다.[2] 해군 하사관으로 11년 2개월간 복무했다. 직별은 전기이며, 최종 계급은 중사. 전역 후 미국에서 자영업 등으로 자산을 모은 뒤 귀국, 위 소설로 데뷔했다. 9.11 테러 때 현장에 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돌아오기도 했다.[3] 한 때, 병역기피 의심자를 쓰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김무열은 2012년에 육군 병으로 자진입대해 만기 전역한 병역의무 이행자다.[4] 해군 수병 출신이다. 직별은 헌병으로, 이전의 출연작 26년에서 원작에선 육군 출신인 주인공 중 한 명인 곽진배를 해군 헌병 예비역으로 설정 변경할 만큼 해군의 자부심이 강하다고 한다. 해전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둔채 끝까지 타륜을 잡고 장렬히 전사한 부분이, 진구가 전작에서 맡은 명량의 임준영 역과 이미지가 겹친다.[5] 이 배역에 대해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자신의 예명과 이희완의 이름이 비슷한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고 한다.[6] 해군 함정에서는 함포 및 기관총 등 거치식 병기를 두 자리 숫자로 표기하는데, 십 단위 자리는 병기의 구경 앞 단위를(20mm발칸이면 앞자리를 따서 2), 일 단위 자리는 함 내의 병기 위치를 나타낸다. 해당 구경의 포가 하나면 1, 두 개 이상의 같은 구경 함포는 앞뒤로 위치해 있으면 앞이 1, 뒤가 2, 좌우에 위치할 경우 오른쪽 1, 왼쪽이 2의 순서로 번호가 붙는다. 참수리 357정은 20mm발칸포가 함교 후방과 함미에 있었는데 함교 후방에 있는 포가 앞에 있어 21포, 함미에 있는 포가 뒤에 있어 22포다.[7] 극중에 쓰고 있는 헬멧의 전투 배치시 직무를 나타내는 '사수' 표기는 고증오류로, 실제 참수리 357호정 M60 사수는 곽진성(당시 하사)이었다.[8] 현재 계급은 중령.[9] 2015년 상반기는 유달리 한국 영화의 실적이 부진했던 시기였다. 600만명 관람이 이후 천만을 넘긴 암살 덕분에 우스워 보일지 몰라도, 애초부터 몇백만이라는 관객 수 달성 자체부터가 마냥 쉬운 게 아니다.[10] 이런 류의 영화에 대한 이동진의 리뷰가 늘 그랫듯이 댓글란에선 박한 점수에 화가 난 사람들의 큰 비난이 있었다. 대체적인 비난은 이동진은 전사자들에 대한 존경이나 애국심도 없냐는 것. 거기다 어떤 이는 이동진의 군 복무여부까지 물어봤을 정도. [11] 참고로 디워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33점으로 연평해전과 2점 차이이다.[12] 연평해전을 슬프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국민정서와 한국식 최루성 영화를 좋아하는 정서도 포함.[13] 그러나 아무리 한국적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로 외신에게 욕을 먹은 한국영화는 찾기 힘들다.[14] 전자는 포항여중 전투와 학도병, 후자는 포항 철수작전을 굉장히 심하게 왜곡했다.[15] 일례로 북한 해군 측의 이대준 소좌가 공작원들과 함께 어부로 변장하고 정탐하러 와서는 일부러 돌을 던지며 도발해 승선까지 한 장면 등을 들 수 있다. 방법은 달랐지만, 최영순 중령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군의 사전 정탐활동 자체는 실제로 있었다. 실화대로 보면 그나마 좀 은밀하게 매너 있게 퇴장한 영화와 달리, 자국 군가를 부르며 퇴장했기에 확실히 다르고, 그때 당시 실존한 김영식 대위는 평양 내지 사택에서 개인정비 및 취침 중이었다. 당시 승선한 북한군들은 '''전원이 소위 이상의 계급으로만 구성된 정찰국 산하 연락군관들이었다.'''[16] 팍팍한 함정 생활과 피 말리는 훈련 속에 월드컵을 위안 삼으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만약 교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상 상황을 전제로 한, 357승조원들이 다 같이 웃으며 전진기지 식당에서 3-4위전을 시청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눈물을 쏟았다는 사람들도 많다.[17] 다른 승함 직별들과 달리, 의무병들에게 있어 고속정은 2차 발령지였다. 보통 큰 함정이나 섬, 해병 부대가 1차이고, 여기서 몇 개월 근무하다 고속정으로 옮긴 뒤, 또 대부분이 육상 의무부대로 전출해 전역 직전까지 근무했다. 현재는 복무 기간 단축으로 고속정도 다른 1차 발령지들과 같이 첫 발령지로 포함되었고, 구 3차 발령지가 2차 발령지로 바뀌면서 한 번만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18] 이 설정의 자취는 남아있다. 초반부에 월드컵 시청중에 갈굼을 참다 못한 박동혁 수병이 "이 수병님은 어머니 없으십니까?" 하고 받아치자 정색하며 얼차려를 주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후임이 개기니까 빡쳐서 독 부리는 걸로 볼 수도 있는지라 이것만 가지고는 명확히 알기 힘들다. 지나가는 장면 중 대원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장면이 있는 데 여기서 편부 가정에서 자랐다는 걸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걸 누가 기억할까...[19] 조선인민군 해군에선 수병을 해병이라 부른다.[20] 함장, 기관장, 갑판장, 함보위지도원까지.[21] 계기는, 김학순 감독이 수병 출신이었다는 점과, 감독의 친구가 "어째서 이들을 다룬 영화가 없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고 한다.#[22] 아무래도 영화의 목적 자체가 상업성이 떨어져서 각본이나 기획에 입김을 행사하다 여의치 않아서 발을 뺀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어른의 사정이라 알 수 없다.[23] 6월 5일에 맥스무비를 통해 예매 가능한 쿠폰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전달되었다.[24] 극장 개봉 종료 후 2015년 12월 DVD 발매 이후 배송했다.[25] 대표적으로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전 롯데 자이언츠 대표 최하진도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는지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놓는 앤딩크레딧에 롯데자이언츠의 대표로서 이름이 들어가 있다. [26] 당초 대출 형태로 하려던 것을 회장이 영화 기획의도에 동감하여 전액 투자하기로 하였다.[27] 실존 인물인 조철현 비오 신부가 모델[28] 해군 사관후보생(교수사관) 출신이다.[29] 이후 드러난 문건에서 이명박 정부가 다른의도를 가지고 지원함이 드러났다.[30] 실제 전방의 참수리를 진해로 전개시켜서 지원해줬다. 후방인 3함대와 진기사 등의 참수리는 주포가 구형인 200번대들이라 고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31] 실제 교전이 일어난 평택 제2함대는 최일선 전장이다 보니 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보안 및 안전 문제(자신들을 조금만 나쁘게 묘사해도 발광을 일삼는 북한의 특성상, 무력을 사용해 촬영을 방해하거나 이를 넘어 도발 및 공격할 가능성 등) 등으로 인해 짧게 찍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몇 달을 오가며 찍어야 하는 영화 촬영 협조에 부적절하다. 때문에, 해군은 부지도 넓고 후방 부대라 이런 부분에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진기사를 촬영지로 빌려주었다.[32] 이 전투를 계기로 당시 육군에 막 보급이 시작되고 있던 신형 방탄모가 육해공군의 타 부대들을 제치고 2함대 고속정들에 우선 지급되긴 했지만, 당연히 해전 이후의 일이므로 고증 오류이다.[33] 이 역시 위 뉴스데스크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34] 윤영하 대위가 첫 등장 당시 하정복 차림으로 나타난 것이 대표적인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전입이 늦어 전대장이나 편대장 등에게 늦게 신고한 뒤 정복을 갈아입지 못하고 승조원들 앞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면 말이 된다.[35] 정면이 제대로 나오는 장면은, 윤영하 대위가 승조원들의 개인신상 내역을 훑어볼 때, 박동혁 수병이 샘브레이 차림으로 찍은 증명 사진이 살짝 나오는 것 하나뿐이다.[36] 실제 F-15는 3년 뒤인 2005년부터 공군에 배치되기 시작하였다.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2002년 6월은 F-15K가 치열한 논란 끝에 라팔을 제치고 1차 FX사업에 선정된 지 불과 두어달 후의 일이었다. 아울러 주한 미공군도 A-10과 F-16을 운용했기 때문에 F-15는 나오려야 나올 수 없었던 전투기이다.[37] 사실 언론에서 그만큼 툭하면 F-15K에 관해서만 집중 보도하다 보니 타 기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았던 탓도 한몫했다. F-15K가 공군에서 가장 중요한 최신예 전력이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건 어떻게 봐도 홍보이다.[38] 제2연평해전 이후 추가되었다.[39] 지금도 몇몇 참수리들의 현문 연설대는 갈색이다.[40] 결정적으로 아직도 전방 고속정 권총은 M1911A1이다. 해군이 소병기 교체 속도가 육군보다 느리다는 점도 있고, 수평선 및 긴 교전거리 탓에 보다 위력이 강한 45구경 권총이 K5보다 더 낫기도 하기 때문이다.[41] 물론 실제 제2연평해전 전투 상황 당시에도 윤영하 소령이 선제포격 초반에 바로 즉사한 건 아니지만 윤 소령은 85㎜ 포탄 파편에 몸을 피격당해 심한 파편상을 입어 사격명령을 내리다 얼마 못 가 결국 저격수에게 등 쪽에 총탄 한 발을 피격당해 전사했다.[42] 탄의 관통공이 고사총탄보다 기관총탄일 가능성이 크다.[43] 손에 맞은 것을 제외하면 그 뒤 총을 한 발도 안맞은 게 놀라울 정도였다고 한다.[44] 심지어 37mm 구경으로 추정되는 포탄 탄두 하나가 오른다리에 박혀 있었다고 한다.[45] 실제로 684 계통 등산곶 경비정들은 해병들의 주 이동통로가 고사총 포대 밑의 현문에 있다. 그 현문 구조물과 세트장 지하통로 등을 설치하는 데 얼마 들지 않을 것임에도 왜 사서 헛수고했냐는 악평이 많다.[46] 김학순 감독 왈, 참수리 세트장을 헐고 그 위에 그대로 등산곶 684호의 전용 세트장을 지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해군의 항만경비정 1척을 빌려 등산곶 684호처럼 꾸며 CG 합성 작업 등을 통하여, 684호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애를 썼다고. 다만 설계상 문제 및 고증과 인건비 등 예산 문제로 실제 684호 함미 주갑판에 2문이 장착되어져 있던 V-11-M 포탑은 만들지 못하고 고사총 포대까지밖에 재현하지 못했다.[47] 다만 북한은 워낙에 모든 분야에서 막장인 국가라 인민군 해군의 중하급 군관들조차도 식량난 등의 문제로 국경경비대 병사들처럼 옷을 팔아 음식을 사먹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로 인해 하복을 물물교환하였다면 좀 말이 된다. 더해서 전투복장을 주로 착용하는 경우도 있는 등 개인차가 들쭉날쭉하다.[48] 함 승조원으로 상시 편제 중인지, 아니면 해상저격여단 등에서 파견오는 것인지는 불명이나 해상저격여단과의 관련성을 배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해상저격여단 소속일 가능성이 높으며, 위탁교육을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49] 물론 이 무기는 도저히 프롭건을 구할 수 없는지라 Vz.26에 바나나 탄창 끼워서 대타로 썼다. 잘 보면 가늠자가 왼쪽으로 튀어나온 게 보인다.[50] 나중에 윤영하 대위가 이 얼굴을 기억해 내, 북측이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음을 편대장에게 보고한다.[51] 실제 박동혁 병장의 모친은 당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시고 계셨다고 한다.[52] 사고 치거나 부대가 개편되지 않은 이상 자대에서 계속 군생활하는 타군과 달리 해군은 2차 발령이라고 해서 병들도 6개월 이상 근무하면 실무부대를 옮길지 그대로 있을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다.[53] 현재는 대다수의 고속정 승조원들이 입항시엔 육상의 생활관에서 살기 때문에, 도리어 배에서 살아야 하는 보다 큰 배의 승조원들보다 생활 여건이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고속정은 출동 나가면 거의 그 날 안에 다시 돌아오므로, 정말 비상이 아니면 배 안에서 살 일은 없다.[54] 때문에, 장례식장 장면에서 조문 온 해군참모총장이 그에게 예를 표하며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해참이던 장정길 제독이 1963년에 입학한 해사 21기로 윤두호의 3년 후배였으므로 고증에 맞는 연출이다.[55] 이 영화를 극찬했던 초대 제9잠수함전단장을 지냈던 퇴역 해군준장 김혁수 제독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사에 대해서만은 "쓸데없이 넣은 것"이라고 혹평했다.[56] 상당히 의아한 부분인데, 해군은 특히 후방 육상부대의 소병기 교체가 굉장히 늦은 편이라, 고증에 맞는 M1911A1 권총이 육상 병기고에 흔함에도 굳이 해군에선 함정이나 특수전 등 일부에만 있어 보기 더 어렵고 고증에도 안 맞는 K5를 가져온 것인지 납득이 안 간다는 의견이 많다.[57] 레이더 보는 전탐병이 지통실에 앉아있는 모습 등이다. 함대에 설치된 레이더는 거리 문제로 효율이 떨어져 항만 통제 업무 정도에만 쓰고, 주 해상감시레이더는 백령도나 연평도 등에 설치되어 있으며,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출동 중인 함정이나 항공기 등이 포착한 정보들과 더불어 지통실로 데이터 링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 및 종합된다. 전탐병들이 지통실에서 다수 근무하긴 하지만, 이들의 직책은 레이더가 아닌 상황판 등을 만지는 상황병이나 작전병이다.[58] 촬영지는 마산고속버스터미널이다. 보다 고증에 맞게 평택터미널에서 찍을 수도 있었으나, 일정 문제도 있고 하여 주 촬영지인 진기사에 가까운 이 곳을 선택한 듯하다.[59] UDT/SEAL 출신이다. 육군 보병 장교와 마찬가지로, 해군 함정(항해)장교도 특수전 장교로 선발된다 해도 특수전에만 계속 있지 않고, 함정과 육상, 특수전 부대를 오가며 인사이동한다.[60] 해사 출신의 여군 장교는 1999년에 해사 57기로 처음 모집하여 2003년에 임관하였다.[61] 358 정장이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본 관객들이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 안에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62] 유순한 성격이었던 박동혁 수병이 "이 개같은 놈들아"라고 부르짖으며 서후원 하사가 쏘던 M60 경기관총을 잡아 적들을 향해 사격 하기 시작한다.[63] 링크된 영상 전체가 '그날'은 아니고, 그날의 전투씬 부분만 잘라온 영상이다. '그날'은 여기자가 편집장에게 제2연평해전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고, 참전자들의 유가족들을 찾아보고 행적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는걸로 시작된다.[64] 밴드에서 기타를 맡은 정상철의 자작곡이라고 한다.[65] 유튜브 링크구글 플레이 링크[66] 옥수수가 wavve로 전환된 현재는 무료 시청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