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코란도(구)

 

1. 개요
2. 모델별 설명
2.1. 1세대 (코란도 지프, CJ/KH-7, 1969~1995)
2.1.1. 신진 지프 1기형 (1969~1974)
2.1.2. 신진 AMC 지프 2기형 (1974~1980[1])
2.1.3. 신진/거화 지프 3기형 (거화 디젤지프 코란도 1기형, 1980[2]~1985)
2.1.4. 거화/동아 코란도 2기형 (코란도 85, 1985~1986)
2.1.5. 동아/쌍용 코란도 3기형 (뉴 코란도, 1986~1992)
2.1.6. 쌍용 코란도 4기형 (93 이노베이션 코란도, 1993~1995)
2.2. 코란도 훼미리 (1988~1996)
2.3. 2세대 (뉴 코란도, KJ/K100, 1996~2005)
2.3.1. 제원
2.3.2. 라인업
3. 코란도 브랜드
4. 여담
4.1. 2세대(뉴 코란도, KJ/K100)
5. 미디어 출연
5.1. 1세대(코란도 지프, CJ/KH-7)
5.2. 2세대(뉴 코란도, KJ/K100)
6. 틀 둘러보기

SSANGYONG KORANDO[3]

1. 개요


쌍용자동차에서 신진지프 시절이었던 1969년 11월부터 2005년까지 생산한 SUV 및 그 차량의 이름을 딴 브랜드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생산된 SUV'''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후에 등장한 모든 국산 SUV들의 대선배격인 차종이다.[4][5]
흔히 1983년부터 생산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실제로 많은 기사에서 기자들이 오해하는 경우도 많지만 실제로는 1983년부터 코란도 브랜드를 부여받은 것이고, 1983년에 코란도 브랜드를 부여받은 차량은 1980년에 처음 등장한 신진지프 슈퍼스타/패트롤 모델과 1982년에 등장한 뉴 훼미리[6], 픽업트럭이다.
생산기간이 워낙 길었던 만큼 족보도 복잡하고 가지치기 모델이 워낙 다양해서 후기 모델에는 9인승 롱바디, 소프트탑, 하드탑, 밴이 있으며, 1985년 까지는 픽업트럭 모델도 존재했다.
그리고 1974년부터 생산되었다고 언급되는 경우도 많은데, 1974년은 신진자동차와 AMC가 50:50으로 합작하여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7]의 지프차량 전용 공장을 별도 법인화한 신진지프자동차가 출범한 년도이며, 주례 공장은 이미 그 이전인 1970년 4월에 완공되었다. 다만 쌍용자동차 측에서 내는 홍보 자료에는 1974년 10월 부터 생산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1969년 11월 부터 1974년 9월 까지 AMC와의 합작법인이 생기기 이전의 연혁은 쌍용자동차의 전신중에 하나인 신진지프자동차에 계승되지 않고 기존의 법인인 신진자동차공업에 계속 남았다가 2017년 현재는 그 후신인 한국GM으로 연혁이 계승되는 바람에 이 시기의 연혁은 쌍용자동차의 공식적인 연혁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진지프의 최초기 생산분(1969년 11월~1970년 3월 식) 450대는 지금의 한국GM 공장인 인천 부평공장에서 생산되었다. 다만, 한국GM 측에서는 딱히 그 연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2011년에 대우 브랜드가 폐지되고 쉐보레 브랜드로 통폐합되다 보니 한국GM 측에서는 자사 SUV의 연혁을 쉐보레 브랜드(1935년 쉐보레 서버번)에서 기원을 찾게 되면서 1969~1974년의 지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이유도 없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2020년 현재는 쌍용자동차의 공식적인 연혁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모델별 설명



2.1. 1세대 (코란도 지프, CJ/KH-7, 1969~1995)


'''쌍용자동차의 준중형 SUV 모델'''
'''코란도 지프'''

뉴코란도

액티언

코란도C

코란도

2.1.1. 신진 지프 1기형 (1969~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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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식 신진 지프
첫 생산 모델은 1969년 11월에 신진자동차 시절에 출고되었으며, 윌리스 CJ-5[8]를 국내에 도입한 모델이었다. 1969년 11월부터 1970년 3월까지는 신진자동차 인천 부평공장에서 5개월간 450여대가 생산되었지만 1970년 4월부터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의 신진자동차 부산 주례공장[9]에서 생산되었다. 당시 주례공장 완공 당시에 정재계의 유명인사들이 참석하거나 축사를 하기도 했고, 미스코리아 진을 태운 지프차가 부산시내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등 완공을 축하하는 행사를 크게 치뤘으며, 생산규모는 종전인 월 90대 규모에 비하면 5배 이상이 늘어난 월 500대 규모였다. #
당시에는 AMC 2,200cc 4기통 허리케인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숏바디 소프트탑과 하드탑이 출시되었지만 1971년에 라인업 추가로 픽업트럭과 10인승 롱바디가 발매되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검은색 지프는 당시 군사정권의 관용차로 널리 이용되었으며, 당시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서도 거의 필수요소로 등장한다. 물론 오늘날의 시대극에서는 신진지프를 소품으로 구하기가 어려워서[10] 쌍용자동차 시절에 생산된 각코란도를 검은색으로 도색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70년대의 관용차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차종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11]
전술한 이유로 인하여 회사가 나누어지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쌍용자동차의 공식적인 연혁에는 포함되지 못하고 이 시기의 연혁은 한국GM에 남아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50년이 지난 2019년이 되어도 쌍용자동차에서 코란도 50주년이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애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1997년에 쌍용자동차가 한국GM의 전신이 되는 대우자동차에 잠시 인수되었을때는 1969~1974년의 연혁도 코란도의 연혁에 잠시나마 포함되었다가 쌍용자동차가 대우자동차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1969~1974년의 연혁도 다시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연혁을 되찾은 것인지 2020년 현재는 쌍용자동차 홈페이지 연혁란에 다시 포함되어 있다. #

2.1.2. 신진 AMC 지프 2기형 (1974~1980[12])


[image]
1974년식 신진 지프
1974년에 신진자동차 부산 주례공장을 AMC와 50:50대 합작으로 별도 법인화 하면서 신진 지프 자동차(현 쌍용자동차)가 출범하였는데#, 이때는 무려 AMC의 3,800cc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이 탑재되었다.[13] 지금봐도 엄청난 배기량이지만 당시 국산차의 기함모델이었던[14] 레코드가 4기통 1,900cc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갑절이 되는 3,800cc 배기량은 당시에는 오버스펙이었다. 그 덕분에 당시 지프차량 치고는 최고시속 160km/h까지 달릴 수 있었던 상당한 고성능이었다. 그리고 롱바디 모델이 크기가 더 커지면서 10인승에서 12인승으로 탑승 인원도 늘어났다.
하지만 오일쇼크로 인하여 오버스펙에다가 연비가 떨어지는 3,800cc 가솔린 엔진의 신진 지프는 '''판매부진'''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1978년에 AMC가 지분을 철수하게 되었지만 이때부터 오해가 생겼는데, 신진지프가 리비아에 수출되면서 공산권 국가와 거래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AMC가 지분을 모두 회수하고 지프 브랜드까지 회수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리비아 수출이 화가 되어 지프 브랜드 사용이 불허된 것은 맞지만 지분회수의 실상은 판매부진으로 AMC가 지분을 회수한 것이고, 리비아 수출은 AMC 지분 회수 이후인 1년 후에 이루어진 일로, 오히려 AMC의 지분회수가 리비아 수출의 계기가 된 것. 그리고 신진지프의 리비아 수출로 지프 브랜드가 바로 회수되어 사용이 불허된 것은 아니고, 1980년대 초중반까지 지프 브랜드가 사용되었지만[15] 그 이후에 브랜드 추가 사용 연장이 불허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3,800cc 6기통 가솔린 엔진이 판매부진으로 AMC가 지분을 철수할 정도로 워낙 경제성이 떨어져서(3,800cc에 100마력) 1979년 7월 4일에는 새한자동차에서 생산되던 이스즈 엘프 4BA1 2,800cc 85마력 디젤 엔진을 탑재한 디젤 지프가 발매되었는데, 이게 그 문제의 리비아에 수출된 모델이다. # 디젤 지프의 개발은 1977년에 이미 광고를 냈던걸로 봐서 그 무렵에 개발이 완료되었던걸로 보이지만 AMC가 출시를 못하게 하는 바람에 출시가 지연되다가 AMC의 지분철수 계기로 어찌어찌하여 출시가 되어서 이전보다 좋아진 연비로 신진지프의 판매량을 회복시켰었다. 최고시속은 160km/h에서 130km/h로 낮아졌지만 경유를 연료로 사용하면서 유지비와 연비 문제를 크게 해소하였기에 시장에서의 반응은 좋았었다.[16] 게다가 당시 대한민국의 도로사정에서는 최고시속 130km/h 정도로도 충분하였었다. 사실상 이 디젤지프가 AMC의 경영 간섭에서 벗어난 이후 독자개발은 아니더라도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기획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정말 치사하게도 AMC의 경우도 1년후인 1980년에 자사가 생산하던 CJ-7 지프에 이스즈 C240[구형 코란도에 들어간 C223엔진과 기본 설계는 같으나 배기량이 좀 더 늘어난 엔진] 엔진을 얹은 디젤 지프를 발매하게 된다.)이전에 서술했듯이 AMC의 지분 회수는 1년전인 1978년 부터 이루어진것이고, 이 디젤 지프는 AMC가 지분을 철수하면서 신진 지프 경영에 더 이상 간섭을 하지 않게 된 것 덕분에 이스즈에서 디젤엔진을 공급받아서 만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AMC의 지분 완전 철수는 1979년 3월에 AMC가 마지막으로 남은 권리금 12억 3천 5백만원을 받으면서 경영 및 자본상으로는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으며 회사 이름도 신진지프자동차에서 지프를 빼고 신진자동차로 다시 환원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AMC가 지분을 회수하고 결별한 이후로 신진 지프는 독자성을 갖출 수 있게 되었는데, AMC가 지분 참여를 하던 시절에는 신진 지프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면서 마음대로 모델 변형 조차도 하지 못하게 횡포를 부렸다고 하며 당연히 타 회사의 엔진을 도입해서 쓰지도 못하게 했다. 신진지프의 판매부진의 원인도 AMC가 기름먹는 하마인 L6 3,800cc 엔진의 사용을 끝까지 강요했고 기름먹는 하마인 이 엔진은 오일쇼크로 인하여 신진지프를 판매부진에 빠뜨릴 수 밖에 없었다.[17] 결국 신진 지프 자동차는 활로를 찾기 위해 해외로 수출을 추진하려 했지만 AMC는 이것 마저도 막았다.
결국 AMC가 판매부진을 구실로 지분을 철수하면서 신진 지프는 AMC의 횡포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그 와중에 이스즈로부터 엔진을 공급받는 길이 열리면서 연비가 좋은 디젤 지프를 만들수 있게 되어 그것을 리비아에 수출하게 된 것이고, 그 디젤 지프로 부진에 빠졌던 판매량도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디젤 지프가 나름대로 흥하면서 4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대한민국 시장 한정으로 '''SUV=디젤차''' 라는 공식이 성립하고 있다.(물론 요즘은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와 환경문제로 조금 수그러든 감이 있기도 하지만...) 수출로 활로를 개척하면서 대놓고 리비아에 디젤 지프를 수출한것도 어찌보면 갑질만 하면서 신진자동차가 뭘 하려고 하면 계속 저지하다가 결국 판매량이 안나온다고 적반하장식으로 철수해 간 AMC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였을지도... 리비아 수출을 계기로 지프 브랜드 사용 연장도 불허되면서 AMC와는 완전히 결별하면서 아예 별개의 노선으로 가게 되지만, 신진 지프는 거기에 개의치 않고 1980년대 초반까지 한동안 계속 디젤 지프를 리비아에 꾸준히 수출했는데, 사실 1978년에 AMC와 결별하면서 신진지프자동차에서 신진자동차로 사명이 환원되어 향후 신진자동차로써의 고유모델 개발 및 해외시장 개척 같은 독자적 전개를 하려고 했다고 하며 1994년에 완공된 쌍용자동차 창원 디젤 엔진 공장도 사실은 1979년 AMC와 결별한 이후의 신진자동차 시절에 1982년 완공 목표로 추진하려다가 회사의 주인이 여러번 바뀌는 과정에서 계속 지연된것이 12년후인 1994년에 와서야 실현된것. 다만 신진자동차 시절의 창원공장 구상은 주례공장을 통째로 창원으로 이전해서 거기서 코란도 차량을 생산하려고 했지만, 쌍용자동차 시절에 와서는 계획 변경으로 디젤 엔진만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완공되었다.

2.1.3. 신진/거화 지프 3기형 (거화 디젤지프 코란도 1기형, 1980[18]~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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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신진 지프 슈퍼스타
그리고 이듬해인 1980년 연말에 1981년형 모델로 숏바디 모델의 외관을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변경한[19] 신형 모델인 소프트탑 SR-7, 테일게이트가 없는 5인승 하드탑 슈퍼스타, 테일게이트가 있는 6인승 하드탑 패트롤을 내놓는데, 이것이 신진자동차 브랜드로 발매된 마지막 모델이자, 흔히 생각하는 '''각코란도의 외형을 가진 최초의 모델'''이며 외관의 대대적인 변경과 더불어 와이드트랙 타이어가 적용되었고, 프레임이 CJ-5 기반에서 CJ-7 기반으로 바뀌면서 휠베이스가 약간 늘어났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이듬해인 1981년에 신진자동차의 사명이 다시 거화로 변경되면서[20]거화 지프 브랜드로 바뀌게 된다.
코란도 브랜드가 런칭 직전인 1982년에는 롱바디의 외관을 대대적으로 변경한 12인승 뉴훼미리와, 픽업트럭의 외관을 대대적으로 변경한 모델을 내놓고, 몇달 후에 추가로 9인승 훼미리 디럭스도 발매하게 되는데, 이때 출시된 롱바디 모델도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각코란도 롱바디의 모습을 처음으로 갖추게 된다. 이 롱바디 모델은 1990년대까지 전화국 차량으로 많이 도입되어서, 한때 전화국 차량의 대명사로 통했다. 코란도라는 브랜드도 정식 런칭 이전인 1982년 9월 서울무역박람회에서 처음으로 공개 되었으나 특허청에 상표 출원이 완료되기 까지는 시일이 걸렸기 때문에 코란도 브랜드는 이듬해에 적용되었다.
1983년에는 대망의 독자 브랜드인 '''코란도''' 브랜드가 상표가 출원되면서 런칭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각코란도라고 부르게 되지만 사실 코란도 브랜드가 런칭한 것을 빼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본네트와 스페어 타이어 커버에 KORANDO라는 영문 이니셜만 새겨진 수준이다. 그리고 코란도 브랜드가 런칭했다고 해도 지프 브랜드를 더 이상 쓰지 않게 되는것은 아니고, 이 시기에 정식명칭은 '''거화 디젤지프 코란도'''로 1984년까지 지프 브랜드는 병행해서 쓰게 된다. 사실상 이 시기의 코란도는 펫네임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 1983년 11월에 생산된 9인승 차량의 경우도 차량 등록증에도 코란도가 아닌 '''디젤지프 훼미리9'''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아마도 거화 시절 말기에 1985년형 코란도나 나름 고유모델이라 할만한 KR-600의 출시를 준비하면서 코란도 브랜드를 펫네임 형태로 우선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화가 동아자동차에 인수되기 전에 나온 사실상 마지막 모델로, 1984년에 거화가 흑자도산하면서 1984년 11월 20일에 동아자동차로 인수되는것이 확정되었기 때문.
운전해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후에 나온 C223 엔진이 들어간 구형 코란도 모델과 비교하면 엔진 배기량이 높다보니 힘이 좋고 꽤나 잘 나갔으며 이스즈제 수동변속기와 궁합도 잘 맞았었다고 한다.

2.1.4. 거화/동아 코란도 2기형 (코란도 85, 1985~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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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차량은 1986년식 동아 코란도로 마이너체인지 직전 모델이다.

거화가 판매할 막바지 시기(1985년)의 TV 광고.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85년 초에 거화가 동아자동차에 인수된 직후 85년형 모델이 출시되면서 코란도 브랜드 런칭 이후로 처음으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코란도라고 할 만한 모델이 등장한다. 또한 지프 브랜드도 이때 사라지게 되면서 아예 코란도 라는 이름을 쓰게 되며, 이때부터 코드명이 CJ-7에서 KH-7로 바뀐다.
엔진이 2800cc 이스즈 자동차 4BA1 디젤 엔진에서 이번에도 경제성 문제로 2238cc 이스즈자동차 C223[21] 73마력 디젤 엔진으로 다운사이징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12마력이 깎이는 안습적인 변화를 겪게 되고, 추가로 역대 각코란도 중에서 가장 배기량이 적은 이스즈자동차 G200z 2000cc 가솔린 엔진의 안습적인 모델까지 발되고 말았는데 판매량은 거의 없었다. 마력이 이전 모델에 비하면 낮아지기는 했으나 내부적으로는 경량화가 상당히 되어서 실제로는 큰 불편이 없었다고 한다.
그 외에 엔진 변경과 동시에 전장계통이 24V에서 12V로 변경, 와이퍼 구동부가 외부 돌출형에서 실내 매립형으로 변경되고, 군용차스러운 대쉬보드와 핸들도 깔끔한 승용차 느낌의 중앙집중식 계기판을 갖춘 플라스틱 대쉬보드로 변경되어, 실내는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다. 획기적인 실내의 변화와 달리 외관은 변동사항이 거의 없었다. 여담이지만 이때 적용된 핸들은 이스즈 패스터 픽업트럭이나 빅혼에 쓰인 물건이었다.
그리고 라인업이 정리되어 픽업트럭이 모델 체인지를 한지 불과 3년도 못채우고 단종되었고, 코란도 브랜드의 픽업트럭은 27년간 공백상태가 되었다가 2012년에서야 코란도 스포츠가 출시되면서 부활하게 되었다.
롱바디 모델도 9인승 모델만 남고, 12인승은 단종되고 만다.
이 모델은 잠시동안 부산 주례공장에서 생산되었으나, 얼마 후 경기도 평택시의 동아자동차 공장으로 일원화 하여 통합 확장 이전하게 되었다. 공장이 확장 이전된 이후 월 생산댓수가 증가하면서 출고 적체 현상이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2.1.5. 동아/쌍용 코란도 3기형 (뉴 코란도, 1986~1992)


그리고 이듬해인 1986년 6월에 코란도는 또 변화를 겪게 되는데, 동아자동차에 인수되었던 거화가 동아자동차에 흡수통합 되면서 테일게이트가 이전보다 더 커지고 뒷모습이 완전히 변화되고 본네트에 코뿔소 조형이 추가된 뉴 코란도가 출시되고, 이 외형은 단종 직전까지 큰 변화 없이 10년가량 유지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 쌍용자동차로 사명이 바뀌면서 '''쌍용 코란도'''가 되며, 데칼이나 앰블렘을 비롯한 자잘한 외장 부품이 변경되었다.
1988년 11월에 파생 차종인 스테이션 웨건형 코란도 훼미리도 등장하지만, 이름과 파워트레인만 공유했을뿐 '''그 외에는 전혀 다른 혈통의 차종이다'''.[22] 자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 참조.
1990년에는 일본 수입산 엔진 대신에 대우중공업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DC23 엔진[23]으로 변경된 1990년형 모델이 등장하는데, DC23 엔진은 이스즈 자동차 C223 엔진의 라이센스 생산 모델로 기본적인 특성은 비슷하지만 마력이 소폭이나마 상승한 78마력[24]이었고, 블럭은 같으나 국산화 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이 되는 바람에 헤드의 몇몇 부품이 호환이 안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대우중공업의 노사분규로 한동안 엔진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되자 1991년 5월 15일부터 24일까지 쌍용 코란도와 코란도 훼미리의 생산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그 사태로 인하여 엔진 공급선의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역대 각코란도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2600cc 이스즈 자동차 4ZE1 전자제어식 120마력 가솔린 엔진까지 탑재된 RX 2.6i 트림[25]과, 푸조의 XD3P 2500cc 79마력 디젤 엔진이 탑재된 RV 트림이 발매된다.
푸조 디젤 엔진 모델은 상급 모델로 그럭저럭 팔렸지만, 이스즈자동차 2.6 가솔린 엔진 모델의 판매량은 매우 적어서 지금도 환상의 각코란도로 여겨지고 있다.
여담이지만 1986년 7월에 국산차 최초로 일본에 수출된 차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에는 토요타 랜드크루저, 닛산 패트롤, 미쓰비시 파제로, 이스즈 빅혼 같은 훌륭한 동급 차종들이 많이 있던데다가, 동아 코란도를 일본제 차량들 보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고급화 전략이랍시고 고배기량 엔진을 올리고(내수용과 달리 AMC L6 4.2 엔진이 들어갔다) 내 외관을 꾸며서 다소 높은 가격대에 내놓다보니 동급 일본차종들에 비하면 가성비가 현저히 떨어졌던 만큼 판매량은 많지 않았었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일본 직수입 이스즈제 C223 엔진 + 이스즈제 수동 변속기가 들어간 차량을 가장 높게 쳐주는데, 이후에 생산된 국산 대우중공업제 DC23엔진 + 통일중공업제 수동 변속기가 들어간 차량 보다 엔진과 변속기의 궁합도 잘 맞고 밸런스 및 내구성도 더 좋다고 한다.

2.1.6. 쌍용 코란도 4기형 (93 이노베이션 코란도, 1993~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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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형 코란도
하지만 각코란도는 여러번의 변화를 겪었지만 싸구려 실내는 여전했고 계속 악평이었는데, 1993년에 93 이노베이션의 일환으로 출시된 1993년형 모델에서 각코란도의 실내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럽게 변경되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 수준. 그 외에 프레임도 오랫동안 우려먹던 2중구조 프레임에서 쌍용자동차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3중 구조 프레임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이 형태로 큰 변화없이 1995년까지 생산되었지만 이듬해 뉴 코란도의 출시를 앞두고 1995년 연말에 26년 만에 퇴장하게 된다.
후기모델은 지금도 중고시장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입수하기가 수월하고 년식대비 클래식한 외형으로 클래식카 애호가들에게도 많이 사랑받고 있으며, 정통 지프 특유의 오프로드 성능으로 지금도 오프로드 매니아들에게도 많이 사랑받고 있다.[26]
각 코란도는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 중에서는 풀 모델체인지가 없는 단일 모델로 26년이라는 최장수 생산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기록은 한동안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으나, 다마스라보가 2021년 기준 30년간 생산하고 단종됨으로 인해 기록이 깨졌다.

2.2. 코란도 훼미리 (1988~1996)


'''쌍용자동차의 중형 SUV'''
코란도 훼미리

무쏘

카이런
[image]
전기형
[image]
1991년 이후 후기형
SSANGYONG KORANDO Family

'''파워가 다르다. 생활이 다르다.'''[27]

이쪽은 '''국내 최초의 5도어 스테이션 왜건형 SUV.''' 국내 최초로 SUV를 제한된 목적이 아닌 다목적 차량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끔 하여 한국에서 SUV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한 차량 중 하나였다.
현재까지 출시되었었던 쌍용 SUV의 진정한 조상님이라 볼수 있다.
그 시초는 거화자동차 시절인 1982년 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1984년에 무역박람회에서 공개한 고유모델[28][29] 시제차인 KR-600이 원형으로 거화자동차 시절부터 추진되었던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4년에 (주)거화가 창업자의 원정도박에다가 창업자 부자 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인하여 어이없게도 흑자도산하여 회사 자체가 동아자동차로 넘어가버렸고, 1986년에는 동아자동차가 무리하게 (주)거화를 인수했던 것이 화가 되어 쌍용그룹으로 팔려 가면서 출시 이전의 개발 단계에서 두 차례나 주인이 바뀌고 말았다.
출시가 계속 지연되던 이유로 주인이 자꾸 바뀌면서 혼란스러웠던 회사 상황도 있었지만 당시 군사정부는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라는 말도 안되는 조치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군사정부는 거화-동아자동차가 이 차를 개발하는것을 보고 4륜구동 SUV를 넘어서 일반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꼼수로 보고 출시를 계속 불허했었다. 물론 거화-동아자동차 측에서는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의 4륜구동 SUV의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전세계적으로 4륜구동 SUV는 기존의 지프차 형태 대신에 이러한 스테이션 웨건 형태가 대세라고 군사정권을 설득하기는 했었지만... 이런 연유로 출시가 지연되다가,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가 해제 되고 우여곡절 끝에 쌍용자동차로 사명이 바뀐 이후인 1988년 11월에 겨우 출시될 수 있었다. 이스즈 제 파워트레인은 기존의 코란도와 동일했지만 코란도가 AMC 지프 CJ-5/7 기반이었던것과 달리 코란도 훼미리는 이스즈 트루퍼(빅혼)의 프레임을 기반으로 해서 계보 자체가 다른 차종이었다. [30] 첫 출시 당시에는 3저 호황의 끝자락에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난지도 이제야 1달 하고도 19일이 지난 시점 이었으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로 임금도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인당 국민소득(GNP)이 3천달러를 넘기고 4천달러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고 민주화로 대통령 직선제가 막 도입되었던 시절이다 보니 이전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여유로워진 사회적 분위기에다가 이 차종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패밀리카를 표방하던 코란도 훼미리는 사회적으로 정말 적절한 시기에 등장하여 당시의 시류를 제대로 타면서 가족 중심의 여유로운 레저활동에 관심을 가지던 중산층들의 새로운 패밀리카로 주목을 받았으며, 출고 대기기간이 3~4개월에 달했을 정도로 초기에는 판매가 호조 였었다. #
이 트루퍼의 프레임은 코란도 훼미리를 시작으로, 쌍용에서 생산공법에 조금씩 개량을 가하고, 또 차급에 맞게끔 프레임의 전장을 약간씩 조절하여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즉, 쌍용자동차 프레임은 코란도 훼미리때부터 2017년 지금까지도 실질적으로 달랑 1개(...)인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 쌍용자동차 전문 공업사를 방문하여, 대파사고로 인한 수리를 위해 캐빈을 분리하여 프레임만 달랑 놓여져 있는것을 보면, 정말 어느차의 프레임이 어떤것인지 모를정도로 다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이제 곧 데뷔가 이루어질 쌍용의 Y400은 드디어 이 낡디낡은 프레임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여 개발한 프레임이 사용된다 한다! 다만, 그 동안 프레임 자체의 기술적인 변화는 많았었는데, 코란도 훼미리 초기형은 2중 구조 강철 프레임에 판스프링 리어 서스펜션을 썼지만 무쏘 출시 몇 달 전에 나온 93년형 부터 무쏘와 같은 5링크 리어서스펜션으로 서스펜션 변경과 동시에 무쏘 처럼 3중 구조 강철 프레임으로 변경되어 도중에 하체가 크게 변경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무쏘를 개발하면서 무쏘에 쓰려고 개발하던 3중 구조 강철 프레임과 5링크 서스펜션 같은 하체 설계를 93년형 코란도 훼미리에 선행 적용한것으로 보이며, 결국 93년형 코란도 훼미리는 일종의 무쏘의 파일럿 모델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3중구조 프레임은 무쏘를 거쳐서 렉스턴 1세대에 까지 이어졌었다.
사실 코란도 훼미리가 출시되기 전에도 지프 CJ-5/7기반의 쌍용 코란도 롱바디가 이미 12/9인승 훼미리라는 네이밍을 쓰고 있었는데, 어찌보면 CJ-5/7 기반의 코란도 롱바디의 후속이라고 볼 수 도 있겠지만 코란도 훼미리 출시 후에도 지프 CJ-5/7 기반의 9인승 훼미리가 계속 병행생산되어서 계보가 난해했다.
출시 이듬해인 1989년에는 900만원대로 가격을 낮춘 보급형이 출시되었으며, 1990년에는 일본산 이스즈 C223 엔진에서 대우중공업이 이스즈 자동차로 부터 라이센스를 얻어 생산한 국산 DC23 엔진으로 바뀌었다.
1991년 4월에는 처음으로 페이스리프트한 1991년형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대우중공업의 노사분규로 인하여 엔진 생산이 중단되어 엔진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자 거기서 엔진을 공급받았던 쌍용자동차에게도 그 먹구름이 드리우게 되면서 1991년 5월 15일부터 24일까지 코란도와 코란도 훼미리를 한동안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다. 엔진 수급 문제가 계기가 되어 쌍용자동차는 엔진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시작하면서 1991년 7월에는 이스즈 4ZE1 2.6리터 가솔린 엔진이 들어간 RX 2.6i 트림과 1991년 9월에는 푸조 XD3P 2.5 디젤 엔진이 들어간 RV 트림을 출시했지만 얼마 후에 미쓰비시 파제로를 들여온 갤로퍼가 출시되면서 코란도 훼미리는 물론이고 쌍용차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쌍용은 1992년 11월에는 무쏘의 출시에 앞서서 5링크 리어 서스펜션과 3중 구조 강철 프레임을 선행 적용한 파일럿 모델인 1993년형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해서 무쏘 출시 이전까지 시간을 잠시 끌었고, 1993년 8월에 후속이라고 할만한 무쏘가 출시되어 갤로퍼에게 반격을 날린 후에도 코란도 훼미리는 무쏘보다 한급 아래의 차종으로 계속 생산이 되었고, 1993년 12월 28일에는 다카르 랠리에 참가하여 이듬해인 1994년 1월 18일에 국산차 최초로 다카르 랠리 공식 완주에 성공했다.[31] 1994년 10월부터는 무쏘가 파라오 랠리와 다카르 랠리에 참전하게 되면서 코란도 훼미리에게는 마지막 모터스포츠 참전 기록이 되었지만 그 직전인 1994년 8월에 무쏘 601EL과 같은 엔진인 메르세데스-벤츠 OM601 79마력 2.3리터 4기통 디젤엔진이 들어간 최후기형인 뉴 훼미리가 출시되었는데, 코란도 훼미리의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무쏘 출시 이후 무쏘가 쌍용자동차의 주력으로 엄청나게 판매된 것과 다르게 코란도 훼미리는 상대적으로 비인기 차종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1996년 7월에 각코란도의 후속 모델인 뉴 코란도가 출시되면서 코란도 훼미리의 입지는 엄청나게 위협을 받아 찬밥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코란도 훼미리는 1996년 연말에 조용히 단종되면서 8년간의 모델 사이클을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국내 최초로 도입된 스테이션 왜건형 SUV라는 컨셉이 오늘날 수많은 국산 SUV의 컨셉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출시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발매 이전에 숏바디 모델도 계획했었던것인지 숏바디 모델의 렌더링이 있다. #
2분33초에 쌍용 훼미리 공장에서 출시전 훼미리 모델이 모티브로해서 생산 영상이나왔다.


2.3. 2세대 (뉴 코란도, KJ/K100, 1996~2005)


'''쌍용자동차의 준중형 SUV 모델'''
코란도 지프

'''뉴 코란도'''

액티언

코란도 C

코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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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 (1996)
대우 코란도 (1998)
2001년형
2004년형
2005년형

출시 당시 광고

출시 당시 홍보영상[32]


2005년 단종 직전 마지막 광고[33]

'''젊음의 드림카'''

'''자연주의 본격 레저카'''

1996년 7월에 풀 체인지를 거친 뉴 코란도가 출시되었다. 기본 베이스는 무쏘와 같고, 1993년부터 KJ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3년간 1천 2백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새롭지 않은 것은 이름 뿐이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워 출시했다. 1996년 7월에 출시할 당시에는 무쏘에 장착되었던 보그워너제 5단 수동변속기가 장착 된 모델만 있었지만, 출시한 그 해 10월에는 무쏘에 장착되었던 메르세데스-벤츠 4단 자동변속기 모델이 추가되고, 1997년 1월에는 가솔린 3.2 엔진을 장착한 가솔린 모델이 추가되고, 동년 5월에는 저렴한 세금[34]의 밴 모델이 추가되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정통 지프 스타일을 살리면서 승용차의 디자인 요소를 조합하고 인테리어의 경우 멋보다는 실용성에 강조되어 매우 쓰기 편한 디자인 큐를 보여주어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디자인[35]과 밴모델의 저렴한 세금을 장점으로 내세워 젊은 층으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 1998년 8월에는 4기통 논터보 2.3 디젤 모델을 대체할 4기통 터보 2.3 디젤 모델과 5기통 터보 2.9 디젤 모델과 5기통 터보 2.9 디젤 엔진을 한정으로 소프트탑 모델이 추가되고, 수동변속기의 경우 기존의 보그워너제 5단 수동변속기에서 통일중공업(현:S&T 중공업)제 5단 수동변속기로 변경, 자동변속기의 경우 기존의 메르세데스-벤츠제 기계식 4단 자동변속기에서 DSI[36]제 전자식 4단 자동변속기로 변경, 사이드 미러를 승용차 타입으로 변경, 테일 램프의 디자인 변경한 1999년형 뉴코란도를 출시하였고, 이때부터는 5기통 논터보 2.9 디젤 엔진이 승용모델에서는 삭제되고 밴 모델에만 적용되었다.
  • 2000년 4월에는 5기통 터보 2.9 디젤 엔진이 밴 모델에 추가되고, 5기통 터보 2.9 디젤 승용 모델을 한정으로 16인치 휠이 추가되고 5기통 논터보 2.9 디젤 밴 모델과 4기통 터보 2.3 디젤 승용 모델을 한정하여 4WD 사양이 삭제된 2WD 사양인 CT 모델을 추가한 2000년형 뉴코란도를 출시하였다.
  • 2001년 1월에는 후방 측면 표시등이 추가되고 15인치 휠의 디자인이 변경되고, 스페어 타이어의 데칼을 변경한 2001년형 뉴코란도를 출시하였다.
  • 2002년 8월에는 핸즈프리 등의 편의사양이 추가되고, 5기통 터보 2.9 디젤 엔진만 나왔던 소프트탑 모델을 한정으로 가솔린 4기통 2.3 엔진을 장착한 가솔린 소프트탑 모델이 추가된 2003년형 뉴코란도를 출시하였다.
  • 2004년 1월에는 판매량이 적은 가솔린 모델인 가솔린 4기통 2.3 모델과 가솔린 6기통 3.2 모델의 단종을 시작으로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5기통 논터보 2.9 디젤 밴 모델과 4기통 터보 2.3 디젤 모델이 단종되고, 5기통 터보 2.9 디젤 모델만 남아서 엔진 EGR 시스템을 진공식에서 전자식으로 변경하였고, 기존의 통일중공업(현:S&T 중공업)제 5단 수동변속기에서 현대 트랜시스제 5단 수동변속기로 변경하고, 계기판은 자동변속기 시프트 인디케이터와 키로수 표시 부분만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변경하고, 외장재는 사이드 라인에 데칼 스티커를 추가하고 스페어 타이어의 데칼을 변경 하는 것은 물론 사이드 리피터의 컬러가 옐로우에서 화이트로 변경 되고, 내장재는 그레이 컬러에서 블랙컬러로 변경, 우드 트림에서 메탈 트림으로 변경, 290SL과 290SR 트림이 각각 TX-5, TX-7 트림으로 교체된 2004년형 뉴코란도를 출시했다.
  • 2004년 10월에는 외관의 경우 사이드 라인에 데칼 스티커와 후방 측면 표시등을 삭제하고 스페어 타이어 커버 디자인,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 사이드 앰블렘 디자인, 15인치 휠과 16인치 휠의 디자인이 변경되고 전면 방향지시등 컬러가 옐로우에서 화이트로 변경, 컬러 아웃사이드미러를 적용하고, 내장재는 2개였던 1열 컵홀더를 3개로 추가하고, 1열의 고정식 재떨이와 1열 시트의 팔걸이를 삭제하는 대신 센터페시아 하단 트레이와 이동식 재떨이를 추가 시키고 높이를 들어 올린 신형 대용량 콘솔박스로 변경된 2005년형 뉴코란도를 출시했다.
그러나 여러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 안정성 - 무게 중심이 높고 휠 베이스가 극단적으로 짧다 보니 직진 안정성이 심각하게 불안하다. 후륜구동인 탓에 노면 컨디션이 조금만 안좋아도 차체가 쉽게 스핀 해 버리는데 상기한 대로 휠 베이스가 짧기 때문에 하중 이동이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다 보니 운전자가 컨트롤 없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가장 심각한 점은 급제동 하면 차체가 180도~360도 회전한다 라는 점이다. ABS이고 나발이고 차체가 워낙에 불안정하다 보니 다른 차였으면 안 나도 될 사고가 급제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것. 운전자의 컨트롤도 불가능하다. 특히 빗길이나 빙판길이라면 상황이 심각해졌다.
특히나, 뒤가 드럼 브레이크인 ABS 미장착 차량의 경우 드럼에 물이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면(비 오는날 세워 뒀다가 출발 직후) 브레이크를 조금만 세게 잡아버리면 바로 뒤가 잠겨버린다. 드럼 브레이크의 대표적인 단점인데, 여기에 휠 베이스까지 짧고 무게 중심이 높으면 바로 스핀하게 되는것. 비 오는 날은 이런 특성을 염두 해 두고 몇 번 브레이크를 살살 밟아 뒤의 드럼을 말려 놓고 주행하여야 한다. 드럼 브레이크 문서 참조.
  • 빅 셰이크 - 당시 쌍용의 엔진은 완전 기계식 직렬 플런저로 제어되는 방식이었다. (PES-보쉬, 지멘스 타입) 이 플런저는 완전 기계식으로 작동했는데 RPM보상에 따른 분사시기 제어를 플런저 앞에 붙은 회전메스에 의존하는 기계식 타이머로 작동시켰다. 문제는 이 기계식 타이머의 가격이 약 30만 원대로 만만치 않자(순정은 독일 벤츠제.) 국산화 시키면서 가격대를 7~9만 원대로 낮출 수 있었다. 약 1/3수준으로 가격을 떨어뜨린 것은 좋았으나 수명마저 1/3으로 떨어졌다.[37] 이로 인하여 저 rpm에서 엔진이 말타는것처럼 떨리는 증상이 발생하였고 이는 결국 대규모의 안티 쌍용을 끌어모으는 결과를 일으켜 법정 싸움까지가 가서 보증기한 없이 폐차 때까지 무상 수리[38]라는 쌍용의 골칫덩어리가 된다. 이는 렉스턴(2003년형 일부), 뉴 코란도, 뉴 무쏘 공통의 결함으로 쌍용 A/S센터의 최고 골칫거리였다. 커먼레일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까지 쌍용 디젤의 흑역사라고 할만한 사항.
  • DSI[39] 미션 - 기존의 기계식 벤츠 4단 자동 변속기에서 전자식 자동 변속기로 바꾸고 원가도 절감할 겸 1999년형 부터 DSI 미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미션은 쌍용측에서 무교환 미션오일(교환주기 10~12만km)으로 주장하고 미션오일 배출구를 없애버렸는데 이게 한국의 주행환경상 가혹환경 교환주기에 맞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일반 미션 오일과 같은 주기의 교환을 행해야 했다. 하지만 쌍용의 오일 배출구 미장착 병크로 인해 남들은 쉽게 교환할 미션오일을 이쪽은 오일팬을 다 뜯어내고 교환하는 수준. 게다가 오일 주입 역시 고난이도.
DSI 4단 자동 변속기의 경우 고질적인 문제인 1-2단 변속 충격이 있으며, 운전자가 익숙해 지면 엑셀을 적당히 밟으면서(...) 변속 충격을 완화 시킬 수 있다. 습관이 되면, "어? 충격이 사라졌네!" 수준까지 도달하지만, 의식해서 꾹 밟아보면 기계적인 문제는 여전히 나타난다. 그래도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상당히 해결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DSI 4단 변속기는 오일도 TQ95를 만족하는 ATF를 사용해야 한다. 이유는 변속기 온도가 매우 높기 때문. 이 변속오일의 경우 Castrol에서 생산하는데, 타 회사에서 생산하는 오일을 구하기 매우 힘들다. 가격대가 높은 합성 변속유도 이 규격을 패스를 하지 못하니 쓸데없이 많은 돈주고 넣지말자. 어차피 고온에 산화되어 오일품질 똥망. 그냥 쌍용 순정유로 가든지 DEXRON3급으로 넣는다면 오일쿨러를 추가해 주는게 좋고, 아니라면 교환주기를 짧게 잡아야 한다.
  • 너무 작은 브레이크 디스크 - 차체는 2톤에 육박하는 무게였으나 1피스톤 캘리퍼가 들어간 디스크는 그에 걸맞지 않았고 보증기간 이내에도 문제가 속출. 차량 보증기간이 끝나기 전에 몇번씩 디스크를 교환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다. 법정 싸움까지 가기도 했었다.
  • 수출용 차량중에 좌측통행 국가 현지화 부재 - 현대 갤로퍼 또는 미쓰비시 파제로가 우측 통행 국가에 테일 게이트를 왼쪽으로 개폐하도록 설계되어 비판이 있지만, 쌍용 코란도도 이러한 논란을 면하기 어려운데 좌측 통행 국가에 테일 게이트를 오른쪽으로 개폐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불편함의 문제로 비판 받았다.

2.3.1. 제원


코란도 Korando
출시일자
1996년 7월
이전 세대 모델
코란도
다음 세대 모델
액티언
프로젝트코드명
KJ
엔진
디젤 : OM601, OM602, OM661 TDI, OM662 TDI
가솔린 : M104 E32, M111 E23
배기량
디젤 601/661 : 2,299cc, 602/662 : 2,874cc
가솔린 E32 : 3,195, E23 : 2,295cc
구동방식
FR/4WD
최고출력
문단 내용 참조
최대토크
문단 내용 참조
전장
4,260mm → 4,330mm[40] → 4,340mm[41]
전고
1,735mm[42]
전폭
1,855mm
축거
2,480mm
공차중량
1,715kg ~ 1,900kg
전륜 서스펜션
더블 위시본
후륜 서스펜션
5링크 코일
전륜 브레이크
V디스크
후륜 브레이크
드럼, 디스크
변속기
보그워너 수동 5단 → 통일중공업 수동 5단 → 현대 트랜시스 수동 5단[43]/메르세데스-벤츠 자동 4단 → DSI[44] 자동 4단[45]

2.3.2. 라인업


  • 601
배기량
2,299cc
최대출력
79ps/4,000rpm
최대토크
16.0kg.m/2,400~2,800rpm
직렬 4기통 2.3L 자연흡기 디젤엔진을 장착한 모델. 현 시점으로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미칠듯이 낮은 출력 때문에[46] 판매량도 많지 않았으며 1999년에 단종되었다가 터보차저를 얹고 부활한다.
  • 602EL / Youth
배기량
2,874cc
최대출력
95ps/4,000rpm
최대토크
19.6kg.m/2,400~2,800rpm
직렬 5기통 2.9L 자연흡기 디젤엔진을 장착한 모델. 초기 코란도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출력은 낮았지만 터보차저 모델에 비해 내구성과 정비 측면에서 유리했다. 연비 또한 터보 모델에 비하면 양호한 편. 자동변속기는 답답하고 수동변속기는 자동변속기보다 잘 나가지만 클러치가 둔하다. 암튼 특유의 묵직하면서 황소소리가 나는 엔진음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승용 5인승 모델도 있었으나 터보차저가 장착된 1999년 이후로는 밴 모델에만 이 엔진을 장착해서 판매했다. 연식에 따라서 662라는 엠블럼으로 판매되기도 했으며 2003년에 환경규제 문제로 단종되었다.
602EL 단종 후에는 Youth라는 밴 전용 모델이 출시되었다. 기존 602에 적용되던 255사이즈 타이어를 235로 줄이고 ECM기능이 없는 수동 조절 D/N 룸미러, 우레탄 스티어링/기어노브, 도난방지 기능 제외(양방향 시동 기능은 있음), 우적감지 와이퍼를 제외하여 가격을 조금 인하, 대학생들이나 사회 초년생들을 타깃으로 나왔으며 기존 602에 적용되던 1단 오디오가 아닌 승용 모델 고급 트림에나 달리던 2단 CDP오디오를 기본 장착하여 판매하였다. 한마디로 602EL에 일부 옵션을 빼고 오디오만 고급 옵션을 달아서 가격을 낮춘 모델이라 보면 된다. 쌍용이 자연흡기 602 엔진 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내놓은 모델. 1993년 무쏘부터 이어온 자연흡기 602 엔진을 장착한 마지막 차량이다. 후기형 TX로 넘어가기 이전인 2003년 말~2004년 초에 팔렸다.
  • 230SL
배기량
2,299cc
최대출력
101ps/4,000rpm
최대토크
21.5kg.m/2,400rpm
직렬 4기통 2.3L 터보차저 디젤엔진을 장착한 모델. 상대적으로 저렴한 세금의 버프를 받기는 했으나 승용디젤답지 않은 소음과 진동, 그리고 낮은 rpm구간에서의 스트레스가 심했으나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판매량은 꽤 많았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판매.
  • 290SL / 290SR
배기량
2,874cc
최대출력
120ps/4,000rpm
132ps/4,000rpm
최대토크
25.5kg.m/2,400rpm
29.5kg.m/2,400rpm
커먼레일 엔진이 도입되기 전까지 쌍용을 책임졌던 직렬 5기통 2.9L 터보차저 디젤엔진을 장착한 모델.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판매되었으며, 코란도 승용 모델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소프트 탑 모델도 판매되었다.
290SL과 290SR의 차이는 엔진 및 옵션이다. 290SR에 달린 132마력 엔진의 경우 당시 커먼레일 엔진이 없었던 쌍용이 현기차를 의식해 기존 120마력 엔진에 플런져 내경을 업글하여 내놓은 엔진이라 커넥팅로드 및 피스톤등 일부 파츠의 경우 강화부품을 쓴다. 그런데 오버히트를 잡지못하고 매연 및 내구성에 문제가 많았으며 개발한 쌍용도 이를 알고 1년만에 단종한 흑역사가 있으며 신뢰도 좋은 메르세데스-벤츠 엔진의 명성을 깨뜨린 엔진이기도 하다.[47] 엔진코드는 D29STP.
  • 290S
밴 고급형 모델로, 290SL/SR과 제원이 같다. 120마력 터보인터쿨러 OM662LA엔진이 들어가고,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판매되었다. 대우그룹의 해체로 인해 따로 떨어져나오게 된 쌍용이 차를 더 많이 팔기 위해 내놓은 모델로 저렴한 유지비와 강력한 파워로 이후 코란도 판매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 TX-5 / TX-7
290SL/SR과 제원이 같고 2004년부터 2005년까지 판매되었다. 우트트림에서 메탈트림으로 스포티한 느낌을 주게 실내컬러가 변경되었고 계기판, 플로어 콘솔, 변속기 노브등의 디자인이 변경되었으며 CD플레이어가 기본으로 적용되는 등 주 고객인 젊은 층을 사로잡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모델. 하드탑 승용, 소프트탑 승용, 밴 모델이 있었다. 두 모델의 차이는 290SL, 290SR처럼 단순히 옵션이 다른 정도.
  • 230SR
배기량
2,295cc
최대출력
149ps/6,000rpm
최대토크
21.6kg.m/4,000rpm
직렬 4기통 2.3L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얹고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판매되었다. 소프트탑 모델이 약간 팔렸으나 가솔린 SUV의 높은 유지비 때문에 거의 판매되지 않았다.
  • 320LX
배기량
3,199cc
최대출력
218ps/5,750rpm
최대토크
31.6kg.m/3,750rpm
체어맨 CM600S에 얹힌 M104 직렬 6기통 218마력 3.2L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얹고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판매되었다. 풀타임 4륜구동을 장착했으나, 230SR처럼 소프트탑이 있던 것도 아닌 데다 무쏘 IL6 3200에서 악명을 떨친 거지같은 연비 덕분에 판매량은 저조했다.
가솔린 모델은 전자 제어식 서스펜션이 기본 장착되었고, 디젤 모델에서는 290SR 한정으로 선택사양이었다.
또한 파트타임 4륜구동 모듈을 빼버린 2륜구동도 있다. 일명 CT라는 모델인데 저가형 트림에만 있다. 밴은 602EL와 Youth, 승용은 230SL만 있다. 후기형 TX는 밴, 승용 모두 저가형인 TX5만 있다. 뉴코란도는 후륜구동에 전장이 짧고 전고는 높아 눈길에 CT를 타면 등에 땀이 나는걸 경험할 수 있다. CT계열 차량 장점은 4WD 관련 장비가 제외된 관계로 동계열 차량보다 100kg 이상 차량 중량이 적으며 이는 연비 측면에서 이득으로 이어진다. 또한 앞 조인트 샤프트, 앞 디프기어, 4륜용 진공허브, 4륜전환용 TC모터등이 삭제됨으로 정비요소가 많이 줄어들어 관리하기 상당히 용이하다.


3. 코란도 브랜드


1983년 코란도 브랜드가 처음 등장한 이래로 2005년 뉴코란도의 단종으로 중간에 명맥이 끊겼지만 2011년 3월 코란도C의 출시 이후 다시 부활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국산 승용차 최장수 브랜드'''로 기록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쌍용자동차는 코란도C 이후 생산되는 모든 레저형 차량에 코란도 브랜드를 붙이기 시작했다. 다만 렉스턴의 후속 모델에 대해서는 코란도 브랜드를 이어갈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48]였다가 결국 후속 차종이 G4 렉스턴으로 출시되면서 렉스턴에 대해서는 코란도 브랜드를 쓰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49]
코란도 브랜드를 적용한 차량은 코란도, ,[50] ,[51] [52] 4종이 있다.

4. 여담



4.1. 2세대(뉴 코란도, KJ/K100)


  • 개발 당시에는 기아 레토나와 함께 당시 차세대 군 기동 장비의 후보로 제안했으나 레토나[53]에 패했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업 판매를 시작했다. 군 제안 당시 모델 명은 MJ.
  • 쌍용 무쏘와 함께 러시아 타가즈사에서 라이센스 생산했었다.바디를 개조한 5도어 모델도 생산됐었다.
  • 네티즌들은 뉴코란도의 디자인을 좀 더 보완해서 나오면 당장 사겠다고 하지만, 라이센스가 아예 판매된 상태라 다시 동일 디자인으로 쌍용측에서 차량을 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프레임바디의 오프로더는 개발 과정이 승용형 SUV 보다 까다롭고 그렇게 각고의 노력을 들인것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기에, 당장 재정이 넉넉치 않은 쌍용이 비싼 도박을 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뉴코란도 당시에도 세금 싼 맛, 경유값이 휘발유 대비 확실히 싸던 시절이라 팔린 것이지, 뉴코로 오프를 뛰는 비율은 얼마 없었다. 지금 자동차세기준으로는 뉴코란도를 신차로 내놓은 경우, 화물차세금이 아닌 승용차세금이 적용된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지프 랭글러도 2도어형만 존재했고 세계 각국의 여러 SUV들도 갤로퍼 처럼 5도어형 외에 2도어 숏바디 모델이 별도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54], 이 중 대다수는 모델체인지를 거치면서 2도어형 모델을 단종시켰고, 랭글러 조차 한국에 신모델을 출시할 때 5도어만 먼저 도입한 점 까지 감안한다면 2도어형 SUV는 시장성이 상당히 낮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
  • 정세균국회의장이 뉴 코란도 소프트탑을 선거 유세용 차량으로 사용했다.[55] 이름과 연관 지어서 네티즌이 붙여 준 이 차의 별명은 소독차(...).
  • 국산화된 부품과, 예전 도입시기 부품의 가격 차이가 엄청나다. 특히나 초창기 도입형 엔진의 경우는 물건이 거의 벤츠제. 거기에 이정도는 국내생산 부품으로 공급해도 되지 않나? 하는 부품까지도 여전히 수입하고 있는 부품이 많아서 수리비가 상당히 깨지기도 한다. 단순히 외부구동 벨트만 해도 사제품은 얼마 안하지만, 정품은 그 4~7배정도 하는 가격. 눈탱이 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보면 메르세데스-벤츠 마크가 선명하고 제조사는 허치슨. 제조국은 마데 인 EU. 텐션쇼바같은 소소한 물건도 MADE IN GERMANY. 변속기는 미국 보그워너 등 몇몇 카센터에선 수리하러 들어오면 '사제로 넣을까 정품으로 넣을까~'를 직접 소비자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클러치디스크나 포크등 부품값에 비해 정비공임이 큰 부분은 정품으로 넣어야지 재작업시 비싼 공임을 다시 물지 않게 됨을 잊지말고 효율적으로 선택하자.
관련[56] 사이트[57]
  • 총 판매대수는 248,508대로 2005년 8월에 단종되었다. 후속모델은 액티언.
  • 다이캐스트 모델이 꽤나 오랫동안 생산된 편에 속하는게, 창명미니카 제품은 무려 2013년도에 생산된것도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국산차들이 해당차종 출시후 서너해만 지나도 다이캐스트 모델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가 되었던 것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크로바 미니카에서도 생산했지만, 그건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소소한 디테일은 크로바 쪽이 더 낫지만, 차체의 전반적인 형상이나 비율은 창명제가 실차에 더 가깝다.[58]

5. 미디어 출연



5.1. 1세대(코란도 지프, CJ/KH-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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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에서 장교가 된 김정환의 차로 각코란도가 등장한다. 중요한 순간에 8기통 엔진을 단 최택의 렉서스 LS에게 발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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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에서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사복 군인들의 관용 순찰 차량[59]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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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특히 2부에서는 신진지프 1, 2기와 원본 모델인 CJ-5가 소품 차량으로 쓰였는데, 대표적으로 야인시대 64화백병원 씬에서 지나가는 차량 및 김두한이 총격전 당시 운전하다 다리 밑으로 추락한 차량 등으로 등장한다. 그외에도 1985/86년식 거화/동아 코란도도 소품으로 등장했다. 단, 펜더의 상태로 봐선 윌리스 MB의 민수용 중 하나인 윌리스 CJ-2A일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백병원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 문서를 참고.
금호클래식카 홈페이지에 가면 이 차량을 볼 수 있다.
영화 복수혈전에서 이경규의 차로도 나온다.

5.2. 2세대(뉴 코란도, KJ/K100)


  •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이수임의 차량으로 등장한다.
  • 온라인 게임 스키드러쉬에서 ironia 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 온라인 게임 아크로레이스에서 대우자동차 사양이 C클래스 차량으로 등장한다.
  • 영화 반도에서 631부대가 사용하는 차량으로 등장하는데, 개조 차량으로 추측된다.

6. 틀 둘러보기





[1] 롱바디, 픽업은 1982년 까지[2] 롱바디, 픽업은 1982년 부터[3] '한국인은 할 수 있다'의 영어 문장인 ''''KOR'''ean c'''AN DO''''의 약칭이다.[4] 초기 군용 지프의 파생형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록스타와 직계로 공통인 조상 모델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5] 넓게 보자면 갤로퍼 또한 먼 친척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 갤로퍼의 원판인 파제로 역시 미쓰비시가 윌리스 지프 왜건을 라이센스 생산하던 노하우로 탄생시킨 차종이다.[6] 1988년에 출시된 코란도 훼미리와는 다르며, 흔히 코란도 9인승으로 알려진 모델이다.[7] 현재는 그 자리에 주례 럭키아파트가 있으며, 지프 생산 공장은 1985년에 경기도 평택시로 이전했다.[8] 윌리스 MB의 민수용 모델이다.[9] 동아자동차에 인수된 후에 공장이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주례 럭키아파트가 되었다.[10] 이 시기에 생산된 차량 중 현존하는 차량은 없으며, 다음 세대부터 존재한다.[11] 그래도 이 정도면 고증하기 쉬운 편이다.[12] 롱바디, 픽업은 1982년 까지[13] 하지만 마력은 100마력으로 배기량 대비 다소 낮은 편이다. 어차피 토크 위주의 엔진이기는 하지만.[14] V6 2,000cc의 포드 20M은 이미 단종되었다.[15] 코란도 브랜드 런칭 이후에도 지프 브랜드는 잠시동안 병행 사용된다.[16] 5년후인 1984년에 거화자동차가 부자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흑자도산''' 했었다는 점에서 이 디젤지프의 출시로 쏠쏠하게 흑자를 냈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17] 사실 예전부터 2020년 지금 까지 3.0L 이상 급 가솔린 SUV는 북미나 중동 지역을 제외하면 판매 비중이 높지 않다.[18] 롱바디, 픽업은 1982년 부터[19] 그 전에 생산되던 하드톱 모델들의 외형은 무언가 많이 엉성하고 투박하였다. 뭔가 둔탁한 문짝은 마치 냉장고 문짝을 연상케 했다.[20] 신진자동차가 푸조한테 사바사바한 것 때문인데, 법적으로 걸려서라고 한다.[21] 사실은 4BA1 보다도 먼저 개발된 엔진으로 무려 1964년에 개발된 1세대 엘프 디젤 엔진을 개량한 꽤나 오래된 엔진이다. 엔진 네이밍 방식도 이스즈에서 1970년대 초반 까지 쓰이던 알파벳 + 배기량 숫자를 표기하는 방식.[22] 코란도는 지프 CJ-5/7계열을 베이스로 만들었지만, 코란도 훼미리는 1세대 이스즈 빅혼/트루퍼의 섀시를 이용해서 만들었다.[23] 이 엔진이 대우 바네트에도 장착되었기에 바네트 엔진으로도 불린다.[24] 하지만 뻥마력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실제로는 72마력이라는 카더라가 있다.[25] 이전에 발매되었던 6기통 가솔린 모델이 3800cc에 100마력인것을 생각하면 기술발전의 격차를 느낄 수 있다.[26] 그래서 그런지 중고차 시장에는 93년 이후 연식 차량이 대부분이며, 딜러를 통한 판매보다는 튜닝 등을 한 후 개인사정으로 파는 이들이 대부분이다.[27] 1995년에 발행된 뉴 훼미리에 나온 캐치프래이즈.#[28] 쌍용 코란도 훼미리가 고유모델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이 있는데, 섀시와 파워트레인은 이스즈 트루퍼(내수명 빅혼) 1세대의 것을 썼지만 어퍼바디의 상당 부분은 미쓰비시 파제로지프 체로키를 벤치마킹하여 자체 개발이기 때문에 고유모델(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스킨체인지 모델)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실제로 보면 섀시, 파워트레인의 원주인인 이스즈 트루퍼 1세대와 얼추 닮기도 했다.(특히 옆모습) (1988년 당시 김석원 회장이 밝히기로는 당시 동아자동차가 이스즈 트루퍼 구형과 신형을 평택 공장에 놓고 개발 중인걸 보고 최대한 트루퍼와 닮은 부분을 없애도록 지시한 일화도 있다.) 테일게이트도 트루퍼는 양쪽으로 열리는 형태(다만 왼쪽 부분이 좀 더 컸고 그쪽에 스페어 타이어가 있음.)지만 코란도 훼미리는 왼쪽 한쪽으로 열리는 형태다. 결정적으로 코란도 훼미리의 초기 프로토타입인 KR-600이 1984년에 공개되었는데 이때에도 이미 5도어 스테이션웨건 형태로 공개 되었지만, 트루퍼는 이때까지만 해도 5도어가 없었고 롱바디 조차도 3도어 였다가 이듬해인 1985년 6월에서야 뒤늦게 롱바디 5도어 모델이 출시되었다. 특히 무쏘가 등장하기 직전인 1993년형 부터는 쌍용자동차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3중구조 강철프레임과 5링크 리어 서스펜션을 적용하면서 섀시(언더바디) 까지도 트루퍼 기반의 것을 대신하여 독자기술로 해결하게 되었다. 쌍용자동차 측에서도 자사 최초의 고유모델로 인정하고 있지만, 코란도 훼미리는 쌍용자동차 이전의 거화자동차 시절부터 추진된 프로젝트를 인수한 것이기 때문에 쌍용그룹 하에서 쌍용자동차 명의로 개발된 실질적인 최초의 고유모델은 무쏘라고 할 수 있다.[29] (주)거화 내부적으로는 미쓰비시 파제로의 디자인을 많이 참고했다는 설이 있다. 5도어 롱바디 모델도 파제로가 1983년 2월에 출시되어 트루퍼 5도어 롱바디 보다 2년 먼저 출시되었고, 코란도 훼미리의 개발이 시작된 시기와 파제로가 출시된 시기도 얼추 비슷하며, 코란도 훼미리 초기형의 프런트 디자인의 경우 사각형 헤드램프는 1978년에 공개된 파제로 컨셉트카와 같은것을 썼고(지프 체로키 역시도 같은 것을 사용했지만..), 코란도 훼미리의 테일게이트 디자인도 사실상 파제로를 좌우반전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흡사하다.(체로키의 경우는 위쪽으로 열리는 방식이라 코란도 훼미리와는 테일게이트가 많이 달랐다.) 그 외에 초기 모델의 앞뒤 범퍼와 도어 하단부의 장식은 체로키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며, 시제차의 경우는 측면이 토요타 스프린터 카리브와도 비슷했었다.[30] 이스즈 트루퍼/빅혼의 프레임은 1981년에 출시되었으나 그것도 사실은 1년 앞선 1980년에 나온 이스즈 패스터 로데오 라는 픽업 트럭 프레임을 공유한 것이다.[31] 비공식적으로는 아시아자동차록스타가 시판 이전인 1988년에 신차 홍보 및 개발참고 목적으로 랜드마스터라는 가칭으로 다카르 랠리에 참전하여 완주했지만 이쪽은 제한시간내에 완주하지 못해서 리타이어하여 공식 완주에 실패하는 바람에 비공식 완주 기록이 되었다. 이는 1993년에 출전했던 스포티지도 마찬가지였다. 코란도 훼미리도 1991년에 다카르 랠리에 처음으로 참가했는데, 이때는 규정변경에 따른 안전규정미비로 출전이 어려웠지만 주최 측의 배려로 정식경기가 아닌 번외로 출전하였기에 공식완주로는 간주되지 않는다.[32] 영상 초반에 '''붕괴 이전의 세계무역센터'''가 나온다.[33] 당시 신인 모델이었던 유인영이 등장한다.[34] 1년에 28,500원이었다. 환경 부담금은 별도.[35] 모 자동차 월간지의 기자는 '스케치북에서 튀어나온듯한 디자인' 이라고 평했다. 오죽하면 2021년 현재에도 인터넷에서 이 디자인으로 내놓으면 대박난다는 식의 댓글이 달릴 정도이다.[36] 과거 호주 BTRA[37] 순정 타이밍 디바이스가 약 30만 km정도의 수명을 보여주는데 반해 국산 제품은 그 1/3수준의 내구력을 보여주고 말았던 것.[38] 현재는 센터에 따라서 아는 사람에게만 무상 수리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반드시 미리 확인해 볼 것.[39] 과거 호주 BTRA[40] 범퍼가드 적용시 4,410mm[41] 범퍼가드 적용시 4,420mm[42] 602 AT는 1,750mm[43] 보그워너 5단은 초기형에, 통일중공업 5단은 중기형에, 현대 트랜시스 5단은 후기형에 장착되었다.[44] 과거 호주의 BTRA[45] 벤츠 4단은 초기형에, DSI 4단은 후기형에 장착되었다.[46] 물론 90년대 기준으로는 낮긴 낮아도 그럭저럭 낮은 수준이었다만 쌍용차들 특유의 낮은 기어비 때문에 초기 가속력이 많이 부족했다[47] 당시 같은 엔진을 쓰는 구형 렉스턴 상급트림도 뉴 렉스턴으로 페이스리프트 되면서 뉴 코란도와 마찬가지로 132마력에서 120마력 엔진으로 다시 다운그레이드 시킨 사례가 있다. 길거리에서 구형 렉스턴과 뉴 코란도 중 매연 내뿜는 애들은 132마력이라 보면 된다.[48] 다만, 렉스턴이 출시 초기부터 당시 무쏘와 뉴 코란도의 상위 차급으로 출시했기 때문에 이쪽은 별도의 브랜드로 갈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카이런의 경우는 이미 판매부진으로 내수판매는 중단되기도 했거니와 최근 쌍용의 추세로 볼 때 무쏘 브랜드를 부활시키거나 렉스턴의 실질적인 차급 하락에 따라(과거에는 최상급 SUV 포지션이었지만, 현재는 실질적으로 싼타페, 쏘렌토R 등 최상급보다 한급 아래의 포지션과 경쟁하고 있다.) 카이런의 포지션이 어중간해짐에 따라 아예 후속모델 없이 단종될 수도 있을 듯하다.[49] 이로써 쌍용에서 코란도 브랜드를 쓰지 않는 차량은 티볼리 패밀리, 렉스턴 패밀리 이렇게 2종이 되었다. 아무래도 저가형 - 티볼리, 중~고가형 - 코란도 고가형 - 렉스턴/체어맨(SUV로 후속이 나온다고 한다) 브랜드로 밀고 나가는 듯하다.[50] 2019년 2월 코란도의 출시로 단종되었다.[51] 2018년 1월 렉스턴 스포츠의 출시로 한국시장에서 단종되었다.[52] 2019년 7월에 판매량 부진과 유로6D 배기가스 규제를 만족시키지 못해 단종되었다.[53] K131이라는 제식명을 받기 전 까지는 J-7이라 불렸다.[54] 벤츠 G클래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디펜더, 디스커버리, 프리랜더, 쉐보레 타호, 토요타 랜드크루저 프라도, 라브4, 닛산 패트롤, 패스파인더[55] 참고로 정세균 의장이 정계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쌍용그룹의 임원이었다.[56] 뉴코란도 관련 사이트 중 가장 큰 곳[57] 뉴코란도 관련 네이버 카페[58] 다만 창명이 폐업하면서 더이상 신제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구하고 싶다면 중고 거래나 재고 상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59] 앞에는 통상명칭과 차량호수 뒤에는 일반 번호판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