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고려)
허승(?~1180)
1. 개요
고려의 무신#s-2. 무신정권기 경대승의 집권에 엄청난 공헌을 했지만 동시에 그 경대승에 의해 비참한 말로를 맞은 인물이다.
고려 무신 정권 정중부 집권기에 견룡군(왕실 친위대) 소속의 하급 무관이었던 인물로 경대승이 정중부 일파를 제거하는 기해정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의 출신에 대한 서술이 없는 것으로 보아 출신 성분은 하급 관료층 내지는 평민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의 계급 역시 명확하게 전해지지는 않지만 그가 대정(종9품) 김광립 등의 우두머리였던 것으로 추측되며 기해정변 이후 정7품 별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아 기해정변이 일어났던 당시 대정보다는 높은 정9품 교위 또는 정8품 산원 계급에 머물러있던 것으로 보인다.
나이 또한 불명인 인물이나 《고려사》에서 그가 경대승과 친했던 인물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경대승과 비슷한 연배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용력이 출중해 사람들이 그에게 복종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나름 출중한 무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었고 당대의 실권자였던 정중부의 장남 정균 역시 그를 총애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처세술도 있던 인물로 보인다.
1.1. 기해정변: 정중부 일파를 제거하다
기해정변 직전의 기록을 보면 경대승이 정중부 일파의 전횡을 보다 못해 "내가 흉악한 무리들을 제거하고자 하는데 네가 따라만 준다면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라고 이르자 허승이 이에 찬성했다고 한다.
거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당시 견룡이었던 허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1] 허승이 정균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라고 하니 숙직을 하던 정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격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무인시대에서 경대승과 쿠데타를 모의한 허승은 정균이 들어있던 숙직실로 들어가 그의 수급을 벤 뒤 휘파람으로 신호하여 경대승의 결사대를 불러들였다. 이후 대장군 이경백, 지유 문공려 등을 포함해 눈에 띄는 이들을 모두 죽인 뒤에 경대승이 명종에게 요청하여 금군들을 출동시켜 정중부, 송유인 부자 등을 잡아오면서 정중부 일파는 한 순간에 제거되고 경대승이 실권을 잡게 되는 식으로 묘사되며 드라마 상에서는 경대승과 정균이 서로를 견제했던 것처럼 나왔지만 사실 실제 역사에서는 정중부 일파가 경대승과 허승이 모의하여 자신들을 죽일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을 확률이 높다. 애초에 경대승의 아버지인 경진은 정중부 일파 중 한 명이었고[2] 허승은 당시 정3품 좌승선이었던 정균이 총애하는 하급 무관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기에 권력 꼭대기에 있던 정중부 일파로서는 경대승과 허승은 한참 아랫사람들에 불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2. 허망한 말로
정변에서 세운 공으로 허승은 정7품 태자부지유 별장으로서 태자의 호위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허나 허승은 이후 자신이 공을 세웠음을 내세워 동궁전 뒷벽에 누워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고 피리를 불며 방약무인하게 굴었고 김광립 등과 더불어 은밀히 악소(惡小), 즉 불량배들을 모았다고 하는데 이 일로 허승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함께 정변을 주도해 권력을 차지한 경대승 입장에서는 자신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직속 부하도 아닌 허승이 권력의 맛에 취해 막나가면서 사병을 모았던 셈이니 반란 의심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허승이 정말 경대승까지 넘어서려는 야심을 품었는지는 기록의 부재로 알 순 없지만 아무튼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 먹은 경대승은 허승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였고 그 길로 허승은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만다. 그들은 또 부하인 김광립도 거리에서 살해하고는[3] 명종에게 이들이 반역을 꾀하여 죽였다고 선참후계했다. 무신 집권기라는 난세에 지지 세력도 없는 일개 하급 무관이 숙청된 것을 문제삼는 이는 없었고 그렇게 허승은 허망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 창작물
2.1. 무인시대
드라마 무인시대에서는 당시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 조폭 전문 배우로 알려져있던 이일재가 연기했다. 대의를 위해서는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는 악행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질 수 있는 독종 캐릭터로 묘사된다. 극 중에서는 이의방, 이고, 채원이 의형제를 맺은 것과 비슷하게 경대승, 김자격, 김광립 등과 함께 결의를 맺은 사이로 나온다. 전용 무기는 특이할게 없는 칼이나 발도술을 쓰는 것이 특기. 이 발도술로 종참이나 정균을 베어 죽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본적인 무예도 출중하다. 석린, 이영진, 정세유가 모두 덤벼도 제압할 수 있을 정도[4] . 다만 무기보다 돋보이는건 바로 수박으로 극 중에서 경대승을 참패시킨 적도 있고[5] 그외에 맨손으로 적을 제압하는 면모를 여러번 보였다. 그의 결말도 역시 수박에 의해 지어졌다.
감정적이고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강경파라는 점에서 드라마 초창기의 이고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 자신의 뜻을 위해 의형제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최후에는 자신의 칼로 자결을 택하는 모습까지 판박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역성 혁명으로 황제를 노린다는 욕심이 앞서 파멸을 자초한 이고와는 달리 백성의 곤궁한 삶을 해결하고자 하는 대의를 마지막까지 품고 있었던 인물이라는 것. 그러나 그 대의를 위해 "조정과 군부의 사람들을 죽여야한다면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죽일 수도 있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자신의 신념과 대의를 광적으로 내세우는 초강경파. 실제로 정균 휘하에 있을 때 정균의 의심을 피한답시고 청주 백성들을 학살하고 고관대작을 습격한 전력이 있으며 권력을 잡았을 때는 대놓고 경대승의 이름을 내세워 고위 장군인 오광척을 참살하는 등 자신의 말을 충실히 지켰다.
경대승이 첫 출연한 49회에서 2회가 지난 51회에서 첫 등장한다. 당시 견룡행수였던 경대승의 직속 부하인 교위로 등장해 위기에 처한 이의방을 구하기 위해 태후전을 찾은 무비가 누구냐고 묻는 경대승에 말에 "폐주의 총희였던 무비이옵니다"라는 대답을 올린다. 이후 묘사되는 것에 따르면 일찍이 무신정변 직전부터 김자격, 김광립 등과 더불어 경대승과 함께 대의를 이루기 위한 모임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는 무신정변의 참상을 막기 위해 이의방 등에게 맞서려던 경대승을 막아서고 후일을 도모하자고 한다. 이후로는 이의민의 암살을 도모하자고 제시했다가 반대당하고 이의방 암살 직후의 혼란기를 틈타 거사를 주동하자고 부추기다가 반대를 당하는 등 오히려 허승이 무언가를 주동하려다 경대승의 제지를 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정균은 이의방 암살을 앞두고 경대승을 포섭하려다가 그에게 "당신 눈에는 대의가 없고 야심만 있을 뿐이다"라는 일침을 당한 뒤로 경대승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데 이후 정균이 경대승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허승 자신을 포섭하려고 하자 정균의 의도를 알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정균의 밑으로 들어간다. 정균의 밑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하고 경대승의 고향인 청주 백성들을 학살하라는 명도 수행하며 정균이 그를 의심하여 독을 탄 술을 먹으라고 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고 삼킨다. 결국 백성들의 곤궁함을 직접 살피며 대의를 다잡은 경대승이 상경하자 다시 그와 의기투합하여 거사를 일으켜 정균을 죽이는데 일조한다.
이후 정중부를 따랐던 자들을 간적들이라 하여 모조리 죽이고자 하며 더는 피를 보지 않으려하는 경대승과 대립을 시작하고 특히 황제인 명종이 유약하여 사직을 바로 잡지 못할 것이라 여기며 명종에게 목숨을 걸고 충언하는 태자의 모습에 태자를 눈여겨보아 명종을 폐위하고 태자를 새 황제로 옹립하여 자신의 대의를 세우고자 한다. 결국 이 대립은 경대승의 승리로 끝났고 김광립 등 동료들이 모두 죽은 상황에서 경대승과 마지막 승부를 벌인 끝에 경대승의 수박에 당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는다. 그에게 뜻을 꺾는다면 살려주겠다는 경대승에게 "소신을 버리고 먼저 죽은 동료들을 배신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대답을 남기고 검을 받아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뜻을 위해 목숨까지 서슴없이 버리려고 하고 마지막 뜻이 좌절되자 망설임 없이 자결을 택하며 이광정이 뇌물을 바치러 왔을 때 뇌물인 재물들을 보면서 고작 이런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진짜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하며 이광정의 목을 가지고 싶다고 하는 등 사사로운 욕심에 연연치 않는[6] 무인다운 면모를 갖춘 매력적인 인물이기는 하나 앞에서도 말했듯 자신에 대한 믿음이 과도해 악행조차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확신범적인 강경파라는 한계점이 분명한 인물이다. 허승은 정균 휘하에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이에 대한 반성이나 속죄없이 정중부 일파와 협력한 자들을 숙청한다고 날뛰었다. 허승은 자신은 정균을 도모하기 위해 그러한 악행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나 문극겸이 허승에게 "조정의 관료들이 정중부에 협력한 것은 사사로운 욕심이고 허승이 정균 밑에 있었던 것은 고육지책이냐?"고 일침을 가하자 부들부들을 시전할 뿐 말문이 막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97회에서 경대승의 꿈 속에서 다시 등장하였다.
3. 같이보기
[1] 사실 이 앞의 무신정변에서도 견룡 소속의 이의방 등이 정변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을 보면 왕실 친위대인 견룡군은 역으로 볼 때 정변을 일으킬 때 꼭 끌어들여야 하는 세력이라 봐도 무방했다.[2] 물론 경대승은 이런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3] 기록에 따르면 허승을 죽인 후 김광립과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죽였다고 한다.[4] 저 셋 모두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5] 물론 이 때는 경대승이 정중부 부자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어서 제대로 된 싸움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의 최후는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부하들도 참살되어 본인이 불리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6] 심복인 김광립에게 "재물로 사람을 조정에 심어둬봤자 모래 위에 누각을 짓는 것과 다를바 없다. 뜻이 같은 자는 피로서 의기투합하고 거슬리는 자들은 창검으로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갑주를 입은 무인으로서 하루 두 끼 배만 곯지 않는다면 비단옷과 기름진 음식이 무슨 대수겠는가."라고 말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