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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梟首[1]
1. 개요
2. 목적
3. 역사
4. 이후 처리
5. 매체에서
6. 기타
7. 효수를 당한 인물
7.1. 실존인물
7.2. 가상인물


1. 개요


참수형이나 거열형, 부관참시를 당한 죄인의 을 막대기에 거는 일.[2] 효시(梟示)라고도 한다.

2. 목적


반역 같은 매우 큰 죄를 지은 죄인에게, 사형 후에도 부가되는 일종의 형벌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 매달아, '''나쁜 짓(역적질)하면 이렇게 된다''' 혹은 '''까불지 마라'''는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이다.
반역이나 범죄가 아니라도 전쟁 중 적군의 장군이나 수장급의 인물의 수급을 내걸어 적 진영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목적으로 이용된다. 반대로 적군의 수급을 전시해서 백성들에게 아군의 전공을 과시하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3. 역사


참수형의 역사만큼 효수의 역사도 오래되었다. 유명한 고전소설 삼국지에도 자주 나온다. 그중 유명한 사람은 단연 동탁이다.
일본에서는 고쿠몬(獄門),[3] 쿄슈(梟首, きょうしゅ), 사라시쿠비(晒し首, さらしくび)라고 한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실시했는데, 키케로올리버 크롬웰이 유명하다.
조선에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참수형, 거열형과 함께 폐지되었다. 김옥균은 딱 그 직전에 상하이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된 뒤에 조선에 보내져 시체가 거열형에 처해진 후 목이 효수되었고 '''"대역부도옥균"'''이라는 글과 함께 찍힌 흑백사진이 남아있다. 마침 개화기였기에 근대 유럽 문화가 들어온 시점이라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4]

4. 이후 처리


조선 시대의 경우 기간은 보통 3일. 그런데 '''이후의 처리를 어떻게 하라는 규정이 없어서''' 효수해 놓고 까먹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은 연고자들이 수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육신 사건이나 천주교 박해 관련해서 목숨걸고 수급을 빼돌렸다는 식의 일화가 많다.
저자에 걸린 머리들은 대부분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건드려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5. 매체에서


효수는 워낙 잔인해서 사극에서 효수장면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나올 경우 모자이크 또는 검은 실루엣만 보이게 한다거나(무인시대 5화), 좀 선명하게 보이더라도 대갈치기 구도로 찍어 화면 가득 머리가 나오게 해서 덜 잔인하게 보이는 연출로 나오곤 한다.
멀리서 작게 보이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공주의 남자, 왕과 비의 사육신 효수 장면[5] 등. 굳이 효수하지 않아도 잘린 목 자체의 잔혹성 탓에 이걸 클로즈업 하는 경우는 현재 드문 편이다.
화랑, 명량, 임금님의 사건수첩 후반부 등지에서처럼 그냥 적나라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6. 기타


효수에 그치지 않고, 팔, 다리까지 사방에 돌려 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연산군 시대에 장녹수의 모함을 받아 거열형된 궁녀 전향과 수근비가 이런 처우를 당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사용자들을 공개처형한다는 정도의 의미로 쓰이며, 그 대상은 '효수자'가 되어 나쁜 의미로 유명해져 두루두루 까인다.

7. 효수를 당한 인물



7.1. 실존인물


  • 관우
  • 관평
  • 달기
  • 애강
  • 여희
  • 키케로
  • 올리버 크롬웰
  • 동탁
  • 위충현[6]
  • 위황후
  • 안락공주
  • 수근비, 전향, 옥지화[7]
  • 김개남[8]
  • 김대건 안드레아
  • 김옥균[9]
  • 전봉준
  • 정몽주
  • 장성택[10]
  • 이인좌
  • 이징옥
  • 장녹수
  • 윌리엄 월레스
  • 곤도 이사미
  • 에드워드 티치[11]
  • 여포[12]
  • 허균[13]

7.2. 가상인물




[1] 직역하면 올빼미의 목이라는 뜻이다.[2] 목을 걸어두는 경우는 보통 죄수가 장발일 때 해당하며, 민머리나 단발일 때는 창에 꽂았다.[3] 이건 정확하게는 에도시대의 극형 중 참수형+효수+남은 몸체는 타메시기리에 쓰게하고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게 하는 형벌을 가리킨다.[4] 이홍장도 조선에 김옥균의 시신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김옥균의 시신을 훼손하지 말 것을 요구했지만 원한에 가득찬 고종과 민씨 척족은 이를 무시했다.[5] 이 외에 태조 왕건에서의 신숭겸 수급도 포함.[6] 중국사 최악의 간신 중 하나로 꼽히며 숭정제의 명으로 자결했지만 이후 효수되고, 몸은 분노한 민중들에게 갈갈이 찢긴다.[7] 수근비, 전향은 연산군의 궁녀들이였으나 장녹수를 모함했다는 죄목으로 능지처참되고 머리는 효수되어 다른 궁녀들이 돌려보도록 했다. 현대에는 이 사건에 장녹수가 개입했다고 보고있다. 옥지화(玉池花)는 운평(하급 기생)으로 장녹수의 치마를 밟았다는 죄목으로 고문을 받고 군기시 앞에서 처형되어 효시되었다.[8] 전봉준과 같이 동학농민운동의 주역으로 동학농민운동 간부진에서 가장 과격파로 유명했다. 그래서 동학군이 점령한 관아 벼슬아치들을 끔살시켰기에 전봉준이나 최시형이나 다른 주역들이 온전하게 교수형당한 거와 달리 김개남은 참수당했다. 이 사람의 효수된 모습이 한동안 전봉준이 이렇게 죽은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정작 전봉준은 교수형당했고, 시체는 온전하게 묻혀졌다.[9] 1894년 상하이에서 홍종우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시신 인도 후 능지처참을 당한 뒤 머리만 따로 걸었다.[10] 그간 고사포로 총살당했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2020년 9월 그와 별개로 참수당한 뒤 북한 정권 건물 계단에 참수된 시신의 가슴 위에 잘린 머리를 올린 채 전시하여 공포효과를 극대화했다는 증언이 트럼프의 인터뷰를 통해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11] 그 유명한 해적 검은수염이다.[12] 정작 처형되는 방식은 교수형이었다. 고대 중국의 참수형은 의복을 몽땅 벗긴 상태에서 조리돌림 후에 집행하는 굉장히 모욕적인 방식으로 집행되었기에 예우할 대상은 비공개 교수형 방식으로 처형했다. 때문에 여포를 처형할때도 형식은 비공개 교수형으로 처리한 후 시체상태에서 참수하고 효수한 것으로 보인다.[13] 반역 혐의로 거열형을 당한 뒤 목이 잘려 효수된다.[14] 본편이 아니라 모탈컴뱃 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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