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아 원정
1. 개요
2004년 12월에 있었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아시아 원정으로 열린 친선경기 3개를 정리한 페이지.
2004년에 클린스만호는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일본, 한국, 태국을 거치면서 세 차례의 친선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일본, 태국과는 첫 만남이었고, 대한민국과는 3번째[1] 만남이었다.
당시 독일 축구 연맹은 독일 대표팀이 UEFA 유로 2004에서 초라한 성적으로 탈락해 루디 푈러 감독을 경질하고 위르겐 클린스만을 임명해 세대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본문에 나와 있는 "상세 정보" 링크는 독일 축구 연맹 공식 사이트의 자료로 연결된다.
2. 대 일본 (2004.12.16,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 - 3:0 승리
일본과 독일의 사상 첫 A매치였다. 당시 독일은 골키퍼 올리버 칸과 미로슬라프 클로제, 미하엘 발락, 베른트 슈나이더 등 몇 명을 빼면 대부분 신예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켰다. 그러나 일본은 피지컬로 거칠게 밀어버리는 독일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며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했다. 전반전은 어찌어찌 0 : 0으로 비겼으나 후반 9분에 클로제에 선제골[2] 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후반 25분에는 역습에 밀려 발락에게 중거리 추가골을 내주었고 또 종료 직전에 클로제에게 1골을 더 먹어 패배했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이었던 2006년 5월 30일, 일본은 레버쿠젠에서 다시 한 번 독일과 친선전을 가졌고 이 때는 오히려 후반 9분과 20분에 다카하라 나오히로가 멀티골을 터뜨리며 일본이 2 : 0으로 리드했다. 그러나 일본 축구의 고질병인 뒷심 부족으로 인해 후반 31분,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만회골을 내주었고 또 후반 34분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2 : 2로 비겨 독일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두는 데는 실패했다.
3. 대 대한민국 (2004.12.19, 대한민국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 - 1:3 패배
이 부분의 자세한 사항은 본프레레호의 2004년 활동 문서에 나와 있다.
경기 전 한국은 1994년과 2002년 패배하면서 역대 전적에서 뒤쳐져 있었다. 그래서 월드컵 독일전의 경기를 만회하고자 하는 바램은 강했지만, 당시 독일은 분데스리가 최정예가 모인 명실 상부한 1군.[3] 그에 반해 한국은 골키퍼 이운재와 공격수 차두리를 제외하고 월드컵 출전 경험도 없는 데다, 심지어 박지성도 없었다! 거기다 수비진에는 당대 자동문이라 비아냥을 듣던 박동혁-박재홍 콤비가 있었고, 이들과 함께 3백을 맡은 선수는 당시 21살의 애송이 수비수 김진규, 거기다 미드필더진에는 국대에서 카드캡쳐라고 놀림을 받았던 김상식이었다[4] . 이렇다 보니 당시 축구팬들의 반응은 '''도이치포비아''' 그 자체였다. 과연 홈에서 얼마나 발릴까 자조하고 있었으나...
실제 경기가 시작되자 한국 대표팀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전반 16분, 김동진의 선제골[5] 을 시작으로 후반 26분에 이동국, 후반 42분에 조재진이 릴레이 골[6] 을 터뜨리며 전반 24분에 미하엘 발락의 프리킥으로 1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독일을 3 : 1로 격파해 아시아 팀으로선 최초로 독일을 이긴 팀이 되었다. 한국의 이 3골은 다시 봐도 놀라운 상황이었으며, 특히 이동국이 터트린 두번째 골은 올리버 칸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한 체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또한 이 경기에서 발락은 박재홍의 핸드볼 반칙으로 페널티 킥까지 얻었는데, 이운재에게 막혀 버렸다.[7]
독일이 이 경기에 패배했던 이유 중의 하나로 당시 출전한 선수들의 평균 체격이 거의 북유럽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독일은 유럽식 파워 축구를 구사했는데, 이런 스타일에 유럽 이외 국가들은 몹시 고전을 했다. 그런데 한국만은 이런 피지컬을 앞세운 파워 축구가 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스피드와 몸싸움을 중시한 유럽식 파워 축구를 수입해서 뼈대로 삼았고, 히딩크호를 거치며 압박과 피지컬을 중시하는 플레이를 구축했기 때문. 그렇다 보니 1994년 월드컵 조별라운드 3차전이나, 2002월드컵 4강전에서도 독일에게 밀리지 않고 1점 차의 석패에 그쳤던 것. 그러다 마침내 친선경기에서나마 1승을 올리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독일로서는 2004년 한국전 패배가 '녹슨 전차 1기'의 절정을 찍었다고 할 수 있는 경기였다.
이 경기로 독일은 전통적인 파워 축구의 한계를 체감하게 되었고[8] 이후 각급 유소년 대표팀에서는 남미나 스페인 스타일의 패스 축구를 도입시켜 접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민자 출신 선수들에 대한 문호도 대거 넓어지게 되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독일 축구의 이런 화려한 성과는 2004년 친선전에서 13년 6개월 후 한국에게 또다시 '''2점 차로 털리면서''' 무너져 버렸다. 그리하여 한국과 독일의 역대 전적은 총 4전 2승 2패로 백중세가 되었다. 골 득실까지 따지면 한국이 7득점, 독일이 5득점으로 '''오히려 한국이 우세인 상황이 되었다.''' 독일로서는 2018년 한국전 패배가 '녹슨 전차 2기'의 서막을 올렸다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독일의 '1기 녹슨 전차'의 절정과 '2기 녹슨 전차'의 발단을 모두 한국이 알린 셈이다.
4. 대 태국 (2004.12.21, 태국 방콕 라차망칼라 국립 경기장) - 5:1 승리
독일은 주전 선수들을 대거 빼고 신예 선수들을 투입해 경기를 치르게 했다. 워낙 전력 차이가 컸다 보니 전 경기 한국처럼 기적을 일으키기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태국은 애초부터 독일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았다. 전반 34분과 38분에 케빈 쿠라니가 2골, 후반 28분과 44분에 루카스 포돌스키가 2골을 터뜨렸고 거기에 후반 39분에 터진 게랄트 아사모아의 골을 보태 5 : 1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태국도 약체임에도 불구하고 후반 12분에 사라윳 차이캄디가 1골을 넣으며 나름대로 선전했다. 어쩌면 독일이 태국을 5 : 1로 이긴 것보다도 태국이 독일을 상대로 1골이라도 넣은 것이 더 대단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 둘러보기
[1] 첫 번째는 1994 월드컵 조별리그, 두 번째는 2002 월드컵 4강전이었다. 앞의 두 경기에서는 각각 독일이 3:2, 1:0으로 승리했다.[2] 미하엘 발락의 프리킥을 처음에는 나라자키 세이고가 튕겨냈으나, 클로제가 잡아서 차 넣었다.[3] 일본전과 태국전에 신예들을 투입시킨 것과 비교해 보면 독일도 한국을 만만하게 보지는 않은 모양이다.[4] 하지만 김상식이 국대에서 부진했던 것은 최후방 수비수를 맡았기 때문. 김상식은 당시에 체격도 좋고, 몇 안되는 빌드업 능력을 갖고 있는 선수라 허정무 1기 때부터 수비수로 키우려 했지만, 이것은 히딩크조차 실패한 일이었다. 결국 수비수로는 비판만 받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능력은 김남일 못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도 독일 떡대들에게서 왜소하지만 패스마스터였던 김두현을 보호하며 공격에 전념하게 만든 공헌자가 바로 김상식이다.[5] 이동국이 김상식의 패스를 받아 넣은 크로스를 아르네 프리드리히가 헤더로 걷어냈으나, 공이 김동진 앞에 굴러갔고 김동진이 지체없이 슛을 날려 선제골로 연결했다.[6] 그 와중에 득점 순간 필립 람이 골대에 그대로 들이박아 쓰러졌다.[7] 페인트 모션으로 왼쪽으로 나는 척하며 자신의 오른쪽으로 차도록 유도했다. 발라크가 그대로 속아 넘어가며 이운재의 오른쪽으로 찼다가 막혔다.[8] 실제로 체감한 건 1998년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0:3 패배, 2002년 월드컵 예선에서 잉글랜드에게 1:5 대패를 당하면서 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