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프레레호/2004년

 



1. 개요
2. 과정과 결과
2.1.1. 평가전(바레인전, 트리니다드토바고전)
2.1.1.1. 요르단전 (B조 1차전)
2.1.2. UAE전 (B조 2차전)
2.1.3. 쿠웨이트전 (B조 3차전)
2.1.4. 이란전 (8강전)
2.3. 전설로 남은 충격과 공포의 독일과의 평가전


1. 개요


본프레레호2004년 경기 기록을 다루는 문서.

2. 과정과 결과



2.1.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언론에게 공개된 아시안컵 대비 훈련에서는 이관우에게 "그런 식으로 할거면 나가라!"는 식으로 호통을 치며 피지컬 중심으로 고강도 훈련을 했다. 이관우는 결국 아시안컵 명단에서 제외.

2.1.1. 평가전(바레인전, 트리니다드토바고전)


아시안컵에 대비한 부임 첫 경기 바레인과의 경기에서는 2003년 한일전 이후 1년 4개월만에 재발탁한 이동국최진철의 연속골로 2-0 승리를 거둬 그럭저럭 괜찮은 출발을 보이지만[1] 이어진 트리니다드 토바고전에서는 김태영의 어시스트를 받은 차두리의 선취골에도 불구, 제이슨 스코틀랜드에 일격을 맞고 수면축구를 보여주다가 1-1 무승부로 끝났고, 이로써 데뷔 두 번째 경기도 마감했다.[2]

2.1.1.1. 요르단전 (B조 1차전)

아시안컵 본선 첫 경기 요르단과의 경기에서는 그야말로 수면축구&답답축구의 경지를 보여주며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후반 초반 최진철의 퇴장과,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박지성의 공백이 아쉬웠다. 특히 당시 아시안컵에 승선하지 않았던 이천수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프리킥 키커가 없어,[3] 프리킥 상황만 되면 선수가 공을 잡는다 → 흘려준다 → 2선 선수가 수비벽 아래로 강하게 때린다라는 공식이 코엘류 시절 말부터 자리잡았는데, 요르단전에서 얻은 프리킥 상황에서도 똑같이 재현되었다. 당시 이동국이 이렇게 때린 슈팅이 수비벽을 아래로 지나 상대 키퍼가 잡아냈는데, 키퍼가 수비수들에게 화를 내던 장면이 이 경기의 백미였다(...). 이미 수 차례 선보인 한국 대표팀의 프리킥 전술인데, 수비들이 그걸 막지 못하며 슈팅을 허용했으니 칠 수밖에... 거기다가 박지성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나온 정경호는 결정적인 득점 기회에서 홈런을 날렸다. 다만, 이 경기는 본프레레로서는 지휘봉을 잡은지 겨우 세 번째 경기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전임 감독의 전술을 순식간에 모조리 다 털어낼 순 없는 노릇이니... 아무튼 당시 같은 조에 속한 팀들 중 그나마 제일 쉽게 여겨지던 상대인 요르단에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자 비난의 여론이 빗발쳤다.

2.1.2. UAE전 (B조 2차전)


아랍에미리트와의 2차전. 본프레레가 이전에 맡았던 팀이기도 하고, 상대팀 감독인 아드 데 모스가 본프레레와 같은 네덜란드 출신이라서 네덜란드 출신 감독들끼리의 대결이라는 것도 볼거리였다.[5] 이 때 아드 데 모스 감독은 한국이 앞으로 월드컵 4강에 다시 진출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다시 각설하고 아랍에미리트전으로 돌아오자면, 역시 요르단전처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서 고전하나 싶었으나... 전반 이동국의 선취골로 수월하게 앞서갔다. 그러나 수비수 박재홍의 퇴장 이후 경기가 지대로 꼬여 버렸는데, 프리킥 등 위기 상황에서 이운재의 결정적인 선방으로 위기를 넘기고 인저리타임 교체로 들어온 안정환의 추가골로 간신히 2-0 승리를 거두었다.[6]

2.1.3. 쿠웨이트전 (B조 3차전)


문제는 쿠웨이트와의 최종전. 일단 앞선 두 경기의 내용이 그리 좋지 않기도 했거니와 쿠웨이트는 바로 직전 아시안컵에서도 0-1로 패배한 상대이기도 했고, AFC 아시안컵아시안 게임에서 번번이 한국팀의 발목을 잡은 전례가 있었던지라 무재배만 해도 다행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본프레레의 닥공 전술이 이 경기에서만큼은 제대로 적중하면서 이동국의 연속골과 차두리, 안정환 등의 골까지 보태 4-0으로 모처럼 시원한 승리를 거뒀다.

2.1.4. 이란전 (8강전)


그런데 8강에서 만난 상대는 '''또''' 이란이었다. 1996년2000년 등에 이어 3개 대회 연속으로 똑같은 시점에 만난 것.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한국과 이란은 아시안컵에서 누가 이기든지 간에, 피말리는 혈투를 벌이는 탓에 다음 경기에 꼭 패배하고 우승컵은 멀거니 지켜봐야 하는 이겨도 병신 패해도 병신징크스를 안고 있었다.[7]
전반적인 경기 양상은 바로 위의 인터뷰 짤방대로 흘러갔는데, 먼저 실점 후 동점골로 만회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말 그대로 '''난타전을 벌였다'''. 국제무대 경험이 적은 당시로서는 젊은 피 김진규가 이란의 베테랑 알리 카리미메흐디 마다비키아[8]에 털렸고, 박진섭자책골까지 넣는 등[9] 그야말로 정신없이 경기가 흘렀다. 전반은 2-2로 마쳤으나 후반에 또 실점과 동점이 반복되다가 결국 이란의 4번째 골이 터진 뒤 더는 만회골도 넣지 못한 채 3-4로 분패. 결과적으론 인터뷰 때 본프레레의 호언장담과는 반대로 가 버렸다.(...)
경기 후 영상을 판독하자, 박진섭의 자책골 말고도 2골이 모두 우리 선수의 발에 맞고 들어갔음이 드러났다. 이뭐병(...)...
경기 외적으로도 참 볼게 많았는데, 김진규는 이란 벤치에다가 부적절한 제스쳐을 날렸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카메라가 김진규를 정면으로 잡는 그 타이밍에서 하필(...)... 다만, 김진규의 해명으로는 이란 벤치가 먼저 그 짓을 해서 똑같이 해준건데 그만 자신만 카메라에 포착된거라고...(...) 또한 이 날 발매된 스포츠토토 매치의 경우 전반 2-2, 최종 3-4 패배를 정확히 맞춘게 달랑 30명만 나와서 배당률이 무려 '''2975배'''나 나왔다.
어찌됐든 아시안컵 결과는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허정무가 이끌었던 지난 대회에서 3위에 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8강에 머무른 결과는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했고...... 하지만 부임하자마자 곧장 AFC 아시안컵을 치른지라 애초에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고, 월드컵 예선도 앞둔지라 교체를 논하긴 이르다고 판단되어 일단 유임되었다.

2.2.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아시안컵 본선을 마감하고, 그 해 9월 베트남과 월드컵 2차예선 원정 경기가 잡혔다. 베트남은 1년 전 코엘류 시절, 중립지역에서 한국을 격파해본 탓에 기가 살아 있었다. 게다가 전력의 핵심인 박지성도 부상으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베트남의 탄탄한 수비와 역습에 고전하던 중 전반전 차두리가 팔꿈치 가격으로 퇴장당하였고, 설상가상으로 후반전 초반에는 수비수 박재홍이 자책골까지 넣었다. 수적 열세 속에 0-1으로 끌려가고 있었으나... 이천수의 크로스에 이은 이동국의 헤딩으로 동점을 만들고, 이어 이천수의 프리킥골로 2-1 역전승. 수적 열세 탓에 이천수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있던 촌극도 있었다.
10월에는 역시 월드컵 2차 예선 레바논과의 원정경기가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2차 예선에서 1위를 해야만 최종 예선에 진출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과 레바논은 승점 1점차로 1, 2위를 마크하고 있었다. 코엘류 시절 몰디브 원정에서 0-0으로 비겨버린 참사가 뼈아팠다. 때문에 양팀 모두 무조건 이기는 것만이 좋은 경기이자 패하면 사실상 끝장나는 게임(...). 객관적 전력상으론 분명 레바논에 앞서 있으나, 원체 최근 분위기가 어수선한지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운명의 킥 오프 후 서로 탐색을 하던 전반 초반, 대한민국은 수비수 최진철의 절묘한 슈팅으로 선취골을 뽑아냈다. 우측 구석에서 최진철이 공을 잡았는데 이를 패스할 것으로 예상한 골키퍼가 반대편으로 치우쳐 있었고 이를 노려 골문 구석으로 때린 중거리슛이 그대로 들어간 것. 뒤늦게 상대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공 구석을 약간 건드렸을뿐이었다. 예상보다 선제골이 일찍 터져 쉬운 경기가 예상된 상황.
그러나 전반 중반에 이운재 골키퍼와 유상철의 사인 미스로 어이없이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으며, 이후 답답한 경기를 보여주다가 결국 1-1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후반전 중반에 안정환이 1:1 찬스를 맞이했으나, 바로 때리지 않고 곁에 있던 선수에게 뜬금없이 흘려주다가 상대 수비수가 잡아채 걷어낸 상황이 아쉬웠다.
이날 경기 도중 레바논의 한 팬이 난입했다. #
이어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이 단체로 난입하기도...
그리고 11월, 홈에서 열린 몰디브와의 월드컵 2차예선 최종전.[10] 우리로서는 치욕을 안겨준 몰디브에게 복수의 날을 선사할 기회이기도 했다. 반면 상대가 전원 철벽수비 모드로 돌입하여 홈경기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상대 수비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전반에 슛을 무더기로 날리고도 상대 수비와 키퍼의 선방에 막혀 골이 터지지 않았고, 후반 중반까지 골을 넣지 못했다. 만약 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경우 레바논이 한수 아래인 베트남을 잡아 승점 1점차로 역전되어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이 좌절될 수 있는 불안한 상황. '''아시아에서 월드컵 본선 최다 진출국이, 2차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고비였다.'''
다행스럽게도 후반 중반에 이르러 김두현이 벼락같이 때린 중거리골로 선취득점을 하고, 이어 상대 수비가 실점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이동국이 쐐기골을 박아넣으며 2-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렇게도 어렵게, 최종예선에 진출한다.[11] 몰디브전 무승부 하나로, 월드컵 본선 1라운드도 아니고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도 아닌 '''2차 예선'''에서 애를 먹은 전무후무한 사태였다.[12] 경기가 끝난 후 본프레레 감독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행복하다. 1차전 0-0 무승부의 아쉬움도 덜었고 월드컵 최종예선에도 진출했다."라는 말로 소감을 전했다.
이후 수석코치를 맡던 허정무사퇴했다. 전남 드래곤즈 감독 자리가 공석이자 그 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한 듯. 사실 허정무가 수석코치가 된 것도, 오만 쇼크 등으로 팀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에서 코엘류 감독이 경질되자 높으신 분들이 일종의 군기반장 역으로 떠맡긴 것이었다. 본프레레 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선 허정무가 하등 미련을 품을 자리가 아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14]
한편 몰디브전 한달 뒤인 2004년 12월 9일,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와 한 조에 편성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축구 역사는 물론 세계 축구 역사에 길이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2.3. 전설로 남은 충격과 공포의 독일과의 평가전



'''친선 경기 (2004년 12월 19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부산, 대한민국)'''
'''주심:''' '''숩키딘 모드 살레'''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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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일'''
'''3'''
'''1'''
'''16′ 김동진'''
'''71′ 이동국'''
'''87′ 조재진'''
'''25′ 미하엘 발락(FK)'''
'''관중: 45,775명'''
'''상세 정보(독일어)'''
한국이 베스트 멤버를 총동원했어도 이변으로 받아들여질 마당에, '''독일 최정예 1군 VS 한국 1.5군 + 유망주'''[15]가 붙어서 한국이 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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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_ 승리가_불가능한_멤버.jpg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16] 대한민국 축구 근현대사 최대 미스테리로 남을 사건이었다.'''

당시 SBS 중계 하이라이트.[17]
독일의 경우 해외파 없이 전원 국내파이긴 하지만 애초에 독일 국내리그가 바로 '''분데스리가''' 아니던가(...). 독일 대표팀은 2년 전 월드컵 골든볼-야신상의 주인공 올리버 칸, 2년 전 월드컵 4강전에서 골을 넣은 장본인 미하엘 발락을 비롯해 끗발 날리는 선수들로 가득 찬 '''독일의 최정예 1군이었다.''' 반면 대한민국 대표팀은 차두리를 제외하고는 전원 국내파 위주인데다,[18] 이운재와 이동국을 제외하면 K리그에서 성장 중인 루키가 대부분인 '''2군''' 수준이었기에 그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독일의 최정예 선수들을 대한민국의 루키+국내파들이 격파한, 말 그대로 '''기적의 승리'''를 기록한 것. 더 쇼킹한 것은 바로 이 경기가 '''독일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팀에 패배한 기록이자[19]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독일전 승리 기록'''이라는 점. 2002년 월드컵 4강전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복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경기 내용면에서도 우연 혹은 운빨로 이긴 것도 아니었다. 전반 초반, 이동국이 독일 문전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크로스한 것을 독일 수비가 걷어내자 김동진이 논스톱으로 중거리슛을 때렸고, 골문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 박재홍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을 발락이 차 넣으며 전반을 1-1로 마쳤다.[20] 그리고 후반 중반 무렵 독일 진영에 공이 떨어진 것을 '''이동국이 골대 방향을 등지고 잡아 방향을 돌리며 한 발리슛[21]이 그대로 들어갔다!''' 올리버 칸은 이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손도 쓰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며 막아내지 못했고, 이 골 하나로 이동국은 본프레레호의 황태자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박재홍이 또 한 번 핸들링 파울로 페널티 킥을 내주었고, 키커로는 앞서 동점골을 성공시킨 발락이 나섰다. 그리고 발락이 때린 슈팅을...'''PK 마스터 이운재가 쳐냈다'''. 2년 전 월드컵에서 발락에게 아쉽게 결승골을 내주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던 이운재로서는 발락에게 완벽한 복수를 한 셈. 2-1로 한국이 앞서나가기 시작고 PK 득점까지 실패하자 당황한 독일은 제대로 공세를 펴지 못했다. 그리고 후반 막판, 역습 상황에서 차두리가 수비수 사이로 크로스한 것을 조재진이 가볍게 득점으로 성공시키며 3-1 완승을 거두었다. 그 와중에 조재진이 득점하는 순간 허둥대다가 중심을 잃은 필립 람이 골대를 들이박고 쓰러졌다(...). 사실 역습 상황에서 크로스가 제대로 올라가질 않고 조재진도 빈 골대에 디딤발로 골을 넣는 등 굉장히 투박하고 부산스러운 공격이었지만 독일도 독일답지 않게 수비가 붕괴되어 어수선하게 이루어져 골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독일은 아시아 투어 일정상 일본과 먼저 평가전을 치르고 온 상태였는데, '''이 때 주전을 대거 뺀 2진급을 내보내 일본을 상대로 3-0의 대승을 거뒀다.''' 당연히 한국전에 출전한 멤버들은 시차적응도 끝났고 휴식도 충분해 체력이 엄청난 상황이었는데 그걸 한국 2군이 개발살낸 격이다 보니 일본의 네티즌들은 열폭했다.
그리고 경기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이 경기 이후 독일 선수들의 굴욕(?) 짤방이 퍼지기도 했다. 경기 전 독일 대표팀 선수들은 부산 시내를 산책하며 휴식을 취했는데, 독일 선수들을 알아본 사람이 없어서 해운대에서 화보급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방해를 받지 않았을 정도. 그저 덩치 큰 외국인 관광객이었을 뿐.
저 당시 한국축구를 관심있게 봤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당시 출전 멤버 중, 차두리, 이동국, 김동진, 김상식, 김두현, 이운재 외에는 한국 프로축구에서도 탑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거나, 유망주로 불리다가 폭망한 선수뿐이다. 하지만 컨셉은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당시 한국 프로축구에서 최고의 피지컬을 가진 선수들만 모아놨다.(...) 차범근과 함께 한국 축구 역대 최강의 스피드와 파워를 자랑하는 차두리, 당대 최고의 유망주이자 장신 떡대의 김동현, 몸싸움을 즐기진 않았지만 큰 키의 이동국, 떠오르는 K리그 최고의 스피드레이서 박규선, 심지어 리그에서 특출난 활약을 한 것도 아닌 그냥 떡대 남궁도, 센터백은 최진철 급의 네임드도 없이, 수비 특급 유망주였던 김진규 포함 3떡대로 도배를 해놨다. 독일이 역사적으로 강력한 신체적 능력으로 유명한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경기에선 그 신체적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정도. 오히려 차두리에게 스피드로 몇차례 털리기까지 했다. 저 라인업의 평균 신장이 한국은 183.4cm였고, 독일은 182.5cm였으니 신장에서는 오히려 한국선수들에게 밀렸다. [22]
'''13년 6개월 뒤 두 팀은 러시아 카잔에서 다시 재회한다.''' 이번엔 월드컵 본선 F조 3차전이었는데 여기서도 대한민국이 김영권손흥민이 득점, '''2:0으로 승리하며 독일을 조 꼴찌로 추락시킴과 동시에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조별리그 광탈'''이라는 독일의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대 굴욕을 안겨주었다. 심지어 독일은 비교적 온전한 전력이었지만 한국은 1.5군급 라인업이었던 것도 똑같다. 이 두 번의 승리로 대한민국은 '''A매치에서 독일에게 2점 이상 차로 연승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1] 워낙 코엘류 감독 체제에서 골 결정력이 시망이다 보니 네이버 문자 중계는 대부분 '''"코엘류보단 나아보인다."'''는 의견이 많았다.[2] 참고로 이 때 트리니다드 토바고태국에도 지고, 고려대학교와의 연습경기에서도 진 팀이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2006 독일 월드컵에 진출했었는데, 월드컵 명단에 이 날 경기 멤버는 골을 넣은 제이슨 스코틀랜드켄와인 존스, 그리고 골키퍼 캘빈 잭 단 세명 뿐이었고, 그것도 켄와인 존스를 제외하면 후보들이였다. 원래 캘빈 잭이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이 유력했으나 부상을 당해 샤카 히슬롭이 스웨덴전에 선발로 나섰다가 선방을 보여주며 0-0 무승부를 이끌어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2차전 잉글랜드전에서도 히슬롭에게 밀렸다. 비록 3차전 파라과이전 때는 선발로 나왔다가 두 골을 헌납하며 탈락했지만... 사실 샤카 히슬롭이 EPL 경험도 있고, 더 유명한 선수다.[3] 이천수유상철은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된 상태였다. 이천수는 만 23세였고 유상철은 와일드 카드 자격.[4] 그러나 정말로 이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5] 이 때 당시 같은 아시아 팀을 이끌고 있었고, 아랍에미레이트가 한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팀이다 보니 아드 데 모스 감독이 흔한 듣보잡 출신 유럽 감독으로 여겨질 수도 있겄지만, 아드 데 모스 감독은 본프레레에 비하면 이래봬도 유럽에서도 주류에 속하는 감독이다. 1980년대 초반 AFC 아약스 감독으로 세 차례나 리그에서 우승 경력도 있고, PSV 에인트호번에서도 감독을 했으며, 네덜란드 밖인 RSC 안데를레흐트, MV 메켈런, 스탕다르 리에주, 베르더 브레멘, 스포르팅 히혼, 우라와 레즈, 알 힐랄 등에서도 감독을 했었다. 2010년 이후엔 감독을 하지 않고 네덜란드 방송에서 축구 분석을 하는데, 박지성을 만나 그가 무릎 때문에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 말했으나 정작 박지성에게는 누구냐고 듣보잡 취급 당하는 굴욕도 당했고[4] 독설가인지 히딩크를 여러 차례 비난을 하곤 했다. 그러나 첼시 감독을 맡을 땐 히딩크에게 호평한 걸 봐선 딱히 개인적인 감정이 있지는 않은 듯 하다.[6] 이 경기부터 이동국 선발 → 안정환 후반 조커의 스트라이커 전술을 구사했는데, 꽤 재미를 봤다.[7] 그리고 이 징크스는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장 이란과 격돌했던 2007년 AFC 아시안컵, 2011년 AFC 아시안컵 등만 봐도...[8] 사실 마다비키아는 오른쪽 윙/윙백인데, 김진규 뿐만 아니라 이 때 왼쪽 윙백을 맡은 이영표도 그를 제대로 막지 못한 책임이 있긴 하다. 사실 이 때 마다비키아는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에서 잘 나가던 시절이라 이영표라고 해도 막기가 쉽지 않은 선수이긴 했지만... 2007년 아시안컵 때는 이란의 주장으로 나왔으나, 부상으로 빠진 이영표 대신 나온 김치우를 잘 공략하지 못하고 승부차기에서 이운재에게 슛이 막혀 이란의 패배에 일조했다.[9] 사실 이란의 빠른 패스를 박진섭이 걷어내려다가 골문으로 잘못 들어간 것이었다.[10] 참고로 이 날은 다름아닌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었다.[11] 다음날 열린 레바논-베트남 경기가 0:0 무승부로 끝나면서 결과적으로는 한국-몰디브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더라도 한국이 조1위 최종예선 진출할 수 있었다지만, '''한국-몰디브 경기가 먼저 열렸고 한국의 승리로 최종예선 진출국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레바논이 굳이 베트남을 잡기 위해 전력투구하지 않은 결과였다. 또한 이전 서술에서는 골득실보다 승자승이 우선이라면서 승점 동률을 논했지만, '''한국과 레바논은 최종전을 앞둔 시점에서 승점 1점차였기 때문에''' 만약 한국이 몰디브를 이기지 못했다면 레바논이 베트남을 잡아서 승점만으로 한국을 누르고 조1위 최종예선 진출을 할 수 있었다.[12] 당시 이 경기를 해설했던 김주성 MBC 해설위원은 김두현의 골이 터지는 순간 괴성에 가까운 환호를 질렀다. 게다가 김두현의 골은 2004년 당시 가장 값진 골로 회자될 정도로 몰디브전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축구의 운명을 가른 경기였다. 한동안 몰디브의 골망을 가른 김두현의 중거리슛이 스포츠뉴스 오프닝에 나올 정도였다. 지속적으로 언급하지만 몰디브와의 1차전 무승부 때문에, 레바논에 쫓기는 신세가 된지라(...)...[13] FC 서울로부터 영입한 코치.[14] 이 수석코치 자리는 본프레레호 마지막 순간에도 맡을 사람이 오지 않고 공석으로 쭉 남았다. 본프레레가 나중에 수석코치의 영입을 부탁했고 후보까지 제안했다고 하나 이뤄지지 않았다. 본프레레의 인맥과 영향력, 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부족했다는 뜻. 협회에서는 핌 베어벡을 추천하여 영입제의를 했다고 밝혔으나, 이미 본프레레가 감독직을 그만 뒀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베어백이 본프레레와 함께 일하는 것을 과연 수락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상 수석코치 역할까지 맡은 건 이춘석 코치[13]였고, 본프레레와 궁합이 잘 맞았는지 통역보다도 본프레레와 가까이 있었고, 본프레레가 사퇴하여 한국을 떠날 때 출국장에서 포옹까지 했는데 정기동 골키퍼 코치와는 달리 아드보카트호에는 잔류하지 못하고 아드보카트가 직접 경질했고, 그 이후로는 무슨 이유인지 성인 축구지도자로 활동하지 않고 중학교 감독, 고등학교 감독, 유소년 클럽 감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15] 선발 멤버들만 둘러보면 불과 2년전의 2002 월드컵 황금 멤버는 이운재, 차두리 고작 둘 뿐이었고 그나마 본프레레 이후로 주전급으로 낙점받은 이동국, 조재진, 김두현, 김상식, 김진규, 김동진 정도가 주요 멤버라 할 수 있다.(실제로 부상으로 낙마한 이동국만 제외하면 언급한 선수들 전부 2006 월드컵 멤버로 안착하던 선수들이었다.)[16] 아닌 게 아니라 이 날 경기에 대한 스포츠토토 적중자가 682명에 불과했고, 배당률도 205배나 되었다.[17] 대구/경북 쪽에서 방송된 영상의 하이라이트이다. 오른쪽 위에 TBC SBS라 적혀 있었기 때문.[18] 차두리는 앞선 월드컵 2차예선 베트남전의 퇴장으로 출장이 불가능했으나, FIFA에서 월드컵 예선전 퇴장의 출전금지는 예선전으로만 한하는 것으로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서 친선경기인 독일전에는 출장할 수 있었다.[19] 이후 같은 AFC 소속이 된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이 독일을 격파하긴 했으나, 호주의 경우 소속만 AFC일 뿐 실질적으론 아시아라고 보기 어렵다.[20] 이 시기 코엘류가 발탁했던 수비수 박재홍은 잔실수를 연발했다. 앞서 베트남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도 자책골을 기록, 독일전에서도 또 프리킥 헌납... 프리킥 상황에서도 수비벽이 헐겁자 이운재가 다그치는 장면이 잡혔는데, 하필이면 박재홍이 서 있던 방향에서 공간이 생겼고 그 공간을 통해 발락의 프리킥 슈팅이 날아들어오며 한 골을 먹여주었다(...).[21] 일명 육군병장슛, 혹은 점호열외슛(...), 혹은 이동국의 한풀이. 당시 이동국은 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22] 사실 독일은 2002년 경기를 보면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경기를 했다. 대진운도 좋아서 조별리그 통과한 후 네임드가 떨어지던 팀들을 만나서 겨우겨우 신승하며 결승에 올라가 준우승을 한것이였는데, 이런 투박한 스타일로 밑어붙여 경기를 풀어나갈려했는데 오히려 한국이 본인들보다 앞서는 피지컬과 키가 되는 선수들을 내세우니 전술적으로 밀렸고 골 기회를 놓치는 실수와 결정적일때 수비가 붕괴되는 실수등으로 자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