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6/40

 


1. 제원
2. 개요
3. 개발사
4. 설계
5. 운용
5.1. 독일군의 손으로
5.2. 중전차?
6. 파생형
6.1. P43
6.2. 149/40 자주포
7. 평가
8. 매체 속에서의 P26/40
9. 둘러보기


1. 제원


[image]
[image]
'''P26/40'''
'''중량'''
26t
'''전장'''
5.8m
'''전폭'''
2.8m
'''전고'''
2.5m
'''승무원'''
4명 (전차장, 탄약수, 조종수, 무전수)
'''장갑'''
'''포탑''': 전면 50mm, 측면과 후면 40mm, 상면 20mm
'''차체''': 전면 50mm, 측면과 후면 40mm, 하면 14mm
'''주무장'''
Ansaldo 75mm L/34 전차포 1문 (65발)
'''부무장'''
브레다 M38 기관총 1 ~ 2정 (300발)
'''엔진'''
V-12 SPA 342 디젤엔진 (330hp)
'''출력비'''
11.53hp/t
'''현가장치'''
Semi-elliptical leaf spring bogies v
'''항속거리'''
280km
'''속도'''
40km/h (도로), 25km/h (야지)v
'''생산량'''
103대
75/34 Mod. S.F. 대전차포의 관통력 30° 기준
탄종
무게
포구초속
100
500
1000
1500
2000
철갑탄
5.2 kg
557 m/s
90
70
51
37
28
대전차고폭탄
4.2 kg
310 m/s
120
120
120
120
"

2. 개요


P26/40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전차이다. P40으로 불리기도 한다. 75mm 전차포와 8mm 브레다 기관총을 장비하였고, 상황에 따라 대공(對空) 기관총을 추가로 장착하기도 했다.
공식 명칭은 "기갑전차 P 26/40(Carro Armato(영어로 armored tank) P 26/40)인데, P는 중량이라는 뜻의 "pesante"이며, 26은 26톤의 무게를 뜻한다고 한다. 40은 1940년 채용되었음을 뜻한다.
이 모델은 1940년에 개발되기 시작했으나, 잦은 설계변경으로 인해 진짜로 생산이 개시된 1943년에 이탈리아가 정전협정에 조인함에 따라 소수만이 생산되었으며, 이후에는 일부가 독일군에 의해 운용되기도 했다.

3. 개발사


[image]
P.75 전차의 청사진
1938년 12월 이탈리아 육군(Regio Esercito)은 블레르 47mm 대전차포브레다 M38 8mm 기관총을 장착한 20톤 정도 중량의 새로운 중전차를 설계하도록 명령하였다. 처음에는 20~25톤 정도 중량에 32km의 기동성을 내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이탈리아군은 47mm 대전차포의 화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1940년 7월 동일한 속도에 무게는 32톤으로 증가, 동시에 20mm 브레다 20/65 대공포와 Obice da 75/18 modello 34 곡사포를 장착할 수 있도록 목표를 변경하였다. 1940년 10월 7일 이탈리아 육군성은 이 계획을 승인하고 무솔리니는 이 전차의 개발을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엔진은 330마력의 안살도 엔진을 장착, 최고 시속 40km 정도를 목표로 하였다. 이것이 P.75 전차이다(P = 'Pesante'는 이탈리아어로 무겁다는 의미이며 75는 구경을 의미한다). 초기 계획은 독일의 노이바우파초이크 전차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image]
왼쪽은 P.75, 오른쪽은 P.40 75/18의 목제 모형
하지만 P.75 계획은 도중에 변경되었다. 처음에는 후방 포탑 제거, 엔진 대형화, 포탑 개선 등의 개량이 행해졌지만 1941년 말에 안살도가 전차 디자인을 변경, 두번째 프로토타입인 P.40 75/18을 제작했다. 처음에 제작자들은 420마력의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고자 했으나, 이탈리아의 참모본부(Stato Maggiore)에서 330마력의 디젤 기관을 장착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안살도 사는 처음에는 반박했지만 나중에 압력에 굴복하고 만다. 아무튼 이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가솔린이건 디젤이건 300마력의 출력을 가진 엔진이 없었고, 미국이나 영국에서와 같이 항공기용 엔진을 전차 엔진으로 변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태였으며, 그마저도 항공기용 엔진이 모자란 판국이었다.[1]
[image]
우측의 M13/40 전차와 함께 사진을 찍은 P40 75/18 시제 전차이다. 20mm 브레다 20/65 대공포 탑재 계획을 포기하고 8mm 브레다 M38 2정을 장착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T-34라는 무서운 괴물을 만나면서 변경되었다.
[image]
주포를 Obice da 75/18 modello 34 곡사포에서 75/32 Mod 37 대전차포로 변경했지만 화력이 부족하다 여겨져 이후 좀더 강력한 것으로 변경한다.
[image]
P26/40 프로토타입의 최종형태. 주포를 이탈리아 최신예 대전차포75/34 Mod. S.F.로 변경했다. 포탑은 생산 단계에서 다시 변경된다. 1942년 8월에 시험을 거친 뒤 1942년 11월 22일에 공식적으로 채택되었고 1942년 11월 말에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1938년부터 시작해온 중전차 계획을 끝내고 1200대 분량을 발주하여 양산에 돌입하려 했지만 생산공장인 SPA 사가 연합군의 폭격을 받으면서 주문이 지연, 1943년 5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생산을 들어갔다.[2]
요약하면 P26/40의 디자인은 원래 M11/39와 비슷하면서도 보다 대구경포와 두터운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1941년에는 T-34의 교훈을 통해 전반적으로 경사장갑을 가지도록 하고, 주포 역시 신형인 "75/34"를 채용했다. 이에 따라 P26/40의 주요 역할도 보병보조용에서 대전차전용으로 변경되었고, 이에 맞추어 전차 내부도 보다 비좁고 빡빡하게 바뀌게 되었다.

4. 설계


포탑은 전차장과 탄약수라는 2명의 승무원만 탑승하는 2인용 포탑으로, 이는 전차장에게 포수의 역할까지 겸임시키는 과도한 업무 부담을 주었으므로 중대한 결점이었다. 당시의 최신형 전차는 3호 전차와 같이 전차장, 포수, 탄약수가 탑승하는 3인용 포탑을 채용하고 있었다.
주무장은 75/34포. 원래 34구경의 모델 37 등급의 포를 고수한 것으로, 포구초속이 초속 700m였고 주포의 장탄수는 65발이었다. 디자인 상의 변경점은 M 시리즈보다 기관총의 수가 적어진 것이다. P26/40에는 원래 3개의 기관총좌가 있었으나, 정면의 기관총좌가 없어지고 2개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기관총의 휴대탄약량도 M 시리즈에서 3천 발이었던 것과 달리 P26/40에서는 600발로 크게 줄어들었다.
현가장치는 M13/40으로 대표되는 M 시리즈를 기초로 하여 완충장치를 안정화한 물건이 사용되었다. 굴곡지형에서 속도가 크게 줄어들었으므로 T-34크리스티 현가장치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아무튼 덕분에 출력 대 중량비가 좋아져서 운동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장갑은 당시 이탈리아 표준 설계와는 전혀 다르게 포탑과 전면장갑에는 50mm 두께와 45도의 복합경사를 가지는 경사장갑을 채용했다. 이는 상당한 방어력의 증대를 가져왔다. 당장 기존의 M13/40 전차에서는 전면장갑이 경사장갑도 아니고 42mm에 불과했기 때문에 2파운더같은 소형 전차포나 대전차포에 관통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변화는 바람직했다. 하지만 당시 추세와는 달리 장갑의 결합이 여전히 리벳 결합으로만 연결되어 있었다. 용접에 비해, 리벳 결합은 아무리 두꺼운 장갑을 올리더라도 리벳이 충격을 못이겨서 파손되는 바람에 장갑이 혼자서 벗겨지거나 전차 자체가 스스로 조각나버릴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파손된 리벳은 그 자체가 총탄처럼 전차의 내부로 들어와서 승무원과 내부 기기를 벌집으로 만들 위험성까지 존재했다. 종합하자면 장갑은 2차대전 초창기의 대전차 무기를 상대하기에 적합했으나, 아무래도 1943년 당시의 대전차포같은 신예 대전차 화기에는 취약했다.
P26/40의 설계는 1943년 시점의 최신 전차로는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보긴 어렵지만, 용접 결합이나 충분한 수준의 현가장치, 전차장을 위한 큐폴라(cupola: 전망대) 등 당대 전차의 구비요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 P26/40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등장한 연합군이나 독일군의 중형전차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전차였다. 이는 이탈리아 전차 설계의 최종 진화형이라 할 수 있다.

5. 운용



5.1. 독일군의 손으로


1,200대가 발주되었으나 정전협정 전까지 고작 1~5대의 시제품만이 완성되었으며, 이들은 이탈리아 본토를 점령한 독일 국방군(Wehrmacht)에게 접수되었다. 종전까지 안살도(Ansaldo) 사(社)에서 100대 가량을 생산 중이었으나 엔진 부족으로 미완성 상태였다. 이 중 어떻게든 원래 엔진이나 대체엔진을 조달한 소수만이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이는 독일에서 개량한 기갑전차 P40 737(i)의 형태로 운용되었다.
이외에 엔진이 장착되지 않은 P26/40은 참호에 반쯤 파묻힌 후 선회포탑이 있는 고정포대로 사용되었다.

5.2. 중전차?


이탈리아에서는 P26/40을 중전차로 불렀는데, 이는 그 무게 때문이 아니라 그 역할 때문이었다.[3] 전장에서 M 계열의 중형전차들과 협동하여 중전차의 역할을 수행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무게나 장갑, 무장 등 스펙만 보면 다른 국가의 중형전차와 비슷한 스펙을 가지고 있으며 소수나마 이 전차가 실제 운용된 독일에서도 중형전차로서 운용되었다.
그러나 이는 P26/40 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군의 5호 전차 판터의 경우 소련군의 중전차 IS-2와 비교했을때 중량의 차이가 1t 정도밖에 나지 않고, 2차세계 대전 당시 중전차였던 미군의 M26 퍼싱보다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중형전차로 분류되어 있다. 오해하기 쉽지만 전차의 분류는 세계 표준같은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국가별로 기준을 만들어 편의상 나눠놓은 것에 불과하다. 왜 돌격포와 구축전차의 차이가 명쾌하게 매듭지어지지 않고 만년떡밥으로 남아 있는가 생각해보자. 타국 전차들의 중량을 기준으로 이탈리아 전차의 분류를 따지는 것은 ISU-152가 돌격포냐 구축전차냐 하고 따지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다. 따라서 단순히 중량을 따지기보단 각 국가에서 해당 전차가 어떤 용도로 개발, 생산되었는지를 보고 구별하는 것이 옳다. 비록 P26/40이 독일군에서는 중형전차로 운용되었다 할지라도, 전반적으로 전차들이 작고 가벼운 이탈리아군 내에서는 충분히 중전차로 분류되고, 중전차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6. 파생형


P26/40 전차에는 다음 2종류의 파생형이 있었다.

6.1. P43


[image]
하나는 P43(P30/43)이라고 불리는 전차이다. 안살도(Ansaldo) 사는 P26/40보다 더 무거운 차량을 개발하고 있었다. 30톤 무게에 420/430마력에 엔진을 장착하기로 되어 있었으며 승무원은 5명, 장갑은 80-100mm로 계획하고 있었고 전차장용 큐폴라가 달려 있었다. P26/40와 같은 75/34 Mod. S.F.포를 장착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주포를 90/42 혹은 대공포로 사용되며 대전차 무기이기도한 90/53 Mod. 1939혹은 세모벤테 105/25에서 사용하는 obice Ansaldo 105/25를 장착할 계획이었다.
'''P35/43'''
'''중량'''
35t
'''전장'''
6.17m
'''전폭'''
3.04m
'''전고'''
2.24m
http://forum.worldoftanks.com/index.php?/topic/200193-italian-tanks-and-military-vehicles/
[image]
[image]
위에 있는 사진들은 P43 bis(P35/43)의 청사진과 목업이며 이 전차는 P43의 다른 모델이다. 무게는 35톤에 90/53 Mod. 1939 혹은 90/53에 단축형인 cannone da 90/42 mm를 사용하며 470/480마력에 엔진을 장착할 예정이었다. bis는 이탈리아어로 발전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계획은 T-34-85의 등장으로 기획된 전차이다. 하지만 이 두 계획 모두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페이퍼 플랜으로 끝나버렸다.

6.2. 149/40 자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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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ovente 149/40
또 하나의 계획은 P26/40의 차체를 이용한 149/40 자주포(Semovente 149/40)로, 1대의 시제품이 생산되었다. 이 전차는 고기동 자주포로 기획되었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을 가질 계획이었다.
일단 무장으로는 23km를 육박하는 사정거리를 가진 149mm(40구경) 곡사포가 탑재되었다. 이 곡사포는 아주 소수만이 생산된 물건이지만, 전쟁 중에 운용된 대부분의 이탈리아 곡사포는 제1차 세계 대전이나 전간기에 운용된 퇴물급이었으므로 수량에 비해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 포는 중량 때문에 이동이 굉장히 힘들었으므로, 이탈리아 육군이 보유한 가장 강한 차체(즉 P26/40)를 통해 자주포 버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P26/40 차체도 그렇게 넓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공간은 주포를 위해 전용되었으므로, 포탄과 승무원은 별도의 차량으로 수송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독운용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이 자주포는 정차 후 3분 내에 발사가 가능했는데, 견인포 시절 17분이 걸리던 것과 비교되므로 이탈리아군의 시점에서는 못쓸 물건은 아니었다.
149/40 자주포의 제작은 1942년에 시작되었고 1943년에 시제품이 테스트되었으나, 이탈리아군에 큰 감흥을 주지 못하였다. 정전협정 이후 이 차량은 독일군에 넘어갔으나, 역시 별 인상을 주지 못하였다. 결국 미군이 독일에서 이를 노획했고, 평가를 위해 애버딘 전차시험장(Aberdeen Proving Ground)으로 보내졌다.

7. 평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의 전차중 가장 완성도가 높고 성능이 좋은 전차인 동시에, 그 당시 이탈리아의 안습함을 보여주는 증거품이 된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전차다.
분명히 이탈리아군 내부에서는 가장 좋은 전차였지만, 구시대적 기술인 리벳접합을 사용하는 등 세계적인 추세를 뒤따르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생산시기도 너무 늦어서 본래 주인인 이탈리아군이 사용하기보다는 점령군인 독일군이 사용하게 되었고, 그나마 엔진부족으로 인해 대다수는 고정포대로 변경되는 안습함을 겪게 된 것을 보면 좋은 무기도 때와 장소와 주인을 잘 만나야 빛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여러모로 같은 추축군인 일본의 치리가 생각나게 하는 부분.

8. 매체 속에서의 P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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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7일 업데이트때 3성 4도면 중전차로 등장하며 최초의 이탈리아 전차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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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이 안치오 고교의 비밀병기이자 플래그 차량으로 등장한다. 안치오 고교 학생들이 꽤 오래 간식비를 줄인 끝에 안쵸비 대에 이르러서 겨우 산 것이라고 한다. 아키야마 유카리가 안치오 고교에 잠입했을 시점에는 안초비가 너무 좋아서 연료도 없는데 매일 굴리고 다녔다. 그 후 오아라이 VS 안치오 전에서 4호 전차에게 탈락하고 몇 달 후에 전국대회가 끝난 후 다즐링이 몰다가 망가뜨려 버린다. 결국 오아라이 폐교 관련 인터넷 뉴스에 'P40이 장기입원한 안치오 고교가 기부를 호소한다' 라는 토막 기사가 구석에 뜬다. 최종장 2화에서는 수리를 하였는지 대회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9. 둘러보기






[1] 그래서 나중에 신형 기관의 디자인은 상당히 지체되어 결국 420마력의 디젤 기관이 테스트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양산 시점에서도 엔진의 부족이 매우 심했다.[2] 하지만 1943년 9월 8일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정작 이 전차를 설계한 이탈리아군은 해당 전차를 쓰지 못하고 독일군이 이탈리아 무기를 닥치는대로 몰수, 사용하면서 생을 마감한다.[3] 실제로 같은 추축군인 헝가리군도 일정 구경이상의 포를 단 전차를 중전차로 분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