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기념공원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358호

'''359호'''

360호
구의정수장 제1·2공장
'''UN기념공원'''
신안 증도 태평염전
1. 개요
2. 역사
3. 관리
4. 현황
5. 봉안 통계
6. 가는 법
7.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사이버 유엔기념공원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장병들을 안치하기 위해 추모시설로 만든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이다.

2. 역사


[image]
6.25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가 재한유엔기념공원 조성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회는 한국 강토에서 전몰한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 유엔군 묘지를 성지로 설정할 것을 유엔 총회에 건의하도록 정부에 건의하였다. 12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국회의 결의사항을 유엔에 전달했다. 이에 유엔은 이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 총회에서 결의문 제 977(X)를 채택함에 따라 1959년 11월 “유엔 기념 묘지 설치 및 관리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을 체결되었다. 1974년 2월 관리업무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에서 11개국으로 구성된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CUNMCK)로 위임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영국, 호주, 캐나다를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과 다수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11월 11일에 종전한 제1차 세계 대전때 부터 현충일을 기념한다. 11월 11일 11:00AM에 2분 간의 침묵과 묵념을 가지는데 대체로 모든 전쟁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을 기념하는 날이다.
2007년부터 캐나다 유엔군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 씨의 제안으로 'Turn Toward Busan(부산을 향하여)'이라고 부르는 행사를 진행한다.

3. 관리


1955년 대한민국 국회가 토지를 영구히 기증하고 성지로 지정할 것을 유엔에 건의한 뒤 1955년 12월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되었다. 지금은 매장된 전사자의 출신 국가 11개국이 관리위원회를 구성·관리하고 있다. 관리 예산도 11개국이 분담해서 내며 대한민국은 절반 가까이 부담한다고 한다. 그와 별개로 2007년 10월 24일 등록문화재 제359호로 등록되어 있다.

4. 현황


영연방 국가들과 프랑스, 터키, 네덜란드 등 11개국에서 파병된 유엔군 2300위가 모셔져 있으며, 나머지 참전국 군인들의 유해는 본국으로 송환한 상태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은 실종자 포함 약 4만 명이다.
안장된 참전용사의 국적은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이 가장 많다. 그 이유는 영연방 국가들은 군인이 전사한 그 땅에 시신을 매장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쟁 당시 전사한 영연방 국가 군인 대부분 한국에 묻혀 있으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가장 많이 전사한 미군은 영연방 국가들과는 다르게 전사자들의 유해를 전부 본국으로 송환해 장사를 지내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근무한 유엔군 중 희망자에 한하여 이곳에 모셔져 있다. 희망자의 의미는 한국전쟁의 전사자가 아니라 한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유엔군 군인이 천수를 누린 후 이곳에 안장되길 희망한 경우를 말한다. 전사자나 참전용사의 배우자가 원한다면 합장도 가능하다. 위 사례처럼 안장자 모두가 6·25전쟁 당시의 전사자나 순직자인 것은 아니다. 참전용사가 아닌 사람도 있다.
서울의 전쟁기념관과 이 곳에는 6·25전쟁의 유엔군 희생자 이름이 모두 나와 있는 명문이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희생자의 총 인원이 나올 것 같은데, ‘등재 기준’에 따라 희생자 수가 달라질 수 있다.

영국군 한국전 참전용사 '윌리엄 스피크먼 빅토리아 훈장자(William Speakman Vc)' 안장식
안장자/희생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영국군은 명문에 총 1177명으로 나와 있으며, 주한 영국 대사관 문서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자국군 6·25전쟁 사망자 수는 1109명으로 되어 있다. 인원의 차이는 실종자의 집계 여부, 기타 다른 이유로 송환되지 못한 경우, 위에서 언급한 휴전 후 사망한 경우의 집계 여부가 원인일 것이다. 군인이 아니라 취재차 한국에 왔다 순직한 기자를 안장시킨 사례도 있다.

5. 봉안 통계


참전국
봉안 유해 수
영국
884
터키
462
캐나다
380
오스트레일리아
281
네덜란드
120
프랑스
46
미국
39
대한민국
36
뉴질랜드
32
남아프리카 공화국
11
노르웨이
1
영국과 영연방의 비중이 높은데, 영국에서는 태어난 고향뿐만 아니라 죽은 장소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전사자를 고향이 아닌 전사한 땅에 장사지내는 경우가 많다. 영국과 동질적인 캐나다, 호주 등 다른 영연방국가도 마찬가지다. 다른 예로 영국 해군거문도를 점령했을 때 사망한 영국 수병의 시신은 영국군이 철수할 때 데려가지 않고 백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거문도에 묻혀있다.
미국은 제일 많은 전투병을 파병한 국가인데도 이 곳에 유해가 안장된 경우는 흔치 않은데 미국은 영국이나 터키와 달리 기본적으로 전사자의 시신을 전부 본국으로 보내서 장사지낸다.[1] 따라서 한국전쟁 전사자들은 대부분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있다.[2]
이외에도 비전투원의 유해 11구와 무명용사(신상을 알 수 없는 전사자)의 유해 4구가 안장되어 있다.

6. 가는 법


위치는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 (대연동).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대연역에서 가깝다. 부산시립박물관과 부산문화회관과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에 부산시민에게 문의할 때 모르면 박물관이나 문화회관의 위치를 물어보면 된다. 부산역에서 134번을 타고 서면에서 68번을 타고 UN기념공원에서 하차하면 된다. 다른 자세한 방법들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추가로 실제적인 한국 방문이 어렵더라도 안장용사 찾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어, 묘비 사진과 안장자 기록 파일을 모두 인터넷을 통해 받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7. 여담


  • 1952년 12월 전쟁이 한창일 때 당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부산 UN묘지를 방문하려고 했는데[3] 당시 민둥산이 일반적이던 1950년대 초반 UN군 묘지 또한 황량한 흙밭이었다. 당시만해도 아이젠하워는 국빈 중의 국빈이었기에 한겨울임에도 이 묘지를 어떻게든 푸르게 꾸며야했다. 그리고 한 가지 묘안를 떠올랐는데 바로 보리의 싹을 서양 묘비에 푸른 잔디를 덮듯이 임시로 옮겨심는 것이었다.[4] 그 당시 미 육군 공병 장교들과 친분이 있던 현대그룹 초대 회장 정주영이 이 공사를 발주받았는데[5] 성공 시 공사비 총액의 3배를 지급, 실패시 반대로 공사비의 3배를 배상한다는 조건이었다.[6] 정주영은 당시 이 건과 동시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숙소를 서구식 변기 설치 등 리모델링하는 의뢰도 받았는데, 이것도 서울 시내를 싸그리 뒤져 변기를 구해 시공을 완료, 약속대로 공사비의 3배를 지급받고 이후 이 때 얻은 신뢰로 꽤 오랫동안 미 육군의 발주를 받았다.
  • 뉴스에 일일이 나오지는 않지만, 대한민국, 특히 부산을 방문하는 6.25 전쟁 참전 당사국 고위직들이 참배를 꼭 하고 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 UN기념공원 옆에는 UN조각공원이라는 곳도 있는데, 전쟁 50주년을 맞아 2000년에 UN군 참전 21개국+대한민국+일본의 조각가 29명의 조각품을 기증받아 2001년에 조성한 곳이다.
  • 부산시민은 한 번쯤은 방문할 법한 곳이기도 하다. 비록 묘지이긴 하나 죽음의 상징인 무덤을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두기를 선호했던 한국과 달리 사람들의 거주지에 가까운 곳에 조경을 꾸며서 가꾸는 서양식 묘역으로 조성되어 정비가 꽤나 잘 되어 있어서 한 번쯤은 둘러보기에도 나쁘진 않기 때문에 적막하지만 방문객은 간간히 눈에 띄일 정도는 된다. 원래 묘지라는 곳이 잘만 꾸며지면 공원처럼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다만 성격이 성격인 만큼 피크닉 등의 일반적인 공원처럼은 이용할 수 없다. 애초에 곳곳에 정숙 푯말이 세워져 있으므로 조용히 산책하기엔 좋다. 인근에 부산박물관, 부산문화회관, 유엔평화공원, 대연고등학교가 있다.
  • 대연4동우체국의 기념통신일부인 도안이 UN기념공원이다.
  • 공원 입구에는 부산을 위수지역으로 하는 대한민국 육군 제53보병사단 소속 UN경비반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공원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에게 일일히 경례를 한다.
  • 한 한국인이 외국에서 참전자 가족을 둔 현지인을 만났는데, 그 유해가 이 공원에 묻혔으나 사정상 직접 참배하러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그 한국인과 지인들이 힘을 모아 해당 묘역을 찾아 촬영하여 보여줬다는 훈훈한 미담도 전해진다.
  • 현대자동차 캐나다 지사 딜러 신상묵씨가 차량을 구매하러 온 참전용사의 동생인 '도널드 엘리엇'씨가 형편으로 인해 한국에 묻혀있는 그의 형 '로이 더글러스 엘리엇 (R.D. Elliott)'의 묘소에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엔기념공원 사이트에서 형의 묘비 사진을 찍어 인화해주었던 미담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이 미담이 국가보훈처에도 전해져 도널드 엘리엇 씨가 초청되어 방한하기도 하였다.
  • 공원 개방시간이 17:00까지이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원이기때문에 오전, 오후 시간대에만 입장이 가능하다.(야간엔 입장 불가능!)
  • 포켓몬 GO가 한창 유행할 당시였던 2017년 전반기에는 이 공원 내에도 포켓스탑들이 깔려 있었다. 이 때문에 참전용사들을 기리고자 하는 장소에 포켓몬 잡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고, 이들 중 상당수는 말 그대로 포켓스탑이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공원의 성격을 해치는 것을 보다 못한 부산 측의 판단 하에 기념공원 내의 포켓스탑을 모두 삭제했다.
  • 더불어민주당 남구갑지역위원회(위원장 정정복)는 2019년 8월 12일, UN군참전기념탑의 조형물이 항공사진으로 보면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의 모양과 비슷하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 기념탑은 1975년 17대 박영수 부산시장 재임기에 UN창설 30주년을 기념해 건립되었다. 근거는 16개 기념탑[7]이 욱일기의 햇살 무늬 숫자와 같으며 좌편향인 점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에 부산시는 부산시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해당 기념물을 철거 또는 이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역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혐일 정신병 걸린 것 아니냐?'라는 반응이 대다수다.[8]
  • 들판이 많다보니 까치까마귀들이 들끓어서 가는 길 마다 땅에 부리를 박아 벌레를 먹고, 서로 영역다툼하는 풍경이 많다. 공원 내 연못에는 거북오리가 살고 있으며 간혹 족제비도 보인다.
  • 공원 남쪽으로는 수목원 공원이 따로 위치한다.
  • 무명용사의 길, 전사자 추모 석판 공원, 연못은 오후 1시에 분수대가 활성화한다. 공원 내부에 작은 천이 있는데, 이 천은 UN군 중 최연소 전사자 호주 소속 도운트 상병의 이름을 땄다.

8. 관련 문서



[1] 이라크 전쟁이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들은 전우가 전사할 경우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전우의 시신을 수습한다. 이러한 노력은 전투중만이 아닌 평생 지속하고 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해발굴팀을 계속 보내 유해를 수습한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전쟁터가 적들의 영토가 되어도 계속된다. 미국이 계속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수습하려고 유해 발굴단을 보내고 싶다고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신념 때문이다.[2] 가장 높은 계급의 한국전쟁 중 미군 전사자 분은 월튼 워커 중장이시며 이 분 또한 미국 알링턴에 안장되셨다. 사후 1계급 특진으로 대장 직위이다.[3] 1952년 11월 4일에 미국 34대 대선이 있었고, 임기시작은 이듬해 1953년 1월 20일 이었으므로 대통령은 아니고 대통령당선인 신분이었다. 이 시기 대통령은 해리.S.트루먼 [4] 한겨울에 자라기 어려운 잔디와 달리 보리는 겨울에 씨를 뿌려서 다음 해 여름에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12월 쯤에는 보리의 싹이나 다 자란 잔디나 그 모습이 비슷하다.[5] 친동생 정세영이 육군 통역장교로 미군과 가깝게 지낸 영향도 있었다.[6] 정주영 회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보리로 덮으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공사를 발주받은게 아니라, 금액을 보고 일단 발주부터 받은 후 '근데 이제 어쩌지?'하고 머리를 쥐어뜯다가 이 아이디어를 짜냈다고 한다. [7] 유엔 참전국 숫자를 형상화 한 것이다.[8] 이 논리대로라면 자전거 바퀴라든지 선풍기 안전망 등의 방사형 모양들은 전부 일제잔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