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링턴 국립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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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 국립묘지에 매장된 이들의 묘비. 앞에 있는 성조기는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에 모든 묘비 앞에 저렇게 올려둔다.
1. 개요
2. 역사
3. 구성
3.1. 대통령 묘역
3.2. 무명용사 묘역
4. 매장 절차
4.1. 올드 가드
5. 기타


Arlington National Cemetery

1. 개요


미국 버지니아 주의 알링턴 카운티[1]에 있는 국립묘지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국립현충원에 해당한다. 로버트 E. 리 장군의 아내였던 마리 안나 리 가족 소유의 땅이었던 알링턴 하우스를 부지로 하여 남북전쟁 중 조성되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기념관에서 포토맥 강을 건너면 마주보는 위치에 있으며, 워싱턴 메트로의 블루 라인(Blue Line)이 알링턴 국립묘지 역에 정차한다. 포토맥강을 기준으로 워싱턴과 버지니아가 갈리기 때문에 워싱턴 D.C.에서도 꽤 잘 보인다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의 전쟁 전사자와 테러 희생자 등이 안치되어 있다. 이외에도 아폴로 1호, STS-51-L, STS-107의 순직 우주비행사들, 팬암 103편 폭파 사건 사망자들, 9.11 테러로 사망한 이들의 기념관도 국립묘지 안에 있다.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역대 대통령들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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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겠지만 무명용사 추도비도 있다.

2. 역사


원래 버지니아 식민지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이었던 대니얼 파크 커스티스(Daniel Parke Custis) 소유의 농장으로 1757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아내인 마사 커스티스(Martha Dandridge Custis)가 농장을 상속받았다. 그리고 1759년 마사가 조지 워싱턴과 재혼하면서 이 농장은 워싱턴의 소유가 되었다. 이후 1802년 마사가 세상을 떠나자 마사의 손자였던 조지 워싱턴 파크 커스티스(George Washington Parke Custis)[2]가 워싱턴과의 재혼 전 마사의 개인 재산이었던 이 곳을 상속받았고, 다시 이 땅은 1857년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유일한 자손이었던 메리 애나(Mary Anna Custis Lee)와 그녀의 남편이었던 로버트 E. 리에게 상속되었다.
1861년 남북전쟁이 터지자 리와 리의 아들들은 알링턴을 떠나 아메리카 연합국 측에 가담하였고 곧바로 남부 소속의 버지니아 민병대가 리 일가의 농장을 점령했다. 나머지 가족들과 달리 당시 메리 애나는 몸이 좋지 않아 알링턴에 남아있었는데 연방군이 수도 워싱턴 D.C.와 가까운 전략적 요충지인 알링턴을 점령하기 위해 진격해오면서 알링턴이 위험해지자 버지니아 민병대는 남쪽으로 철수했고 메리 애나 역시 알링턴을 떠나 가족들이 있는 남부로 피난을 떠나면서 연방군이 알링턴의 리 일가의 농장을 접수했다.
당시 연방 정부는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전사자들을 수도 워싱턴 D.C 근처의 공동묘지들에 안장했는데 전쟁이 격화되면서 전사자가 계속해서 속출하자 이들 묘지에는 전사자를 안장할 자리가 부족하게 되었다. 이에 미 의회는 1862년 연방 정부가 전사자 안장을 위한 공동묘지용 부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임무를 담당하던 미합중국 육군 병참감(Quartermaster General) 몽고메리 C. 메이그스(Montgomery C. Meigs)가 새로운 공동묘지를 조성할 적절한 부지를 찾고 있던 도중 알링턴에 위치한 리 일가 소유의 토지를 공동묘지 조성을 위한 가장 적당한 부지로 판단하고 링컨에게 그 부지 중 200 에이커(81 헥타르)를 몰수할 것을 제안했다. 남북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리가 링당의 요청을 거부하고 아메리카 연합국 측에 가담해 지휘를 했기 때문에 연방 정부 사이에서 리는 불충한 인물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일종의 괘씸죄인 셈. 그 흔적이 지금도 로버트 E. 리 가족의 주거지였던 알링턴 하우스에 남아있다.

1864년 연방 정부는 26,800 달러의 가격으로 리 일가 소유의 알링턴의 토지를 매입했다. 메리 애나는 대리인을 보내 연방 정부와 매입가를 결정하기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연방 정부는 메리 애나의 매입가 제안을 거절하고 대리인을 다시 보내버렸다. 이후 1873년 메리 애나가 사망하자 리의 장남인 커스티스 리(Custis Lee)가 당시 어머니가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못한 채 사실상 토지를 강탈당했다고 주장하며 1874년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3] 1882년 12월 9일, 연방대법원에서 5 대 4의 의견으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토지를 압수했다는 판결을 내려 리에게 땅을 되돌려줬다. 하지만 이미 묘지가 되어버린 자신의 옛 농장에는 관심은 없고 자신이 운영하던 워싱턴 리 대학교(Washington and Lee University)의 운영 자금이 필요로 했던지라 결국 그 다음해인 1883년, 커스티스 리는 당시 전쟁장관이었던 로버트 토드 링컨(Robert Todd Lincoln)[4]과 150,000 달러(현 시가로 3,939,643 달러)에 다시 매각하는 문서에 서명하여 정식으로 연방 정부에게 토지를 넘겼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1929년 5월 30일, 처음으로 이곳에서 메모리얼 데이 기념 행사를 열었다.

3. 구성


알링턴 국립묘지는 총 70개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고, 남동부 구획의 일부는 훗날의 확장을 위해 남겨두고 있다. 60번 구획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의 전사자들을 안치하는 곳이며, 21번 구획은 간호사 구획(Nurse Section)으로, 간호사들이 묻혀있고 기념관도 있다. 전사한 유대교, 개신교, 가톨릭 군종장교를 기념하는 군종장교의 언덕(Chaplains Hill)도 있다.
1번 구획에는 록커비 테러의 희생자들이 함께 안장되어 있다. 27번 구획에는 3800명 이상의 과거 노예였던 이들(남북전쟁 당시에 이들은 '밀수품'(contraband)라고 불렸다)이 안장되어 있으며, 이들의 묘비에는 '시민'이나 '민간인'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1900년에는 알링턴 묘지 이곳저곳에 흩어져 묻혀 있던 남부군 전사자들을 남부군 구획으로 이장하였다.
남쪽 구획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해방 노예 1,100명이 정착하여 거주하던 자유민의 마을(Freeman's Village)이었으나 1868년에 정부에서 토지를 재매입하고 군사 시설 전용을 결정하면서 퇴거조치를 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조리 매장을 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자기 고향이나 기념관 근처에 묻혀 있으며 앞으로도 존 F. 케네디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외 다른 안장자는 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알링턴 묘지의 대통령 묘역은 한국의 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역에 비하면 매우 작다.

3.1. 대통령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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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중에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무덤
전직 미국 대통령들도 당연히 알링턴에 묻혀있다. 처음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대통령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존 F. 케네디 묘역은 위치도 좋고 항상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3.2. 무명용사 묘역


워싱턴 D.C를 내려다보는 언덕에는 무명인의 묘가 있으며, 무명용사의 묘(Tomb of Unknown Soldier)라고도 부른다. 1932년 4월 9일자로 조성을 마치고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콜로라도 주에서 캔 대리석으로 조각한 7개의 판이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유명한 곳 중 하나이다.
무명용사라는 말 그대로, 각 전쟁별로 수많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전사자들을 대표해 각 1명씩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 제1차 세계 대전의 무명용사 - 1921년 11월 11일 매장. 워런 G. 하딩(Warren G. Harding) 대통령 주재.
  • 제2차 세계 대전의 무명용사 - 1958년 5월 30일 매장.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주재.
  • 한국전쟁의 무명용사 - 똑같이 1958년 5월 30일 매장.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재하고 리처드 닉슨 미국 부통령이 가장 가까운 친족 대행을 맡았다.
  • 베트남 전쟁의 무명용사 - 1984년 5월 29일 매장.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주재. 베트남 전쟁의 무명용사들 중 대표로 안장된 유해의 신분이 미합중국 공군의 마이클 J. 블라시(Michael J. Blassie) 중위로 밝혀져,[5] 1998년 5월 14일, 클린턴 대통령의 권한으로 무덤에서 발굴해 고향인 미주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국립묘지로 이장, 현재는 다른 유해를 새로 안치하지 않은 채 비워 두고 있다.
현재는 DNA 대조 등 전사자의 신원 확인 기술이 크게 발달하여, 걸프 전쟁 등의 무명 용사 묘역은 없고 앞으로도 조성될 가능성이 낮다.

4. 매장 절차


주말을 제외하고 주 5일동안 매장이 이루어지며, 그 날의 첫 매장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마지막 매장이 끝난 후 30분까지 국립묘지의 국기는 조기로 계양한다. 매달 27~30건의 매장이 진행되고, 연간 약 6,900명이 이곳에 묻힌다.
화장한 이들을 위한 봉안당도 있으며 자리가 5천개씩 있는 4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4.1. 올드 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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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는 알링턴 묘지의 영현병(Old Guard)들[6]
알링턴 묘지를 경비하고 장례 및 추모 행사를 진행하는 미합중국 육군 제3보병연대는 올드 가드(Old Guard)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들은 알링턴 묘지의 의전 행사를 치를 뿐만 아니라 워싱턴 D.C.를 방어하는 전투부대이기도 하다. 부대 선발은 당연히 매우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미국 시민권자여야 하고 키도 너무 크거나 작으면 안되며(남성의 경우 최소 178cm 이상), 걷고, 달리고, 행진하는데 문제가 전혀 없어야 한다. 또한 국립묘지의 역사와 묘지들의 위치를 완벽하게 암기할 수 있을 지적 능력이 있어야만 하며 복잡한 제식 동작들을 완벽히 숙지하고 실수가 없을 정도의 순발력과 근력도 요구된다.[7] 대외적으로 보이는 근무시엔 육군의 예복인 ASU(Army Service Uniform)와 행사용 장구류를 착용한다.
무명용사의 묘를 지키는 병력은 별도로 선발되며, 근무 시간에는 그 어떠한 날씨나 상황에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 근무는 계절에 따라 2~3시간 단위로 교대하며 24시간 지속된다. 이 항목에 있는 사진의 경우 2012년 미국 동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가 워싱턴 D.C.를 덮쳤을 때 자리를 지킨 올드 가드란 제목으로 한 때 많이 퍼졌다. 물론 실제로 샌디가 덮쳤을 때도 올드 가드 장병들이 자리를 지킨 건 사실이나, 해당 사진 자체는 실제로는 샌디가 발생하기도 전인 2012년 9월에 평범한 소나기가 내릴 때 찍은 사진이다. 가혹한 근무 여건을 고려하여, 이들은 선글라스 등의 착용에 제한이 없다.
이들 외, 안장된 이들이 소속된 군종에 따라 육군해군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 등에서 수시로 의장대와 군종관 등이 오간다.
흔히들 미 육군 의장대의 총기검사 영상이 도는 건 이곳에서 찍힌 것들이다.
올드 가드 중에서도 무명 용사 묘역을 지키는 인원들을 위한 총기 컬렉션이 따로 있다. SIG M17 MHS 권총으로 컬렉션의 정식 명칭은 'M17 Tomb Of The Unknown Pistols'. 단 4정만 제작했으며 LS02JUL37A21(침묵), LS02JUL37B21(존경), LS02JUL37C21(존엄), LS02JUL37D21(인내)라는 고유의 총번과 이름을 가졌다.

5. 기타


한때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이곳을 야스쿠니 신사에 비유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일약 "알링턴 묘지에는 노예제의 편을 든 남군들도 묻혀있는데, 그렇다고 지금의 미국 정부가 노예제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단순히 전몰자 추모지, 침략 미화가 아니다"라는 논리.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논리이다. 일국 내부의 내전에 불과했던 미국 남북전쟁이 타국의 영토를 침략하고 그 국민을 학살한 행위와 동일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범죄를 찬양하는지의 여부도 중요한 차이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어디까지나 국가유공자들이 안치된 국립묘지로서 신성시되지만 야스쿠니 신사에는 가이텐 등 군국주의의 광기와 전쟁범죄를 대표하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 일본이 개전하면서 "해방"을 맞이한 국가들의 목록이라는 리스트를 걸어놨는데 이 리스트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어난 전쟁범죄들을 정당화 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미국에서도 이 발언 직후 논란이 있었으며 존 케리 국무장관[8]이 불쾌하다는 뜻을 표시했다.
유명 지역이라 이곳도 포켓몬 GO 같은 GPS 기반 스마트폰 게임의 플레이 지점이 되었는데 이에 묘지관리공단 측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심각한 결례이므로 자제해달라는 공지를 올렸다.
워싱턴 D.C 배경인 폴아웃 3에서도 나오며, 근처에 중공군 비밀 기지로 쓰이는 마마돌체 공장이 있는 고립 지형이며, 굉장히 넓다. 묘지 내에 준더스 플렁켓의 집이 잇고, 레귤레이터라면 지하철 계단에 쓰러진 레귤레이터 시체에서 준더스 플렁켓 현상수배서를 집어들고 그의 집에 찾아가 손가락을 뜯으러 갈 수 있다. 얻을 수 있는 유니크 아이템은 플렁켓의 중요한 지적.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메인 주인공이자 복제인간 군인이었던 솔리드 스네이크도 MGS4 이후 사망한 뒤 이곳에 안장되었다. 스네이크의 험난했던 인생역정을 생각해보면 죽은 뒤 국가유공자이자 영웅으로서 기억되며 명예롭게 안식을 맞이한 셈.
오버워치에서는 솔저: 76의 허묘가 있는 곳이다.

[1] 카운티는 미국의 행정구역으로 주와 시 사이에 있다.[2] 워싱턴은 직계자손이 없지만, 마사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의붓자식이 2명 있었는데 조지 워싱턴 파크 커스티스는 이 의붓자식의 자손 중 한 명이다.[3] 리는 당연히 자기 땅이 묘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리의 부인은 죽기 전에 알링턴을 한 차례 방문한 바가 있으나 이미 묘지가 되어버린 현실에 충격을 먹었다고 전해진다.[4] 에이브러햄 링컨의 장남.[5] 1972년 전투기 추락으로 전사하였다가 5개월 뒤, 남베트남 육군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유골 일부와 사진과 군번줄이 있었지만 유골의 추정 키와 나이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여서 한동안 무명용사로 되어있었다.[6] 정확히는 교대식 중에 찍힌 사진이다. 무명용사의 묘는 병사 한 명이 지키는데, 교대 시간이 되면 간부가 다음 근무자를 인솔하여 데리고 오며 교대식을 진행한다. 이 때는 주변에 있는 모든 민간인들이 기립해 교대식을 지켜봐야 하며, 움직임과 대화가 제한된다.[7] 교대식 중엔 장교가 형식적으로 교대하는 병사의 소총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총기의 정비 상태를 점검하고 병사의 복장 상태를 점검하는 절차가 있다. 이는 간부와 병사 모두에게 매우 까다로운 절차여서 고된 훈련을 필요로 한다.[8] 존 케리는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에 참배했다. 근데 버락 오바마천황가와 관련 있는 이세 신궁에 참배하면서, 향후 전쟁의 역사를 모르는 미국 대통령이 방일하면 일본 우익 정권의 농간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끌려갈 수 있는거 아니냐라는 우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