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은양념
1. 설명
한국 요리에서 쓰이는 양념.
요리책이나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갖은 양념'으로 양념을 하라는 애매한 지시어가 자주 나오는데, 요리 초보들에겐 분통을 터트리게 만드는 문구. 허나 알고보면 이 '갖은 양념'만큼 만들기 쉬우면서도 제대로 만들기 어려운 것도 없기에 따로 설명이 없는 셈. 계량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간장, 된장, 고추장등의 장류를 베이스로 부엌 찬장 또는 냉장고에 적당히 있는 양념거리 (다진쪽파, 다진마늘, 깨, 참기름, 식초, 맛술, 설탕, 기타 등등)들을 소량씩 투척하면 된다. 한식의 조리법이 아직 체계화, 과학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념을 설명할 때 그냥 대충 뭉뚱그려서 얼버무리고 넘어가기 위해 갖은 양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애시당초 갖은양념이라는 말의 '갖은'은 '온갖'할 때 그 '갖'이다. 말 그대로 온갖 양념을 통칭하는 것이다.
갖은양념의 주재료인 장류 외에 들어가는 양념은 있으면 풍미를 더해주지만 몇가지 빠져도 당장은 크게 맛에 변화는 없다. 예컨대 마늘을 빼면 맛이 확 달라지지만 파는 빼도 상대적으로 마늘보다 맛의 변화가 적다. 물론 간장에 마늘만 넣는 정도로 지나치게 간소화하면 무리가 있지만, 한국 요리와 가장 비슷한 음식인 일본 요리에선 단순히 생강+간장+설탕[1] 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재료의 수를 줄인다고 무조건 맛이 없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예컨대 히츠마부시의 경우도 딱히 비법양념이나 복잡한 재료 없이 간장과 설탕만으로 간을 하는 집도 있다.
이 양념비율에 따라 미묘하게 특정한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같은 요리라도 집집마다 약간씩 풍미가 다르고 경험이 많지 않다면 같은 양념으로 한 요리라도 그날그날 조금씩 맛이 다르기도 하며, 한식의 체계화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른바 '''손맛'''이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인도 요리에서도 비슷한 것이 있는데, 마살라(Masala)라고 한다. 뭇 향신료를 재량껏 조합해서 쓴다는 것이 공통적인 면.
2. 폐해
한식의 발전을 막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비판도 상당하나 대중과의 괴리가 있어 도저히 현장에 적용이 안 되는 게 문제. 한식 조리법의 표준화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손맛 등의 비과학적 개념과 함께 한식의 적폐 쯤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백종원의 요리 방송을 보면, 이른바 '갖은양념'이라는 용어 자체를 전혀 쓰지 않는다. 백종원은 양념을 할 때 무엇이 얼마나 들어가야 하는지 정확히 계량하여 밝히며, 또한 "빼도 모르는 재료는 넣지 마라"고 수없이 강조하면서 불필요한 재료는 최대한 생략하여 양념을 간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표준화되어 있는 양념법이 없이 맛을 봐 가며 있는 재료를 되는 대로 집어넣는 그 동안의 한식 양념법에서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이런 지적을 듣게 된 큰 이유는, 산업화와 도시 이주, 핵가족화와 맞벌이가 한 세대 안에 진척되어 버린 관계로, 주방에서 집안 음식을 세대 전달하는 문화가 단절되어 가는 것과 동시에 산업사회에 알맞은 한식 문화의 변용과 기록, 연구가 미비한 채 옛 세대의 문화가 대책없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갖은양념도 집집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른데,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그 레시피를 후손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잃다 보니 이전 세대는 '갖은양념' 하면 바로 알아듣지만 신세대는 도저히 그 갖은양념이라는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지 종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한소끔 끓인다는 말도 비슷한 경우.
3. 원인
양념에 버무리고 왜 또 확 뿌리나
단, 위 칼럼은 그 악명 높은 황교익의 글이므로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어떤 음식이라도 갖은 양념이 들어가서 비벼지고 무쳐지는 순간, 다 똑같은 맛의 음식이 된다. 예컨대 떡볶이, 닭갈비, 닭도리탕에 들어가는 양념은 모두 고추장을 기본으로 해서 비슷비슷하며, 각종 조림에 들어가는 간장+고추장 양념도 주재료만 다를 뿐 들어가는 양념은 다 똑같다. 실제로 직접 한식을 요리해 보면 알겠지만, 한식은 의외로 양념 종류가 매우 단조로운 편이다. 초고추장에 듬뿍 찍어 먹는 회라면 자연산 참돔이든 양식 광어든 별 차이 없는 것과 같은 문제. 앞서 자료로 제시된 황교익의 칼럼에서도, "한식 반찬이 가짓수는 많은데 맛은 다 비슷비슷하다"라는 일본인의 지적이 나오는데 이것 또한 마찬가지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양념 배합이 표준화, 다양화되어 있지 않고 다른 재료들에게 다 똑같은 갖은 양념을 적용하므로 벌어지는 문제.
다만 이것은 양념을 잘 못 만들었을 때다. 저 예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원래는 생선, 닭, 오리, 소, 돼지고기를 쓴 음식을 할 때 사용하는 갖은양념이 같을 수가 없다. 집에서야 음식하는 사람 마음이지만, 식당이라면 못하는 집을 간 것이다. 마치 우스터 소스를 베이스로 했다고 돈까스 소스와 스테이크 소스를 뭉뚱그려 갖은소스라고 부르거나 있는 대로 쓰는 것과 비슷한 잘못.
한식이 됐든 양식이 됐든, 맛있는 소스에 다양한 재료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 왕창 때려박으면 오히려 완성품의 맛이 단조로워져 매력을 잃는다. 사실 대부분의 조미를 사시스세소(설탕, 소금, 식초, 간장, 미소)+ 맛술, 육수에 생강이나 마늘 정도나 더해서 죄다 비슷비슷한 간장과 된장맛이 나는 일본 요리에서도 똑같이 발생하는 문제이다.
4. 실제로 요리를 배울 때
한국에서 한식을 공부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갖은양념과 한소끔에 대해서 꽤나 많이 접할 수 있게 된다. 한식 자격증 요리에서 갖은 양념은 크게 '고추장 갖은 양념(고갖양)'과 '간장 갖은 양념(간갖양)'으로 나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간장(또는 고추장), 설탕, 다진 파, 다진 마늘, 깨(소금)[2] , 참기름(또는 들기름), 후추이다[3] . 이게 기본 베이스이고 고추장 갖은 양념에 경우 요리에 따라 고춧가루를 추가하기도 한다.
물론 한식에서 오롯이 이 양념들만 쓰는 것은 아니며, 자격증 요리는 기본이라 맛이 별로 없다고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다양한 양념들을 사용한다. 생채 종류에 사용하는 식초 양념이나, 더덕 생채에 들어가는 고추장 식초 양념, 겨자채 등에 들어가는 숙성 겨자 양념, 새콤달달하게 먹는 요리에 들어가는 초간장 등 한식에도 그 양념의 다양성은 충분하다. 다만 시중에 있는 음식점의 요리들 중에는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맛이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 쇼가야키의 재료를 찾아보면 이 세 개만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 관련 조리책을 보면 가끔 깨소금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깨와 소금을 섞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깨를 다져서 소금처럼 곱게 만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다진 깨.[3] 요리 유튜버 승우아빠도 관련 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