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 컬링팀
1. 개요
경기도청 소속 여자 컬링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대한민국 여자 컬링 국가대표로, 우리나라 컬링팀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2. 역사
2.1. 성신여대 컬링부
한국에 컬링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에는 일부 대학교들 중심으로 컬링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성신여자대학교에서는 김현경 교수가 컬링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성신여대 컬링 동아리에 98학번 4인방(김미연, 박지현, 신미성, 이현정)이 들어오면서 경기도청 컬링팀의 역사가 시작된다.
마침 이들이 대학교 입학을 앞둔 2월에는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열렸고, 공식 종목이 채택된 컬링 경기가 중계됐다. 올림픽의 영향으로 4명 모두 대학에 컬링 동아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대학 시절 추억거리를 만들고자 시작한 컬링이었으나, 컬링을 시작한지 1년도 안 돼 재미 삼아 출전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면서[1] 체육교사의 꿈을 갖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그렇게 컬링 선수가 됐다.
당시에는 컬링 전용 훈련장이 없어서 무용실에서 거울을 보며 인형을 이용해 투구 연습을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을 이겨내고 성신여대 4인방은 이후로도 계속 국가대표로 뽑혔고, 2001년 아시아태평양컬링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10연패를 저지하는 우승을 해 졸업 후 서울컬링연맹 소속으로 2002년 세계선수권에 참여하고[2]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국내 컬링 여건상 대학 컬링부는 대개 동아리 차원에서 끝나고 그나마 전국대회에 참가하더라도 해당 선수들이 졸업한 후에는 다시 과거의 동아리로 돌아가기 일쑤다. 하지만 성신여대 컬링부는 이 4인방이 있기 이전부터, 이들이 졸업한 이후로도 2018년[3] 까지 20년 넘게 팀이 존속했었다. 이후 경기도청 선수가 되는 김지선, 김은지[4] , 염윤정 등이 성신여대 출신이다.
2.2. 경기도체육회에서 경기도청으로
대학 때는 학생 신분이라 컬링을 하는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이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는 갈 곳이 없다는 문제가 생겼다[5] . 다행히 2003년 경기도체육회에 컬링팀이 생겼고, 정식 실업팀이 아니라 지원금만 받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컬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경기도체육회의 지원과 대학 후배 박경미의 가세로 5명의 팀 체제가 완성됐지만 다시 경기도체육회에 위기가 생겼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경북이나 전북에게 국가대표를 내주는 일이 생겼고, 결정적으로 다들 20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각자 결혼을 하면서 가정을 꾸리게 된 것. 경기도체육회 선수가 된 초창기에만 하더라도 40대까지 함께 하자고 했었지만 결국 현실적인 문제로 하나 둘 팀을 떠나면서 성신여대 4인방 중 신미성 혼자만 남았다. 모두 그대로 은퇴한 건 아니고, 김미연[6] 은 캐나다로 유학 가서 그곳에서도 컬링을 했었고, 귀국 후 전북도청 선수로 복귀해 잠시 활동했다. 박경미는 춘천시청 팀이 창단될 때 코치 겸 선수를 맡았다.
경기도체육회 컬링팀의 감독이었던 정영섭[7] 은 전국을 돌며 새로운 팀원을 모았다. 전 소속팀원들과의 불화로 컬링을 잠시 관두고 어린이집에서 보조교사를 하고 있던 경북 출신의 이슬비, 중국 유학파임에도 불러주는 팀이 없었던 김지선, 주니어 대표팀 스킵 출신이지만 대학 특기자로 인정받지 못해 학비 문제로 휴학 중이던 김은지 등이 정영섭 감독의 설득에 차례차례 다시 컬링을 시작하게 되면서 새로운 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12년 9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비해 경기도청 컬링팀이 생기면서 정식 실업팀의 선수가 됐다. 사실 도체육회의 지원비로는 한계가 있고,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면 그나마 적은 지원비조차 못 받기에 선수들은 정식 실업팀이 생기기를 원했다. 2012년 3월 세계여자선수권에서 한국 대표팀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하면서 그토록 바라던 실업팀 창단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2.3. 소치 올림픽과 이후
2013 한국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2013-2014 시즌 국가대표와 함께 우리나라 컬링팀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특히 결승 상대였던 경북체육회 팀에게는 2012-2013 시즌 동안 연패를 당했던지라 어떻게 보면 업셋 우승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올림픽 출전 자체가 2012년 세계선수권에서 경기도청이 4위를 한 덕분이어서 출전권을 지켜낸 것이었다.
첫 경기에서 일본 대표팀[8] 을 상대로 12대7로 역전승했다. 애초에 소치 올림픽 컬링 경기 중계는 3경기만 예정됐지만 이 경기의 승리로 전경기 중계됐다. 올림픽이 있기 전 캐나다, 스코틀랜드를 거치는 투어 대회 일정을 마치자 마자 그대로 러시아에 가면서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진 터라 결국 3승 6패로 최종 성적은 8위로 마쳤지만, 첫 올림픽 출전으로 컬링이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고 컬스데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이후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세계선수권 일정을 마치고 귀국 후 경기도청은 내홍에 휩싸였다. 예정된 국가대표로서 일정이 끝나자마자 선수들은 최민석 코치의 성추문과 강제 기부건을 폭로하면서 전원 은퇴를 발표했다. 최민석 코치가 사실 관계는 인정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정영섭 감독은 5년 자격 정지를, 최민석 코치는 '''영구 제명'''의 징계가 내려지며 창단 당시 코칭스태프들은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났다.[9]
올림픽에서의 활약 때문에 다수 CF 제의가 있었지만 상기의 내부 문제 때문에 모두 고사할 수밖에 없었고, 올림픽을 통해 얻었던 컬링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식었다. 경기도청은 후임으로 정재석 감독, 신동호 코치를 임명했다.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애초부터 2013-2014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한 고참 신미성이 예정대로 은퇴한데 이어 스킵 김지선도 임신으로 잠시 팀에서 이탈하게 되면서 2014 한국선수권 출전을 포기했다. 김은지가 새로 스킵을 맡고[10] 신미성의 빈 자리는 김은지의 고교 선배이기도 한 염윤정을 영입하면서 팀을 재정비했다.
2015-2016 시즌 후 김지선이 팀을 떠나 믹스더블로 전향하면서 송현고 출신 설예은[11] 을 영입했고, 2017-2018 시즌 중 이슬비가 팀을 떠나면서 설예은의 쌍둥이 언니인 설예지[12] 를 영입했다. 2018년 리드 염윤정이 은퇴하면서 이를 대신해 춘천시청 소속이었던 김수지[13] 를 영입했다.
2019 한국선수권에서 춘천시청을 꺾고 4년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특히나 한국선수권 전까지 춘천시청의 스킵 김민지와 상대 전적이 3승 7패로 열세였는데다[14] 예선전에는 경기도청이 이겼지만 결승전 직행을 둔 플레이오프 경기에서는 무려 11점을 스틸당하며 대패하면서 준결승을 거치고 올라와야 했는데다 결승전에서도 춘천시청이 마지막 10엔드에 후공을 차지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지만,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 2점 스틸하며 이겼다. 이후 아시아태평양선수권에서 3위를 하면서 세계선수권 직행에는 실패했고, 세계선수권 최종예선 대회인 세계 퀄리피케이션 이벤트에서는 전승했지만 코로나 19의 유행 때문에 세계선수권이 취소되면서 4년만의 세계선수권 출전은 무산됐다. 시즌 후 엄민지가 새로 창단된 전북도청 믹스더블팀으로 이적하면서 소치 올림픽 멤버 중에서는 스킵 김은지만 남게 됐다.
3. 선수단
- 코칭스태프
신동호[15] (코치)
- 선수
3.1. 시즌별 선수단
4. 시즌별 대회 성적
경기도체육회 시절 이후부터. 관련 정보 부족으로 2010년대 이전 대회는 일부 누락됐다.
- 2003-2004 시즌(국가대표)
- 2004-2005 시즌(국가대표)
- 2005-2006 시즌
- 2006-2007 시즌
- 2007-2008 시즌(국가대표)
- 2008-2009 시즌(국가대표)
- 2009-2010 시즌
- 2010-2011 시즌(국가대표)
- 2011-2012 시즌(국가대표)
- 2012-2013 시즌
- 2013-2014 시즌(국가대표)
- 2014-2015 시즌
- 2015-2016 시즌(국가대표)
- 2016-2017 시즌
- 2017-2018 시즌
- 2018-2019 시즌
- 2019-2020 시즌(국가대표)
- 2020-2021 시즌
5. 시즌별 월드 컬링 투어 랭킹
월드 컬링 투어 순위와 포인트는 2015년 전후로 차이가 있다. 2014-2015 시즌까지는 직전 시즌과 해당 시즌 포인트 합산을 기준으로 순위를 따졌으나 2015-2016 시즌부터는 해당 시즌에서 획득한 포인트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각 대회에 따른 포인트도 2015-2016 시즌부터 늘어났다.
월드 컬링 투어(WCT) 성적에는 WCT 각 대회 뿐만 아니라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국제 대회 성적도 반영된다.
6. 기타
- 성신여대 시절부터 경기도체육회 시절까지는 정식 실업팀이 아니다 보니 지원이 적어 안습한 일화가 많았다. 성신여대 시절에는 컬링슈즈가 없어서 일반 운동화에 아크릴을 붙였다거나, 소모품인 브룸 패드를 아끼기 위해서 외국 선수들이 버린 걸 주워다 빨아썼다. 비인기 종목인 탓에 국가대표인데도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지 못하고 근처 모텔에서 김밥이나 배달 음식[18] 으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었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였던 신미성 선수는 2014년 세계컬링선수권대회 이후 은퇴했다. 이후 한양초등학교 컬링팀 코치로서 대한민국 컬링 1세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기사
- 설예은과 설예지 쌍둥이 자매의 미모가 유명하지만 전체 멤버들의 비글미도 상당하다. 넘치는 에너지에 취재진이 당황할정도 MBC 인터뷰
[1] 참고로 당시 성신여대에서만 4팀이 출전했다고 한다. 또한 98학번 4인방은 그 성신여대 선수들 중 막내였다.[2] 비록 전패로 최하위를 기록했으나 2001년 시점에서 아시아태평양컬링선수권대회 남자부에서는 뉴질랜드와 일본이 호주의 독주를 깬 반면 여자부는 일본이 독주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깨지자 아시아 컬링에 경쟁력이 생겼다고 판단했는지 몇 년 뒤인 2005년 아시아의 세계선수권 시드가 남,녀 모두 2장으로 늘어났다.[3] 2019년에도 성신여대 소속으로 등록한 선수가 있었으나 2명 뿐이어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수를 채우지 못했다.[4] 체육특기생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휴학했다가 경기도청에 입단하면서 중퇴했다.[5] 실제로 신미성은 컬링 할 생각에만 빠져 대학 졸업 후에도 취직을 안 했다고.[6] 이후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감독이 되는 이용과 결혼했다.[7] 원래 고교 때까지는 축구선수였다. 대학 졸업 후 체육교사가 돼 경기도 내에서 역도, 사격 등 다양한 종목의 감독 교사를 맡았다가 1997년 의정부고등학교에 부임해 빙상부를 맡게 되며 컬링을 접했다. 의정부고를 시작으로 송현고, 의정부중, 회룡중, 민락중 등 의정부내 학교 컬링팀 창단에 앞장섰었다.[8] 일본 대표팀으로 나온 팀은 홋카이도은행 포르티우스로, 스킵 오가사와라 아유미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과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한 바 있는 일본 컬링의 베테랑이다.[9] 이후 정 감독과 최 코치는 훈련지원금 잔액도 반납하지 않았고, 훈련 지원비가 끊길 것을 대비해 카드깡으로 차액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 입건됐다. 기사[10] 김지선이 출산 후 복귀했을 때는 국가대표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김은지는 포스 역할만 맡고, 김지선이 스킵 겸 리드를 맡기도 했다.[11] 김초희와 고교 동기로 당시 서드를 맡았다.[12] 원래 대학 진학 후 믹스더블을 했었다.[13] 춘천시청 입단 이전 숭실대 시절 팀의 스킵으로 한국선수권에서 2번 준우승을 했었다.[14] 춘천시청 입단 전 송현고 시절 포함[15] 전 회룡중학교, 의정부고등학교 컬링부 코치.[16] 태어난 곳은 충청남도 당진시.[17] 태어난 곳은 강원도 속초시.[18] 다만 이는 당시 코칭스태프가 훈련비 확보라는 명목으로 선수들의 식대까지 착복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