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숭정전
1. 개요
慶熙宮 崇政殿
경희궁의 정전#s-6.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는 곳이다. '''현재 남아있는 5대 궁궐의 정전 중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정전이다.'''
2. 역사
1617년(광해군 9년)에서 1620년(광해군 12년) 사이에 경희궁을 창건할 때 지었다. 이후 약 240여년 간 조선 후기 동안 사실상 정궁[1] 인 창덕궁의 인정전과 더불어 국가의 주요 행사를 치르는 공간으로 쓰였다. 경종, 정조, 헌종이 이곳에서 즉위했다. 1829년(순조 29년) 경희궁에 대화재가 일어나 내전 주요 건물인 회상전(會祥殿), 융복전(隆福殿) 등은 불탔으나 숭정전은 피해를 면하였다.
그러나 1860년대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이 궁궐의 기능을 상실하자 숭정전도 방치되어 1880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대한제국 수립 후 당시 황궁이던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근처에 있어 경희궁에서 주요 국가 행사를 치르기도 했는데 이 때 숭정전의 문짝과 벽을 없애고 군사 훈련 등을 참관하는 장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1907년(융희 원년)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3] 한 뒤, 경희궁은 다시 버려졌다.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에 일제는 숭정전과 그 인근에 일본인 학교 경성중학교(京城中學校)[4] 를 세우면서, 숭정전 건물 부재들을 민간에 팔았다. 숭정전은 일본 사찰 대화정 조계사(大和町 曹溪寺)의 법당이 되었고[5] 기존 숭정전 자리에는 학교 식당이 들어섰다. 원래 건물은 광복 이후 조계사 터에 동국대학교 건물들이 들어선 뒤 1975년부터 1976년 사이에 보수 공사 및 현재 자리로 옮겨져 동국대학교 정각원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후 본 건물의 이야기는 정각원 문서 참조. 서울특별시에서는 1974년 1월 15일에 옛 숭정전 건물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했다.[6]
광복 이후에도 경성중학교가 서울 중, 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 학교 자체는 주욱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서울특별시가 〈경희궁지 복원과 시민 사적 공원 조성 계획〉를 세우고 서울고등학교를 지금의 서초구 효령로로 이전시킨 뒤 1985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1991년에 복원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주변부까지 복원을 마쳤고 이후 시민에게 개방해 오늘에 이른다. 당초 복원 당시에는 동국대학교 정각원 건물을 옮겨오려 했으나 부재들도 낡은데다 내부 변형이 너무 심해 그냥 놔두고, 대신 그대로 본딴 새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3. 정문
4. 특징
- 내부 천장은 우물반자를 꾸며 화려한 용(龍)무늬 단청을 그렸는데, 경희궁 창건 당시 법궁이던 창덕궁의 인정전에도 격이 약간 낮은 봉황이 달린 것을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현대에 숭정전을 복원할 때 이 용도 정각원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복원했는데, 새로 만든 용 조각이 장난감같이 조잡해서 논란이 인 적이 있었다. 천정의 그림과 다른 조형물 또한 원형과 전혀 다르다.
- 건물 4면에는 꽃살분합문을 달았고, 그 위에는 교창(交窓)을 내었는데, 어칸에는 4짝, 그 옆 협칸에는 3짝, 그리고 가장 양 끝칸인 툇간에는 2짝문으로 나 있다. 내부 천장은 소란반자이다. 공포는 외부로는 창방 위에 외2출목의 쇠서와 교두형 첨차를 두어 다포계의 특징을 보이면서 기둥 위에만 짜여 있다. 간포(間包) 대신 화반을 두고, 공포 내부에 출목 없이 양봉형(樑奉形)으로 보아지를 마련하여 보를 받치는 점은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건물 앞에 놓인 계단 역시 다른 궁(宮)의 정전과 같이 삼도(三道)로 꾸며 중앙에는 봉황 1쌍을 양각하여 장식했다.출처.
5. 매체 등에서의 활용
2000년대 들어 문화재 보호를 위해 문화재청에서 주요 고궁에서의 사극 또는 드라마 촬영을 엄격하게 제한하자, 제작사 측에서는 사실상 신축이라 상대적으로 연혁이 짧은 경희궁을 촬영 장소로 자주 이용했으며, 자연스럽게 메인 건물인 숭정전이 자주 등장했다.
문제는 창건 이전(광해군 이전) 시대를 다룬 작품에 숭정전이 나와 고증오류가 일어난다는 것. 대표적으로 세종 시기를 다룬 《대왕 세종》과 문종 ~ 세조 시기를 다룬 《공주의 남자》[8] , 그리고 성종 ~ 연산군 시기를 그린 《왕과 나》가 있다.[9]
또한 현대에 입헌군주제가 지속된다는 설정을 가진 드라마들, 즉 《궁》, 《궁S》, 《황후의 품격》[10] 에 나오는 전통 양식 궁궐 건물도 사실 이 곳에서 외부 장면을 촬영했다.
《대장금》, 《화성에서 꿈꾸다》, 《명성황후》, 《왕세자 실종 사건》 등의 사극 뮤지컬도 '고궁 버전'이라는 이름으로 숭정전에서 자주 공연한다. 아무래도 야외이기도 하고 애초에 공연장이 목적인 장소가 아닌지라 시설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밤하늘 아래에서 보는 뮤지컬만큼은 최소한 분위기가 제법 난다.
6. 같이보기
[1] 조선 왕조 500년 내내 정궁은 엄연히 경복궁이었다. 다만 임진왜란 이후 270여년 간 재건하지 못하면서 창덕궁이 사실상 정궁으로 기능했다.[2] [image] 사진엽서 전체의 모습.[3] 移御. 임금이 거처를 옮기는 것.[4] 현재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경성중학교와는 다른 학교다. 거기는 ''''景''''城.[5]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의 조계사와는 다른 절이다. 자세한 것은 조계사 항목 참고.[6] 복원된 숭정전은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했다.[7] 예외로 창덕궁 인정전의 경우는 북쪽을 제외한 3면에만 문이 있다.[8] 참고로, 이 드라마에서 김종서로 출연한 배우 이순재가 서울고등학교가 경희궁 터에 있던 시절 다녔던 졸업생이다. 드라마 제작발표회도 이 곳 숭정전에서 했었는데, 감회가 남달랐을 듯.[9] 특히 《왕과 나》의 라이벌이었던 《이산》은 정조 시대를 다룬 드라마라 고증을 따지자면 오히려 《이산》을 이 곳에서 촬영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정작 《이산》은 용인 MBC 드라미아에 있는 고려 왕궁 '''만월대''' 세트에서 촬영했다.(...) [10] 단, 이 드라마의 경우 메인 촬영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백제문화단지이고, 숭정전은 11회부터 어쩌다 가끔 나온다. 마지막회에서는 관광지가 된 궁궐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