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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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LG그룹의 4대 회장이자 재벌 4세이다.
2004년 12월에는 큰아버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대한민국 재계 4위 LG그룹의 후계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8년 6월 29일 지주회사인 (주)LG의 대표이사 회장직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LG그룹의 총수로 자리잡았다.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타파하기 위해서인지 특이하게도 대외적으로는 '회장'이라는 직함 대신 '대표'로 불리고 있다. #
2. 생애
1978년 1월 23일, 희성그룹 회장 구본능(具本綾)[4] 과 강영혜(姜暎惠)[5]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복초등학교와 봉은중학교, 영동고등학교[6] 를 졸업했다.
2.1. LG그룹 방계에서 LG그룹의 후계자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뉴욕 주에 위치한 로체스터 공과대학(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LG그룹은 딸들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타 재벌[7] 과는 달리 가부장적인 가풍이 강해서 철저히 장자승계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그래서 구본무 회장은 아들이 사망한 후 51세에 늦둥이까지 봤는데 딸이었다. 그래서 첫째 큰 남동생의 장남인 구광모를 양자로 삼게 되었다.#
겸손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동료 직원들과 격의없이 소통하는 등 소탈하게 지내지만, 업무에서는 강한 실행력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우자인 정효정은 중소기업 보락의 정기련 대표의 장녀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2000년대 중반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인에 따르면 효정 씨는 성격이 원만하고 매사에 성실해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혼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처음 보락 측에서 굴지의 재벌가와 사돈이 되는 것에 큰 부담을 가졌다. 그러나 LG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지원하고 나서며 2009년 결혼했다. 슬하 1남 1녀를 두었다.
2.2. LG그룹 내에서의 커리어
2006년 9월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LG그룹에 입사한 후, 2007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MBA(경영학 석사학위)과정에 입학했다 중퇴하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9년 8월 LG전자에 복귀한 뒤 2011년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 뉴저지법인 차장으로 승진했다.
2014년 1월 국내로 들어와 3월 HE사업본부 TV선행상품 기획팀 등 LG전자에서 여러 사업 부문을 경험하고 생산 현장도 거치고 (주)LG 시너지팀 부장으로 이동했고 2016년에는 2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전무 승진 예상과는 다르게 상무 직급을 유지한 채 LG전자 B2B 사업본부 ID 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구본무 회장 타계로 2018년 6월 사내이사,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구광모 회장 체제 출범 이후 일감 몰아주기 논란 등을 사전에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물류회사 판토스 지분 19.9%와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자회사 서브원의 지분 60.1% 지분을 매각했다.
2.3. LG그룹 회장 취임 및 활동
양부이자 큰아버지였던 구본무 회장이 1년 간의 뇌종양 투병 끝에 2018년 5월 20일 사망한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6월 29일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만 40세로 젊은 축에 들긴 하지만, 사상 최연소 재벌 총수는 아니다. 최연소는 1981년 한화그룹을 승계한 김승연 회장의 29세.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준(36세)[8] ,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35세)의 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아버지 정주영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취임한 경우고 저 당시에는 지금처럼 계열분리되어 독립한게 아니라 현대그룹의 계열사였기 때문에 그룹 총수가 아니라 계열사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9] 그룹으로 독립하여 회장으로 취임한건 정주영의 사후에 생긴 일이다.
여러모로 제일 비슷한 케이스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인데 최태원 회장의 아버지인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이 사망했을 당시 만 40세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도 SK그룹은 재계 10위 안쪽의 그룹이었다. 구광모 회장이 마흔 살에 취임하는 것도 어리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20년 전에는 더더욱 심해서 최종현 회장의 가신 중의 가신이던 손길승 회장이 임시로 SK그룹 회장직을 맡았고, 2004년에야 최태원 본인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8년 9월 18일에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4대 그룹 총수 중 한 명으로서 사절단에 합류했는데, 취임한지 얼마 안 되어 중요한 행사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스타트를 좋게 끊었다고 볼 수 있다.
구본무의 유족들이 납부할 상속세는 총 9,179억 원이며, 이 중 구광모가 내야 할 상속세는 약 7,200억 원이라고 한다. 구광모 회장이 상속세를 완납할 경우 2003년 신용호 교보생명 전 회장이 사망하고 신창재 회장이 상속받으면서 낸 상속세 1,830억 원의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2018년 11월 30일,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다른 상속인들과 함께 전체 상속세 9,215억 원의 1/6에 해당하는 금액을 납부했으며, 남은 상속세를 최대 5년간 나누어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2019년 1월 18일 LG 트윈스가 KBO에 구단주 변경 신청을 함에 따라 작은 아버지 구본준 부회장에 이어 LG 트윈스 구단주를 맡게 됐다. 이로써 구광모 회장은 KBO 리그 10개 구단의 구단주 중에서 최연소 구단주가 된다. 다만 실질적인 구단주 업무는 LG스포츠 대표이사인 이규홍 사장이 대신할 예정.
회장 취임 이후 이전의 보수적인 LG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굉장히 공격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데 비주력 사업 정리와 국내외 경쟁 기업들과 연이어 소송전을 벌이고 있으며 마케팅에서도 경쟁 기업을 상대로 도발하는 등 달라진 LG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ED TV와 LG 그램 광고가 레전드
라이벌 회사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재계에 있으면서 서로 모르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구광모 회장보다 10살이나 많다보니...
2020년 10월 27일 故이건희 회장에 조문하였다.
취임 이후 인공지능, 로봇, 전장,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동시에, 적자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등 그룹의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2018년에는 대규모 적자를 낸 LG디스플레이 LCD사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으며, 특히 2021년 1월 20일에는 그동안 적자를 기록했던 MC사업부 매각을 발표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MC사업부 매각을 발표한 날 LG전자 주가는 12% 뛰었다. 다만 직원들의 고용 불안도 있는지라, 어떻게든 고용은 유지하겠다고 했다. # #
3. 가계도
4. 둘러보기
[1] 도원수파(都元帥派) 호양공계(胡襄公系) 29세 '''모(謨)''' 휴(烋) 항렬.[2] 로체스터 대학교와는 다른 학교다.[3] 2020년 8월 포브스 기준[4] 구자경의 차남[5] 출처: 구인회 묘비.[6] 봉은중학교 남학생들은 경기고등학교로 주로 배정되나 영동고등학교, 청담고등학교, 압구정고등학교로 배정되는 경우도 있다.[7] 범 삼성가의 이인희, 이명희, 이부진, 이서현을 떠올리면 쉽다.[8] 다만 정몽준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정치를 시작하면서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다. 그러나 현대오일뱅크 인수나, 현대종합상사(정몽혁), 현대종합금융(정몽일) 같은 사촌동생과 친동생을 챙기는 일은 본인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9] 정몽근 명예회장은 여전히 이것저것을 하면서 현대백화점그룹과 내부거래로 경영을 계속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