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등학교(서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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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남자고등학교.
1972년에 설립되어 이듬해에 1기가 입학하였으며 2019년 현재 개교 47주년을 맞았다. 2012년에 개교 40주년, 설립자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학교 축제를 개최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강남구민을 포함하여 3천여명이 넘는 방문객이 씨스타 , 박완규, 적우 등의 초청공연을 보기 위해 입장했었다.
한 학년당 13학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2학년은 문이과 통합, 3학년은 문과 7반 이과 6반으로 구성되어 있다.[1] 과거에는 14~15학급, 한 학급당 약 40명이었으나 학령인구 감소로 학급 수와 학생 수 모두 줄었다.
2019년 제44회 졸업식에서 14학급 442명이 졸업했고, 졸업생 총계는 29,772명이다. 2020년 제45회 졸업식에서 13학급 328명이 졸업했고, 졸업생 총계는 30,100명으로 동문수가 3만명을 넘어섰다.
이라는 교훈 아래에 약 3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박찬욱, 나홍진 감독 등이 영동고등학교 출신이며 LG, 광동제약, 에이스 침대, 웰크론 그룹의 대표이사, 회장 등 재계 인사 또한 영동고 출신이 많다. 현빈, 김주혁, 김현중, 준케이, 옥택연 등의 연예계에 다수의 졸업생이 존재한다.[2] 임종룡 금융위원장, 지상욱 국회의원과 같은 정계 인사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참되고 부지런한 지성인'''
강남의 탄생과 함께해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강남이 처음 개발 되던 때에 지어진 학교인데다가 전문대학교 설립이 당초 목적이었기 때문에 학교 부지가 넓다.[3][4]
교명인 영동(永東)은 영등포의 동쪽이란 뜻으로 현재의 강남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강남 일대가 서울시에 최초 편입될 당시는 영등포가 시가지였고, 강남 일대는 시골 논밭이다보니 영등포를 기준으로 삼았다. 자세한 것은 영동#s-3 참조. 아직도 강남 청담동~논현동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에는 영동지역이라는 표기가 남아있다. 이는 영동이라는 뜻이 과거 강남구를 의미했다는 증거.
이사장은 김응용 감독의 스승이자 MBC 청룡과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재직했던 어우홍이시다. 이사장은 학교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참석한다.[5]
교내 부지가 경기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처럼 대학 캠퍼스 뺨치게 매우 넓다. 강남구를 넘어 서울 전체를 통틀어도 이만큼 넓은 부지를 지닌 학교는 보기 드물다.
2. 개교
해청[6] 김형목 이사장은 북청 물장수로 유명한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출생하였다. 1950년대에 사업을 통해 부를 이루고, 60년대에는 제지회사에 투자하고 해운사업에 나섰다.
1968년에는 부동산개발회사 강남개발을 설립하기도 했다. 강남일대가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 하에 부동산 사업을 준비하는 혜안을 보였다는 평판이 당시 많이 돌았다. 일설에는 김 사장이 논밭이었던 강남지역 일대의 땅 10만여평을 사들여 강남 최대 땅부자로 떠올랐다고도 한다. 땅의 넓이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김 사장이 강남지역 개발을 예견하고 적극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얘기는 두루 회자돼 있다.#
1972년에는 영동고등학교[7] 를 설립하였으며 강남일대에 아파트를 공급하고 강남 최초의 백화점인 영동백화점을 세웠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교정으로도 유명한데, 현재는 2만 5천 명의 넓은 교정 중 5분의 2정도를 차지하는 소운동장과 공터는 펜스로 막혀있어 사용이 불가능하다. 생태화 사업 (인공 호수 등)으로 꾸밀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계획 단계에 있다.
3. 교가
작사가는 꺼삐딴 리로 유명한 소설가 전광용.'''1절'''
천고에 굽이치는 한강기슭에 배달의 얼을 이어 세운 배움터
자유와 진리의 등불이고저 청운의 꿈을 안고 모인 우리들
참되고 부지런히 갈고 다듬어 영동의 역사를 아로새기자
'''2절'''
북악과 관악을 우러러보며 겨레의 슬기로움 가슴에 품고
서로 도와 아끼며 한데 뭉치어 온 누리에 뻗어갈 새 나라의 별
참되고 부지런히 갈고 다듬어 영동의 전통을 빛내어가자
70년대 서슬퍼런 군사정권때 창립된 학교여서 그런지 어째 교가가 행진곡, 군가 풍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가 가사를 잘 모르고 교가가 쓰이는 날은 대동제와 같은 특별 활동이 있는 날로 전교생을 운동장에 집합시켜 80년대 지지직거리는 음질MR를 틀어 부르게 시킨다. 이를 고치려고 학생회에서 작곡 동아리의 도움을 받아 교가를 다시 녹음하였으나 재녹음한 교가는 2015년 축제때 한번 사용되고 매장되었다..
신입 1학년은 1학기때 교가를 외워서 가창시험을 본다.
4. 출신 인물
'''나무위키에 등재된 인물'''을 가나다순으로, 인물 이름 - 기수의 형태로 정리하였다.
- 강재형 - MBC 아나운서
- 구광모
- 김대희
- 김민규(2001) (프로듀스 X 101)
- 김의성
- 김주혁
- 김창기(동물원)
- 김현중 - 1학년 때 중퇴
- 김현철(가수)
- 김형준(태사자)
- 나홍진
- 박민권
- 박재민(1967)
- 박찬욱[8]
- 셔누
- 손동표 (아이돌 그룹 X1의 멤버) (자퇴)[9]
- 신원철(1964)
- 안태근
- 양민규(재학 중)
- 오만석
- 옥택연
- 유현준(건축가)
- 윤희석(정치인)
- 이승건(기업인)
- 이재용(방송인)
- 이재웅 :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주
- 임종룡
- 정윤성 - 링트럴
- 조한철
- 준케이(김민준)
- 지상욱
- 차진혁 : 유튜버 [10]
- 철면수심 : 트위치 스트리머
- 한정석[11]
- 현빈
- 홍연준
- [12]
5.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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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차야 있겠지만 영동고의 교복은 학생들 사이에선 '''올드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군청색 바탕에다 검은 체크무늬가 더해진 교복마이는 실로 죄수복을 연상케 한다. 교복 자율화 이래로 꾸준히 사용되어 왔던 이 기묘한 디자인은, 갓 입학한 신입생들에겐 창피함과 모멸감을, 재학생들에겐 자괴감을 선사하고 타학교 학생들에겐 실소를 자아내며 두루 사랑을 받아왔다. 재학생들은 '바둑판', '체스판'이라고도 부른다. 타교 학생들은 이를 카페트라고 한다.[13][14] 하복은 무난하지 않은 파란색 바지에 무난한 흰색 반팔 와이셔츠다.[15]
이 교복이 도입된 것은 80년대 후반으로 원래는 행사용 제복의 용도로 도입되었다. 즉 월요일 아침 조례용으로 일주일에 월요일 하루만 입으면 되는 옷이었다. 그러다 슬금슬금 교복 착용일을 늘려서 (주 2일 , 주3일 , 주5일 -토요일 제외, 항시 착용) 92년 졸업생 때는 항시 착용이 되어버렸다.
학년별로 파란색, 노란색, 흰색 교표를 사용하며, 3년마다 순환한다. (예를 들어 2012년-2015년-2018년 입학생은 파란색 교표)
6. 축제
매년 5월 말~6월 초(창립기념일인 6월 3일과 인접한 토-일요일)에 학제라는 축제를 연다.[16] 정확하게 설명하면 학제는 배울 학자가 아닌 학교의 교조인 학 학 자를 사용한다. 학의 숭고하고 청렴한 정신을 본받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하다. 대동제는 학제 속에 마련된 공연마당으로 최근 몇년동안의 예와 같이 금요일엔 체육대회, 토요일 오전엔 합창대회, 오후엔 동아리부스 활동, 저녁엔 대동제 관람으로 구성되어있다.
개교 당시에는 축제를 일주일 동안 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9년 현재는 금요일 토요일 이틀동안 진행하며, 금요일은 다른 학교 학생들도 들어올 수 있지만, 아무래도 수업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 거의 자축 분위기이지만 토요일에 열리는 축제도 역시 아무나 들어올 수 있고, 주변 학교들도 수업이 없는 날이기 때문에 외부인들도 많이 방문한다. 특히 피날레에 초대되는 다른 학교 여고가 인기가 많다.
영동고등학교 축제는 연예인들의 축하공연 비중이 높았던 편인데, 가수 박완규, 적우 등의 발라드(록) 가수는 물론 씨스타와 같은 아이돌의 공연까지 올랐던 적이 었어 강남구 내 고등학생들은 영동고등학교 학제에 대해 관심도가 높았다.
- 2008년에는 소녀시대가 오기로 해 축제 전부터 학교가 들썩였는데, 행사 당일 갑자기 MC가 듣도보도 못한 아이돌을 소개하며 왠 보이그룹을 소개했다! 당시 학생들은 보이그룹의 등장과 그걸 보러 온 여성팬들을 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고, 심지어 앞쪽에 앉은 학생들은 야유까지 보내기도 했다. 데뷔한 지 갓 일주일도 되지 않아 행사에 처음 올라온 그들은 나중에 커서... 무대 영상
- 2010년에는 6월 1일 교내 체육대회-6월 2일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6월 3일 창립기념일(휴일)-6월 4~5일 학제로 1주일을 통으로 놀았다.
- 2011년에는 불꽃놀이를 진행했으나 주변 주민들의 민원으로 다음 해에는 레이져 쇼로 대체되었지만 그 다음 해에 다시 부활.
- 2012년에는 씨스타가 오기도했다.
- 2013년 '영동제라블'이라는 주제로 축제를 진행했는데 대차게 망했다. 댄스부의 공연만 보고 대부분의 관중들이 빠져나갔다.
- 2014년에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영향으로 크게 축소되어 동아리발표회 위주로 진행되었다.
- 2015년에는 AOA가 오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대신 광남고등학교의 여자 댄스부가 화끈한 안무를 선보임으로써 뭇 남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이때 여고 찬조공연이 아주 선정적이라 선생들은 불쾌한 반응이었고 학생회의 증언에 의하면 오디션 공연과 본무대 공연이 아예 달랐다고 한다.
- 2016년에는 작년에 비해 흥미면에서는 부족했다는 평이 많다. 작년 광남고등학교 댄스부의 후폭풍이 큰 나머지 올해 찬조팀들도 꽤 강한 안무를 선보였으나 큰 반향은 없었다. 동아리 별로 겹치는 부스 활동이 많아, 준비 기간에 비해 힘든 점이 많았다고 한다. 2016학년도 학제 대동제 1부에서는 복면가왕이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진행되었는데 덤으로 교사들의 훌륭한 가창력이 돋보였다. 복면가왕에 대해서는 약간의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가인데 2016년도가 지나고 나면 때지난 트렌드가 되어버릴 듯한 아이템이라 이번 년도에 선보인것이 적합했다는 평가도 있다. 교사들과 재학생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지만, 타학교 출입생의 경우 지루했다는 평이 있다.
- 2017년도는 영동고등학교 개교 45주년으로 작년에 비해 규모가 큰 학제로 진행되지 않을까하는 예상들이 많았지만 기대에 비해 별로였다는 평이 많았다.
- 2018년에는 몇 개의 동아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아리가 야외가 아닌 교실에서 활동을 하였다. 영동고의 자랑인 큰 공간을 덜 사용하여 아쉽다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작년보다 야외무대를 크게 설치하는 대신에 운동장에 무대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재밌었다는 평이 많았다.
체육대회 때 높이뛰기 영역이 새로 생겼는데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7. 교정
정문에서부터 본관까지의 거리가 꽤 길다. 걸어서 5~6분 걸리는 정도. 버스로 통학하는 학생의 경우 7시 35분 이후에 내리면 꼼짝없이 지각이다.
이렇게 교정이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강남구 고등학교 중에서 교정이 크기로 유명한 경기고등학교는 영동고등학교보다 나중에 학교를 이사 한 것이고, 원래는 영동고등학교가 강남에서 유일한 학교였다고 한다. 영동이라는 이름 자체부터가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증명해주는 것.
원래 해청학원 소유의 부지는 지금 현재의 영동고등학교부터 압구정역 옆에 있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까지였다고 한다. 이 땅을 가지고 원래는 대학교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정부에서 허가가 떨어지지 않자, 고등학교로 결정한 것.
남학교답게 상위에 서술한 소운동장 말고도 대운동장, 테니스장 , 체육관 같은 운동시설이 굉장히 많다.
7.1. 시설 안내
건물은 총 5개로, 본관, 별관, 해청관, 청운재(자율학습관), 체육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 본관: 1, 2학년이 주로 공부하는 곳이며, 1층에는 인쇄실, 성적처리실, 교무부, 2학년부, 1학년부, 생활지도부, 행정실, 지하 창고, 이사장실, 법인회계실, 교장실 등이 위치하여 있고 2층 부터가 학생 교실이다. 영동은 타 학교에 비해 특이하게 학년 배치를 했는데, 본관을 중앙 현관을 기준으로 반으로 나누어 2학년이 왼편, 1학년이 오른편만 사용한다. 과거 지하도 야간자율학습 교실과 학급으로 운영되었는데 지금은 창고로 사용하는 중이다. 먼지가 가득하고 빛이 안들어 오는 지하 복도를 바라보면 귀신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책상, 의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교실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으시시하다.
- 별관: 3학년이 공부하는 곳이다. 1, 2학년이라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이 이 별관인데, 나오다 보면 3학년의 포스를 느낄 수 있다. 1층에는 3학년 교무실, 3학년 자습실이 있다. 지하에는 콘서트장이 있다[17] . 3학년 교무실, 연구부, 교과학술실, 해청재 등의 시설이 위치하고 있으며 학생 복지센터(급식실 건물인 청운재)와 연결되어있다.
- 해청관: 교과학습관이라고도 불리며, 물리실, 화학실, 생물실, 지구과학실, 컴퓨터실, 미술실, 음악실 등이 있으며, 꼭대기층에 위치한 음악실, 미술실까지 올라가다보면 매우 숨이 찬다. 학교의 지형상 본관에서 출입한다면 해청관 2층으로 통하는 것이고 별관과 복지센터에서 출입한다면 1층으로 출입하는 것이다. 별관 기준으로 1층엔 보일러실과 교사 식당, 급식조리실, 영양사실이 존재한다. 따로 학생의 용무가 있는 곳이 아니므로 대부분의 학생이 본관을 통해 해청관으로 출입한다. 혹은 본관과 별관의 통로 쯤. 해청관엔 대략잡아 30개 내외의 별실이 있는데 사용중인 교실은 15개 정도인것으로 추정된다. 사용을 하고 있지 않는 CATV 실이나 특별교과실이 많아 어학실등의 중요 교과실만 사용하고 있다.
- 테니스장: 원래는 영동산하스포츠라는 외주 회사에 임대를 해주고 있었으나, 2013년 계약상 문제가 생겨 소송중이라고 한다. 현재는 철거되어 주차장으로 변했다.
7.2. 공사
2012년부터 소운동장과 그 옆에 있던 테니스장을 철거하고 폭포와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를 진행중이다. 현재 땅은 파 놨는데 더 이상 진행을 하기 힘든 상황.
매년 학생회비를 걷어서 그 돈으로 공사를 진행한다고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 예산이 떨어질 때마다 공사가 중단된다고 한다.
그나마 테니스장에는 현재 주차장이 들어섰다. 교내에 자동차를 들일 수 없다는 이사장의 방침 때문이라고.
또한 현재 소운동장에 폭포와 공원을 조성한다 했지만 벌써 몇 년째 아무 일이 없으며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영동고는 항상 공사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화장실 문짝 고치는데만 몇 년이 걸린다는 말로 무마시키려 하고 있다.. 어떤 교사 말에 의하면 폭풍을 맞아 현장이 뒤집어지고 이사장의 관심이 식으면서 그냥 흐지부지 방치되었다고 한다.[18]
2017년에 체육관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2018년에는 화장실 공사가 마무리 되어 거의 대부분이 서양식 변기로 교체되었고, 비데가 설치되었다. (원래 대부분이 동양식 변기...)
또한, 화장실 앞에 문이 없었는데, 문이 생겨 악취가 줄었다는 말이 있다.
8. 수능전 경례식
수능 전날, 길고 아름다운 등굣길로 1, 2학년들이 양쪽으로 길게 줄을 서 있고 그 길을 3학년이 걷는다. 서 있는 학생들과 교사들은 박수를 쳐주거나 아는 선배나 학생이 있으면 허그를 해주거나 격려를 해준다. 처음에는 굉장히 쪽 팔리지만, 나중에 수능을 볼 때 정말 많이 뿌듯하고 힘이 된다. 이를 출전식이라고 명시하는데, 당일날 3학년 교실에 학생회 임원들이 방문하여 수능 합격 기원 선물[19] 을 증정하고, 학교의 구호인 전진을 외친다. 모든 학생이 수능 출전 준비가 되면, 3학년 별관 앞으로 3학년 교사, 1, 2학년 교사, 학생회, 2학년, 1학년 순으로 길게 늘어지어 3학년들을 응원한다. 사진으로 찍으면 은근히 분위기가 있는 사진으로 나올 수 있다. 사실 3학년들이 많이 부끄러워해 서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수능 당일 구호는 "우리의 영동, 우리의 영동, 영동은 오늘도 대학을 향해, 전진! 전진하리라!"
(2017년: 영~동, 영동 영동 영~동 x3 전진하리라! 전진! / 영동딱, 영동딱 만점의 노래~ 가슴치며 불러본다~)
영동고등학교는 2015년 2개의 학교로 나뉘었는데 현대고등학교와 경기고등학교로 고사장이 나뉘었다. 현대고등학교의 수능응원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나 이후 페이스북에서 영동고 수능응원이 회자될 정도였다. 하지만 경기고에서는 전통적 강호 중동고와 상문고 사이에서 평타를 친 것에 만족했다. 준비했던 응원가 보다 급조한 응원구호가 더 나았다는 후문.
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10. 기타
- 강남 8학군의 고등학교 중 하나이다. 면학 분위기는 대치동 쪽 학교들보다는 덜하지만 좋은 편.
- 교내 성적우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하이스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전교 30여등(=약 상위 11%)까지 의무참여다. 애초에 시간도 별로 안걸리고 생기부에도 써준다. 2020년 기준으로는 그냥 학교 프로그램으로 바뀌었으며 상위 11%이내 의무참여도 없어졌다. 모교 블라인드제가 원인인듯함.
- 2019년 기준 금요일도 다시 7시 40분 등교다. 대신 6교시가 2시 30분에 끝난다.
- 2020년 부터 8시 등교다. 따라서 마지막 7교시 종료시간도 20분 늦춰진 3시50분. 금요일은 6교시가 마지막 교시 이므로 2시50분에 끝난다.
- 2020년 기준 두발규정이 사라지다시피 하고있다. 염색 과 파마 를 한 학생들이 보이고 단속은 말로만하고 넘어가는듯. 과거의 엄격한 단속은 볼수없다.
- 신입생들은 주로 언주중학교나 역삼중학교에서 많이 오며, 역삼중에서는 강제배정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21]
- 학년은 상의의 교표로 구분된다. 2020년 기준 1학년이 하얀색 2학년이 노란색 3학년이 파란색이다.
- 2014년 11월에 방송된 1박 2일 수학여행 특집에서 선배 김주혁이 방문했고 당시 2학년 이과반 학생 5명을 섭외하여 함께 출연을 하였다.
- 냉난방 시설이 열악한 편이었다. 3학년 별관은 최신형 냉난방기를 설치해 해결되었으나 1~2학년 본관은 40년전 제작된 구형 냉난방기로 연명했었다. 그마저도 기계의 노화로 고장이 잦아 4층은 그야말로 지옥불이었다. 2016년에 최신형 냉난방기가 설치되었다. 2017년에는 신형인데도 불구하고 겨울에 고장이 잦아 불편함을 겪었다.
- 3학년 건물 지하에는 영동고등학교 시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호화찬란한 콘서트장이 있다. 본 용도는 자세히 모르지만 저녁에 학생들이 귀가한 뒤 학부모들을 초청해 연주회가 열리곤 했다. 2016년 기준 대략 2년간 이곳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증거는 콘서트장 내의 신문. 2013년 신문이 놓여져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몇번 사용되었는지 유통기한이 2016년인 생수 박스가 있다. 24시간 습도계와 환기장치가 돌아가 먼지 하나 없이 쾌적한 편. 축제 전날이었던 2016년 5월 26일 연주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곳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콘서트장에는 소파와 고급 가죽의자, 엠프, 악보대가 있고 일반 의자도 100석 가량 된다. 조명시설도 좋고 무대도 꽤나 깔끔하다. 대형 모니터도 3개가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최신형 에어컨이 잔뜩 깔려있다. 여름에 습도 관리를 목적으로 상시 틀어져 있는데 이곳에 들어가면 춥다.
- 해청관 4층 미술실 벽 뒤에는 활이 잔뜩 쌓여있다. 일본식 장궁이라 활의 길이는 대략 130cm정도 된다. 관리를 안해 시위가 늘어져 있지만 여전히 활을 당기기 힘들다. 미술 선생님 말씀으로는 예전에 영동고등학교는 궁도부를 운영했었다고 한다.[22]
- 해청관 4층 민속관에 관짝이 하나 있다. '교장 선생님도 못여는 곳'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곳' '관짝 안에는 이사장님이 누워 계신다.'등 영동고등학교 버전 비밀의 방으로 불리는데 별거 없다. 그냥 미술 교사에게 열어달라하자.
- 본관건물 1층에 cctv도 없고 의자만 하나 있는 비밀의 방이 있는데 예전에는 정말 체벌 목적으로 이용되었으나 체벌이 사라진 지금은 가끔 상담 목적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 교정이 워낙 넓고 조명과 높은 빌딩도 적어서 야간자율학습 쉬는 시간에 나와 어둑어둑 한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제법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
- 소운동장에 발길이 끊긴지 4년여가 되어서 야생의 땅이 되었다.[23] 이 때문에 도시에서 볼 수가 없는 산새들이 교정에 자주 나타난다. 특히 학생들이 하교해 조용한 오후 늦은 시간에 많이 보인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멧비둘기가 교정에서는 도시 비둘기 만큼이나 많이 보이고 닭둘기에 밀려 개체수가 급감한 참새들도 떼로 볼 수 있다. 정말 운이 좋다면 딱다구리와 휘파람새도 볼 수 있다. 지금은 모든 풀이 베였다.
- 매년 학부모가 모는 자동차가 통학 계단에 처박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교사 말에 의하면 연례 행사라고 한다. 사건에 연이어 발생하자 학교는 문제의 계단에 팻말을 놓아두었다.
- 본관 건물과 3학년 건물 중앙 쪽에 종이 하나씩 달려있다. 전자종이 없던 시절 쉬는 시간과 예령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현재는 사용을 하지 않지만 여전히 소리는 잘 난다. 다만 은은한 종소리보다는 꽹과리 소리에 가깝다.
- 의외로 학교 조경시설이 매우 뛰어나다. 조경석과 나무들 관리를 보면 이곳이 학교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조경석 중에는 나무가 화석화가 되어 만들어진 바위도 있다.
- 앞의 현대아파트까지 부지였다고 한다.
- 한 때 전국에서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였었고 (1984년 입결 78명, 85년 입결 69명) 90년대에도 40~50명 정도 보내는 등 명문고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는 16명 전후로 형성중.
- 체육관에 운동시설이 잘 갖춰져있다. (탁구대 2~3개, 농구대 4개, 축구 골대 2개 (배구용), 배드민턴 코트 2곳) 심지어 옆에 헬스장이 있어, 운동부 학생들은 그 곳을 이용해 운동을 한다.
- 약 2-30년 전의 학생들이 교사들을 피해 전진동산의 나무 위에서 담배를 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이 지금의 영동고 교사가 되었으니 따라하지 말자.
- 영동고등학교 체육관은 88 서울 올림픽 때 핸드볼 연습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24]
- 2016년부터 특색활동이 개편되었고, 이에 따라 저글링활동이 1학년 체육수행평가로 추가되었다.
- 우리학교를 소개합니다 8편 에 출연하였다.학교의 창의 특색 프로그램과 창립 이념 등이 소개되었다.
[1] 물론 매년마다 입시 상황에 따라 문/이과 지망자 수에 의해 변한다. 90년대 중반에는 문과가 고작 3개 반 뿐이었다. 그나마 1개 반은 서울대가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채택하지 않았기에 불어 선택자만을 위한 서울대 전용반이었다.[2] 김현중은 학교생활과 연예인 준비를 병행할 수 없다는 당시 학칙, 학규로 인해 한양공업고등학교로 전학갔다.[3] 현재 강남구청 부지와 호식이 두마리치킨 본사건물 등의 청담동 일대가 재단 부지였다.[4] 비슷한 시기에 대학 설립을 추진했다가 고등학교 설립으로 방향을 전환한 사립 고등학교로 우신고등학교(서울)와 신일고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들도 부지가 넓다.[5] 졸업식에는 심윤조 국회의원이 참석하는 등 이사장 뿐 아니라 강남구 지역 유명인사까지 참석한다.[6] 해청아파트, 해청학원 등 설립[7] 원래는 대학교, 전문대학교를 세우려 했으나, 당시 서울에 대학교가 너무 많아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썰이 있다. 이렇게 보면 교정이 왜 이렇게 넓은지도 이해가 된다.[8] 박찬욱 왈: "고등학교는 악몽 같았다"[9] 자퇴후,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로 재입학.[10] 3개월 다니고 자퇴[11] 삼성 부회장 이재용과 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인 최순실을 구속한 판사. 고교 졸업생이며 후배들로부터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추앙받았던 한기택 전 부장판사의 뒤를 이었다.[12] 정확히 말하면 출신 인물은 아니고, 교사로 재직했다.[13] 90년 대 중반 이전 까진 사실상 사복 강제였던 정책이 교복 착용 여부를 학교 재량에 맡기는, 말 그대로 자율화 되었는데 거의 대부분 학교가 교복을 택한 것은 당연지사, 영동고 역시 다시금 교복을 채택했다. 즉, 그때 교복 디자인이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 온다.[14] 교복 하복은 파란색 바지에 흰색 반팔 남방인데 자타가 공인하는 '이발소 아저씨 옷'.[15] 바지는 모기장바지라고 불린다. 통풍이 정말 잘되지만 재질이 거의 모기장 수준...[16] 학교 설립 당시 행정구역이 학동이었던 것에서 유래. 이전 문서에는 대동제라고 되어 있었는데 알다시피 이름 자체가 신나게 놀아야 할 축제임에도 공부하는 축제라는 느낌을 주는지라 교사도, 학생도 대부분 원래 이름인 학제 대신 대동제라고 부를 뿐이다.[17] 2016년 5월에 리사이클 공연이 개최되었었다[18] 게다가 이사장이 매우 예술적이고 섬세하다고 한다. 별관 외벽을 다시 칠할 때 여러 색을 살펴보다가 맘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따로 특별 주문한 색상을 사용했다고 한다.[19] 떡과 음료, 수능 필기구 등[20] 강남역 방향 한정, 역방향은 일지아트홀 승하차[21] 언주중 남학생 중 영동고를 선호하는 학생이 상당히 많다. 언주중 가까이 있는 경기고와 영동고 중 경기고는 배정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아 청담고등학교로 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멀리 있는 학교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당연.[22] 교문을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에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원래 그 자리에 넓은 공터가 있었고 공터 가운데 양궁장이 있었다.[23] 예전엔 이곳을 교련장이라고 불렀음. 단체로 체벌을 몰래 받다가 건너편 아파트에서 이를 보고 신고를 하기도 했음.[24] 종종 일본핸드볼 고교 선수들과 친선 경기도 했었고 영동고는 핸드볼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