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MC사업부

 



1. 개요
2. 역사
2.1. 1984년 ~ 2000년대 중반
2.2. 2000년대 후반
2.3. 2009년 ~ 2010년대 스마트폰 시대
2.4. 2020년대~2021년대 초반
2.4.1. 사업 철수
4. 여담


1. 개요


LG전자의 이동통신 사업 및 제품을 설명하는 문서다. LG전자는 이동 통신 및 스마트기기를 전담하는 부서로 MC (Mobile Communications) 사업본부를 거느리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스마트폰 시대 이후 기존의 휴대전화 제조 업체들이 도태되어 가는 과정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다.[1][2]

2. 역사



2.1. 1984년 ~ 2000년대 중반


일본 NEC와 기술제휴 및 합작으로 설립된 금성전기에서 1984년 시판한 카폰이 시초이다. 1987년 NEC와의 제휴가 끝나면서 이동전화단말기 사업은 금성통신으로 이관되었다. 1989년에는 카폰이 아닌 휴대전화 형태의 단말기가 출시되었다. 1993년 '''셀스타'''라는 이름이 붙은 단말기가 출시되며 이는 최초의 휴대전화 브랜드가 된 것이다. 1994년 금성통신이 금성사로 합병되었고, 이듬해인 1995년 금성사는 LG전자로 사명을 바꾸게 된다. 같은해 '''화통(話通)'''이라는 브랜드의 핸드폰을 출시하면서 브랜드명도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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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CDMA 규격이 나오자 이동전화단말기 사업은 LG전자에서 계열사인 LG정보통신으로 또 다시 이관되었다. LG정보통신은 위의 금성통신과는 별개의 회사인 금성정보통신이 1995년 사명을 바꾼 회사다. 이때의 브랜드는 '''프리웨이'''였고, 1997년까지 유지되었다. 1997년 10월 PCS(016, 018, 019)가 출범하자 PCS용 단말기를 출시하였는데, 이때 나온 브랜드가 '''싸이언'''(CION)이었다. 이 무렵 LG전자에서도 1996년 8월에 무려 '''국내 최초'''의 풀터치스크린 PDA폰이자 국산 스마트폰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멀티X(GPA-1000N)를 출시 하였으나#, 100만원에 가까운 1996년 당시 기준으로 비싼 가격에다가 끝물에 아날로그 방식 통신망을 사용했던 기기였던 만큼 얼마 되지 않아 디지털 방식의 CDMA2000 통신망이 도입되면서 시장에서 잊혀진 제품이 되고 말았다. 최초의 싸이언 브랜드를 달고 나온 단말기(LGP-1000F)는 계열사인 LG텔레콤(019)용으로만 나왔으나 이후 나온 단말기는 다른 PCS 업체(016, 018)용으로도 나오게 되며, 이듬해 1998년부터는 기존의 셀룰러(011, 017)용 단말기도 프리웨이를 버리고 싸이언 브랜드를 붙였다.
2000년 LG정보통신이 LG전자에 합병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이 무렵 싸이언의 영어 표기도 CION에서 CYON으로 바뀐다. 자세한 것은 싸이언 문서 참조.

2.2. 2000년대 후반


회계장부 상으로는 '''MC사업부의 전성기'''이자 기술적으로는 '''몰락이 시작'''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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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폰 시장에서 약진을 이끌었으나[3], 스마트폰 시대의 대비를 소홀히 했다가 결과적으로 '''MC사업본부의 몰락을 부른 남용 부회장'''. MC사업본부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하면서 하이닉스 인수전에 아예 참여하지도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LG그룹 전체의 경쟁력 하락을 불러온 시발점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LG텔레콤에서 8년간 최고경영자를 맡으며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만년 3등 기업에서 점유율을 크게 높인 남용을 영입함으로써 크게 성장했다. 그리고 남용은 부회장 겸 최고경영자를 맡아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남용은 8년간 이동통신 업계 만년 꼴찌인 LG텔레콤을 맡아 엄청난 점유율 확장을 일궈내서 그룹의 주목을 받았다. 2006년 LG텔레콤의 IMT-2000 포기와 관련된 문제로 정부와 마찰을 빚고 사임했지만, 2007년 엘지전자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이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자가 된다.
남용 사장은 2007-08년 초콜릿폰으로 LG폰의 약진을 이끌었다. 영업이익은 1년만에 46.2% 증가했고, 글로벌 점유율도 노키아, 삼성에 이어 3위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후에 아래 설명할 여러 무리수를 저질렀고, 결정적으로 '''시장은 스마트폰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는데 피처폰에 올인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결과적으로 이는 LG전자의 무덤을 판다. 참고로 이렇게 피처폰에 올인하라는 조언을 한 전략컨설팅 회사가 맥킨지였는데, 흔히 전략컨설팅회사가 바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전략컨설팅이란 대개 최고경영진이 이미 결정한 방향에 근거를 제공해 주기 위한 것이며, 피처폰에 올인하기로 한 LG전자의 분위기를 읽고 맥킨지가 그 방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런 결론의 전략컨설팅을 해주었을 뿐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4]
믿기 어렵겠지만 LG전자는 스마트폰 시대의 대비를 소흘히 했던 다른 제조사들과는 다르게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의 여명기였던 2000년대 초중반 윈도우 모바일 시절만 해도 그럭저럭 쓸만한 스마트폰을 여러 개 내놓는 등 스마트폰 기술력이 크게 밀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러한 행보를 통해 LG전자는 스마트폰 시대의 대비를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지금의 LG전자 MC사업부의 인식을 생각하면 의외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2000년대 초반 컴팩에 ODM 형태로 PDA나 스마트폰을 공급하였고 #, 이때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2004년에 나온 자사 브랜드 최초로 내놓은 포켓PC 2003 기반 스마트폰인 SC/KC/LC8000은 당시에는 그럭저럭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만든 RW6100을 컴팩을 인수합병한 HP에 ODM으로 공급하기도 할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도 기술력 쪽에서 어느 정도 인정 받았을 정도였'''었'''으며, RW6100은 매니아들 사이에서 당대의 명기로 불리웠을 정도였다.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LG전자 MC사업부가 만든 PDA인 PM80은 당시 세계최초 지상파 DMB를 갖춘 PDA로 유명했었고, 더군다나 2007년에 나온 윈도우 모바일 5.0 기반 와이브로 스마트폰인 KC1만 해도 삼성보다 한발 앞서서 PXA320 806MHz 모나한 프로세서를 채택하여[5] 당시 국내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스마트폰이라는 타이틀을 따내면서 성능면에서 동시대 삼성의 스마트폰들을 압살했을 정도로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을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정도로 노하우를 차곡 차곡 쌓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남용 사장의 오판과 이전 제품들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퇴보를 보였던 인사이트의 처참한 삽질과 실패로 인하여 윈도우 모바일 시절 까지만 해도 잘 쌓아두었던 스마트폰 관련 노하우들을 '''제대로 말아먹어 버렸다.'''

2.3. 2009년 ~ 2010년대 스마트폰 시대


기존의 전자업체들이 어떻게 스마트폰 시대에 경쟁력이 떨어져 무너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다. 그나마 2010년대 중반까지는 스마트폰 판매량 그래프에서 4-5위를 기록하며 버티고 있었으나, 1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판매량이 처참해져 기업 이름을 찍지도 못 하고 'Others'(기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LG전자가 노키아나 일본 전자제품 제조사들과는 다르게 주력 사업은 백색가전이나 화학 쪽이었기 때문에 노키아나 일본 전자제품 제조사들에 비해서 철수를 하면 철수했지 회사가 오늘내일 하거나 파산해버리는 일은 없었다.
애플이 첫번째 iPhone을 내놓은 후, 성능을 대폭 강화하여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iPhone 3GS를 내는 2009년까지도 LG는 열심히 주력상품으로 프리미엄 레벨의 피처폰뉴초콜릿, 프라다폰 2 등을 내놓고 있었다. 본격적인 핸드폰 시대가 시작되었는데도 신제품이랍시고 문자전달형 삐삐를 내놓던 2000년대 초반 일부 군소 이동통신 업계의 삽질을 그대로 반복한 것.[6] 이런 삽질 때문에 2010년부터 엄청난 적자를 내게 된다.
다만 LG만 이런 삽질을 한 것은 아니다. 피처폰 시장에서 세계 1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노키아는 이 분야의 전설[7] 이고, 당시 아이폰보다 먼저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블랙베리조차도 트렌드에 대응하지 못해서 망해갔기 때문이다.[8] 마이크로소프트스티브 발머 또한 넷스케이프 출시 때처럼 "아이폰 별 거 아닌데요?"라며 허세를 부렸지만 윈도우 모바일 7을 거하게 말아먹고 한참을 헤메다 2017년 모바일 OS 부문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윈도우 10 모바일 개발을 중단하고 했다. 삼성전자도 스마트폰 시장 초기에 성능이 떨어지는 윈도우 모바일 운영체제를 탑재한 옴니아 2를 내놓으며 "이거 안 되면 스마트폰 아니잖아요?" 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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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래 MC사업부의 실적 그래프다. 푸른선은 매출, 붉은 선은 이익을 의미한다.
2010년 부터 이익 그래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휴대폰 시장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하며 요동치고 있었기때문이다. 2009년 KT를 통해서 아이폰 3GS가 최초로 정발되고 윈도우모바일을 탑재한 옴니아2로 맞대응하려던 삼성이 온갖 비웃음을 당한 그 다음해로 삼성은 급하게 만든 갤럭시 A를 3개월 팔다 말고 아이폰 4 출시일에 맞불을 놓기 위해서 갤럭시 S를 발매한[9]다. LG 대응이 전무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LG전자자체에서도 어느정도의 대응을 하고 있었다. 안드로-1이 3월달에 공개된 상태였고 갤럭시 S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H/W 스펙의 옵티머스 Q가 발매되었고 이후 Z나 원등으로 다양한 스마트폰을 발매했다. 문제는 이기종들이 각각 다른 스펙을 가지고 파편화되었고 생소한 운영체제의 도입으로 인한 문제인지 각폰의 최적화 정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통신사대응 휴대폰마저도 옵티머스 Q/Z로 이원화되고[10] 쿼티가 차이가 났고 원이라는 보급형을 내놓으면서 H/W스펙이 달라졌다. 안드로이드 2.2가 발표된 이후임에도 하이엔드폰이었던 옵티머스 Q의 초기발매 버전은 1.6 도넛이었는데 이마저도 최적화문제로 말이 많았다. 게다가 단순피처폰도 아닌 스마트폰 하이엔드 스펙을 가진 피처폰 MAXX를 내놓으며 갈팡질팡했다. 여기에 부품부족문제까지 겹쳐서 결국은 2010년 2분기에 전년도 동일 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90% 하락'''이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이뤄냈다. 남용 부회장은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고[11], 남용이 영입한 C 레벨 이하 모든 외국인 임직원들도 퇴출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구본무 회장의 둘째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오너 일가의 친정 체제가 선포됐다. 결국 2010년에는 '''총 1조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그리고 2011년 11월, 약 1조 원 가량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현행법상 지주회사는 자회사 주식 최소 30% 이상을 보유해야 하는데 유상증자 액수가 당시 시총의 10%에 육박했고, 이로 인해 보유 지분율이 30%대 초반으로 떨어짐에도 유상증자라는 초강수를 둔 것. 또한 '''이 때문에 하이닉스라는 전자기기 제조 업체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인수 기회를 놓쳐버리는, LG그룹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이불킥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전열을 재정비하여 2012년 옵티머스 LTE II, 그리고 옵티머스 G의 출시를 시작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인터페이스도 쿠키폰 시절 때부터 쓰인 아이콘을 탑재한 옵티머스 UI 2.0을 드디어 버리고, 정사각형 기반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단장한 LG UX 1.0을 채택하여 더 낫게 변화시켰고, 최적화도 갤럭시 시리즈를 많이 따라잡았다.
ICS 업그레이드 포기 선언을 한 갤럭시 S와 달리 LG 전자의 스마트폰은 안드로이드 4.0 ICS 업그레이드를 제공하겠다고 밝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호평을 받았다. 다만 LG전자가 잘 했고, 삼성전자가 못 했다고 하기는 애매하다. 갤럭시 S의 출시일은 2010년 6월이며, LG에서 갤럭시 S 정도의 스펙이라고 공언한 제품들은 갤럭시 S II 시기에 출시된 폰들이다. 안드로이드 초기 모델이었던 갤럭시 S는 삼성전자가 예상하지 못한 메모리 파티션 문제 때문에 업그레이드가 상당히 껄끄러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당시 스펙이 좋았던 갤럭시 S라도 이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보급화 된, 1년 간격으로 나온 기기 간와 초기 모델과의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시기로 보면 그래도 2010년 모델을 밸류팩으로나마 제공해 준 모델은 삼성전자 뿐이고, LG전자는 2010년 기기의 사후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래나 저래나 옵티머스 LTE II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100만 대 판매량을 넘어서는 호조를 보였으나...
회장님폰이라던 옵티머스 G는 몇 달이 지났는 데도 젤리빈 4.1 버전에서 '''업데이트 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경쟁 기종이던 갤럭시 S3는 이미 4.3 업데이트로 업데이트 해 주었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끝없는 불만을 표출했다. 게다가 LG의 경우 옵티머스 3D, 옵티머스 EX, 옵티머스 Q2, 프라다폰 3.0, 옵티머스 3D 큐브 등 다수 기종의 젤리빈 업그레이드를 포기하였지만, 베가의 경우 2011년 6월 베가 레이서, 2011년 10월 베가 LTE, 2011년 12월 베가 LTE M, 2012년 1월 베가 LTE EX 등 다수의 기종에 업그레이드를 지원했기 때문에 젤리빈에서는 베가만도 못하다는 비판도 들었다. 그런데 2014년 3월, 2012년 출시 기종들의 폭풍 킷캣 업데이트로 사용자들을 놀라게 했다.
2012년 1분기 스마트폰 점유율 순위 8위 3.7%를 기록했고# ZTE, 화웨이중국 업체의 무서운 성장률에 밀리고 있다. 2011년 4분기에는 ZTE에게, 2012년 1분기에는 화웨이에게 추월당했다. 화웨이가 2011년 4분기에서 2012년 1분기까지 단 1분기 만에 2.9% → 5.8%라는 기록적인 성장을 이루는 동안 LG는 3.6% → 3.7%로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노키아라는 공룡이 무너지는 동안 흘러나온 점유율을 모조리 삼성이 쪽쪽 빨아먹어서 플래그십 점유율은 애플-삼성 위주로 고착화 되었고, 보급형과 중국 내수 시장은 중국 기업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LG가 피쳐폰 시절의 아성을 되찾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스마트폰에 집중하기 위해 당분간 태블릿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에서 방향을 잡는게 더 시급하다고 판단해 윈도우폰 프로젝트들을 전부 드랍했고, 그 결과 윈도우 폰 8의 협력 하드웨어 업체에선 제외된 상태다.# 또한, 이미 출시 된 옵티머스 7의 '''윈도우 폰 7.8 업데이트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MS의 지원으로 7.8 업데이트가 정상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에 LG가 이 방면으로 욕을 더 먹을 일은 없다.
2013년 옵티머스 G와 쌍둥이 레퍼런스폰 넥서스 4, 그리고 갤럭시 노트 II에 대항하기 위해 Full HD 해상도를 적용한 옵티머스 G Pro를 출시했다. 넥서스 4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구글신의 소프트웨어 최적화, 성능 모두를 만족시켜 많은 호평을 받았다. 프리미엄 시장인 북미 시장 내 점유율도 10%로써 삼성, 애플에 이은 3위로 올라선 상태. HTC, 모토로라, 노키아, 블랙베리 등이 모조리 Others에 분류되며 사망 상태인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12] LG G2 또한 만족스럽게 뽑아냈으며, 통신사와의 협의 및 유통 문제도 해결되어 빠르게 전세계에 출시되었다.
LG전자의 스마트폰의 전성기는 그나마 2013~2015년 사이로 볼수 있는데 이 때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은 연도 단위로는 3위를 차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분기별 성적까지 포함하면 한때 애플, 삼성에 이어 소니랑 치고박고 하며 3위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13] 하지만 중국 업체인 레노버, 화웨이에 밀려 2013년 3분기에 SA, IDC 공통으로 5위까지 밀려났으며, 4분기에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담으로 2013년 3분기의 SA 집계에서는 잠정집계에서는 4위였으나 최종 집계결과 레노버의 판매량이 올라가면서 5위로 밀려났다. 순위보다도 3~4위를 차지한 화웨이와 레노버는 흑자로 추정 되지만 LG전자 MC사업본부는 3분기에는 797억의 적자, 4분기에는 434억의 적자를 기록한 상태라 더욱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사실 적자가 문제라기보다는 저렇게 마케팅 비용을 붓고도 순위는 되려 하락했다는게 더 문제이다. 애초에 3분기에 과도하게 부었다는 마케팅비가 2,000억인데 이게 이번에 SA, IDC에서 LG를 제치고 4위를 차지한 레노버의 1분기 영업이익 수준인걸 생각하면 최근 LG를 5위로 밀어낸 중국업체들은 더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4분기에 LG전자와 중국업체의 판매량 격차는 더욱더 벌어졌고, 결국 2013년 1~2분기에 6개월 천하를 기록했던 LG는 2013년 최종 순위에서 마저 4위로 밀려 났다. 여기다가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합병하여 버린 것도 LG에게는 악재다.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합병한 상태로 계산하면 2013년 LG전자의 순위는 5위까지 떨어진다. 단 2013년 3분기의 가트너 순위에서는 레노버 3위, LG전자 4위, 화웨이 5위로 4위를 차지 하였다. 그러나 가트너는 SA나 IDC에 비하여 저명도나 신뢰도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2015년 7월 29일 발표한 2015년 2분기 MC사업부 매출이 3조 6,484억 원인데 '''영업이익이 단 2억 원'''에 불과하다. 이 기간동안 LG전자는 1,45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했는데, 단순히 두 수치를 맞춰본다면 폰 한 대 당 나온 영업이익이 고작 '''13.8원'''이다. 즉 사실상 이익을 남기는 기업의 목적은 둘째치고 산소호흡기만 달고 있는 상태다.[14] 슈퍼 프리미엄 전략으로 이를 극복하겠다고 하지만 단통법의 실수를 전혀 깨닫지 못한 모습이다. 이후 10월 29일 발표한 2015년 2분기 MC사업부 매출은 3조 3,774억 원인데 영업적자가 776억 원이 나와 1,49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고도 한 대당 영업적자가 5,208원이나 발생하여 LG전자 MC사업본부의 가치가 '0'이라는 기사마저 등장하고 있다.
2016년 1분기 점유율과 판매순위도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과 2위인 애플을 제외하면 3, 4, 5위는 중국기업이 차지해 LG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4분기 실적 발표에서 LG전자가 300억 원을 적자전환 했다고 공시했다. 시장 평균전망치 1,100억 원 흑자를 크게 밑도는 어닝 쇼크 수준으로 사업부별 실적은 별도로 공시하지 않았으나 G5 부진으로 인한 분기 최악실적인 4,300억 원 적자를 넘어서는 4,600억 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월에 열리는 2017 MWC에서 차세대 플래그쉽 G6의 공개를 예고했는데 사실상 사업부의 존폐가 달린 상황인만큼 사활을 걸고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엄청난 적자 폭을 줄이지 못한다면 LG전자 전체가 위태로운 상황까지 내몰릴 형국이다. 하지만 결국 G6도 갤럭시 S8에 밀려 적자를 냈다.
2017년 3분기 역시 적자. 이로서 10분기 연속 적자를 달성했다. 2018년 2분기까지 역시 적자로 연속 13분기 적자를 달성하였다.
2018년 3분기도 역시 적자를 달성하여 연속 14분기 적자 상태이다. 그러나 적자 폭이 줄어들면서[15] 장기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보이고 있으며 V40 ThinQ가 경쟁사들에게도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드디어 보여주고 있다.
결국 국내에서 생산하던 스마트폰 전 물량을 베트남과 브라질로 옮긴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2019년 4월 LG그룹 사내 공지에서 MC사업본부 생산인력 감축 및 전배 계획을 올리면서 LG전자의 스마트폰 국내생산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생산관련부서 인원들을 대상으로 재직 기간에 관계 없이 약 700~800명 정도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벼랑 끝' LG폰, 국내 생산 중단
2019년, LG V50 ThinQ가 통신사의 5G 고객 유치 목적으로 폭격된 보조금 덕분에 '''전설의 0원폰'''[16]으로 진화해 출시 3개월만에 LG전자 스마트폰 중에는 오랫만에 대성공을 거뒀으나, V50와 동시에 출시한 LG G8 ThinQ, 그리고 보조금이 꺼진 뒤 나온 LG V50S ThinQ는 LG의 보급형 스마트폰인 LG X4(2019)에게도 밀리며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였는데, 기존 전략으로는 V50 후에 출시하는 V50S는 같은 사양에 칩셋, 메모리 등의 업데이트가 있는 마이너 업그레이드 모델이였어야 했는데 해상도, 카메라 등 많은 부분이 다운그레이드가 되어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다.[17]더욱이 보조금 폭탄으로 페이백까지 받아가며 V50을 구매했는데, 딱히 좋아진 부분도 없는데 보조금이 꺼진 상황에서 매력적이지도 않은 V50S를 구매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2019년 결산 결과 1조 99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2015~2019년 누적 적자가 5조 원에 가까운 4조 9,000억원이 쌓여'''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매우 암담해질 것으로 보인다.

2.4. 2020년대~2021년대 초반


인터넷에서도 "'''L'''ife was '''G'''ood" 또는 "'''L'''ife is '''G'''one"라고 조롱받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수요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양분하고 있고, 중저가형 스마트폰의 수요도 삼성 갤럭시의 A 시리즈로 많이 넘어갔다. 또한 샤오미의 국내 출시로 인해 그나마 선방하던 중저가형 스마트폰의 파이도 야금야금 먹히고 있다. 적자는 날이 갈 수록 악화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MC사업을 접고 가전제품 분야에 올인하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이게 말이 쉽지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비용들을 포기하라는 말이니 LG전자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일 듯 하다. 매몰비용은 고려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LG전자가 강한 가전분야의 교체주기는 10년 남짓인 반면 스마트폰은 평균적으로 2년에 한번 교체하는게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상태인데 이정도의 시장을 포기한다는 결정은 결코 쉽지 않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S20 시리즈는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판매량이 저조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1위의 철옹성을 고수하고 있다. 애플 또한 10-20대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으로 꾸준하면서 탄탄한 수요 기반 마련에 성공했으며, 답이 없던 사후지원 상태를 애플스토어 오픈 및 애플케어+ 출시 등으로 차차 개선해 가는 모습을 보며 2위에 안착했다. 하지만 LG전자는 아직도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전략으로 인해 20분기가 넘어가도록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말 그대로 백색가전 사업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몽땅 스마트폰 사업에 퍼부으며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팬택처럼 스마트폰 주력 생산 기업이였다면 눈 뜨고 일어나니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권봉석 LG전자 사장은 2021년까지 MC사업부의 흑자 전환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으나, 전문가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며 투자증권 연구원들은 2021년에는 7,0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기관도 코로나 19 여파가 있어도 '''MC사업부 빼고''' LG전자는 양호한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을 정도로 앞길이 힘들어 보인다. #
LG전자는 어떻게든 원가절감을 하기 위해 주문자생산(ODM)과 합작개발생산(JDM)을 진행하고, 플래그십 모델로는 수익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는지 중저가형 라인업인 Q시리즈와 X시리즈의 비중을 50% 이상 높일 계획이다. 또한 전략도 변경되었다. 기존 'G 시리즈-V 시리즈'로 이루어지는 투-트랙 전략을 국내에서는 중저가형 제품, 해외에서는 플래그십 제품 판매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LG V60 ThinQ가 공개되었을 때 국내 출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V60 ThinQ 대신 LG G9 ThinQ가 출시될 예정이며 국내에 저가형 라인업 제품인 LG Q51이 출시되었다.
문제는 이런 투-트랙 전략조차 삐걱거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중저가형 모델을 판매하겠다며 내놓은 LG Q51은 319,000원이라는 출고가에 어울리지 않는 낮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 더 높은 스펙의 샤오미 홍미 노트 8T의 국내 판매가격이 239,000원이며 삼성전자의 경쟁 제품인 갤럭시 A30의 출고가도 349,800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Q51을 살 바에는 샤오미 홍미 노트를 살 것이며, 사후지원과 페이 결제 등 편의성을 생각해도 3만 원 더 주고 갤럭시 A30을 사는 게 낫다는 반응이 많다. 다만 의외로 판매량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더욱이 원가절감을 위해 펼친 전략인 ODM 및 JDM 전환도 생각했던 것 만큼 매끄럽게 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수준급 ODM 제작이 가능한 회사들은 이미 샤오미OPPO 같은 대형 제조사로부터 물량을 수주받고 있는 상황에 LG전자의 주문량이 비참할 정도로 적은 탓에 우선순위에 밀리는 상황이다. 외부조달로 돌렸는데도 경쟁자들만큼 원가절감이 안되고, 출시 시기도 상대적으로 밀리고, 외주 개발 업체의 급마저 낮춰야 할 판이라 전혀 사정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20년 4월 12일, G 시리즈의 폐기로 인해 국내에서 출시할 메인스트림 급 제품인 G9은 LG VELVET으로 변경되었다. 시리즈를 이어나가지 않고 피쳐폰 시절처럼 제품마다 펫 네임을 붙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벨벳 공개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엄청난 비판 세례를 받고 있으며 사내 게시판에서도 스펙 대비 높은 가격 정책으로 인해 비판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런 비판적인 반응에도 한 LG전자 수석연구위원[18]링크드인에 "대박 조짐이 보이고 있다" 등의 현실과 맞지 않는 글을 작성하면서 여전히 임원들이 제대로된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7월 7일, '''MC사업부는 2015년 이래 2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2,378억 원의 적자를 본 전분기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거나 조금 회복될 수 있다고 분석해 LG전자 입장에서는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부분이다.#
2020년 8월 24일, LG전자는 5G를 지원하는 중급기인 LG Q92를 공개했다. 원가 절감 요소가 조금 있지만, VELVET보다 더 좋은 프로세서로도 가격이 49만 원으로 책정되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2020년 9월 7일, LG전자의 하반기 플래그십인 WING의 출고가가 109만 원으로 책정될 확률이 높다는 기사가 나왔다. # 140-190만 원을 예측하던 것보다는 확실히 낮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스냅드래곤의 가격이 굉장히 비싸져 100만 원 이하는 스냅드래곤 765G, 100만 원 이상은 스냅드래곤 865+를 탑재하는 게 2020년 트렌드인데, 디스플레이 두 개 넣었다는 이유로 765G 탑재하고 100만 원에 팔려고 하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VELVET보다 가성비가 낫다는 평가가 많아 평은 그리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12월 들어 스마트폰 개발, 영업 조직을 폐지하고 ODM사업담당을 신설해 ODM 비중을 내년에는 70%까지 올린다#고 보도됐는데, MC사업본부의 핵심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사결정이어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21년도 인사 내부보도#에서 공지된 바 없다 하여 사실과 다르단 말도 있다.
2021년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사용한 롤러블 스마트폰 LG Rollable을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2.4.1. 사업 철수


2021년 1월 15일 인터넷 언론 매체 디일렉에서 LG전자가 LG Rollable 포함 모든 스마트폰 계획을 취소하고, 26일 중대발표를 하는데 이게 MC사업부 폐지가 아니냐는 기사를 내보냈다현재 원 기사는 삭제되어 복사 링크로 대체함
또한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직원 이동을 암시하는 글이 올라왔다 지워졌다고 한다.
올라오는 글들을 자세히 보면 MC사업부 폐지 분위기를 띄우고는 있지만 정작 폐지를 정확하게 명시하는 글이 없고, 사업부 폐지 대신 큰 폭의 구조조정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LG전자는 사업부 폐지설이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2021년 1월 20일, 권봉석 사장은 본부 구성원들에게 이메일로 "MC사업본부의 사업 운영 방향이 어떻게 정해지더라도 원칙적으로 구성원의 고용은 유지되니 불안해할 필요 없다"라며 강조면서도, "사업 운영 방향이 결정되면 구성원에게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유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그러나 1월 21일, 구광모 회장이 권봉석 사장으로부터 보고받은 MC사업본부 경영 효율화 방안을 보면 기존 MC사업본부 인력 상당수를 AI 분야에 재배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할 뜻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

이전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문제였지만 사업 철수가 기사로 나고 그동안의 적자만 낸 자료가 들통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까이고 있다. 팬택 워크아웃 시기와 달리 동정하는 여론도 거의 없다.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단통법을 많이 풀어준다고 한다.
최근에는 MC사업부 인력들 중 일부는 이직을 준비하거나 다른 계열사로 옮길 준비를 하느라 사업부 전체가 올스톱되었고 #(가입필요), 여기에 러시아 국부펀드까지 사업부 인수 의사를 밝히며 # 사실상 ''' LG 모바일의 종말'''을 예고한 셈이다.

3. 문제점 및 비판




4. 여담


  • MC사업부의 몰락으로 인해 백색 가전, 갈색 가전은 재평가 받고 있는데, 백색 가전과 갈색 가전은 '갓G, 킹G'라 부를 정도로 호평 일색이다. 백색 가전 분야에서는 과거부터 '백색 가전 명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을 만큼 특유의 내구성으로 태풍에 내쳐져도 작동하는 냉장고, 수십 년을 사용해도 작동하는 백색가전이 존재하는 등 20년은 거뜬히 쓸 품질을 보여줘 과잉품질의 대명사인 90년대 무보링 전설의 벤츠와 비견될 정도다. 또한 자신감을 얻은 LG전자는 최고급 백색 가전 브랜드인 LG 시그니처를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갈색 가전 분야에서 LG PC gram은 삼성에게 밀릴 것 같다는 출시 전 우려와는 반대로 삼성과 비비거나 밀어버릴 정도라는 평을 받고 있다. 무게 한정으로는 삼성보다 더한 외계인 고문을 일삼고 있으며 실제 판매량도 좋았다.[19]
  • 부트로더 언락은 G4를 시작으로 플래그십인 G, V 시리즈의 유럽판에 한해서만 공식 지원한다. (#)[20] 국내판의 경우는 통신사의 입김으로 인해 부트로더 언락이 지원되지 않는다고 하나, 단말기 자급제 기기가 출시되는 2018년 이후로는 그냥 궁색한 변명거리에 불과하다.

[1] 기존의 기계 중심인 피쳐폰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인 스마트폰 시대로 변하면서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하드웨어 제조 위주의 회사들이 다 시장을 철수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 마저도 이 분야에선 망했다.[2] 그나마 블랙베리, 모토로라 등 기업과는 달리 모기업 자금빨로 버티고 있었지만 이게 매몰비용만 더더욱 늘리는 악수가 되었다.[3] 이 또한 전임 '''김쌍수시절 R&D의 힘'''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다만 마케팅에 소홀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4] 컨설팅 회사도 결국엔 돈 받는 입장이라, 고객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컨설팅이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당장 결과가 안 좋으면 고객이 무슨 욕을 할지 모르기에.[5] 1년 후에 출시한 옴니아의 PXA312보다도 실 성능은 우세했었다.[6] 트렌드가 바뀌는 것은 맞았지만 LG나 다른 제조사가 주저할만도 했던 것이 2010년은 물론이고 2012년까지도 피처폰은 여전히 잘 팔렸다. https://macdailynews.com/2013/02/13/gartner-2012-mobile-phone-sales-declined-1-7-worldwide-apple-iphone-sales-up-22-6-yoy/ 이기사에 따르면 가트너 통계에 의하면 당해 4분기의 휴대폰의 총 출하댓수가 4억 7천만대였는데 여기에서 스마트폰의 출하댓수 2억대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2억 7천만대는 여전히 피처폰이었다. [7] 노키아도 스마트폰 시장에 나름 대응을 했다. 심비안도 나름 스마트폰 OS이고 인텔/리눅스 제단과의 협업을 통해서 Meego를 개발중이었지만 세계의 트렌드와는 맞지가 않았다.[8] 그나마 노키아는 더 이상 스마트폰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스마트폰 제조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기고 통신 사업과 헬스 케어에 집중해 흑자를 내는 등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했지만, 블랙베리는 스마트폰 제조 파트너쉽을 맺은 TCL이 2020년 파트너쉽 재계약 포기 선언을 하면서 아예 회사가 증발해 버렸다.*[9] 발표 자체는 이미 3월달에 했었다.[10] 이당시에는 통신사가 자사통신망에서 판매할 폰을 지정하는 형태였으므로 LG 전자의 100% 잘못은 아니다.[11] 남용 부회장이 자진 사퇴하기 바로 전 주에 LG의 성공과 한국 재벌스럽지 않게 구 씨가 아님에도 성공 가도를 달리는 전문 경영인 CEO니 뭐니해서 타임지에 꽤나 길게 기사가 났다. 그리고 이분은 LG텔레콤에서도 CEO직을 내려놓게 된 경력이 있다.[12] 아심코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모바일 디바이스 제조업체는 적자가 나기 시작하면 그대로 사망 테크를 타지만 예외적으로 LG전자는 모바일 이외에 매출의 원천이 많아 버텨냈다고 평가했다.[13] 2013년 1분기 ~ 2013년 2분기[14] 물론 기업의 입장에선 이렇게 이익이 안 나도 영업활동은 계속 이어갈 수 밖에 없다.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데 들인 고정비용이 이미 막대하므로 남는 영업이익이 거의 없어도 거기서 그만 두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 때문.[15] 물론 생산량을 적게 조정하면서 적자 폭이 줄어든 것일수도 있으나 적자 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 기업이든 소비자에게든 좋은 현상이다.[16] 대리점에서 흔히 광고하는 공짜폰이 아니라 8~9만 원대 요금제를 6개월만 유지하면 할부원금 없이 구매하거나 역으로 페이백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17] 대신 저장공간, 램 상향과 해상도 하락으로 기기의 성능은 좋아졌는데, 문제는 해상도와 카메라는 눈에 띄지만 성능은 멀리 갈것없이 V50과 비교했을때 조차 배터리를 제외하면 티가 나지 않아 장점으로 승화되지 못했다(...)[18] 상무급[19] 당시 LG가 gram을 만들던 당시 삼성전자에서는 이미 PC사업과 카메라 사업보다는 스마트폰 사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당시 삼성에서 센스 브랜드를 버리고 아티브를 만들던 시절 LG전자에서는 새로운 디자인의 일체형 컴퓨터를 발매하고 gram과 울트라PC를 만들었었다.[20] G5, V20, G6은 미국판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