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image]
'''무등산'''
無等山
Mudeungsan

}}}

'''위치'''
'''[image] 광주광역시 동구, 북구
[image] 전라남도 화순군, 담양군'''
'''높이'''
'''1,187m (천왕봉)'''
'''산맥'''
'''호남정맥'''
'''좌표'''
'''북위 35° 08′ 03″'''
'''동경 126° 59′ 20″'''
'''면적'''
''' 75.425㎢'''
'''위성사진'''
[image]
'''무등산 국립공원'''
'''지정일'''
'''2013년 3월 4일 (21호)'''
'''관리주체'''

'''사무소'''
'''광주'''
'''동구 동산길 29'''
062)227-1187 (본소)
'''전남'''
'''화순군 화순읍 백운촌길 3-3'''
061)371-1187 (동부사무소)
'''깃대종'''
[image]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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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조장나무
'''홈페이지'''
실시간 탐방통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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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암 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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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의 허리, 장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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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정상 역할을 하는 서석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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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정상인 지왕봉(좌)과 천왕봉(우)[3]

광주MBC 캠페인인 무등산을 사랑하자의 '무등산 사랑 캠페인송' 당선작인 '''무등 아리랑'''
1. 개요
2. 무등산 접근 경로
3. 문화
4. 자연 및 환경
5. 주요 봉우리, 고개
6. 시설
7. '무등산을 사랑하자'
8. 여담
9. 무등산 관련 가요
10. 무등산 자전거 다운힐
11. 시
12. 관련 문서


1. 개요


광주광역시 동구의 학운동 및 지원2동과 북구의 석곡동, 전라남도 화순군화순읍 및 이서면과 담양군의 가사문학면[4]에 걸쳐 있는 이다. 최고봉은 천왕봉이며 높이는 1,187m이다. 그래서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무등산의 해발고도를 상징하기 위해 광주광역시는 원효사를 왕래하는 시내버스에 1187번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광주전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산이다.
무등이란 말은 불교 용어로, 평등이 크게 이루어져서 평등이란 말조차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다만, 처음부터 이렇게 이름지었다기보다는 광주의 옛 이름으로 추측되는 '무들'을 음차하면서 좋은 뜻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 이 어휘를 차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백제 때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하였다. 이는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에서 기인한 것으로, 무진주에 있는 산이라 하여 무진악 도는 무악이라 불렸고, 상서로운 돌(서석, 瑞石)이라 불릴만큼 고대부터 무속신앙의 관계자들이 자주 찾던 명산으로 유명했다. 삼국통일신라에서도 국가에서 제사를 지낸 명산 가운데 하나였다.
이 때문에 무덤산 혹은 무당산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으나, 1972년 5월 22일, 무등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던 시기를 전후해 무등산에 산재해 있던 무당들을 정리함으로써 현재는 무덤산이나 무당산이라는 명칭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무등산의 서석(瑞石)이라는 명칭은 여전히 광주광역시의 서석초등학교, 서석중학교, 광주서석고등학교 등으로 현재까지 남아있고, 조선대 일대의 법정동명도 서석동이다.
무등산은 산 서쪽이 영산강 유역과 연결되어 나주평야와 광주의 경계가 되는데 산세가 웅대한 편이다. 산 동쪽은 섬진강 유역을 아우르고 있는데 이곳은 서쪽에 비해 경사가 급하다. 산 북쪽은 화강암이 산 남쪽은 퇴적암이 있어서 과거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성된 곳임을 알 수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도를 참고하면 무등산은 백악기 시절에 화산 활동으로 생긴 산으로, 수천만 년에서 1억 4500만년정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사실상 완만한 산이 되었다. 당연히 이 정도 시기가 지나는 동안 더 이상의 화산활동이 없었다면 사화산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사화산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사화산 이란 단어는 관련학계에선 사장된 용어라고 한다. 만에 하나 이 무등산의 화산활동이 감지된다면 관련학계에선 판도가 완전히 뒤엎어지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수천년도 아니고 몇천만년 이상 활동이 없던 화산이 활동을 재개했으니 당연한 것.
어쨌든 화산 활동으로 생긴 산이었던 만큼 화강암 등의 암석이 있으며 그 영향으로 생긴 서석대와 입석대로 대표되는 주상절리대가 상당히 이채롭다. 산 꼭대기에 있는 서석대는 석영함유량이 매우 높아서 노을이 질 때 보면 반짝반짝거리는데, 이를 두고 예전에는 ‘수정병풍’이라고 불렀다. 이 수정병풍이라는 용어를 조금 더 고급스럽게 표기한 것이 ‘상서로운 바위기둥(서석대, 瑞石臺)’라고 한다.
남구 쪽에서 바라볼 때 산의 중앙부분에 나무가 없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부위를 누럭 내지는 너럭이라 불리는 곳이다. 예전에는 대규모로 있었던 주상절리대들이 풍화되어 형성된 거대한 바위지대이다. 이를 지질학적으로 너덜 또는 너덜겅이라고 부르는데, 과거 하나의 덩어리였던 주상절리대나 기반암이 빙하기를 거치면서 풍화되어 거석들이 강처럼 흐른 흔적을 말한다. 이러한 대규모 너덜이 여럿 존재하는데 과거 광주성의 북문(누문동이 있던 자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너덜이다. 중소규모 너덜들은 화순 쪽에서 보면 소규모로 아주 많다. 광주 쪽에서 보이는 너덜의 돌들은 보통 무게가 하나에 수십톤은 넘는 거대한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상술했듯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 12월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공원 면적은 75.425㎢이다. 2014년 12월 산 주변의 화산지형과 함께 무등산권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청송의 주왕산과 함께 국립공원과 지질공원이 중복지정되어 있다. 2018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 지질공원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3번째로 지정된 세계지질공원이다.
무등산과 광주 도심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금남로에서 무등산이 한 눈에 크게 보일 정도이며, 멀리 광산구서구 등지에서도 한 눈에 보일 정도이다. 남구에서는 어딜 가나 보인다. 그 이유는 광주 자체가 무등산을 낀 분지 형태의 지형 구조에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평균고도하고 1000미터나 차이나는 높은 산이 도시의 행정구역 안에 있다. 또한 증심사 쪽만 하더라도 바로 아래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있는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광주 시민들이 느끼는 무등산에 대한 감정은 국립공원보다는 동네에 있는 꽤나 큰 뒷산으로 느낀다. 중고딩들도 피시방 가다가 질리면 10,000원을 꼭 쥐고 산행한 후 산 밑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놀다가 헤어질 정도로 '''동네 뒷산 취급받고 있다.'''[5] 오죽하면 광주 지방 지역신문의 이름이 <무등일보>이며,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유명한 시의 첫 구절이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일 정도. 또한 광주광역시 시내의 대부분의 초중고학생들은 학교생활 12년동안 한번정도는 소풍이나 체험학습으로 무등산을 등반한다. 광주 대부분 학교 교가 가사에 무등산이 나온다.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도 무등산을 동네 뒷산취급한다. 금당산같이 무등산에서 떨어져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다 무등산의 맥에 이어져있으니 광주 입장에선 동네 뒷산이 맞다. 어쨌든 1000m는 넘는 동네 뒷산이기에 광주 어디서나 바로 볼 수 있는 산이 이 무등산이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무조건 볼 수 있다.
KIA 타이거즈의 감독 선동열이 현역시절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최희섭도 KIA 시절 경기에 나올 때보다 부상 등으로 인해 결장하는 일이 많고, 본인이 무등산에 등산을 자주간다고 언급해서 산악인이라는 비하별명을 받았다. 하지만 달관했는지 은퇴 후 메이저리그 해설 데뷔 광고 영상에서는 '형저메'와 함께 무등산 드립까지 나왔다.

2. 무등산 접근 경로


  • 무등산 시내버스 여행: 광천터미널~화순읍~묘치재~화순적벽입구~인계리~무동~무등산국림공원 담양지소~소쇄원~광주호 생태원~충장사~원효사~무등파크멘션~지산유원지~법원~증심사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등산 루트로는 '증심사 출발'과 '원효사 출발' 둘로 나뉘어진다.
  • 증심사 주차장 출발 루트 :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가장 쉬운 루트이다. 증심사를 종점으로 하는 광주광역시 시내버스가 상당수 있으며 그 외에도 광주 1호선의 학동·증심사입구역을 통해서 접근하는 경우 이 역 인근 버스 정류소에서 증심사 행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비교적 낮은 지역에서 출발하는만큼 등산로가 상당히 길다는 단점이 있다.[6]
  • 원효사 출발 루트 : 대중교통은... 그냥 광주 버스 1187만 믿고 가자. 무등산 깊숙히 들어가는만큼 증심사 출발 루트에 비해서 비교적 힘을 덜 들이고 등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수오거리부터 원효사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산악회 버스 대절로 오는 경우 다수의 버스들이 원효사 기점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1187을 타고 가다보면 산을 올라간지 얼마 못가서 전망대가 있는데 광주 시내가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구경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단 식당이기 때문에 캔음료나 차 등을 주문해야 한다. 건물은 매우 낡은 편.
시외에서 자가용을 통해 오는 경우 광주제2순환도로를 통해 학운 나들목(증심사 루트)과 두암 나들목(원효사 루트. 약간 우회함) 등으로 빠져서 접근하기 쉽게 되어 있다.
그 외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루트로 화순군 이서면 쪽을 통해 등산하는 루트가 있지만, 대중교통이 잘 오는 동네가 아닌지라 접근성은 떨어지는 편. 하지만 광주시에서 운영하는 무등산 순환버스를 통해 화순 이서면과 수만리 쪽으로 무등산에 접근할 수도 있다. 2014년 5월 3일을 기준으로 '''화순 군내버스 215번이 무등산탐방순환버스라는 이름으로 11월 30일까지 운영한다.'''
만연산[7]을 통해서 왔다면 수만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장불재에 오를 수 있는 코스는 두 가지 코스로 나뉘는데, 첫 번째 코스는 중머리재를 거쳐 장불재에 등반. 두 번째 코스는 바로 장불재로 등반하는 코스가 있다. 전자의 경우 중머리재까지 2.2km에 중머리재에서 장불재까지는 0.9km를 등반해야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1.4km를 등반해야된다. 굳이 전자를 통해서 가는 이유는 후자의 코스가 무등산 코스 중에서는 꽤 힘든 편이라[8] 일부러 중머리재를 통해서 가는 코스를 밟는 사람들도 있다. 만연산을 통해 서석대까지 등반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6시간 정도. 쉬면서 천천히 간다면 7시간 정도 소요될 수도 있다.[9]
도보를 좋아하는 트래커들이 무등산으로 온다면 2011년 복원된 무등산 옛길[10]을 통해 등산하는 경로를 추천한다. 과거 선조들이 무등산 서석대까지 등산하는데 이용했던 구간을 복원한 것으로 오랜 세월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생태계적으로도 잘 보존되어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등산 목적이 아닌 일반적인 관광으로 둘러볼 목적이라면 지산유원지 쪽으로 가서 리프트와 모노레일을 이용해도 된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그만큼 덜 걷는다. 이 루트는 향로봉의 팔각정까지 올라갈 수 있다. 또한 리프트만 타고 올라가서 등산로를 타고 다른 곳으로 내려가는 것도 가능하다.

3. 문화


주변 문화재로는 증심사(證心寺), 원효사(元曉寺) 등의 과 환벽당, 소쇄원, 식영정 등의 정자가 있다. 특히 무등산 자락의 광주 금곡동과 충효동, 담양 일대를 아우르는 가사문학권의 발상지이기도 하며[11] 그 외에도 분청사기를 굽던 흔적이 있어 분청사기 전시관이 이곳에 있기도 하다.

4. 자연 및 환경


무등산을 상징하는 자연물로 입석대와 서석대로 대표되는 주상절리대가 있다. 1000m가 넘는 고지대에 풍화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있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12] 그 외에도 무등산에 있는 특이한 지형물로 풍화작용으로 깎인 바위들이 모여서 군락을 이룬 지공너덜로 대표되는 '너덜'이 특징. 현지인들은 너럭이나 누럭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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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특산물로 유명한 무등산수박이 이 곳에서 자생하는데 다른 수박과 품종도 다르고 산기슭에 있는만큼 수확시기도 다른 수박들에 비해 늦는 편이고 소량품종인만큼 가격대도 비싼 편이다. 그 외에도 증심사 등산로 옆에 의재 허백련 선생이 이곳에서 차밭을 가꾼 무등산 춘설차도 유명하다.

5. 주요 봉우리, 고개


'''천왕봉''' : 1187m, 무등산의 정상. 주상절리로 이루어져있다. 공군 방공포대가 주둔한다
지왕봉 : 약 1120m. 거대한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개방때 이곳 앞까지 갈 수 있다.
인왕봉 : 약 1140m 역시 군부대 주둔 지역이다.
서석대 : 1100m. 현재 무등산의 실질적인 정상
입석대 : 1017m. 참고로 이 높이는 입석대 상단부 높이이다. 실제로 입석대 주상절리가 보이는 전망대, 표지석 지역은 979m 정도이다.
누에봉 : 1072m. 산장에서 바라봤을 때 누에가 뽕잎을 뜯어먹는 모양이라 해서 누에봉이다. 한때는 북봉으로 표기했다. 정상 개방시 주로 이곳을 통해 내려온다. 2008년에 서석대, 입석대가 복원으로 통제할 때 이곳으로 대체했다. 원래 표지목이 있었는데 어느순간 썩어서 없어진건지 사라졌다.
신선바위 : 1089m. 주상절리 암봉이다. 울타리가 쳐져있어 함부로 못들어간다. 이곳도 2008년에 한시적으로 개방했다.
중봉 : 915m. 서석대를 거친 하산객들이 주로 이곳을 거쳐 내려간다. 한때 군부대가 주둔했으나 1998년경 나주 금성산으로 이전한것으로 보인다. 정상부에는 주상절리가 있다.
장불재 : 919m. 이곳 인근에서 광주천이 시작된다. 어느 코스로 왔든 서석대로 가려면 무조건 이 장불재를 지나야 하며 무등산의 거의 모든 길이 이곳으로 이어진다.
중머리재 : 617m. 무등산에 온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오른다. 주로 학생들이 이곳까지 오르는 모양이다.
용추봉 : 약 853m 중봉에서 중머리재 사이에 있는 암봉이다. 울타리 너머 표지목이 있었으나 사라졌다. 심광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화사터 : 805m 중봉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보면 나오는 이름없는 봉우리이다. 인근에 있던 동화사의 이름을 따서 이 지점을 동화사터로 부르는듯. 잘 보면 주상절리가 보인다. 자매품으로 동화사터 상단(894m), 동화사터 하단(624m)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새인봉 : 512m 암봉의 모습이 임금옥새를 닮아서 새인봉이다. 봉우리 위에서 잘못하다간 '''멸망'''한다.
토끼등 : 460m. 이곳에서 늦재 까지 포장도로가 있다.
바람재 : 480m. 토끼등과 늦재의 중간지점.
늦재 : 490m. 산장과 증심사지구로 가는 갈림길이다.
꼬막재 : 738m. 광주와 담양 사이의 고개.
규봉암 : 850m. 화순 이서면에 있으며 산 위에 있는 암자이다. 광석대라는 주상절리에 둘러쌓여 아름다우며, 화순 8경 중 하나이다.
낙타봉(화순) : 930m. 화순 이서면으로 넘어가면 있는 봉우리. 마치 낙타의 혹을 닮았다. 정상에 주상절리가 있다.
낙타봉(광주) : 약 517m.
안양산 : 853m. 이 산 아래에는 무등산 편백자연휴양림[13]이 있다.
만연산 : 688m. 화순읍을 둘러싸고 있다. 주로 315m인 큰재부터 오른다. 관광지인 양떼목장이 있다.
북산(신선대) : 777m. 담양군 가사문학면으로 넘어가면 있는 봉우리이다. 정상에는 주상절리가 있다.

6. 시설


무등산 중턱에는 여러 통신 관련시설이 존재한다. 특히 광주와 전남 지역의 방송송출을 위한 송신소가 무등산에 집결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공군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 예하 방공포대가 무등산 정상 천왕봉에 자리잡고 있어 평상시 일반인의 무등산 정상 출입은 상시 통제되어 있다.[14][15] 그러나 정기적으로 무등산 정상 개방행사를 가져서 가장 높은 천왕봉을 제외한 지왕봉[16]까지 개방하는 행사를 가지며 이 날에는 수많은 인파의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부대 장병들은 이 날만큼은 전망대 등반 인원 관리, 사진촬영 관련 보안 지도, 심지어는 무등산 지형 설명 등 반쯤은 관광지 안내원같은 업무를 맡게 된다. 심지어는 등산객들의 요청에 따라 사진을 찍어주고 셀카도 같이 찍는 -업무도 맡게 된다.
그러나 무등산의 국립공원 승격 이후 해당 시설들의 이전 문제가 현안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 시설들을 옮길 수 있는 마땅한 부지를 찾는 것이 관건이 될 듯 하다. 원래부터 포대 이전 등 말이 많던 부대였지만 2015년 3월 15일, 기름 유출 사건이 터짐에 따라 포대 이전 계획은 가속화 되었고, 2015년 12월 무등산 정상에 있는 방공포대 이전 추진이 확정되면서 머지 않아 천왕봉까지 시민의 품에 안길 가능성이 생겼다.[17]
그 외에도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광주 최초의 상수도 취수원이었던 제1수원지가 증심사지구 입구 인근에 있다. 현재 이 곳은 사유지로써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해당 내용은 여담 문단을 참조. 제1수원지 외에도 제2수원지가 용연동(용추폭포쪽 등산로 입구)에,[18] 제4수원지가 청풍동에 있다.[19]
증심사 인근에 의재 허백련 화백의 옛 집터에 세워진 의재미술관이 있다.

7. '무등산을 사랑하자'



광주MBC 전파가 닿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지역 캠페인. '양현종의 무등산을 사랑하자.'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이었던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무등산 등산로 일대에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들이 난립하여 자리잡고 있었다. 호객행위를 위해 자리잡았던 식당들은 증심사 계곡을 중심으로 몰려있었는데 이 시설들로 인해 음식물쓰레기나 계곡 위에 콘크리트 구조를 짓는 등의 불법구조물을 설치하면서 증심사 계곡 주변의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이 때 당시에는 시민의식이 성숙되지 않은 단계였기 때문에 무단 쓰레기 투기나 야외 취사 행위도 일삼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지역방송국이었던 광주MBC와 무등산 보호단체가 주축이 되어 시작한 이 캠페인은, 지역민들에게 무등산에 대한 애정과 인식을 제고시키는데 한 몫을 하였다. 더 나아가 주변 경관과 생태계를 해치는 주범이 되었던 식당들을 현재의 증심사 주차장 인근으로 이주를 시켰고, 난립해 있었던 식당 주변의 생태계 복원 행사, 무등산 옛길 복원 등의 무등산 살리기 운동에 앞장섰고 한때 군사지역으로 묶였던 서석대와 입석대를 개방하는 데 큰 몫을 해냈다.
결과적으로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는 데 있어 지역주민 및 환경단체가 참여한 '무등산을 사랑하자' 캠페인이 큰 몫을 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사무소가 무등산에 정식으로 들어선 뒤 앞으로의 생태계 복원이 새로운 당면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8. 여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1990년대 초 제1수원지 일대에 온천수가 개발되어 운림동 1수원지 일대를 온천관광단지로 개발할 계획이 세워졌었다. 다만 당시 광주 시민들의 정서가 무등산 온천 개발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개발이 계속해서 미뤄졌고 그 동안 해당 지역은 편백나무 숲단지로 꾸며지면서 삼림욕장으로 유명해졌다. 20여년이 지난 현대에 와서도 해당 부지는 여전히 사유지로 되어 있는데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해당 부지를 개발하기도 힘들어진 상황에서 해당 지역을 광주시에서 매입하여 생태공원으로 지정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전라남도에서 518m짜리 타워와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계획을 내놓는다고 했다가 지역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참고로 롯데월드타워의 높이가 555m이다.
과거에는 공익(사회복무요원)이 이 곳으로 근무지가 걸렸을 경우 초소 근무까지 섰다고 한다.#

9. 무등산 관련 가요


합필갤필수요소가 된 무등산관광이라는 노래가 있다. 특히 '''"영광굴비 니가 어째 그 맛을 알겠느냐."''' 이 부분이 포인트라고 한다. 또 가사가 성적요소가 있으니 주의할 것.

10. 무등산 자전거 다운힐


도로가 깨끗하지 않아 내려오는 길에 사고를 당하기 쉽다. 사고가 자주 나는 곳은 울퉁불퉁한 구간인데, 왠만한 카본 차체도 주행 시의 충격을 흡수하기 힘든데 알루미늄 차체의 자전거를 이용하려는 것은.... 광주광역시에도 관련 민원이 많이 들어오지만,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관계로 산악자전거용 길을 새로 포장해 주기 곤란하다고 한다...
2020 현재 시점으로 자전거는 전면 통제 되고 있다.

11. 시


이 산을 소재로 한 시들도 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산이다보니, 저절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시들이다. 참고로 아래의 작품들은 모두 5.18 관련 문학작품 선집인 <5월문학총서>에 실려 있는 시들이기도 하다.
<무등산>
-김규동[20]
한몸이 되기도 전에
두 팔 벌려 어깨를 꼈다.
흩어졌는가 하면
다시 모이고
모였다간 다시 흩어진다
높지도 얕지도 않게
그러나 모두는 평등하게
이 하늘 아래 뿌리박고 서서
아 이것을 지키기 위해
그처럼 오랜 세월 견디었구나.
1989년 시집 <오늘 밤 기러기 떼는>에 발표.
<무등산>
-나종영[21]
너는 언제나 거기 있구나
너는 언제나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살아 불빛을 비추는구나
방림다리 건너 농아학교 가는 길
아 누군가 거기서 떼죽음을 당했을까
진보랏빛 창포 꽃 무더기로 피어 있는
미나리꽝 질펀한 흙 속에 묻혀 있구나
봄볕이 터져 사람들 눈을 뜨던 봄날
외곽도로 돌아 숨가쁜 너릿재 고개
누가 숨막히는 소식 전하러
밤새워 산길을 타고 또 넘었을까
주먹밥을 날라온 밤골 아짐도
자전거를 타고 나간 버드실 당숙도
무사하실까 살아계실까
우리들 목마른 가슴과 가슴이 만나
핏빛 노을로 타는 극락강
저문 강기슭 흐트러진 보리밭에
너는 보는 사람도 없이 처박혀 있구나
죽어서 다시 떠오르는 삶
그런 장엄한 어머니로 거기 서 있구나
너는 보았으리라
어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둠을 뚫고 죽음을 넘어
길을 가던 수많은 사람들을
죽창을 들고
벌판을 가로질러 가던
신새벽 동학년의 맨주먹 흰옷 물결을
너는 들었으리라
두 동강이 찢어진 아픔의 땅덩어리에
또다시 예리한 칼이 그어지는
시퍼런 소리
형제의 외마디소리 치떨림의 소리
너는 오늘 보았으리라
오월금남로 손발이 잘린 가로수
새잎이 돋아나고
무성한 잎사귀마다 손가락 발가락이 옴지락거리며
새 생명이 샘솟는 것을
너는 언제나 거기 꼿꼿이 서 있어
빛을 비추는구나
아 죽어서 다시 떠오른 삶
너는 언제 어디서나
길을 가는 이 땅의 사람들 곁에 있어
이 땅의 사람들이 죽지 않고
다시 눈을 떠
사람답게 살아나게 하는구나
아 어둔 밤 눈보라가 쳐도
눈부시게 일어서게 하는구나.
1985년 시집 <끝끝내 너는>에 수록.
<무등산 서석대>
-이지담[22]
칠천만 년의 세월을 견딘 서석대도
처음 겪는 일이다.
일천구백팔십 년 오월 금남로에서
죽어간 젊은 이름들 뼈를 깎아
갈비뼈에 끼워 넣고 이거한다.
오래된 수첩에 기록하듯
오월의 피로 철쭉꽃을 피워낸다.
비만 오면 총성이 들린다며
귀를 막고 읊조리는 이름들,
겹겹 흉터 자국으로 절뚝거리는
수많은 얼굴들 갈피에 끼워 넣는다.
바람과 먹구름과 달빛까지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신발을 벗고
잠시 묵념에 잠긴다.
군홧발소리 잊지 말라는 듯.

12. 관련 문서


  • 한반도의 산/고개 목록
  • 이재석[23]
  • 선동열[24]
[1] 군부대가 위치에 있어 천왕봉과 지왕봉은 1년에 단 두 번만 개방을 하며, 그마저도 지왕봉 앞의 안내소까지만 개방을 하고 있기에 서석대가 사실상 정상 역할을 하고 있다.[2] 그래서인지 광주광역시에는 이 서석대에서 이름을 딴 법정동인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이 존재하며, 서석동에는 서석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는 학교법인 유당학원 산하 광주서석중학교광주서석고등학교가 존재한다.[3] 위에서 서술되어 있듯이 이곳에 군부대가 위치해 있어 1년에 두 번만 정상을 개방한다.[4] 구 남면[5] 광주광역시 내의 고등학생들 중에선 체력자랑을 위해서 증심사입구에서 중머릿재나 서석대, 입석대까지 타임어택기록을 끊는 것으로 경쟁하는 걸 볼 수도 있다. 심지어 동구 학동 쪽에선 어르신들이 약수뜨러 무등산을 수레 끌고 올라간다. 그만큼 1000미터급 거산이 아닌 동네 뒷산 취급이다. 80년대 말 교육민주화 바람이 불기 전까지는 초, 중, 고등학생들의 봄, 가을 소풍을 거의 다 무등산으로 갔다.[6] 사실 등산로는 여러개 있어서 길이가 짧은 등산로를 택한다면 원효사 출발 루트 못지않게 단거리로 주파할 수 있다.[7] 화순군에 있는 산. 668m.[8] 돌계단이 등반 코스의 90%를 차지한다. 이후 0.5km 정도부터는 서서히 돌계단이 아닌 길이 나오기는 하지만 돌계단을 등반하느라 체력이 꽤나 소요될 것을 감안하면 이것도 힘들다.[9] 만연산 정상에서 중머리재를 거치지 않는 장불재까지 거리가 4.8km 정도 된다. 중머리재를 거쳐서 간다면 길 자체는 더 편하지만 당연히 이 경우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니 참고하자.[10] 산수동~원효사~서석대~담양 구간[11] 가사문학권이 탄생하게 된 것은 서울에서 멀고 비교적 산세가 험한 격오지이기 때문에 이 곳으로 유배를 왔던 문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배를 온 신세 한탄과 함께 멋드러진 풍경산수를 느끼기에 좋은 풍광을 지녔기 때문에 같이 유배를 온 문인들끼리의 문화 교류도 있었다.[12]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임에도 대체적으로 그에 대한 연구가 늦어져 천연기념물 등록이 늦어졌는데, 아래에도 서술되듯이 이전까지는 해당 지역이 군사작전지역으로 묶여있어서 민간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13] 옛 명칭은 안양산자연휴양림이었으며, 이름과는 다르게 국립휴양림이 아니라 '''사립'''휴양림이다.[14] 90년대까지는 서석대와 입석대를 포함하여 더 아래 중봉 일대까지 군사지역으로 묶여있었다. 이후 부대이전을 통한 부지 반환 이후 2007년까지 생태계 복원사업을 벌인 끝에 서석대~입석대 구간까지 개방되었다.[15] 일반인에게는 개방이 안되었지만 광주 지역 육군, 공군 부대에서 복무한 현역병 및 과거 방위병들은 너무 많이 올라다녔다. 아침, 저녁으로 버스 정류장이 있는 산장 부근에서 공군 방공포대로 방위병들을 출퇴근시키는 차량이 운행되었고, 육군 31사단 예하부대의 병력들도 무등산에서 훈련을 많이 했다. 식사추진차량은 방공포대로 올라가는 도로를 자주 이용했다. 덕분에 개방이 안된 정상 방공포대와 서석대, 입석대를 구경(?)할 수 있었다.[16] 여담으로 KIA 타이거즈 선수 나지완의 이름을 이 봉우리에서 따왔다.[17] 하지만 북한이 남침 시 북한 전폭기가 광주 상공에 떴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광주에는 공군 비행장과 우리 군의 군용차량들을 제작하는 기아자동차가 있다. 국군이 방공미사일을 무한대로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는 이상 전방에서 적기를 모두 격추할 수는 없기에 몇 대는 광주까지 올 수 있고 그 몇 대의 적기 때문에 시민들과 공업시설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18] 시내버스로는 배차간격 1시간 짜리 지원52번이 근처 용연실버빌을 유일하게 경유한다.[19] 이곳은 배차간격 1시간인 충효187번과 배차간격 30분 짜리 1187번과 주말 한정으로 운행하는 1187-1번이 경유한다. 제2수원지 보다는 그나마 낫다. 여담으로 제4수원지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배차간격 26분 짜리 석곡87번 종점인 청풍학생야영장이 나온다. 석곡동주민센터부터 이곳까지는 단독구간 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석곡87번이 청풍학생야영장과 제4수원지를 이어줬으나, 언젠가 부터 이곳을 경유하지 않고 현재와 같은 노선으로 운행하기 시작했다.[20] 1925~2011. 함경북도 종성 출생. 1948년 <예술조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비와 광장> <깨끗한 희망> <느릅나무에게> 등이 있다. 평론집 <새로운 시론> <지성과 고독의 문학>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등이 있다. 은관문화훈장, 만해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문학부문)등을 수상했다.[21]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81년 <창작과비평> 13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끝끝내 너는>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등이 있다. 광주민예총 지회장을 역임.[22] 1958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2003년 <시와사람>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고전적인 저녘>등이 있다. 광주전남작가회의 부회장, 비타포엠 시낭송회 부회장을 역임.[23] 광주에 살고 있어 그가 하는 챔피언들의 별명은 모두 무등산 세계수, 무등산 적토마, 무등산 살인곰 등 무등산이 수식어로 따라붙는다.[24] 별명이 무등산 폭격기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