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배우)

 

''' 김영란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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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김민자
(1980)

'''김영란'''
장미희
'''(1981)'''

황정아
김영애
(1982)

[image]
'''이름'''
김영란(金英蘭)
'''출생'''
1956년 8월 19일(68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체'''
157cm, 58kg[1], O형
'''소속사'''
풍경엔터테인먼트
'''가족'''
슬하 1남 1녀
'''힉력'''
홍익여자중학교 - 한양여자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의상학 (중퇴)
'''데뷔'''
1975년 주고 싶은 마음'
'''수상'''
1981년 MBC 방송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종교'''
무종교불교
1. 개요
2. 활동
3. 여담
4. 주요 출연작
4.1. 드라마
4.2. 영화
4.3. 연극
4.4. 방송
4.5.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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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다.

2. 활동


미스 쥬리아 선으로 뽑히면서 쥬리아 화장품 모델로 연예계에 진출했으며 이후 1976년 TBC 탤런트 공채로 본격적으로 활동하였으나 무명으로 있던 중 1977년 백일섭, 노주현과 주연으로 나온 영화 '처녀의 성'으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과 한국영화비평가그룹에서 선정한 '77년도 영화인' 선정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그 해 출연한 MBC 드라마 '옥녀'로 뜨게 되었다. TV로 데뷔했으나 영화에서 뜨고 TV로 금의환향한 케이스다.
이후 한동안 영화와 드라마 출연을 병행하며 '아스팔트 위의 여자', '독신녀', '미워도 다시한번 '80'등을 히트시켰지만 1981년 '아빠 안녕 81' 이후로 영화출연을 하지 않고 드라마 위주로 활동하게 된다. 잠깐이긴 했지만 영화와 드라마 활동이 활발한데다 정윤희도 못해본 흥행 1위(미워도 다시한번 '80) 기록을 가졌음에 불구하고 영화배우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고, 트로이카들을 위협하는 스타였음에 불구하고 트로이카에 밀려 재조명도 받지 못하고 있다.[2] 아무래도 MBC의 간판으로 온갖 드라마에서 이미지 소비가 심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당시 최고스타였음에도 전원일기에 투입되어 김회장 부부의 둘째딸 역을 맡을 정도로 전속시대에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혹사를 당했다.
드라마 '안국동 아씨', '교동마님', '새아씨' 등에 출연하면서 사극 전문배우라는 호칭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1980, 1981년 2년 연속 MBC 방송연기상에서 주연상을 받으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의 풍란에서 주인공 정난정 역'''[3]을 맡기까지 했으나 원미경, 이미숙, 정애리의 등장과 결혼으로 활동이 뜸해지고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린데다 1987년 이혼으로 거의 활동을 안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여러 역할들을 놓쳤다고. 1990년 재혼 이후 복귀하여 미시 탤런트의 대표주자로 활동하다가 한명회, 용의 눈물 등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특히 1996년 작품인 용의 눈물에서의 신덕왕후 역할은 대단'''했다. 정통 사극으로, 선굵기로는 어디가도 빠지지 않는 남배우들이 떼로 주조연으로 출연하는 와중에 '''김영란의 신덕왕후는 이방원 역의 유동근, 원경왕후 역의 최명길과 극단의 대립각을 세우며 극초반의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특히 죽음을 앞둔 41회 마지막 장면에서 정도전(김흥기 분)에게 "방원이를 죽여달라!"라고 오열하며 절규하는 연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장면'''으로 꼽힌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왕조 500년의 1편 추동궁 마마에서는 원경왕후 역으로 출연했다. 이방원으로는 이정길. 1983년 추동궁 마마에서는 20대 후반이었는데 정말 엄청난 미모를 자랑한다. 그 시대의 김태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용의 눈물에서도 방영당시 만 40세의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운 피부에 성형이나 시술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빼어난 미모. 현재는 여타의 중년 여배우들이 그러하듯이 주인공의 엄마 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기력에 비해 주어지는 역할이 심심하고 밋밋해 아쉬운 배우 중 하나다. 그 역할의 위치가 어떻든지간에 따지면서도 논리력은 없는 '다다다다' 하는 말투를 가진 중년여성을 연기하는 '쪼'가 최근 몇년 사이 거의 정착된 것처럼 보이나 용의 눈물에서의 엄청났던 연기력이 어디 증발했을 리는 없고, 중년 배우가 맡는 역할이 평면적이다보니 배우 자신으로서는 별 도리가 없는 일일듯. 특히나 사극의 시대가 저물면서 김영란의 주무대가 사라지다시피 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증발되지 않은 연기력은 MBC 오로라 공주 오열장면에서 활화산처럼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0년대 들어서 가장 호평받은 김영란의 사극연기는 여인천하의 난정 모. 눈물연기가 대부분이며, 딸 정난정을 향한 애끓는 모성애와 희생심이 잘 표현되었다. 나영희나 이휘향과 더불어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 특히 중년 여성에 부여하는 극도로 양식화된 캐릭터에 갇혀 제대로 된 연기력을 펼칠 기회가 없는 중년 여성 배우의 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4] 2017년부터는 KBS 같이 삽시다에 출연하고 있는데 밝은 4차원 캐릭터로 인기를 얻고 있다.

3. 여담


대학교 재학시절 탤런트시험에 지원해보라는 친구들의 권유로 장난삼아 지원, TBC 탤런트로 합격하였다. 이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카더라. 탤런트가 아닌 영화배우로 먼저 떴다.
'''용의 눈물신덕왕후에서의 연기가 사극팬들에게 매우 잘 알려졌고 호평'''을 받는데 젊은 시절 조선왕조 500년 추동궁마마 편에서는 다섯째 며느리이자 훗날 자주 부딪힐 원경왕후 역할로 출연했었다. 용의 눈물에서 신덕왕후와 원경왕후의 지독한 신경전을 생각하면 정말 기막힌 배역 인연이라 할수 있는 부분. 후배 여배우 최명길이 원경왕후를 두 번 맡은 것처럼 이전에 같은 역할을 두 번 맡았는데 '''교동마님, 조선왕조오백년의 풍란에서 맡은 정난정. 이후 여인천하에서 정난정의 어머니를 맡음으로써 진짜 정난정 전문배우'''가 되어버렸다. 정난정을 연기했을 때 에피소드에 따르면 당시 배우와 그 배우가 맡은 배역을 동일시한 극성팬들이 무슨 수로 알았는지 그녀의 집에 빨리 죽으라는 협박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5]
용의 눈물 관련 에피소드가 있는데, 작중 신덕왕후이방원의 갈등이 극에 달해있을 때 이방원이 사냥에서 직접 잡은 노루를 들고와서 술상을 놓고 이방원을 제외한 다른 신의왕후 소생 왕자들을 불러 대화하던 신덕왕후에게 들이닥쳐 노루를 집어던지며 "요즘 아바마마께서 여색에 빠지셔서 자리에 누우셨으니 이걸 고아드리시옵소서."라고 패드립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이방원을 연기한 유동근이 집어던진 노루는 박제나 죽은 것이 아닌 진짜 살아 있는 노루를 마취시켰다. 정작 김영란은 이 사실을 모르다가 연기 도중에 노루가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꿈틀거리는걸 확인하자 진심으로 놀랐다. 당연히 김영란은 놀라서 울었고, 유동근이 커피를 직접 타주며 달래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노루도 꽤나 육중한 동물이니만큼 유동근 역시 무거워서 힘들었다는 후문이 있다.

4. 주요 출연작



4.1. 드라마


데뷔 초 작품을 보면 대부분 사극으로 '성난 눈동자'에 출연했을 당시 경향신문에서 오랜만에 현대극에 출연한다고 할 정도로 사극 출연이 잦은 배우였다. 활동 후반으로 갈수록 사극 제작 감소와 역할의 폭이 줄어들면서 현대극에서 주로 어머니 역으로 나왔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간간히 사극에 나왔다.

4.2. 영화


  • 2013년 <노리개>
  • 1981년 <아빠 안녕' 81>
  • 1980년 <미워도 다시한번 '80>, <잊어야 할 그 사람>, <두 여인>
  • 1979년 <물도리동>, <독신녀>
  • 1978년 <아스팔트 위의 여자>
  • 1977년 <처녀의 성>
  • 1976년 <광화문통 아이>
  • 1975년 <주고 싶은 마음>
TBC 탤런트로 데뷔하였으나 빛을 못보던 중 '처녀의 성' 출연으로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나 활발했던 드라마 출연에 비해 영화활동이 빈약하여 영화와 TV에 동시에 빛을 발하던 트로이카와 쌍벽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출연작들이 출연횟수에 비해 대체적으로 흥행한 편으로 나름 흥행보증수표로 인식되었으나 '미워도 다시 한번' 80'이 흥행 대성공을 했음에도 큰 평가를 받지 못했음인지 '아빠안녕' 81' 이후로 영화출연이 전혀 없다가 30여 년만에 나왔는데 히트는 커녕 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옅다...

4.3. 연극


  • 1981년 강릉매화전

4.4. 방송



4.5. 수상 경력




[1] 같이 삽시다 시즌 2에서 공개되었다. #[2] 사실 후대에 재조명을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의미가 없다. 재조명을 받는 배우들의 상당수가 자신을 미화하여 포장하기 때문이다. 즉, 재조명을 받는 배우들이 진정한 의미의 재조명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날조로 재조명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 왕년에 잘 나갔는지의 지표는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증거인데, 문제는 김영란은 지표상으로는 트로이카를 위협하는 여배우였지만, 스타성이 트로이카나 후배인 원미경보다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다 보니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트로이카 중심으로 기억하지 김영란 하면 별 언급을 안한다는 점이 안타깝다.[3] 정난정 역의 거의 시초 격이다. 사실상 우리나라 사극에서 정난정을 이야기하자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4] 물론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김혜자나 김해숙과 같이 다양화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늘어나기는 했으나 이들 역시 결국 상당수의 드라마에서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수밖에 없거나 아예 그런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하고, 조금이나마 다양해진 캐릭터가 김영란 등의 중년배우에게까지 돌아갈 기회가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5] 90년대까지 무슨 사건이 터지면 관련 인물의 집주소를 동, 호수까지 다 밝혔으니 전화번호는 알려고하면 알았을 거다. 당시엔 전화가 많던 시절도 아니었으니테니 말이다. 교환이 있던 시절, 유명인사의 경우에는 교환에게 해당인사로 교환해달라고 하면 그 집으로 바로 연결해주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