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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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2월 19일 ~ 2005년 10월 24일 (62세)
金鎭載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194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동일고무벨트 창업자인 김도근이며, 아들 김세연은 금정구에서 제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무소속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바른정당 - 자유한국당)을 지냈다. 그리고 아들 김세연의 장인이 한승수 전 국무총리여서 한승수와는 사돈 지간이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에 재학하다가 편입하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아버지 김도근이 창업한 동일고무벨트에서 일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동래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박관용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한국당 이건일 후보와 신한민주당 박관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6]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금정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부산직할시에서 당선되었다. 1989년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하자 민주자유당 총재비서실장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금정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한나라당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성명서를 통해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지금까지 저를 아껴 주신 국민 여러분의 믿음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차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불출마 선언의 배경에는 아들인 김세연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께 불출마 의견을 말씀드렸을 때 저는 서른두 살이었죠. 인식이나 사고의 수준이 너무 철없고 부족한 상태였어요. 그런 제가 툭 내뱉듯이 한 얘기였는데, 아버지는 그걸 그렇게 크게 받아들이셨다는 걸 뒤늦게 알고 나서…”#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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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2월 19일 ~ 2005년 10월 24일 (62세)
1. 개요
金鎭載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194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동일고무벨트 창업자인 김도근이며, 아들 김세연은 금정구에서 제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무소속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바른정당 - 자유한국당)을 지냈다. 그리고 아들 김세연의 장인이 한승수 전 국무총리여서 한승수와는 사돈 지간이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에 재학하다가 편입하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아버지 김도근이 창업한 동일고무벨트에서 일하였다.
2. 정치적 행보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동래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박관용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한국당 이건일 후보와 신한민주당 박관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6]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금정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부산직할시에서 당선되었다. 1989년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하자 민주자유당 총재비서실장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금정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한나라당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성명서를 통해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지금까지 저를 아껴 주신 국민 여러분의 믿음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차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불출마 선언의 배경에는 아들인 김세연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께 불출마 의견을 말씀드렸을 때 저는 서른두 살이었죠. 인식이나 사고의 수준이 너무 철없고 부족한 상태였어요. 그런 제가 툭 내뱉듯이 한 얘기였는데, 아버지는 그걸 그렇게 크게 받아들이셨다는 걸 뒤늦게 알고 나서…”#
3. 여담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아들인 김세연이 해당 지역구에 내리 3선을 하고 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금정구의 구청장으로 당선된 원정희 씨는 김진재의 보좌관 출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정치인 가문의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7]
- 동생인 김형수는 한국맥도날드가 생기기 이전에 남부지방 맥도날드를 운영하는 회사인 (주)맥킴의 소유주였으나, 이후 맥킴의 지분을 맥도날드에 대부분 매각하였다. 맥킴은 유한회사로 전환되었다가 (유)한국맥도날드(舊 신맥)에 합병되어 사라졌다.
- 2005년 10월 24일에 타계하였는데, 이로부터 6개월 전에는 아버지 김도근이 타계하였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