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전민고등학교
1. 개요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 에 있는 대전전민고등학교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
2.1. 연혁
- 2003년 12월 15일 24학급 설립인가
- 2004년 03월 03일 개교 및 제1회 입학식(8학급, 280명)
- 2007년 02월 09일 제1회 졸업식(255명)
- 2013년 04월 29일 제25회 대전과학전람회 최우수학교 표창
- 2013년 12월 24일 2013 학교평가 최우수학교 표창
- 2015년 12월 10일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 선정
- 2016년 02월 04일 제10회 졸업식(374명, 누계 3,297명)
- 2016년 03월 01일 제7대 이해용 교장 취임
- 2016년 03월 02일 제13회 입학식(10학급, 366명)
- 2020년 01월 31일 제14회 졸업식(269명, 누계 4,626명)
- 2020년 03월 04일 제17회 입학식(10학급, 263명)
3. 학교상징
3.1. 교목, 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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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상징(심벌마크) 및 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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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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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는 학교 개설 당시의 국어선생님께서, 작곡은 당시의 음악선생님께서 해주셨다.
1학년때 배우고 안한다. 체육대회때도 잘 모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교가랑 헷갈려서 더더욱 모르겠다.
4. 특징
고등학교가 위치한 동네가 워낙 폐쇄적이어서
문지초→문지중 ↘
전민초→전민중 →전민고 또는 대덕고나 용산고, 중일고 테크를 많이 탄다. 대체로 엑스포아파트나 청구나래, 세종아파트, 삼성푸른 같은 전민동 출신들이 대부분이지만, 매일매일 고된 길을 돌아오는 친구들도 많다.
예를 들어, 서구 비둔산권에 사는 중학생이 전민고등학교라는 학교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1~5지망 배정 모두 떨어지고 전민고등학교로 배정받은 경우도 있었다. 대전의 고등학교는 단일학군으로 간혹 이렇게 원거리로 배정 받는 학생이 생긴다. [3]
남녀 교실이 따로 분리된 형태의 남녀공학이다. 설립 당시에는 남녀합반이었고 2008년까지도 계속 남녀합반이었으나, (아마도) 2009년부터 새로운 교장이 취임함에 따라 남녀분반 구조가 정착되었다. 여담으로 남녀합반 시절 체육시간에는 여학생들은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었으나 남학생들은 쫓겨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5.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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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다.
17년 9월 대의원회의에서 고3들이 교복을 바꾸자는 의견이 있었지만[4] , 시간이 오래 소요 된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특이하게 여자 하복이 테니스 치마인데, 왠지 다른 고등학교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들 한다.
6. 학교 시설
학교 건물은 대전전민고등학교가 개교하기 전인 1995년에 준공되었는데, 왜냐하면 1995년부터 2003년까지는 대전전민고등학교 건물이 대전외국어고등학교의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전외국어고등학교의 위치가 대전에서 너무 외졌다는 이유[5] 및 전민동에 일반계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다는 이유로 대전외국어고등학교는 2004년에 전민동에서 서구 내동으로 이전하였고, 이후 그 자리에 지금의 대전전민고등학교가 개교한 것이다. 내동으로 이전할 때 전민동에 거주하는 대전외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했으나 금방 무마되었다. 본래 외고 시설이었던 덕택인지, 건물 준공년도에 비해 학교시설은 비교적 좋게 유지되고 있다.
6.1. 방송장비
결국 방송장비를 교체했는데, 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종종 방송사고가 일어난다. 빈도는 적잖이 줄었으나 잊을만 하면 영문모를 일이 일어난다.[6]
2016년 9월 모의고사 영어듣기평가시간에는 1층의 1학년 영어듣기방송이 끊겨 2, 3학년 방송이 끝난후 다시 틀어주는 사고가 있었으나, 시설 점검 후 다행스럽게도 수능 때는 별일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방송사고가 일어나더라도 방송부원 개개인을 욕하지는 말자... 다들 학교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 이다.
6.2. 냉난방
학급교실의 경우 반마다 교탁/창가/복도/사물함 방면으로 선풍기가 한 대 씩 배치되어 있다. 선풍기를 끄고 킬때마다 이게 어떤 걸 끄는 스위치인지 헷갈리는 일이 많아 학급 내 소란의 원인이 되곤 한다.[7] 공놀이나 종이 쑤셔넣기 등으로 쉽게 날개가 부서지므로 괜히 장난 치지 말자.
또한 한여름/한겨울같이 하루종일 틀어야되는 시기가 아닌 이상, 모든 에어컨/히터는 행정실에서 중앙제어로 관리한다. 공공시설이니만큼 실내적정온도 준수에 철저하시다는 점[* 몇몇 학생들에게 전해지는 비기로, 온도조절 버튼 옆 틈새에 압정을 꽂아 계속 버튼을 누르는 꼼수가 있다. 행정실에서 교실의 에어컨/히터를 제어하는 사이사이의 딜레이를 이용한 방법인데, 이렇게 하면 행정실에서 온도를 조절할 때마다 계속해서 원하는 온도에 맞춰준다. 그러나 이 방법을 쓰면 쓸수록 '''다른 층 냉난방은 거의 끊기기 때문에''' 자주 쓰지 말자.
졸업생의 꿀팁 - 본부교무실인가 각 교무실에 에어컨 리모콘이 하나있다. 그거 사용하면 에어컨본체를 아래로 내려오게 만들수 있는데 그때 본체 안에 있던 스위치를 조작하면 중앙제어 풀고 아무때나 사용가능하다. 걸리면 뒤지게 혼나니까 적당히 꿀빨다 다시 돌려놓는게 중요하다!
특히 4층에선 아예 에어컨에서 찬바람이 안나오기 때문에 고3들의 스트레스가 폭발할 수 도 있으니 더더욱.]알아두자. 선풍기와 에어컨/히터는 모두 에너지지킴이가 관리하도록 되어있는데, 교실을 비울 때는 가급적 냉난방기구를 모두 끄고 나가자. 학교 예산 지출에 냉난방비 비중이 굉장히 큰 탓에 제대로 안끄고 다니면 여러모로 곤란하다.
6.3. 교실
6.3.1. 학급교실
유리가 잘 깨진다.[8] 복도 쪽 유리창들은 불투명 필름을 붙여놓지만, 뒷문에 하나는 붙여놓지 않는다. 17년 9월 대의원회의 때 이야기된 바에 따르면, 유리창 하나는 그대로 놔둬야 채광 등의 문제가 생기질 않는다고.[9] 물론 많은 교실들이 여기다가 냉난방중이라고 써놓은 신문지로 가려두는 등 실질적으로 채광에 도움되는 구석은 없어 보인다.
!새로운 정보! 18.03.01
최근 겨울 방학을 통해 천장 및 유리 공사를 하며 새 것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오래되어 끼익 끼익 거리던 문에다가 방충망 문은 열리지 않고, 심지어 잘 찢어져서...너덜너덜한 상태 였는데, 이중창으로 바뀌고, 방충망도 열리게 되는 깨끗한 (!) 창문이 되었다. 또한, 천장도 왠지 모를 구멍이 반마다 하나쯤은 있거나 샤프심이 꽃혀있거나, 신발 자국 (?) 이 있던 천장도 새 것으로 바뀌었다.
6.3.2. 수학/영어/국어교과실
2층에 자리한 교과별 교실들. 특히 수학교과실은 수준별 분반 운영에 자주 쓰인다. 동아리실들과 같은 층에 있기에 자율 동아리 활동장소로도 용이하다.각 교실마다 담당 교사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10] 하므로 동아리 활동시에는 꼭 허락을 받아두고 깨끗하게 이용하자.
6.3.3. 미술실
책상이 옆자리와 붙어있고 미술실 답게 사방에 그림이 배치되어 있다. 교탁 옆에는 수업에 필요한 가위, 자, 풀, 필기구, [11] 등이 있고 칠판은 학생들의 작품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수행평가 과제물이므로 어지간해선 손대지 말고 감상만 해주자. 뒤쪽에는 주로 퍼즐 맞출 때 쓰이는 책상 하나와 미술용구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미술동아리가 두 개가 된 후부터 누가 미술실을 차지하는지 경쟁이 붙는데, 그때 미술 교사에게 잘 보여 간택당해야 한해가 편안하다.
6.3.4. 음악실
책상은 옆자리와 붙어있고 피아노 한대가 자리잡고 있다. 교탁 뒤에는 빔 스크린이 있으며, 뒤쪽에는 주인이 있어보이는 일렉기타와 누군가가 전원 스위치를 망가뜨려 놓은 앰프 한 대가 항상 놓여있다. 바닥에 깔린 방음 카페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던 탓에, 지금은 전부 교체해버렸다. 합창부 친구들은 낮에건 저녁에건 정말 자주 올 장소.
현재 문 하나가 고장난 상태. 음악 교사가 친절하게 고장났다고 써붙여놓았으니 억지로 열려고 하지 말자(...).
추가로 19년 12월 초 쯤?, 누가 문 옆의 벽을 뚫어버렸다 . 물론 선생님이 보셨지만 고쳐지는 일은 없었다고(...).
6.3.5. 컴퓨터실
진로시간에 커리어넷을 이용하거나 교원만족도평가 같은 설문조사를 할 때 사용된다. 야자시간 인강실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른바 EBS방으로 불리는 이유. [12]
컴퓨터가 정말정말 느리기 때문에 [13] 인내심을 시험하는 방이다.
6.3.6. 가사실
기술 가정시간에 사용한다. 1학년의 옷 만들기 수행평가 때 쓰던 미싱기가 배치되어 있다. 인덕션과 싱크대도 자리잡고 있는데, 기가선생님 말씀으로는 창가 쪽에서 맨 왼쪽 싱크대는 누수 문제로 인해 물 틀면 아래층 한솔반 교실에 물이 샌다고 한다.
6.4. 도서관
3층에 위치해 있다. 2007년에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자습 및 1학년의 자율 시간에 이용되는 자습실과 연결되어 있다. 각종 도서 관련 공모전이 도서관 앞쪽에만 공고가 붙고 층별 게시판에는 안붙는 경우가 많으므로, 관심있는 학생들은 가끔씩 들러주자. 정기적으로 도서신청을 받아주시는데, 이렇게 들어온 책들은 신간 도서 쪽에 정리되어 있으니 헤매지 말자.
2학년들 사이에서 식객이 반출되어 돌아다니고 있는데, 원래 만화책은 대출 불가다. 혹시라도 교실에 돌아다니고 있는 식객을 발견한다면 도서관에 반납하자.
6.5. 강당
원래는 본관 우측 건물에 있었으며 급식실과 겸용으로 쓰였으나 10~11년도부터 강당 및 급식실 건물이 증설되면서 옮겨졌다. 급식실 윗층에 위치해 있으며 3층 규모의 크기이다. 무대 쪽에 배치된 방송장비 건드리면 방송부가 힘들어한다. 17년 2학기 2학년 남자반 수행평가 종목이 탁구인 덕에, 강당 앞쪽 탁구대에선 오늘도 열심히 라켓을 휘두르는 친구들을 볼 수 있다.
6.6. 운동장
흙바닥으로 되어있고 축구골대, 농구골대, 배구네트, 철봉과 같은 운동기구들 이 설치되어 있다. 점심시간 또는 저녁시간이 되면 운동장에 나와서 축구를 하거나 야구를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가끔 저녁먹기 전에 보면 1학년 애들이 단체로 운동장을 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14] 도대체 누가 설계했는지 축구골대 위치가 '''비정상적'''이어서 골대 사이의 거리와 양 옆의 거리가 거의 같다. 그래도 체육시간에 시키면 열심히 한다.
강당 건물이 있기 전에도 운동장이 작다는 소리가 많았는데, 강당 건물이 생기면서 더욱 작아졌다. 강당이 있기 전에도 단거리 달리기 시험을 치면 거리가 모자라 대각선으로 달려야 했다.
6.7. 급식실
원래는 본관 우측 건물에 있었으며 강당과 겸용으로 쓰였으나 10~11년도부터 강당 및 급식실 건물이 증설되면서 옮겨졌다. 강당 앞~계단~급식실에 걸쳐 정말 기나긴 줄을 서야 밥을 먹을 수 있다. 15분까지는 줄이 상당히 길며 3학년부터 학년 순서대로 줄을 선다.[15] 너무 늦게 오면 급식당번들이 힘들어 하니 요령껏 와서 줄을 서도록 하자.
6.8. 교통
집이 멀지 않다면 걸어서 등교하지만 먼 경우에는 시내버스를 타거나 봉고나 셔틀버스를 이용해 등하교를 한다. 관평동에서 705번 혹은 802번을 타면 15분 내지 20분 사이로 올수 있다. 다만 봉고를 사용하지 않고 버스를 타는 친구들은 도박수를 띄운 것이, 배차간격이 10분씩 있고 심할 때는 17분까지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근처 동네라면 시내버스보다는 봉고를 이용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힘든 건 전민동 학생들이다. 푸른, 세종아파트를 제외한[16] 엑스포아파트, 청구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은 등교하는데 족히 15~20분은 걸린다. 솔직히 여름, 겨울에 버스, 봉고 타고 오는 친구들이 부럽다.
그래도 바로 옆 문지중의 악명 높은 경사에 비하면 백만 배는 나은 편이다. 실제로 문지중 출신의 경우 극악의 등교 코스에 어린 시절부터 단련되어 고교 진학 이후로는 성장으로 인한 체력 증대 및 등교 거리, 난이도 저하 등의 원인으로 인해 비교적 수월하게 등교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힘들게 등하교하는 친구들에게 격려의 말 한마디씩 건네주자.
전민섬의 위치상 둔산동가는데 약40분(705번), 은행동가는데 약 1시간(802번)정도 걸린다. 주변에 놀데도 없고 pc방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17] [18] 오랜시간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6.9. 기타
학교가 본관과 강당, 급식실로 나눠져 있다(전부 연결은 되어있다). 원래는 본관 건물밖에 없었고 본관을 정면에서 봤을 때 우측의 건물에 강당 겸 급식실이 있었으나, 2009년부터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인지 10~11년도 쯤 강당 및 급식실용 건물을 증설하였다. 특이하게도 본관은 운동장 쪽이 뚫린 'ㄷ' 형태로 되어있다(중앙정원, 줄여서 중정이라 부른다). ㄷ 안에는 배드민턴 네트가 설치되어 있어 매번 시간이 날때마다 누군가 열심히 치고 있다. 언제부턴가 발야구 하는 사람도 있다.
1학년 특색활동인 식전 솔바람길 산책은 정말 힘들다. 산책 끝내고 밥먹고나면 예령이 치고 있는 경우도 많다. 1학년들과 점심/저녁시간에 모여서 해야할 일이 생기면 가급적 교사들에게 허락맡고 일찍 데려가서 먹여주자.
2017년 2학기 기준 전민고 텃밭 뒤 정자가 있는 공간에서 초창기 멤버인 3학년 H반 학생 두 명이 비치발리볼을[19] 가지고 배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많은 공들을[20] 거쳐 현재 6명 이상의 학생들이 배구를 하고 있다. 5명의 3학년 H반 학생들과 한 명의 3학년 Q반 학생이 돈을 모아 산 분홍색 소프트발리볼이[21] 주전 배구공으로 발탁돼 매 점심 저녁시간마다 배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주전공인 줄리아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는 경우 후보공인 윌슨 2세를[22] 사용한다. 많은 학생이 모인 이후로 2017년 여름까지 강당과 운동장에서 활동하였으나 족구 체육수업으로 인해 운동장의 배구코트가 족구코트로 변하고, 배드민턴 수업으로 강당마저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중정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러나 주전공 줄리아가 두 번이나 2층 난간에 올라가고 국화밭을 망가뜨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현재 운동장의 족구코트에 끈을 매어 배구 네트 대신 이용하며 활동하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해가 짧아져 줄리아가 보이지 않게되어 야광스티커를 붙이는 등의 노력을 하였으나 효과는 없었다고 한다.
7. 학교생활
수시/수능이 다가오면서 서로 간의 마찰이 잦아졌다.
7.1. 평일
7.2. 주말 및 공휴일
토요일 자습 시간표
2017년까지는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했으나, 인원부족과 급식 아주머니들의 사정으로 인해 자율적으로 나가서 먹고 들어오게 바뀌었다.
점심시간이 평일과 다르게 70분인 것도 그때문.[25]
고3의 경우 평일 공휴일은 자습을 한다. 자습 방식은 토요일 자습과 동일하다.
7.3. 야간자율학습
19:00시부터 20:30시까지가 1교시 20:40시부터 22:00시 까지 시행한다. 야자를 째고 갈 수 있는 곳 ( )이 주변에 있어 야자를 자주 짼다. 방과후보충을 안하는 학생들은 야자에 참여할 수 없는게 학칙이나, 몇몇 상식적인 선생님들께선 개의치 않아 하시는 중.
야자를 째는 다양한 방법
- 그냥 나가기
반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잘 해결 해 줄것이다. 그동안 반 친구들과 교사에게 쌓아온 신용을 시험해보자.
- 조퇴
- 학원
학기초 수강확인증을 낼 때 빼고 싶은날을 적어서 제출한다. 크게 혼날 걱정없이 집 에 갈수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매주 강제로 빼야한다. 학원 수강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야자만능론자 교사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으니 주의하자.
- 그 외
지워지는 펜( [26] , 자율 동아리, 대회 준비 등등
사실 2010년대 초반 무렵(적어도 2000년대 말)까지는 일반 학생들도 고3이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11시 30분까지 자습을 하였다(등교 시간은 7시 30분까지). 그것 뿐만이 아니라 고3이면 주말(토일 전부)에도 6시까지 자습을 하였으며, 고1~고3 모두 방학 때도 보충학습 명목으로 매일매일 등교를 하여서 수업을 듣고 6시에 급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27] 다만, 강제성은 약했기 때문에 야자를 신청하지 않아도 딱히 뭐라고 하는 교사는 많지 않았다(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 특히 방학 중 보충수업은 정규수업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고3이 되면 자신이 선택한 수능과목이 아닌 수업시간에는 교사의 수업을 무시하고 독학을 하거나 탈주(...)하여 PC방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다 오는 경우도 있었다. 방학 중 수업이다 보니 교사들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가히 효율성의 극치. 그러나 강제성이 약했기에 생기는 부작용도 있었는데, 학년 초에는 대부분이 열의에 불타서 야자에 참여하다가 학년 말이 되면 한 반당 1/3 이하 정도의 학생들밖에 남지 않곤 했다(...). 여담으로 학교 초창기에는 프리즌 브레이크(드라마)가 유행이었기 때문에 당시 야자 도중 탈주하는 것을 '전민 브레이크'라고 부르곤 했다.
17년 9월 기준, 강제성이 많이 약해졌는지 야자 참여 인원이 줄어듦에 따라 전기료 등을 절약하고 감독에 용이하도록 학생들을 재배치[28] 하는 중이다. 교실을 오고가는 사이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말없이 교과서를 빼돌리거나 하는 일이 많아졌으므로 조심하자.
18년 3월 기준, 주마다 야자에 참여하는 횟수에 따라 A반, B반, C반으로 나누어 자습한다.
7.3.1. 한솔반
특별반으로 한솔반을 운영한다. 한솔반은 모의고사 및 내신성적으로 상위권 학생들을 뽑아서 일반 학생들과는 다른 교실에서 자습할 수 있도록 하는 곳으로 2007년에 도서관과 함께 처음 설치되었다. 일반 학생들과 달리 11시까지 자습 을 시킨다. 또한, 토요일 자습이라고 하는것이 있는데 이는 아침 9시까지 등교하여 학교에서 5시까지 자습을 하는것을 의미한다.
처음 생겼을 때는 3층에 위치해 있었으며 정확히는 도서관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그러나 설립 후 첫 사용인 2007년 1~2월 겨울방학부터 한솔반에서 자습하던 고2(즉, 07년 고3)들이 급식실 젓가락과 수저(...)를 이용해 도서관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도서관 컴퓨터로 스타크래프트 멀티를 하다 잡히는 등의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초창기 한솔반의 감독은 교사가 하지 않았고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감독을 하였다. 이때 감독을 맡은 학부모가 간식거리를 사오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 상기했다시피 원래 3층에 있었으나 09년도의 대대적인 학교 개편과 더불어 2층으로 이동한 듯 하다.
한솔반에서 노는 친구들도 있긴 있다.
18년도 1학년들 여름방학 자습을 한솔반에서 했더니 애들이 정신줄을 놓고 놀다가 걸린게 몇번인지라(...), 19년도부터 1학년 한솔반은 사회전용교실로 바뀌었다.
7.4. 두발 및 복장
초창기인 2004~2008년에는 두발단속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29] 당시 여학생들은 염색도 자주했고(물론 튀는 색은 아니고 자연스러운 갈색 수준), 이준기 등의 배우를 위시한 장발과 샤기컷 및 울프컷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남학생들은 특히 옆머리와 뒷머리를 아주 아주 길게 기르고 다니곤 했다. 이름표는 있긴 했으나 플라스틱 이름표를 핀셋으로 고정하는 방식이라 하고 다니는 학생이 거의 없었고 교사든 학생이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2008년 이후 두발 단속을 한다. 염색, 투블럭 등은 허용이 안 되며, 남학생은 머리가 눈썹에 닿으면 안 되지만 사실 검사 맡을때만 지키면 된다. 여학생의 경우 2016년에 규정이 바뀌어 머리 길이는 선택의 폭이 매우 넓어졌다. 하지만 2017년 생활지도부실 교사들은 비교적 관용적이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란 점 유의하자.
추가. 2018년 5월 14일 학생회장의 공약으로 인해 투블럭의 규정이 완화되었다. 14일 방송을 한 말에 따르면 '너무 과한 투블럭은 자제하며 어느정도 단정한 투블럭은 충분히 허용해주겠다' 라고 했다.[30][31]
교사들은 삭발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한다.[32] 삭발을 하고 오면 장난식으로 '반항하냐?' 라는 말을 하긴 한다.
그래도 며칠 지나고 나면 터치를 안하는 것을 보면 해도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33] 그래도 단정하게 깎기를 바라는 것 같다.
복장은 겨울엔 동복 여름엔 하복을 입으며 하복과 같이 생활복을 입을 수도 있고 겨울에 추우면 교복위에 사복을 입어도 되며 여름에 추우면(?) 위에 체육복을 입어도 된다. 아예 그냥 사복을 입어버리거나 이름표 안 달고 다니는 애들도 판을 치지만 몇몇 사람을 빼고 교사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17년 9월 대의원회의 이후, '''하교시 체육복 착용이 허가되었다.'''
18년 5월 학생회장의 공약으로 인해, 생활복의 등하교, 체육복의 등하교가 허용되었다.
7.5. 주요 행사
입시설명회나 멘토특강 위주의 진로활동이 자주 진행된다. 친구들이 알아보기 쉽게 날짜도 써주자.[34]
8.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8.1. 버스
9. 여담
옆 학교인 대전문지중학교와 거리가 가까워 문지중에서 축구를 하다가 공이 이쪽으로 넘어오거나 전민고 학생들이 문지중을 향해 거울로 햇빛을 반사하는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다. 2016년경에 문지중 진입로 개량공사가 있고 나서는 공이 넘어오는 빈도가 줄었지만, 여전히 잘만 넘어온다.
옆의 '''대덕고'''처럼, 내신 따기가 상당히 어렵다.
2004년 처음 설립되었을 때, 그러니까 1회 때는 교복이 지정되지 않아서 1회생들은 무려 1년 동안 사복등교(!)를 하였다. 전국의 모든 인문계 공립고등학교 중 사복으로 다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고등학교였을 것이다.
2005년부터는 교복은 지정되었으나 체육복이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측은 2회생들에게 중학교 때의 체육복을 그대로 입고 오라고 했다. 전민중을 비롯한 타 중학교는 괜찮았지만 하필 전민고 출신중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문지중의 체육복은 굉장히 악명높은 디자인으로 유명했고(상하의 전체가 보라색이다!), 그 때문에 문지중 출신 1학년들은 체육시간마다 2학년들에게 보라돌이(...)라는 비웃음을 당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도 2005년 중에 체육복이 지정되어 이 굴욕은 길지 않았다.
학교를 전면부에서 봤을 때 양쪽의 건물을 이어주는 구름다리 같은 통로가 3층과 4층의 전면에 각각 하나씩 있는데, 그중 3층의 통로는 2004~2005년 동안 잉글리시'''죤'''[36] 이라는 이름으로 컴퓨터가 여러 대 위치해 있었고, 철문으로 굳게 닫혀 통로로 사용할 수 없는 용도불명의 시설이었다. 그러나 그 안의 컴퓨터를 노리는 매의 눈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2005년동안 학생들이 몸통박치기로 '''철문을 돌파'''하여 수도 없이 컴퓨터를 사용하였고, 결국 2006년부터 잉글리시죤은 폐지되어 그냥 통로로 사용하게 되었다. 다만, 그 후에도 안내판에는 바뀌기 전까진 여전히 잉글리시죤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학교 옆의 텃밭은 대전외국어고등학교 시절에는 없었고 학생들이 쉴 수 있는 오두막이 있었으나 전민고로 바뀌면서 어느샌가 없어졌다. 그 텃밭과 더불어 모 박물관에서 공수해온 농기구들(후에 없어짐)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초창기 학생들은 자조적으로 '''전민농고'''라고 자칭하기도 했다.[37]
학교 주변에 메타세쿼이아 가 많이 심어져 있다. 연수가 꽤 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크고 아름다운 크기를 자랑한다. 학교가 산 바로 밑에 위치해 있어서 이런 커다란 나무가 많아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다만 산 밑에 있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벌레의 역습도 장난 아닌 수준이다. 특히 군대에 가면 지겹도록 만날 수 있는 아디다스모기의 악명도 미리 체험해볼 수 있다. 그리마나 지네도 많이 나온다.[38]
교가는 학교 설립 당시의 국어교사가 작사를, 음악교사가 작곡을 담당하였다. 이중 음악교사는 2006년 12월 2학년 1반과 2반의 알토리코더 합동수업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하였다. 특히 이 음악교사가 여러가지 의미로 독특하여 당시 학생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카더라.
1회생들이 결성한 '풍기문란'이라는 밴드가 유명했다. 1회생들의 현역 당시에는 학교 축제 때마다 공연을 하곤 했다. 가장 잘 부르던 노래는 크라잉넛의 말달리자.
배드민턴에 주력하는 것은 학교의 전통(?)이다. 학교 건물 중앙(중앙정원)에 네트가 없던 학교 초창기 시절부터 배드민턴을 열심히 치는 학생들이 꾸준히 있어왔다.
본관 좌측 건물 1층 화장실 앞에 있는 유리문 부근에 공중전화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핸드폰의 유행 때문인지 어느샌가 사라졌다. 비슷하게 본관 좌측 건물의 중앙계단 근처마다 자판기가 있었으나 매점이 생긴 이후론 매점으로 이동했다.
고등학교 바로 근처에 카이스트 문지캠퍼스(구 한국정보통신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그런데 여기 도서관 열람실이 신분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민고 학생들이 종종 공부를 하러 가곤 했고 이들로 인해 각종 물의가 발생하여 결국 당시의 정보통신대학교 측은 신분확인을 철저히 시행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영양사 관련 일화가 많다. 04~05년까지만 해도 전민고는 최고의 급식으로 일대에 유명하여 영양사가 학생들의 찬사를 받았으나 06년도부터 영양사가 교체되면서 급식이 맛없어져 탈주학생이 급증하였다. 게다가 12~13년도에는 영양사의 납품 비리 논란 까지 터져버렸다.당시 보도 기사[39] 이후 새로 오신 영양사 선생님은 이전보다 훨씬 상식적인 운영과 학생들을 배려해주시는 덕에 급식에 대한 인식은 차차 개선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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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년까지는 전면부에서 봤을 때 좌측 건물만 교실로 사용하였고 우측 건물에는 음악실, 미술실, 컴퓨터실, 급식실 등만 위치해있었다. 그러나 초유의 숫자를 자랑하는 세대인 92년생이 입학한 해인 08년부터 교실 수가 모자라서 다른 건물도 교실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특히 09년에 모 여교장(3대 교장)이 취임하면서 학교가 대대적으로 바뀐다. 09년부터의 변화는 엄청났는데, 일단 강당이 설치되었고(아마도 완공은 10~11년 쯤) 학교 건물 전면부에 전광판이 설치되었으며, 탈주학생들을 막기 위해 분리수거함 쪽의 펜스를 높게 설치하면서 문도 잠가버렸다.[40] 매점이 분리수거장 자리에 처음으로 설치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남녀분반이 실시되어 더 이상 남녀합반의 학교 가 아니게 되었다. 여담으로 남녀합반 시절 체육시간에는 여학생들은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었으나 남학생들은 쫓겨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사진은 대대적으로 바뀌기 전의 학교의 전경. 전광판은 설치되었으나 강당 건물은 없는 것으로 보아 2009년 중순 쯤으로 보인다.
초창기에는 학풍이 자유로워 교외 외출 통제나 두발 및 복장 규제도 거의 없다시피 했으나, 그렇다고 해도 별 다른 문제가 터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상기한 09년부터 지속적으로 통제가 강해졌다.
야자시간에 인강을 청취하려면 컴퓨터실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17년도 2학기 대의원 회의에서 학칙이 변경되어 복도에서 인강 청취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10~11년 기준 야자시간에 복도에서 인강 청취가 가능했다.(2016년 1학기에도 복도에서 인강 청취가 가능했고 실제로 청취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다만 그 시기엔 당시 교장들이(4대 2009~2010, 5대 2011~2012) 신생 학교인[41] 전민고를 대전권 명문고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실행할 때였다.
18년도 3월 기준으로 방과후 시스템이 바뀌었다. A그룹, B그룹, C그룹 과목중에서 각각 한가지씩 총 세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2시간 연강으로 진행된다.
18년도 방과후 2분기(5~6월)에서는 자습시간도 신청 가능하게 되었다.
[1] 개교기념일은 매년 5월의 아무 날이다 .[2] 학교알리미에 들어가서 검색창에 대전전민고등학교를 치면 대전전민고등학교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3] 이런 일은 구도심에서는 이미 2000년대부터 흔했으며 신도심에서는 2010년대부터 대덕고 및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자주 일어나는데, 대덕고는 과학중점학교다 보니 문과 성향인 학생들이 기피하여 인원미달이 되곤 한다. 문과나 예체능 계열 진로인 학생들은 5지망으로 썼다가 대덕고로 끌려갈 수 있으니 유의하자. 나머지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도 많은 고등학교가 워낙 미달이 심해서 쓰지도 않거나 5지망으로 썼다가 끌려가는 경우가 흔하다. 구도심이 심각하고 신도심도 만만치 않은 상황. 결국 일반계고 정원을 크게 줄였지만 워낙 학생수 감소가 빠른 관계로 정원 일반계(인문계)고 인원을 2,000~3,000명 줄이는 정도로 해결이 가능할지는 의문. 게다가 일부 학교에서는 문 닫는 한이 있더라도 학년당 정원은 못 줄이겠다며 교육청의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4] '''사관학교''' 교복처럼 바꾸고 싶다는 의견이었다.[5] 다른 사건사고가 겹쳐 평판이 안좋아진 탓에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다.[6] 장비교체 이전까진 장비 스스로 장판파 마냥 개썅마웨이 로 종이 치거나, 스스로 시간을 조작해서 야자 시간으로 인식하여 종이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재는 수동으로 종을 치는 버튼을 실수로 눌러버린 경우, 방송점검을 위해 뜬금없이 영어듣기가 울리는 정도. (가끔 교사들이 방송한 후에 깜빡하고 마이크를 안 끄는 일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새벽에 컴퓨터가 혼자 재부팅하면서 타종시간 설정을 엿바꿔먹는다거나 하는 등 방송부의 앞날은 험하기 그지없어 보인다.[7] 어떤 반에서는 스위치에 표시를 해두거나, 선풍기에 이름을 지어서(...)구분을 한다. 학생들의 리빙포인트 발견에 박수![8] 아닌게 아니라 진짜로 잘 깨진다. 조금만 조심하여 안전한 학교생활을 보내자.[9] 사실 채광 문제보다는 학생 감독 차원의 문제라고 한다. [10] 특히 심화보충/공동교육과정과 겹치게 되면 그쪽에 우선권이 있으므로, 자율 동아리 일정을 잡을 땐 꼭 스케줄을 확인하자.[11] 회초리로 쓰인다.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가끔 분위기를 많이 흐리는 아이에게 사용한다. [12] 17년 2학기 대의원회의 이후 복도에서 인강 청취가 가능하게끔 학칙이 바뀌었다. 현재 인강으로 인한 컴퓨터실은 쓰지 않는다.[13] 오죽했으면 문에 '''10분 전에 미리 와서 켜둡시다''' 라고 써붙여져 있다... [14] 2016년 일이지만 그때 담임선생님이 현재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어 이어지고있다. [15] 2005~6년까지만 해도 마구잡이로 섰는데, 선배들이 놀다가 뒤늦게 와서 새치기를 하는 사례가 너무 많아 결국 학년 순으로 서게 되었다.[16] 사실상 학교 바로 앞이다. [17] 맘스터치 옆에 올리브영이 생겼다. 만세![18] 여담으로, 올리브영 있기전엔 세계 과자할인판매점이 있었다.[19] 윌슨 1세[20] 드리블, 루이 16세, 해리, 푸, 윌리엄 등[21] 줄리아[22] 윌슨 1세 이후로 가장 오래된 초창기 공이며 소프트발리볼이 아닌 진짜 배구공이다. 토스할 때의 느낌이 좋다는 쪽과 리시브를 하거나 스파이크를 칠때 손에 무리가 간다는 쪽이 있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23] 밖에서 먹고 와야하므로 70분을 준다.[24] 청소 안한다. 그냥 긴 쉬는시간[25] 선배님들때도 70분이였을 수도 있다.[26] 야자 출석부에 서명하는 경우에 한하여 유효[27] 실질적으로 등교를 아예 하지 않는 완전한 방학은 보충수업이 끝난 이후부터 학기가 시작하기 전의 1~2주 정도였다.[28] 2학년 남자 문과반의 경우, 참여 인원이 너무 적은 탓에 그냥 한 교실에 두 반이 한꺼번에 들어간다. 그래도 스무명을 넘는 날이 드물기에 야자를 중시하는 교사들은 불편할 따름.[29] 정확히는 04~05년에는 거의 체육교사 혼자서 단속하였으나 당연히 효과가 크지 않았고 그 교사가 다른 학교로 가버린 06년도부터는 완전히 풀어지게 되었다.[30] 따로 녹음이나 기록을 하지 않아 원문이 아닌 점 양해바람[31] 참고로 '과한 투블럭'이란, 투블럭이라는 것 자체가 옆머리를 파고 그 위를 덮는 것인데 옆머리를 파는 행위를 과하게 하는 것이다.[32] 자칫 반항하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33] 심지어 남자들 사이에서는 삭발이 유행한다![34] 2017.10.07 작성시작[35] 기말고사 끝나고 1주일뒤다. [36] 존이 아니다! 학교 안내판에도 전부 죤이라고 쓰여있었다![37] 밭을 갈아엎을때면 비료를 뿌려 냄새가 장난아니다. 위치상으로 1학년 여자반쪽에서 냄새 피해가 심한듯하다. [38] 위치상으로 1학년 8반쪽에서 이러한 벌레의 피해가 많다. [39] 06년도부터 교체된 영양사가 스캔들의 주인공과 동일인물인지는 불명.[40] 이전에는 이쪽을 통해 아파트 단지쪽으로 그냥 걸어서 나갈 수 있었다.[41] 당시엔 개교한지 10년도 안되는 학교였다. 동문회장이 20대였으니 말 다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