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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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연방
Commonwealth of Dominica
'''
[image]
국기[1]
[image]
국장
면적
760km²
인구
74,660명 (2019년 인구조사)
인종구성
흑인 85%,
혼혈 10%,
칼리나고[2] 3.5%,
유럽계 도미니카인 0.8%,
기타 0.7%
언어
영어 (공식 언어),
도미니카 크리올[3] (공용어),
카리브 제도 어[4] (공용어)
수도
로조
정치체제
의회민주주의, 의원 내각제
대통령
찰스 사바린
총리
루스벨트 스케릿
임기
2004년 1월 8일 ~
GDP
5억 2400만$ (2016년)
1인당 GDP
7,412$ (2016년)
통화
동카리브 달러[5]
대한수교현황
남북한 동시수교
남한: 1978년 북한: 1978년[6]
영어: Commonwealth of Dominica.
프랑스어: Commonwealth de la Dominique.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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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주민과 언어
3. 역사
4. 정치
5. 경제
6. 인구
7. 상징물
7.1. 국가
8. 외교
8.1. 대한민국과의 관계
8.2. 중국과의 관계
8.3. 영국과의 관계
8.4. 프랑스와의 관계
8.5. 베네수엘라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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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의 서인도제도에 위치한 섬나라. 이 나라 자체가 연방 국가여서가 아니라, 영연방(커먼웰스)에 속해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도미니카 '''연방'''으로 호칭한다.[7]
콜럼버스가 이 일대에 상륙했다는 1493년 11월 3일일요일이었기에 스페인어로 '주일'을 뜻하는 '도미니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미니카 연방의 북서쪽에 위치한 히스파니올라 섬의 동명의 공화국도 유래는 같으며 자주 혼동된다. 미국에서는 그냥 'Dominica'라고 하면 도미니카 공화국이 아닌 도미니카 연방을 뜻한다. 반대로 한국과 일본에선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72,660명으로 충청남도 예산군[8]과 비슷하며 면적은 760㎢으로 부산광역시의 크기[9]보다 약간 작다. 수도는 인구 16,582명(2007년)의 로조 (Roseau)이다. 로조는 불어로 '갈대'이다.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roseau pensant)다의 갈대. 당시 수도 근처 강가에 갈대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2. 주민과 언어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도미니카 연방의 도미니카인들은 일반적으로 프랑스어 크리올을 쓰고 있다. 특히 도미니카 연방에서 쓰이는 프랑스어 크레올은 안틸레스 크레올에 속해 있고 일부 단어가 차이가 있다. 그러다보니 도미니카 연방은 영연방 회원국이자 프랑코포니 회원국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흑인이며 종교는 가톨릭이 많다.

3. 역사


유럽인들이 도미니카에 도래하기 이전에는 카리브족의 일파인 칼리나고 족[10]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칼리나고 족이 나름대로 그들의 시간을 보낼 동안, 유럽에서는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어 유럽인들이 도미니카 연방 지역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도미니카는 한 세기 동안 유럽인들의 관심을 받지 않았고, 이 덕분에 주변 섬에서 상륙자들에 의해 밀려난 원주민 난민들이 도미니카로 이주하여 정착하기도 했다.
한 세기 후, 스페인인들이 도미니카에 상륙하여 부분적으로 식민지화에 성공했다. 이후 프랑스가 아메리카의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한 회사인 아메리카 제도 회사가 도미니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였지만, 실제로는 군사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인들은 도미니카에서 밀려났으며, 1642년과 1650년 사이에는 프랑스선교사가 도미니카를 방문하기까지 하였다.
1600년대의 카리브 해에서는 프랑스영국식민지를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다투고 있었다. 도미니카도 이 다툼을 피해갈 수 없었으며, 1660년에 체결된 프랑스영국간의 합의로 도미니카는 다음 세기를 위한 중립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도미니카의 삼림자원, 특히 목재는 양국이 도미니카를 탐내게 만들었고, 이는 1690년에 프랑스가 도미니카에 목재를 생산하기 위한 캠프와 영구 정착지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1715년에 마르티니크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도미니카로 이민을 오게 만들었다. 이후 1727년, 도미니카는 프랑스의 정식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프랑스는 도미니카를 커피를 생산하는 농장으로 만들고 싶어했고, 이를 위하여 흑인 노예들을 다수 수입했는데 이로 인해 백인 인구보다 흑인 인구가 많아졌다.
1761년, 유럽에서 영국프랑스 사이에 7년전쟁이 발발했다. 영국군프랑스의 카리브 해 식민지들을 점령하였고, 그 와중에 도미니카도 영국에게 점령당했다. 결국, 1763년에 체결된 파리조약에 의해 프랑스영국에게 도미니카를 넘겼다. 같은 해에, 영국은 좀 더 도미니카를 잘 통치하기 위하여 도미니카에 백인들을 대변하는 의회를 설치했다. 미국 독립전쟁 기간인 1778년엔 프랑스가 다시 도미니카를 되찾았지만, 이마저도 1783년의 파리 조약에 의해 영국에 돌려주게 된다. 프랑스는 도미니카를 포기하기가 너무 아까웠는지 1795년과 1805년 두차례에 걸쳐 도미니카를 침공하였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도미니카에 대한 지배권을 굳힌 영국은 1805년에 도미니카에 작은 식민지를 설립하였고 1831년에는 유색 인종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부여하였다. 이로 인해 1834년에는 유색 인종 세사람이 의회로 진출하였다. 이후 1838년에는 의회의원들의 절반 이상이 유색 인종으로 채워지게 되었지만, 1896년부터 영국 본토에서 파견된 주지사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고, 유색 인종들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는 축소되었다.
20세기에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은 도미니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이 영국편에서 양차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프랑스 난민들이 일부 도미니카에 정착하기도 했다. 양차 대전이 종식된 이후, 1958년까지 도미니카는 영국의 속령으로 남아있었지만, 1958년에 도미니카는 서인도 제도 연방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인도 제도 연방은 대중의 무관심, 편협한 민족주의 등으로 5년도 되지 않은 1962년에 해체되어버렸으며, 도미니카는 다시 영국속령이 되었다. 1967년, 도미니카는 영국에 의해 준 국가로 격상되었고, 이어서 '''1978년 11월 3일 독립하게 된다.'''
독립 2년뒤인 1980년, 도미니카에 불어닥친 허리케인은 도미니카의 경제를 추락시켰고, 이로 인하여 도미니카 연합 출범후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이 뒤에도 도미니카의 정치는 순탄치 않아 1981년에 백인 우월주의자가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정부가 뒤집힐 뻔 했다. 허리케인으로 망가진 경제는 1980년대말까지는 회복되었지만, 이후 '''국제적인 바나나 가격의 하락''' 때문에 1990년대 들어 또다시 추락했다.
2000년 총선에서는 또 한번의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2000년 총선에서 정권을 획득한 사회민주주의 정당 도미니카 노동당은 그 뒤에도 현재까지도 여당으로 남아있다.
나라 자체가 이렇다할 경제 자체가 없는 나라다보니 시민권 판매로 인해 이중국적자가 상당히 많은 편이고, 그 때문에 이런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경력 위조해 소치올림픽 출전한 간 큰 부부

4. 정치


대통령이 있으나 의원 내각제 국가라 실권은 총리에게 있고 군대는 없다.
도미니카 연방의 의회는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21명의 의원들과 총리 또는 야당 지도자가 임명한 9명의 의원들, 법무 장관의 직권으로 임명된 1명의 의원, 총 31명이 맡고 있다.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친다. 선거권은 만 18세 이상의 영연방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면서 도미니카 연방 국내에 거주지 등록을 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선거에 출마하려면 만 21세 이상의 도미니카 연방 시민권을 가지고, 1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며, 영어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184 미국 달러를 예치해야 한다.[11] 총선거는 5년마다 열린다.
도미니카 노동당과 연합 노동자당의 2개 정당이 원내로 진출했으며, 2004년부터 도미니카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다.

5. 경제


경제는 농업, 특히 바나나와 감귤류, 코코넛 재배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며 1990년대 들어 관광산업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 외에 농산물 가공업과 섬의 목재 자원을 이용한 재재업이 존재하며, 해외 시민권 판매로 얻는 수익 또한 국가재정에서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극빈국이었으나 경제가 순조롭게 성장해 지금은 중진국 정도는 된다.

6. 인구


카리브 제도에서는 유일하게 카리브족 원주민이 남아있다. 1903년 설정된 동쪽 해안의 보호구역 8개 마을에 거주하며 인구는 3천여명(2014년) 가량이다.

7. 상징물



7.1. 국가



국가명은 아름다운 섬, 빛나는 섬(Isle of Beauty, Isle of Splendour)이다. [12]

8. 외교



도미니카 연방은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서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이 남아 있다. 도미니카 연방은 영연방, 프랑코포니 회원국이자 카리콤 회원국이다.

8.1. 대한민국과의 관계




8.2. 중국과의 관계


2004년 대만과 단교하고 대신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규모 원조를 받아 도로, 병원, 학교 등을 지은 바 있다.

8.3. 영국과의 관계


도미니카 연방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20세기 중반에 도미니카 연방은 영국에서 독립했다. 영국의 영향으로 도미니카 연방은 영어가 공용어이고 영연방 회원국이다.

8.4. 프랑스와의 관계



영국의 지배를 받기 전에 도미니카 연방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도미니카 연방은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프랑스의 영향이 남아 있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프랑스어 크레올어를 사용하고 도미니카 연방은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이다.

8.5. 베네수엘라와의 관계



도미니카 연방과 베네수엘라는 아베스 섬을 두고 영토갈등을 벌이고 있다.#

8.6.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관계


도미니카 공화국과 국명이 비슷하다. 하지만 상관이 없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다. 다만, 양국은 20세기에 수교했다.

[1] 국기 중앙에 있는 새는 도미니카의 국조인 앵무새이다[2] 카리브 지역의 카리브족.[3] 프랑스어를 기반으로 한 크리올.[4] 카리브 지역 원주민의 언어.[5] 동 카리브 국가기구 정회원국 7개국과 준회원국 1개국에서 쓰이는 화폐로, 고정환율제가 적용되어 1 미국 달러 당 2.70 동 카리브 달러로 페그되어 있다. 2016년 3월 초 환율 기준 1 동 카리브 달러는 448원이다.[6] 1981년 단교, 1991년 재수교.[7] 어원만 따지자면 'Commonwealth'나 'Republic'이나 결국은 '공화국'이란 뜻이기 때문에, 두 단어의 국제적 용례라든가 두 나라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구별이 어렵다.[8] 약 7만 8천명.[9] 약 770㎢.[10] 이들은 아직도 도미니카 연방 동부 해안지역에 설립되어 있는 보호구역에서 살아가고 있다.[11] 출마하는 선거구 내에서 12.5% 이상을 득표하면 돌려받을 수 있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