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메트로 긴자선
1. 개요
도쿄메트로 소속의 지하철 노선, 이름의 유래는 도쿄의 유명한 번화가 긴자. 상징색은 금색인데 노선도에 표시되는 색은 어두운 오렌지색. 긴자선의 주황색은 베를린 지하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 상세
아사쿠사에서 출발, 우에노, 긴자, 신바시, 아카사카를 거쳐 시부야에 이르는 '''일본 최초의 지하철 노선이자 아시아 최초의 지하철 노선'''.
전통적으로 매우 혼잡한 노선이다. 그래서 배차간격도 RH 1~2분, 평시 3분의 초조밀 운행이다. 그런데도 혼잡하다. 다른 노선들과는 전혀 다른 집전방식인 제3궤조집전식을 사용하고 있고 궤간도 표준궤[1] 인데다 열차규격이며 뭐며 맞는 게 하나도 없고, 무엇보다 오래된 노선이라 터널도 작고 열차도 작은 관계[2] 로 수송력이 딸려서 도쿄의 온갖 중요지역을 다 들쑤시고 다니는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사철들과의 직통이 전무하다.''' 대신 바이패스 격인 한조몬선이 열심히 직통해 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조몬선도 직통 노선이 미친 혼잡도로 악명높은 도큐 덴엔토시선과 도부 이세사키선이라 제 코가 석자라는 것.
이렇게 좁아터진 노선이라 다른 노선에서 냉난방 열차를 넣는 와중에도 열차에 냉난방을 넣을 공간이 없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1983년 이후로 냉방에는 문제가 없으나 난방이 안되는 구형차량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2016년 이후로는 전부 신형차량으로 교체되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도쿄 지가가 최소 3~4배, 평균 5배 이상씩 폭등했던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당시 이 노선 인근의 지역은 기본으로 '''8배 이상'''은 땅값이 뛰었다.[3] 도쿄에서 제일 땅값이 많이 폭등했던 곳이 바로 이 노선 인근이었던 것이다. 아오야마잇초메역 부근은 무려 '''15배'''나 뛰었다. 역시 귀한 노선답게 엄청난 역세권 효과를 일으킨 셈. 지금도 이 인근의 지가는 우에노같은 싼 곳도 평당 3~4백만엔을 넘나든다.[4]
철도요람상 3호선이라는 번호가 붙어있긴한데… 대부분의 도쿄 사람들은 도쿄 지하철에 노선번호가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처음 개통한 노선인데 번호가 '3호선'인 데에는 사연이 있다. 도쿄 지하철 문서 참조.
지하철 노선임에도 건널목이 존재한다. 우에노 검차구가 지상에 위치하는데, 부지가 협소한 탓에 앞 도로에 건널목이 존재한다. 물론, 건널목 구간은 절연구간이다.참고
발차 멜로디
도쿄 관광 목적이라면 도쿄메트로 노선 중 히비야선과 더불어 상당히 많이 이용할 노선이다. 호텔 밀집지역 타와라마치역, 우에노히로코지역, 미츠코시마에역, 쿄바시역, 교통의 요지인 우에노역(JR선 환승), 칸다역(JR선 환승), 신바시역(JR선, 유리카모메 환승), 시부야역(JR선, 도큐선, 케이오선 환승 + 거대 번화가), 유명 번화가인 아사쿠사역, 스에히로쵸역(아키하바라), 니혼바시역, 긴자역, 오모테산도역 등 긴자선만 이용해도 하루를 보낼 수 있다.
2020년 현재 모든 역에 홈도어가 설치되어있다.
3. 역사
긴자선의 시초는 오쿠라 재벌[5] 을 등 뒤에 두고 하야카와 노리츠구[6] 가 설립한 '도쿄 지하철도'라는 회사였다. 하야카와 노리츠구는 야마나시 출신이었는데,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고토 신페이가 총재를 맡고 있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들어간다. 그 뒤 고토가 일본국유철도의 전신이 되는 철도성의 전신에 해당하는 철도원의 총재로 취임하자 그를 따라 철도원으로 적을 옮겼다가 동향 출신이자 도부 철도의 2대 사장이었던 '철도왕' 네즈 카이치로와 만나게 된다. 네즈는 하야카와의 능력을 꿰뚫어보고 그를 영입, 네즈가 보유하고 있던 여러 철도회사들의 경영 재건에서 능력을 보여줌으로서 네즈의 오른팔로 자리잡았다[7] . 이후 1914년 유럽을 방문하던 중 런던에서 지하철을 접하고, 도쿄에도 지하철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된다.
하야카와는 귀국한 뒤 철도원이나 도쿄 시청 등에 공영 지하철의 건설을 제의했으나 회의적인 반응만을 얻었다. 민간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여서, 고토 등 극소수의 이해자 외에는 떨떠름한 분위기였다. 결국 그는 각종 자료를 모으며 투자자들을 설득했고, 결국 철도원에게서 철도 면허[8] 를 취득하고 도쿄 지하철도 주식회사를 설립, 1925년에야 첫 노선을 착공하여 1927년 아사쿠사 ↔ 우에노 구간의 개통을 이뤄냈다. 이것은 '''아시아 최초의 지하철'''[9] 이며, 당연히 일본 최초이기도 하다[10] .
도쿄 지하철도의 노선은 여섯 차례 연장[11] 을 통해 우에노에서 신바시까지 이르는 노선이 되었다. 중간에 스에히로쵸 - 칸다 구간을 건설할 당시 칸다강을 관통하기 위한 하저터널을 건설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자, 임시역으로 만세이바시역을 개업하기도 했다. 만세이바시역은 2년을 못 채우고 칸다역의 개업과 함께 폐업한다. 이후 '도쿄 고속철도'에서 1935년에 첫 개통, 이후 1939년 시부야 ↔ 신바시까지 확장한 지하철 노선과 직결운행을 하게 되어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사실 도쿄 지하철도와 도쿄 고속철도의 직결운행은 무마될 뻔한 상황이 있었는데, 1935년 직결운행 협정을 해 놓고서 1937년 게이큐 전철과 합작회사 '게이힌 지하철도 주식회사'를 설립, 게이큐와의 직결운행을 계획하고 이 회사에 신바시 ↔ 시나가와 간의 미성선을 양도하기까지 한 것[12] . 당연히 도쿄 고속철도와의 직결 계획은 파토날 상황이었다. 그리고 도쿄 고속철도의 경영권을 쥔 사람이 다름 아닌 도큐 전철의 실질적인 창립자이자,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악명 높던 '강도' 고토 케이타였다. 위의 "도쿄 지하철도" 노선의 기점이 도부의 터미널역인 아사쿠사역이 된 것처럼, "도쿄 고속철도" 노선의 기점이 도큐의 터미널역인 시부야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1939년, 고토 케이타가 게이큐와 도쿄 지하철도의 주식을 매점하기 시작, 경영권 쟁탈전이 벌어진다[13] . 이 싸움은 1년이 넘게 지속되어 결국 1940년에야 철도부의 중재로 하야카와가 은퇴하고 도쿄 지하철도의 경영권이 도쿄 고속철도에 넘어가는 대신 고토가 도쿄 지하철의 임원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근데 이 직후, 철도를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국유화하려던 철도성의 의도가 끼어들어가는 바람에 1941년 당해 설립된 제도고속도교통영단에 두 회사의 노선이 면허째로 넘어가게 되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철도성이었고, 도쿄 고속철도의 주식 대신 전후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영단의 채권만 떠안게 된 고토나, 반생을 바친 도쿄 지하철도를 통째로 뜯기고 고향으로 내려가 곧 사망한 하야카와나 모두 상처만 남은 싸움이 되어버렸다.
그 흔적은 지금 신바시역 환상의 승강장(幻のホーム)으로 남아있다. 직결이 무산되면서 두 회사가 각각 신바시역을 만들었었는데, 하나의 노선으로 통일되어 하나가 필요없어진 것이다. 다만, 지하에 지었기 때문에 철거는 못하고 평소에는 유치선, 역무·사무실 공간으로 쓰다가 이벤트성으로 가끔씩 개방한다.
도쿄 지하철 중에서는 유일하게 전쟁 전부터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도쿄 대공습으로 인한 폭격도 맞아봤다.(...)[14]
1953년, 마루노우치선의 개통을 한 해 앞두고 다른 지하철 노선과 호칭을 구분할 필요가 생김으로서 긴자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리고 원래 긴자선은 기껏해야 2~3량 정도의 편성밖에 다니지 않는 노선이었지만, 이후 꾸준한 확장공사로 1966년 6량 편성이 투입 가능하게 된다. 1968년에는 미노와 방면으로의 연장 계획이 제시되었으나, 1985년 폐지된다. 이 구간은 츠쿠바 익스프레스가 비슷하게 지나가면서 실현...된 것 같다.
1927년 개통 당시부터 당시 최첨단의 보안장비였던 ATS를 채택했다. 따라서 긴자선은 일본 최초로 ATS를 상용화한 노선이기도 하다. 다만 이 때 도입한 ATS는 타자식 ATS로 지금과 다른 원리였는데, 타자식 ATS의 자세한 원리는 영단 1000형 전동차#s-2.1.1 문서 참조. 타자식 ATS는 2000형은 물론 1984년부터 도입된 01계까지 사용되다가 1993년 구형 전동차들이 01계로 전량 대차가 완료되면서, 타자식 ATS도 신CS-ATC, TASC로 대체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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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선 개통 100주년이 되는 2027년까지 긴자선 대수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2년 봄에 신형 1000계 차량이 데뷔했다. 도색과 외부 디자인은 개통 당시 1000계의 모습을 본땄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최신형. 그 이외에도 노선의 전 역사를 전면 리뉴얼할 예정이며, 베리어 프리화 등을 진행하고 있다. 스크린도어 설치도 2018년 완료를 목표로 진행중이다. 때문에 2017년 7월 현재 상대식 승강장이 설치된 역은 한 쪽 출구밖에 사용할 수 없다. 즉, 반대편 승강장으로 가려면 다시 지상으로 나간 다음 도로를 건너서 와야한다. 주의하자. 또한 몇몇 역은 공사로 인해 냉방이 안되어 매우 덥다.도쿄가 변하려면, '''뿌리'''가 변해야 합니다.
2018년 현재 우에노역과 같은 긴자선 북부 역들은 리모델링이 완료된 상태로, 리모델링 전과 비교하면 열차를 이용하기에 매우 쾌적하다. 시부야 방면으로 갈수록 소규모 역은 리모델링이 덜 된 상태이다.
4. 역 목록
- 전구간 도쿄도내 소재.
[1] 일본 철도는 1067mm의 협궤가 대부분이다.[2] 6량이다. 게다가 차량 폭은 2550mm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중형 전동차(2750mm)나 그보다 더 작은 인천 2호선 전동차(2650mm), 긴자선보다 훨씬 오래된 런던 지하철의 좁기로 악명 높은 튜브 노선들(2620mm)보다도 좁다! 한국에서 긴자선보다 차량 폭이 좁은 차량은 부산 4호선 전동차(2400mm)와 의정부 경전철 전동차(2080mm) 둘 뿐이다. 참고로 다른 노선과 달리 표준궤를 쓰는데 더 큰 차량을 도입할 수 없는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여긴 터널의 넓이가 문제인지라 궤간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3] 신바시, 아사쿠사도 10배나 올랐다.[4] 참고로 '''땅값 오르기 전의 아오야마1쵸메의 지가가 평당 400만엔'''이었다. 지금 아오야마잇쵸메의 지가는 평당 6천만엔을 호가하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동네다.[5] 제국호텔과 삿포로 맥주가 오쿠라 재벌에 속했다.[6] 한자로 쓰면 早川徳次인데, 이 한자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徳次를 훈독하여 '노리츠구'라 읽으면 여기서 설명하는 도쿄 지하철도의 창립자가 되고, 음독하여 '토쿠지'라 읽으면 샤프의 창업자가 된다. 이름 읽을때 주의가 필요하다.[7] 네즈는 훗날 도쿄 지하철도의 이사로도 취임한다. 이 양반이 해먹던 철도회사 이사직이야 한둘이 아니긴 했지만. 긴자선의 첫 노선이 우에노역과 도부 철도의 터미널역인 아사쿠사역을 잇는 노선이 된 것은, 물론 다른 철도와 환승이 어려운 아사쿠사역의 입지를 노린 것이기도 했겠지만 이사인 네즈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8] 이 면허에는 도쿄 시 측에 지하철을 매입할 때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조항이 달려있었다. 이로 인해 이후 도쿄 지하철도는 사실상 영단에 흡수된다. [9] 만약 유럽과 아시아 양대륙에 걸쳐있는 이스탄불의 튀넬을 포함한다면 두 번째이긴 하다. 하지만 튀넬은 유럽 쪽에만 있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긴자선이 최초가 된다. 이런 애매한 포지션 때문에 동양 최초의 지하철이라고 칭하기도 한다.[10] 그런데 사실 이 타이틀에도 이견이 있다. 미야기 전기철도(현 센세키선의 전신)의 센다이역(1925년 개업)이 일본 최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이 곳은 그 길이가 짧고(130m-200m) 단선인데다 센다이 시가지에서 벗어나있어 지하철하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여객용 철도로서의 성격은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긴자선을 최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1] 근데 이 때 연장은, 특히 칸다역 이후 구간의 연장은 한 번에 한 역씩 연장하는 수준이었다.[12] 당시 구상된 노선은 도쿄 지하철도 - 게이힌 지하철도 - 게이힌 급행전철 - 쇼난 전기철도로, 현재의 노선과 비교해보면 긴자선 아사쿠사 - 신바시 + 아사쿠사선 신바시 - 센가쿠지 + 게이큐 본선의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지하철 구간에서는 제3궤조에서 전력을 공급받고, 지상 구간에서는 팬터그래프를 사용하는 형태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이 계획이 실현되었다면 도심 접근성이 좋지 못한 아사쿠사선과 직결하는 관계로 요코하마 이북에서 JR에 근소하게 열세인 현재와는 달리 확실한 우세를 점할 수 있었겠지만, 긴자선의 작은 차량 크기를 따라야 하였으니 심각하고, 고질적인 수송량 부족에 시달렸을 것이다. 케이큐와 지하철의 직결 계획은 31년 후 아사쿠사선의 개통으로 실현되었다.[13] 이 때 고토 케이타가 게이큐의 주식을 매점한 일은 이후 도큐가 다이도큐를 형성하는데 한 축이 된다.[14] 공사중인 노선까지 포함하면 마루노우치선 역시 폭격을 맞았다.[15] 사실 긴자선의 시부야역과 한조몬선·도큐 덴엔토시선 시부야역은 각각 별개의 역으로 취급되며 환승안내도 하지 않는다. 양 노선간의 환승은 다음 역인 오모테산도역에서 이루어진다. 후쿠토신선·도요코선의 경우도 개찰구를 통과해야 하지만 이때는 30분의 환승시간이 주어진다.[16] 도보연락 형태의 간접환승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