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기업)
1. 개요
일본의 8대 전자 회사[1] 중 하나로 TV, 에어컨 등의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20세기말 일본이 전 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석권할 시절에는 소니, 파나소닉 등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일본의 기업이었다. 특히 일본 최초라는 단어가 많이 붙는 회사인데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라디오, 계산기등 일본에서 최초로 판매했다. 문제는 이 중요한 사실을 일본인들은 대부분 모른다.(...휴대폰과 카메라정도만 유명하다.) 특히 TFT TV를 1988년 최초로 공개했다.
2016년 대만의 폭스콘[2] 에 인수되었다. 현재는 폭스콘 그룹 계열로써 경영재건에 성공하였다. 2018년도 3월 기준으로 매출액이 18.4% 오른 2조 4,272억엔을 기록하였으며 2018년도 예상 매출액은 19.1% 오른 2조 8,900억엔을 예상하고 있으며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자세한 사업구조는 여기와 재무상태는 여기를 참고. PDF 문서다.
2. 역사
2.1. 창립과 전성기
샤프의 전신 기업은 하야카와 토쿠지에 의해 1912년 설립되었다. 필기구 샤프가 회사명의 유래다. 창업자 하야카와 토쿠지는 일본 최초로 메커니컬 펜슬을 발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필기구를 '에버-레디 샤프'[3][4] 로 명명했는데 이 필기구가 가져다준 충격이 대단했기 때문에 메커니컬 펜슬이 일본에서 샤프펜슬로 불리게 되었고 결국에는 샤프 펜슬의 유명세로 회사명도 샤프로 변경한 것. 초창기의 샤프는 샤프펜슬을 비롯한 다양한 금속제품 판매로 생산규모를 확대하고 있었으나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공장이 전소했다.
[image]
일본 최초의 전자레인지.
샤프 펜슬을 히트 시킨 샤프는 일본 최초의 전자레인지를 생산하여 큰 인기를 얻고 필기도구를 생산했으나, 간토 대지진으로 모든 기반을 잃고[5] 오사카로 내려와 '하야카와금형공업연구소'란 전자제품회사로 재출발한다.[6] 1935년 주식회사로 개편하고 이듬해 '하야카와금형공업', 1942년 '하야카와전기공업'으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오늘날 전자레인지 특유의 "띵!" 소리를 결정한 것도 바로 샤프였다. 전자레인지 개발 당시로서는 너무 조용한 조리기구여서 주부가 조리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음식이 식어버리는 일이 종종 생겼고 이 때문에 조리를 끝마쳤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리면서도 요리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소리를 찾기 위해 전직원이 동원, 한 달 동안 수 많은 소리들을 들은 끝에 자전거 벨소리로 결정 되었다고 한다. 이 소리가 상당히 맘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일본에는 '전자레인지에 넣어 조리한다'라는 말을 자주 ''''띵!'''(チーン)한다' 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대우전자의 전자레인지처럼 이 소리를 쓰는 제품들이 남아있다.
[image]
또한 세계 최초로 회전판 달린 전자레인지인 SHARP R-600을 상산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샤프는 '긴급개발 프로젝트'라는 독창적인 상품 발명을 중시하는 회사 문화로 유명하다. 긴급개발 프로젝트란, 전도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신상품의 개발이 결정되면 사장 직속으로 프로젝트팀을 결성하고 부서를 초월하여 전문가들을 소집한 다음 사장에 맞먹는 인사 및 예산 전권을 부여, 대신에 개발 기한을 1년 남짓으로 제한시켜서 팀원들을 신상품 개발에 전력투구하게 하여 시장에 나오지 않은 제품을 다른 회사들보다 빠르게 개발하는 것이다. [7]
이러한 전략에 의해 샤프는 세계 최초의 액정 전자계산기, 세계 최초의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상품을 발명하였다. 현재는 사장 직속으로 온리원 상품 본부가 상설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배속된 우수 직원은 출퇴근과 근무장소 및 근무방법이 완전한 자유이며, 개인별로 황금색 명함을 지급받는다. 이는 사내에서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24시간 무제한으로 요청할 수 있는 특권을 의미한다. (당연히 요청받은 부서는 거절할 수 없다.)
1970년, 일본에서는 오사카만국박람회가 열렸고 일본 유수의 기업들이 당연하다시피 출전하였으나 샤프는 만국박람회 출전을 포기하고 출전자금 75억엔으로 나라현에 반도체단지를 건설한다. 반도체단지 건설은 본사가 오사카인데 민박에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도 자본금 105억엔 중 75억엔을 올인한다는 것 때문에 임원회의에서 굉장한 격론이 오갔던 문제였으나 창업자의 결단으로 실행에 옮겨졌다고 한다.
이 투자가 적중해서 샤프는 중견 가전 회사에서 일본의 전자 업계의 큰 축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 같은 해 '하야카와 전기 공업 주식회사'에서 '샤프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며, 창업자가 회장으로 물러나고 사에키 전무가 사장으로 취임해 샤프는 제2기를 맞게 된다. 샤프는 이 때부터 액정패널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로도 항상 액정패널 기술에 큰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오랫동안 '액정의 샤프'라고 불렸다.
새 밀레니엄이 되는 2000년 1월 1일에는 '''"옛 것은 두고 가고, 새 것을 가져간다."'''라며 CRT 텔레비전을 버리고 LCD 텔레비전만 취하는 TV광고를 내보냈다. 앞으로 LCD Only로 간다는 결심을 확립한 광고에 대해 일반 대중의 반응은 좋았지만, 정작 CRT 사업부의 직원들은 광고가 전파를 타기 직전까지도 이 결정을 몰랐으므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내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샤프는 CRT를 과감히 정리하고 텔레비전은 LCD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결정은 PDP에 치중하는 파나소닉과 대비되었고, 또 샤프의 ASV[8] 블랙 패널은 평가가 높았으므로 '액정의 샤프'라는 별명이 새삼 회자되었다. 이처럼 LCD에 집중한다는 결정과 공격적인 투자는 한국 기업보다 더 빨랐다. 가메야마의 6, 8세대 및 사카이의 10세대 LCD 공장은 샤프가 세대별 최초로 양산한 것이다.
그리고, 2006년에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대규모 특허소송을 냈다. 샤프의 액정기술을 노골적으로 베끼면서 다수의 샤프 특허를 삼성이 침해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송을 당하자 삼성전자는 피소당한 부분들을 대거 설계변경하면서도, '''"특허를 침해해서 변경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이 소송에 대해 삼성전자는 다른 특허를 샤프에다 맞소송을 걸면서 2009년 승소했고, 샤프는 마찬가지로 설계변경으로 대응했다. 이 소송은 매우 규모가 커서 수년동안 지속되었는데, 1승 1패 상황에서 LCD 분야에서 양사간 크로스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하였다.
2016년 이후 일본 국내에서 TV의 액정패널과 완제품을 일관 생산하는 업체는 아직도 샤프뿐이다. 소니나 도시바도 액정TV를 만들기는 하지만 그 액정패널은 외부조달이다. 소니는 본래 삼성과의 합작사인 S-LCD에서 대부분의 패널을 공급받았으나 2010년 샤프와 TV용 패널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2011년 소니가 보유하고 있는 S-LCD 지분 50%를 전량 매각하고 삼성 디스플레이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합병되었다. 2010년 파나소닉이 합자 체제였던 IPS 알파를 파나소닉 액정 디스플레이로 흡수하고 히메지 8세대 공장을 오픈하였으나 2016년 폐쇄하였다.
2010년 샤프는 특히 RGB 3원색 LCD를 넘어 노랑을 더한 RGBY 4원색 LCD 패널을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1픽셀에 3개 넣을 것을 4개를 집어넣으니 그만큼 만들기 어려운 것을 실현했고 과연 샤프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색재현율이 높아 AMOLED처럼 진하고 화사한 화면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2010년 12월, 여기서 '''샤프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스마트패드를 출시했다. 그러나 2011년 9월에는 7인치만 남기고 나머지 제품의 판매중단을 결정했다. 사실 갈라파고스 시리즈는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름처럼 독자규격을 적극도입하여 폐쇄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췄기 때문. 예를 들어 샤프에서 내놓은 전자책 규격인 XMDF 파일은 간단히 읽을 수 있지만 다른 전자책 형식은 기본적으로 미지원, 그래서 불편하게 변환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TXT 형식으로 변환 후 읽어야 했다. 그렇다고 XMDF 형식이 전자책으로써 읽기 편한 형식도 아니다. 강력한 DRM이 걸려 있어 백업은 USB 메모리를 통해 1번만 가능하고 느려터진 로딩에 목차 기능도 없다. XMDF 형식이 딱 1가지 장점이 있다면 면 세로 읽기와 가로 읽기의 변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2. 쇠퇴기
이후 샤프는 일본을 제외하고 세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기술력이 밀리는 바람에 고전하게 되었다. 첫째 이유는, 70년의 투자 경험에 따라 2000년대에도 LCD 공장 건설에 대규모로 베팅했는데, 2000년대 후반 전세계적인 경기불황과 특히 엔고를 얻어맞으면서 대형패널생산의 가동률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이 투자과잉은 샤프에게 두고두고 악재가 되어 큰 손실을 안겼고 결국 2011년 회계년도에는 3800억엔(약 5조 3천억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적자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결국 2012년 대만의 훙하이에게 지분의 11%를 매각하기에 이른다. 2012년 3월에 취임한 오쿠다 사장은 "엔고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 그것으로 비난하는 것은 결과론이다."라고 할 정도로 엔고의 타격은 컸다.[9]
둘째 이유는, 제품 자체도 한국산보다 품질에서 밀리고 있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샤프의 부사장이 미국의 양판점에 갔다가 자사 TV가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서 점원에게 이유를 물었는데, 그 대답이 '''"다들 삼성 보르도를 베끼고 있는데 샤프 디자인만 안 그래요."'''였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샤프는 자존심을 접고 신형 아쿠오스TV는 기존의 디자인을 버리고 보르도와 판박이 디자인으로 출시했다. 공교롭게도 1993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한 계기가 미국 출장 시 로스앤젤레스 가전매장인 베스트바이에서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던 삼성 TV를 목격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15년 뒤 삼성과 샤프의 처지가 정반대로 뒤바뀐 셈이다.
그리고, 2012년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4500억 엔(약 6조1000억 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되며 전년도의 기록을 깨고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이며 2012년 11월 2일 신용평가사 피치는 샤프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의 정크 본드로 내렸다.
[image]
결국, 샤프는 생존하기 위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 투자처를 필사적으로 구하고 있다. 2011년 애플은 샤프의 가메야마 제1공장에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2012년 3월 훙하이가 사카이공장 법인인 SDP의 지분 약 46.5%를 매입하였으며 그 외 추가로 670억엔 출자하면서 샤프 본사의 지분 10%를 넘기려 하였으나 이후 주당 550엔이던 주가가 주당 192엔까지 추락하면서 훙하이가 인수가격 재협상을 하려다가 2013년 출자를 포기했다.
2012년 12월 퀄컴은 디스플레이 기술 공동 개발로 샤프에다 100억엔을 투자하여 지분 2.56%를 취득하고, 50억엔을 납입했으나 남은 50억엔 납입은 기술 확보가 불분명하여 2013년 6월로 연기된다. 2013년 3월 삼성전자는 샤프 본사에 104억엔을 투자하여 3.04%의 지분을 인수한다. 주가 폭락으로 인해 훙하이와의 투자협상이 결렬 위기에 몰린 상태에서 삼성전자와 손을 잡았다. 결국, 해외기업에 점령당한 샤프란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2013년 6월 7일 퀄컴이 추가로 지분을 인수하여 지분율 3.53%로 샤프의 3대 주주이며 삼성전자는 3.01%로 줄어 지분율 6위가 되었다. 은행권을 제외하면 퀄컴과 삼성전자가 사실상 샤프의 제1 주주와 제2 주주가 되었다.
[image]
2014년 6월, 기존의 직사각형 모양에서 탈피해, 자유자재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Free-form Display'기술을 발표했다. 차후에 나올 닌텐도 게임기의 차기 모델에도 쓰일 수 있다고 한다.출처
2015년 들어 일시적 흑자상태에서 다시 적자로 전환되면서 결국 일본 내 부품공장과 해외 태양전지 공장을 폐쇄하고 위기의 샤프, 긴급 자금 요청 주채권은행에 1500억엔(약 1조 3700억원)에 달하는 출자전환을 요청하기로 했다.
결국에는 99% 이상 감자라는 수단을 쓰게 되었다. 일본에서 자본금이 1억엔 이하면 중소기업으로 분류되어 세제해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누적손실을 모두 없애면서 자본금을 1억엔 이하로 만들어서 세제혜택을 받는 목적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 대중들의 강력한 비난여론 속에 정부의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99% 감자를 전면 철회하였다. 기사. 결국, 감자규모를 줄여 자본금을 2015년 6월 말까지 5억엔으로 축소시킨다고 발표했다.
2.3. 매각
2016년 2월 초, 대만의 전자기기업체이자 애플의 iPhone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Foxconn(훙하이정밀공업)에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Foxconn 측에서 제시한 인수금액이 일본산업혁신기구의 제안보다 3천억엔 정도 높은 6590억엔(약 6조 7000억원)라서 샤프 측에서 폭스콘과의 협상을 우선한다고. 그러나, 민관 합동 펀드인 주식회사 산업혁신기구는 '''일장기 대연합'''이라는 플랜 아래 도시바, 히타치 등의 백색가전 제조를 통합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그 정도의 증자를 단기간에 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편 샤프 본사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샤프 직원들 수요로 먹고 살았던 본사 근처 니시타나베 상점가 상인들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이다.
2016년 2월 중반, 훙하이 그룹에서 6000억 엔(약 6조 원)으로 인수한다는 소식이 떴다. 샤프라는 네이밍은 계속 유지하되, 브랜드의 소유권과 운영권이 대만의 훙하이 그룹에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재 샤프 인수에 대한 우선 협상자로 선정되었을 뿐이지, 완전히 인수를 한 상태는 아니다. 참고로, 우선협상기한은 2월 29일이다.
2016년 2월 25일로 훙하이그룹에 속한 훙하이정밀공업의 폭스콘에서 7000억엔 출자(약7조 7000억원) + 경영진 및 고용유지 조건으로 인수하기로 결정. 기사
그러나, 협의가 진행 중이던 2016년 2월 24일 훙하이가 샤프에게 받은 중요문서를 통해 '우발채무(偶発債務) = 소송 등 장래적으로 변제의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부채)'가 약 3,500억엔(약 3조 5000억원)에 달하는 사실이 발각(...). 내용조사를 완료하기 전까지 샤프의 매수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기사(일본어) 즉, 도장은 찍지 않은 상태다.
결국 2016년 3월 22일 훙하이 측이 우발채무를 이유로 최대 2000억엔 이상 인수액을 깎을 계획이라고 보도되면서 인수 여부가 불투명 해지고 있다.
그러나 2016년 3월 30일 훙하이와 샤프 양사가 인수·합병 안건을 최종적으로 승인한다. 허나 훙하이 측에서는 우발채무 문제와 실적 악화를 이유로 샤프에 대한 출자액을 당초 계획했던 4890억엔보다 1200억엔이나 줄인 3888억엔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로서 샤프는 훙하이에게 인수되었으며 훙하이 측은 샤프의 지분 66%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술된 우발채무의 여파 때문인지 고용승계 조건은 백지화된 듯하다. 샤프 직원이 7000명 이상 해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폭스콘 항목에 잘 나와있지만 폭스콘의 수장은 고용 승계 따위를 지킬 리가 없는 인물이라서....
2018년에 들어서면서 서브컬쳐 시장에도 발을 내딛을 생각인지 보컬로이드 음원도 제작 중이다. 개발 중인 음원은 VOCALOID4 엔진용 음원 코코로보.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현재, 일본 아마존에서 샤프사의 전자사전을 아직 판매하는 것으로 보아 단종은 아니다. 그러나 백색가전의 일본내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3. 지분관계
※ 2018년 9월 30일 기준 지분율
현재 훙하이 그룹과 특수관계자가 지분의 2/3를 소유중이다.
훙하이 그룹이 인수하기 전 샤프의 지분구성은 전형적인 일본 대기업의 지분 구조였다. 다수의 기관투자가와 개인이 지분을 과점하고 경영자는 내부에서 나오는 구조. 최대 주주가 닛세이(일본생명보험) 2.78%일 정도로 소지분 다주주 구성이었다. 퀄컴은 제3주주로서 2.47%, 삼성전자재팬은 2.10%를 가지고 있다. 샤프의 임직원들은 1.60%를 점유하고 있었다.
과거 지분율
사업부가 바닥을 기는 것는 달리, 회사 소유 측면에서 보면 해외 지분율이 낮고, 버블 시절 떼돈을 버신 일본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지분율이 매우 높...았으나 옛날 얘기. 주주명부 등은 미즈호 은행 지주회사 산하의 미즈호 신탁은행이 관리하고 있다.
4. 한국에서의 샤프
샤프의 한국 진출은 1967년 동남전기(1966년 설립)와 손잡으면서 시작됐으며, 1970년대엔 '동남 샤프 TV'[10] 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삼성전자, 금성사, 대한전선에 밀려 화신쏘니와 더불어 하위권에 처지자 1979년 금호전자에 안양공장을 넘기고 제휴를 끊었다.
1972년 기자 출신인 환주 이관진(1927~2015)이 본사와 합작해 '한국샤프'를 세웠고, 1973년 샤프전자산업을 세워 1980년대 초에 공학용 전자계산기를 생산해 유명세를 탔다. 1999년에 샤프전자산업 자산을 신규법인 '샤프전자'로 이관했고, 기존 샤프전자산업 법인은 부동산업체 '환주산업'이 됐다.
지금은 카시오나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 휴렛패커드 등의 공학용 계산기가 유명하지만 1980년대에는 샤프 계산기는 BASIC 언어를 내장하고 QWERTY키와 40자 알파벳 디스플레이를 가진 휴대용 최첨단 프로그래머블 공학용 계산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한달 하숙비에 버금가는 비싼 가격이었지만.
2000년대 고교생 및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전자사전으로 유명했다. 손정의가 초창기 사업자본금으로 '전자 통역기'를 개발해 그 권리를 액정제품을 만들던 샤프에 팔았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전자사전과 유사하다.
카시오 전자사전이 일본 모델에 한국 사전을 심어서 판매했던 것과 달리, 샤프는 샤프전자가 우리나라에서 독자 모델을 개발/제조[11] 했다. 그 당시에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기능은 오늘날의 것에 비하면 초라했다. 전자수첩 베이스로 영한/한영 사전을 넣은 듯한 물건이라 풍부한 전자수첩 기능[12] 에 비해 사전은 빈약했으며, 액정화면의 명가라는 명성과는 달리, 일부 모델의 액정에 세로줄이 가는 결함이 있었다.[13] 그래도 후기에 나온 물건들은 타사에 비해 액정 품질이 좋은 편이었다. 2000년 들어서는 인기 여성 아이돌 핑클이 전속모델을 맡았고, 활동 당시엔 팬미팅까지 열었다.
동영상과 인터넷 강의를 지원하는 RD-EM/PM 시리즈는 한국에서만 독점 출시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주로 PMP에 탑재되던 윈도우 CE를 내장한데다 서드 파티 애플리케이션을 '''정식으로 허용''', 후에는 무선랜 탑재 모델까지 나오면서 때마침 불어온 인강 붐을 타고 기껏해야 플래시 게임만 구동하던 기존의 전자사전 대신 중고등학생들의 일탈을 책임(...)지며 한동안 시장 1위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14]
윈도우 CE 5.0 Core 버전의 한계상 WM 애플리케이션과의 보편적인 호환이 힘들어 때마침 유행을 탄 민트패드와 함께[15] 네이버 카페를 중심으로 애플리케이션 자료 공유 커뮤니티가 생기고, 각종 테마와 트윅을 위해 이를 뜯어보던 중학생들이 훗날 청소년 개발자로 성장했다는 후문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국내법인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자사전이 보급될 대로 보급되어 신제품의 판매량이 줄어들기 시작한데다 결정타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매출이 줄어 결국 일본 본사의 결정으로 2012년 6월부로 한국에서 전면 철수했고, 샤프전자 법인도 청산하면서 관계사였던 샤프전자부품만 존속중이다.
다행히도 AS 서비스센터는 대행업자 JM미디어테크를 통해 국내 여러 지점에 남아있다. 사이트는 여기로.
수리비용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결정되어, 대략적인 비용은 방문 시나 택배로 보낸 후에만 알 수 있다고 본 홈페이지에 기재되어 있다.
2018년 6월, ALT를 통해 샤프 아쿠오스 S3으로 한국에 다시 진출했다. 스마트폰으로는 최초 진출.
5. 제품 목록
샤프/스마트 기기 제품 목록 문서참조
6. 기타
- [image]
옛 본사 건물이 상당히 낡아서 이상하게 유명했다(...) 얼핏 보면 대기업 본사는 커녕 그냥 낡은 전자상가처럼 보인다.
- 60년대부터 태양광발전에 관심을 가져서 요즘은 국내외적으로 'World's Leading Solar Company'라는 슬로건으로 홍보를 한다.
- 샤프의 대규모 LCD 공장이 있는 일본 가메야마시는 대기업의 공장에 도시 전체가 매달려서 살면 불황이 닥쳤을때 도시 전체가 무슨 꼴을 당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표본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꿈으로 시작해 악몽으로 끝난 경우.
- [image]
1982년부터 2000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유니폼 메인 스폰서를 담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샤프는 맨유 클럽 사상 첫번째이며 가장 오랜기간 동안 스폰서를 제공하였다.
- [image]
공학용 계산기로도 유명해서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Texas Instruments), 카시오(CASIO), 휴렛팩커드와 4파전을 벌이는 중이다.
액정 품질은 신경쓰지 말자.
액정 품질은 신경쓰지 말자.
- 과거에는 슈퍼컴퓨터 사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으며 그 영향으로 X68000같은 독자규격의 컴퓨터를 생산했었다. IBM PC 호환기종 시절에도 노트북을 만들었다가 잠시 철수했다가, 2018년에 도시바의 PC사업을 인수하여 PC 시장에 재진출하였다.
- [image]
8비트 컴퓨터 시절 테이프 레코더와 프린터[16] 까지 일체화된 기종인 MZ-700시리즈를 내놓아 화제를 모은 바 있다.[17] 놀랍게도 이 모델은 한국샤프에서 직수입, 국내에 판매하기도 했었다. [18] 일본 PC 3대장(NEC, 샤프, 후지쯔)의 모델 중 유일하게 국내 법인이 수입 판매를 했던 모델.[19]
- 물론 당시 샤프의 주력 PC는 MZ-80 시리즈로 이 제품은 국내에 도입된 일이 없다. 한때 삼보컴퓨터가 세운상가 시절 초창기 MZ-80 K/C 모델을 복제해서 잠깐 판매한 적은 있으며 이후 삼성전자가 SPC-1000라는 테이프 레코더 일체형 PC를 내놓을 때 또다시 MZ-80 K/C 모델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었다. 단, 디자인은 샤프 MZ-700 시리즈를 근간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MZ-80을 비롯한 샤프의 초창기 기종들은 대부분 테이프 레코더를 내장하고 있어서 뭘 베껴도 비슷하다.[20]
- 닌텐도와 꽤 인연이 깊은 회사. 기능적으로 패미컴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는 트윈패미컴을 제작하기도 하였으며, 게임 & 워치 시절부터 닌텐도 스위치까지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의 액정을 납품했다.[21]
- 일본 시장을 중심으로 휴대폰도 출시하고 있다. 스마트폰 역시 적절하게 넘어와서 나름대로 자기 밥값을 하려고 노력 중. 일본 시장에서는 TV와 같은 아쿠오스 브랜드를 적용하고, 애플에 뒤이어 소니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와 2위 자리를 다투고 있으나 사실상 해외 시장에는 나가지 않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샤프/스마트 기기 제품 목록, 샤프 아쿠오스 폰 항목 참조.
- 한동안 오디오에도 신경을 썼었다. LP시절에 음반을 세워서 연주하는 플레이어를 내놓아 화제를 모은 적 있었고, 디지털 시대로 들어와서는 일본 최초의 하이엔드 디지털 앰프를 내놓기도 했었다.[22] 미니 디스크 플레이어도 만들었으며 MD는 소니와 샤프의 2강 채제였다.
- 본 회사의 트위터 어카운트는 한국민속촌의 트위터와 비교 될 정도로, 일본의 기업들의 트위터중 미친 드립력, 팔로워들간의 꾸준한 교류, 센스있는 리트윗들로 대단한 인기를 얻고있다. 오덕 관련 매체들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들의 생일들을 축하해주는건 덤. 한국민속촌의 트위터가 비슷한 컨셉으로 인기를 얻고있는 대검찰청 트위터와 힘을 합쳐 한복이 너무해를 만들었듯이, 샤프의 트위터는 역시 비슷한 컨셉으로 인기를 얻고있는 타니타의 트위터와 힘을 합쳐 샤프씨와 타니타군을 만들기도 했다.
- 2015년 10월에 무려 로봇형 휴대폰이라는 새로운 컨셉의 제품을 발표했다. 단순 컨셉 제품이 아니라 2016년에 출시되어 일반 판매된다. 제품명은 RoBoHon이며 , 휴대폰 기능 이외에도 로봇이라는 특성을 살린 여러 기능이 추가된다.
- 샤프가 폭스콘에 인수된 이후 삼성이 LCD 패널 계약을 해지당했다. 과거 폭스콘이 삼성의 가격담합 자진신고로 과징금을 냈던 것에 대한 보복. 거기다가 폭스콘의 수장 궈타이밍은 일본 넷우익 뺨칠정도로 극렬 혐한인사이기도 하고. 물론 삼성이 가만히 있지는 않아 샤프 및 훙하이 관계사에 한화 약 6000억원 가량의 손배소를 청구했으며 샤프에서 납품받던 패널 물량은 LG측에서 공급하기로 한 모양.
- 이후 사업이 부진한 샤프 측에서 삼성전자에 다시 패널공급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고한다. 삼성 임원 말로는 괘씸죄로 쓰지않는다고. 다만 단순히 감정문제를 넘어 자기들 멋대로 계약해지하는 사업체를 다시 쓰기에는 사업적으로 위험한 것이 현실이다. 단순 애초에 다른 패널업체로 샤프 공급분을 메꿀수있을정도로 샤프의 공급비율은 높지않았다고한다. 감정으로 사업하다가 호되게 당하고있는것.#
-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은 위대하고 훌륭하다.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 TV 4,000대도 방금 주문했다"면서 "삼성전자, LG전자, 샤프 등 이런 제품은 다 한국에서 오는 것이고 그들은 막대한 돈을 번다."[23] 라고 연설하면서 '샤프'를 한국 기업으로 오인한적이 있었다. 발언 전문
- LG전자의 롤러블 TV에 자극받아 사프에서도 NHK와 공동 개발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롤러블 TV의 시제품을 CES 2020에 출품하였다.[24] 이 TV의 특징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로서는 세계 최초로 RGB 컬러를 구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RGB 방식의 수율과 내구성 문제[25] 로 인해 현재로서는 시제품 수준에만 만족해야만 하는 상황이다.[26]
7. 참고 자료
[1] 電機8社. 전자, 중전기 분야 거대기업으로 통상 히타치제작소, 도시바, 미쓰비시전기, 파나소닉, 소니, 샤프, NEC, 후지쯔를 지칭한다. 이 중 샤프는 파나소닉과 함께 백색가전에 강했던 포지션. [2] 훙하이(鴻海)정밀공업[3] 에버샤프라고 쓰여 있었으나 이는 Charles R. Keeran이 만든 Wahl Adding Machine Company사의 제품으로 에버-레디 샤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참조(영문)[4] 15개밖에 없으며 platinum에서 이 샤프를 현대적 매커니즘으로 한정복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하야카와가 만든 샤프는 1.1mm 심을 썼는데, 복각판은 0.5mm이다.[5] 생산시설이 모두 파괴되었고 종업원도 대부분 사망했다. 창업자인 하야카와 토쿠지의 아내와 자식들도 모두 잃었다.[6] 이 과정에서 문구회사였던 옛 샤프를 팔고 오사카에 전자회사인 현재의 샤프를 세운 것이기 때문에 법인등록상으로는 별개의 회사이며 실제현재의 샤프 법인등록상 설립일도 전자회사로 재출발한 1935년 5월 1일로 되어있다. 그러나 샤프 홈페이지나 각종 홍보자료에서는 문구회사인 옛 샤프까지 자사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다.[7] 실제로는 프로젝트팀원으로 지명받는 것은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인데다, 제약 없이 마음껏 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으므로 누구나 지명을 원한다고. 또 회사 입장에서는 부서를 초월한 수평적 이해를 넓히고 시너지를 위한 인맥을 형성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8] VA 구조의 하나이다.[9] 2011년 3·4반기 실적이 3,400억 엔의 순손실이었다. 우리 돈으로 약 5조 원 가까이 된다. 실적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카타야마 사장이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LCD쪽의 상황이 나빴기 때문에, 이것이 해외 및 LCD 출신의 오쿠다 사장이 임명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10] 당시 표기법상으로는 '샤-프'였다.[11] 고급기종은 한국(인천 부평공장)에서, 보급기종은 중국에서 주로 생산.[12] 3가지 게임, 바이오리듬, 운세 기능에 주기율표, 고등수학공식(!)까지 내장.[13] 이는 계산기와 전자 수첩을 비롯하여 샤프제 모노크롬 디스플레이에서 거의 항상 나타나는 결함이다. 이 증상은 액정과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얇은 점퍼 케이블의 접촉에 문제가 생긴 것이며, 수리비는 크게 들지 않는다. [14] 요즘 보기에는 초라한 440Mhz 싱글코어 사양이지만 실제로 Windows Mobile용 게임보이 에뮬레이터가 원활하게 구동되고, 이걸로 포켓몬 2세대 엔딩을 본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GBA도 구동은 가능하지만 버벅여서 역전재판 정도만 가능. 이외에도 대부분의 WinCE 사양 게임과 일부 WM 게임을 구동할 수 있다.[15] 그래도 이쪽이 민트패드보단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휘발성 메모리에 시스템 전체가 올라가 재부팅할 때마다 CE 쉘이 초기화되는 민트패드와 달리 EM/PM 계열은 제어판 설정값과 레지스트리 값이라도 보존되었기 때문. 여담으로 코어버전은 GUI가 거의 Windows XP 고전테마랑 유사하다.[16] 정확히는 소형 플로터[17] 본체만 있는 모델인 MZ-711, 테이프 레코더를 내장한 MZ-721, 플로터까지 내장한 MZ-731의 세가지 모델이 있었다. 위의 사진은 MZ-721. 사진에서 테이프가 놓여있는 곳 바로 아래의 플라스틱 부분이 플로터 자리로 남겨진 부분이다.[18] 1983~1984년 각종 전자관련 전시회에 전시까지 했었고 한글로 된 한국샤프 명의의 광고전단도 만들었다.[19] 당시 이것 이외에 일본제 8비트 PC는 개인이나 보따리상이 소량 수입해서 세운상가 등지에 푼 것이거나, 국내(세운상가 공방)에서 복제해서 만든 것밖에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시절 한국의 컴퓨터 입문서는 절반이상이 일본 서적의 복제번역본이라서 국내에서 실물을 전혀 볼 수 없는 일본기종을 모델로 하고 있다. 뭐 기본 BASIC 문법은 다 비슷비슷하니.....[20] 이는 당시 샤프의 설계사상 때문이다. 보통의 당대 일본제 8비트 PC는 BASIC 인터프리터를 ROM에 내장, 실행하는데 MZ시리즈는 RAM에 내장한다.(ROM에 있는 인터프리터를 RAM으로 복사) 이렇게 한 이유는 테이프 레코더를 통해 BASIC이 아닌 타 언어 프로그램을 BASIC 인터프리터가 옮겨지는 RAM에 직접 로딩하여 다른 언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할 목적이였으며, 그런 이유로 테이프 레코더를 별매하지 않고 내장했었다. 참고로 삼성의 SPC-1000도 이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21] 그래서 당시 닌텐도 본체, 소프트웨어 광고에서 제품을 TV나 모니터에 연결해 시연하는 모습은 100% 샤프제 TV를 사용한다. 샤프 TV 광고까지 같이 되는 셈.[22] 저 사진에 나온것은 아니지만 음반을 세워서 연주하는 플레이어는 국내 합작법인인 한국샤프에서도 만들어 판 적이 있다.[23] I think South Korea’s great. I think it's wonderful. I just order 4,000 television sets for a job that I’m doing, right? And guess what? Between Samsung, and LG, and Sharp, they all come from South Korea[24] 다만, 공개 자체는 2019년 말에 이루어졌다.[25] 내부에 내장된 모터의 문제로 모니터가 위로 올라올 때 좌우의 모니터 올라가는 속도가 달라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으며, 화면이 우글거리는 울림현상으로 인해 깔끔하게 펼쳐지지 않는다. 게다가 CES 2020에 출품된 시제품조차 불량 화소 및 패널 손상으로 결함을 발생시킨데다, 전시할 당시에는 사람들이 못 만지게 아예 유리관에 넣어 전시했다. 참고로 LG 롤러블 TV는 CES 2020에 출품할 당시 누구나 보고 만질 수 있게끔 개방하여 전시했다. 게다가 장시간 가동했음에도 아무런 이상을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내구성도 상당했다. 한 술 더 떠 LG는 롤다운 TV까지 선보인 상황이었다.[26] 구동 시 모니터의 구동 속도도 느린데다, TV 자체의 크기도 LG의 롤러블 TV에 비해 더 대형인 탓에 그만큼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런 주제에 화면 사이즈는 더 작아서 LG의 롤러블 TV과 65형 대화면인데 반해, 샤프의 롤러블 TV는 30형 사이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