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드류

 

[image]
'''이름'''
데이비드 조너선 'J.D.' 드루[1][2]
(David Jonathan 'J. D.' Drew)
'''생년월일'''
1975년 11월 20일 (48세)
'''국적'''
미국
'''출신지'''
조지아 주 발도스타
'''포지션'''
우익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5순위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98~200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200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5~2006)
'''보스턴 레드삭스 (2007~2011)'''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007'''
'''2008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J.D 드류
(보스턴 레드삭스)'''

칼 크로포드
(탬파베이 레이스)


1. 개요


미국의 前 야구선수.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준수한 장타력과 뛰어난 출루능력으로 이름을 날린 강타자였으나, 드류와 연관된 팀들에게 유난히 안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긴 선수이기도 하다.[3]
뛰어난 성적에 비해 커리어 내내 저평가받은 선수이기도 하다. 그 이유로는 드래프트 파동과 옵트아웃 등으로 인한 '돈 밝히는 놈' 이미지가 초년생부터 굳어져 선수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했고, 그리피와 비견되었던 재능에 비해 커리어는 2% 아쉬웠으며, 저평가당하기 딱 좋은 눈야구 위주의 플레이스타일, 단 한 번도 150경기 이상 출전한 적이 없던 유리몸까지 온갖 이유가 동시다발적으로 겹치며 저평가받았다. 하지만 당시부터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에서는 드류를 꽤 높게 평가했으며, 테오 엡스타인이 5년 70M이라는 거액을 안겨준 것이 그 예시다. 세이버가 더욱 대중화된 현재는 저평가된 커리어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중으로, fWAR이 무려 45.9라서 저평가 받은 선수치고는 상당히 높은 수준임이 재조명되었다. 비록 명예의 전당급 레벨은 아니었고 올스타도 1번 밖에 못 나갔지만 결코 저평가 할 수 없는 선수.

2. 경력



2.1. 충격과 공포의 1997년 드래프트


1994년 20라운드에서 지명되었지만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 진학한 드루는, 이후 우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1997년 드래프트 시점에서는 명실상부 '''대학야구 최고의 타자'''라는 평가를 들었다. 우수한 선구안, 뛰어난 장타력, 탁월한 중견수 수비력에 강견도 갖췄으며, 여기에 주력까지 좋아 그야말로 5툴 플레이어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를 바탕으로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 대학야구 올해의 선수, 애틀랜틱 코스트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 등 온갖 상을 휩쓸고 '''하얀 그리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전체 1픽 가능성이 거론되던 드루는, 1픽을 가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드루 대신 대학야구 최고의 투수라는 평을 듣던 맷 앤더슨[4]을 지명하자 2픽이던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드루를 낚아챘다.[5] 당시 필리스는 팀은 하위권을 전전하는 가운데 중견수 자리도 레니 다익스트라 이후 누구 한 명이 정착하지 못했으며, 드래프트 해인 1997년에도 미드리 커밍스, 루벤 아마로 주니어, 리키 오테로 등이 돌아가면서 땜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대학야구 최고의 타자인 드루가 지명되자, 필리스 팬들의 기대감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라면 드루의 에이전트가 바로 '''스캇 보라스'''였다는 점. 물론 에이전트가 보라스라고 해도 신인 시절에는 선수 본인 의사로 적당히 조절해서 돈을 받고 입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드루는 보라스와 완전히 손을 잡은 듯 계약을 질질 끌었다. 이 때 보라스가 제시한 것은 1996년 그 유명한 Loop-Hole FA 사태에서 트래비스 리의 계약과 비슷한 '''10M 규모의 메이저리그 계약'''이었고, 아무리 거물이라고 해도 쌩 신인에게 이런 돈을 주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필리스는 계약을 맺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6] 결국 드루와 보라스는 MLB 규정의 허점을 파고들어 '''필리스와 사인을 포기하고 독립리그 세인트 폴 세인츠에 입단하며 다음 해 드래프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는 사상 초유의 드래프트 결과를 만들어냈다. 대형 신인이 온다고 기대하던 필리스 팬덤은 뒤집어졌고, 이는 오랫동안 필리스 팬들이 드루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하는 원인이 되었다. 드루가 중견수 수비를 볼때 외야에 있던 필리건이 드루쪽으로 건전지를 던져대는 일이 발생했을 정도로, 팀이 아닌 개인으로서는 스캇 롤렌과 쌍벽을 세우는 필리스 팬덤의 공적이 되었다.[7]

2.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이런 일을 일으키고 1년이 지나 드루는 1998년 드래프트에 참여했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이번엔 전체 1픽이 필라델피아 필리스였다(...). 하지만 1년 전의 그 사태를 기억하는 필리스는 드루를 포기하고 팻 버렐[8]을 지명했으며, 이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마크 멀더), 시카고 컵스(코리 패터슨), 캔자스시티 로열스(제프 오스틴)도 드루와의 계약을 꺼리며 드루를 지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체 5픽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차례가 왔고, 카디널스는 드루를 지명했다. 그리고 1년 전의 하한선이던 10M에서 3M을 깎아, 총 7M 규모의 계약을 맺고 카디널스에 입단했다.[9]
그렇게 카디널스 유니폼을 입은 드루는 루키고 싱글A고 없이 곧바로 더블A에 배정되었고, 얼마 안가 마이너를 폭격하면서 9월 8일 빅리그에 데뷔했다.[10] 이후 데뷔 첫 시즌부터 비록 14경기 뿐이지만 OPS 1.4가 넘는 활약을 보여주었고, 이후 2003년까지 카디널스에서 준수한 활약을 해줬다. 당초 중견수로 데뷔했지만 2000시즌을 앞두고 골드글러버 짐 에드몬즈가 이적해오며 나머지 3시즌은 우익수로 자리를 옮겼고, 그대로 우익수 자리에 정착하며 꾸준히 타율 대비 1할이 높은 출루율과 매 시즌 20개에 가까운 홈런을 때려내며 활약했다. 그러나 드루는 플래툰 시스템을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활용한 토니 라 루사 감독과의 트러블을 갖고있었고, 여기에 카디널스 프런트 입장에서는 그놈의 보라스가 또 걸림돌이었다. 여기에 알버트 푸홀스의 장기계약 문제로 페이롤 여유를 마련할 필요가 있던 카디널스는, 결국 2003시즌 후 FA를 1년 앞두고 드루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했다. 그리고 카디널스 프런트는 드루를 댓가로 향후 수년간 로테이션을 꾸준히 돌아준 '''제이슨 마키'''와, 차세대 에이스가 된 '''애덤 웨인라이트'''를 데려오며 희대의 윈윈 트레이드를 만들어냈다.

2.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그렇게 애틀랜타로 트레이드된 드루는, 2004년 FA로이드라도 빨았는지 .305/.436/.569 31홈런 93타점 '''fWAR 8.6'''[11]이라는 미친 활약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이 해 애틀랜타는 치퍼 존스가 커리어 로우를 찍어버리며 타선이 전반적으로 못치는건 아닌데 그렇게 잘 하지도 않는 지극히 애매모호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드루가 3번 자리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동부지구 우승과 포스트시즌 진출에 크게 공헌했다. 하지만 정작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한 NLDS에서 드루는 침묵했고, 결국 킬러B가 미쳐날뛴 휴스턴에게 5차전 접전 끝에 패퇴하며 시즌이 끝났다. 그렇게 많은 팀들의 모니터링 속에 FA가 된 드류는 5년간 55M + 2년 후 옵트아웃[12]이라는 좋은 조건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사인한다.
그렇게 맞은 첫 해인 2005년에 그는 높은 몸값 때문에 부상을 우려한 팀에서 도루를 자제할 것을 요구받아 도루를 줄이기 시작했고, 초반에는 타율 2할 5푼대와 OPS 8할로 다소 허덕였다. 하지만 6월부터는 부상당한 밀튼 브래들리 대신 중견수로 이동하여 타격감이 살아나며 더 좋은 스탯을 찍었다. 그런데 7월 3일 애리조나 디백스전에서 손목에 공을 얻어맞고 시즌을 마감. 뭐 비율스탯 자체는 2할 8푼 타율에 4할 초중반 출루율과 5할 장타율을 찍는 OPS형 타자로서 꽤 괜찮은 성적을 찍었다.
2006년 복귀해서는 성적이 살짝 하락했어도 OPS .891을 찍는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9월 18일 경기에서는 제프 켄트-J.D. 드류-러셀 마틴-말론 앤더슨으로 이어지는 4타자 연속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13] 그렇게 2006년이 끝나고 옵트아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 동안 다저스에서 즐겁게 생활하는 모습과 다저스에 머물 것이라는 투의 언론 인터뷰를 보였던 것, 은근히 잔부상이 많은 타입이라 FA 시장 나와봤자 큰 돈 따내기도 어려울 것이란 점을 들며 "설마 옵트아웃 하겠어...?"라고들 생각했지만, '''드루는 옵트아웃을 썼다.'''
다저스 팬들은 이 옵트아웃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고, 네드 콜레티 단장과 선수들도 큰 상처를 받았다. 특히 옵트아웃 조항을 실행하기 오래 전부터 '''"이 동네가 너무 좋다. 오래오래 있고 싶다."'''는 식의 인터뷰를 쭉 해왔고 며칠 전에도 "2007년이 기다려진다"고 했기 때문에 좋다고 해놓고 팬과 구단의 뒤통수를 갈긴 것이 되었고, 다저스 팬들은 드류의 셔츠와 피규어를 불태웠다. 심지어 2007년 개막전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에 졌을 때는 선수들과 팬들이 한 목소리로 '''드류 때문에 졌다''' 소리를 했고[14], 변함없이 그를 응원하던 카디널스의 팬들마저 점점 그에게 등을 돌렸다. 또, 엉뚱하게도 아메리칸리그로 튀어버린 형에게 열받은 다저스 팬들이 같은 서부지구의 스티븐 드류에게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15] 흥미롭게도 스티븐 드류의 2013년 소속팀은 보스턴 레드삭스.
결국 다저스는 논텐더로 방출한 제이슨 워스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케니 로프턴 등의 공백으로 같은 해 FA 시장에서 외야 보강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애리조나 디백스에서 팀 옵션이 거절된 루이스 곤잘레스와 발만 빠른 똑딱이 후안 피에르[16]를 데려와야 했고, 2006년부터 풀타임으로 뛰기 시작한 안드레 이디어는 좌익수에서 우익수로 옮겼으며, 가장 통탄스러운 것은 '''서비스 타임 조절을 위해 아끼려던 맷 켐프의 콜업이 너무 빨라졌다.'''

2.4. 보스턴 레드삭스


[image]
그렇게 온갖 사람들에게 욕을 들으며 새로 도전한 아메리칸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 매년 14M씩 5년간 총 70M이 보장된 새 계약조건은 과연 스캇 보라스의 위엄이 느껴지는 계약이었다. 특히나 이 계약이 세이버메트릭스와 머니볼 스타일 협상을 고수하는 테오 엡스타인을 상대로 따낸 계약이라 더욱...[17] 다만 드류의 유리몸에 대해 의문이 있었던 레드삭스 측은 07~10 4년간 500경기 (매년 125경기 꼴) 이상 출전하지 못하면 마지막 해인 2011년의 14M 연봉을 5M으로 대폭 삭감한다는 빡센 조항을 붙였다.
첫 해에는 중거리 좌타자에게 매우 유리한 펜웨이 파크를 홈으로 쓰면서도 아메리칸리그 첫 시즌에 장타력을 생각만큼 선보이지 못하며 OPS가 .796에 그치는 연평균 14M의 연봉을 감안하면 많이 부족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2008년에는 OPS .927 을 찍는 기염을 토하며 생애 첫 올스타전을 뛰었는데, 양키스타디움에서 올스타전이 열렸는데도 레드삭스 선수로서 올스타전 MVP에 선정되었다(...) 2009년에도 .914를 찍으며 돈값을 하는 듯 했다.[18] 하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2010년엔 다시 주춤했고, 2011년에는 급격한 추락을 겪어 선구안을 제외한 모든 툴이 쇠퇴한 커리어 사상 최악의 성적을 찍고 있고 부상까지 겹쳤다.[19] 결국 2011년에는 갑툭튀한 조시 레딕의 등장에 계약 만료 후 방출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최종 4홈런 22타점 .222 .315 .302라는 해도해도 너무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결국 하락세를 지켜본 레드삭스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드류는 은퇴하게 된다.

3. 플레이스타일


전형적인 눈야구+일발장타를 갖춘 OPS형 중장거리 타자로, 준수한 주루능력도 갖추고 있어서 어떤 타순에 갖다놔도 잘 할 수 있는 선수였다. 좌타자들이 다 그렇듯이 좌투수 상대로 다소 고전하는 점과 은근히 잔부상이 있는 것을 빼면 딱히 기복이랄 것도 없이 커리어 내내 꾸준함을 유지한 타자. 또한 패스트볼을 잘 공략하는 타자로서 여러 파워피쳐들을 상대로 장타력을 과시[20]했다. 다만 평소에도 언더독 스타일보다는 라면수비[21], 득점권에서의 잉여모드, 성의없는 눈야구[22] 등의 모습을 보여주며 보는 입장에서 꽤 답답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은근히 잔부상이 종종 있어서 레드삭스 시절 이전에도 커리어 내내 한 해에 150경기를 출전한 적이 없다.[23] 더구나 레드삭스에서는 그의 전임자 우익수가 트롯 닉슨[24]이었기 때문에 더욱 대조되는 점이다.
사실 세이버메트릭스를 추종하는 계열에서는, 2007년~2011년 5년 70M 계약을 맺은 드류의 활약을 딱히 망했어요라 평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최소 중박은 되는 평가를 내리는 편. WAR에 의하면 그의 레드삭스 스탯은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데이빗 오티즈와 맞먹는 수준이며, 최근의 부진 역시 어쩔 수 없는 노쇠화를 감안해야 하고, 계약 당시 2006-07 오프시즌의 외야수 FA 자원도 풍족한 것이 절대 아니었던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세이버메트리션 레드삭스 팬 블로그의 글. 그렇지만 그런 인식에 대해 테오 엡스타인을 싫어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미지수(...) 솔직히 드류는 마냥 못했다는건 절대 아닌데 그렇다고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거나 할 정도로 임팩트가 컸던 것도 아니라서 더 논쟁이 심화된다. 마쓰자카 다이스케, 존 래키, 훌리오 루고처럼 확실히 망했어요도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는 테오에 대한 각자의 입장차로 드류에 대한 입장이 갈라진다고 보면 된다.

4. 기타


두 동생인 팀 드류[25]스티븐 드류도 전직 메이저리거인데, 둘째인 우완투수 팀과는 2004년에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또한, J.D.와 팀은 97년 드래프트에서 함께 1라운드에 지명되며 형제가 같은 해에 1라운드에 지명되는 최초의 대기록이 이뤄졌 고, 스티븐은 두 형보다 많이 어려서 학교 졸업이 늦었지만 고졸 자격으로 참가한 01년 11라운드, 대학에서 참가한 04년 1라운드에 지명되었고, '''드래프트 역사상 전무후무한 삼형제 1라운드 지명'''이란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2006년과 2007년 다저스와 보스턴에서 백투백투백투백 홈런을 친 일원에 속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 5번[26]뿐인 기록인지라 드류는 전무후무한 케이스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돈도 많이 벌고 운도 좋고 실력도 좋았으며 기록도 쌓은 데다가 우승반지까지 얻은 보기 드문 승리자...이지만 2017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단 한 표도 얻지 못하고 탈락했다. 뭐 예견된 거이긴 했지만.
이래저래 드루가 거쳐간 팀들 팬덤에서는 이미지가 영 좋지 않지만, 그런 이미지와는 별개로 드루의 성품 자체는 다소 온화하고 정적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했고.

5. 관련 문서


[1] 외래어 표기법으로나 현지 발음으로나 Drew는 드'''루'''가 맞다. 사실 B'''rew'''ers=브'''루'''어스라던가, Kille'''brew'''=킬러브'''루''', '''Lew'''is='''루'''이스 등등 다른 사례에서는 이게 정확히 표기되는데, 유난히 D'''rew'''나 And'''rew'''만 드'''류''', 앤드'''류'''로 오기된 것이 정착되었다.[2] 이름만 봐서는 J.D.가 아니라 D.J. 드루가 되어야 맞을것 같은데, J.D.가 된 이유는 고향에서 데이비드가 아닌 조너선 드루라고 주로 불렸고 이를 줄여서 J. D. 라고 했다고 한다. 참고자료. 따지고보면 J.D. 드루는 '조너선 드루 드루'인 셈(...).[3] 필리스 팬덤은 1라운드 지명을 받고도 입단을 거부하며 독립리그행을 택하는 충격적인 선택 때문에 드류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으며, 다저스 팬덤도 옵트아웃 선언을 계기로 드류에게 완전히 등을 돌려버렸다. 레드삭스 시절에는 들쭉날쭉한 성적과 유리몸 기질 때문에 까일 때가 많았다. 그나마 카디널스 팬들은 돈을 밝히는 그의 행동에는 실망하면서도 에이스를 안겨주고 떠났기 때문에 까방권을 줬고, 브레이브스 팬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FA 앞두고 1년 렌탈 용도로 데려온지라 크게 악감정이 생길 일은 없었다. 웨인라이트를 잃은 것만 빼면.[4] 앤더슨은 2.5M이라는 높은 계약금을 받고 디트로이트에 입단했으나, 선발로 자리잡지 못하고 거의 패전조로 뛰다가 은퇴했다. 통산 256.2이닝을 던진 선수가 통산 bWAR이 -0.6이라는 점에서 앤더슨의 입지를 설명해준다.[5] 참고로 이때 드루보다 밑에서 지명된 선수들을 보면, 트로이 글로스, 버논 웰스, 존 갈란드, 랜스 버크만, 제이슨 워스, 마이클 커다이어, 랜디 울프, 마이클 영, 숀 피긴스, 팀 허드슨 등 메이저에서 통산 WAR 20을 찍은 선수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6] 당시 필리스의 에이스였던 커트 실링은 스캇 보라스를 맹비난하며 이 무시무시한 요구에 대해 진지한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7] 나중에 드루가 보스턴으로 가면서도 떡밥이 발생했는데, 보삭스 팬들과 필리스 팬들은 최근에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지만, 그들 사이에 드류 떡밥만 투척되면 견원지간으로 돌변한다.[8] 수비가 좋지 않았던 탓에 통산 fWAR은 19.0으로 드루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는 커리어를 지녔으나, 적어도 필리스 시절 버렐의 성적만 따진다면 .257/.367/.485 251홈런 827타점으로 드류의 통산 커리어인 .278/.384/.489 242홈런 795타점보다 크게 모자라지는 않다. 유리몸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는 필리스를 떠난 이후 이야기고, 필리스 시절에는 연 평균 145경기를 출전하면서 몸도 탄탄했다. 우승반지도 드루보다 버렐이 하나 많기도 하고. 다만 어디까지나 타격의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이고, 필리스가 내셔널리그 팀인 이상 버렐의 처참한 수비력은 팀에게 분명한 마이너스였다. 또한 타격 역시 드루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는다 뿐이지 드루보다 한 수 아래임은 자명했으며, 드루가 유리몸으로 누적을 까먹었다면 버렐은 심한 기복으로 성적을 까먹었다. 필리스가 생각보다 손해를 크게 보지 않았다 뿐이지 버렐이 드루에 비빌만한 클래스의 선수는 아니라는 것. 단적으로 버렐은 필리스에서 뛴 9시즌간 약 1300경기에 나서 fWAR 16.7을 기록했는데, 드루는 카디널스에서 6시즌만, 그것도 첫 시즌은 9월에 데뷔해 14경기 뛰고 나머지 5시즌도 부상으로 자주 빠진 탓에 600경기도 채 못 뛰었으나 fWAR 17.5를 기록했다.[9] 더구나 전년도 드래프트에서 사인에 실패한 선수의 순위+1 순번에 지명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이 때는 없었기 때문에 필리스는 '''이 픽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필리스 팬덤이 드루를 증오하는 또 하나의 이유. 이 당시에는 그냥 1라운드 정규 지명권은 30개로 정해져 있고 그 다음에 FA 보상 샌드위치픽이 진행되었다.[10] 참고로 이 날은 마크 맥과이어로저 매리스의 한시즌 61홈런 기록을 갈아치우던 날이었다.[11] 메이저리그 '''전체 4위'''. 1위는 약 빤 신(11.6), 2위는 원조 FA로이드(9.7)였고, 3위는 다름아닌 '''스캇 롤렌(9.0)'''(...)이었다. [12] 선수가 계약을 중도에 파기하고 FA를 선언할 수 있는 옵션. 이 경우 FA로 타 팀을 이적해도 보상 드래프트픽은 얻지 못하기에 선수 측에 굉장히 유리한 조건으로 재계약 협상이 전개된다. 이 계약조건으로 대박을 터뜨린 사례가 바로 2007년 종료 후 옵트아웃을 선언하고 뉴욕 양키스와 재계약하여 "10년 275M+홈런 마일스톤 옵션"을 보장받은 알렉스 로드리게스.[13] 당시 희생양이 된 투수는 각각 두 타자씩 존 애킨스트레버 호프만. 이 경기는 9회에 9-5로 다저스가 지고 있다가 이렇게 터진 솔로홈런 4연타에 동점이 되고 호프만의 블론세이브가 기록되었다... 파드리스 입장에서 더 안습인건 그렇게 연장 가서 타선이 1점을 내는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같이 10회말에 노마 가르시아파라에게 워크오프 투런을 헌납했다![14] 심지어 보스턴 레드삭스로 갔다는 것에 인연이 있어서 인터뷰를 요청받은 데릭 로우와 그래디 리틀 감독(2003 ALCS에서 페드로를 8회에도 올려놨다가 경질당한 그 감독 맞다.)은 본인들이 더 나서서 드류를 욕했다. 또한 콜레티 단장은 '''지가 노마 가르시아파라라도 되는줄 안다'''고 욕했다. 그런데 정작 드류를 영입한 레드삭스의 팬들은 로우와 리틀 감독의 심정은 이해하면서도 다저스의 네드 콜레티 단장에게 불만이 있었다고... '''너네 팀노마가 있는데 우리 노마 가슴 아프게 그런 말을 해야겠음?''' 실제로 다저스 선수들과 팬들이 배신감을 토로할 때도 노마만은 보스턴으로 간 드류에 대해 이렇다 할 발언을 하지 않았다.[15] 뭐, 스티븐은 매번 필리스 원정에서도 형이 들을 욕 대신 듣고 다닌다. 지못미.[16] 당해 FA 시장에서 드류만한 외야 좌타자가 너무 없었다. 보라스는 이 점을 노려서 드류의 옵트아웃 조항을 실행했고, 그 결과 드류는 FA 시장에서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졌다.[17] 같은 시기 레드삭스는 일본을 개발살내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6년 총액 52M을 보장해준다. 이 역시 스캇 보라스의 작품. 다만 마쓰자카가 더 까이는 것은 역시나 연봉도 연봉이지만 '''51M'''에 달하는 이적료 때문...[18] 사실 돈값을 했다기에도 팬들이 보기엔 성이 안차는 것이, 9할을 넘나드는 OPS에 비하면 그의 득점권 타석에서 보이는 소극적 스윙이 영 만족스럽지 못하고 그 때문에 득점권에서 비율 기록은 좋아도 타점 수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는 닉 스위셔아담 던 같은 눈으로 야구하는 선수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며, 득점권에서도 너무 쳐다보고만 있다는 것은 심지어 리키 헨더슨에게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오히려 득점권에서는 통산 성적보다 떨어지기 일쑤. 결국 이런 선수들은 특별히 리드오프 같은 자리를 맡지 않는 이상 눈으로만 야구하는 공갈포 소리를 듣게 된다.(...)[19] 이 시기 카를로스 쿠엔틴, 헌터 펜스, 카를로스 벨트란 등 여러 우타/스위치히팅 우익수 영입이 검토되었다. 일단은 팜에서 올라온 좌타자 레딕이 공백을 메우는 형세.[20] 물론 2010년부터 시작된 노쇠화로 패스트볼 공략 능력이 하락하였고 2011년 커리어로우급의 장타율을 찍었다.[21] 특히 펜웨이 파크는 레프트/라이트 필드가 굉장히 비범한 구조를 자랑하기 때문에 코너 외야수도 수비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운데, 그런 자리에서 수비로 욕먹지 않는 점만으로도 굉장한 능력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22] 이런 부분은 눈야구를 즐기는 선수들이 전부 듣는 얘기니 그러려니 하자(...).[23] 물론 지명타자를 쓰지 않는 내셔널리그와 빅 파피를 보유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뛴 것으로 인해 지명타자 출전 횟수가 높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원래 외야수 하라고 데려온 선수에게 이미 자리가 있는 지명타자로의 출전까지 보장하면서 150~160경기를 출전시켜야 한다는 것인가?[24] 2003 ALCS에서 양키스의 애런 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덕아웃에서 기물을 때려부수며 분통을 터뜨렸던 그 선수 맞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는 언더독 스피릿의 화신과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 외야수였다. 물론 테오 엡스타인은 보사구팽에 맛을 들였는지 그를 내쳤고,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수를 들여온다고 온 것이 J.D. 드류였기에 그런 이유에서도 보삭스 팬들은 드류를 영 좋아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레드삭스판 폴 오닐과 같은 위치라고 볼 수 있다. 서로 우익수로써 팀의 지분이 꽤 있었다.[25] 그러나 팀은 5년간 32경기에서 2승 4패가 고작이었다. 완벽한 먹튀.[26] 1961년 밀워키, 1963년 클리블랜드, 1964년 미네소타, 2006년 다저스, 2007년 보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