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마리애
Legio Mariae | 마리아의 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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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톨릭 교구 내 분포하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예수 성심(聖心)과 함께 가톨릭의 양대 신심 중 하나이다. 라틴어로 '''마리아의 군단'''이란 뜻으로,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지휘 아래 세속과 악에 맞서 기도와 봉사로써 교회의 싸움에 참여하기 위한 영적인 군단이라는 취지로 지어졌다. 명칭은 물론이고 단체 내에서 쓰이는 조직 단위나 용어 등을 모두 고대 로마의 군대에서 통용되던 것을 쓴다. 간단하게 '''레지오'''로 줄여 쓰기도 한다.
세계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총 300만 명의 신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조직성이 가장 강한 나라는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필리핀, 브라질, 아르헨티나, 콩고라고 한다. 특히 한국은 국가적인 주보성인부터 성모 마리아여서인지[2] 레지오가 조직되지 않은 본당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반대로 북미, 특히 개신교가 주류인 미국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다. 미국 신자들 사이에서는 레지오라는게 뭔지 모르는 신자가 많다. 물론 미국에 있는 한인 공동체나, 필리핀 교우들 사이에는 레지오가 활성화 되어있다.
레지오 마리애에 입회할 자격은 모든 성인 가톨릭 신자에게 있지만, 행동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3개월에 걸쳐 꾸준한 수련과 입회 심사를 거치므로 어지간히 독실한 신자여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레지오의 강령이 군대에서 본땄기 때문에 강제적인 조항들이 다분하고, 레지오의 교본도 처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딱딱하고 원론적이며 지루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본에 나오는 '성모는 구속 사업의 공동 사업자'라는 표현은 자칫 '성모는 공동 구속자'라고 해석될 수 있는데, '공동 구속자'라는 표현은 현대 가톨릭교회 안에서 키배가 박터지게 벌어지는 상황.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위격인 성부와 인간 사이를 중재하며 인간을 구원한 구속자의 역할인데 이에 대해서 공동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함이 훼손된다는 주장과,[3] 성령과 언제나 함께 하는 분이 성모 마리아이고 실제로 교황청이 인정하거나 공경하라고 묵인하는 여러 성모 발현을 볼 때 단어의 차이이지 타당성이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4] 레지오 마리애를 창안한 프랭크 더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레지오 마리애의 성모신심이 공의회에서 가르친 성모신심과 다르다는 공격을 받았으며,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강경하게 방어했다.
18세 미만의 경우는 소년 쁘레시디움에 입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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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마리애의 모든 방침은 교본에 잘 담겨져 있으며, 회합을 가질 때마다 반드시 탁자에 레지오 보, 성모상, 벡실리움, 양쪽에 초와 꽃병을 세팅해야 하므로 성물방에서는 아예 레지오 관련용품을 파는 코너도 있다.
레지오의 시초는 빈첸시오 몇몇 회원들이 모여 기도와 영적 독서를 하고 활동 중에 일어나는 여러 어려운 점을 해결하고 환자들을 더욱 잘 위로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레지오는 빈첸시오의 영향을 받아 설립되었지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을 금하고[7]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 쁘레시디움 주회는 1921년 9월 7일, 더블린의 빈첸시오 회관인 마이러하우스에서 이뤄졌다. 마이클 토허 신부와 프랭크 더프를 비롯한 15명의 여성이 모여 ‘자비로운 성모’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한 것이 시초가 된다. 이에 한동안 ‘자비로운 성모회’로 불리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병원의 환자 방문으로 시작되었지만, 윤락여성들을 돕기 위한 활동도 전개되었고, 이 외에도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8] 초대 단장으로는 최연장자로서 관리기관 월례회장인 엘리사벳 커완이 선출되었다.[9]
1921년에 쁘레시디움 4개가 창단되었고, 5년 동안에 9개로 확장되었다. 이에 1925년 11월, 간부 회의에서 충성·용맹·규율·인내 그리고 성공 등의 상징으로 불리는 로마 군대 조직의 명칭을 도입하여 현재의 레지오 조직 명칭을 도입하여 명명하게 되었다. 벡실리움 제작은 로마 군단의 패를 모델로, 레지오 정신에 일치하게 제작하였다.
1927년에는 아일랜드의 다른 교구로, 1928년에는 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으로 전해졌으며, 1929년에는 첫 남성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다. 1932년 세계 성체대회가 더블린에서 열리며, 이를 계기로 전 세계에 알려지며 레지오 보급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 레지오가 보급된 교구 숫자는 다음과 같다. “1947년도에 5백50교구; 1956년도에 9백50교구; 1963년도에 1천3백 교구; 1981년도에는 약 2천여 개 교구에 10만여 개의 쁘레시디움이 있었다. 1970년에 이미 1백20여 개 국에 레지오가 도입되었고, 1979년 8월 말엔 철의 장막을 비롯한 여러 공산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보급되었다.”[10]
창설 50주년까지는 성장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발전이 점차 둔화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레지오 창설 때만 해도 평신도 사도직 단체와 새로운 신심 운동이 얼마 없었지만, 1940년대부터는 새로운 신심 운동들, 예를 들자면 꾸르실료(Cursillo) · 포콜라레(Focolare, 국제 마리아 사업회) · 네오 카테쿠메나토(Neo Catecumenato) · MBW · ME · 성령쇄신운동 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11] 현재 전 세계적으로는 한국과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레지오의 규모가 축소되었다.
Vexillum Legionis
레지오 마리애 단기로, 이 역시 로마군 군기에서 딴 것이다. 맨 위에는 독수리 대신 비둘기가 있는데 성령을 상징한다. 중간부분의 레지오 마리애 표장 밑에 있는 성모상 메달은 무염시태를 나타내는 기적의 메달[12] 이며, 아랫부분의 지구는 성모 마리아가 전세계를 지배함, 즉 전세계를 향한 선교와 봉사의 의지가 담겨 있다.
벡실리움의 크기 및 제대에서 성모상과의 거리 같은 자잘한 것이 교본에 지시되어 있으며, 만드는 것 자체도 꼰칠리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저작권 보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래 발음은 ''''벡실룸''''이지만 어쩐지 '벡실리움'으로 불리고 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5월 31일에 목포 산정동 본당에서 창단되었다. 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 서리였던 해롤드 헨리 주교와 토마스 모란 신부가 산정동 본당의 신자들과 함께 ‘치명자의 모후’라는 이름으로 모여 첫 까떼나를 바친 것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13] 그 당시 치명자의 모후(남성 쁘레시디움), 평화의 모후(여성 쁘레시디움), 죄인의 의탁(혼성 쁘레시디움)으로 3개가 설립되었다. 헨리 주교는 당시 한국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황폐화되어 실의에 빠져있는 국민에게 성모 신심과 덕행을 정신적 지주로 삼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었다.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첫 쁘레시디움 창단 3년 만에 (창단순) 광주대교구, 청주교구, 춘천교구, 원주교구, 전주교구, 서울대교구, 제주교구로 쁘레시디움이 확장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전국의 여러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1955년 10월 12일에 ‘목포 매괴의 모후 꾸리아’가 쁘레시디움 관리체계를 갖추기 위하여 최초로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서 각 지방에서도 광범위한 조직을 관리하기 위하여 꾸리아가 지역단위로 설립되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이 확장됨에 따라 이를 관장할 꼬미씨움이 광주, 부산, 춘천, 청주 교구에 승격 설치 되었다. 이 중에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대표권을 갖고 있는 ‘광주 중재자이신 마리아’ 꼬미씨움이 1958년 7월 13일 국가 최상급 평의회인 세나뚜스로 승격되었다.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 3개의 세나뚜스와 200개의 꼬미씨움, 2천개의 꾸리아, 약 3만여 개의 쁘레시디움과 27만여 명의 행동 단원을 가진 한국 최대 규모의 신심 단체가 되었다.[14]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초창기 활동은 쁘레시디움을 중심으로 한 복음화 및 재복음화였다. 이는 직접적인 방문을 이루어졌다. 외교인에 대한 입교 권유, 냉담자나 신자 재교육을 위한 활동과 신자 가정을 방문하여 제반 사항을 조사하는 일, 상가 방문을 크게 예로 들 수 있다.
1963년 이전 까지는 위에서 언급한 활동이 주를 이루었고, 레지오에 대한 홍보는 가톨릭 시보와 경향 잡지에 의존하였다.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 창단 10주년을 맞이하여 《레지오 마리애》라는 기관지를 발간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레지오 마리애에 관한 외국의 소식과 함께 국내의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한국 세나뚜스 월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발행되었다. 이는 당시 통신 수단이 빈약했던 시대에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한국 세나뚜스 월보》는 1988년 6월호를 끝으로 다시 《레지오 마리애》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발간되고 있다.[15]
1979년에는 서울, 광주 세나뚜스와 부산 레지아가 연합하여 한국천주교회 선교 200주년을 맞이하는 1984년에 200만 신자화를 달성하기 위한 민족 복음화 활동안[16] 을 발의하였고[17] , 1985년에는 300만 신자화를 위한 민족 복음화 운동[18] 을 발의하여 신자 가정 방문과 외교인에 대한 입교 권유와 묵주기도 3억단을 바치며 미사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계획하였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인하여 단원들로 하여금 편리에만 안주하도록 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는 단원들의 근본정신을 이완시킨다. 따라서 선교에 대한 필요성에 의문을 갖게 되고 활동 또한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만 남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음의 문제로는 친교 중심의 모임으로 변질됨을 언급할 수 있다. 단원들끼리의 원활한 활동과 깊은 유대, 결속을 위하여 친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친목은 같이 기도를 하고 선교와 사도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 나갈 수 있지만 흔히 말하는 ‘2차 주회’라는 이름의 저속한 술자리가 메인이 되어버렸다. 심한 경우에는 이 ‘2차 주회’를 위하여 쁘레시디움에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심각하고도 엄중한 문제이고, 성모님에 대한 중대한 죄이다.
다음으로는 사목자와의 관계이다. 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이 비대해지면 입지가 강해져 레지오의 성향과 다른 본당 사목 방침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또한 사목자의 잘못된 이해와 무관심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긴급한 문제는 한국 가톨릭 신자 자체의 급감으로 인한 단원 활동의 위축이다. 이 문제는 레지오 뿐 아니라 교구 더 나아가 한국 천주교회 전체가 정말 시급하게 해결해야만 한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세속화라는 현대사회의 풍토에 대응하여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설자인 프랭크 더프는 봉헌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아 겸손을 실천하고자 하는 레지오 신심을 강조하였다.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서 레지오 마리애의 초창기 신심의 강조점을 다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세속화에 따른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풍토에서 벗어나고 공과 사를 구분하여 친목이 중심이 아닌, 선교와 기도를 중심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가 성모 마리아의 최고의 덕목인 겸손과 순명의 정신으로 교회 활성화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함을 다시금 깨달아야 한다. 본당 신부 혼자서 한 본당의 레지오 조직 전체를 완벽하게 관할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에 따라 꾸리아 간부 월례회의나 쁘레시디움 단장 월례회의를 갖는 방법이 좋다. 이를 통하여 쁘레시디움 단원들을 지도하는 간부들과 신부가 만나 본당 레지오의 실태를 파악하고, 레지오는 본당의 사목 방침에 대하여 파악을 함으로써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레지오 마리애의 미래를 위하여 청소년, 청년 레지오를 활성화해야 한다. 현재의 교본은 성인 단원들을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청소년, 청년들의 성향을 맞추고 이해를 돕기 위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교회의 미래를 짊어질 열쇠이기 때문에 이들이 레지오 마리애 안에서 기도와 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여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나갈 기둥이 되어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기성세대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에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레지오 마리애 자체와 한국 천주교의 미래를 위하여 청소년,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19]
레지오 마리애의 영성에서 핵심은 레지오 단원이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거룩해지는 것(성화聖化)’에 있다. 성모 마리아를 이 성화의 롤모델로 삼으며, 성모 마리아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로서 레지오 단원들에게 성화의 은혜를 전달해준다.[20]
레지오 단원들은 개인의 성화를 위해 마리아의 정신을 따른다. 이 정신에는 10가지 덕목이 있다. 그것은 겸손, 순명, 온유, 기도, 고행, 순결, 인내심, 지혜, 사랑, 믿음이다. 또한 레지오 마리애는 ‘사도적 정신’을 강조하는데, 성모 마리아가 예수께 행한 봉사와 도움의 정신을 일컫는다. 이에 따라 마리아를 참된 여성 사도라고 말한다.[21] 여기까지 알 수 있듯이 레지오 마리애 영성은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체득하고 일치한다는 것이 기본 골격이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단원들의 성모신심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 다음으로 중요하며, 레지오의 본질적 요소라고 말한다.[22] 레지오 마리애의 성모신심은 그 설립자인 프랭크 더프가 직접 그의 저서에서 말한 대로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영성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기인한다.[23]
성 루도비코의 성모신심은 그의 대표 저서인 『참된 신심』과 『마리아의 비밀』에 잘 드러난다. 여기서의 올바른 성모신심은 성모님께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는 것으로, 이것을 완전한 신심이라고 부른다. 이 완전한 신심은 곧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위함이다. 레지오 단원의 활동은 완전한 신심을 바탕으로 마리아의 겸손을 배우고 그분을 위해 봉사하며 신심을 실천한다.
성 루도비코의 성모신심은 중세시대의 대중성모신심과 18세기 계몽주의시대의 신심을 잘 반영한다. 중세시대 대중신심은 두려움의 대상인 하느님과 비교되어 인자하고 너그러운 이미지의 성모님께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성모님께 대한 마음을 표현할 때 화려한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18세기는 루도비코가 살던 시대로 종교개혁에 대한 반발로 성모신심이 강조되었다. 이런 요소들이 레지오 마리애의 성모신심 관련 용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성모신심은 많은 대중의 지지도 받았지만 여러 신학자들 사이에서 비판받았다. 예를 들어 성 루도비코 및 레지오 마리애는 하느님 은총의 절대적 중재자로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 문구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교회 교도권은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이자 모범이라 말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야할 명백한 피조물이라고 말한다.[24] 레지오 마리애가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신심은 다소 지나치다는 평가가 따른다.
특히 한국에서도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레지오 마리애 한국 3대 세나뚜스에 선서문에 대한 개정을 요청하였다.[25] 문제를 제기한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성모 마리아 없이는 알아 뵈올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는 문구이다. 신앙교리위원회는 이 문구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와 중개를 지나치게 성모 마리아의 역할 안에서 제한적으로 보는 시선이라고 보았다. 가톨릭은 유럽의 대중이 중세의 여러 질병과 전쟁 등의 상황을 겪으면서 심판하시는 하느님보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이미지의 성모 마리아에게 기대려는 경향이 반영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성모신심은 주로 중세시대 심판자로서의 성부(하느님), 성자(그리스도)보다 인자로운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하려던 모습과 18세기의 경향 속에서 피어난 성 루도비코의 마리아 신심이 레지오 마리애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그런데 이 신심은 오해의 여지가 다분해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므로 레지오 마리애는 교회 교도권[26] 보다는 일반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널리 퍼진 마리아 신심을 더 잘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명확하게 성모신심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레지오가 세계 곳곳에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고 매우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만큼 레지오 마리애가 영향력이 매우 큰 단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표하는 레지오 마리애 교본의 일부 표현은 충분히 비판받을 만 하다.
레지오는 고대 로마 군대의 편제를 따라 피라미드식 조직을 이루고 있다. 기본 단위체를 “쁘레시디움”이라고 부르고, 관리기관인 평의회로 “꾸리아”, “꼬미씨움”, “레지아”, “세나뚜스”가 있다. 그리고 세계 중앙 평의회로 “꼰칠리움 레지오니스 마리애”가 있다. 모든 관리기관은 쁘레시디움처럼 상급 평의회에 소속되거나 꼰칠리움에 직속된다. 교본에 따르면 꼰칠리움을 제외한 모든 레지오 마리애의 단위체는 관할 상급 평의회 또는 꼰칠리움의 정식 허가와 본당신부 또는 교구장 주교의 승인을 받아야만 설립될 수 있다.
쁘레시디움 (Pr.) → 꾸리아 (Cu.) → 꼬미씨움 (Co.) → 레지아 (Re.) → 세나뚜스 (Se.) → 꼰칠리움
단원은 행동단원과 협조단원으로 구분되는데, 협조단원은 일종의 '''보급병'''이라고 보면 된다. 가톨릭 교회의 절대적인 보급이라면 바로 기도이기 때문에 협조단원들은 뗏쎄라에 나온 기도문을 매일 바쳐야 할 의무가 반드시 주어진다. 이는 실질적 활동에 나서는 단원들을 뒤에서 지원한다는 의미이다.
고급(?)의 협조단원은 '''아듀또리움''' 단원(Adjutorian), 고급(?)의 행동단원들은 '''쁘레또리움''' 단원(Praetorian)[27] 이라고 한다. 이들은 미사와 영성체, 성무일도, 뗏세라의 모든 기도를 매일 수행해야 한다. 성무일도는 간략하게 줄인 소 성무일도로 해도 된다. 또 미사와 영성체의 경우도 현재는 주 2회만 해도 쁘레또리움 단원의 의무를 수행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바쁜 현대 사회에서 매일 미사와 영성체를 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배려한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단장의 지시에 따라 둘씩 짝지어 매주 2시간 이상 활동하고, 매주 정한 시간에 회합을 하며, 그 활동 내용을 보고한다.
대한민국에는 동·서·중서울, 의정부, 인천, 대전, 수원, 청주, 부산, 마산, 안동, 전주, 원주, 춘천, 제주에 레지아가, 광주, 서울, 대구에 세나뚜스가 조직되어 있다.
특별히 '직속' 이라는 개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교목실의 쁘레시디움인 '기쁨의 샘' 쁘레시디움은 가장 말단조직인 쁘레시디움이지만 꾸리아 소속이 아니라 꼰칠리움을 제외하면 제일 큰 조직인 세나뚜스의 직속이기도 하다. 또 다른 예로 대구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 직속의 경북대학교 가톨릭 동아리 빨마 내의 '즐거움의 샘'과 '은총의 샘' 쁘레시디움이 이와 유사한 경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특혜를 받는 것은 아니고 대학생들이 기특하게도 열렬한 활동을 하겠다니 높은 분들이 예쁘게 봐주신 듯. 다른 쁘레시디움과 직속이 다른 점이라면 기쁨의 샘, 즐거움의 샘, 은총의 샘 등과 같은 경우 본래대로라면 꾸리아 평의회에 참석해야 하나 그렇지 않고 바로 세나뚜스 평의회에 참석하는 정도의 차이.
레지아 4개, 꼬미씨움 81개, 꾸리아 630개, 쁘레시디움 8,249개.
행동단원 67,545명, 쁘레또리움단원 2,244명, 협조단원 45,565명, 아듀또리움단원 576명
총 115,930명.[28]
레지아 10개, 꼬미씨움 128개, 꾸리아 1,464개, 쁘레시디움 16,470개.
행동단원 135,524명, 쁘레또리움단원 13,653명, 협조단원 188,475명, 아듀또리움단원 8,858명.
총 344,651명.[29]
레지아 1개, 꼬미씨움 35개, 꾸리아 324개, 쁘레시디움 4,075개.
행동단원 33,322명, 쁘레또리움단원 587명, 협조단원 14,881명, 아듀또리움단원 164명
총 48,954명[30]
-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은 레지오의 심장이며 레지오를 밝히는 전력과 동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이고 레지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제공해주는 보화의 곳간.
-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단원들과 더불어 앉아 계시는 위대한 공동체의 수련 도장이기에 주회합을 통해 단원들의 활동에 필요한 독특한 은총을 베풀어 주심.
- 주회합은 으뜸가는 의무이며 가장 신성한 의무.
- 주회합의 참석의무는 무엇으로도 대신 채울 수가 없음.
① 주회합의 시작
- 까떼나가 끝난 후에는 바로 훈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성호를 긋지 않는다.
- 개인적으로 까떼나만 바칠 때는 시작과 끝에 성호를 긋는다.
⑬ 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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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군단 내에서 통용되는 암호가 기재된 네모난 비표(秘標)에서 유래되었으며, 간단한 기도문과 성화가 인쇄된 쪽지를 가리킨다. 전세계 모든 레지오 마리애가 동일한 뗏세라를 쓰고 있으며, 레지오의 단원이라면 반드시 지니고 다닐 의무가 있고 쁘레또리움 단원이나 아듀또리움 단원, 협조단원은 여기에 적인 기도문을 매일 바쳐야 하는 의무가 존재한다. 여기에 적힌 기도문은 레지오 시작기도, 성모찬송, 까떼나, 마침기도.
뗏쎄라의 주변에 새겨진 라틴어 글귀는 다음과 같다.
2번째 부분인 까떼나는 본래 사슬, 고리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기도를 통한 레지오 단원간의 친교와 일치의 의미로 확장된 의미를 갖는다. 까떼나에는 특히 기도문의 핵심부분인 마니피캇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기도는 ‘구세주 하느님께 대한 찬양’, ‘하느님 업적의 회상’, ‘하느님 계획의 실현에 대한 찬미’의 내용을 지닌다.[34]
마침기도로는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Sub tuum praesidium)과 성인호칭기도(Litaniae Sanctorum), 그리고 성령께 믿음을 간구하는 기도,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 사제의 강복이 이어진다.
수련 기간을 마친 단원은 선서문을 읽는 입단식을 가짐으로서 정규 단원이 된다. 이 선서문은 성령신심과 성모신심이 결합된 기도문으로 그 내용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여기엔 성령송가, 재능·성덕·은총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보편적 중재, 마리아의 용기와 겸손을 본받음, 성령께 선교의 도구가 되도록 도움을 청함, 단원들과의 결속력을 청함의 내용이 포함된다.
선서문은 프로테스탄트와 대립하여 성모 신심이 강조된 시기에 작성되었기에 구원역사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문제점을 지니기도 한다.
활동의 대원칙은 주 회합을 통해 쁘레시디움에서 배당받은 활동을 수행한다. 마리아와 일치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수행하고 보고하는 것이 레지오 사도직의 본질로 여겨진다.
활동은 한 주간 최소한 2시간을 실제로 활동에 바쳐야하며, 선배 단원과 후배 단원이 2인 1조가 되어 매주 배당되는 활동을 시행한다. 필요에 따라 쁘레시디움, 꾸리아 차원으로 집단 활동을 하기도 한다. 완수한 활동은 주 회합 때 보고를 한다.
활동에는 ‘입교(개종) 권면’, ‘예비신자 돌봄’, ‘교우(새 영세자, 냉담자, 조당자) 돌봄’, ‘어려움 겪는 이(빈곤자, 병원 및 복지시설) 돌봄’, ‘레지오 확장’, ‘본당 협조’, ‘교회 출판물 보급’, ‘자연 보호’, ‘거리 청소’, ‘낙태 방지 운동’, ‘지역사회 봉사 활동’ 등이 있다. ‘레지오의 활동’
행사에는 아치에스(Acies), 연차 총 친목회, 야외 행사, 쁘레시디움 친목회, 그리고 기타 행사가 있다.
아치에스는 라틴어로 ‘군진(軍陣)’을 의미. 단원들은 매년 3/25(주님탄생예고축일) 전후로 함께 모여 악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힘과 축복을 받기 위해 성모님께 자신을 드리는 봉헌예절을 바친다.[35]
연차 총 친목회(매년 12/8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전후), 쁘레시디움 친목회(매년 9/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전후), 그리고 야외 행사 등은 단원들이 친목회를 통해 형제애로 일치를 이루는 데 그 목적을 갖기 위한 행사이다.
기타 행사에는 ‘성모의 밤’, ‘쁘레시디움 모임’, ‘세상을 떠난 단원을 위한 위령 미사’, ‘세나뚜스 주관 행사’, ‘상급평의회 주관 간담회’ 등이 있다. ‘레지오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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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세계 가톨릭 교구 내 분포하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예수 성심(聖心)과 함께 가톨릭의 양대 신심 중 하나이다. 라틴어로 '''마리아의 군단'''이란 뜻으로,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지휘 아래 세속과 악에 맞서 기도와 봉사로써 교회의 싸움에 참여하기 위한 영적인 군단이라는 취지로 지어졌다. 명칭은 물론이고 단체 내에서 쓰이는 조직 단위나 용어 등을 모두 고대 로마의 군대에서 통용되던 것을 쓴다. 간단하게 '''레지오'''로 줄여 쓰기도 한다.
세계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총 300만 명의 신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조직성이 가장 강한 나라는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필리핀, 브라질, 아르헨티나, 콩고라고 한다. 특히 한국은 국가적인 주보성인부터 성모 마리아여서인지[2] 레지오가 조직되지 않은 본당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반대로 북미, 특히 개신교가 주류인 미국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다. 미국 신자들 사이에서는 레지오라는게 뭔지 모르는 신자가 많다. 물론 미국에 있는 한인 공동체나, 필리핀 교우들 사이에는 레지오가 활성화 되어있다.
레지오 마리애에 입회할 자격은 모든 성인 가톨릭 신자에게 있지만, 행동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3개월에 걸쳐 꾸준한 수련과 입회 심사를 거치므로 어지간히 독실한 신자여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레지오의 강령이 군대에서 본땄기 때문에 강제적인 조항들이 다분하고, 레지오의 교본도 처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딱딱하고 원론적이며 지루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본에 나오는 '성모는 구속 사업의 공동 사업자'라는 표현은 자칫 '성모는 공동 구속자'라고 해석될 수 있는데, '공동 구속자'라는 표현은 현대 가톨릭교회 안에서 키배가 박터지게 벌어지는 상황.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위격인 성부와 인간 사이를 중재하며 인간을 구원한 구속자의 역할인데 이에 대해서 공동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함이 훼손된다는 주장과,[3] 성령과 언제나 함께 하는 분이 성모 마리아이고 실제로 교황청이 인정하거나 공경하라고 묵인하는 여러 성모 발현을 볼 때 단어의 차이이지 타당성이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4] 레지오 마리애를 창안한 프랭크 더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레지오 마리애의 성모신심이 공의회에서 가르친 성모신심과 다르다는 공격을 받았으며,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강경하게 방어했다.
18세 미만의 경우는 소년 쁘레시디움에 입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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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마리애의 모든 방침은 교본에 잘 담겨져 있으며, 회합을 가질 때마다 반드시 탁자에 레지오 보, 성모상, 벡실리움, 양쪽에 초와 꽃병을 세팅해야 하므로 성물방에서는 아예 레지오 관련용품을 파는 코너도 있다.
2. 역사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소재한 성 파트리치오 성당의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평신도 사도직 단체였다. 회장 ''''프랭크 더프'''(Frank Duff, 1889년 6월 7일 ~ 1980년 11월 7일)'는 극빈자와 환자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했는데, 빈첸시오회 모임에서 매트 머레이(Matt Murray)가 구호 병원의 부인 병동 방문에 대한 활동 보고를 하였고, 모임 이후 몇몇 여성들이 부인 병동 방문은 여성 회원들이 담당할 것을 제안하여 만장일치로 통과하였다.[6] 이에 여성회원들만을 모집하여 9월에 모이기로 했다.'''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5]
Inimicitias ponem inter te et mulierem, et semen tuum et semen illius ; ipsa conteret caput tuum.
창세기 3장 15절
레지오의 시초는 빈첸시오 몇몇 회원들이 모여 기도와 영적 독서를 하고 활동 중에 일어나는 여러 어려운 점을 해결하고 환자들을 더욱 잘 위로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레지오는 빈첸시오의 영향을 받아 설립되었지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을 금하고[7]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 쁘레시디움 주회는 1921년 9월 7일, 더블린의 빈첸시오 회관인 마이러하우스에서 이뤄졌다. 마이클 토허 신부와 프랭크 더프를 비롯한 15명의 여성이 모여 ‘자비로운 성모’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한 것이 시초가 된다. 이에 한동안 ‘자비로운 성모회’로 불리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병원의 환자 방문으로 시작되었지만, 윤락여성들을 돕기 위한 활동도 전개되었고, 이 외에도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8] 초대 단장으로는 최연장자로서 관리기관 월례회장인 엘리사벳 커완이 선출되었다.[9]
1921년에 쁘레시디움 4개가 창단되었고, 5년 동안에 9개로 확장되었다. 이에 1925년 11월, 간부 회의에서 충성·용맹·규율·인내 그리고 성공 등의 상징으로 불리는 로마 군대 조직의 명칭을 도입하여 현재의 레지오 조직 명칭을 도입하여 명명하게 되었다. 벡실리움 제작은 로마 군단의 패를 모델로, 레지오 정신에 일치하게 제작하였다.
1927년에는 아일랜드의 다른 교구로, 1928년에는 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으로 전해졌으며, 1929년에는 첫 남성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다. 1932년 세계 성체대회가 더블린에서 열리며, 이를 계기로 전 세계에 알려지며 레지오 보급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 레지오가 보급된 교구 숫자는 다음과 같다. “1947년도에 5백50교구; 1956년도에 9백50교구; 1963년도에 1천3백 교구; 1981년도에는 약 2천여 개 교구에 10만여 개의 쁘레시디움이 있었다. 1970년에 이미 1백20여 개 국에 레지오가 도입되었고, 1979년 8월 말엔 철의 장막을 비롯한 여러 공산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보급되었다.”[10]
창설 50주년까지는 성장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발전이 점차 둔화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레지오 창설 때만 해도 평신도 사도직 단체와 새로운 신심 운동이 얼마 없었지만, 1940년대부터는 새로운 신심 운동들, 예를 들자면 꾸르실료(Cursillo) · 포콜라레(Focolare, 국제 마리아 사업회) · 네오 카테쿠메나토(Neo Catecumenato) · MBW · ME · 성령쇄신운동 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11] 현재 전 세계적으로는 한국과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레지오의 규모가 축소되었다.
2.1. 벡실리움
Vexillum Legionis
레지오 마리애 단기로, 이 역시 로마군 군기에서 딴 것이다. 맨 위에는 독수리 대신 비둘기가 있는데 성령을 상징한다. 중간부분의 레지오 마리애 표장 밑에 있는 성모상 메달은 무염시태를 나타내는 기적의 메달[12] 이며, 아랫부분의 지구는 성모 마리아가 전세계를 지배함, 즉 전세계를 향한 선교와 봉사의 의지가 담겨 있다.
벡실리움의 크기 및 제대에서 성모상과의 거리 같은 자잘한 것이 교본에 지시되어 있으며, 만드는 것 자체도 꼰칠리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저작권 보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래 발음은 ''''벡실룸''''이지만 어쩐지 '벡실리움'으로 불리고 있다.
3.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
3.1. 역사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5월 31일에 목포 산정동 본당에서 창단되었다. 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 서리였던 해롤드 헨리 주교와 토마스 모란 신부가 산정동 본당의 신자들과 함께 ‘치명자의 모후’라는 이름으로 모여 첫 까떼나를 바친 것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13] 그 당시 치명자의 모후(남성 쁘레시디움), 평화의 모후(여성 쁘레시디움), 죄인의 의탁(혼성 쁘레시디움)으로 3개가 설립되었다. 헨리 주교는 당시 한국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황폐화되어 실의에 빠져있는 국민에게 성모 신심과 덕행을 정신적 지주로 삼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었다.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첫 쁘레시디움 창단 3년 만에 (창단순) 광주대교구, 청주교구, 춘천교구, 원주교구, 전주교구, 서울대교구, 제주교구로 쁘레시디움이 확장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전국의 여러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1955년 10월 12일에 ‘목포 매괴의 모후 꾸리아’가 쁘레시디움 관리체계를 갖추기 위하여 최초로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서 각 지방에서도 광범위한 조직을 관리하기 위하여 꾸리아가 지역단위로 설립되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이 확장됨에 따라 이를 관장할 꼬미씨움이 광주, 부산, 춘천, 청주 교구에 승격 설치 되었다. 이 중에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대표권을 갖고 있는 ‘광주 중재자이신 마리아’ 꼬미씨움이 1958년 7월 13일 국가 최상급 평의회인 세나뚜스로 승격되었다.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 3개의 세나뚜스와 200개의 꼬미씨움, 2천개의 꾸리아, 약 3만여 개의 쁘레시디움과 27만여 명의 행동 단원을 가진 한국 최대 규모의 신심 단체가 되었다.[14]
3.2. 활동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초창기 활동은 쁘레시디움을 중심으로 한 복음화 및 재복음화였다. 이는 직접적인 방문을 이루어졌다. 외교인에 대한 입교 권유, 냉담자나 신자 재교육을 위한 활동과 신자 가정을 방문하여 제반 사항을 조사하는 일, 상가 방문을 크게 예로 들 수 있다.
1963년 이전 까지는 위에서 언급한 활동이 주를 이루었고, 레지오에 대한 홍보는 가톨릭 시보와 경향 잡지에 의존하였다.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 창단 10주년을 맞이하여 《레지오 마리애》라는 기관지를 발간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레지오 마리애에 관한 외국의 소식과 함께 국내의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한국 세나뚜스 월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발행되었다. 이는 당시 통신 수단이 빈약했던 시대에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한국 세나뚜스 월보》는 1988년 6월호를 끝으로 다시 《레지오 마리애》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발간되고 있다.[15]
1979년에는 서울, 광주 세나뚜스와 부산 레지아가 연합하여 한국천주교회 선교 200주년을 맞이하는 1984년에 200만 신자화를 달성하기 위한 민족 복음화 활동안[16] 을 발의하였고[17] , 1985년에는 300만 신자화를 위한 민족 복음화 운동[18] 을 발의하여 신자 가정 방문과 외교인에 대한 입교 권유와 묵주기도 3억단을 바치며 미사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계획하였다.
3.3. 문제점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인하여 단원들로 하여금 편리에만 안주하도록 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는 단원들의 근본정신을 이완시킨다. 따라서 선교에 대한 필요성에 의문을 갖게 되고 활동 또한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만 남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음의 문제로는 친교 중심의 모임으로 변질됨을 언급할 수 있다. 단원들끼리의 원활한 활동과 깊은 유대, 결속을 위하여 친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친목은 같이 기도를 하고 선교와 사도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 나갈 수 있지만 흔히 말하는 ‘2차 주회’라는 이름의 저속한 술자리가 메인이 되어버렸다. 심한 경우에는 이 ‘2차 주회’를 위하여 쁘레시디움에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심각하고도 엄중한 문제이고, 성모님에 대한 중대한 죄이다.
다음으로는 사목자와의 관계이다. 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이 비대해지면 입지가 강해져 레지오의 성향과 다른 본당 사목 방침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또한 사목자의 잘못된 이해와 무관심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긴급한 문제는 한국 가톨릭 신자 자체의 급감으로 인한 단원 활동의 위축이다. 이 문제는 레지오 뿐 아니라 교구 더 나아가 한국 천주교회 전체가 정말 시급하게 해결해야만 한다.
3.4. 쇄신과 활성화 방안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세속화라는 현대사회의 풍토에 대응하여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설자인 프랭크 더프는 봉헌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아 겸손을 실천하고자 하는 레지오 신심을 강조하였다.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서 레지오 마리애의 초창기 신심의 강조점을 다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세속화에 따른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풍토에서 벗어나고 공과 사를 구분하여 친목이 중심이 아닌, 선교와 기도를 중심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가 성모 마리아의 최고의 덕목인 겸손과 순명의 정신으로 교회 활성화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함을 다시금 깨달아야 한다. 본당 신부 혼자서 한 본당의 레지오 조직 전체를 완벽하게 관할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에 따라 꾸리아 간부 월례회의나 쁘레시디움 단장 월례회의를 갖는 방법이 좋다. 이를 통하여 쁘레시디움 단원들을 지도하는 간부들과 신부가 만나 본당 레지오의 실태를 파악하고, 레지오는 본당의 사목 방침에 대하여 파악을 함으로써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레지오 마리애의 미래를 위하여 청소년, 청년 레지오를 활성화해야 한다. 현재의 교본은 성인 단원들을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청소년, 청년들의 성향을 맞추고 이해를 돕기 위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교회의 미래를 짊어질 열쇠이기 때문에 이들이 레지오 마리애 안에서 기도와 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여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나갈 기둥이 되어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기성세대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에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레지오 마리애 자체와 한국 천주교의 미래를 위하여 청소년,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19]
4. 영성
레지오 마리애의 영성에서 핵심은 레지오 단원이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거룩해지는 것(성화聖化)’에 있다. 성모 마리아를 이 성화의 롤모델로 삼으며, 성모 마리아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로서 레지오 단원들에게 성화의 은혜를 전달해준다.[20]
4.1. 사도직으로서의 기본 정신
레지오 단원들은 개인의 성화를 위해 마리아의 정신을 따른다. 이 정신에는 10가지 덕목이 있다. 그것은 겸손, 순명, 온유, 기도, 고행, 순결, 인내심, 지혜, 사랑, 믿음이다. 또한 레지오 마리애는 ‘사도적 정신’을 강조하는데, 성모 마리아가 예수께 행한 봉사와 도움의 정신을 일컫는다. 이에 따라 마리아를 참된 여성 사도라고 말한다.[21] 여기까지 알 수 있듯이 레지오 마리애 영성은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체득하고 일치한다는 것이 기본 골격이다.
4.2. 레지오 마리애 성모신심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단원들의 성모신심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 다음으로 중요하며, 레지오의 본질적 요소라고 말한다.[22] 레지오 마리애의 성모신심은 그 설립자인 프랭크 더프가 직접 그의 저서에서 말한 대로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영성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기인한다.[23]
성 루도비코의 성모신심은 그의 대표 저서인 『참된 신심』과 『마리아의 비밀』에 잘 드러난다. 여기서의 올바른 성모신심은 성모님께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는 것으로, 이것을 완전한 신심이라고 부른다. 이 완전한 신심은 곧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위함이다. 레지오 단원의 활동은 완전한 신심을 바탕으로 마리아의 겸손을 배우고 그분을 위해 봉사하며 신심을 실천한다.
성 루도비코의 성모신심은 중세시대의 대중성모신심과 18세기 계몽주의시대의 신심을 잘 반영한다. 중세시대 대중신심은 두려움의 대상인 하느님과 비교되어 인자하고 너그러운 이미지의 성모님께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성모님께 대한 마음을 표현할 때 화려한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18세기는 루도비코가 살던 시대로 종교개혁에 대한 반발로 성모신심이 강조되었다. 이런 요소들이 레지오 마리애의 성모신심 관련 용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4.3. 레지오 마리애 영성에 대한 비판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성모신심은 많은 대중의 지지도 받았지만 여러 신학자들 사이에서 비판받았다. 예를 들어 성 루도비코 및 레지오 마리애는 하느님 은총의 절대적 중재자로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 문구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교회 교도권은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이자 모범이라 말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야할 명백한 피조물이라고 말한다.[24] 레지오 마리애가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신심은 다소 지나치다는 평가가 따른다.
특히 한국에서도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레지오 마리애 한국 3대 세나뚜스에 선서문에 대한 개정을 요청하였다.[25] 문제를 제기한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성모 마리아 없이는 알아 뵈올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는 문구이다. 신앙교리위원회는 이 문구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와 중개를 지나치게 성모 마리아의 역할 안에서 제한적으로 보는 시선이라고 보았다. 가톨릭은 유럽의 대중이 중세의 여러 질병과 전쟁 등의 상황을 겪으면서 심판하시는 하느님보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이미지의 성모 마리아에게 기대려는 경향이 반영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4.4. 영성 결론
레지오 마리애의 성모신심은 주로 중세시대 심판자로서의 성부(하느님), 성자(그리스도)보다 인자로운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하려던 모습과 18세기의 경향 속에서 피어난 성 루도비코의 마리아 신심이 레지오 마리애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그런데 이 신심은 오해의 여지가 다분해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므로 레지오 마리애는 교회 교도권[26] 보다는 일반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널리 퍼진 마리아 신심을 더 잘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명확하게 성모신심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레지오가 세계 곳곳에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고 매우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만큼 레지오 마리애가 영향력이 매우 큰 단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표하는 레지오 마리애 교본의 일부 표현은 충분히 비판받을 만 하다.
5. 조직
5.1. 구조
레지오는 고대 로마 군대의 편제를 따라 피라미드식 조직을 이루고 있다. 기본 단위체를 “쁘레시디움”이라고 부르고, 관리기관인 평의회로 “꾸리아”, “꼬미씨움”, “레지아”, “세나뚜스”가 있다. 그리고 세계 중앙 평의회로 “꼰칠리움 레지오니스 마리애”가 있다. 모든 관리기관은 쁘레시디움처럼 상급 평의회에 소속되거나 꼰칠리움에 직속된다. 교본에 따르면 꼰칠리움을 제외한 모든 레지오 마리애의 단위체는 관할 상급 평의회 또는 꼰칠리움의 정식 허가와 본당신부 또는 교구장 주교의 승인을 받아야만 설립될 수 있다.
쁘레시디움 (Pr.) → 꾸리아 (Cu.) → 꼬미씨움 (Co.) → 레지아 (Re.) → 세나뚜스 (Se.) → 꼰칠리움
5.1.1. 꼰칠리움 레지오니스 마리애(Concilium Legionis Mariae)
- 세계 회의라는 뜻으로서 레지오의 최고 관리권을 가진 최상급 중앙 평의회.
- 항상 교회 권위를 따르며 모든 레지오 규칙의 제정, 변경 또는 해석하는 권리, 지역에서 쁘레시디움 및 하급 평의회를 창설하거나 해산하는 권리 등을 지님.
- 모든 하위 기관들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제소를 심판하며 단원의 자격 문제 및 사업 또는 그 수행 방법의 적합성 등을 결정하는 권한을 지님.
- 꼰칠리움은 전 세계 1개만 존재하며, 레지오 마리애 발상지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음.
5.1.2. 세나뚜스(Senatus)
- 고대 로마 제국의 원로원을 뜻하는 용어로서 보통 한 국가 안에 소속되어 있는 레지오 단체를 관할하는 기관, 즉 국가의 평의회.
- 규모가 크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한 국가에 다수의 세나뚜스가 설립될 수도 있음.
- 한국에는 총 3개의 세나뚜스가 존재.
5.1.3. 레지아(Regia)
- 고대 로마 황제의 관저 또는 집무실을 의미
- 레지오 마리애 규모의 확장에 따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새로 창설된 평의회.
- 꼬미씨움으로 관할하기에는 너무 크고, 세나뚜스를 설립하기에는 너무 작은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는 지역 평의회.
- 한국에는 총 15개의 레지아가 있다.
5.1.4. 꼬미씨움(Comicium)
- 고대 로마의 시민회의를 지칭하는 용어.
- 여러 꾸리아를 관리하는 상급 꾸리아로 기존 꾸리아보다 한 단계 높은 평의회.
- 꼬미씨움은 보통 한 교구 이상의 지역을 관할할 수 없음.
- 한국에는 총 244개의 꼬미씨움이 존재.
5.1.5. 꾸리아(Curia)
- 고대 로마의 지방 의회를 의미.
- 일정 지역에 설립된 둘 이상의 쁘레시디움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쁘레시디움의 상부조직.
- 레지오의 중심이 되는 평의회로 여러 조직의 일치를 위한 중추 역할을 수행 함.
- 한국에는 총 2,418개의 꾸리아가 존재.
5.1.6. 쁘레시디움(Praesidium)
- 로마 군대에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파견대를 의미.
-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기본 단위.
- 쁘레시디움은 영적 지도자와 단장, 부단장, 서기, 회계, 단원으로 구성된다.
- 한국에는 총 28,794개의 쁘레시디움이 존재.
단원은 행동단원과 협조단원으로 구분되는데, 협조단원은 일종의 '''보급병'''이라고 보면 된다. 가톨릭 교회의 절대적인 보급이라면 바로 기도이기 때문에 협조단원들은 뗏쎄라에 나온 기도문을 매일 바쳐야 할 의무가 반드시 주어진다. 이는 실질적 활동에 나서는 단원들을 뒤에서 지원한다는 의미이다.
고급(?)의 협조단원은 '''아듀또리움''' 단원(Adjutorian), 고급(?)의 행동단원들은 '''쁘레또리움''' 단원(Praetorian)[27] 이라고 한다. 이들은 미사와 영성체, 성무일도, 뗏세라의 모든 기도를 매일 수행해야 한다. 성무일도는 간략하게 줄인 소 성무일도로 해도 된다. 또 미사와 영성체의 경우도 현재는 주 2회만 해도 쁘레또리움 단원의 의무를 수행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바쁜 현대 사회에서 매일 미사와 영성체를 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배려한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단장의 지시에 따라 둘씩 짝지어 매주 2시간 이상 활동하고, 매주 정한 시간에 회합을 하며, 그 활동 내용을 보고한다.
대한민국에는 동·서·중서울, 의정부, 인천, 대전, 수원, 청주, 부산, 마산, 안동, 전주, 원주, 춘천, 제주에 레지아가, 광주, 서울, 대구에 세나뚜스가 조직되어 있다.
특별히 '직속' 이라는 개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교목실의 쁘레시디움인 '기쁨의 샘' 쁘레시디움은 가장 말단조직인 쁘레시디움이지만 꾸리아 소속이 아니라 꼰칠리움을 제외하면 제일 큰 조직인 세나뚜스의 직속이기도 하다. 또 다른 예로 대구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 직속의 경북대학교 가톨릭 동아리 빨마 내의 '즐거움의 샘'과 '은총의 샘' 쁘레시디움이 이와 유사한 경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특혜를 받는 것은 아니고 대학생들이 기특하게도 열렬한 활동을 하겠다니 높은 분들이 예쁘게 봐주신 듯. 다른 쁘레시디움과 직속이 다른 점이라면 기쁨의 샘, 즐거움의 샘, 은총의 샘 등과 같은 경우 본래대로라면 꾸리아 평의회에 참석해야 하나 그렇지 않고 바로 세나뚜스 평의회에 참석하는 정도의 차이.
5.2. 한국 레지오의 세나뚜스
5.2.1. 광주 중재자의 마리아 세나뚜스
5.2.1.1. 연혁
- 1953년 05월 31일 “치명자의 모후”, “평화의 모후”, “죄인의 의탁” 쁘레시디움 설립
- 1955년 10월 09일 “매괴의 모후” 꾸리아 설립
- 1956년 08월 07일 “중재자이신 마리아” 꾸리아 설립
- 1956년 12월 06일 “중재자이신 마리아” 꼬미씨움 승격
- 1958년 07월 13일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 승격
5.2.1.2. 규모
레지아 4개, 꼬미씨움 81개, 꾸리아 630개, 쁘레시디움 8,249개.
행동단원 67,545명, 쁘레또리움단원 2,244명, 협조단원 45,565명, 아듀또리움단원 576명
총 115,930명.[28]
5.2.2.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5.2.2.1. 연혁
- 1955년 08월 19일 흑석동(구 명수대)본당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 설립
- 1957년 01월 29일 혜화동 본당 “상지의 좌” 꾸리아 설립
- 1960년 03월 30일 명동 “무염시태” 꼬미씨움 승격
- 1974년 09월 25일 명동 “무염시태” 레지아 승격
- 1978년 12월 23일 서울대교구 “무염시태” 세나뚜스 승격
5.2.2.2. 규모
레지아 10개, 꼬미씨움 128개, 꾸리아 1,464개, 쁘레시디움 16,470개.
행동단원 135,524명, 쁘레또리움단원 13,653명, 협조단원 188,475명, 아듀또리움단원 8,858명.
총 344,651명.[29]
5.2.3. 대구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
5.2.3.1. 연혁
- 1957년 01월 13일 왜관 “종도의 모후” 쁘레시디움 설립
- 1957년 02월 03일 대구 계산성당 “다윗의 탑(다윗의 적루)” 쁘레시디움 설립
- 1958년 01월 22일 계산성당에 “의덕의 거울” 꾸리아가 설립
- 1959년 01월 22일 “의덕의 거울” 꼬미씨움 승격
- 1986년 05월 01일 “의덕의 거울” 레지아 승격
- 2003년 12월 21일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 승격
5.2.3.2. 규모
레지아 1개, 꼬미씨움 35개, 꾸리아 324개, 쁘레시디움 4,075개.
행동단원 33,322명, 쁘레또리움단원 587명, 협조단원 14,881명, 아듀또리움단원 164명
총 48,954명[30]
6. 회합
6.1. 의미 및 역할
-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은 레지오의 심장이며 레지오를 밝히는 전력과 동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이고 레지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제공해주는 보화의 곳간.
-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단원들과 더불어 앉아 계시는 위대한 공동체의 수련 도장이기에 주회합을 통해 단원들의 활동에 필요한 독특한 은총을 베풀어 주심.
- 주회합은 으뜸가는 의무이며 가장 신성한 의무.
- 주회합의 참석의무는 무엇으로도 대신 채울 수가 없음.
6.2. 순서
① 주회합의 시작
단장은 “지금부터 ○○○ 쁘레시디움 제 ○○○차 주회합을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선언한다.
② 시작기도와 묵주기도레지오 마리애의 기도문의 시작기도와 묵주기도 5단을 바친다.
③ 영적독서단장은 “오늘의 영적독서는 OOO페이지 O줄부터 OOO페이지 O줄까지입니다.” 라고 말하여 영적독서를 읽는다. 쁘레시디움 설립 초기에는 교본으로 영적독서를 할 것을 권하며 독서가 끝나면 단원들은 함께 성호를 긋는다.
④ 앞선 주회합의 회의록 낭독회의록 낭독 후 단장은 수정여부를 단원들에게 확인한다.
⑤ 상훈 낭독매월 첫 주 회합 때, 단장이 앉아서 낭독함. 상훈 낭독 후에는 성호를 긋지 않는다.
⑥ 새 단원 가입입단을 권유하는 단원이나 단장은 새 단원 영입에 신중을 기해 생각해야 한다.
⑦ 출석호명출석은 부단장이 부르되, 무고 결석자는 방문을 실시한다. 호명이 끝난 다음 “총원 O명, 간부O명, 단원O명이 출석하였습니다.”라고 출석내용을 보고한다.
⑧ 간부이동새롭게 임명된 간부의 명단과 임명일자를 보고하고 출석부와 회의록에 기록한다.
⑨ 통신교환단장은 상급 평의회의 공지사항, 서신 등의 모든 내용을 상세히 전달하며 문서는 수·발신으로 구분한다.
⑩ 회계보고회계는 주회합 때마다 전차 이월금, 수입·지출 내역과 잔액의 내용을 전 단원에게 명확히 보고해야 한다. 쁘레시디움 단원은 누구나 회계의 내역을 알 권리가 있다.
⑪ 활동보고활동 보고는 기도와 마찬가지로 회합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활동 보고를 통해서 각 단원이 어떠한 활동을 했는가가 분명하게 나타나야한다. 단원들은 단장으로부터 배당받은 활동에 대한 보고를 전 단원 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렷한 음성으로 앉아서 보고한다. 보고하기 전에 “성명, 세례명, 보고하겠습니다.”라고 한다. 단원은 한 주간에 최소한 2시간을 실제로 활동에 바쳐야 한다.
⑫ 까떼나까떼나는 라틴어로서 ‘고리’를 의미하며, 후렴을 제외한 까떼나의 본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마리아의 노래로 되어 있다. 이 까떼나를 바침으로써 단원들은 하나의 고리로서 서로 연결되며, 초자연적인 영신 질서 안에서 단원은 성모님과 하나로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 까떼나는 전 단원이 일어서서 바친다.- 까떼나가 끝난 후에는 바로 훈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성호를 긋지 않는다.
- 개인적으로 까떼나만 바칠 때는 시작과 끝에 성호를 긋는다.
⑬ 선서
입단한 지 3개월이 되고 레지오에서 계속 봉사하기를 원하는 단원이라면, 성령께 선서를 바쳐야 한다.
⑭ 훈화훈화는 영적 지도자나 그 대리자가 담당하며, 불참 시에는 단장이 하거나 단장이 지명하는 단원이 할 수도 있다.
⑮ 비밀헌금비밀 헌금 주머니를 돌릴 때에는 회의 진행에 지장이 없도록 탁자 밑으로 돌린다.
⑯ 활동보고 계속쁘레시디움의 단원 수가 많아서 전반부에 모든 단원이 보고를 마치지 못했거나 누락된 보고가 있을 경우 추가로 보고를 받는다.
⑰ 활동배당단장은 단장 계획서에 의거, 모든 단원들에게 다음 주간에 해야 할 활동을 반드시 배당해야 한다.
⑱ 교본공부모든 단원은 교본을 철저히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본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레지오 활동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없다.
⑲ 협조단원 돌봄과 새 협조단원 모집협조단원을 모집하고 돌보는 일은 레지오 단원의 의무로 사제나 수도자 혹은 평신도 모두가 레지오의 협조단원이 될 수 있다.
⑳ 기타사항레지오의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의견이나 질문, 토의 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
㉑ 마침기도와 강복마침기도는 모두 일어서서 바치며 “티 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모든 은총의 중재자시여”라는 호칭기도를 쁘레시디움 이름으로 바꾸어 바친다. 영적 지도자가 참석했을 경우에는 영적 지도자를 향해 서서 강복을 받고 불참 시에는 다 함께 성호경을 바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마침기도가 끝나면 촛불을 끈 후 단가를 부를 수 있다
7. 주요 기도문
레지오의 기본 기도문인 뗏세라(Tessera)는 레지오 마리애의 기도문과 레지오를 상징하는 성화가 인쇄된 유인물을 의미한다.
전세계 모든 레지오 마리애가 동일한 뗏세라를 쓰고, 레지오 단원은 이 기도문을 지니고 다니고 매일 마쳐야하는 의무를 가진다.[31] 레지오의 기도인 뗏세라는 총 세 부분, 시작기도 > 까떼나 > 마침기도로 이루어진다.
전세계 모든 레지오 마리애가 동일한 뗏세라를 쓰고, 레지오 단원은 이 기도문을 지니고 다니고 매일 마쳐야하는 의무를 가진다.[31] 레지오의 기도인 뗏세라는 총 세 부분, 시작기도 > 까떼나 > 마침기도로 이루어진다.
7.1. 뗏세라(Tessera)
[image]
로마 군단 내에서 통용되는 암호가 기재된 네모난 비표(秘標)에서 유래되었으며, 간단한 기도문과 성화가 인쇄된 쪽지를 가리킨다. 전세계 모든 레지오 마리애가 동일한 뗏세라를 쓰고 있으며, 레지오의 단원이라면 반드시 지니고 다닐 의무가 있고 쁘레또리움 단원이나 아듀또리움 단원, 협조단원은 여기에 적인 기도문을 매일 바쳐야 하는 의무가 존재한다. 여기에 적힌 기도문은 레지오 시작기도, 성모찬송, 까떼나, 마침기도.
뗏쎄라의 주변에 새겨진 라틴어 글귀는 다음과 같다.
'''INIMICITIAS PONAM INTER TE ET MULIEREM ET SEMEN TUUM ET SEMEN ILLIUS IPSUM CONTERET CAPUT TUUM'''
(이니미치띠아스 뽀남 인떼르 떼 엣 물리에렘 엣 세멘 뚜움 엣 세멘 일리우스 입슘 꼰떼렛 카풋 뚜움)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창세기 3장 15절
'''ECCE MATER TUA'''
(엑체 마떼르 뚜아)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 복음서 19장 27절
'''MULIER ECCE FILIUS TUUS'''
(물리에르 엑체 필리우스 뚜우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요한 복음서 19장 26절
'''BEATA QUAE CREDIDIT'''
베아따 꾸에 끄레디딧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루카 복음서 1장 45절
시작기도로는 짧은 성령 송가(Veni Sancte Spiritus)와 묵주기도 5단 그리고 마리아를 공경하는 찬송가인 성모찬송기도(Salve regina)를 바친다.[33]'''MAGNIFICAT ANIMA MEA DOMINUM'''
마니피캇[32]
아니마 메아 도미눔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2번째 부분인 까떼나는 본래 사슬, 고리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기도를 통한 레지오 단원간의 친교와 일치의 의미로 확장된 의미를 갖는다. 까떼나에는 특히 기도문의 핵심부분인 마니피캇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기도는 ‘구세주 하느님께 대한 찬양’, ‘하느님 업적의 회상’, ‘하느님 계획의 실현에 대한 찬미’의 내용을 지닌다.[34]
마침기도로는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Sub tuum praesidium)과 성인호칭기도(Litaniae Sanctorum), 그리고 성령께 믿음을 간구하는 기도,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 사제의 강복이 이어진다.
8. 선서문
수련 기간을 마친 단원은 선서문을 읽는 입단식을 가짐으로서 정규 단원이 된다. 이 선서문은 성령신심과 성모신심이 결합된 기도문으로 그 내용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여기엔 성령송가, 재능·성덕·은총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보편적 중재, 마리아의 용기와 겸손을 본받음, 성령께 선교의 도구가 되도록 도움을 청함, 단원들과의 결속력을 청함의 내용이 포함된다.
선서문은 프로테스탄트와 대립하여 성모 신심이 강조된 시기에 작성되었기에 구원역사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문제점을 지니기도 한다.
9. 활동 및 행사
9.1. 활동
활동의 대원칙은 주 회합을 통해 쁘레시디움에서 배당받은 활동을 수행한다. 마리아와 일치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수행하고 보고하는 것이 레지오 사도직의 본질로 여겨진다.
활동은 한 주간 최소한 2시간을 실제로 활동에 바쳐야하며, 선배 단원과 후배 단원이 2인 1조가 되어 매주 배당되는 활동을 시행한다. 필요에 따라 쁘레시디움, 꾸리아 차원으로 집단 활동을 하기도 한다. 완수한 활동은 주 회합 때 보고를 한다.
활동에는 ‘입교(개종) 권면’, ‘예비신자 돌봄’, ‘교우(새 영세자, 냉담자, 조당자) 돌봄’, ‘어려움 겪는 이(빈곤자, 병원 및 복지시설) 돌봄’, ‘레지오 확장’, ‘본당 협조’, ‘교회 출판물 보급’, ‘자연 보호’, ‘거리 청소’, ‘낙태 방지 운동’, ‘지역사회 봉사 활동’ 등이 있다. ‘레지오의 활동’
9.2. 행사
행사에는 아치에스(Acies), 연차 총 친목회, 야외 행사, 쁘레시디움 친목회, 그리고 기타 행사가 있다.
아치에스는 라틴어로 ‘군진(軍陣)’을 의미. 단원들은 매년 3/25(주님탄생예고축일) 전후로 함께 모여 악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힘과 축복을 받기 위해 성모님께 자신을 드리는 봉헌예절을 바친다.[35]
연차 총 친목회(매년 12/8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전후), 쁘레시디움 친목회(매년 9/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전후), 그리고 야외 행사 등은 단원들이 친목회를 통해 형제애로 일치를 이루는 데 그 목적을 갖기 위한 행사이다.
기타 행사에는 ‘성모의 밤’, ‘쁘레시디움 모임’, ‘세상을 떠난 단원을 위한 위령 미사’, ‘세나뚜스 주관 행사’, ‘상급평의회 주관 간담회’ 등이 있다. ‘레지오 행사’
[1] 레지오 마리애의 단원임을 나타내는 비표인 '뗏세라(Tessera)'의 오른편에 있는 휘장이다.[2] 정확히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이다.[3]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당연 이전부터 가톨릭 내의 보수적인 신학자들을 대표하는 거물급 신학자였으며, 신앙교리성 장관이기도 했다.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공동 구속자 호칭에 관하여 "성경이나 교부들의 말과 너무나 다르며 신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자제해 달라"고 강경한 반대의견을 펼치기도 했다. 공동 구속자라는 칭호는 레지오 마리애 교본을 번역하는 와중에 완전히 잘못된 오역이라는 말도 있다.[4] 일단 이 호칭을 반대하는 쪽이든 허용하는 쪽이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속하였고, 성모 마리아가 여기에 공헌한 게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데 동의한다. 문제는 이 '없는 것은 아닌 공로'를 '구속 사업자'라고 표현하느냐 마느냐에 있다.[5] 사실 창세기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여기서의 여자는 뱀에게 낚여서 원수진(...) 하와를 뜻한다. 그러나 가톨릭에선 여자를 성모 마리아로, 여자의 후손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본다. 뱀에게 굴복한 하와를 뱀과 원수졌다고 해석하기보다는, 이 부분 자체가 미래에 대한 복선이라고 해석하는게 자연스럽기 때문. 즉 "뱀아 넌 예수 그리스도한테 밟힌다"라는 뜻.[6] 참조: 최경용, 《레지오 마리애 영성》, 바오로딸, 1998, 42쪽.[7] 참조: 콘칠리움 레지오니스, 《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 가톨릭출판사, 2000, 436쪽.[8] 참조: Robert Breadshow(안상인 역), 《프랭크 더프의 생애》, 성요셉출판사, 1989, 96-98쪽.[9] 최경용, 같은 책, 43쪽.[10] 최경용, 같은 책, 71쪽.[11] 최경용, 같은 책, 92쪽.[12] 푸른 배경에 성모 마리아의 양팔 소매에서 빛이 쏟아지는 모양의 메달.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가 파리 뤼뒤박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수녀원에서 체험한 파리의 성모로, 성모 마리아는 그녀에게 '가톨릭 신자들이 이 메달을 만들어 지니고 다니라'고 했다고 한다.[13] 참조: 부산 바다의 별 레지아, 《천주교 부산교구 레지오 마리애 50년사》, 정광, 2008, 40-41쪽.[14] 참조: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서울대교구 레지오 마리애의 현황과 전망 –천주교 서울대교구 레지오 마리애 신앙생활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 가톨릭출판사, 2006, 8쪽.[15] 참조: 허윤석, 『한국 레지오 마리애와 선교』, 석사학위논문, 가톨릭대학교대학원, 1999, 50-51쪽.[16] 200만 신자화 달성을 위한 민족 복음화 활성안을 통해 교세는 약 185만 명으로 늘어나 목표의 92%에 해당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17] 참조: 허윤석, 같은 책, 55쪽.[18] 복음화 운동이 마무리된 1990년 말, 275만 명으로 늘어나 목표치의 91%에 해당하는 성과를 보였다.[19] 참조: 송원섭,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쇄신 방안 연구』, 석사학위논문, 인천가톨릭대학교대학원, 2012.[20] 최경용, 같은 책, 150쪽.[21] 레지오 마리애 교본, 6장 3항.[22] 같은 책, 5장 1항.[23] Umberto Corna, La voce della Legione 3<1973>, 1쪽.[2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대한 교의헌장 8장, 53항.[25] 참조 :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에 관한 신앙교리위원회의 논의와 건의[26] 사실 교도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8장 54항에서 언급했듯이 마리아 관련된 교리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27] 로마군의 프라이토리아니(근위대)에서 유래한다.[28] 2018년 8월 기준[29] 2019년 8월 기준[30] 2019년 7월 기준[31] 참조 : ‘뗏세라’, 가톨릭굿뉴스, 가톨릭사전, http://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5451&keyword=%EB%97%8F%EC%84%B8%EB%9D%BC&gubun=02[32] 마리아의 노래[33] ‘기도문’, http://senatus.or.kr/?page_id=11879 [34] https://ko.wikipedia.org/wiki/마니피캇 [35] ‘아치에스’, 가톨릭굿뉴스, 가톨릭사전, http://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5968&keyword=%EC%95%84%EC%B9%98%EC%97%90%EC%8A%A4&gubun=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