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자카 케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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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松坂慶子(Keiko Matsuzaka)
'''한국명'''
한경자(韓慶子)
'''출생일'''
1952년 7월 20일(현재 71세)
'''출생지'''
도쿄 도 오타 구
'''본관'''
청주 한씨
'''국적'''
일본[1]
'''신체'''
162cm, A형
'''가족'''
어머니,남동생
'''데뷔'''
1967년 울트라 세븐[2]
1. 소개
2. 활동
3. 여담


1. 소개


1952년 7월 20일생. 일본의 배우이자 가수. 한국계 일본인으로 재일교포 2세이다. 한국이름은 한경자이며, 재일교포아버지 한영명(마츠자카 히데아키)씨와 일본인 어머니 츠네코와의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따라서 재일 한국인 2세보단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태어났을 당시에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것은 맞다.
도쿄 도 오타구[3]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모유수유도 못 할 만큼 약해 병원 왕래도 잦았다.
5살 무렵 아버지의 권유로 피아노, 노래 등을 배웠다. 또한 스스로 발레를 배우고 싶어해 부모가 데려다 준 극장에서 을 따라하며 놀았다. 그 이후 피아노, 아동 무용을 배우기 위해 호두 예술 학원에 다닌다. 마츠자카의 아버지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마츠자카는 의욕이 없었다고 한다.
어릴 때 키가 커서 별명이 ‘땅두릅의 대목’이었고 운동신경도 좋아 남자아이와도 활발하게 노는 아이었다고.
한국인 피가 섞여서 인지 얼굴상이 일본 여인보다 한국 여인에 더 가까운 편이다.

2. 활동


1960년에 어린이 합창단 활동을 시작해서 중학교 3학년 때, ‘극단 해바라기’에 입단, 이후 1967년 ‘울트라 세븐’, ‘꾸러기 닌자 토리’, ‘닌자 괴수 싯포’로 텔레비전에 첫 출연을 하며 아동 배우가 되었다. 이 극단에서 활동을 하다가 17세때 스카우트 되어 1970년에 "다이에이"로 본격적으로 영화배우 데뷔를 했고, 1972년에 쇼치쿠로 이적했다.
가수로도 활동하였는데, TBS 테레비 드라마 시리즈 ‘수중화’(이츠키 히로유키 작)의 테마곡 ‘사랑의 수중화’를 불렀고, 바니걸 의상으로 섹시 여배우 이미지를 굳혀 스타로 떠오른다. 그러나 ‘사랑의 수중화’는 마츠자카가 가수로서 히트한 유일한 노래였다.

여기서 얻은 인기로 2, 30대이던 1970~80년대 일본 연예계를 주름잡던 청춘 스타로 등극, 각종 드라마, 영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청순하면서도 관능적이며 섹시한 톤을 지닌 이중적 이미지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연기자가 되었다.
1980년대엔 영화 쪽에서 이름을 높였다. 주로 후카사쿠 킨지가 감독한 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는데, ‘카마타 행진곡’, ‘청춘의 문’, ‘8인의 사무라이 전설’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서민극 프랜차이즈인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에도 출연하며 위치를 확고히 했고, 1990년엔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죽음의 가시"로 여러 영화상을 수상했다.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을 정도였고 연기 평도 상당히 좋았다.
전성기를 맞은 마츠자카는 광고 촬영도 많이 했다. 그 시작은 18살에 찍었던 화장품 광고. 이후 라면, 보온병, 자동차, 카레 등 다양한 광고에 출연했다. 그 중엔 인터넷 괴담으로 유명한 크리넥스 티슈 CF도 있었다. 지금도 ‘Japan Kleenex’ 로 검색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광고 콘셉트 자체는 평범하지만 저화질 영상과 조금 음산한 음악 때문에 도시전설이 나돌았다. 중년에 접어든 후에도 그녀는 꾸준히 CF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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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마츠자카 케이코.
2000년에 "도쿄 전화"의 CM를 가진 주부를 코믹하게 연기해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2002년에는 헤어누드 사진집 "벚꽃 전설"을 찍어 히트했다. 그것도 '''나이 51살''' 에 말이다! 2005년 가을에 텔레비 아사히 방송으로 방송된 드라마 ‘숙년 이혼’의 주연을 맡아, 이혼 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주부로 호연했다. 최근에는 차분한 어머니나 아내 역을 많이 맡는다.
이외에 아오이 유우가 나왔던 "하와이언 레시피"(2009)에 출연하기도 하고, 2004년엔 하리수와 함께 ‘하리수 도색’에도 출연했다.
2013년에 개봉한 GARO 창곡의 마룡에서 최종보스인 쥬담 역을 맡았다. 연기 커리어 처음으로 와이어 액션에 도전했다고. 2014년도에는 아버지의 모국인 한국을 방문해 중앙대학교에서 연극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3. 여담


1991년, 40세에 무명재즈 기타리스트인 타카우치 하루히코와 결혼했다. 슬하에 두 자녀를 낳고 잠시 미국으로 이주했었다.
결혼에 반대하는 부친이 연일 와이드쇼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부친은 대구 출생으로 15세에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와서 일본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일본인 공장주와 근로자들부터 조센징이라는 온갗 모멸을 받고, 나가사키현의 지옥섬 다카라지마에 광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다가 떠내려온 통나무를 붙잡고 탈출한 인물이었다. 온갖 차별과 싸우면서도 자식 교육에 공들였고 결과적으로 딸은 일본에서 톱 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딸의 결혼 뒤 재산문제 등으로 마찰이 끊이지 않아 방송에 출연한 것이라고 한다. [4] 비슷하게 반대하던 어머니하고도 절연한 상태였으나 아버지가 2007년 사망하면서 화해해, 지금은 가족이 어머니랑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1] 결혼 후 귀화하였다.[2] 29화에서 우주세균 다리가 기생한 '카오루'라는 소녀로 첫 출연했다.[3] 작은 공장이 들어선 도쿄의 공업지대[4] 심지어 마츠자카 케이코의 아버지였던 마츠자카 히데아키는 케이코의 남편인 하루히코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으며 딸 내외와 대화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츠자카 일가가 벌이고 있는 골육상쟁극도 따지고 보면 일본 사회내에서의 재일교포 차별이 가져온 비극이나 다름없긴 하다. 그는 이 자신처럼 차별받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정성을 쏟아부었으나 딸이 일본인과 결혼하자 배신감을 느껴 갈등이 시작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