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스포츠/농구
1. 한국프로농구
- 강대협, 조성민: 창원 LG 세이커스 시절 한정.
- 김태술: 전주 KCC 이지스,서울 삼성 썬더스
안양 KGC 인삼공사에서 뛰다가 2014-15 시즌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 되어 왔다. 그것도 연봉 6억! 그러나 부상의 여파인지 시즌 시작 전 국가대표팀으로 뛰었던 농구 월드컵과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완전히 폭망한 모습을 보여주며 고태술, 김퇴술 등의 부정적인 조롱이 붙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14-15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시망급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연봉 6억의 가치는커녕 팀에 완전히 마이너스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kcc 몰락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던 리딩 능력마저 부상 후유증 탓인지 완전히 상실하였다. 15-16시즌에도 마찬가지어서 평가전에서의 평가가 중위권 대학 포인트가드의 리딩 능력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으며, 심지어 득점가담, 패스 투입, 드리블 능력, 스틸 능력 모든 면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은 국가대표에서도 여전했는데, 팬들은 김태술을 그냥 귀국시키라, 최준용보다 나은 게 뭐냐? 놀았냐 라는 등, 이런 말을 통해서 나온 처참한 경기력을 통해 씻을 수 없는 망신까지 당했다. 그리고 아마 팀에 복귀해서도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1]
- 그렉 콜버트: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다 말 그대로 시즌 중에 튀었다. 그가 빠진 동양 오리온스는 세계기록 32연패를 달성.
- 양희승: 부산 KTF 매직윙스 시절 한정.
- 은희석: 안양 SBS시절부터 이적 없이 한 팀에서만 가드로 적절한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리빌딩 돌입 시점부터 부상으로 주저앉으며 3억의 높은 연봉을 받고 벤치에만 있는 신세. 일명 은삼억. 은퇴 이후 대학농구를 떡주무르듯 하는 연세대 농구부 감독으로 인생역전.
- 김승현: 대구 오리온스의 프랜차이즈이자 농구계의 스타플레이어였지만 FA 이면계약 등 온갖 구설수를 일으키며 팀도 자신도 나락으로 추락, 서울 삼성 썬더스로 이적하지만 그를 데려오려고 준 선수가 김동욱이었고, 김동욱에 비해 김승현은 4억 연봉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삼성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 전형수: 전형적인 슈팅가드로 그냥저냥 뛰다가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서의 부활을 보고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데려갔는데, 오자마자 바로 똥망. 종종 프로농구 역사상 최악의 FA계약으로 회자되곤 한다.
- 주태수: 11-12시즌, 12-13시즌을 거쳐 용병과 빅맨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한때 식물감별사라는 별명과 함께 공헌도를 인정받아 5년 연간 3억의 계약을 따내며 일약 팀내 고액연봉자가 되었지만, 2013-2014년부터는 부상과 부진으로 경기도 얼마 못나오고, 경기를 나와도 오래뛰지 못하고 자기가 식물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팀 내에서 입지도 김상규, 이정제, 정효근같은 젊은 빅맨들에게 밀리는 형편. 실제로 전자랜드는 주태수가 제대로 나오지 못했음에도 2013-2014년 4위, 2014-2015년에도 중위권 경쟁을 하고있다. 이후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되어 그곳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 기승호: 군 입대 전에는 창원 엘지 세이커스에서 문태영 다음으로 국내 에이스로써 버금가는 활약을 했었고 수비, 궂은일, 심지어는 김동욱, 박상오처럼 가드진의 연결고리까지 도맡으면서 리딩,슛도 정확했지만 군 전역때 뛰어난 활약을 했음에도 부상이 잦아서 그 이후로 폼이 떨어져 버렸다..거기에 발목 부상까지 당한데다가 활약도에 비해 터무니없는 고연봉(현재 3억이다!)으로 만인의 농구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여기에 문태영하고 챔피언 결정전 때 추태는 그의 이미지를 많이 말아먹었다. 그 이후로 고향팀인 안양 KGC인삼공사로 쫓겨나듯이 트레이드 되었고 거기서는 어느 정도 폼을 되찾으면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로 이적했다.
- 이승준: 부상으로 1년 쉰 선수를 팀의 기둥 김민수보다 큰 연봉으로 데려오고 미디어데이 때도 내보냈다. 결과는? 수비안돼 득점안돼 부상재발의 악몽의 4연타. 시즌 중반부턴 D리그에 갔는데 여기서도 못해서 까였다. 현재는 그냥 농구관광을하고 있다. SK에서 1시즌만 뛰고 은퇴해버렸다.
- 이동준: 이승준의 동생. 시즌 초반에 드러누운데다가 형이랑 똑같이 수비못해 공격안돼를 폭발시키며 팀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 2군 김우겸과 신인 이대헌에게도 밀리며 벤치만 하염없이 달군다. 데려오는 대가로 내준 주희정은 날라다니고 있어서 더욱 부각되는 먹튀. 현재는 경기장에서 싸이클만 씽씽 타고 있다. SK에서 1시즌만 뛰고 은퇴해버렸다. 2
- 이정석: 이동준과 같이 주희정을 삼성에 주고 데려왔다. 이정석은 나와서는 턴오버 폭발. 상대팀이 뒤쳐지면 점수차 순식간에 좁혀주기를 하는데 반해 주희정은 답이 없는 삼성 가드진을 멱살잡고 끌어올리면서 SK를 상대로 5승이나 쓸어담았다. 그 이후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이적했지만 또다시 벤치신세 이후 은퇴했다?
- 오용준: 박상오를 kt에 주고 데려왔다. 외곽포를 기대하고 데려왔지만 외곽포는커녕 한경기당 2점도 못넣고있다. 이후 안양 KGC인삼공사로 축출되었다가 그곳에서도 전혀 활약을 못하고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이적했으며 다시 부산 kt 소닉붐으로 옮겨갔다.
- 양희종: 13-14시즌이후 FA가 되었지만, 기록은 점점 더 떨어지고 슈팅은 나아지지 않아 사실상 수비용 선수로 전락했는데도 연봉이 너무 많은것이 문제. 분명 정규리그에선 낮은 득점과 야투율로 먹튀라 불릴만 했지만 생애 두번째였던 16-17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또다시 미친 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통합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거기에 선수단을 한데 뭉치게 하는 리더십은 물론이고[2] 시즌 종료 후 사비로 팬들에게 고기를 살 정도로 팬 서비스까지 좋아서 안양 KGC의 팬들에게 먹튀 이미지는 거의 없는 편이다.
- 이광재: 동부 시절 주전 2번으로 활약하며 한떄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FA로 KT로 이적해서는 대부분 출장시간을 위시로 많은 기록이 반토막났고 심지어 노상 부상으로 허덕이면서 1군 엔트리에 합류를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연봉이 2~3억대 가까이 된다. 이후 다시 친정인 원주 DB 프로미로 복귀했다.
- 변기훈: 군 전역후 처음 치루는 풀시즌이였던 16-17시즌 내내 최악의 부진을 겪었지만 SK 구단 측에서는 공로를 생각해 3억에 FA 게약을 했다. 17~18시즌 또한 여전히 심각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모습을 보여줬다. SK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에 공헌한 것이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수준.
- 강병현: 선수지명과 데뷔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했지만 서장훈과 하승진의 공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했다. 그 이후 KCC에서 성장하면서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끌기도 했고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하면서 일약 KCC를 대표하는 주축 프랜차이즈 선수로 떠올랐다. 그렇지만 무슨 일인지 갑작스럽게 무너졌고 부상까지 당하면서 안양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 이적 첫해는 쏠쏠하게 활약했지만 다시 고질적인 부상이 발목을 잡으면서 반년을 통으로 쉬어버렸고 이후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지 못하고 창원 LG 세이커스로 마지못해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 박상오: 부산 kt 소닉붐과 서울 SK 나이츠에서 혁혁한 활약을 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여러차례 팀을 옮겨 다니는 중이다. 이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은퇴했다.
- 윤호영: 원주 DB 프로미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한때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음에도 잦은 부상이 발목을 잡아 탁월한 수비에 비해 기복이 심한 공격력과 슛으로 팬들의 뒷목을 잡고 있다.
- 김현중: 오리온에서 김승현의 백업선수로 데뷔한 이후 창원 LG 세이커스에 잠시 있다 그 당시 상무에 입대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들어가서 양동근의 공백을 착실히 메웠다. 허나 막판에 부상으로 안타깝게 낙마해서 다시 창원 LG 세이커스로 오게 된다. 하지만 잦은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부산 kt 소닉붐으로 옮겼고 이거 때문에 KT는 무리하게 전태풍을 영입했지만 신통찮게 되었다. 그 이후 김종범과 같이 트레이드를 통해 원주 DB 프로미에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마쳤다.
- 김동욱: 서울 삼성 썬더스 2기 시절.
삼성 1기 시절때는 신예 포워드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오리온으로 트레이드 된 뒤에는 2015-16 시즌 추일승식 포워드 농구의 핵심 멤버로 자리잡아 오리온의 챔피언 결정전 두 번째 우승[3] 에 공헌을 할 정도로 좋은 선수로 평가받았었다. 이후 FA로 보수총액 6억 3천만원이라는 대박을 쓰고 삼성으로 돌아온 첫 시즌에는 나름대로 평범했으나 확실히 연봉에 비한다면은 약간 아쉬운 정도였다. 두번째 시즌부터는 부상과 부진으로 돈값 못한다는 소리를 듣더니 급기야 시즌이 다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부상으로 조기 시즌아웃 판정을 받으면서 돈값 하기는커녕 밥값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김우람 - 전주 KCC 이지스와 부산 kt 소닉붐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선수로 잦은 부상으로 인해 빠지는 경기가 많다.
2. 한국여자프로농구
- 고아라: 여자프로농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 삼성생명의 먹튀 3인조 중 1명. 삼성생명에서 실컷 트롤링하다 FA로 친정 팀인 부천 KEB하나은행으로 돌아와서도 명불허전으로 먹튀짓.
- 김계령: 삼성생명(1998~2004), 춘천 우리은행 한새시절까진 괜찮았다. 우리은행 이적할 땐 자기 역할도 잘 했고 암흑기의 에이스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부천 신세계 쿨캣 트레이드 후 기록 대비 팀 성적은 폭망했고 1년 만에 삼성생명이적 이후 급격히 출전시간이 줄어들더니 12-13시즌 이후로는 벤치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거기다 우승은 개뿔이고 팀 성적은 4-2-4-4... 2년동안은 그래도 나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적 당시 2억5000만원 받고도 12-13시즌후엔 1억 5000만원이 삭감된 1억. 12-13시즌 후 인상되었다고 하지만 연봉에 비해 줄어든 출전시간... 플레이오프 진출이 3팀으로 줄어들고는... 걍 망했다.
- 박태은: 연차만 있지 성장은 전혀 못하고 자신이 무슨 플레이를 해야 할 지 모차 모르는 선수로 삼성생명 먹튀 3인조 중 1명 이후 우리은행으로 이적.
- 이유진: 13-14시즌 1억 5천만원 받고 하나외환으로 갔지만 삼성생명때와 마찬가지로 성장은 성장대로 못하고 돈만 먹고 튀었다.
- 정선화: 13-14시즌 청주 KB 스타즈에서 1경기도 뛰지 않았으면서 2억 2500만원이나 받아 먹었는데. 2억에 2년 계약으로 부천 KEB하나은행으로 이적했으나 1시즌도 제대로 뛰지 못했다. 무릎 부상 마저 발견되어 14-15시즌 후 아예 은퇴하며 고아라를 능가하는 먹튀 확정. 그 이후 수원 OK저축은행 읏샷으로 복귀를 선언하여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팀이 부산으로 옮겼음에도 고질적인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은퇴하고 말았다.
- 모니카 라이트: NBA 슈퍼스타 케빈 듀란트의 약혼녀. 부천 KEB하나은행 소속의 외국인 선수였는데, 가족 문제를 들먹이며 팀을 무단이탈하여 5년동안 WKBL에서 뛸 수 없게 됐다.
- 김수연: 외국인 제도가 없었던 시절에는 여자농구판 식물 감별사로 쏠쏠한 활약을 하다가 고질적인 부상으로 출장시간이 크게 줄면서 이적해 온 정미란과 신예 박지수, 김민정한테까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신세가 되어버리면서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로 쫓겨났다.
- 이경은: 금호생명부터 시작해 KDB생명 위너스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폼과 팀 성적이 동시에 하락, 이후 전성기 때 영원한 맞수였던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로 이적했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후술할 김이슬보다는 덜하아.
- 김이슬 : 18-19시즌 종료 후 신한은행으로 이적하면서 연봉이 1억 8100만원이었는데 이 마저도 선수층이 무너지다 시피한 신한이니까 가능했지 선수층이 정상이었다면 FA미아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19-20시즌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1억500만원으로 삭감되었는데 20-21시즌은 한 술 더 떠 아예 드러누웠는데 그러는 동안에 이경은이 부활하고 무릎 부상에서 복귀한 유승희, 김애나가 부활하며 팀 내 입지마저 좁아지고 말았다.
- 양인영 : 센터가 약한 부천 KEB하나은행에서 1억 2100만원에 이적했는데 오히려 이적한 팀에서도 짐짝 수준의 민폐 플레이만 하고 있다. 오히려 삼성생명이 손절 잘 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3. NBA
- 고든 헤이워드: 이쪽은 좀 운이 없는 케이스 계약첫해부터 르브론과 충돌로 부상 당한뒤 이후 부진과 부상에 시달리다가 2020년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또 부상을 당하기 이르렀다
- 그랜트 힐: 디트로이트의 에이스였지만, 올랜도로 거액 이적후에는 부상때문에 경기를 잘 나오지를 못했다. 이 때문에 티맥이 빈약한 동료 지원속에 고생했다. 게다가 올랜도에서 골골대다 말년으로 갈수록 점점 건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말년에는 쌩쌩한 모습을 보이며 올랜도 팬들을 벙찌게 했다. 계속 다친 건 발목이지 무릎은 건강하니까...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원인은 정확히 규명된건 아니지만 그 당시 그랜트는 필라 신발을 사용했는데 그것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다.[4] 그리고 먹튀긴 했지만 건강할때는 그런저런 성적을 내주기도 했고 올랜도 시절이 끝난뒤는 준수한 성적을 내주었기 때문에 먹튀라는 인식이 좀 덜하긴 하다. 다만 이건 한국 팬들 사이에서 인식이고 올랜도 팬들에겐 빼박 먹튀다. 올랜도와 7년 계약했는데 제대로 (그나마도 70경기가 안된다) 뛴 건 딱 두 시즌 정도밖에 안된다. 한마디로 준수한 실력의 선수를 두 시즌 쓰려고 슈퍼스타급 연봉 7년치를 준 셈이니 올랜도 팬들 입장에선 환장할 수밖에. 게다가 이 계약이 끝나자 피닉스와 저렴하게 계약했다. [5]
- 길버트 아레나스: 워싱턴 위저즈의 인기 많은 에이스로 한때는 길교주였으나 대형계약 후 어느샌가 부상으로 골골대며 제 몫을 못하다 락커룸에 권총을 보관했다가 적발되는 초대형 사고를 치면서 시즌을 완전히 망치고 이후 기량까지 바닥나며 다른팀으로 쫒겨난 뒤 커리어를 마감했다.
- 더마레 캐롤: FA 비인기 도시인 토론토가 4년 5700만달러라는 구단 역사상 최고액으로 애틀랜타 60승의 주축 멤버이자 플레이오프에서 핸들러역할까지 겸하는 시장 최고의 3&D플레이어중 하나였던 캐롤을 영입하게 되었는데, 캐롤은 개막후 몇경기는 그럭저럭 했으나 이후 부상 당하면서 실력이 도로 줄어버리면서 수비도 3점슛도 못넣는 잉여에 르브론에게 원래 강한편이 아니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르브론에게 그야말로 탈곡당하면서 토론토가 16시즌~17시즌 무력하게 시리즈를 내주는데 영향을 미쳤다. 거기에다가 당시 뜨고 있던 2라운더 유망주 3번 노먼 포웰의 시간까지 나눠받으면서 나오던 터라 플레잉타임 뺏어가는 잉여취급 받으면서 브루클린으로 쫒겨났다.
- 데릭 로즈: 시카고가 드래프트에서 홈보이인 로즈를 1픽으로 지명하고 로즈는 염가로 잡혀있는 루키계약에 만점활약을 하며 조던이후 시카고 불스의 최고의 선수로 등극하며 떠오르는 스타플레이어로 급부상한다. 세번째 시즌에는 조아킴 노아와 함께 시카고를 최고의 팀으로 올려놓으며 2010~2011 시즌에 MVP를 따내면서 한창 주가를 높이고 나서 사무국이 로즈의 이름을 딴 로즈룰이라며 MVP수상, 올스타, All NBA TEAM 수상성적이 있으면 루키계약후 맥시멈보다 더 추가된 금액에 일명 로즈룰슈퍼맥시멈이란 혜택을 로즈가 받으면서 슈퍼맥시멈 계약을 한다. 이 슈퍼맥시멈 계약이 시작되는 첫해를 ACL 부상으로 단한번의 출장도 없이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다음시즌 복귀를하고 평득 15.9득점에 야투율 35.4% 트루슈팅 44.6%로 D리그선수 급의 성적으로 고작 10경기 출장하고 또다시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고만다. 이 2시즌은 NBA역사상 역대 넘버원 먹튀급으로 남았다. 하지만 다음시즌 복귀하지만 MVP를 수상했던 선수가 계속된 부상으로 그냥 평균급 주전PG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2시즌을 뛴뒤 뉴욕으로 트레이드 되어 뉴욕에서도 평균 혹은 준수한 주전PG로 활약했다. 하지만 슈퍼맥시멈 금액에는 못미친 3년동안은 준수한 먹튀라 할수있겠다. 하지만 물론 먹튀는 먹튀였다. 슈퍼맥시멈가지고 평균-준수 수준의 주전PG였으니 말이다. 종합적으로 5년간의 슈퍼맥시멈계약은 결국 종합적으로보면 수준급 먹튀라 볼수있고 첫2시즌은 역대 NBA역사상 최악의 먹튀였다. (하지만 이 최악의 먹튀시즌은 파슨스의 16-17시즌의 의해서 갱신되었다고도 볼수있다.) 단 최근에는 MVP 급은 아니더라도 1.5내지 2군급의 포인트가드의 실력을 보여주며 다시 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부상을 이겨내고 보여준 투혼의 모습때문인지 많은 시카고 팬들 역시도 그를 응원하는등 점차 시선이 부드러워지고 있기는 하다.
- 라샤드 루이스: 국내 nba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연봉조던"이란 별명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고졸 스타로서 장신의 슈터였던 루이스는 2007년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하며 6년 1억1천800만 달러 계약을 맺는다. 루이스는 매직에서 양궁부대의 일익으로 쏠쏠한 활약을 해줬지만 통산 2회 올스타에 불과한 선수에겐 과분한 금액. - 누가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올랜도 매직이 혼자만의 경쟁심으로 라샤드 루이스에게 저 계약을 선사했다. - 심지어 계약 이후 득점이 거의 매년 감소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2009년에 올스타에 뽑히긴 했지만 계약기간 내내 한번도 평득 20점을 못 넘겼다. 견디다 못한 매직은 2010년에 또다른 먹튀 길교주 길버트 아레나스를 받고 워싱턴으로 그를 넘겨버린다. 2012년에 위저즈 소속으로 28경기에 출전해 평균7.8점, 총 217점(;;;)을 넣으며 받은 연봉은 2천1백만달러... 거의 1점당 1억이다 삼점슛 하나에 삼억이 생기는꼴. 야 신난다 버틸수 없었던 위저즈는 그를 뉴올리언즈 호네츠로 넘기고 여기서 결국 방출된다.
- 비스맥 비욤보: 샬럿에서 8순위로 지명되어 별로인 성장세와 늘지 않는 공격역량때문에 좋은 계약을 따내지 못하고 토론토와 FA재수를 택했는데, 토론토에서 벤치 센터로 나오면서 림프로텍터&리바운더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다. 특히 16년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26리바운드 4블록으로 매치업 상대인 트리스탄 탐슨을 찍어누르는 활약을 하면서 인상깊은 모습을 보였고 리빌딩하던 올랜도가 홀랑 4년 7000받고 이적했으나, 전형적인 백업 빅맨에게 과하게 오버페이해서 올랜도는 시즌농사를 망쳤다. 블랙홀기질에 스크리너&핸즈오프 역량은 전혀 없고 수비 마저도 토론토가 잘 활용하면서 약점을 가렸는데 올랜도에서는 수비적인 커버를 별로 받지 못하며 수비에서도 영 아니었다.
-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피닉스 시절 여러 부상을 달고서도 올 NBA급 파워포워드 실력을 보여주며 뉴욕 닉스와 5년 100M이라는 거대 계약을 맺었다. 닉스와 계약한 첫 해에도 All-NBA 세컨드 팀에 들면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줬지만, 이후 잦은 부상으로 자주 결장하며 부상때문에 점점 실력이 떨어지더니 13-14시즌에 들어서는 완벽한 먹튀로 전락해버렸다. 결국 14-15시즌에 닉스에서 바이아웃 된 후, 댈러스 매버릭스 에서 콜업하여 매버릭스에서 뛰었으며, 이후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여 1년을 뛰었고, 2017년 7월 26일 닉스와 은퇴를 위한 계약, 은퇴발표, 곧바로 웨이브 되어버린다.
- 안드리스 비에드린스: 통칭 비듬린스.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이전의 라트비아 출신 농구선수이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빅맨인데, 나름대로 기대를 가지고 11픽으로 뽑은뒤 빅맨흉작인 팀에서 꽤 좋은 성장세를 보이면서 08-09년부터 시작되는 6년 5400만불의 계약을 맺었는데 이때부터 폭망하기 시작한다. 08-09시즌에는 시즌평균 더블더블을 기록하면서 기대를 갖게 하더니 다음해부터 부상에 시달리면서 결장경기수가 많아졌으며, 부상과 함께 기량도 안드로메다로 날라가 골든스테이트 팬들의 뒷목을 잡게하는 실력을 보여줬다. 백미는 선발출장 9분동안 4파울이라는 가공할만한 파울관리 능력. - 파울 하고 손을 드는 모습이 멋있다는 평이 많다. - 결국 팀은 12-13시즌이 끝나고 알짜 선수인 재럿 잭과 칼 랜드리를 잡지 못했다. 이후 유타로 샐러리 캡 절감차원에서 트레이드 되었고 유타에서 6경기 나오고 사실상 커리어를 마감했다.
- 안드레아 바르냐니: 일명 7풋 센터. 2006년 1픽으로 토론토에 입단했지만 당초부터 오버픽이라는 소리가 많았다. 토론토 시절에는 득점력은 준수했으나 인사이드에서 잘 놀지 않으면서 7풋 슈터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7풋 슈터라는 것 자체는 거짓말은 아니고 외곽능력도 분명히 있으나, 3점을 넣으면 3점을 주는 생산력을 자랑하였다. 이후 몇 번의 부상으로 폼이 떨어진 상태에서 닉스가 무려 2016년 1라운드 지명권까지 내주면서 영입했고 닉스에서 완전히 폭망했다. 부상으로 실력도 줄고 잦은 결장에 소위 말하는 스탯찌질이 짓까지 하면서 뉴욕의 망조에 일조했다. 결국 14-15시즌 이후 브루클린으로 이적했다.
- 오메르 아식: 2014-15시즌부터 휴스턴-워싱턴-뉴올리언스와의 3차 트레이드 형식으로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5-16시즌 시작 전에 5년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 첫해부터 68경기 4.0득점 6.1리바운드라는 창렬스러운 스탯을 기록하더니 다음해엔 아예 드러누워서 31경기중 19경기만 선발에 2.7득점 5.3리바운드라는 눈이 썩는 스탯을 기록, 커즌스를 영입하여 더 높은곳을 바라보는 팀의 암적 존재가 되어있다. 뉴올리언스 팬들은 제발 어디로 픽 끼워서 보낼 수 없냐고 욕을 하는 상황. 그리고 니콜라 미로티치 트레이드에 끼워져 시카고에 처분하는데 성공했다.
- 앤드류 바이넘: 어떻게 보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된 원인일수도.. LA 레이커스 시절에는 데뷔때부터 기대를 모았고 LA 레이커스의 우승도 이끌었고, 점차 실력이 늘면서 11-12 시즌에는 완전히 엘리트급 센터로 자리매김 했다. 이후 8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기적적인 업셋을 이뤄냈지만 2라운드에서 바로 탈락한 필라델피아가 로스터의 한계를 느끼고 프랜차이즈 스타인 안드레 이궈달라까지 내주면서 하워드라마에 참여해 바이넘을 얻었지만 무릎이 불안한 상태에서 비시즌동안 무릎에 무리가 가는 볼링을 계속 치는등 무릎 상태를 악화시키면서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12-13 시즌을 통으로 날려 버렸다. 수술을 3월이 돼서야 받게 해 필라델피아 팬들을 빡치게 한것은 덤. 이후 2년 24M의 계약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이적했으나 거기서도 팀 캐미를 해치는등 기행을 계속 일삼았으며, 결국 구단으로부터 무기한 출전 정지를 받고 시카고로 트레이드된 뒤 방출되었다. 동 시즌 인디애나와 계약했지만 또 부상당하면서 시즌을 마감했고, 이후 무릎부상으로 계속 개점휴업상태이다. 사실 여러 선수한테 거친 파울을 하는등 멘탈레기로 악명이 높다.
- 앨런 휴스턴: 한때 최고의 슈팅폼을 가진 슈팅 가드이자 뉴욕 닉스에서는 1억 달러 먹튀로 악명 높은 선수. 사실 첫번째 닉스 계약 당시엔 먹튀는 아니었다. 오히려 98-99시즌 뉴욕이 8번 시드의 기적을 일으킬때 마이애미와 최종전에서 위닝샷을 쏘기도 했고, 라트렐 스프리웰과 함께 트윈테러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2번째 계약에서 6년 100M이라는 당시 기준으로 메가톤 계약을 맺는다. 당시 그의 나이 30. 계약 첫해와 이듬해 까지는 팀의 코어로서 활약하였으나, 전설의 스캇 레이든이 팀 개편에 손을 대던 2003-2004 시즌 갑자기 부상을 당하게 된다. 이 시즌 뉴욕 닉스는 감독을 3명을 갈아 치웠으며, 잦은 로스터 변동으로, 팀의 무려 22 명이 로테이션에 속했었던 시즌이었다. 그 다음 시즌인 2004-2005 닉스는 전설중의 전설인 아이재이아 토마스 체제가 들어서게 된다. 당시에는 희망적인 팀 움직임이라 여겨 앨런 휴스턴도 희망적으로 12월 에 복귀를 하였으나, 한달을 조금 넘게 뛰다가 희망적이지 않단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시금 몸이 부서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스 팬덤에서는 앨런 휴스턴을 먹튀라고 욕하기 보단, 까지 말자 혹은 까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정리하자면 "2차 계약이 엉망이 된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그의 훌륭한 슛 디시젼과 페이스업 게임 능력 등 플레이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무엇보다 닉스란 팀의 상징성을 이을 인물로 그 계약은 할 만 한 계약이었고, 자꾸 부상 이야기 하는데 다친 사람이 제일 속상할 테니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는 의견이 다수이다. 추가로 당시 닉스가 저지른 실책이 워낙 많아서 묻힌 것도 있다. 사실 지금에 와서야 비난여론이 많이 줄어든거지 과거에 영광을 잊지 못하고 언제든 반등할 수 있을거란 환상을 가졌던 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닉스팬들의 실망과 비난은 컸다. 당시만 해도 영입 몇번만 잘하면 바로 컨텐더급으로 올라갈 수 있을거란 희망이 있었으며, 아이재아 토마스가 스테판 마베리를 영입한 것을 두고 잡지 루키에서 "일 잘하는 CEO가 얼마나 팀을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평할 정도. (조현일 편집장 시절 이후 인력난에 허적이는 루키가 아니다. 당시는 아직 최연길이나 손대범을 필두로 필진 뎁쓰가 두텁던 시절) 그러나 지나고보면서 감독과 싸우면서 팀 케미를 박살내는 마베리, 커리, 랜돌프의 말썽쟁이 듀오,한심한 수준의 드래프티들, 전성기가 지난 상태에서 영입해 좀 잘하다가 노화로 돈값을 못하는 왕년의 슈퍼스타 등등 수많은 먹튀들이 닉스를 기나긴 암흑기로 몰고가면서, 부상 때문에 못 뛴 것이었을 뿐 실력도 좋고 인품도 좋은 휴스턴에 대한 비난여론이 급격히 사그러진 것이다. 게다가 실력없는 먹튀들이 프랜차이즈 역사를 좀먹는 동안 "그나마 휴스턴 만한 슈터가 어딨었다고"하면서 추억보정도 들어가고 거기에 99년의 영웅 중 하나였다는 것도 더해 현재는 현지건 한국에서건 환영받는 닉스선수가 된 것. 사실 현역 당시와 은퇴 이후 대접이 다른 선수는 많다. 당장 현재 뉴욕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대접받으며 아직도 닉스 팬들이 그리워하는 패트릭 유잉도 현역 시절 우승도 못한다며 많이 까였다. "유잉 무용론"은 개소리지만 이를 믿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면 그렇게 퍼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기대치의 문제인데, 컨텐더를 기대하던 팬들은 휴스턴을 욕하고, 우승을 바라던 팬들은 유잉을 욕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것이다.
- 에디 커리: 가격 자체는 6년간 평균 900만 달러 선이기 때문에 가격은 다른 먹튀들에 비해 비싸지는 않지만 커리를 데려오기 위해서 1라운드 픽을 2개나 줬는데 그 1라운드 픽으로 시카고는 라마커스 알드리지[6]와 조아킴 노아를 뽑아버렸다. 게다가 커리는 첫 두해에는 그럭저럭 활약 했는데 이후 발전은 커녕 몸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결장이 계속되다 08-09, 09-10시즌을 합쳐서 총 10경기만 뛰게 되었다. 결국 먹튀인 커리를 처분하기도 힘들어진 닉스는 2010년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커리는 이후 미네소타로 트레이드된 후 미네소타에서도 방출당했고, 중국을 전전하다 은퇴했다.
- 조아킴 노아: 필 잭슨사단이 뉴욕에 뿌린 똥 중 하나. 누가봐도 하락세가 명약관화한데다 유리몸화 되어가는 수비형 빅맨에게 4년 7200만달러라는 오버페이를 했고, 결국 뉴욕 닉스 소속이던 2016~2019년 초까지 꼴랑 53경기 나왔다.
[1] 사실 김태술의 암흑기는 13-14시즌 후반기부터 예견되어 왔다. 이미 그 이전부터 만성 장염에 시달리면서 근육량 관리에 애를 먹은 것도 모자라 무릎 부상, 체력 부족 게다가 부친의 별세로 인해 피지컬, 멘탈에 급격한 난조를 겪어 리딩능력 상실, 득점력이 전반기에 비해 1/2가량으로 줄었고, 모든 지표에서 하향세 폭이 컸다. 이후 최하위를 기록할 뻔한 암울한 상황에서 그나마 양희종이 폭발하여 꼴찌는 면한 거다. 하지만 14-15시즌은 모든 정신을 새로이 한 입단 때, 그리고 이후 보여줬던 몸상태로 보아서 정상적인 멘탈, 피지컬에도 불구하고 먹튀짓을 했으니 훈련이나 개인 관리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건 불보듯 뻔한 것. 특히 6억이라는 거액을 받고 이적해 왔으면 못할 경우 전주 팬들한테 어떠한 쌍욕을 들을지 모른다. 김민구를 두둔, 네티즌들과 충돌하며 행실에 문제를 일으킨 추승균(감독시절 한정), 그리고 그 범죄행위의 당사자 김민구와 함께 금지어. 포인트 가드 6년 주기설의 원조인 삼성 이상민 감독과의 궁합은 잘 맞아 서울 삼성이 한때 13승 3패로 리그 1위를 달리게 하는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후 또다시 부진에 빠졌고 심지어 플레이오프에서는 인삼공사가 2라운드에서 뽑은 신인가드 박재한한테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에는 그야말로 다시 원상복귀된 모습을 보이면서 먹튀라고 까이고 있다.이후에 원주 DB 프로미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2] 오죽하면 16-17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당시까지 악명높았던 김승기 감독을 4쿼터 마지막에 사용할 작전으로 어떤 걸 쓸지를 놓고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을 정도. 그리고 양희종의 이 제안을 수용한 결과, 안양 KGC가 통합 우승을 완성할 수 있었으니...[3] 2001-02 시즌에 첫 우승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