藩 / 藩國 / 藩邦 / 藩土 / 藩屛
1. 중국의 번
본래
주나라의 통치 제도에서 유래된 말로
천자국에서
제후국을 일컫는 용어이다. 짧게 번(藩)이라고 하며 나라, 영토를 뜻하는 국(國), 방(邦), 토(土)를 붙히기도 했다. 또한 비유적인 표현으론 병풍 병(屛) 자를 써서 '천자국의 울타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제후국을 '''천승지국(千乘之國)'''이라고도 하는데, 주나라 제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천자는 전차 1만 승(乘)과 6군을 거느린다고 했으며 제후는 전차 1천 승과 3군을 거느린다고 해서이다.
주나라 이후 중국 왕조의 예는
번진과
삼번의 난 참조.
2. 한국의 번
봉건제가 실행된 적이 없는 한국 왕조에선 번국이란 제도가 드물게 이용되었다.
신라의 경우,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봉하고
보덕국을 번병(藩屛)으로 삼은 기록이 있다.
고려왕조는 번 제도와 표현을 오랫동안 쓴 왕조로 여진에게 동번(東藩), 서번(西藩), 서북번(西北藩)이란 칭호를 붙혀 자국의 제후국으로 상정했다. 또한
오등작을 받아 제후로 봉해진 왕족 및 신하들은 번(藩)을 하사받은 것으로 취급하여 천자국으로서 군림했다.
[1] 원종의 경우, 자신의 유조에 번(藩)이 함부로 이동하지 못하게 조치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원 간섭기 이후에는 약 100년 동안 실질적인 원나라의 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왕조 당시엔
명나라나
청나라 측 기록을 보면 명나라, 청나라 측에서는 조선을 번국(藩國)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왕조 내에선 사대주의자들은 스스로 조선을 중국의 번이라 칭했다.
서인에 속하는 신경(申炅)이 집필한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라는 책은 제목이 종주국 명나라가 번방(藩邦) 조선을 다시 만들어 준 기록(
재조지은)이라는 뜻이다.
3. 일본의 번
중국의 용어에서 유래하여, 일본에서는
막부 시대의
일본에서 영주(
다이묘)가 다스리던 영지를 의미한다.
위키백과 일본식으로는 '한'(はん)이라고 읽는다.
전국시대에는 성의 유무,
광산 같은 특수한 자원, 군사적인 입장 등을 고려해 정해졌지만 중요점은 '''경제력'''으로 3~4년 평균을 잡아 영지 내에 한해 수확되는 쌀이 10,000섬이 넘는 경우 번으로 분류되었다. 일제침략기에 들어온 말인 만석꾼이란 말이 여기에 기인한다고 한다.
번의 영지는
율령국의 '''국'''(国;쿠니)의 영역과는 상당히 달랐는데
고쿠다카가 전국에서 순위권 안에 드는 큰 대번들은 대부분 2~3개 국을 지배했고, 그외 대부분의 중소규모 번들은 1개 국의 영역보다 작은 영지를 지배했다. 히젠 국에 사가 번,
히라도 번,
카라츠 번이 있는 식.
위키백과 번 목록 문서에서 각 율령국 별로 존재했던 번을 정리해본 것을 보면 크기상 율령국보다 번이 더 작은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역사상의 이런
봉건영지가 흔히 그렇듯이 수많은
월경지로 인해 영지의 형태가 매우 복잡한데다 영지가 2개 이상의 율령국 사이에 걸쳐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번의 이름을 율령국에서 따온 경우에도 실제 영지의 영역은 해당 율령국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카가 번은
카가국에서 번명을 따왔으나 카가국 뿐만 아니라
노토 국, 엣추 국까지 지배했고, 조슈(
나가토 국)뿐만 아니라
스오 국까지 지배한
조슈 번,
사쓰마 국 뿐만 아니라 오스미 국, 휴가 국 3국을 지배한
사쓰마 번 같은 경우도 있었다.
본래는
에도 시대의 유학자들이
다이묘의 영지에 대해 상술한 중국의 역사 용어를 차용하여 ‘번국’이라 칭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도쿠가와 막부에서 번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으며, 영주에게 명령을 내릴 땐 해당 영주의 가문을 직접 언급해서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쿠로후네 사건 전후로 점차 사용빈도가 늘며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되기도 했으나, '번'이라는 용어가 완전히 공식적인 명칭이 된 것은 판적봉환을 시행한 1869년부터, 1871년
폐번치현이 되기 전 2년간뿐이다.
덧붙여서 번의 무사라는 뜻인 번사(藩士)라는 용어도 당대에 쓰이지 않았다. 조슈의 가쓰라 코고로를 예로 들면 실제로는 '''모리 가문의 가신, 가쓰라 코고로(毛利家家臣桂小五郎)'''라는 식으로 통성명을 했다고 한다.
- 고쿠다카는 1869년 조사한 우치다카(실질 고쿠다카) 기준
- 인구수는 부번현제 시행 당시(1868 ~ 1871) 조사한 인구조사 기준
번명
| 별칭
| 가문
| 고쿠다카
| 인구
| 비고
|
카가 번(加賀藩)
| 가나자와 번(金沢藩)
| 마에다(前田)
| 1,338,083석(1위)
| 1,065,910명(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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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 번(仙台藩)
| 다테 번(伊達藩)
| 다테(伊達)
| 1,018,818석(2위)
| 204,964명(45위)
|
|
조슈 번(長州藩)
| 야마구치 번(山口藩)
| 모리(毛利)
| 978,004석(3위)
| 608,475명(9위)
| [2] 삿초 동맹, 시모노세키 전쟁, 금문의 변, 조슈 정벌
|
오와리 번(尾張藩)
| 나고야 번(名古屋藩)
| 도쿠가와(徳川)
| 913,827석(4위)
| 917,497명(2위)
| [3]
|
사가 번(佐賀藩)
| 히젠 번(肥前藩)
| 나베시마(鍋島)
| 886,525석(5위)
| 425,762명(15위)
| [4]
|
사쓰마 번(薩摩藩)
| 가고시마 번(鹿児島藩)
| 시마즈(島津)
| 869,593석(6위)
| 896,808명(4위)
| [5] 삿초 동맹, 사쓰에이 전쟁. 아마미 군도까지 지배했으며 류큐 왕국을 속국으로 두었다.
|
구마모토 번(熊本藩)
| 히고 번(肥後藩)
| 호소카와(細川)
| 786,015석(7위)
| 719,990명(6위)
|
|
기슈 번(紀州藩)
| 와카야마 번(和歌山藩)
| 도쿠가와(徳川)
| 615,453석(8위)
| 528,408명(10위)
| [6]
|
후쿠오카 번(福岡藩)
| 치쿠젠 번(筑前藩)
| 구로다(黒田)
| 571,141석(9위)
| 388,409명(17위)
|
|
도사 번(土佐藩)
| 고치 번(高知藩)
| 야마우치(山内)
| 495,486석(10위)
| 516,867명(11위)
| [7]
|
오카야마 번(岡山藩)
| 비젠 번(備前藩)
| 이케다(池田)
| 494,956석(11위)
| 358,327명(21위)
|
|
히로시마 번(広島藩)
| 게이슈 번(芸州藩)
| 아사노(浅野)
| 483,580석(12위)
| 914,157명(3위)
|
|
도쿠시마 번(徳島藩)
| 아와 번(阿波藩)
| 하치스카(蜂須賀)
| 442,735석(13위)
| 714,022명(7위)
|
|
돗토리 번(鳥取藩)
| 인슈 번(因州藩)
| 이케다(池田)
| 428,169석(14위)
| 378,734명(18위)
|
|
아이즈 번(会津藩)
| 와카마츠 번(若松藩)
| 마츠다이라(松平)
| 403,563석(15위)
| 199,211명(47위)
| [8] 9대 번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가 교토수호직을 맡아 신센구미 지휘. 오우에쓰 열번 동맹, 아이즈 전쟁
|
구루메 번(久留米藩)
|
| 아리마(有馬)
| 366,271석(16위)
| 262,085명(31위)
|
|
츠 번(津藩)
| 아노츠 번(安濃津藩)
| 도도(藤堂)
| 358,020석(17위)
| 244,252명(36위)
|
|
요네자와 번(米沢藩)
|
| 우에스기(上杉)
| 336,645석(18위)
| 129,753명
|
|
후쿠이 번(福井藩)
| 에치젠 번(越前藩)
| 마츠다이라(松平)
| 336,194석(19위)
| 202,511명(46위)
|
|
쿠보타 번(久保田藩)
| 아키타 번(秋田藩)
| 사타케(佐竹)
| 332,038석(20위)
| 435,267명(13위)
|
|
모리오카 번(盛岡藩)
| 난부 번(南部藩)
| 난부(南部)
| 316,697석(21위)
| 137,825명
|
|
미토 번(水戸藩)
|
| 도쿠가와(徳川)
| 313,415석(22위)
| 259,344명(33위)
| [9]
|
마츠에 번(松江藩)
| 이즈모 번(出雲藩)
| 마츠다이라(松平)
| 288,029석(23위)
| 296,750명(26위)
|
|
히로사키 번(弘前藩)
| 츠가루 번(津軽藩)
| 츠가루(津軽)
| 287,733석(24위)
| 288,842명(27위)
|
|
츠루오카 번(鶴岡藩)
| 쇼나이 번(庄内藩)
| 사카이(酒井)
| 222,385석(25위)
| 95,356명
|
|
마에바시 번(前橋藩)
| 우마야바시 번(厩橋藩)
| 마츠다이라(松平)
| 217,709석(26위)
| 176,149명
|
|
고쿠라 번(小倉藩)
| 카와라 번(香春藩)
| 오가사와라(小笠原)
| 212,770석(27위)
| 117,835명
|
|
히메지 번(姫路藩)
|
| 사카이(酒井)
| 211,224석(28위)
| 222,661명(42위)
|
|
히코네 번(彦根藩)
|
| 이이(井伊)
| 203,887석(29위)
| 172,545명
|
|
타카마츠 번 (高松藩)
|
| 마츠다이라(松平)
| 201,714석(30위)
| 299,223명(2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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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야마 번(富山藩)
|
| 마에다(前田)
| 159,297석(31위)
| 132,415명
|
|
마츠야마 번(松山藩)
|
| 마츠다이라(松平)
| 157,184석(32위)
| 211,882명(44위)
|
|
야나가와 번(柳河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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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치바나(立花)
| 155,394석(33위)
| 119,708명
|
|
타카다 번(高田藩)
|
| 사카키바라(榊原)
| 154,104석(34위)
| 171,056명
|
|
코리야마 번(郡山藩)
|
| 야나기사와(柳沢)
| 152,912석(35위)
| 99,970명
|
|
쿠나와 번(桑名藩)
|
| 마츠다이라(松平)
| 144,439석(36위)
| 64,868명
|
|
오시 번(忍藩)
|
| 마츠다이라(松平)
| 141,752석(37위)
| 113,703명
|
|
시바타 번(新発田藩)
|
| 미조구치(溝口)
| 139,102석(38위)
| 192,591명
|
|
니혼마츠 번(二本松藩)
|
| 니와(丹羽)
| 133,487석(39위)
| 37,307명
|
|
사쿠라 번(佐倉藩)
|
| 홋타(堀田)
| 132,941석(40위)
| 119,129명
|
|
오가키 번(大垣藩)
|
| 토다(戸田)
| 131,106석(41위)
| 78,901명
|
|
오다와라 번(小田原藩)
|
| 오쿠보(大久保)
| 124,853석(42위)
| 92,883명
|
|
마츠시로 번(松代藩)
|
| 사나다(真田)
| 123,570석(43위)
| 148,589명
|
|
나카츠 번(中津藩)
|
| 오쿠다이라(奥平)
| 119,994석(44위)
| 100,403명
|
|
요도 번(淀藩)
|
| 이나바(稲葉)
| 113,314석(45위)
| 65,439명
|
|
타나구라 번(棚倉藩)
|
| 아베(阿部)
| 112,997석(46위)
| 30,451명
|
|
후쿠야마 번(福山藩)
|
| 아베(阿部)
| 112,728석(47위)
| 187,300명
|
|
오바마 번(小浜藩)
|
| 사카이(酒井)
| 106,599석(48위)
| 111,975명
|
|
츠야마 번(津山藩)
|
| 마츠다이라(松平)
| 104,576석(49위)
| 106,337명
|
|
우와지마 번(宇和島藩)
|
| 다테(伊達)
| 100,402석(50위)
| 169,512명
|
|
아카시 번(明石藩)
|
| 마츠다이라(松平)
| 90,304석
| 76,004명
|
|
다이쇼지 번(大聖寺藩)
|
| 마에다(前田)
| 83,772석
| 48,736명
|
|
쓰시마 후추 번(対馬府中藩)
|
| 소(宗)
| 52,174석
| 83,771명
|
|
마츠마에 번(松前藩)
|
| 마츠마에(松前)
| 30,000석
| 79,742명
| [10] 에도 시대 본거지가 홋카이도 안에 있었던 유일한 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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