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축구)
1. 개요
이집트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알 웨흐다 클럽 감독을 맡았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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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클럽
1999년 이집트의 자말렉 SC에서 데뷔한 뒤, 알루미늄 나그 함마디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에티오피안 커피를 상대로 CAF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데뷔했으며, 시즌이 끝난 이후 벨기에의 KAA 헨트로 이적했다.
이적 이후 초반에는 향수병으로 인해 고생했으나, 곧 극복하고는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갔다. 스탕다르 리에주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해 팀의 2:1 승리를 주도하는가 하면, 로얄 앤트워프롸의 경기에서 1골 2어시스트를 올려 팀의 3:1 승리에 공헌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시즌이 끝난 이후 '이집트 올해의 유망주상' 및 '벨기에 리그 올해의 유망주상'을 수상했으며, '벨기에 에보니 슈'[3] 를 받기도 했다.
시즌이 끝난 뒤 여름 이적시장에서 5년 계약으로 AFC 아약스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는데,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9월 아폴론 리마솔과의 UEFA컵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충돌해 뇌진탕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 얼마 뒤 완벽히 회복한 뒤 팀에 복귀했으나, 그 해 12월 FC 트벤테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공을 걷어차는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퇴장을 당해 3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징계 기같이 끝나 경기장에 복귀했으나, 2002년 3월 페예노르트와의 경기에서 자신에게 출전 기회가 오지 않자 당시 감독이었던 로날드 쿠만과 말싸움을 벌인 끝에 이집트로 단기간 휴가를 떠나며 트러블 메이커에 등극했다. 하지만 FC 위트레흐트와의 KNVB컵 결승전에서 팀의 선제골을 성공시켜 팀이 3:2로 승리하는 데 기여하는 등 팀이 더블을 차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아프리카 올해의 유망주상'을 수상했다.
그 뒤 2002-03 시즌 FC 흐로닝언과의 경기에서 불성실한 태도로 전반전에 조기 교체되었으며, 본인은 경기 중 당한 부상으로 인해 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고 해명했으나 쿠만은 미도가 경기장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다시 언쟁을 벌였다. 이와중에 미도가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할 것이라고 폭탄 선언을 했으나, 곧바로 쿠만에게 사과하며 다시 트러블 메이커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결국 팀에서는 미도에게 벌금 및 한동안 출전 금지 처분을 내렸으며, 그 해 12월 미도는 소속팀에 남아 계속 활약하고 싶다고 밝혔으나, 이미 쿠만에게 찍혀버린 것도 모자라 팀 동료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다툰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나름 준수한 활약에도 벤치 멤버로 전락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국가대표팀 경기 도중 허벅지 부상을 입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아예 리저브팀으로 내려가는 굴욕을 당했다.
이러한 상황까지 오자 유벤투스 FC나 SS 라치오 등 여러 팀으로의 이적설이 돌았으며, 이와중에 셀타 비고가 아약스에 미도의 임대 요청을 하자 곧바로 수락해 스페인으로 가게 되었다. 이후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득점을 하며 팀의 2:1 승리를 주도했다. 그 뒤에도 좋은 활약을 보이자 아약스에서는 시즌 종료 이후 미도를 복귀시키려고 했으나, 미도는 셀타 비고에서 행복하다며 팀에 잔류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해 5월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한데다 설상가상으로 비야레알 CF과의 경기에서 퇴장을 당해 다시 한 번 사고를 치며 팀의 신뢰를 져버렸으며, 결국 시즌 종료 이후 아약스로 복귀한 뒤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자 뉴캐슬 유나이티드, AS 로마 등 여러 클럽으로의 이적설[4] 끝에 5년 계약에 1200만 유로의 이적료로 프랑스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팀을 옮겼다.
이적 이후 EA 갱강과의 경기에서 데뷔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는 등 나름 인상적인 활약을 남겼으나, 당시 팀의 중심 선수가 다름아닌 디디에 드록바였기 때문에 2인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미도는 시즌 종료 이후 타 팀으로 이적하기를 원했다. 게다가 AS 모나코와의 경기 이후 과속 운전으로 법원에 출두하는 등 사고를 저질렀으며, 결국 마르세유 또한 아약스와 마찬가지로 미도를 타 팀으로 이적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전에도 한 번 이적 요청을 했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비롯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베식타쉬 JK 등에서 관심을 보였으며, 결국 2003-04 시즌 종료 이후 5년 계약에 6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아약스 시절부터 자신에게 계속 구애를 해 온 이탈리아의 로마에 입단했다.
입단 이후 ACR 메시나와의 팀에 경기에서 데뷔했으며, 나름 좋은 활약을 선보였음에도 발렌시아 CF나 맨체스터 시티, 사우샘프턴 FC 등 여러 클럽으로 이적설이 돌았다.[5] 다만 로마는 적어도 시즌 종료때까지는 미도가 팀에 잔류하기를 원했으나, 결국 2004-05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18개월동안 잉글랜드의 토트넘 핫스퍼로 임대를 떠나는 것에 합의했다.
잉글랜드 무대에서는 포츠머스 FC와의 경기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이후 시즌 종료 때까지 22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는 무난한 활약을 보였으며, 2005-06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마틴 욜 감독의 신임을 얻었으며, 미도 또한 로마로 복귀하는 것보다 토트넘에 잔류하기를 원했다. 그 뒤 2006년 4월 부상을 입어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 도중 팬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해 웨스트햄 감독이었던 앨런 파듀가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여곡절끝에 시즌 종료 때까지 리그에서 27경기에 출전해 11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보였으며, 당초에는 로마로의 복귀 및 타팀으로의 이적이 제기되었으나 여름 이적시장에서 토트넘이 675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해 미도를 완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6]
이후 런던에서의 활약이 기대되었다...만 포츠머스 FC와의 경기 전 과거 토트넘에서 10시즌동안 활약하기도 했던 솔 캠벨을 '''상대하기 제일 쉬운 수비수'''라고 조롱했다가 구설수에 올랐으며, 시즌 초반 부진을 겪으면서 토트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후 로비 킨과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저메인 데포에게 밀려 공격수 제 4옵션으로 전락했으나,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한 뒤 아스날 FC와의 풋볼 리그 컵 준결승전에서 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이며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알렸다. 하지만 분명 이전 시즌에 비해서 떨어지는 활약이었기 때문에 2006-07 시즌 종료 이후 토트넘은 미도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려 했으며, 이 과정에서 맨체스터 시티와의 이적설이 있었으나 결국 600만 유로에 버밍엄 시티로 이적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미도 본인이 버밍엄이 제시한 계약 조건에 불만을 가졌고, 이에 버밍엄 또한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이적이 무산되었다. 그 뒤 이번에는 미들즈브러 FC가 버밍엄이 제시한 600만 유로를 맞추어 토트넘에 이적 요청을 했으며, 미들즈브러는 미도와의 협상까지 마무리짓고 4년 계약에 미도를 완전 영입했다. 입단 이후 풀럼 FC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으며, 이후 뉴캐슬과의 경기 도중 서포터에게 무슬림을 모욕하는 인종차별 구호를 들었다고 주장해 축구협회에서 해당 사건을 조사하기도 했다. 그 뒤 11월에 치골 부상으로 치료를 받은 뒤 다음해 1월에 팀에 복귀했으며, 3월에 열린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발로 가엘 클리시의 머리를 가격해 퇴장당한 뒤 3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은 뒤 4월에 탈장 수술로 2007-08 시즌을 마감하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 뒤 자신의 전 소속팀인 토트넘과의 2008-09 시즌 개막전에서 득점을 해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으며, 다음 주에 있었던 리버풀 FC와의 경기에서도 득점에 성공하며 전 시즌에 있었던 부진을 만회하는 듯 했다. 이후 포츠머스와 웨스트햄을 상대로 다시 득점포를 가동했으며, 예오빌 타운과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툰카이 산리와 아폰소 알베스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서 위건 애슬레틱으로 6개월 동안 단기 임대되었다. 여담으로 이 당시 뉴캐슬과의 경기 도중 또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며, 조사 결과 뉴캐슬 서포터 2명이 체포되어 처벌을 받았다.
위건에서는 리버풀과의 데뷔전에서 득점을 성공해 팀의 1:1 무승부에 공헌했으며, 아스날과의 경기에서도 득점에 성공했다. 시즌 종료때까지 리그에서 12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는 활약을 한 뒤 미들즈브러로 복귀하게 되었으나, 미들즈브러의 강등이 확정되자 2주 동안 팀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며 합류 거부 의사를 드러내어 구단에 벌금을 지불했다. 결국 2009년 친정팀인 자말렉으로 1년 동안 임대를 떠나기로 합의했으나, 그마저도 다 채우지 못하고 겨울에 복귀해 이번에는 2009-10 시즌 종료 때까지 웨스트햄으로 임대를 떠나기로 합의했다. 웨스트햄이 낮은 주급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예 회복을 위해 계약했으나,[7] 총 리그에서 9경기에 출전해 무득점으로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미들즈브러로 복귀했다.
2010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토트넘 시절 자신의 스승이었던 욜의 러브콜을 받아 자신의 전 소속팀이었던 아약스로 1년 동안 임대를 떠나게 되었으며, 리그 초반에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기회를 많이 부여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겨울에 욜이 사임하고 프랑크 더 부르가 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자 아예 전력외 취급을 당하며 반 년 만에 계약이 취소되었다.
그 뒤에는 자말렉과 3년 6개월 계약을 체결했으나, 자말렉의 실수로 협회에 등록되지 못해 2010-11 시즌 종료때까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일이 터졌다.(...) 이후 2011-12 시즌에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 시즌 종료 후 반즐리 FC로 이적했으나, 단 한 경기에만 출전하고 6개월만에 방출된 뒤 소속팀을 찾지 못해 결국 은퇴를 선언하였다.
2.2. 국가대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이집트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바 있다.
2001년 불과 18세의 나이에 아랍에미리트을 상대로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그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2002년과 200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2002년 대회 당시 잠비아를 상대로 선제골을 득점해 팀의 2:1 승리를 이끄는 등 활약했다.
하지만 2004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마르코 타르델리가 자신을 소집하려 하자 부상을 핑계로 거대표팀 차출에 불응했으나, 하루 뒤 소속팀인 로마의 친선 경기에 출전해 비난을 받았다. 또한 이집트 축구협회에서는 다시는 미도를 국가대표팀에 부르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나, 2005년 1월 타르델리가 경질된 뒤 축구혐회 측에서는 미도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면 국가대표팀에 다시 들어올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결국 한 달 뒤 미도는 카이로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발표했으며, 이후 한 달 뒤부터 국가대표팀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200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도 참가해 리비아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팀의 3:0 승리를 주도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으나, 세네갈과의 준결승전 당시 자신을 교체시킨 것에 대한 불만으로 국가대표팀 감독 하산 셰하타와 말다툼을 벌였으며, 하루 뒤 사과 의사를 표명했으나 축구협회에서는 미도를 6개월동안 국가대표팀에서 제명시키기로 발표했고, 결국 정작 가장 중요한 네이션스컵 결승전에는 나오지 못했다.
3. 감독 경력
은퇴 이후 알 자지라에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의 해설을 맡기도 했으며, 이후 감독 자격증을 취득하고 2014년 1월 불과 30세의 나이에 자신의 친정팀인 자말렉의 감독 권한대행으로 선임되었다.[8] 초창기에는 30세라는 젊은 나이와 은퇴 이후 6개월 정도의 짦은 지도자 수업을 받고 바로 감독이 된 것으로 인해 구단 안팎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리그 3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둠과 동시에 이집트 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올려 비판을 잠재웠다. 이후에도 이집트의 클럽들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4. 이야깃거리
- 이성모가 전 토트넘 수비수 레들리 킹과 인터뷰한 것에 의하면 미도는 [9] 상당히 특이한 선수였다고 회고하면서, 정말 안 어울릴 것 같은 이영표와 [10] 절친한 것이 신기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상술하였듯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다툼이 있었을 때 라커룸에서 즐라탄에게 가위를 던졌다고 한다. 즐라탄은 이 일에 대해 서술하면서 그는 정말 미친새끼였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자기도 주먹을 날리고 빰을 후려쳤다고...그러나 미도와 즐라탄은 여전히 친구 사이며[11] 즐라탄도 자서전에서 미도를 좋은 친구라고 표현한다.
- 2005년, 이집트에 축구 선수 육성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1] 영어로는 'Ahmed Hossam Hussein Abdelhamid'이다.[2] 스트라이커[3] 매 시즌마다 벨기에 프로리그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주는 상이다.[4] 아약스에서는 미도의 뉴캐슬 이적을 허용했으나 미도 측에서 이를 거절했으며, 로마의 경우에는 아약스가 제시한 1500만 유로의 이적료를 맞춰주지 못해 이적이 무산되었다.[5] 참고로 발렌시아는 베르나르드 코라디와의 맞트레이드를 제시했다.[6] 여담으로 이 당시 로마는 미도를 토트넘에 넘겨 주는 대신 이영표를 영입하기를 원했으며,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이영표 본인이 거절해면서 무산되었다.[7] 1주일 동안 1000파운드(약 150만원)을 받기로 합의했다.[8] 당시 파리 생제르맹 FC의 유소년팀에서 제의를 받았으나 본인이 거절했다.[9] craz까지 내뱉다가 표현을 고쳤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 킹을 포함한 토트넘 직원이 전부 웃었다고 한다.[10] 킹은 이영표를 아주 지적이고 종교심이 강한 선수로 기억하고 있었다.[11] 가위 사건때도 즐라탄이 주먹을 날리고 뺨을 후려친지 10분 만에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12] 토트넘에서 뛰었던 경력, 같은 포지션등 비교할 구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