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오 디 알비아노

 

'''바르톨로메오 디 알비아노'''
Bartolomeo d'Alviano

[image]
'''출생'''
1455년
[image] 교황령 알비아노
'''사망'''
1515년 10월 7일 (60세)
[image] 베네치아 공화국 게디
'''관련 단체'''
용병
[image] 암살단
'''성우'''
알렉스 이바노비치[1]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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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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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오 디 알비아노[2] - 어쌔신 크리드: 메모리즈

'''넌 군을 이끄는 게 널 고귀하게 만들어 주는 줄 아나? 고귀함이란 네 병사들 옆에서 네가 같이 싸워줌으로써 오는 거다, 협잡으로 전투를 피해 보려고 여자를 납치하는 게 아니라!'''[3]

1503년, 발루아 남작에게 소리치는 바르톨로메오,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

실존인물. 베네치아로마 용병단의 수장이며, 이탈리아 암살단원이다. 생긴 대로 싸움에 능했고 다수의 용병들을 이끌었기에, 암살단에 있어서 중요한 자산이었다. 어쌔신 크리드 2에서 템플 기사단의 일원인 실비오 바바리고에게 포로로 잡혀 갇혀 있었는데 에지오 아디토레가 구해줌으로써 인연을 쌓게 되고,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에서까지 둘은 서로 협력하여 암살단을 위해 싸워나간다. 또한 여러 이탈리아 군대의 수장직을 맡은 적도 많아서,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바르톨로메오의 이름은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달비아노'라고 써야 맞다. d'Alviano의 d'는 뒤의 말과 붙여 읽는 것이기 때문. 그런데, 정발명은 이 d'를 그냥 알파벳 d로 보고 '바르톨로메오 '''디''' 알비아노'로 번역을 해 버렸다(...) 최소한 배경이 이탈리아라면 이탈리아어는 어느 정도 알고 번역을 해야 하는데, 번역업체는 유비소프트로부터 영어 대본을 그냥 받는 대로 번역한 모양. 올바른 표기를 지향해야 하지만 정보 전달에 혼란이 올 수 있으므로, 이 문서에서는 나무위키:편집지침/일반 문서의 지침을 따라 이름의 표기에 있어 공식 번역을 따르기로 했다.

2. 생애



2.1. 작중 이전


이탈리아 알비아노에서 아버지 프란체스코 달비아노(Francesco d'Alviano)와 어머니 이사벨라 델리 아티(Isabella degli Atti)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비오 오르시니[4]와 니콜로 디 피틸리아노[5]와 사촌지간이다. 암살단에 어떻게 가입했는지는 나오지 않으나, 가입 이후 베네치아의 카스텔로 구역에서 거주하며 용병단을 이끌었다.

2.2. 어쌔신 크리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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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데이터베이스 문서의 바르톨로메오의 사진.
실비오 바바리고의 병사들에게 맞설 준비를 하는 바르톨로메오.

이 추잡한 겁쟁이들아! 내가 니들 다 쓸어버릴 거다! 동시에 말이야! 그것도 한 팔이... 아니, 양팔이 뒤로 묶인 채로 상대해 주마!

1486년, 감옥에 갇힌 채 실비오 바바리고의 병사들에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바르톨로메오.[6]

1486년 템플 기사단이 베네치아를 장악하려 들었고 그들의 수장으로 실비오 바바리고가 있었다. 실비오는 바르톨로메오와 그의 용병 대부분을 잡아 가뒀는데, 마침 바르톨로메오를 만나러 온 에지오 아디토레가 그를 찾아내어 구해주었다.[7] 둘은 실비오의 부하들과 맞서며 바르톨로메오의 거처로 간다. 이 때 바르톨로메오는 칼이 아닌 빗자루로 싸운다(...)
바르톨로메오는 실비오의 병사들에 의해 난장판이 된 거처를 보고 자신이 사랑하는 비앙카(Bianca)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나 하며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곧 책상 밑에 있는 비앙카를 보고는 반색하는데, 비앙카는 다름아닌 그가 아끼는 장검이었고, 에지오와 비앙카를 서로 소개해준다.(...)[8] 에지오는 바르톨로메오가 그의 군대를 정비하는 동안 실비오에게 잡힌 용병들을 구하러 나선다. 이후 이들은 실비오를 처치하기 위해 도시 곳곳에 용병들을 배치해 문제를 일으켜서 실비오의 병력을 분산시킨다. 본격적으로 베네치아를 탈환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이들은, 에지오가 신호탄을 쏨으로써 실비오의 병력에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한다.
당시 실비오의 경호원이었던 단테 모로는 커다란 양날도끼로 바르톨로메오를 밀어붙이고 있었고, 에지오는 바르톨로메오를 서둘러 돕는다. 용병단에게 밀리기 시작한 실비오는 아르세날레[9]에서 키프로스행 배를 타고 도망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단테도 실비오를 따라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둘을 죽이겠다고 작심한 에지오를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두 템플러는 동시에 공중 암살 당한다.[10] 바르톨로메오는 에지오의 도움에 고마움을 전하며, 베네치아를 템플 기사단으로부터 되찾는 데 성공했다.
2년 후, 템플 기사단의 그랜드마스터 로드리고 보르지아가 키프로스에 있는 '''에덴의 선악과'''를 베네치아로 가져오러 보낸 배가 베네치아에 도착하자, 바르톨로메오는 선악과를 가지고 배에서 내린 이들을 마리오 아디토레, 라 볼페, 안토니오, 파올라, 테오도라 수녀, 니콜로 마키아벨리 등 다른 암살자들과 함께 미행하기 시작한다. 선악과는 로드리고에게 배달되었고, 바르톨로메오는 돌격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에지오가 이미 선악과를 들고 있는 로드리고의 수하로 위장한 상태였고 에지오가 먼저 로드리고와 대적하기 시작했다. 에지오의 등장에 놀란 암살자 일행은 곧 에지오를 돕기 위해 로드리고를 상대로 일제히 싸우기 시작한다.

이야아아아! 앞으로! 덤벼라, 이 겁쟁이들아! 모두 덤벼! 나의 비앙카가 더 많은 머리통들을 부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로드리고 보르지아와 그의 병사들을 대적하는 바르톨로메오.

로드리고는 수적으로 밀려 힘겹게 싸우다가, 결국 끝에 가서는 에지오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도망갔다. 에지오는 이곳에서 그동안 바르톨로메오를 포함해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전부 암살자였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워했고, 바르톨로메오를 비롯한 암살자들은 에지오와 함께 해질녘에 다같이 어느 탑에 모여서 에지오가 정식으로 암살자가 되는 의식을 치룬다. 그렇게 이들은 에덴의 선악과를 암살단의 소유로 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바르톨로메오의 행적은 작중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에지오가 코덱스를 모아서 바티칸에 쳐들어가기까지 흐른 세월동안 바르톨로메오도 템플 기사단에 맞서 끊임없이 싸웠다. 1493년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에덴의 선악과를 가지고[11] 피렌체의 정권을 빼앗기 위해 메디치 가문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동안, 이때쯤 바르톨로메오는 자신의 용병단 길드를 교황령 로마에 설치하고 여러 격투장과 경기장을 운영했다.[12]
한편 1492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된 로드리고 보르지아가 1496년 오르시니 가문의 봉토를 공격하자[13] 바르톨로메오는 오르시니 가의 편에 서서 교황군과 맞서 싸웠다. 교황군은 바르톨로메오군의 세력을 차츰 깎아나가더니 바르톨로메오군의 병력을 요새 3개로 줄이는 데 성공했고, 바르톨로메오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계속 맞서 싸웠다. 그러나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체자레 보르지아가 바르톨로메오의 물자 수송로마저 끊어버리고, 승세가 교황군에게 기울어지는 찰나 오르시니군을 이끄는 카를로 오르시니(Carlo Orsini)가 당도하여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바르톨로메오군과 오르시니군은 교황군을 밀어붙였고 카를로는 체자레의 면상에 상처를 입히기까지 성공하여(!) 교황군은 퇴각, 오르시니 가문의 봉토를 지켜냈다.
1497년 바르톨로메오는 바르톨로메아 오르시니(Bartolomea Orsini)[14]와 결혼하나, 아내가 죽자 1498년 다시 판타실레아 발리오니(Pantasilea Baglioni)와 결혼했다. 이 여자는 후에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에 등장한다.
1499년 12월, 마침내 에지오가 바티칸에 에덴의 조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티칸으로 쳐들어가자, 바르톨로메오는 로마 전역에 자신의 용병들을 풀어 문제를 일으키게 했고, 많은 교황병들의 주의를 돌림으로써 에지오가 로드리고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에지오의 행적은 에지오 아디토레 문서 참고.

2.3.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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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아노 막사에서 에지오를 기다리는 바르톨로메오.

체자레가 날 이기려고 프랑스의 루이 12세를 설득해서 전군을 빌렸다고 하네. 이거 영광이구만.[15]

1503년, 프랑스군과 대치중인 상황에서 에지오와 이야기를 나누는 바르톨로메오.

1500년, 바르톨로메오는 아내 판타실레아와 함께 거처를 로마로 옮겼고, 알비아노 막사를 지음으로써 자신의 새 병영을 건설했다. 당시 로마는 교황이 된 로드리고 보르지아와 그의 아들인 총사령관 체자레 보르지아의 영향 탓에 보르지아 가문이 장악하고 있었고 바르톨로메오는 암살단과 함께 이들을 몰아낼 방법을 찾는데, 마침 프랑스군이 체자레를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로마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군을 격퇴시키기로 한다. 당시 프랑스군은 옥타비안 드 발루아 남작이 이끌고 있었다.
한편 체자레 보르지아에게 암살단 지부를 공격당하고 선악과마저 빼앗긴 암살단은 서둘러 로마에 다시 지부를 설립하고, 에지오는 힘을 규합하기 위해 로마니, 도둑, 용병 길드를 방문해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고 용병단의 수장인 바르톨로메오를 찾아갔다. 바르톨로메오는 에지오를 반갑게 맞이하며 자신의 새 병영을 소개해준다. 그리고는 그의 아내도 소개해주는데, 검 애인인 비앙카말고 판타실레아 발리오니라는 인간 아내까지 있어 에지오를 비롯한 어크 팬들을 총공깽으로 몰고 갔다.[16] 게다가 나이도 바르톨로메오가 무려 21살 연상(...)인지라... 판타실레아는 에지오에게 프랑스군에 맞서기 전에 보다 세력이 약한 보르지아군을 먼저 물리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 에지오는 곧바로 근처의 보르지아 탑을 불태워 알비아노 막사를 보르지아의 영향권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에지오는 추가로 알비아노 막사를 강화하기로 하고, 그 답례로 체자레와 로드리고의 행방을 쫓아 알려줄 것을 요구했다. 바르톨로메오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답한다. 이후 바르톨로메오는 체자레가 산탄젤로 성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암살단 지부가 위치한 티베르 섬에 가서 에지오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17]
3년 후, 바르톨로메오는 여전히 프랑스군과 대치중이었다. 에지오는 알비아노 막사로 와서 바르톨로메오와 함께 프랑스군을 격퇴하기 위한 논의를 하던 도중 급습을 받고, 에지오의 활약으로 성공적으로 막사를 지켜내자 발루아 남작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밖에 나간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던 바르톨로메오는 프랑스군에게 납치된 판타실레아를 보게 된다. 바르톨로메오는 발루아 남작에게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발루아 남작은 새벽녘에 무장을 해제한 채로 자신의 기지로 오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바르톨로메오와 에지오는 서둘러 판타실레아를 구출하기 위해 프랑스군이 주둔하고 있는 카스트라 프라이토리아[18]로 가서 기지를 살펴보나 이 기지를 무력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바르톨로메오는 포기한 듯이 이례적으로 항복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며, 그의 말대로 무장해제한 채로 선물이나 들고 가서 아내를 풀어주게끔 하는 게 낫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에지오는 바르톨로메오의 말을 듣고 오히려 아이디어를 얻는다. 바르톨로메오의 말대로 무장 해제한 채로 가되, 에지오가 바르톨로메오를 포획한 프랑스군 지휘관으로 위장해서 기지 안으로 들어간 다음, 발루아 남작을 죽이는 계획을 세웠던 것. 바르톨로메오는 에지오의 계획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에지오는 프랑스군 갑옷을 얻기 위해 프랑스군 20명을 죽여서 바르톨로메오의 용병들이 시신의 갑옷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바르톨로메오는 계획대로 프랑스군에게 잡힌 포로인 것처럼 속여서 에지오와 함께 발루아 남작의 기지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19]
그러나 바르톨로메오가 발루아 남작을 보고 아내를 풀어달라고 요구하자 발루아 남작은 오히려 판타실레아에게 총구를 겨누며 위협한다. 판타실레아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에지오는 재빨리 히든 건을 쏘며 공격 신호를 보냈다. 용병들이 프랑스군 군복을 입은 탓에 프랑스군은 누가 누군지 모르는 혼전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나갔고 발루아 남작은 판타실레아를 인질로 삼아 기지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나 에지오가 판타실레아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따라갔고, 자신에게 유리한 인질극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발루아 남작은 에지오가 근접한 것도 모른 채 공중 암살당했다.
그렇게 바르톨로메오는 아내를 되찾게 되었다. 이때 거의 분위기가 닭살 커플 수준이었는데, 에지오가 판타실레아에게 바르톨로메오가 이 모든 구출 계획을 짰다고 재치있게 말해주자 판타실레아는 바르톨로메오를 왕자님이라 부르며(...) 서로를 꼭 껴안고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났다.
그 후 바르톨로메오는 다른 암살자들과 함께 체자레의 수하들을 없애는 데 일조했다. 특히 에지오는 마침내 되찾은 에덴의 선악과로 적들을 농락했으며, 결국 바르톨로메오는 체자레가 바르톨로메오의 사촌이자 이탈리아군의 사령관이었던 파비오 오르시니에게 살인죄, 배신행위, 근친상간의 죄목으로 교황의 명령에 의해[20][21] 체포당하는 꼴을 봄으로써 암살단원으로서의 오랜 숙원을 풀었다.

2.4. 작중 이후


체자레가 체포당한 그 해, 바르톨로메오는 아라곤 왕국카스티야 연합 왕국[22] 국왕 페르난도 2세[23]에게 고용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2차 이탈리아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위에 언급한 루이 12세가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 왕국을 침공하려 하자 페르난도 2세가 이를 견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동안 프랑스군에게 시달린 바르톨로메오로서는 흔쾌히 페르난도 2세의 편에 섰을 것이다. 루이 12세와 페르난도 2세는 서로 나폴리 왕국을 차지하려 했고 마침내 싸우게 되는데, 바르톨로메오는 피에로 데 메디치[24]와 프로스페로 콜론나[25], 사촌 파비오 오르시니와 함께 그 해 12월 가릴리아노 전투(Battglia de Garigliano)에 참전했다. 이 전투에서 바르톨로메오는 스페인군을 물리침으로써 승리를 거두었으나 파비오는 머리에 부상을 당해 죽고 말았다. 당시 스페인군에게는 명장 곤살로 데 코르도바가 있었는데, 그의 활약으로 인해 전쟁은 결국 페르난도 2세의 승리로 끝나며 페르난도 2세가 나폴리 왕국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체자레의 권력이 약해지고 그가 가지고 있던 땅인 로마냐에서는 체자레에게 빌붙었던 많은 영주들이 교황 율리오 2세에 의해 재산을 잃게 되자, 이들은 베네치아 공화국에게 시키는 일은 다 할테니 자신들의 재산을 메꿔달라고 요청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 대가로 리미니, 파엔차 등 로마냐 일대의 도시들을 수복했다. 그러자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던 교황 율리오 2세는 베네치아 공화국에게 해당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으나 베네치아 공화국은 퇴짜를 놓았다. 율리오 2세는 괘씸했으나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군사력에 대항할 만한 힘이 없었고, 차선책으로 신성 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는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를 위시했는지 땅 몇 개를 반환하긴 했다.
1507년 율리오 2세는 다시 남은 영토에 대한 반환 요청을 했으나 베네치아 공화국은 전처럼 또다시 퇴짜를 놓고(...)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자 율리오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에게 베네치아 공격을 유도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에 대비하여 용병대장 바르톨로메오와 그의 사촌 니콜로 디 피틸리아노를 고용하여 공격에 대비케 했다. 마침내 1508년 2월, 막시밀리안 1세는 황제의 대관식을 치루러 로마에 간다는 핑계로 대군을 이끌고 베네치아를 공격한다. 그러나 전쟁은 바르톨로메오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는데, 바르톨로메오가 이탈리아 카도레 지역의 마우리아와 폰테바에서 제국군을 격퇴시키고, 오히려 고르치아와 트리에스테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후에 바르톨로메오가 포르데노네까지 점령하자, 막시밀리안 1세는 어쩔 수 없이 베네치아 공화국과 강화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외세를 물리친 바르톨로메오의 공로에 보답하여 바르톨로메오를 그가 점령한 포르데노네의 영주로 임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는데... 베네치아 정복에 실패해 굴욕을 맛본 율리오 2세가 작심한 듯이 루이 12세, 페르난도 2세, 막시밀리안 1세와 함께 반-베네치아 동맹인 캉브레 동맹을 만들고 베네치아 공화국을 공격해 얻는 영토를 서로 나눠먹기로 하는 계약에 각 국가의 대표단이 서약함으로써 3차 이탈리아 전쟁의 서막이 드리워졌다. 그렇게 1509년 바르톨로메오는 또다시 지긋지긋한 프랑스군과 대치하게 되었고(...) 니콜로는 지리적 조건이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바르톨로메오에게 남쪽으로 피하자고 건의했으나 서로 의견이 달라 결국 각자의 의견대로 하기로 했다. 5월 14일, 바르톨로메오군은 프랑스군과 아냐델로에서 격돌하게 되는데, 이것이 아냐델로 전투(Battaglia de Agnadello)다. 당시 프랑스군은 수적으로 바르톨로메오군을 압도했는데, 암살단원이었던 바르톨로메오의 입장에서는 이곳 아냐델로에 '''에덴의 수의(!)'''[26]가 숨겨져 있었기에 행여나 템플 기사단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든 프랑스군을 이겨야 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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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델로 전투에서의 바르톨로메오.

끝없이 밀려오는 적들이 나의 탈출을 막고 있다. 적들의 대장은 흡족해 하고 있다. 그가 나를 쇠고랑으로 채우고, 나는 놈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그 놈의 얼굴을.

전투 끝에 적에게 포로로 잡힌 바르톨로메오, 어쌔신 크리드: 프로젝트 레거시 中

전투는 몇 달 동안 계속되었고 바르톨로메오는 마을 주민들을 계몽시키며 자신의 힘에 보태는 등 갖가지 노력을 했지만 자신도 부상을 입는 등 상황은 악화되어만 갔다. 바르톨로메오는 니콜로에게 지원 병력을 요청했으나 니콜로는 전투를 피하는 것이 좋다며 자신의 본진으로 합류하라고 답변한다. 그러나 바르톨로메오는 프랑스군에게 포위된 상태로 공격을 버텨야 했고, 마침내 바르톨로메오는 4천 명 이상의 병력을 잃은 채, 프랑스군에게 붙잡혔다.[28][29]
포로 생활을 전전하던 바르톨로메오는 4년 후인 1513년, 프랑스 왕국과 베네치아 공화국이 동맹을 맺으면서[30] 풀려나 프랑스군 사령관 루이 2세 드 라 트레무아유 밑에서 싸웠다.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은 사이라 프랑스를 적대시하는 마음이 좀 누그러진 듯.[31] 그러나 베네치아를 공격하던 스페인군과 싸우다가 라 모타 전투(Battaglia de La Motta)[32]에서 나폴리[33] 총독 라몬 데 카르도나에게 패배한다.
후에 바르톨로메오는 한때 자신의 영지였던 포르데노네를 점령하고 약탈했으나 신성 로마 제국에게 빼앗긴다. 이후 1515년 9월 마리냐노 전투(Battaglia de Marignano)에서 프랑스군을 도와 몇 차례 승리를 맛보았다.[34] 이후 바르톨로메오는 베르가모라는 곳을 점령하기도 했다.
1515년 10월 7일, 바르톨로메오는 브레시아를 공격하는 도중 브레시아 게디에서 전사했다. 바르톨로메오는 베네치아 공화국 입장에서 영웅이었기에 그의 시신은 성대한 환영과 함께 베네치아로 운구되었고, 산토 스테파노 성당에 묻혔다. 참고로 이 곳은 바르톨로메오가 에지오에게 비앙카를 소개해주던 그의 옛 거처와 가까운 곳이다. 향년 60세. 슬하에 아들 3명과 딸 1명을 자녀로 두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3차 이탈리아 전쟁은 1516년에 끝났다. 율리오 2세는 그동안 캉브레 동맹을 맺은 이후로 여러 동맹을 더 맺고 파기하는 등 외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으나 별 성과는 이루지 못하고 1513년에 죽어버렸다. 의외로 율리오 2세는 에지오와 직접 만나는 등 암살단에게 큰 도움을 준 인물인데, 당시 외세는 도시국가로 작게 나누어진 이탈리아를 야금야금 먹고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통일하려 했던 교황 입장에서는 전쟁이 불가피했던 듯.

3. 기타


  •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첫 등장에서도 에지오가 베네치아에서 갇혀 있는 바르톨로메오를 구해줬을 때 바르톨로메오는 전투를 피하자는 에지오 말에 겁쟁이냐고 다그친 사례가 있다. 은신 상태를 유지하다가 암살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정면돌파를 선호하는 것을 볼 때 암살자 중에서는 마리오 아디토레와 유사한 편.
  • 정면승부를 선호한다. 에지오가 프랑스군으로 위장해서 잠입할 때 바르톨로메오가 이 아이디어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이 문서의 가장 위에 있는 바르톨로메오의 대사를 보더라도 그렇게 보인다.
  • 제대로 교육받지는 못한 듯 하다. 바르톨로메오가 에지오에게 병영 보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넌 좀 배운 사람이니까 너가 알아서 해 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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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오의 도끼.
  • 비앙카 외에 도끼도 썼던 모양이다. 이는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에서 용병 길드 도전 과제들을 모두 달성하면 얻을 수 있다. 사용법은 일반 중무기와 같다.
  •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 소설판에서는 1510년에 에지오가 오스티아에 있는 바르톨로메오를 방문했다고 한다. 에지오는 자신이 시리아의 마시아프로 가서 알타이르 이븐-라 아하드의 도서관을 찾고자 한다며 바리까지만 동행해 줄 것을 부탁했고, 바르톨로메오는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르톨로메오는 실제 역사상으로는 상술했듯이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4. 같이 보기



[1] 캐나다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이며, 작중에서 동시에 '''로렌초 데 메디치'''의 성우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의 성우를 맡았는데, 어쌔신 크리드 2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의 '''피리 레이스''', 어쌔신 크리드 3에서 대번포트 농지에 사는 의사 라일 화이트, 어쌔신 크리드 3: 리버레이션에서 템플러였던 '''라파엘 호아퀸 드 페레르''', 어쌔신 크리드 4: 블랙 플래그에서 템플러였던 '''줄리앙 뒤 카스''',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 '''사드 후작'''을 연기하는 등 시리즈의 굵직굵직한 조연들을 맡았다. 어쌔신 크리드: 리니지에서는 자신이 직접 로렌초 데 메디치를 연기했다.[2] 오른쪽 사진에서 살짝 보이는 흰색 후드를 입은 남자는 예상했듯이 에지오 아디토레다.[3] 당시 체자레 보르지아를 돕고 있었던 프랑스군의 수장 발루아 남작은 바르톨로메오를 처치하기 위해 그의 아내를 납치한 상태였다.[4] Fabio Orsini. 실존인물로, 오르니시 가문의 일원이며, 이탈리아 군대의 사령관이었다. 작중에서는 암살단에 속하여 에지오를 도와준다.[5] Niccolò di Pitigliano. 실존인물로, 역시 오르시니 가문의 일원이나 피틸리아노 출생인 데다가 아버지가 피틸리아노의 백작이었기에 성에 피틸리아노를 썼다. 용병대장으로서 3차 이탈리아 전쟁에서 베네치아군의 사령관으로 싸웠다.[6] 바르톨로메오의 작중 첫 대사다. 호쾌한 캐릭터답게 첫 등장 역시 임팩트가 있다.(...)[7] 베네치아 도둑 길드의 수장이자 암살단원이었던 안토니오 데 마자니스는 실비오가 베네치아를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 에지오에게 바르톨로메오의 용병단이 쓸모가 있을 거라며 그를 만나보라고 한 것이다.[8] 에지오가 그런 그에게 맞춰주는 것도 포인트다. "실비오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병력이 부족하오. 우리 둘... 아니, '''셋'''만으로는..."[9] Arsenale di Venezia, 줄여서 l'Arsenale. 베네치아의 조선소이자 무기고이다.[10] 메모리 이름도 'Two Birds, One Blade'이다. 일석이조에서 '돌'을 '칼'로 살짝 변형한 것.[11] 1488년 포를리 전투 때 에지오가 배에 칼을 찔려 정신을 잃어 가는 동안, 지롤라모가 난데없이 튀어나오더니 선악과를 빼앗아갔다.[12] 어쌔신 크리드: 리벨리온에 등장하는 코르보 안토넬리도 이때 바르톨로메오의 용병단에 가입했다.[13] 원래부터 알렉산데르 6세와 오르시니 가문은 사이가 안 좋았다. 알렉산데르 6세가 자신의 아들 후안 보르지아에게 땅을 할양했는데 그게 하필 오르시니 가문의 봉토를 마음대로 떼어다 준 거였고, 강력한 귀족 가문이었던 오르시니 가문이 이를 곱게 바라볼 리 없었다. 참고로 여기서 나오는 후안은 에지오가 죽인 후안 보르지아가 아닌, 로드리고의 첫째 아들인 후안 보르지아를 가리킨다. 동명이인.[14]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내와 사촌지간이다.[15] 근데 사실 루이 12세는 알렉산데르 6세한테 이혼 문제를 승낙받으려고 교황과 체자레를 후원한 것이다. 수지가 맞아 떨어진 것.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루이 12세는 왕위에 오르기 전 이미 아내 잔 드 프랑스(Jeanne de France)가 있었으나, 프랑스 왕국의 국왕 샤를 8세가 승하하자 그의 아내였던 브르타뉴의 공작 안 드 브르타뉴(Anne de Bretagne)는 브르타뉴 지방을 프랑스에 계속 병합한 상태로 두는 계약에 따라 새 왕이 된 루이 12세와 결혼을 해야 했다. 루이 12세는 알렉산데르 6세에게 잔이 불임이라는 주장을 하며 이혼을 허락해줄 것을 요구했고 잔은 루이 12세가 몇날 밤을 자신과 함께 보냈다며 증인들을 데려오는 등 강하게 항의했으나, 상술했듯이 루이 12세와 수지가 맞았던 알렉산데르 6세는 공정하지 못하게 루이 12세의 손을 들어주었다. 잔은 이 판결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며 이제 전 남편이 되어 버린 루이 12세를 위해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고, 수녀가 되었다. 훗날 잔은 1950년에 시성되어 성인이 된다.[16] 바르톨로메오가 판타실레아를 부르며 "어디 갔지?"라고 말하자, 에지오가 "책상 뒤에는 확인해 봤나?"라고 한다(...) 에지오를 쳐다보는 무표정한 바르톨로메오의 얼굴은 덤.[17] 에지오는 이 사실을 듣고 산탄젤로 성으로 가나 로드리고는 없었고 체자레는 곧바로 떠나버렸다. 대신 그곳에 갇혀있던 카테리나 스포르차를 구출해 내는 데 성공한다.[18] Castra Praetoria. 로마에 위치한 로마 제국의 근위대 기지이다.[19] 이 때 에지오가 프랑스군 수문장과 프랑스어로 대화하며 쉽게 기지에 잠입할 수 있었는데, 바르톨로메오는 놀라워하며 "자네 불어도 할 줄 알았나?"고 묻자 에지오는 피렌체에서 프랑스 여자를 좀 사귀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에 '몽헤알(Montreal: 몬트리올의 프랑스식 발음)' 출신이라 한다. 알다시피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유비소프트 몬트리올에서 만들었으니...[20] 알렉산데르 6세의 뒤를 이은 비오 3세가 즉위 26일만에 하지궤양으로 사망하자, 교황청을 장악한 보르지아 가문을 몰아내려고 마음을 먹은 율리오 2세가 즉위한 것이다.[21] 다음은 그가 실제로 교황에 선출되었을 때 한 말이다. “나는 알렉산데르 6세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거룩한 교회를 더럽혔으며, 악마의 도움을 받아 교황권을 탈취하였다. 앞으로 누구든지 보르지아에 대해 두 번 다시 언급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금지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파문하겠다. 보르지아의 이름과 그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잊혀져야 할 것이다. 그가 교황으로 재임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잊혀지도록 모든 문서와 기념비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보르지아 일족을 그린 모든 그림 역시 검은색으로 덧칠해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르지아 일족의 모든 무덤 뚜껑을 열어 그들의 시신을 당장 스페인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22] 둘 다 현 스페인 지역이다.[23] 어쌔신 크리드(영화)에서 주인공 아귈라와 동료 마리아가 종교재판 당시 처형장에 묶여있을 때 이들을 참관하던 그 왕이다.[24]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들이다.[25] 실존인물. 바르톨로메오와 마찬가지로 용병대장이었으며, 이탈리아 전쟁 당시 교황령과 신성 로마 제국에서 복무했다.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에서 사촌과 함께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에지오 아디토레에 의해 구출된다.[26] 어쌔신 크리드: 신디케이트에 나오는 그 수의는 아니다. 동일한 수의가 또 하나 있는 것.[27] 그러나 정작 바르톨로메오와 니콜로는 이 사실을 몰랐던 듯 하다. 그들이 에덴의 조각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기 때문. 그러나 아냐델로 전투 때 니콜로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28] 참고로 이 소식을 들은 니콜로의 병사들이 대거 탈영을 해 버렸고 니콜로는 하는 수 없이 퇴각했다고 한다.[29]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인 군주론에서 이 전투를 두고 "베네치아는 800년에 걸쳐 정복한 지역들을 상실했다"고 평했다.[30] 프랑스 왕국의 세력이 커지자 율리오 2세는 이를 견제하고자 했고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를 노리고 프랑스 왕국과 손을 잡은 것이다.[31]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냥 돈 받고 싸운 것일 수 있다. 용병이었기 때문. 니콜로 마키아벨리군주론에서 용병들은 돈으로 사들이는 존재라 충성심을 기대할 수 없다고 깐다.[32]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 이름을 따 비첸차 전투(Battaglia de Vicenza)라고도 한다.[33] 상술했듯이 나폴리 왕국은 페르난도 2세가 가져갔기에 아라곤 연합 왕국의 동군연합국인 상태였다.[34] 당시 프랑스 왕국은 구 스위스 연방과 싸우고 있었는데 바르톨로메오가 기사 300명만으로 스위스 용병들을 도륙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