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월역

 


'''반야월역'''
[image]

'''다국어 표기'''
영어
Banyawol
한자
半夜月
중국어
일본어
半夜月(パニャウォル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로 지하 261 (동호동)
'''관리역 및 고객센터'''
1호선
신기관리역 / 1고객센터
'''운영 기관'''
1호선

'''개업일'''
1호선
1998년 5월 2일
'''역사 구조'''
지하 2층(심도 13.3m)
'''승강장 구조'''
복선 상대식 승강장 (횡단 가능)
半夜月驛 / Banyawol Station

1. 소개
2. 역 정보
3. 이름 유래
4. 일평균 이용객
5. 승강장
6. 연계 교통


1. 소개


벽면의 색상은 보라색. 대구선 구 반야월역은 구길인 반야월로상에 위치하는 반면,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반야월역은 반야월 신길인 안심로와 경안로가 교차하는 반야월네거리에 위치한다. 즉, 직선 거리만 900m나 떨어져 있는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대구선 구 반야월역은 도로 때문에 철거되었고 각산역에서 한참 북쪽으로 이전했다.

2. 역 정보


역 서쪽은 주거 지역, 역 동쪽은 안심공업단지, 역 남서쪽은 한적한 농경지로 구성되어 있다. 동호지구 아파트 단지 서쪽 끝에 있지만, 동호공영차고지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로 가려면 동호공영차고지를 가로질러서 가야 한다. 게다가 영대 등지에서 반야월이나 동촌, 동구 일원으로 갈 때 719번이나 980번의 환승 수요 역시 영대역 개통으로 인해 사월역만큼은 아니지만[1] 꽤 빼앗겼다. 그래서 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많이 저조한 편이다. 동호동 소재임에도 동호지구로 가는 길이 막혀 있는 관계로, 아파트 입구에 있는 신서동각산역이 동호지구의 대표역이다.
바로 옆에 동호공영차고지가 있고, 남쪽의 안심교를 넘으면 수성구 성동으로 갈 수 있다. 성동 남쪽으로 경산시 대정동 및 대평동과 이어지기 때문에 대구광역시위성도시로 대학교가 많이 몰려 있는 경산시에서 가까워[2] 여러 학교들의 스쿨버스가 서는 곳이기도 하다.
역의 소재지는 동호동이지만, 1번과 2번 출구는 서호동에 있다.
건넘선이 설치되어 있다.

3. 이름 유래


역명의 유래는 지명을 따라 제정되었는데 신라고려 태조 왕건후백제 견훤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공산 전투에서 왕건군이 견훤군에게 패하여 달아나던 중 자신의 탈출로를 비춰주던 새벽 반달을 보고 왕건이 이 곳 지명을 반야월이라 칭하였다.
사실 위의 이야기가 대표적이자 유명한 유래지만 또다른 유래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숙종이 민정을 살피러 변복하고 전국을 돌던 중 이 고장에 이르니 반달이 서산에 기우는 야밤이었다. 한 민가에 들러 하룻밤 지내기를 청하니 집주인인 선비가 아주 친절했다. 숙종은 허기를 채우고 선비와 이야기를 나눴다.

숙종: 이 마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선비: 이 마을에는 원래부터 이름이 없었소.

숙종: 이 나라 임금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없었으면 아직 마을에 이름이 없고 사리사욕을 위한 부정부패로 관리들의 마음이 차 있겠습니까? 도대체 이런 임금을 어찌 해야겠습니까? 마땅히 새 임금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선비가 숙종에게 대뜸 '''싸닥션'''을 때리며

선비: 이 놈! 하늘엔 태양, 나라엔 임금님이 있는데 함부로 나랏님을 욕하는 놈이구나. 썩 꺼지거라!

라고 '''숙종을 당장 쫓아내려 했다.''' 거기다 윗방에 있던 그의 아내도 달려와 남편 못지 않게 달려들어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다시피 하였다. 숙종이 백배사죄하며 용서를 구하니 선비는 숙종에게 다시는 그런 언행을 못하도록 충고했다. 다음 날 숙종이 그 집을 떠나면서

숙종: 언제 한성(서울)에 올라오시면 저희 집에 오십시오. 한성에서 제일 큰 집을 찾아 '이 서방'[3]

을 찾으시면 됩니다.

라며 꼭 한번 들르라고 하였다. 이듬해 선비가 한성에 들러 경상도 촌사람이 갑자기 궁궐에 나타나 들어갈려고 했다.

선비: 한성 이 서방을 찾아 왔다. 한성에서 제일 큰 집은 이 집이 틀림없으니 이 곳이 맞다.

문지기와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를 들은 숙종은 선비를 불러들여 그 때의 심정과 사정을 얘기했다. 그런 다음 소원을 물었는데 선비는

선비: 아직 저희 마을이 이름도 없으니 감히 마을 명칭을 하나 내려주시기를 청합니다.

숙종: 과인이 민정을 살필 때 그 마을에 가니 하늘에 반달이 떠 있었소. 그러니 그 때를 생각하여 '반야월(半夜月)' 이라 함이 어떻겠소?

지금 반야월에 있는 쌍용양회 대구공장내에 숙종이 잠시 앉았다는 바위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자취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적은 비석이 용계삼거리에 있다.

4. 일평균 이용객


반야월역을 이용하는 도시철도 일일 승객 수이다. 아래 표는 승차객 + 하차객의 총합이다.
'''대구 도시철도 1호선'''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4,805명
4,958명
2,683명
4,704명
4,614명
5,115명
5,084명
'''5,490명'''
5,107명
5,091명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5,278명
4,972명
4,361명
4,351명
4,497명
4,970명
5,068명
5,203명
5,423명
3,707명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2026년
2027년
2028년
2029년
2030년










* 2000년 이전의 승객 수 자료 없음
하루 평균 3,707명(2020년 기준)이 찾는 역으로, 1호선 전체에서 세 번째로 이용객이 적은 역이다. 1호선 32개 역들 중에서 이보다 이용객이 적은 곳은 동촌역, 용계역밖에 없다. 출퇴근 시간에도 붐빌 정도로 사람이 많지 않으며, 평시에는 타고 내리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텅텅 비어 가는 것을 일상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역의 위치 때문이다. 역 남쪽은 개발이 되지 않아 논밭과 금호강이 펼쳐져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안심공단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실질적으로 승객을 끌어올 만한 곳은 역 서북쪽의 주택가뿐인데, 이 곳 역시 대구국제공항의 영향으로 건물의 층수가 낮고 인구 밀도가 낮아서 거주민 숫자가 많지 않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 개통 전에는 경산시 동 지역, 특히 영남대학교 방면 환승 수요가 있었으나 2호선이 사월역을 넘어 영남대역까지 연장된 지금은 환승 수요가 제법 감소했다. 경산시와 협의해서 980번의 경산 시내 구간을 경산시장 왕복으로 조정한다거나, 일부 경산시 시내버스 노선을 연장하는 등의 개편을 하면 모를까.
만약 역의 위치가 안심로가 아닌 반야월로였다면, 반야월로 및 구 대구선 북쪽에 있는 아파트단지와 대구신서혁신도시 주민들을 끌어오기에 훨씬 수월했을 것이고, 지금보다 월등히 많은 수요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반야월로 북쪽에 사는 주민의 수는 반야월로 남쪽에 사는 주민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역의 위치 문제로 인하여 수많은 잠재 수요를 놓치고 공기만 가득 싣고 나르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5. 승강장


[image]
반야월역 승강장
[image]
역 안내도 크게보기
신기




각산

[image]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동대구·중앙로·반월당·설화명곡 방면

각산·안심 방면

6. 연계 교통


반야월역(도시철도1번출구)
805, 836, 849, 980, 동구4-1, 북구3
반야월역(도시철도2번출구)
719, 849, 980
반야월역(도시철도3번출구)[4]
518, 518-1, 618, 849, 849-1
반야월역(도시철도4번출구)1
805(출발), 836(출발), 849-1. 980, 동구4(출발), 북구3
반야월역(도시철도4번출구)2
518, 618, 849-1
안심중학교앞
518, 618, 651(출발), 719, 북구3, 수성3(출발), 수성3-1(출발)

[1] 사월역은 아예 '''반토막'''났다.[2] 안심교를 통해 쭉 내려가면 경산네거리(중방동)이기 때문에, 1호선의 역들 중 남경산 방면으로 바로 이어지는 유일한 역이다. 안심역하양읍으로 대표되는 북경산으로 가는 길목이라서....[3] 한성에서 가장 큰 집이라면 궁궐을 말하고 이 서방은 궁궐의 주인인 임금을 말한다. 조선 임금의 성씨는 이씨였으며 숙종의 이름은 '이순'이었다.[4] 이외의 노선은 종점이기 때문에 환승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