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고든
1. 소개
전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외국인 투수. 2011 시즌 중 SK 와이번스가 짐 매그레인의 대체 선수로 영입했고, 2012년 시즌 직전 SK 와이번스에서 자유계약 공시되자마자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한 외국인 선수다. 낙차 큰 커브가 매력적이며, 그의 주 무기이다. 따라서 커브를 앞세워 탈삼진을 많이 뽑아내며, 반면에 이닝당 투구수가 다소 많기 때문에 이닝이터로서의 능력은 아쉬운 편이다.[1]
특이 사항으로 본인의 글러브가 쿠퍼스타운에 있다. 실력보단 메이저리그 최초로 사용한 '''나일론 글러브'''라는 이유로.
2. 선수 생활
2.1. 대한민국에 오기 전의 경력
1997년 드래프트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지명된 이래 애리조나,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의 팀을 거치며 마이너리그에서 2006년까지만 해도 좌타 외야수로 뛰었다. 비록 마이너 성적이긴 하지만 한시즌 20홈런을 넘긴 시즌도 있고 '''통산 118홈런'''을 기록했다. 트리플A로 범위를 좁혀보면 69홈런에 2루타 90개로 상당한 장타력도 가진 타자[2] 였지만 타율이 0.263…결국 타자로는 메이저리그에 단 한번도 올라오지 못했다.
브라이언 고든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고등학교 시절엔 타자보다 투수로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고교시절 투수로서의 성적이 43승 3패) 하지만 고든을 지명한 애리조나의 스카우트는 왼손 타자이고 달리기 송구도 평균 이상이라는 평가와 함께, 투수로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지만 투수를 하다가 야수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타자를 권했다고.
결국 타자로서 실패하고 2006년 시즌 중 투수로 전향하게 되었는데 투수 전향에는 현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이자 전설적인 강속구 투수 '''놀란 라이언'''의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2006년 시즌이 끝나고 당시 고든의 소속 팀이였던 휴스턴 애스트로스 구단 측에서 놀란 라이언에게 고든의 투수 전향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는데 나름 고든과 인연[3] 이 있던 라이언은 이를 수락해 2006년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3월까지 라이언에게 투수로서의 조련(컨디셔닝, 웨이트 트레이닝, 피칭 훈련 등)을 받았다고 한다.
200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투수 커리어를 시작한 고든[4] 은 중간계투로 출전하면서 의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2008년부터는 서서히 선발투수로 전업, 비록 3게임에 중간계투로만 등판했다가 다시 마이너로 강등되었으나 타자로는 올라가지 못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트리플A 팀에서 중간계투로 2년 연속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그는 2011년 5승 무패에 평균자책점 1.12란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이를 눈여겨본 뉴욕 양키스는 바톨로 콜론의 부상으로 생긴 선발진의 구멍[5] 을 메울 자원으로 고든을 영입, 두 차례 등판기회를 줬다. 커리어 두번째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승격된 고든은 6월 16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5⅓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고, 22일 신시내티 레즈 전에서는 5이닝 4실점으로 나쁘지 않은 투구를 보였다. 하지만 결국 콜론이 7월 초에 복귀하면서 다시 마이너리그에 내려가게 되었고, SK 와이번스 스카우트진이 양키스와의 협상 끝에 고든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2.2. 한국프로야구 경력
결국 2011년 7월 9일, 짐 매그레인의 방출소식과 함께 영입이 공식 발표되었다. 원래 SK 프런트의 발표에 따르면 원래 매그레인을 일찍 보내 버리고 예전부터 주목해 온 고든을 6월경에 영입할 계획을 세워 둔 상태였는데,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이던 고든이 갑작스레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자마자 40인 로스터에 등록되며 한 번 영입에 실패했다고.
콜론의 복귀로 고든이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오자 SK는 최일언 투수코치를 미국으로 보내 고든의 투구를 점검했고, 고든의 투구 메커니즘과 침착한 경기운영에 합격점을 주며 결국 계약에 성공했다. 전년도에 삼성이 팀 레딩을 영입하는 과정에서처럼 협상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거란 예측과 함께 양키스에 이적료나 보이지 않는 이면 연봉과 같은 '''뒷돈'''(…)이 상당히 소요되었을 거란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마이너에서였긴 하지만 세자릿수 홈련 기록을 남긴 외야수 경력 때문에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선 2011년의 팀의 한심한 타선을 개선할 방법으로 잉여 수준의 지명타자를 없애고 고든을 타석에 넣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등판하는 경기는 물론 나머지 경기에 지명타자로 넣어버리자고. 기자들의 '고든을 야수로 뛰게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김성근 전 감독이 '연봉을 두배로 줘야 되겠네'라고 대답한 걸로 봐서는 아직 그럴 생각은 없는 듯 하지만 최정이 투수를 한 적이 있는 팀의 전력을 감안할 경우 어쩌다 한번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SK 프런트가 트위터를 통해 고든의 별명 공모 이벤트를 열자 솩갤에선 이름 때문에 프리맨이라는 이야기가 잠깐 나오다 김성근 감독이 고든의 불펜 피칭을 보고 '아름답다'라는 이야기를 하자# '''고예쁜'''이라는 별명을 붙이는 개드립이 나왔다. 그리고 여기에다 왠지 이상야릇한 드립까지… 팬들의 기대가 크다는 반증. 결국, 결정된 것은 "골든피쳐 고든".
2.3. 2011 시즌
7월 17일 한화와의 홈 경기에 선발등판해 데뷔전을 치렀다. 3회초까지 최고구속 145km의 직구와 커브,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낮게 제구하면서 한화 타자들을 괴롭히며 상대 선발 양훈과 팽팽한 투수전을 이어갔지만…4회초 '''주장님의 적절한 팀킬 2방''' 이후 난타당하며 4실점[6] , 이닝을 마치고 전병두에게 공을 넘겼다. 팀이 5-0으로 패하면서 데뷔전에서 패전을 먹고 말았다.
시즌 중반에 투입되어 추석 이전까지 9경기 등판해 4승 2패, 평균자책점 3.17의 수준급 성적을 올리고 있다. 7월 29일 한화와의 리턴매치에서 6⅓이닝 2실점, 9탈삼진이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첫 승을 따낸 데 이어 8월 4일 LG전에서는 5회까지 퍼펙트한 투구를 하면서 2승을 기록했다. 커브의 떨어지는 각도가 상당한데다, 제구력까지 좋아 떨어지는 공으로 삼진을 잘 잡아내는 모습이 인상적.
9월 9일 벌어진 롯데와의 909 대첩이 개막장 접전 끝에 연장전에 접어들자 가용야수가 전부 없어진 나머지 '''타자용 보호장구를 장착'''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야구팬들을 설레게 했지만. 김강민이 승부를 끝장내버리면서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
2.3.1. 준플레이오프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1년 10월 11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였다. 9월부터 성적이 대단히 안 좋아서 우려가 많았으나, 5⅓이닝 동안 투구수 82개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였고, 팀이 스코어 2:0으로 이겨서 고든은 이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2011년 10월 11일 경기가 고든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3.2. 플레이오프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이기던 2011년 10월 17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였다. 롯데 타자들의 저돌적인 공격성을 이용한 맞춰잡는 투구로 5이닝까지 투구수가 59개에 불과했으나 6회에 전준우에게 투런 홈런을 맞는 등의 급격한 난조를 보여 결국 5⅔이닝 투구수 82개 5피안타 1피홈런 1볼넷 2탈삼진 3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였고, 팀이 스코어 1:4로 져서 이날의 패전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2011년 10월 23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플레이오프 5차전, 선발 김광현이 1회부터 선취점을 내주는 등 난조를 보이고 1이닝 1실점 1자책점으로 강판당하자, 2회 무사 1루 상황에서 구원 등판한다. 그리고 3⅔이닝동안 탈삼진 3개를 곁들이며 무실점으로 막았는데, 김광현을 조기 강판시키며 기세가 오른 롯데의 강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하며 분위기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호투였다. 이후 SK는 박정권의 투런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고, 팀이 8:4로 이겨 결국 고든은 승리투수가 된다. 고든의 이날 성적은 3⅔이닝 49개 투구수 3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
고든은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9⅓이닝 1승 1패 8피안타 1볼넷 1피홈런 5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2.3.3. 한국시리즈
2011년 10월 2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온 고효준이 4회말 신명철에게 2타점 2루타를 허용하며 강판되자 2사 2루 상황에서 구원 등판했다. 등판하자마자 진갑용을 1루수 파울플라이로 잡아내 추가실점을 막았고, 5회에도 나와서 안타 하나만 내주고 잘 막아냈다. 이날 고든은 1⅓이닝 20투구수 1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팀은 스코어 0:2로 패하고 말았다.
2011년 10월 26일, 역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스코어 0:0으로 맞선 4회말, 2사 1, 2루의 위기상황에 구원 등판한다. 그리고 전날 결승타의 주인공인 신명철을 우익수 플라이 아웃시키며 위기를 넘겼다. 5회말에도 나와서 선두타자 진갑용을 잡아낸 후 배영섭에게 볼넷을 내준다. 그리고 김상수를 2루수 땅볼로 잡아내고 2사 1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박희수에게 넘겨줬다. 박희수가 주자를 불러들이지 않고 이닝을 마무리지으며 고든은 실점 없이 등판을 마친다. 이날 고든은 1이닝 19투구수 1사사구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2로 패했다.
2011년 10월 3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팀이 1승 3패로 몰리며 벼랑 끝에 선 상황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4회말 강봉규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했지만 4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하지만 팀 타선이 삼성 마운드에 무기력하게 눌리면서 스코어 0:1로 패해 고든은 결국 이날의 패전 투수가 되었다. 고든은 이날 4이닝 54투구수 3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사구(死球)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패를 기록했다.
고든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6⅓이닝 4피안타 1피홈런 2볼넷 1사구(死球)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42 1패를 기록했다.
고든의 2011년 포스트시즌 성적은 6경기 21이닝 14안타 2피홈런 4볼넷 1사구(死球) 9탈삼진 4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1.71 2승 2패.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을 했다. 하지만 2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이 1.71인데 2패나 기록했고, 마지막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호투를 했음에도 뼈아픈 결승 솔로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2.4. 2012 시즌
SK 와이번스는 2011 시즌 후에 마리오 산티아고라는 투수와 KIA 타이거즈 출신 아킬리노 로페즈를 영입하며 브라이언 고든을 퇴출했다. SK 프런트가 하향세를 보인 로페즈와 굳이 계약한 것을 보면 고든의 이닝이팅 능력 부족이 결국 재계약하는 데 발목을 잡고 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든은 곧바로 1월 13일 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등 총액 30만 달러로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했다.
2.4.1. 페넌트레이스
정작 같이 들어온 미치 탈보트에 비해 승수가 적었고, 패수도 탈보트에 비해 많아서 일부 삼성 팬들은 퇴출드립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유독 미치 탈보트 등판 때는 타선이 알아서 잘 터져줬지만, 정작 고든이 등판할 때는 타선이 제 힘을 발휘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감안해야 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한화 이글스'''에게'''만''' 강하다는 것. 2012년 6월 13일에도 한화를 상대로 오랜만에 시즌 4승을 올리는 등, 전체 '''4승 중 3승이 한화 상대로 거둬들인 승리였다'''. 반대로 전 소속팀이었던 SK 와이번스에게는 좀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아마도 작년까지 같이 뛴 SK 선수들이 그를 잘 파악하고 있는 탓인 듯. 하지만 6월 26일 SK와의 경기에서는 다소 고전을 했으나 5이닝 2실점으로 잘막아 SK에게 첫 승을 기록했다.
9월 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대구 홈경기에 선발로 등판, '''5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지만 타선이 '''6점'''을 미리 뽑아줘서 승리투수 여건을 갖추고 6회에 안지만에게 마운드를 넘겼고, 결국 '''5:10'''으로 팀이 승리하면서 '''시즌 10승'''을 챙겼다. 이로써 삼성 라이온즈는 '''선발 투수 4명이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나머지 셋은 장원삼, 탈보트, 배영수.
장성호에게 KBO 통산 2000안타를 허용한 투수이기도 하다. 기사
2.4.2. 포스트시즌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2⅔이닝 4피안타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방출되었다.
2.5.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2013년에는 개릿 올슨에게 대한민국행을 권유했다고 하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4년에는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2.6. 연도별 성적
3. 기타
고든이란 성씨를 이용해서 프로야구 중계창이나 관련 커뮤니티에서 끝말잇기 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명 '''고든드립''', 아웃이'''고든'''? , 삼진이'''고든'''? , 커브가 예술이'''고든'''? 하는 식.
모 게임에 출현했던 최강의 공돌이와 이름이 같아서[7] '저 사람 공은 안 던지고 빠루 던지는데 보크 아닌가요?' 같은 드립이 터지기도 했다.
[8]
[1] SK 와이번스에서 재개약을 포기한 것도 바로 이 이닝 소화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삼성에서 그를 영입하여 2012년까지 잘 써먹었지만.[2] 장타력과 더불어 발도 빨라 커리어 통산 65개의 3루타를 기록했다. 비록 리그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약물을 빨기전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40-40달성에 500개가 넘는 도루를 기록했던 베리본즈의 통산 3루타수가 77개임을 생각해본다면 65개의 3루타는 상당한 수치이다 [3] 고든의 어머니가 놀란 라이언이 구단주로 있었던 휴스턴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 팀 '라운드록 익스프레스' 에 일을 했었기에 과거 인사를 나눈 적도 있었다고 한다.[4] 2006년 시즌 도중 투수로서 전향을 하게 되지만 경기는 뛰지 못하고 불펜피칭을 몇 차례 한게 전부였기에 고든의 투수로서의 커리어는 2007년부터이다.[5] 익히 알려져 있지만 2011년의 뉴욕 양키스 투수진은 선발과 불펜을 막론하고 그야말로 로또대박이었다. 애초에 클리프 리 영입에 실패하고 앤디 페팃마저 은퇴하자 완전히 '''새된''' 양키는 급히 프레디 가르시아, 바톨로 콜론을 로또로 영입했다가 대박이 터졌고 필 휴즈가 데드암 증세로 나가리된 공백도 이반 노바의 갑툭튀로 근근히 버텼던 것. [6] 마이너리그에서 뛸 시절부터 낮은 WHIP에 비해 실점이 지나치게 높았다. 몰려맞는 성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플라이볼 피쳐다보니 국내에 올때부터 홈런걱정이 나왔다. 오히려 삼성의 새 용병투수 덕 매티스가 그라운드볼 유도에서 탁월하기 때문에 더 기대된다고 보는 이도 있다. [7] 다만 이쪽은 라스트 네임(한국으로 말하면 성씨)이 '''고든'''이고 그 공돌이는 퍼스트 네임(한국으로 치면 뒷이름)이다.[8] 현재는 프야매인벤이 없어져서 링크가 깨졌다. 용병과 국내선수 이름을 따로 구분하지 않아서 고씨 성을 가진 야구선수 획득 미션을 '''고'''든으로 깰 수 있었다. 서비스가 종료될 때까지 고쳐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칠 기술이 모자랐거나 운영진에서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