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환
1. 개요
前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의 우완 투수이자 현재 시흥 울브스[2] 구단주 및 올어바웃베이스볼아카데미 대표.
2. 선수 생활
2.1. 고교 시절
2003년 경남고 2학년 재학 중 야구부 내에서 집단 갈등이 벌어지자, 전격적으로 신일고로 전학하여 상경했다. 많은 야구부원들이 경고를 떠났지만, 150km/h의 구속을 자랑하던 서동환이 가장 유명했다.[3] 신일고 장호연 감독의 조련 속에서 기량을 한층 더 성장시켰다. 한편 장호연은 2002년 한 선수가 입단하면서 받은 계약금 일부를 받기로 한 공증서가 2년 뒤인 2004년에 문제가 되어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전에는 서동환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에게 소개시키고, 메이저리그 팀 입단시 커미션을 받는다는 비밀 계약을 맺었다가 이것이 발각되면서 징계를 받았었단 내용이었는데 이건 표면적인거고 진짜 이유는 계약금 건이었다고 한다.
여하간 2005년 드래프트에서 최대어였지만, 전학생 금지 규정[4] 때문에 2차 지명으로 밀린 상황. 2차 1번 지명권을 가진 연고 팀 롯데 자이언츠가 당연히 뽑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롯데는 서동환의 전학 과정에서 나타난 잡음과 더 강인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용마고 에이스 조정훈을 2차 1순위로 지명한다. 당연히 롯데가 서동환을 지명할 줄 알고 다른 선수를 눈여겨 보던 두산 베어스가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재빨리 2번으로 지명, 5억 원의 계약금으로 메이저리그 진출 대신 팀에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
2.2. 두산 베어스 시절
2005년 개막 당시 계약금 6억의 김명제와 함께 11억 듀오로서 기대를 많이 걸었다. 김명제는 선발, 서동환은 마무리로 팀에서 생각했는데 서동환은 결과적으로 그 기대를 완벽하게 저버렸다. 첫 경기에서 5점차 앞선 상황에서 만루홈런을 맞으면서 불쇼를 벌인 것. 결국 마무리 자리는 이 날 불쇼를 수습한 정재훈에게 돌아갔고,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빠른 공 외에는 이렇다할 장기가 없었고, 팔꿈치도 좋지 않았다는 점이 이 때 드러났다.
결국 팔꿈치 수술로 인해 2008년 시즌 후 임의탈퇴되기도 하고, 워낙 많이 수술을 받아서 군 면제까지 될 정도라 아예 기대를 접었다. 그래도 워낙 몸값이 세서 2군에서만 주로 등판시키고, 가끔 1군에 올리는 정도. 구단과 팬들은 아직까지도 원래 지명하려고 했던 선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카더라. 그 선수가 바로 '''윤석민'''이기 때문. 그리고 서동환 뒤로 지명된 선수는 양훈, '''정의윤''', '''오승환, 윤석민, 정근우'''.
2.2.1. 2011년
신일고등학교 대선배인 조성민이 부임하면서 그를 혹독하게 조련했고, 그 결과로 퓨처스리그에서 괜찮은 성적을 남겼다. 급기야 5월 31일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5이닝 1실점 호투하면서 데뷔 첫 선발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6년 이후 처음 거둔 통산 2승째.
2.2.2. 2012년
1군에서 불펜 투수로 시작하였다. 4월 14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2:3으로 지던 8회말 1사 1, 3루의 위기에서 등판하여 손아섭을 유격수 병살타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서동환은 이날 12회까지 던지며 4⅔이닝 61투구수 1피안타 1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을 호투하면서 두산 팬들의 기대를 이끌어내는 피칭을 선보였다. 팀은 9회초에 스코어 3:3 동점을 만들었지만 연장전에서 한 점도 못내면서 롯데와 3:3으로 비겼다.
그러나 5월 1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했으나 1⅔이닝 55투구수 4피안타 4사사구 6실점 6자책점[5] 의 최악의 피칭으로 조기강판되었다. 팀이 8:11로 승리하여 패전은 면했지만 2군행이 결정되었다.
2.2.3. 2013년
내내 2군에만 있다가, 5월 1일 잠실야구장 KIA 타이거즈전에서 간만에 1군 등판을 했지만, 팀이 4:1로 지고 있던 5회초에 패전처리 투수로 나온 것이었다. 5이닝 동안 108개의 공을 던졌지만 제구고 구위고 좋은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6] 6피안타 6사사구 2탈삼진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한 채 다음날 바로 2군행.
그리고 한동안 2군에서만 있다가 8월 15일 김선우가 발목 부상으로 1군에서 제외되자 반대급부로 1군에 다시 콜업되었다. 그리고 3일 뒤인 8월 18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7:0으로 지고 있던 5회초에 패전처리 투수로 나와서 3이닝 동안 2피안타 2볼넷을 기록했으나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팀은 9:0으로 패배했다.
8월 24일 한화전에서는 송주호를 원 포인트 릴리프로 잡아냈으나 팀은 9회말에 반격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패하고 말았다.
9월 7일 목동 넥센전에서 선발 등판해 2⅓이닝 동안 3실점을 하며 부진했다.
2.3.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3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삼성에 지명되었다. 두산 팬들의 반응은 거의 무덤덤한 수준. 가서 성공하라고 건투를 비는 것 외에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2.3.1. 2014년
2014 시즌 중반까지는 이수민, 최원제 등과 함께 BB아크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2군 11경기에 등판해 1패 2홀드 7.00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삼진/볼넷 비율 역시 나쁜 편으로, 1시즌만 두고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두산 시절 2군 기록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10월 1일 심창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10월 13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팀이 스코어 22:1로 우세한 상황에서 장원삼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등판했으나 선두 타자 장운호를 상대로 초구에 머리에 맞는 속구를 던지는 바람에 곧바로 퇴장당하고 마운드를 김기태에게 넘겼다. 장운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채 대기 중인 구급차에 실려 나갔다. 검사 결과 장운호는 큰 이상 없이 퇴원했지만, 병원에서 재검을 한 번 더 받아야 한다고. 나중에 류중일 감독이 밝히기를, 원인은 디딤발을 잘못 내딛는 바람에 공이 손에서 빠졌다고 한다.
10월 14일 권오준이 복귀하면서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2.3.2. 2015년
우완 계투가 필요한 팀 사정상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였으나, 2014년부터 문제가 되던 우타자 머리쪽으로 형성되는 투구가 개선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시범경기에서도 이런 모습은 여전했고, 그나마도 정규시즌에는 4월 말부터 출장했으나 5월 중순 이후로는 부상이 있는지 출장 못하다가 8월 27일에야 2군 경기에 등판했다.
1군 경기는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퓨처스 리그에서 17경기 18⅔이닝 30피안타 3피홈런 8탈삼진 9볼넷, 평균자점책 6.75를 기록했다. 2014시즌 후반기 안정화되나 싶었던 볼넷이 다시 늘고 삼진이 급감했다.
시즌 후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았는데, 뼛조각이 무려 12개나 나왔다고.
2.3.3. 2016년
재활 과정은 순탄했는지 2016년 2군 괌 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1군 안착에 실패했으며, 5월달에는 한 달간 1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나, 6월 이후로는 다시 부진에 빠졌고 7월 12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등판하지 못했다. 2015년과 마찬가지로 1군에서는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퓨처스 리그 성적은 27경기 31⅔이닝 1승 3패 2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7.96를 기록했다. 결국 시즌 후 삼성의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방출되었다.
2.4. 마지막 도전?
2016년 말 삼성에서 방출되어 이대로 은퇴하는 듯 했으나, 12월 14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자격으로 미국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야구를 하면서 꼭 해 보고 싶은 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이었다고 한다. 트라이아웃 일자는 현지시간 기준으로 3월 25일로 서동환 한명만을 위한 특별 트라이아웃이라고 한다. 이 자리를 마련해 준건 남궁훈 샌디에이고 극동 스카우터로 두산 시절 친분을 쌓은 사이라고 한다. # 그러나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고 마이너리그 로스터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었다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아래 문단 두 번째 링크 참고) 그 트라이아웃으로 미국에 있던 3주 동안이 인생을 통째로 바꾸게 되었다고.[7]
3. 은퇴 이후
조용히 귀국해 '올 어바웃 베이스볼 아카데미'라는 야구 교습 및 재활 관련 센터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센터 위치는 강남구 개포동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신일고 후배인 모상기가 이 교습센터의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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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21년 초, 자신이 운영중인 블로그를 통해 시흥 울브스라는 독립구단을 창단하여 이번 시즌부터 경기도독립야구연맹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4. 연도별 성적
5. 기타
별명은 두산 입단 동기인 김명제와 함께 11억 듀오. 물론 좋지 않은 의미다. 매년 부상으로 드러누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서 서동'''환자''', 나오면 팬들을 환장하게 만든다고 서동'''환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8년 3월 31일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 선수의 시구 지도를 맡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구지도 레슨을 맡기도 하며 야구 관련 글도 많이 올리는 편인데, 이수민의 시구를 보고 상체회전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한 적도 있다.
[1] 부상 및 재활을 이유로 2008 시즌 직후부터 2010 시즌 직전까지 임의탈퇴 신분이었다.[2] 2021년에 창단된 경기도독립야구연맹리그 소속 독립야구단이다.[3] 서동환, 김현우, 조승수는 신일고로 전학했고 정연회에서 이종운으로 감독이 교체됐다. 이종운은 급히 팀을 수습하고 2003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내야수 출신 투수 2학년 김상록의 활약 덕분에 우승을 차지했다.[4] 이 당시는 단순히 '전학생은 1차지명 대상에서 제외'라고만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타 구단 연고 지역 출신 전학생의 1차지명 금지는 관례상으로만 내려 오다가 뒤늦게 '중3 이후의 유급생, 타 구단 연고 지역 학교로 진학 또는 전학한 선수는 1차지명 대상에서 제외한다'로 명문화되었다가 전면 드래프트 도입과 함께 폐지되었다. 2014년 드래프트부터 1차 지명이 부활된 가운데 이 규정은 1차지명 부활 전인 2009~2012년의 전학 및 유급은 소급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5] 단, 1실점 1자책점은 정대현의 분식회계.[6] 여기서 벌투 논란이 일기도 했다.[7] 링크된 기사에서 마이너리그에서는 태블릿PC를 통한 맞춤 지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두산에서는 미국 마이너리그 연수 경험이 있던 고토 코지 코치가 이를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