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그라나다 TV)
1. 개요
영국의 그라나다TV에서 1984년에서 1995년까지 제작한 셜록 홈즈 드라마 시리즈. 방영 당시의 제목은 <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였고, 후기 시리즈는 각각 <The Return of Sherlock Holmes>, <The Case-Book of Sherlock Holmes>, <The Memoirs of Sherlock Holmes>로, 원전의 순서와는 조금 다르다.
'''셜록 홈즈 영상화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작 초기부터 목표가 정해져 있었는데, 바로 '''원작에 가장 가깝게 만드는 것''', 그리고 '''원전(canon)을 모두 영상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큰 줄기는 따라가도 몇몇 디테일은 배우들 스케줄이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바뀔 수밖에 없었는데, 예를 들어 "마자랭 스톤 사건"의 경우 홈즈 역인 제레미 브렛의 병 때문에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대신 사건을 해결한다. 또 <바스커빌 가의 개>의 경우에는 모티머 박사 역의 배우가 레스트레이드 경감 역까지 대신해야 했다. 그 외에도 "보헤미아의 스캔들"이 왓슨이 결혼하기 전에 일어난 것으로 바뀌어 있는 등, 일부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플롯의 구조나 분위기는 충실히 재현해냈다.
2. 소개 및 평가
2.1. 셜록 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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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셜록 홈즈 배우들 중에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는 제레미 브렛을 기용해서 기존의 홈즈와 차별화되는, 말 그대로 '''홈즈의 모든 면을 보여주는''' 연기를 선보였다. 단지 홈즈의 괴짜스러운 면모뿐만 아니라, 매 에피소드마다 홈즈의 '''극도로 어두운 면모'''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기에 특정 에피소드마다 '''홈즈가 죽지는 않을까?'''라고 걱정 할 정도였다고.[1] 기실 이 작품이 홈즈의 괴짜스러운 부분이나 어두운 부분을 강조하는 '''신호탄'''이 되었는데 이후로는 홈즈의 괴짜스러운 부분이 다른 성격보다 더 강조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된다.
브렛은 원작과 원작의 삽화를 철저히 연구해서 홈즈의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이 때부터 셜록 홈즈 하면 바실 래스본이 아닌 제레미 브렛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2] 행동 하나하나에 에너지가 넘치고 유머러스한 홈즈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시리즈 말기엔 심장병으로 제레미 브렛의 건강이 나빠져 '''에피소드마다 모습이 변하는 것'''이 눈에 띈다는 점.[3] 이런 이유로 "세 명의 개리뎁" 사건과 엮어 각색된 마지막 시즌의 "마자랭 스톤 사건" 에피소드 같은 경우는 홈즈 대신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존 왓슨이 각각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각색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제레미 브렛이 유일하게 홈즈 연기를 소화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바이올린 연주였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제레미 브렛 본인의 아이디어로 간단하게 해결했는데, 수준급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어린 딸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즉 바이올린을 연기하는 부분에서는 '''제레미 브렛은 켜는 시늉만 하고, 정작 연주는 그의 딸이 직접 하며''' 잘 넘어갔다.
2.2. 존 왓슨
그라나다 TV판은 새로운 왓슨 이미지를 형성하는데도 공헌했다. 래스본 시절 이후 계속된 '바보 왓슨(...)'의 이미지가 쇄신돼서 데이비드 버크[4] 와 버크가 사정상 떠난 뒤[5] 들어온 에드워드 하드위크의 왓슨은 원작에 가깝게 ''''선량하고 믿음직스러운 캐릭터''''로 묘사되었다.
3. 그 외
- 그라나다 TV의 홈즈 드라마가 고평가 받는 또다른 이유로는 홈즈와 왓슨의 우정 묘사가 있다. 사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매력은 홈즈와 왓슨의 캐릭터, 그리고 둘의 관계인데 그라나다 TV는 특히 이 부분에 많은 투자를 해서 원작의 팬들을 만족시켰다. 일상의 만담 부분도 풍부해져서 동인녀들(...)이 환호할만한 부분도 꽤 많고 그 외에도 팬의 입장으로 볼 때 즐거워 할 부분이 많다.[6]
- 드라마에 등장한 홈즈와 왓슨의 하숙방 디자인 역시 후대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패트릭 고워즈 작곡에 런던 오케스트라 협찬으로 만들어진 작중의 음악도 세미 클래식 스코어로 상당한 수준.
- 그라나다 TV는 10여년 동안 41편의 홈즈 소설들을 드라마화시켰고, 가장 성공적인 역사 드라마 시리즈로 명성을 떨쳤다.
- 에피소드를 보다 보면 낯익은 얼굴들이 간혹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한국인에겐 영화 페어렌트 트랩으로 잘 알려진 나타샤 리차드슨[8] 또 "쇼스콤 관" 편에는 주드 로가 나온다! 무려 여장을 하고!
- 한국에서도 KBS 미디어에서 일부 베스트 에피소드만 모아서 DVD로 출시되었다. 제목은 <셜록 홈즈 베스트 컬렉션>. KT IPTV 서비스였던 완전자유존에서 <셜록 홈즈의 모험>, <셜록 홈즈의 귀환>, <셜록 홈즈의 사건집>, <셜록 홈즈의 회상록>을 서비스 했었지만 KT에서 완전자유존 동영상 서비스를 2012년 8월 1일 부로 종료하면서 서비스도 끝나게 됐다. 2020년 초부터 왓챠와 wavve에서 일부 시즌에 대한 서비스를 재개하였다. 2020년 8월 3일 기준 <셜록 홈즈의 모험>, <셜록 홈즈의 회상록>을 서비스하고 있다.[9]
- Frogwares 사에서 개발한 게임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는 이 작품의 셜록과 왓슨의 얼굴을 토대로 모델링을 했다. 그러나 최근 작품인 셜록 홈즈: 악마의 딸에서는 영화판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로 얼굴 모델을 바꾸었다.
[1] 당장 피터 쿠싱의 연기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그 전에는 단순히 '냉철한 명탐정'의 이미지 뿐이었지, 원작에서 나오는 '괴짜스러운 모습'이나 어두운 부분은 거의 없었다.[2] 사실 래스본이 너무 오래된 것도 있다. 피터 쿠싱도 열연했지만 그가 맡은 드라마판은 에피소드가 고작 16개뿐인데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영상은 겨우 '''5'''편이라 영향력이 클래야 클 수가 없다. 다만 주의할 점은 홈즈를 영화화, 드라마화한 작품은 그간 200편이 넘고, 모두 각자 개성과 나름의 팬층을 갖고 있기에 작품간의 우열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 브렛의 홈즈 시리즈가 현재 가장 호평받는 홈즈 각색물 중 하나라는 것은 정설이지만 동시에 '연기가 너무 과잉되었다'며 까는 사람도 존재한다. 홈즈 역을 맡았던 배우 중 한 명이었던 더글라스 윌머는 '''"시리즈 초반의 제레미 브렛은 완벽했지만 뒤로 갈수록 연기가 너무 과잉된 것 같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3] 너무 바쁜 삶을 산 탓에 제레미 브렛은 자그만치 '''10여년'''의 드라마 제작 기간 동안 집이 아닌 촬영장 근처 호텔에서 살았다고 한다.[4] 더글라스 윌머 버전의 녹주석 왕관에서 악역으로 등장했었다.[5] 아내가 아이를 낳아서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때의 에피소드가 재밌는 것이, 드라마 시즌 1이 끝날 즈음 제레미 브렛이 전화를 해선 "우리가 이 드라마에 또 나오면 우리 경력이 끝장날 걸세. 또 출연하지 말자고."라고 해서 버크는 집에 와서 아내도 출산한 겸 드라마에 출연 안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후 브렛이 전화해선 "홈즈 드라마에 다시 출연하자."고 하자 자신은 출연 안 한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브렛은 꽤 화를 냈었다고.(...) 하지만 후에 브렛의 건강이 악화되는 걸 본 버크는 그 때 자신이 잘 행동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참고로 데이비드 버크의 하차 이유 중에는 홈즈에 비해 왓슨이 '''지나치게 젊어보인다'''는 요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크가 브렛보다 겨우 한살 어리다. 반대로 하드위크는 브렛보다 겨우 한살 많은데 족히 십년은 더 들어보였다.[6] <빈 집의 모험> 회상씬 때, 왓슨이 계곡에서 홈즈를 찾는 그 순간에 무심코 홈즈가 왓슨을 부르려 한다거나, 그 후 잠이 든 홈즈의 이불을 왓슨이 올려준다거나.[7] <악마의 발>에서 가스 때문에 홈즈가 죽을 뻔했다가 정신차린 뒤 왓슨을 '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사과. 사실 이전에도 왓슨의 이름을 부른 영상작품은 종종 있긴 있었다.[8] 너도밤나무 집 편에서 의뢰인 바이올렛 헌터로 등장했는데, 시리즈 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회자된다. 어느 딸바보의 부인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명감독 토니 리차드슨,어머니는 명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동생은 졸리 리차드슨으로 배우 집안이다. 2009년 스키 사고로 사망.[9] 자막의 경우 약간의 오류 등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빈 집의 모험에서 홈즈가 모런 대령을 소개할 때 "the best heavy game shot that our Eastern Empire has ever produced"에서의 Easter Empire을 동로마 제국으로 번역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