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건
'''The Final Problem'''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단편으로, 1894년에 출간한 두 번째 단편 모음집 《셜록 홈즈의 회상록》에 수록되어 있다. 셜록 홈즈와 그의 유명한 숙적인 제임스 모리어티 교수[1] 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왓슨과 홈즈는 왓슨이 결혼한 뒤로 점차 함께 활동하는 일이 드물게 되었는데, 1890년에는 단 '''3가지 사건만을 왓슨이 기록하였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다가 1891년 4월 24일 저녁, 왓슨의 집으로 갑자기 홈즈가 찾아온다. 여기서 왓슨이 뭐가 그리 두렵냐고 묻자 홈즈가 '''공기총'''이라고 답하는데, 공교롭게도 셜록 홈즈가 귀환하는 '빈 집의 모험'에서 세바스찬 모런은 고성능의 '''공기총'''으로 홈즈를 저격하려고 시도한다.[2]
'''"범죄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모리어티 교수와 그 일당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홈즈는 목숨을 걸고 중요한 증거물을 경찰에 넘긴다. 하지만 모리어티 교수는 부하를 보내 홈즈를 죽이려 하고, 홈즈는 친구인 왓슨을 데리고 외국으로 피신한다. 벨기에를 거쳐서 프랑스, 스위스로 간 홈즈 일행은 모리어티가 이끄는 조직이 스코틀랜드 야드에 의해 와해되었지만 정작 두목인 모리어티 교수는 놓쳤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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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가 제임스 모리어티와 함께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4] '''
5월 4일 홈즈와 왓슨은 스위스 마이링겐에 도착하고, 라이헨바흐 폭포(Der Reichenbachfall)를 거쳐서 로젠라우이 마을로 가게 된다. 모리어티 교수는 왓슨을 홈즈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두 사람이 라이헨바흐 폭포에 도착했을 때 하수인을 통해 마이링겐의 호텔에서 '한 영국인 부인이 갑작스럽게 각혈을 시작해서 영국인 의사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식의 가짜 편지를 보낸다. 왓슨은 호텔로 돌아왔다가 호텔에서 그것이 모략이라는 것을 알자 급히 라이헨바흐 폭포로 돌아가지만 그 곳에 남아있는 것은 홈즈의 지팡이와 홈즈가 왓슨에게 남긴 편지 뿐이었다.
1894년 스트랜드 매거진(Strand Magazine)에 처음으로 발표되었고, <셜록 홈즈의 회상록>에도 실린 이 단편 소설은 말 그대로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는데 정리하자면 이렇다.
코난 도일은 "홈즈를 되살릴 생각이 없다"며 버텼다. 사실 코난 도일 입장에서도 억울한 게 셜록 홈즈 시리즈에 집중하는 사이 아버지가 정신병원에서 죽었고, 아내도 폐결핵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다른 소설들이 셜록 홈즈 시리즈에 묻히니[9] 불만이 많았던 것. 당시 그는 한 친구에게 "설령 그럴 생각이 있더라도, 앞으로 몇 년 간은 그를 살려낼 수 없다네. 그건 내가 그를 과다 복용했기 때문일세. 나는 전에 거위 간 요리를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은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속이 느글거리는데, 홈즈에 대한 내 감정이 꼭 그렇거든."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하지만 '''혼자서 세계 전체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견디다 못해 '마지막 사건 이전 시점'이라는 전제 하에 <바스커빌 가의 개>라는 장편 소설을 발표하면서 다시 셜록 홈즈 시리즈를 써냈지만 이마저도 셜로키언들의 성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코난 도일은 '''"버틸 수가 없다!"'''를 외치며 죽은 홈즈를 되살려낼 수밖에 없었다. <셜록 홈즈의 귀환>에 수록된 <빈 집의 모험>은 그런 까닭에 만들어진 소설이다. 결국 홈즈의 사망사실은 없던 것이 되었으나, 그의 귀환에 대해 불만을 토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셜록 홈즈의 귀환 항목 참조.
현장에서 바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심지어는 직접 폭포에 찾아와서 울고 가는 셜로키언도 있다고 한다! 아예 코스튬 플레이도 하고 상황을 재현하는 셜로키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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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이 소설이 나온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이 동네 사람들일 듯 싶다. 스위스 관광청에서도 셜록 홈즈와 연관지어서 마이링겐 관광을 소개하는 걸 보면 사실로 봐도 무방할 듯.(#)
1. 개요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단편으로, 1894년에 출간한 두 번째 단편 모음집 《셜록 홈즈의 회상록》에 수록되어 있다. 셜록 홈즈와 그의 유명한 숙적인 제임스 모리어티 교수[1] 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2. 줄거리
왓슨과 홈즈는 왓슨이 결혼한 뒤로 점차 함께 활동하는 일이 드물게 되었는데, 1890년에는 단 '''3가지 사건만을 왓슨이 기록하였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다가 1891년 4월 24일 저녁, 왓슨의 집으로 갑자기 홈즈가 찾아온다. 여기서 왓슨이 뭐가 그리 두렵냐고 묻자 홈즈가 '''공기총'''이라고 답하는데, 공교롭게도 셜록 홈즈가 귀환하는 '빈 집의 모험'에서 세바스찬 모런은 고성능의 '''공기총'''으로 홈즈를 저격하려고 시도한다.[2]
'''"범죄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모리어티 교수와 그 일당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홈즈는 목숨을 걸고 중요한 증거물을 경찰에 넘긴다. 하지만 모리어티 교수는 부하를 보내 홈즈를 죽이려 하고, 홈즈는 친구인 왓슨을 데리고 외국으로 피신한다. 벨기에를 거쳐서 프랑스, 스위스로 간 홈즈 일행은 모리어티가 이끄는 조직이 스코틀랜드 야드에 의해 와해되었지만 정작 두목인 모리어티 교수는 놓쳤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리고...
[image][3]
'''셜록 홈즈가 제임스 모리어티와 함께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4] '''
5월 4일 홈즈와 왓슨은 스위스 마이링겐에 도착하고, 라이헨바흐 폭포(Der Reichenbachfall)를 거쳐서 로젠라우이 마을로 가게 된다. 모리어티 교수는 왓슨을 홈즈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두 사람이 라이헨바흐 폭포에 도착했을 때 하수인을 통해 마이링겐의 호텔에서 '한 영국인 부인이 갑작스럽게 각혈을 시작해서 영국인 의사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식의 가짜 편지를 보낸다. 왓슨은 호텔로 돌아왔다가 호텔에서 그것이 모략이라는 것을 알자 급히 라이헨바흐 폭포로 돌아가지만 그 곳에 남아있는 것은 홈즈의 지팡이와 홈즈가 왓슨에게 남긴 편지 뿐이었다.
전문가들의 조사에 의하면 홈즈와 모리어티 교수는 격투 끝에 폭포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에필로그 까지 적은 뒤, 왓슨이 마지막으로 "홈즈는 언제까지나 내 최고의 친구로 남을 것이다"라며 홈즈를 그리워하면서 끝난다. 덧붙여 초반부에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실종 2년 후 존 왓슨이 발표한 <셜록 홈즈의 마지막 사건>에 관한 기록이라고 되어 있다.[5]친애하는 왓슨에게. 모리어티 교수의 배려로 몇 자 적네. 교수는 지금 우리 사이의 문제에 대한 마지막 토론을 앞두고 나를 기다려 주고 있네. 그는 내게 영국 경찰을 따돌린 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고, 나는 그에게 우리가 이동한 경로에 대해 말해 주었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역시 교수의 능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더군.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그의 존재로 인해 고통당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몹시 기뻐하고 있네. 물론 그것은 희생이 따르는 일이고, 그 때문에 내 친구들, 특히 친애하는 왓슨 자네가 고통을 겪긴 하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미 설명했다시피 어찌됐든 나는 기로에 섰고, 그리고 그 어떤 결말도 이보다 더 마음에 들지는 못할걸세. 솔직히 말하면 난 마이링겐에서 온 편지가 속임수라는 걸 알았지만, 일이 이런 식으로 전개될 줄 알았기 때문에 자네를 마을로 떠나보낸 것일세. 패터슨 경감한테 일당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서류는 서류꽂이 《M》칸에 《모리어티》라고 씌어진 푸른 봉투 속에 넣어두었다고 전해 주게. 나는 영국을 떠나기 전에 재산을 전부 정리한 다음 마이크로프트 형에게 넘겨주고 왔네. 부인에게 인사 전해 주게. 그리고 이 사람아, 잊지 말게. 나는 자네의 진정한 벗이라는 것을. - 셜록 홈즈
황금가지판 기준 번역
3. 반응
1894년 스트랜드 매거진(Strand Magazine)에 처음으로 발표되었고, <셜록 홈즈의 회상록>에도 실린 이 단편 소설은 말 그대로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는데 정리하자면 이렇다.
- 일단 스트랜드 매거진은 수천 명의 독자가 구독을 취소하는 바람에 큰 손해를 봤다.
- 런던 시민들은 고인에 대한 조의를 표한다고 검은 리본을 하고 다녔다.
- 영국, 미국 등 팬들의 항의와 협박이 담긴 편지가 수없이 날아오고 코난 도일의 집은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바람에 창문이 남아나지 않았다고.
- 대낮에 보란듯이 코난 도일의 집 앞에서 셜록 홈즈의 장례식을 치러준 사람이 나왔다.[6]
- 이 시기 코난 도일은 공원을 산책하다가 검은 상장을 단 노부인에게 양산으로 얻어맞을 뻔하기도 했다.
- 심지어 코난 도일이 홈즈를 죽였다고 소송을 준비한 사람도 있었다고.
- 황태자 전하께서도 찬성하지 않는다는 뜻을 보내왔다.
코난 도일은 "홈즈를 되살릴 생각이 없다"며 버텼다. 사실 코난 도일 입장에서도 억울한 게 셜록 홈즈 시리즈에 집중하는 사이 아버지가 정신병원에서 죽었고, 아내도 폐결핵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다른 소설들이 셜록 홈즈 시리즈에 묻히니[9] 불만이 많았던 것. 당시 그는 한 친구에게 "설령 그럴 생각이 있더라도, 앞으로 몇 년 간은 그를 살려낼 수 없다네. 그건 내가 그를 과다 복용했기 때문일세. 나는 전에 거위 간 요리를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은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속이 느글거리는데, 홈즈에 대한 내 감정이 꼭 그렇거든."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하지만 '''혼자서 세계 전체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견디다 못해 '마지막 사건 이전 시점'이라는 전제 하에 <바스커빌 가의 개>라는 장편 소설을 발표하면서 다시 셜록 홈즈 시리즈를 써냈지만 이마저도 셜로키언들의 성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코난 도일은 '''"버틸 수가 없다!"'''를 외치며 죽은 홈즈를 되살려낼 수밖에 없었다. <셜록 홈즈의 귀환>에 수록된 <빈 집의 모험>은 그런 까닭에 만들어진 소설이다. 결국 홈즈의 사망사실은 없던 것이 되었으나, 그의 귀환에 대해 불만을 토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셜록 홈즈의 귀환 항목 참조.
4. 여담
- 이 소설의 무대가 된 스위스의 마이링겐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으며, 현지에는 박물관과 기념판, 셜록 홈즈의 동상, 그리고 셜록 홈즈와 제임스 모리어티가 추락했던 바위도 보존되어 있다.
현장에서 바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심지어는 직접 폭포에 찾아와서 울고 가는 셜로키언도 있다고 한다! 아예 코스튬 플레이도 하고 상황을 재현하는 셜로키언도 있다(...)
[image]
틀림없이 이 소설이 나온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이 동네 사람들일 듯 싶다. 스위스 관광청에서도 셜록 홈즈와 연관지어서 마이링겐 관광을 소개하는 걸 보면 사실로 봐도 무방할 듯.(#)
- 셜록 홈즈(그라나다 TV)에서는 마지막 사건 바로 전에 <빨간 머리 연맹>을 방송했는데, 여기서 이 사건의 배후가 모리어티라는 설정으로 나온다. 또한 모리어티는 여기서 홈즈를 '일개 아마추어'로 취급하는 포스를 보여주었고, 이번이 홈즈가 방해한 3번째 사건이라는 언급을 볼때 다른 사건에도 여러 번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사건 에피소드는 오프닝 테마 자체가 악기를 다르게 써서 더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낸다.
-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에서도 이 에피소드를 각색하여, 라이헨바흐에서 열리는 국제 회담에서 홈즈가 모리어티와 대결하다 폭포로 투신하는 모습이 나온다.[스포일러]
[1] 사실 모리어티 교수는 처음엔 말 그대로 '셜록 홈즈를 퇴장시키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불과한 캐릭터였다. 그래서 연대순으로 보면 뜬금없이 등장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의 무시무시한 모습은 이보다 나중에 발표된 장편인 공포의 계곡 등에서 잘 드러난다.[2] 홈즈가 두려워하던 공기총이 바로 모런의 총 맞다. 애시당초 모런은 천재 사냥꾼이자 잔혹한 군인으로 이름난 자였고 모리어티는 일부러 그를 스카웃해서 범죄에 써먹었다. 모런은 모리어티의 오른팔이 되어 아주 중요할 때만 나섰을 정도고, 그가 사용하는 총도 스위스의 천재 맹인 총포 제작자에게 특별히 주문한 할로 포인트 탄환을 발사하는 공기총인데 '''원거리 저격이 가능하고 소리도 거의 나지 않는 데다가 한 발만 맞아도 즉사 내지 불구가 되는 물건'''이라 홈즈라도 충분히 두려워 할 만 했다.[3] 아서 코난 도일이 다트무어에 전해지는 괴물 같은 사냥개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듣고 바스커빌 가의 개를 스트랜드 매거진에 연재할 때도 마음에 들어에 특별히 맡아달라 부탁한할 정도로 셜록 홈즈의 트레이드 마크를 만든 일러스트레이터 시드니 패짓이 그린 이 그림의 원본은 2004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22만 800달러에 낙찰되었다.[4] 재미있는 점은 황금가지(출판사) 번역본에서는 '''첫 번째 장'''부터 이 삽화가 나온다.[5] 원래 왓슨은 조용히 묻어두려 했으나, 모리어티의 형이 자신의 동생은 결백하다며 일방적으로 홈즈를 악한으로 모는 책을 쓰자, 그에 반발해서 내막을 쓴다고 도입부에 기록했다.[6] 일본에서 리키이시나 오스칼의 장례식을 올린 게 1970년대니까 80년 이상은 앞섰다.[7] 코난 도일의 어머니는 전에도 코난 도일이 홈즈를 죽여버릴까 생각 중이라는 편지에 "절대 그러지 마라"라고 얘기했었다. 코난 도일이 워낙 쓰기 싫어하자 작품 하나의 소재를 제공해주기도.[8] 여기서 도일이 생각했던 '더 나은 것' 은 역사 소설이었다. 간단하게 추리 소설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추리니 범죄니 하는 것보다는 역사에 더 관심이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추리 소설만 계속 쓰라고 재촉하니 불만이 많았던 것. 그런데 사실 영문학의 아버지 제프리 초서를 비롯하여 본인은 '별 거 아닌 작품', '심심풀이로 써본 것' 이라고 생각한 작품 덕분에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유명해진 사례가 꽤 된다.[9] '망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잃어버린 세계와 마라코트 심해, 챌린저 교수 시리즈는 셜록 홈즈 시리즈보다는 못해도 그럭저럭 인기를 끌었고, 특히 잃어버린 세계는 코난 도일이 아직 살아있던 1925년에 영화로도 나왔다.(참고로 잃어버린 세계(영화)는 영화 역사상 공룡이 등장하는 최초의 작품이며 비행기 기내에서 상영된 무성영화이기도 했다.) 그 밖에 <고도 2만 미터의 괴물>, <오로라 호의 선장>같은 단편 호러 소설들도 그럭저럭 팔렸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인기를 넘기엔 역부족이어서 그렇지.[스포일러] 물론 살아서 재등장한 것도 동일. 베이커 가 221B에 홀로 남은 왓슨이 '마지막 사건'의 원고를 완성한다. 그때 갑자기 소포 상자 하나가 배달되는데, 그 상자 안에는 마이크로프트가 보여줬던 산소 호흡기가 들어 있었다. 이를 보고 놀란 왓슨이 방에서 나간 사이, 커튼으로 감쪽같이 변장하고 있던 홈즈가 왓슨이 앉아 있던 의자 바로 뒤에서 나타나 원고 마지막의 '끝' ('The End') 뒤에 ?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