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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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文道
1940년 2월 26일 ~ 2016년 3월 5일 (향년 76세)
1. 개요
2. 생애
3. 허문도를 연기한 배우
4. 선거이력
5. 수상경력
6.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가. 본관은 김해(金海).[1]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시기 가운데 1인.

2. 생애


1940년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도전리#[2]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학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기자로 입사하였고 일본 특파원 등을 지냈다. 김옥균을 연구하기도 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전두환이 실권을 잡자, 일본에 있던 허문도는 제 발로 한국까지 날아와 전두환을 접촉하여 자문을 해주었다. 그 후 전두환이 1980년 4월 중정부장 서리를 겸직하면서 허문도를 잊지 않고 중정부장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면서 군 출신인 허삼수[3], 허화평[4]과 더불어 전두환의 최측근인 속칭 '쓰리허'의 일원으로 꼽히게 되었다. 5.17 내란 이후에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문화공보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로써 제5공화국의 언론과 문화 정책을 총괄하게 되었다.
1980년 9월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산하 공보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이 때 바로 그 유명한 관제축제인 '국풍81'을 기획하였다. 언론통폐합 및 언론기본법 또한 그의 작품이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허화평, 허삼수에게 언론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설득시킨 것으로 나왔다.
1982년 1월 문화공보부 차관에 임명되었다. 1984년 대통령비서실 정무 제1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는데, 1985년 여름에 문제를 일으킨 학원안정법안이 그의 작품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 후 1986년 ~ 1988년 동안 제13대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1989년에는 국회 문교공보위원회에 출두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980년 대규모 기자 해직을 진두지휘한 혐의로 소환 당했는데, 그에 응하지 않고 도망친 것. 그 뒤 1990년 5월에 언론 해직관련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1991년에는 민주자유당 특임위원을 지냈다.
1996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고성군-충무시-통영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정순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경상남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현역 도지사한나라당 김혁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9년 불교TV 사장이 되었으나, 노조와 언론단체, 불교계의 반발로 6개월만에 해임되었다. 2000년에는 자유민주연합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5] 지구당 위원장을 지냈고, 2002년에 특임위원장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2016년 3월 5일 오전 7시 30분경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쓰리 허 중에선 가장 먼저 사망한 인물.

3. 허문도를 연기한 배우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충무/통영/고성)

33,471 (29.9%)
낙선 (2위)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157,337 (12.5%)
낙선 (3위)


5. 수상경력


  • 보국훈장 천수장 (1980)
  • 청조근정훈장 (1992)

6. 여담


  •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 '朝聞道 夕死可矣' (조문도 석사가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를 한때 '許文道 夕死可矣' (허문도 석사가의, 허문도는 저녁에 죽어도 좋다)로 바꿔 말하는 개드립이 유행했었다. 허문도가 한창 극강의 권세를 부리던 5공 시절, 어느 고등학교 한문 교사가 학생들에게 '朝聞道 夕死可矣'를 가르치시면서 실수로(?) '許文道 夕死可矣'라 칠판에 쓴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허문도가 도쿄대학원에 유학하던 시절에는 재일교포 사업가인 박용구 씨가 세운 박용구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건 박용구는 개혁 우파 성향이며, 혁신계 인사인 조용수의 민족일보 창간에 큰 도움을 주었다.


[1] 25세손 ◯도(道) 항렬[2] 마암면사무소는 도전리에 있다.[3] 두 사람은 부산고등학교 동문이다.[4] 두 사람은 토사구팽 당한다.[5] 허문도는 금곡동(수원)에서 거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