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창(e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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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만행
2.1. 이재항 퇴출 사건
2.2. 이윤열 노예계약 및 혹사 사건
2.3. 이벤트 비용 및 연봉 갈취 사건
2.4. 이윤열 결승전 방치 루머
2.5. 그 외 만행들
3. 기타


1. 개요


스타크래프트 위메이드 폭스의 전신인 팬택 앤 큐리텔과 투나 SG, 그리고 화승 오즈의 전신인 IS 팀의 감독이었다. 1971년 11월 17일 출생.
투나 SG-팬택 감독 시절에는 프로리그 1회 우승과 2회 준우승, 팀리그 준우승 1회 등 감독으로서의 커리어 자체만 놓고 보면 명장의 축에 속하지만, 정작 '''실상 스타판에서 그의 이름 석자는 그냥 금지어 수준이다'''. 특히 이윤열 팬들은 아예 대놓고 '''송10창'''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멸할 정도다. 이는 송호창 감독이 그야말로 꾸준하게 여러가지 사고들을 터뜨려줬기 때문. 김철 감독, 이유찬 감독[1], 박외식 감독[2], 원종욱 감독, 조규남 감독, 이재균 감독 등과 한세트로 묶여서 e스포츠판 최악의 감독 중 하나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3]
물론 앞선 감독들 중 몇몇과는 다르게 선수 발굴도 잘 해냈고, 송호창이 계속 팬택 감독으로 있었을 때는 팀 단위 리그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찍었기에 다른 감독들보다 능력면에서는 한층 위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내력이 워낙 대단하기에 빛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제일 결정적인 것은 이 업적들 대부분 '''본인이 개차반처럼 굴렸던 이윤열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2. 만행


그의 주요 만행(...)들은 다음과 같다.

2.1. 이재항 퇴출 사건


당시 상황을 정리한 블로그
이재항은 개인리그 커리어는 사실 별 볼 일 없는 선수였지만, 프로리그에서는 달랐다. 팬택 저그라인의 핵심이었으며, 팬택이 SKY 프로리그 2004 2라운드 우승을 할 때 큰 기여를 하였고, 2004 시즌 통합 다승왕을 한 적도 있다. 심지어 한빛 스타즈와의 그랜드파이널 때는 팀이 1:3로 열세로 몰리고 있을 때 회심의 4드론실패하고 나서도 꾸역꾸역 버티고 버텨서 결국 승리를 따냄으로서 팀이 추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4] 헌데 황당하게도 해당 리그가 끝난 뒤 팀에서 재계약 제외 대상자에 심소명, 서기수 등과 함께 포함되었다.[5][6] 이에 대한 불만을 송호창에게 토로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결국 이재항은 송호창이 팬택에서 떠난 2006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팬택으로 돌아오지만,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결국 은퇴를 하고 만다.

2.2. 이윤열 노예계약 및 혹사 사건


지금도 가끔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이다. 당시 투나 SG는 바로 전 시즌에 슈마 GO를 상대로 아쉽게 준우승을 했고, 홍진호가 다시 KTF로 이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병민, 이재항, 심소명, 서기수 등의 걸출한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송호창은 오로지 이윤열만을 내보내곤 했다. 가장 유명한 혹사로는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IOPS 스타리그 04~05+2차 KT-KTF 프리미어 리그+당신은 골프왕 MSL+MBC 무비스 팀리그를 한 기간에 소화해낸 것이 있다.[8] 송호창은 이윤열을 이렇게 경기 내적으로 혹사를 시키는 걸로도 모자라서 경기 외적으로도, 그러니까 각종 행사들에 이윤열을 끌고 다녀서 연습할 시간까지 부족하게 만들고 행사비는 자신이 중간에서 챙겨가는(...) 그야말로 악덕 감독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과는 스타리그 빼고 전부 준우승. MSL에서는 최초로 저그에게 우승을 허용한 테란이 되었고, 팀리그에서는 대장으로 나와서 준우승을 당했으며, 프로리그 역시도 2번 나와서 전부 패하고 준우승을 했다. 그러다가 이윤열이 계약기간이 만료가 되는 시점에서 이윤열을 놓치기 싫었던 송호창은 몸도 안 좋았던 데다가 게임판의 정세에도 그리 밝지 못했던 이윤열의 어머니를 억지로 만나 온갖 헛소리들을 다 동원해서 이윤열을 붙들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

2.3. 이벤트 비용 및 연봉 갈취 사건


이쯤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악질 감독의 모습이지만, 그것마저 모자란 송호창은 선수들의 우승상금이나 그 외 이벤트에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갈취하기에 이른다. 일례로 2004년 창단한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 팀의 스폰서 팬택은 이윤열에게 역대 최고의 연봉 계약을 약속했고, 언론에는 3년 6억으로 발표되었지만 이윤열이 훗날 방송에서 푼 썰로는 1억2천+ 옵션 포함으로 받았다고 한다. 2억으로 발표한 건 당시 프로게이머들의 자존심 경쟁과 뻥튀기 발표로 e스포츠 파이를 키워 볼려고 했다고.

2.4. 이윤열 결승전 방치 루머


이윤열이 하나포스 센게임 MSL 결승전에 진출했는데, 결승 상대가 하필 당대 최강급 테란이자 자신의 숙적인 최연성이었다. 이윤열은 최연성에 비해 열세이긴 했으나, 그래도 그나마 최연성을 잡을 수 있을 만 하다고 평가되던 몇 안 되는 선수였다. 결승 당일, 루나에서 치뤄진 1경기에서 이윤열은 분전하지만 결국 패하고 만다. 이를 본 송호창은 심사가 뒤틀리기라도 하였는지(...) '''나머지 경기를 보지도 않고 그대로 이윤열만 남겨둔 채 차를 타고 숙소로 가 버린다.''' 이런 송호창의 막장행각에 각성이라도 한 듯 이윤열은 2경기 유보트와 3경기 엔터 더 드래곤에서 최연성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최연성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게 된다. 최연성은 이윤열의 뜻밖의 분전에 당황한 듯한 기색을 보였고, 이를 눈치챈 주훈 감독이 4경기 시작 전 최연성의 자리로 가서 최연성에게 조언을 한 반면에, 감독이라는 인간이 그냥 버리고 간 마당에 이윤열에게 다가가서 그나마 위로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결승 상대의 선배이자 스승이며, 자신 못지 않게 송호창한테 당해서 송호창을 잘 알고 있지만, 현재는 본인이 쓰러뜨려야 하는 상대 최연성네 팀 주장'''인 임요환이었다. 이후 이어지는 4경기 데토네이션에서 이윤열은 회심의 전진 2배럭과 벙커링을 시도하나 최연성의 사기적인 SCV 블로킹과 미친 수비력에 끝장을 내지 못했고 그로 인해 결국 마지막 5경기 루나에서까지 패하며 이윤열은 우승을 놓치게 되고 팀 감독도 돌아가버린 상황에서 이윤열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SKT T1 측에서 송호창이 이윤열을 버리고 간 딱한 사실을 알았고, 이윤열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우승자 최연성과 같이 이윤열을 회식에 참여시키고, 이윤열은 결국 SKT T1의 차를 얻어타고 숙소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후 IOPS 스타리그 04~05 결승전 때 우승자 포토타임에서 송호창은 이윤열 옆에서 실실 쪼개면서 다시 한 번 팬들의 어그로를 끌어버렸다.
그러나 이윤열이 강민과의 합방에서 '''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해당 합방. 1시간 23분 27초부터 이 부분이 나온다.진짜로는 당시에 결승전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송호창이 족발, 소주 사줘서 숙소에서 본인은 엉엉 울면서 팀원들하고 같이 밤새도록 소주 마셨다고.[9] 그리고 저때 임요환이 자신을 챙겨준 적이 전혀 없으며 딱 봐도 저거 요환이 형 팬이 쓴 가설이라며 어디서 저런 카더라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강민도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황당해한 것은 덤. 위에 적힌 송호창의 막장 행각이 워낙 악명이 높았던지라 이런 말도 안되는 오해가 꽤 긴 시간 동안 정설로 간주된 것.

2.5. 그 외 만행들


이런 것들 외에도 당시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던 김성제에게 갖은 욕과 험담을 하면서 네가 대회에 나가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냐는 막말을 하는 등 인간성 수준이 아주 쓰레기 같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해냈다.(...)[10]
2004년도 프로리그부터 선수가 시즌 중 팀을 옮기면 그 시즌에는 프로리그를 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프로리그 3라운드에서 POS와의 경기에서는 안기효가 당시 플러스에 이적한 박경수에게 지자 송호창 감독은 박경수가 시즌 중에 이적한 선수인데 어떻게 경기에 나올 수 있냐면서 이 경기는 무효라고 심판진한테 항의했지만, 심판진은 박경수가 시즌 시작 전에 딱 이적을 완료해서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했고, 당시 여론은 송호창의 치졸함을 욕하는 글이 가득했다.
SKT T1의 전신인 동양 오리온 멤버들 중 한빛 스타즈 출신이었던 박용욱SouL 출신이었던 이창훈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송호창이 싫어서 빠져나온 IS 게이머와 코치진들이다.[11] 홍진호, 이윤열 등도 KTF 임대 후 송호창한테서 벗어나려 했지만, 홍진호만 성공하고 이윤열은 실패하고 만다.
또한 2005년에는 이윤열과 팀의 투톱 반열에 있었던 에이스 이병민이 KTF로 이적한다. 최연성과의 계약이 불발된 KTF는 그에 따른 테란 라인 보강을 위해 이병민을 영입하려하자 팬택에서 이병민을 잡으려고 KTF와 같은 계약조건을 내밀었지만, 이병민은 망설임 없이 KTF로 이적하였고, 이적료 없이 이적한 유일무이한 선수가 되었다.[12] 이병민은 시즌 중 이적이라 2005년도 후기리그에는 참가하지 못하였고 팬택은 후기리그를 이윤열 원맨팀으로 임하였다. 보통 같은 계약 조건이면 원 소속팀에 남는 경우가 많은데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이적했다는 게 세간의 평.
이렇듯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팬들은 그를 매우 증오하였고 팬택과 재계약 시즌이 오자 송호창 감독은 프론트에 1년에 1억씩, 3년 계약이라는 요구를 제안했다. 하지만 팬택은 창단년도 우승 말고는 2년동안 프로리그에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지라, 프런트는 일단 6개월 단기계약 후 성적을 보고 다시 협상하자고 제안한다. 즉 프런트가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제기한 셈이고, 결국 6개월 뒤 송호창은 팬택과 결별하였다. 이후 그 자리엔 성재명을 거쳐서 김양중 감독이 들어왔다. e스포츠판에서 사실상 감독직을 내려놓고서는 업계에서 그와 친한 사람이 1도 없었는지 전직 e스포츠 감독 치고는 이후 근황이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감독직을 그만둔 이후로는 e스포츠 판에서 완벽히 손을 씻고 더 이상 e스포츠 판에 대한 미련을 하나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같은 개막장 감독인 이명근의 행보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섬뜩하다.

3. 기타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이런 인식과는 다르게 이윤열과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던 편. 이윤열이 아이옵스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우승하고 나서 우승의 기쁨을 만끽한 나머지 송호창 감독과 코치와 포옹하고 울먹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이병민이 KTF와 같은 조건을 팬택에서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뿌리치면서 시즌 도중 KTF로 이적하게 되는데[13] 이적 직후 2006년까지는 그럭저럭 출전도 하고 자신의 건재함을 나름 유지하는 모양새였으나 KTF의 암흑기라 불리는 김철 감독 시절부터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불화설이 나돌기 시작했으며 모든 선수들이 연습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 결과로 조용호, 변길섭과 같은 많은 올드들과 함께 몰락하고 말았으며[14] 2007년에는 개인리그 진출은 커녕 아예 프로리그 출전 기회조차도 제대로 잡지 못하게 된다.[15][16] 그러다 결국 eSTRO로 현금 트레이드 이적을 하게 되며 부활을 꿈꾸는듯 했으나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팀내 랭킹전에서도 하위권을 면치 못하자 이적 3개월만에 같은 팀이었던 김원기와 은퇴 수순을 밟는다.[17]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KTF 때보다 차라리 팬택 시절이 오히려 더 나았다고 하며 당시 이적한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도 한다. 다 떠나서 이는 송호창이 다른 감독들보다 선수들과의 불화가 유독 심했을지언정 선수 육성 능력과 감독으로써의 자질은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송호창이 감독직을 사퇴하고 얼마 안 가 위메이드로 창단되어 2011년에 해체되기 전까지 '''프로리그위너스 리그 우승은 물론 결승 진출 마저도 더 이상 이뤄내지 못했다.'''[18][19]
후에 안기효가 개인방송에서 썰을 풀었는데, 시청자가 송호창에 대해 묻자 일할 때는 빡세게 일하고 놀 때는 시원하게 노는 스타일이라고 하였다. 성격은 예상대로 상당히 불같은 스타일로 화가 많았다고 이야기했고 전형적인 B형 타입 남자라고 한다. 안기효 본인은 송호창과 성격이 비슷해서 케미가 잘 맞았다고 언급하였으며 다른 선수들과 달리 송호창과 큰 불화가 없었던 모양.
[1] 舊 이명근 감독.[2] 이쪽은 선수들을 아예 승부조작으로 끌어들여 팀 해체까지 일조했다.[3] 조규남과 이재균은 엄밀히 말하면 팀의 '''감독'''으로서는 최악이라 보기 힘들었지만, 2018~19년 그리핀 사건에서 만악의 근원 역할을 한 주동자들임이 드러남으로써 송호창 이상의 악질들로 평가가 뒤집어졌다.[4] 다만, 이건 나도현의 안일한 플레이도 한몫했다. 4드론을 실패하고도 승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 물론 자신이 GG를 치면 준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었으니 어떻게든 버틴 끝에 따낸 승리는 맞으나 4드론은 그 정도로 큰 리스크를 가진다. 막히는 순간 GG가 나와야 정상이며 설령 버티더라도 '''본진 배틀 관광'''까지 감수해야 할 리스크다.[5] 이재항이 모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말한 적이 있는데 "소명이와 기수가 잠깐 숙소를 나와 생활했는데 나와 소명이는 집이 서울이라 괜찮지만, 정작 걱정인 건 기수였다. 기수는 서울이 집이 아니라 지방에서 살고 있으며 게다가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팀의 막내여서 내가 기수를 챙겼다."라고 한다.[6] 참고로 심소명은 팬택에 남다가 2008년을 끝으로 은퇴하였으며, 서기수는 이후 이지호를 따라서 eSTRO로 이적하였다.[7] 오히려 이영호를 중심으로 김대엽, 우정호 등의 중견급 선수들이 쏠쏠하게 활약하여 우승까지 차지한 09~10의 KT와 비슷하다고 보는 편이 맞다. 2004 그랜드 파이널 맞상대였던 한빛 스타즈의 전력 상태가 영 좋지 않음에도 져버렸기 때문에 이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저 맞대결까지 포함해서 '''당시 팬택은 프로리그에서 한빛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것도 박정석, 변길섭을 KTF에 내준 후 제대로 된 전력보강도 없었던 한빛에게조차!''' [8] 다만 개인리그는 그만큼 이윤열이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애초에 거기까지 못 올라갔다면(...) 프로리그와 팀리그만을 준비할 수도 있었을 테니. 여기에 단체전의 경우도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은 팀의 2라운드 우승과 2004 시즌 승률 1위를 찍었기에 바로 결승전에 직행한 것으로, 2라운드 우승은 이윤열 말고도 이재항의 개인전과 이병민과 이윤열/심소명의 팀플 조합 역시 큰 역할을 했고, MBC 무비스 팀리그 결승 진출 또한 심소명, 김상우 등의 선수들이 1번씩 올킬을 해주는 등 이 때의 팬택은 09~10 이후 사실상 이제동 원맨팀이 된 화승 오즈, 09~10 전까지 이영호 소년가장 팀이었던 KTF마냥 이윤열에게 모든 전력이 편중되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저런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7] 물론 그중에서도 이윤열의 비중이 가장 컸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단적인 예로 2006 전기리그 팬택의 6승 4패 중 5승이 이윤열의 하루 2승으로 이룬 성과다. 시점은 송호창이 이미 사퇴한 이후지만.[9] 실제로 최연성에게 결승에서 패하고 대놓고 울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울먹이면서 인터뷰를 하였다. 또한 이 결승의 패배를 통한으로 삼으면서 한동안 아이디를 Remember 4.18로 쓰기도 했으며 최연성과의 EVER 스타리그 2004 8강 3경기에서 이 날의 설욕을 위해 저 아이디를 사용했지만 결국은..[10] 참다 못한 김성제는 결국 임요환과 자신의 팬들의 도움으로 다른 팀인 SKT T1으로 이적해 버린다. 후술하듯 T1이라는 팀 자체도 대부분의 멤버는 송호창이 싫어서 IS를 나온 것이다.[11] 최연성도 IS에 입단 테스트를 받은 상황이었으나, 정작 데뷔는 동양에서 했다. [12] 이는 FA 제도가 만들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13] 규정에 의해 해당 기간에 진행되던 프로리그는 출전하지 못했다.[14] 앞의 선수들 뿐만이 아닌 KTF에 소속되었던 모든 올드 선수들이 부진을 면치 못했다.[15] 특히 2006년의 이병민의 테테전은 '''공식전 기준 26전 6승 20패 승률 23.1%, 비공식전 기준 32전 12승 20패 승률 37.5%'''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하락해버리고 말았다. 저 때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 4위를 기록했지만 테테전 성적만 살펴보면 24강에서 안상원에게 패배, 4강에서 이윤열에게 0:3 셧아웃 패배, 3위 결정전에서 전상욱에게 1:2로 패하면서 이 대회 테테전 성적만 종합해도 '''7전 1승 6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하였다.[16] 실제로 이병민은 투나-팬택 시절에는 개인리그에서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준우승 1회, 4위 1회, MSL에서는 4위 2회를 기록하였고 팀단위대회에서도 프로리그에서는 우승 1회, 준우승 2회, 신인왕, 개인전 다승왕 1회, 결승전 MVP 1회, 팀리그에서는 준우승 1회를 기록할 정도로 개인리그와 팀단위대회 커리어 모두 상위권의 테란 플레이어였다. 그러나 KTF 이적 후 이병민의 개인리그 커리어는 4강 진출이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4위 1회에 그치고, 프로리그 커리어도 결승전 진출 기록이 SKY 프로리그 2005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이 전부였다.[17] 스타리그는 2006년에 개최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16강에서 변형태에게 0:2 패배를 당하면서 더 이상 스타리그 본선 무대에 복귀하지 못하고, 오랜만에 MSL 본선 무대에 복귀한 곰TV MSL 시즌2에서도 32강에서 2경기에서 서지훈에게 패하고, 패자전에서는 변은종에게 이기지만 최종전에서는 박정욱에게 패하면서 1승 2패로 32강에서 광탈하고, 마지막 개인리그 본선 무대인 Arena MSL 2008에서도 2경기에서 서경종, 패자전에서 이윤열에게 차례대로 패하면서 2전 전패로 32강 광탈을 하고 만다.[18] 당장 송호창이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후 팬택-위메이드 폭스의 계보에서 프로리그 및 위너스 리그 포스트시즌에라도 가본건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준플레이오프 진출이 전부일 정도이다.''' 송호창이 감독으로 있던 투나-팬택 시절에는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2회, 팀리그 준우승 1회를 달성하였던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나마 개인리그에서 박성균, 이윤열이 우승을 차지하긴 했으나 그에 미치지는 못했다.[19] 거기에 송호창이 있던 투나-팬택 시절에는 이윤열이 프로리그 개인전 다승왕 2회, 팀리그 다승왕 1회, 이병민이 프로리그 신인왕, 개인전 다승왕 1회, 결승전 MVP 1회, 심소명이 프로리그 팀플전 다승왕 2회, 정규시즌 MVP 2회, 이재항이 프로리그 개인전 다승왕 1회를 수상한 것에 비하면 송호창이 나간 후의 팬택-위메이드 시절 소속 선수들의 프로리그 및 위너스 리그 입상 경력도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