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혈병

 

국제질병분류기호(ICD-10)
E54
진료과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치과
관련증상
피로, 통증, 피부 건조증,
출혈, 혈뇨, 혈변, 타박상
관련질병

壞血病 / Scurvy
1. 개요
2. 설명
3. 원인을 찾기까지
4.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비타민C''' 섭취 부족, 장의 흡수장애, 세균감염으로 인한 체내 수요량 증가 등에 의해 발병하는 질병. 비타민C는 우리 몸의 세포조직의 형태를 유지시켜주는 콜라겐 합성에 관여하는데, 비타민C가 없으면 구조단백질인 콜라겐이 견고한 섬유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부스러지기 때문에 각종 장기 및 혈관벽 등의 약화가 일어나 내출혈이 심해지고,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2. 설명


그냥 과일이나 채소를 챙겨먹으면 걸릴 일이 없는 병이지만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없는 과거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바다 위의 뱃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힌, '''불치병'''이나 다름없는 병이었다. 20세기에 원인이 밝혀진 뒤로는 환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현대 한국에서는 괴하게도 바다와는 아무 관련 없는 대학생 계층에서 괴혈병 환자가 나타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는데, 원인은 식습관 때문. 배달 음식 등으로만 식사를 때우며 영양소 섭취를 엉망진창으로 하는 바람에 제대로 필수 영양소가 공급되지 않다가, 결국 비타민C가 고갈되어버리고 만 경우다. 당연히 장애가 생기거나 죽을 정도로 가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되고, 사방팔방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아무 슈퍼편의점, 약국에 들러 과일이나 비타민 영양제 하나 사 먹으면 바로 낫는다. 사실 대학생 계층이 아니더라도 채소는커녕 과일조차도 잘 안먹는 사람이면 생기곤한다.[1]
괴혈병의 증상은 기본적으로 무기력감, 나른함 등의 만성피로와 유사하게 나타난다. 권태감, 식욕부진, 피부건조 등이 나타나며, 피부에 피하출혈이 나타나기도 한다. 병이 심하면 잇몸 등에도 출혈이 나타나며 잇몸이 약해져 치아가 흔들흔들거리는 증상이 발생한다. 이외에도 혈뇨와 혈변 등 몸 곳곳에서 출혈성 질병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증상을 계속 방치할 시 뼈가 약해져 골절이 일어나기 쉽고, 지속적인 내출혈에 의한 빈혈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어서 구강점막, 피하, 내장 등에 출혈로 인한 혈종이 나타나게 된다. 비타민C가 보충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증상이 더 심해지면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지게 되어 결국 감염 등으로 인해 '''죽는다.'''
동물 중에는 인간이나 기니피그 정도를 제외하고는 세포 내 포도당을 비타민C로 바꾸는 유전자가 들어있다. 인간의 경우 진화과정에서 그 유전자가 탈락했기 때문에 괴혈병에 걸린다고 한다. 육식동물이 채식을 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2] 그런데, 야생동물은 날것으로 먹이를 먹기 때문에 육식동물이라고 해서 딱히 비타민 섭취하자고 풀 뜯을 이유는 없다. 또 딱히 풀을 뜯어먹지 않아도 초식동물을 사냥하면 내장을 먼저 먹어치워서 내장기관에서 소화되고 있었을 풀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비타민을 보충하기도 한다.
치료법은 정말 간단하다. '''비타민C보충해주기만 하면 된다.''' 비타민C는 사과, 레몬, 딸기, 복숭아 등의 과일과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배추[3], 풋고추, 파프리카 등의 채소에 많이 함유되어 있고, 심지어 감자같은 서류나 같은 날고기에도 비타민C는 들어있다. 기본적으로 60mg만 먹어도 4~6주가량 괴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시중에는 비타민제도 많이 팔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는 질병 축에도 끼기 어려울 정도로 치료가 간단하다. 의사들은 보통 비타민제보다 과일과 채소 섭취를 통한 치료를 주로 권장하는 편이다.

3. 원인을 찾기까지


상기된 바와 같이 괴혈병은 현재 병 축에도 못 낄 정도로 정말 간단한 방법으로 치료되는 병이다. 그러나, 그 '간단한 방법'을 모를 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야 비타민비타민C는 매우 익숙한 단어이지만, 매우 개념잡기 어려운 물질이라 이 개념이 최종적으로 확립된 건 '''1930년대'''에 와서야 가능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인류는 장거리 항해를 시작한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을 괴혈병과 씨름해야 했으며, 수백 년간 매우 무시무시한 병으로 군림했다. 결국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
각기병도 그렇지만 괴혈병도 식문화의 차이가 영향을 줬다. 아시아권은[4] 채소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서 장기보존, 직접 재배, 또는 중간기착으로 재보급하는 방식으로 선박에 싣고 갔으므로 괴혈병의 사례가 매우 적었다. 대신 각기병이 유독 높았었다. 특히 잡곡을 잘 안 먹었던 일본의 왕족이나 귀족들.[5]
과거에는 괴혈병 치료법을 모르거나 비타민C를 보충할 수단이 없어 이를 지속적으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아, 장내 출혈이나 부종, 사망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비타민C를 보충할 방법이 많기 때문에 이 정도의 중태에 이른 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타민 C는 설익은 과일과 식용 식물에 모두 들어있고 신선한 고기에서 얻을 수도 있으므로 굳이 잘 익은 과일이나 채소만 찾지 않아도 된다.[6] 다만 조리하기보다는 날것이나 되도록이면 덜 익힌 것으로. 실제로 초창기 남극, 북극을 탐험하던 모험가들은 괴혈병으로 고생하다가 갓 잡은 물개 고기 스테이크 같은 것으로 병을 치료했다고들 한다. 아문센의 회고록에서 한 번은 경험이 별로 없는 선장과 선원들과 항해를 갔다가 결빙 때문에 고립되었을 때 선원들이 괴혈병으로 쓰러지던 중에 본인은 신선한 물개펭귄 고기를 먹으면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서적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선장이 극구 반대하여 선원 거의 전원이 앓아누운 사건을 언급했다. 결국 선장마저 쓰러지고 나서야 아문센이 펭귄 날고기를 거의 강제로 먹이다시피 해서 병세가 호전되었다고. 일부 함선에서는 를 잡아 먹어서 괴혈병이 나아졌다고도 한다.[7]
오래전부터 고기를 선호하던 서양에서는 아직 비타민C의 존재를 몰랐음에도 경험을 통해 괴혈병의 특효약 중 하나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레어 스테이크'''라는 건 알고 있었다. 물론 이는 매우 적절한 대응법 중 하나임이 맞다. 장기항해 중인 배 안에서 '''신선한 고기를 구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는데, 그 시절의 바다에선 배 안에서 왕이나 다름없는 선장도 신선한 고기를 매일 먹기 힘들었다. 염장육조차 화재의 위험 때문에 굽지 못해 삶아 먹는 경우가 많았기에 장기항해 중인 배안에서 신선한 고기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구했더라도 괴혈병으로 너덜거리는 이빨로 레어 스테이크를 씹어먹을 수 있을지는...
선상 낚시로 생선을 잡아 회쳐먹는 것도 괜찮다. 바다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신선식품인 생선로 먹어도 치료 효과가 있어서, 경험적으로 이 방법이 구전된 함선이나 상선 등에선 함장이나 선장이 허락해 낚시를 하면 우선 병실에 입원한 환자에게 먹일 생선을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했다.
고춧가루 같이 말린 식품은 어떨까 싶지만, 일단 고추는 콜럼버스 이후에 등장한데다 비타민 C는 항산화제다. 열풍이나 뙤약볕에 말리면 대략 좋지 못하다. 그늘에 말린다면 한결 나을지도 모르지만 분쇄해야 하므로 여기서 또 아웃. 품종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USDA 기준으로 고추가루 100g당 표준권장섭취량의 1%라는 괴멸적인 감소량을 보여준다. 안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생각만큼 큰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 당시의 고추는 지금 우리가 먹는 고추처럼 맛있는 게 아니고 그냥 쌩 매운 물건(할라피뇨를 생각해보자 - 그것도 사람이 먹을 만큼 개량된 놈이지만...)인지라 비타민C의 존재를 알아도 안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8]
심각한 문제는 과거의 저장방법인 염장이나 훈제, 건조등의 방법으로 음식물을 처리하면 비타민C가 파괴될 뿐더러, 설령 남아있다고 해도 얼마 가지 못해 빛 등에 의해 분해된다는 것. 이는 각기병을 예방하는 비타민B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이다.
따라서 당시 뱃사람들의 배에는 '''비타민 C가 들어가 있을 음식이 전무했다.''' 대부분이 [9]이라든지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고기, 벽돌 같은 비스킷, 상한 물 같은 것뿐이었고 신선한 과일은 거의 없었다. 15세기 이전의 선원들은 대양항해가 별로 없이 육지 주변을 주로 항해하며 자주 항구에 들렀기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나, 시간이 흘러 대항해시대 이후 대서양이나 태평양의 먼 바다를 횡단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선원들에게는 괴혈병의 발병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특히 자비로 항해 중 도축해 먹을 가축이나 과일, 채소 등을 사들여 올 수 있는 장교상선사관 등은 이 병에 잘 걸리지 않았고, 괴혈병 환자의 대부분은 말단 수병들과 선원들이었다. 그나마 과업이 낚시던 어선이나 포경선에선 하급 선원들도 고래와 물고기가 꾸준히 잡혀 준다면 신선한 생선과 고래고기를 자주 섭취해서 괴혈병에 잘 안 걸렸다.
예를 들어 1740년 영국 해군이 아메리카 식민지 원정을 위해 파견한 조지 앤슨[10] 제독(George Anson 1697~1762)이 이끌었던 함대에는 '''총 1955명'''의 장병들이 있었는데, 세계일주를 성공한 후 4년 후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앤슨 제독 본인을 포함한 634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이 중 전투로 죽은 사람이 4명, 열병과 이질로 죽은 사람이 320명, '''절반 이상인 997명은 모두 괴혈병으로 죽었다.'''
이러한 괴혈병의 막강한 힘 앞에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았는데 술을 한 병 원샷한다든지, 목만 남기고 땅에 파 묻는다든지 황산을 마신다든지(!!) 같은 극단적인 방법까지 썼지만 나을 리가 없었다. 일단 황산을 마시고 괴롭게 돌아가신 분에게 애도를. 레몬 같이 신맛나는 과일을 먹으면 괴혈병이 낫는 경험에 따라 신맛, 정확히는 산성 성분이 괴혈병을 치료한다고 믿은 쪽에서 황산을 먹이는 실험을 했다. 희석한 황산을 먹였다고 하는데 그래도 죽거나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자우어크라우트와 레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식초를 먹는다는 발상이 생겨서 실험도 했다.
또한 이 병이 냄새등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11], 배 내부를 수시로 유황 피워 낸 연기로 소독하거나 청소를 자주 하는 등의 노력도 해 보았지만 효과가 없기는 매한가지.
그러던 중 1747년,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 박사는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는 괴혈병 환자들을 서로 나누어서 각기 다른 치료법들을 적용해본 결과 레몬오렌지 같은 과일을 먹은 환자들의 증상이 완화되어 갔고 결국 치유까지 된 것을 발견한다.
린드는 이후 1753년에 논문을 통해서 오렌지와 레몬과 같은 과일이 괴혈병을 낫게 해줄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우습게도 당시 영국 의학계는 린드의 의견을 어떻게 그런 과일 따위가 괴혈병을 치료하겠느냐면서 철저하게 무시하였다. 영국 해군 또한 린드의 연구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비용적인 측면이 겹쳐 적극적인 대응에 미온적이었다.[12]
하지만 영국 해군 수뇌부 역시 괴혈병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정도는 인식하고 있었다. 과일을 사서 보급해줌으로써 나가는 비용이 괴혈병으로 죽는 숙련 수병들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에 비하면 매우 적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기된 앤슨 제독의 4년 간의 세계일주에서 괴혈병으로 잃은 인원이 1000명에 육박했는데 이 정도 숫자면 1급 전열함 3~4척을 조함할 수 있는 병력이다. 더구나 군함의 수병이나 상선선원은 어느 정도 이상 숙련되지 않으면 아무런 쓸 데가 없기에, 이만한 인력 손실은 치명적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만한 숫자의 숙련인원을 순식간에 복구하고 채우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혈병의 정확한 발병 원인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오류와 실수를 반복하는 삽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섭취하면 괴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제임스 쿡 선장이다. 1768, 1772, 1776년의 세 차례 장기 항해 중에서도 쿡 선장의 함대에서는 괴혈병으로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보급할 때마다 채소, 과일을 꽉꽉 채우고 틈만 나면 상륙해 신선한 식품들의 확보에 열성적이었으며 배의 위생관리에 철저히 신경 쓴 덕택이었다. 특히 한번 항해를 나갈 때마다 양배추 소금절임인''' 자우어크라우트[13]를 3가량 준비해서 괴혈병에 대비했으며 선원들이 반드시 양배추를 섭취하도록 명령'''했으며, 고기보다 양배추가 많이 보급되는 것에 불만을 터트리는 선원을 채찍으로 다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선원들은 차라리 죽이려면 죽이라는 투로 안 먹었다![14] 그러자 쿡은 폭력으로 안 되겠다고 하여 발상의 전환을 감행, 자우어크라우트 배급을 확 줄이고 대신 장교들에게 두둑히 줬다. 그러자 나중에 가니 선원들은 차별대우하냐며 스스로 자우어크라우트를 똑같이 배급해달라고 요구했다.[15]그렇게 하여 쿡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괴혈병 사망자가 1명도 없이 세계일주를 해낸 선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함대에서 사망자가 아예 없었느냐 하면 또 아니었다. 항해 도중 바타비아(자카르타)에 기항했다가 이질말라리아에 옮고 이것들이 선원들 사이에 창궐하면서 왕창 저승 갔기 때문이다.(...)
한편, 린드 박사의 의견은 묵살되고 잊혀지는 듯 하였지만 1781년 길버트 블레인이 다시금 괴혈병의 치료법을 이야기하였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수병들의 항의도 있었기에 결국 영국 정부는 '''1795년'''에서야(상술했듯 린드의 논문이 나온게 53년도이니 40년하고도 한참 넘었다! 심지어 길버트의 논문이 나온 지도 10년이나 넘은 시기!) 해군에 라임을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대안책은 레몬이었다. 그러나 라임에 비해 레몬은 수확량도 적은데다 영국이 점령한 땅들에서는 잘 나지가 않아 많이 비쌌고, 생으로 먹기에는 무리가 있어 설탕을 넣어야 하니까 비용 문제 때문에 공급을 거부했다. 라임이 여기저기 넣어서 먹기도 좋은데다, 카리브나 인도, 말레이 반도 같은 영국령 식민지들에서 대량 재배가 가능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여전히 함장들과 군의관들의 의심이 팽배했기 때문에 괴혈병이 발생하면 치료제로서 라임 주스를 제공했다. 처음엔 일반 식료품이 아니라 의약품으로 취급했기 때문으로, 예방은 못 해도 환자 발생시 금방 회복시켜 전투력을 유지시킬 수는 있어 효과적이긴 했다. 그 외에도 여전히 보급이 어려운 문제 때문에 질병 예비를 위한 라임 주스 제공이 정상적으로 실행 된 때는 1820년부터였다. 라임은 레몬보다 비타민C 함량이 다소 적긴 하지만, 비타민 자체가 인체에 극히 소량만 요구되고, 레몬에 밀려서 그렇지, 라임에도 비타민 C가 풍부하기 때문에 괴혈병 문제 해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때문에 영국과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영국 해군의 별칭은 '''라이미'''로 불리게 되었다. '''라임 주스나 먹는 꼬맹이들'''이라는 뜻이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는 거칠고 남자다운 성격과 체질을 유지하려면 채식을 멀리하고 육식과 음주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16] 때문에 라임 주스나 마시는 영국 해군을 보고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우리로 치면 성인 남성이 어른의 음식인 커피는 못 마시고 애들처럼 사탕이나 빠냐고 비웃는 것. 나중에는 이것이 대명사처럼 굳어져 지금도 종종 영국 군인을 해군, 육군, 공군 가리지 않고 라이미라고 부르곤 한다. 미국에서는 직업과는 관련 없이 영국인 자체를 비하하는 단어로 변질되었다.[17]
영국인들의 식단이 육식과 베이커리 위주로 편성되고는 했지만, 스테이크는 레어로 많이 먹고, 당근양파, 완두콩, 깍지콩, 토마토, 사과, 베리류 같은 채소와 과일들은 식단에 반드시 포함되었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비타민 C와 관련된 문제가 없었다. 통조림 기술, 더 나아가서는 냉장-냉동 보관술이 등장하기 이전의 선박이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비타민 C 섭취가 어려웠을 뿐이다. 애초에 육지에서 비타민 C 부족이란 극지 탐험가나 겪는 일이다.
어찌 되었건 이 시절 생으로 먹기에는 시고 향이 강한 라임을 맛있게 먹기 위한 온갖 노력들이 있었고, 이때 탄생한 라임 관련 레시피들이 영국과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식민지들로 퍼져나갔다. 대표적으로 라임 주스를 이용한 칵테일들, 라임 에이드를 비롯한 음료들, 라임 파이 등이 있다. 오늘날에도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에서는 이 라임을 이용한 요리들이 상당히 인기가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 해군의 주요 기항지이자 영국의 핵심 식민지-자치령이었고, 오늘날에도 영국과 교류가 활발한 싱가포르의 경우 웬만한 호커 센터나 음료 가판대에서 영국식 라임 음료들을 기본적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덕에 싱가포르의 높은 물가에도 자주 접할 수 있다. 특히 라임이 민트와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에 아예 라임 민트라는 조합법도 있다.
다만 여전히 그 발병원인이 비타민C 부족에 의한 것이라는 걸 정확히 몰랐던 탓에, 대충 라임 비슷한 신맛 나는[18] 걸 지급하기도 하였고 또는 분명 레몬이지만 그것을 시럽처럼 불에 졸여서 먹이기도 해서[19] 언제나 제대로 된 효과가 나오지만은 않았다.
다른 유럽 해군들이나 뱃사람들의 경우 다른 해결방안이 있었다. 채소를 먹지 않으니 이렇다는 분석이 나와서 채소를 절여서 먹는 방식을 쓰기도 했다.[20]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도 대양으로의 원양 항해에서 괴혈병을 완벽히 예방하기는 어려웠고, 때문에 영국과 비슷한 시기부터 레몬이나 오렌지 등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슬람권에서는 괴혈병에 대해 유럽보다 이른 시기에 발전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15세기 이슬람 의사들은 괴혈병에 대하여 채소를 먹으면 해결된다는 엄청 앞선 지식을 보여줬다. 이슬람권은 비교적 일찍부터 인도양 대양 무역의 중심에 있었고, 그들도 기나긴 항해를 하며 괴혈병에 걸렸으며 물 문제로 골치를 겪은 것도 있다. 이슬람권의 경우 인도양 곳곳에 거점들을 마련해놓고 이런 거점 항구들에서 과일과 채소들을 구매해 보급하는 방식을 썼다. 거점이 없는 대양으로 향할 경우 보존 처리한 과채류와 차를 섭취했으나, 이 역시도 완전한 괴혈병 예방은 힘들었다.
중국의 경우, 대원정을 했던 명나라 정화의 경우는 선내에서 콩나물을 재배해서 해결했다고 한다. 콩나물의 경우 생장 중에 비타민C가 생합성 되기 때문이다.[21] 다만 이 방법은 선내에 선원들에게 지급할 충분한 양의 콩나물을 키울 공간이 필요했고, 더 큰 문제는 콩나물 재배에 막대한 양의 물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식수도 구하기 힘든 원양 항해에서 쓸 만한 해법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화의 항해 자체가 미지의 해역을 향한 탐험, 또는 장기간 보급이 불가능한 원양 원거리 항해가 아니라 고대부터 이미 교역망이 구축되어 있던 동남아시아+인도양>+아프리카 동해안 지역에서의 연안항해였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화가 거친 항로 자체가 1세기부터 이미 확립되어 있던 실크로드의 바닷길을 따라간 것이며, 따라서 이슬람 상인들에 의해 구축되어 있던 환 인도양 교역권의 보급 거점 및 교역항들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 즉 정화의 항해는 탐험이나 원거리 교역이라기보다는 명나라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대규모 대외 원정에 가까웠고, 여기서 보급 문제는 '보관과 운송'의 문제라기보다는 '거래를 통한 구입'의 문제였던 것이다. 콩나물 재배 역시 계속 보급거점을 거치며 깨끗한 물을 보급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비타민 C를 공급하기 위해 필수적인 해결책이라기 보다는 장거리 원정에서 식량 보급 안정성을 위한 다양한 수단 중 하나로 차라리 둔전에 더 가깝다. 괴혈병의 위협에 심하게 시달리던 원거리 항해의 사례에 비교할수는 없는 것. 또 이와는 별개로 정화의 함대는 물 관리에 실패하여 괴혈병 대신 수인성 전염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또한 이후 명나라 조정에서 정화 함대의 항해 일지들을 소각시키고 자세한 기록들을 파기한 바람에 정확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
비슷한 이야기로 일본군도 러일전쟁시 콩나물을 재배해 먹어서 비타민C를 섭취했다는 얘기가 있다. 링크 반면 러시아군은 콩을 그냥 수프로만 먹어서 상대적으로 비타민C가 부족했다는 설.
사실 괴혈병이 크게 줄어든 시기는 감자가 전래되면서부터였다. 감자에는 비타민C가 놀랄 만큼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게 탄수화물의 공급원이기도 하면서 덩이줄기다 보니 저장성도 좋았다. 그리하여 유럽에 힘들게 전래된 감자는, 유럽에 제대로 전래된 직후 유럽 선원들로부터 엄청난 속도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예방법이 어느 정도 알려진 이후에도 인류가 괴혈병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초반 러일전쟁 당시에도 러시아 해군 발트함대는 극단적인 장거리 항해를 하다 보니 신선한 채소를 지속적으로 보급받기 힘들어 수병들이 괴혈병에 시달려야 했다. 근현대의 함대가 괴혈병에 걸린 좀 특이한 경우.[22] 일본군의 경우엔 정화와 마찬가지로 콩나물로 문제를 해결했으나, 이쪽은 백미만 먹어대다 각기병으로 고생했다. 그러다가 일본 해군이 서구식 식단을 일부 도입해 해결한 뒤 일본 육군도 해결했다.
지금까지의 서술을 읽어 보고 감이 잡혔을 수도 있지만, 괴혈병은 철저히 대증적인 연구를 통해 극복한 병이다. 비타민이 뭔지 아예 몰랐으니 당연한 것이다. 비타민C의 개념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1930년대'''의 일이며, 비타민D 등 다른 종류의 비타민은 더욱 늦게 발견/정립되었을 만큼 비타민은 어려운 개념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경험적으로 '이런 것을 먹었더니 괴혈병이 낫더라.'라고 알았던 것. 뭔가 좀 안습하지만 원래 현대 과학의 발전사는 대부분 다 이런 식이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통조림의 경우처럼 말이다.[23]
다만 원인 혹은 해결 방법을 아는 것과 완전한 해결을 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 영국 해군의 경우 라임을 지급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라임을 장기 보관할 방법이 없어 라임 주스 착즙법이 개발되기 전까지 괴혈병에 적극적인 대처가 힘들었다. 이후 라임 주스 착즙법 개발을 시작으로 병조림과 통조림의 도입, 더 나아가서는 현대 영양학과 냉장-냉동술의 등장과 같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오늘날 괴혈병은 사실상 잊힌 질병이 되었다.
하여튼 조금만 알고나면 너무나 간단하게 예방 치료할 수 있는 병이다 보니 현재에는 발병이 거의 없고 발병하더라도 금방 나을 수 있는 병이 되었다. 물자가 부족한 조난상황이나 전쟁상황이라도, 그런 때를 대비한 키트와 비축 물자들에 알약으로라도 반드시 비타민 C가 들어가 있으니까 말이다.

4. 매체에서의 등장


만화 원피스의 등장인물 롤로노아 조로의 후배(?)인 현상금 사냥꾼 요삭이 이 병에 걸려서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다. 당시 동료였던 죠니는 치료법을 몰라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지만, 나미가 지혜를 발휘하여 라임 열매를 먹였고, 덕분에 요삭은 회복하게 된다.[24] 나미의 말로는 한 세대 전만 해도 항해에 뒤따르는 절망적인 병이라고 했는데 고작 한 세대 전에만 해도 이지경이었다는 소리니[25] 많은 등장인물들이 모를법도 하다. 특히 상식이 부족한 루피나 조로는 더더욱... 이 에피소드에서 밀짚모자 일당은 배에는 훌륭한 요리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해상 레스토랑 발라티에로 가 동료를 구하게 된다.
유명한 해적 이야기 보물섬에서도 소금에 절인 사과를 담는 드럼통을 배에 싣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게임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는 시리즈 전통적으로 오래 항해를 하면 괴혈병이 걸리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피로도가 올라 선원들이 하나 둘 죽어가면서 게임오버. 라임주스를 구입하여 사용하거나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음식을 먹거나 아니면 그냥 근처 항구에 정박하면 해결된다. 시리즈에 따라 특정 선수상을 달면 예방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26]
리그 오브 레전드에 등장하는 갱플랭크는 리메이크 이전까지 언제나 괴혈병이란 디버프에 걸려 있었다. 리메이크 이후에는 괴혈병 디버프가 사라졌다.
Europa Universalis IV에서는 함대의 항해 시간이 길어지면 소모율이 마구잡이로 증가하여 결과적으론 함선들이 모조리 침몰한다. 그 원인은 바로 괴혈병으로, 외교기술이 후반테크로 들어가면 괴혈병 치료법이 발견되어(...)[27] 항해 시간에 따른 소모 증가가 사라진다.
같은 회사의 크루세이더 킹즈 2에도 있는데 캐릭터가 함선을 오래 이끌면 발생한다. 근데 끽해야 지중해에서 북해까지가 다이므로 일반적으론 걸리지 않는다. 일부러 함선에 올려놓고 자살시키는(...) 용도로 많이 쓴다.
웹소설 공작부인의 50가지 티 레시피의 세계관은 지구의 18세기 시대 정도의 사회라 괴혈병 치료 방법이 없었다. 클로에에게 빙의한 박하정이 로즈힙 차 사업을 시작하면서 괴혈병이 치료되었고, 그 공로로 제국 여성 최초로 은독수리 훈장을 받았다.

[1] 특히 집안 특성상 채소, 과일을 잘 안먹는 집안일 경우. 실제로 집안 특성상 채소, 과일을 잘 안먹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어느날 잇몸에서 피가 나는등 괴혈병 증세가 나타났으나 과일 한번 먹었더니 싹 나았다는 사례도 있다.[2] 물론 갯과 또는 고양잇과맹수들도 체내에 비타민C를 합성할 순 있겠지만 다른 초식 동물들에 비해선 완전한 편은 아니라 영양 보충을 위해 가끔 풀을 뜯어먹기도 한다.[3] 단 배추는 비타민C가 적은 편이다. 무보다도 적다.[4] 특히 육식금지령이 지속된 일본은 더했다.[5] 일본은 육식 금지령 이후로 높으신 분들이 백미나 채소 계열 이외의 제대로 된 반찬을 잘 안먹었다. 한국, 중국 요리가 고중세 때부터 영양소 배분이 다양 했던걸 생각하면 더 더욱...[6] 그래서 과일이나 채소를 구하기 힘들었던 유목민들도 의외로 괴혈병에는 잘 걸리지 않았다. 또한 이누이트들이 사냥한 고기를 익히지 않고 먹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극지방에서는 연료를 구하기 어려워 불을 붙여 굽는 것이 힘들기에 고육지책으로 생으로 먹은 점도 있지만.[7] 그러나 이 방법의 경우는 기생충 감염 등의 위험이 있어서, 환자가 정말 곧 죽을 것 같을 정도로 위독한데 그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정도의 매우 매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는다.[8] 지금 우리가 섭취하는 식품들의 상당수들은 '인간이 섭취하기 알맞게 개량된 품종'들이 대다수이다. 소나 돼지 같은 동물들은 물론 이나 옥수수, 감자 등도 죄다 인간이 먹기 좋게 개량된 품종들뿐이다. 같은 식품이지만 야생에서 자라는 품종들을 먹어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맛이 전혀 안 난다![9] 도 (무균 처리에 밀봉하지 않는 이상은) 시간이 지나면 '''썩는다'''.[10] 밀덕들에게 익숙한게 이양반 이름이 KGV급 4번함에 붙었다.[11] 중세시대엔 어지간한 질병은 죄다 냄새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이 때 개발된 방독면은 유독성 대기 물질을 걸러내는 정화 기능이 달린게 아니라 향수가 들어있었다. 드라큘라마늘을 무서워한다는 속설도 냄새 때문에 생겨난 속설. 때문에 냄새가 안나게 깨끗이 청소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는 말 그대로 주변이 청결해지니 병원균에 감염될 가능성을 낮춰주므로 방향은 다르지만 간접적으로나마 효과가 있긴 있었던 셈이다.[12] 과학적 방법론이 철저하게 굳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유독 의학계가 다른 분야에 비해 과학적 방법론을 제대로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손 씻기의 예방효과를 무시해서 의사가 산파보다 더 많은 산모를 죽인 것 등...사실 저때는 과학과 의학은 좀 따로 노는 경향이 심했다. 박테리아가 밝혀질 쯤에야 의학이 제대로 과학과 연결되어 과학적 방법론이 굳어진다. Evidence based medicine은 서양에서도 오래된 개념이 아니라 조선에 서양의학이 소개되기 얼마 전에 받아들여진 것이다.[13] 영국 이전에 상업제국을 이루었던 네덜란드 등 북해를 항해하던 선원들의 저장식이자 괴혈병 예방책이었다. 영국 해군이 전세계 바다를 호령할 때 전쟁보다 더 많은 선원을 잃은 원인이 괴혈병이라서 가장 널리 알려져서 그렇지, 영국 이전의 해양국가들도 이런 일을 겪고 또 저마다 해법을 발명했다.[14] 이런 현상은 나중에 일본에서도 겪는다. 쌀밥 준대서 군대왔는데 각기병 예방한답시고 보리밥을 퍼줬으니...[15] 비슷한 에피소드가 감자 재배를 프랑스에 퍼뜨린 예화에도 나온다. 심어 먹으라니까 은 거둬가고 이딴 걸 준다고 디스했는데 귀족이 정성들여 가꾸니까 훔쳐갔다고.[16]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범선시대에 머물러있는 식습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자세한 건 Macho문서 참조.[17] 중국인 → 짱깨나 일본인 → 쪽발이 수준으로 심한 욕이다.[18] 그러나 비타민C가 별로 안들어 있는 식초 등.[19] 비타민C는 열에 약하기에 가열하면 대부분이 파괴된다.[20] 네덜란드는 독일의 자우어크라우트를 먹고 있었다. 물론 소금과 식초도 비타민C를 보존하는 데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안 먹는 것보단 나았다.[21] 사실 식물들은 비타민C 합성 관련 유전자가 죄다 변이 되어 써먹질 못하는 대부분의 동물들과 달리 비타민C 합성 유전자가 죄다 멀쩡하다. 문제는 합성하는 양 자체가 적거나 아니면 만들어놓고 분해해버리는 것.[22] 러시아의 동북아 진출을 방해하려는 나라들이 러시아 함대의 보급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언제나 기존 영토에 새 점령지를 덧붙이는 전쟁을 해왔지 아프리카와 동남아같은 원격지에 식민지가 없었다.[23] 왜 통조림이 장기보관이 가능한지는 통조림이 만들어지고 나서 한참 뒤에나 밝혀졌다. 그전에는 '그냥 이렇게 포장해 보니 음식물이 오래 가더라' 해서 그렇게 만들어 먹은 것일 뿐이다.[24] 정확히 말하자면 요삭의 입에 억지로 잔뜩 쑤셔 넣는다.(...)[25] 추정상 록스 D. 지벡, 골드 로저 등이 활동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26]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고추가 괴혈병 치료약이라는 지식이 없는 상황에선 귀중한 교역품을 처묵처묵하진 않았을 것이다. [27] 실제 역사 보다는 훨씬 빨리 연구되지만, 그래도 정말 늦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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