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미켈레
1. 소개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2015년 1월, 자신이 2002년부터 일해온 이탈리아의 명품 패션 브랜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되어 구찌의 모든 컬렉션과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책임지고 있다.
2. 생애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로마 외곽에 위치한 몬테 사크로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로마의 공항인 알리탈리아에서 기술자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영화감독의 어시스턴트로 일하셨다.
1990년대 초,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Academy of Costume & Fashion in Rome에서 패션 디자인에 관한 공부를 완료했고, 그곳에서 연극 의상과 패션 의복 모두를 디자인하는 법을 배웠다.
2.1. 커리어
1994년,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로마를 떠나 볼로냐에 본사를 둔 이탈리아 니트 회사인 Le Copains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3년 후, 그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칼 라거펠트와 함께 럭셔리 하우스인 펜디에 합류했다. 그는 그곳에서 프리다 지아니니와 함께 일했으며, 이후 브랜드의 가죽 제품을 담당하는 수석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임명되었다.
2002년, 1994년부터 2004년까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디자인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를 런던에 위치한 구찌의 소재 디자인 사무실에서 일하도록 해주었다. 미켈레는 원래 구찌의 핸드백 디자인을 담당하다가, 2006년에는 구찌 가죽 제품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되었고, 2011년에는 2005년부터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던 프리다 지아니니의 어소시에이트로 승진하였다. 2013년 6월, 구찌가 인수한 피렌체의 도자기 브랜드 리차드 지노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도 했었다.
2.2.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4년, 당시 구찌의 본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와 그녀의 연인이자 구찌의 CEO였던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가 함께 매출 부진을 이유로 회사를 떠날 계획을 하자, 알레산드로 미켈레 자신도 12년 동안 일했던 구찌를 떠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2015년 1월에는 마르코 비자리가 새로운 구찌의 CEO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코 비자리가 미켈레에게 차 한잔하며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했고 당시에는 이미 구찌를 떠난 상태였던 미켈레가 거리낌 없이 마르코 비자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며칠 뒤, 미켈레는 마르코 비자리에게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이 전화 통화 내용 중 일부가 "프리다 지아니니가 제작하다 말았던 남성복 컬렉션을 재구성하여 일주일 안에 패션쇼를 준비할 수 있겠는가?"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미켈레에게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넘겨주려 한 것. 미켈레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새로운 구찌: 비적합주의자, 낭만주의자, 지성인"[1]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틀 후, 케링 그룹은 매출 하락세였던 구찌의 제품들을 재창조할 목적으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정식으로 임명하였다.
이처럼 미켈레는 '무명 디자이너'라는 대중들의 편견과 근심 걱정들을 떨쳐내버리며 성공적으로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데뷔를 하게 된다. 불과 일주일 만에 의상의 디테일들을 살려내었고 관객들까지 매료시키며 여유롭게 쇼를 장악해 나갔다. 마르코 비자리의 안목 덕분에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구찌는 다시 한번 위상을 회복하며 매출 또한 상승하게 되었다.
한 달 후, 미켈레는 첫 여성복 컬렉션 쇼에서 "소박하고 지적이며 중성적인 느낌"을 표현해내었다. 그는 더블 G 로고와 같은 구찌의 클래식 제품들을 다시 선보이며 디오니소스 핸드백과 같은 상징적인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이전에 톰 포드가 선보였던 "섹시한 느낌"이 강했던 구찌의 제품들에서 벗어나 남성복 컬렉션을 "여성스러움은 더욱 남성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며 여성화 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My Body, My Choice"라는 슬로건과 함께 옷에 수놓은 자궁 모양 디자인, 그리고 "22.05.1978"[2] 와 같은 날짜들을 사용하며 구찌 자체를 포스트젠더리즘을 지향하는 브랜드로 변모시켰다.
또한, 미켈레는 구찌의 디자인에 극적인 르네상스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 특징이며, 로마에 위치한 구찌 디자인 본사의 모더니즘 가구들을 골동품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컬렉션 발표 장소는 매번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들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도 미켈레의 특징이다.
2019년에 들어서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구찌의 메이크업 컬렉션을 다시 부활시켰고, 구찌는 그가 디자인한 최초의 고급 주얼리 컬렉션을 출시했다.
3. 수상
- 2017년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 2017년 하입비스트 선정 올해의 인물 HB100
- 2016년 GQ 올해의 남자 최우수 디자이너상
- 2016년 British Council Fashion Awards 올해의 국제 액세서리 디자이너상
- 2016년 CFDA[3] 어워드
- 2016년 British Council Fashion Awards 올해의 국제 패션 디자이너상
4. 여담
-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아버지도 아들을 미술관과 박물관에 자주 데리고 다녔던 열렬한 예술애호가였다. 그의 부모님은 어린 나이때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을 표출했던 아들을 격려해주었다.
- 미켈레는 어려서부터 항상 긴 머리를 고집해왔다.
- 10대 때, 영국 잡지를 읽기 시작했고 런던의 포스트 펑크와 뉴 로맨틱 스트리트 스타일을 동경해왔다고 한다.
-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옷들이 역사적 맥락 없이는 무의미하다는 점을 고려해 자기 자신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기보다는 '의류의 역사학자'라고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