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웨인라이트/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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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애덤 웨인라이트의 선수 경력을 다루는 문서다.
2. 선수 경력
2.1. 마이너 리그 시절
조지아 주 브런즈윅에서 태어난 애덤 웨인라이트는 글린 아카데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조지아 공과대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고향 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1라운드 전체 29번에 지명하여 125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드래프트 다음 해인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TOP 100 유망주에 4년 연속 선정되어 잠재력을 인정받은데다 지역연고 출신이라는 점까지 겹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차세대 우완 투수 에이스로 기대를 받았지만,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 딱히 시원치 않은 점이 지적되어서 2004년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 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트레이드 상대는 J.D. 드류와 일라이 머레로다.[1][2] 당시에는 2004년에 데뷔가 유력했지만 트리플A인 퍼시픽 코스트 리그에서 5점대 평균자책점[3] 을 기록하는 바람에 콜업이 지체되었다.
2.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2.2.1. 2005 ~ 2006 시즌
2005년 9월 콜업된 후에, 2006년에는 주로 중간계투로 뛰었으며 5월 24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노아 라우리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 첫 타석 초구를 홈런으로 갈겨버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첫 해 중간계투에서의 최종 성적은 61경기동안 2승 1패 ERA 3.12 17홀드 ERA+ 143를 기록했고 기존 마무리 투수인 제이슨 이스링하우젠이 엉덩이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자 포스트시즌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낙점되었다. 메이저 리그 포스트시즌에서만 6경기 9⅔이닝 무실점의 대활약을 했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서는 9회에 등판하여 2사 만루에서 포스트시즌의 사나이[4] 인 카를로스 벨트란을 커브볼로 루킹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2세이브를 기록했고, 2006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1승 1세이브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패권을 잡는 데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2.2.2. 2007 시즌
2007년부터는 본연의 업무인 선발 투수로 전업했고, 첫 해에 32경기동안 202이닝 14승 12패 ERA 3.70를 기록하였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2008년부터 시작되는 4년 $21M 계약[5] 을 맺었다.
2.2.3. 2008 시즌
6월에 손가락 부상을 당하며 2개월을 날려먹긴 했지만 20경기동안 132이닝 11승 3패 ERA 3.20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보였다.
2.2.4. 2009 시즌
포수 출신 투수코치로 유명한 데이브 던컨[6] 코치의 지도를 받아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했다. 특이한 것은 대개의 포심 패스트볼 위주 투수들이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한다고 할 때는 투심 패스트볼의 '비중을 끌어올리기만' 하는 반면, 애덤 웨인라이트의 경우는 포심 패스트볼을 사실상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34경기동안 233이닝 19승 8패 ERA 2.63 212탈삼진을 기록했다. 사이 영 상급 성적이었고 1위표도 제일 많이 받았지만 팀 린스컴과 크리스 카펜터에 밀려 3위를 기록한다. 1998년 트레버 호프먼이 1위표 최다 득표를 하고도 톰 글래빈에 밀려서 사이 영 상 투표 종합 2위에 오른 기록이 있긴 하나 1위표를 가장 많이 받고도 3위를 차지한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7] 그라운드볼 투구에 재미를 붙인지라 피안타율이 팀 린스컴과 크리스 카펜터보다 땅볼 비중이 많이 높았던 것이 강렬한 임팩트와 탈삼진 타이틀 홀더로서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팀 린스컴에 비해 밀린 것으로 분석되었다.
2.2.5. 2010 시즌
2010년에는 20승 고지에 오르고 전년도에 비해 크게 다를바 없이 오히려 피안타율은 230⅓이닝동안 186개의 피안타로 굉장히 끌어내렸지만, 로이 할러데이에 밀려 2위에 그쳤다.
2.2.6. 2011 시즌
2011년 2월 훈련 도중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2011년 2월 24일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주치의인 조지 팔레타[8] 에게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한편 2011년 초에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최소 12개월과 길게는 18개월까지도 계산되는 수술 회복기간에 따라 2012-13년 $21M 클럽 옵션 (2년의 옵션을 한번에 결정해야 한다)이 실행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이야기가 많았고[9] 이것이 에이스군이 부족한 2011-12년 오프시즌 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큰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 있었다.[1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결국 이 옵션을 실행했다. 이로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투수진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2011년에는 재활을 하느라 통째로 결장했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2011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면서 1차전 홈경기를 갖게 되자 시구를 하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함께 나온 사람들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레전드이자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밥 깁슨과 브루스 수터다.
다른 전설들에 비하면 이름 값이 떨어지지만 나온 이유는 역시 위에도 언급된 바 있는 2006년 월드 시리즈를 마무리한 공로와 그리고 '''팀원과 팬들의 전투력 상승'''을 위한 것이다. 밥 깁슨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세 차례 월드 시리즈를 뛰고 2번의 우승을 이끈 에이스이며, 브루스 수터는 1982년 월드 시리즈 7차전 세이브를 기록했다. 참고로 2차전은 1964년 월드 시리즈, 1967년 월드 시리즈에서 활약한 루 브록과 1946 월드 시리즈, 1957년 월드 시리즈, 그리고 감독으로 1967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레드 션다인스트가 시구를 했다.
2.2.7. 2012 시즌
그 동안 버리다시피한 포심 패스트볼을 새로운 무기로 장착하고 시즌을 시작했지만 시즌 초반에는 정신 못차리고 얻어터졌다. 탈삼진과 볼넷 비율은 좋지만, 피안타율이 급격히 올라가서 평균자책점이 마구마구 치솟았다. 그래도 이후에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32경기동안 198⅔이닝 14승 13패 184탈삼진 ERA 3.94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잔루율이 너무 낮고 BABIP가 3할을 상회하는 등 운이 영 따라주지 않은 시즌이었다.
하지만 그 실력만은 여전하였으니 여러모로 아쉬움만 더하고 이런 모습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에서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2013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2014년부터 시작되는 5년 $97.5M 규모의 연장계약에 합의하였다.
2.2.8. 2013 시즌
2013년에는 완벽히 부활하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에이스로 돌아왔다. 생애 두 번째로 NL 올스타에 선정되면서 정규 시즌 최종 성적은 34경기 '''241⅔이닝 (NL 1위) 19승 (NL 1위)''' 9패 219탈삼진 ERA 2.94 fWAR 6.2를 기록했다. 241⅔이닝을 던지는동안 단 35볼넷을 허용했는데, BB/9은 1.3에다가 SO/BB는 무려 6.26이라는 엄청난 제구력을 보여주었다. 시즌 중후반까지는 2점대 초반에서 중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나, 시즌 마지막 경기인 신시내티 레즈에게 2연속으로 영혼까지 털리면서 단숨에 3점대까지 치솟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장식하며 평균자책점을 2.94까지 끌어올렸다. 클레이튼 커쇼만 아니였으면 단연 사이 영 상에 가장 유력한 성적이였으나 클레이튼 커쇼의 성적이 워낙 압도적이라 이번에도 사이 영 상 수상에 실패하였다. 무려 241⅔이닝을 던져 이닝부분 커리어하이를 찍었는데 이에 대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들은 수술한 선수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며 마이크 매시니 감독을 비난했다.
팀의 중부지구 우승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신시내티 레즈를 꺾고 올라온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상대로 1차전과 5차전에서 모두 호투를 펼치며 2승으로 팀의 디비전 시리즈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 5차전은 9이닝 1실점으로 피츠버그 파이리츠 타선을 봉쇄하고 완투승을 거뒀다. 2013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에서 호투를 펼쳤으나 류현진에게 밀려 패전투수가 되었다. 경기 후에 포털 사이트에서는 애덤 웨인라이트에 대한 병림픽이 펼쳐지기도 했다. 게다가 류현진 팬들의 매서운 시선을 받는 2013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5이닝 5실점 (3자책점)으로 부진하였고, 5차전에서는 7이닝 3실점 (3자책점)으로 호투하고도 패전투수가 되자 또 다시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애덤 웨인라이트의 평가를 가지고 병림픽이 벌어졌다. 사실 2013년 메이저 리그 포스트시즌에서 2013년 월드 시리즈 1차전을 제외하고는 딱히 못던진 것도 아니고 2013년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박살을 낸 일등공신 중 하나였으나, 대한민국 야구 팬들의 관심은 류현진과의 2013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 이후에 집중된 탓에 여러모로 안습해졌다. 이에 대해 해외야구 갤러리에서는 류현진에게 털리고 멘탈붕괴한게 아니냐는 개같은 애드립이 쏟아졌다.
2.2.9. 2014 시즌
2014년 3월 31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정규시즌 첫 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하면서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다.
5월까지도 좋은 페이스를 이어가면서 클레이튼 커쇼의 초반 부상과 호세 페르난데스의 시즌아웃으로 사이 영 상 경쟁자들 중 가장 커다란 경쟁자 둘이 떨어져나가 같은 중부지구인 자니 쿠에토와 사이 영 상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5월 25일에는 8이닝 무실점 12탈삼진으로 승리투수가 되지만 하필 같은 날 조시 베켓이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는 바람에 평점 83.00점으로 평점 90.00점인 조시 베켓에게 밀려 2위가 되었다.
6월 11일,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받는다고 하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자기공명영상 촬영 결과 과거 토미 존 수술 받은 부위 문제는 아니었지만 염증 치료 주사를 처방받으면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토미 존 수술을 받은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2013년 월드 시리즈까지 포함하면 270이닝을 넘길 정도로 혹사당하고 2014년에도 틈만 나면 110구를 넘게 던지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들의 입장에서는 걱정일 수밖에 없다.
8월 1일, 중부지구 1위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있는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⅓이닝 7실점으로 밀워키 브루어스의 타선에 난타당했다. ERA 1.96에서 2.26으로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팀도 패배를 기록하며 중부지구 1위인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게임차가 더 벌어졌다. 현재 13승 6패를 기록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와 신시내티 레즈의 자니 쿠에토와 함께 사이 영 상 경쟁을 하고 있다.
9월 28일, 시즌 마지막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이 예고되었지만 중부지구 2위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신시내티 레즈에게 패배를 하면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중부지구 1위가 확정됨에 따라 무리하게 등판할 이유가 없어져서 닉 그린우드가 대신 선발 투수로 등판하였다.
최종 성적은 32경기동안 227이닝 20승 9패 ERA 2.38 탈삼진 179개 WHIP 1.03을 기록하였다. 내셔널 리그 다승 2위와 평균자책점 3위를 차지하면서 자신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사이 영 상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특급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가 워낙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고, 신시내티 레즈의 자니 쿠에토 역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는 바람에 밀리고 밀려서 3위를 기록하였다.
시즌 후에 팔꿈치 인대 수술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연골 조각 수술로 2015 시즌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2.2.10. 2015 시즌
2015년 시즌 초부터 2승 1패 ERA 1.44의 기록으로 순항을 하던 도중에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그런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들이 걱정하던 어깨와 팔이 아닌 '''왼쪽 아킬레스건 부상'''이라 시즌아웃의 목소리가 높았고, 결국 4월 27일 단장 존 모젤리악의 공식 발언을 통해 시즌아웃이 확정되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서는 당장 에이스가 빠진 공백도 공백이지만 메이저 리그 전체에서는 내셔널 리그 지명타자 제도 도입 논란이 다시금 터져나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투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는 덕분에 전반기를 지구 1위로 마감했다.
전반기 말부터 자꾸 공을 던지고 싶다고 밝히더니 10월달에 마운드에 서고 싶다고 밝혔다. 후반기부터는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덕아웃에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11]
9월 4일 경기 전, 맷 카펜터와의 홈런 20개를 친다와 홈런 20개를 못친다의 내기에서 져서 골프카트를 사주었다.
9월말 복귀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였다. 애덤 웨인라이트는 "포스트시즌에 중간계투로 복귀하겠다"라고 밝히며, 맷 하비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0월 1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하여 1이닝 1실점으로 복귀전을 치뤘고, 이후 포스트시즌 로스터까지 이름을 올렸다.
2.2.11. 2016 시즌
아킬레스건 부상의 영향이 컸는지 매 경기 등판마다 많은 실점을 내주고 있다. 최종 성적은 33경기동안 198⅔이닝 13승 9패 ERA 4.62 161탈삼진 WHIP 1.40을 기록했다.
2.2.12. 2017 시즌
24경기동안 123⅓이닝 12승 5패 ERA 5.11 96탈삼진 WHIP 1.50으로 크게 부진하며 커리어로우를 찍었다. 출전 경기 수에서 보다시피 부상자 명단에 두 번이나 등재되면서 로테이션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10월 3일, 오른쪽 팔꿈치에 있는 문제 연골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다고 전해졌으며 회복 기간은 6주로 예상된다. 부진도 부진이지만 잦은 부상 때문에 과거 200이닝을 거뜬히 넘기면서 사이 영 상급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애덤 웨인라이트의 모습은 이제 기대하기 어려울 듯 하다.
2.2.13. 2018 시즌
왼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하여 1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채 시즌을 시작했다. 4월 초에 복귀했으나, 22일에 부상으로 인하여 또 다시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5월 초에 복귀했으나, 5월 15일에 다시 부상으로 인하여 시즌 아웃되었다. 그리고 2일 후에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결국 부상으로 인하여 시즌을 말아먹었다.
2.2.14. 2019 시즌
4월 24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150승을 달성하였다.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꾸준히 등판하여 준수한 투구를 선보이고 있다.
2019년 11월 13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1년 50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
2.2.15. 2020 시즌
코로나-19와 메이저 리그의 노사갈등 등으로 60경기 단축시즌으로 치러지는 만큼, 노장반열에 든 애덤 웨인라이트의 이닝부담도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추신수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하여 생계가 어려워진 마이너리거들을 위한 기부행렬에 25만달러를 쾌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관련 기사
특히 대한민국 야구 팬들과 SK 와이번스 팬들에게는 은인이 되었는데, 바로 김광현을 적극 케어해준 것이다. 멘탈 케어부터 주 5일마다 훈련 메이트가 되어주며 홀로 온 김광현[12] 에게 매우 큰 힘이 되었다. 김광현 본인도 애덤 웨인라이트가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시즌이 재개된 이후에 작년보다도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 8월 30일, 자신의 39번째 생일에 등판한 애덤 웨인라이트는 2회초에 투런홈런을 맞았지만 이후 더 이상 실점하지 않으며 122구의 공을 던지는동안 9이닝 9탈삼진 2실점 완투승을 거두면서 2016년 7월 17일, 마이애미 말린스 상대로 완투승을 거둔 이후에 무려 4년 만에 자신의 통산 23번째 완투를 기록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인터뷰 전에 눈물을 흘렸다고 밝힌 애덤 웨인라이트는 "3년 전에 (경력이) 끝났다고 생각한 선수가, 몇 년 후에 완투승을 했다고 생각하면 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미친 삶이고, 미친 경기다. 나는 신의 가호를 받았다." 라고 덧붙였다. 불의의 아킬레스건 부상과 노쇠화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들도 이젠 은퇴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선수가 이런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고 반등에 성공하며 4년 만에 완투승까지 따낸 39살 노장의 모습은 한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최고의 에이스 투수였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면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와일드 카드 시리즈 2차전에 등판하여 3⅔이닝 1실점의 다소 아쉬운 투구를 보여줬으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2차전과 3차전에서 모두 패배하면서 그대로 탈락했다.
마이너리거를 도운 선행을 평가받아 2020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하였다.
2.2.16. 2021 시즌
2021년 1월 28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1년 80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 이후에 2021년 2월 9일, 같은 팀 동료인 야디어 몰리나도 재계약을 맺었으며, 김광현과도 1시즌 더 같이 뛰게 될 수 있다.
3. 정규 시즌 기록
4. 포스트시즌 기록
[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J.D. 드류와 일라이 머레로를 얻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제이슨 마퀴와 애덤 웨인라이트와 레이 킹을 얻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간 J.D. 드류는 나름대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1년만에 자유계약선수로 떠났고, 일라이 머레로 역시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보여줬으나 1년만에 팀을 떠났다. 반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떠난 제이슨 마퀴는 15승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레이 킹 역시 ERA 2.61을 기록하면서 철벽급 좌완 불펜으로 활약했고, 애덤 웨인라이트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때문에 이 트레이드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최악의 트레이드를 꼽자면 다섯 손가락안에는 반드시 들어간다.[2] 애덤 웨인라이트가 트레이드 통보를 받은 날에 당시 여친과 형을 포함해 가족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초상집이였다.[3] 이 시기에 퍼시픽 코스트 리그의 평균자책점은 4.80이였다.[4]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으로 65경기동안 16홈런 45득점 42타점 11도루 WRC+ '''169'''를 기록했다.[5] 2008년: $687,500, 2009년 $2,787,500, 2010년: $4,837,500, 2011년, $6,500,000, 2012년 클럽 옵션: $9m, 13년 클럽 옵션: $12m.[6] 스터프가 뛰어나지 않은 선수들을 개조하여 좋은 그라운드볼 피쳐를 많이 길러내기로 유명하다.[7] 같은 팀 동료인 크리스 카펜터 때문에 표가 갈려 수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기자들의 표를 분석해보면 크리스 카펜터의 존재로 인해 표를 손해본 쪽은 오히려 팀 린스컴이었다. 크리스 카펜터에게 1위표를 준 9명 중 7명이 팀 린스컴에게 2위표를 줬다. 만약 크리스 카펜터가 배제된 투표였다면 팀 린스컴이 과반의 1위표를 얻었을 것이다. 관련 기사[8] 하이메 가르시아와 크리스 카펜터의 수술을 집도한 바 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코칭스태프에게도 큰 신뢰를 받는다.[9] 이에 대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 블로거의 자세한 설명과 애덤 웨인라이트는 수술로 $21M을 손해보게 될 것이라는 글이다.[10] 메이저 리그에서의 부상자 명단은 그 기간에 상관없이 25인 로스터 서비스타임에 같이 계산된다. 그러므로 2011년 애덤 웨인라이트는 재활만 하다가 서비스타임을 채우고 자유계약선수가 된다는 것이다.[11] 여담으로 김형준 칼럼에 따르면 7월달 딸의 소프트볼 경기에 나섰다가 19실점을 했다는 안습한 에피소드의 존재가 드러났다.[12] 코로나-19가 진정이 되면 가족들을 미국으로 입국시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