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상
1. 개요
前 SK 와이번스 소속의 외야수이자 前 SK 와이번스의 1군 타격보조코치. 現 시흥 울브스의 홍보팀 부장."팀을 이끌 수 있는 타자가 없다는 게 굉장히 크거든요, 그게..."
- 은퇴식 중 채병용이 박재상에게 한 말.
SK 왕조 시절을 함께하며 '''SK에서만 17년을 뛴 몇 안 되는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원 클럽 플레이어'''다. 2017 시즌 은퇴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SK 원 클럽맨&프랜차이저가 되었다.[7]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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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시절
2001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8] 2차 9라운드로 SK와이번스에 입단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프로에 온 천재형 선수이다. 2군에 있을 무렵에 찍은 EBS 다큐멘터리 '맞수'에 양승학과 함께 출연한 것은 유명하다.
2001년 입단한 뒤에 부상 등으로 인해 1군에서 별 기회를 얻지 못하고 2군 멤버로만 지내다가 2002년 말 1년 선배 조동화와 함께 상무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2년간의 군 복무 후 2005년 제대하여 조범현 당시 감독의 눈에 들어오며 1군에 올라와 외야 백업으로 간간히 출장, 1년 선배 조동화, 입단 동기 김강민과 외야 한 자리를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되었다.
조범현 감독이 물러나고 김성근 감독이 SK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뒤 박재상을 2007 시즌 주전 좌익수로 점찍었고, 그해 규정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으나,[9] 123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269, 10홈런을 기록하며 SK의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하였고, 데뷔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였다.
2008년에는 부상으로 94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으나, 40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10]
2.1.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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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플래툰 시스템을 중시하는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유일하게 '''전 경기 선발 출장'''을 달성했고[11] 3할 타율 달성에는 실패하였으나, 정근우와 함께 SK의 테이블 세터를 이끌어가며 타율 0.295, 15홈런 81타점에 33도루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2번 타자로 활약하는 등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12]
두산 베어스와의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는 전 경기 선발 좌익수 겸 2번 타자로 출장하여 23타수 5안타 타율 .217, 장타율 .565, 출루율 .217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2009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KIA 타이거즈와의 2009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해 28타수 9안타 2볼넷 타율 .321, 장타율 .429, 출루율 .367을 기록했고, 특히 4차전에 7회초 김상현의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2.2.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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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지 0.255, 6홈런 42타점에 그치면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최정과 함께 까야 제맛의 양대 산맥으로 등극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14타수 3안타 2볼넷 1사구(死球) 1타점 3득점, 타율 .214, 장타율 .286, 출루율 .35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2010년 12월 11일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 날 결혼식을 올리는 선수가 있었던 바람에 묻혔다. 그래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결혼도 미미하다면서 탄식했다.
2.3. 2011 시즌
시즌 전 어깨 수술을 받았고, 수술 여파로 인해 2011년 중후반기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어느새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와서 활약했다. 그러다가 다시 2군으로 내려가서 조동화가 주전으로 주구장창 나왔다. 그리고 다시 미미하게 올라와서 미미하게 활약해서 이 문서도 미미하게 작성되었다.
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2타수 4안타 5볼넷 2타점 2득점 타율 .333, 장타율 .583, 출루율 .529를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3안타 3볼넷 1타점 타율 .158, 장타율 .211, 출루율 .273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지던 2011년 10월 2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스코어 0:0인 4회말 1사에서 저마노를 상대로 문학구장 왼쪽 담장을 미미하게 넘기는 솔로 홈런을 쳤다. 그런데 저 미미한 홈런이 2011 한국시리즈의 '''첫 홈런'''이었다. 이날 박재상은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3타수 1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2로 이겼다.
2011년 10월 29일 문학 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5:1로 지고 있던 7회말 무사 1, 2루에서 정인욱을 상대로 문학구장 왼쪽 담장을 넘기는 미미한 쓰리런 홈런을 쳤다. 이날 박재상은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 1홈런 1볼넷 3타점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4로 패하고 말았다.
박재상은 2011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15타수 4안타 2홈런 3볼넷 4타점 3득점 타율 .267, 장타율 .733, 출루율 .389를 기록하였다. 타율은 좀 그랬으나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모든 선수 중 장타율이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팀 타자들 전원 부진의 늪에 빠진 속에 그나마 타점을 많이 뽑아냈다. 시리즈 전체 팀 득점이 7점 뿐인데 그 중 4점을 혼자 뽑아냈으니 대차게 말아먹은 SK 타자들 중 유일하게 밥 값을 한 선수였다. 하지만 박재상이 미미하지 않은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1승 4패로 준우승했다. 지못미.
박재상은 2011년 포스트시즌에서 46타수 11안타 2홈런 11볼넷 7타점 5득점 타율 .239, 장타율 .478, 출루율 .386을 기록하였다.
2.4.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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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제 솔로포를 치고 기뻐하는 모습.
스프링캠프 연습 경기에서는 NPB 니혼햄전에서 2타점 결승타, KIA전에서 3타수 3안타, 한화 전에서 결승 투런 홈런을 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의 오버페이스때문에 허리 부상으로 인한 스프링캠프 조기 귀국조치 당했고, 시즌 시작하자 급격하게 페이스가 급전직하. 2번타자 자리는 임훈에게 빼앗겼으며 팬들은 시즌 내내 같은 박씨 좌타인 박정권과 함께 '''쌍박사기단'''이라 부르며 2군행을 기원했다. 타율 0.216 4홈런 23타점을 기록하며 풀타임 주전이 된 이후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찍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16타수 5안타 3볼넷 2도루 2타점 3득점, 타율 .313, 장타율 .563, 출루율 .421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23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 3득점, 타율&출루율 .130, 장타율 .261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박재상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39타수 8안타 1홈런 3볼넷 2도루 4타점 6득점, 타율 .205, 장타율 .385, 출루율 .262를 기록했다.
시즌이 끝나고 개최된 프로야구 선수 쓰리쿠션 대회에서 김상현에게 아쉽게 패배해 '''준우승'''에 올랐다(…).
2.5. 2013 시즌
신인 외야수 한동민과 이명기가좋은 타격을 보여주며 완전히 주전 경쟁에서 탈락하나 싶었지만, 타격 능력이 좋지만 수비를 못 하는 이명기 탓에 아직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지는 않은 듯 하다. 타격 능력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편이고. 하지만 4월 한 달동안 타율 0.192로 2할도 못 찍었다.
508 대첩에서 4타수 3안타 2타점 3득점으로 맹활약했다. 8회 추격을 알리는 홈런포도 쐈고, 9회 정상호와 함께 주루센스가 보이는 더블스틸도 성공시키며 팀 승리의 당당한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5월 중순 이후부터 다시 타격부진에 빠지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조동화에 빌려 대수비요원으로 전락해버렸다. 몇몇 팬들은 김상현에게만 기회를 주지말고 박재상에게도 기회를 주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말해보자면, 김상현의 5월 성적(SK로 온 뒤부터)은 19경기 73타수 타율 0.301, 1홈런 10타점으로 기대했던 역할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재상은 5월 22경기 63타수 타율 0.222, 2홈런 7타점으로 더 안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6월엔 김상현이 20경기 61타수 타율 0.213, 2홈런 7타점으로 안습한 모습을 보여줬고 박재상도 21경기 34타수 타율 0.206, 1홈런 6타점으로 마찬가지의 성적을 기록했다. 게다가 김상현이 OME급의 수비로 욕을 먹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팬들의 의견이 그저 이만수 까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후반기에 SK의 상승세에 일조했고, 8월 타율은 '''0.393'''이었다. 7월 타율이 1할에 가까운 0.105였던 걸 보면 정말 격세지감. 9월달에도 3할에 가까운 타격으로 팬들에게 다음년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품게 됐다. 그리고 9월에만 5홈런을 치며 팬들이 기대했던 박재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박재상 골글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누군가가 "솔직히 박재상 골글확정 아니냐" 이러면 덧글로 "박재상은 골글이 아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해야" 이러는 식(...)
2.6. 2014 시즌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는 해였지만 FA로이드라도 아무나 마시는게 아닌 듯 그의 아트스윙은 터지지 않고 여전히 아트삼진 모드. 모든 SK팬들은 그가 대타로 나왔다고만 해도 넌덜머리를 내는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그는 김재현, 루크 스캇, 이명기, 조동화, 김상현, 한동민에게 밀리는 안습한 위치에 내몰리고 말았다.
5월 9일에 말소되었다가 6월 19일 다시 등록되었지만 여전히 미미한 모습을 보여줬고 6월 27일에 다시 말소된 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에 올라오지 못하며 FA자격을 취득하지도 못했다.
2.7. 2015 시즌
시범경기와 스프링캠프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1군 진입은 힘들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김강민이 kt 위즈와의 시범경기 도중 허벅지 부상을 당해 8주간 결장함에 따라 기적적으로 개막엔트리에 승선했다.
하지만 4월 초에는 원래 주 포지션인 좌익수에 이명기가 버티고 있는데다 약점으로 지적받던 수비까지 나아진 모습을 보여 자리가 애매해진 상황. 시범경기 동안 중견수와 우익수로도 출장했으나 수비 안정성 면에서는 주장 조동화에 밀리고 공격력 측면에선 외국인타자 브라운과 임훈에 밀리며 경기 후반 대타로 한 두 타석 들어서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임훈이 다시 타격이 부진하며 2군으로 내려간 사이좋은 타격감을 보여주며 이명기, 조동화 등과 번갈아 가며 출장 중이다.
4월 9일 KT와의 3차전에 선발 출전하여 1회 투런 홈런을 비롯한 3안타 4타점 경기를하면서 경기 MVP가 되었다. 하지만 타팀 경기에서 마야의 노히트 노런, 테임즈의 사이클링 히트등이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묻혔다...
5월 6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3회초 1안타 를 기록하면서 박기택 주심이 교체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날의 기록은 3루타 하나를 포함 4타수 2안타.
5월 7일 롯데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3회초 투런홈런을 때려 팀의 선취점을 뽑아냈지만, 다음 타석에 올라온 조동화가 귀신같은 백투백홈런을 때리는 바람에 파묻혀 또다시 미미본능을 과시했다.
시즌 초반 활약을 종합해 보면 확실히 FA로이드를 맞은 듯 하다. 지난 3년간 2할 초반대에 헤매던 타율은 꾸준히 3할 언저리에 형성되고 있고 장타도 종종 터지며 테이블 세터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더불어 중견수 자리도 소화하며 김강민의 빈자리를 훌륭히 메워주고 있다는 평. 5월 중순부터 타격페이스가 뚝 떨어졌다. 5월 10경기에서 타율은 '''1할도 되지 않은 0.097'''를 보여주면서 재작년, 작년의 부진했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4월말 0.333이던 타율도 5월말 0.274로 떨어진 상황. 6월 5일 트윈스전에서는 대타로 나와 한 번 걸어나가고 12회 말 수비땐 보살을 시도했으나...... [13]
6월에는 더욱더 심각하게 부진했는데 6월동안 24타수 1안타.. 타율 0.042로 그동안 2군으로 안 보낸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6월 24일 윤중환이 1군으로 등록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14]
8월 11일에는 사직에서 홈런을..... 기록했다. 선제 투런포.
2.8. FA
2015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했으며, 우선협상기간에 계약을 맺지 못하고 시장평가를 받으러 나갔다. 이후 다른 FA 선수들이 한명씩 미래를 결정하면서[15] 두산 베어스에서 풀린 고영민과 함께 유이하게 갈 곳이 없어진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SK 측에서는 FA 자격 취득 그 자체로 능력이 있다는 점. 나주환의 선례를 들어 받아는 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좋은 대우는 하지 않겠다고. 다만 나주환에 대한 동정여론이 있는데다 박재상은 처음부터 좋은 계약조건을 제시받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의외로 크게 깎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건 원 소속 구단 복귀는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
결국 2015년 12월 7일 1+1년 5.5억이라는 금액으로 원 소속팀 SK에 잔류했다. 처음 제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의 선례를 보고도 나간 걸 보면 이전의 계약내용이 그걸 감안해도 상당히 불만족스러웠을 가능성이 높음을 짐작하게 하는 건 사실이다.
한때 박재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 했으나 동명이인인 가수 싸이의 신곡 발표 때문이었다.(...)
2.9.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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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두 차례의 부상으로 인해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부진한 선수들의 공백을 메워 주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줘 팬들이 찬사를 보냈다.
2.10.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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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식 날의 모습.
스프링캠프에 참여했으나 전년도 막판에 당한 무릎 부상이 재발해 중도귀국했다.
개막전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고, 2군 리그에서도 몇 경기 나오지 못했는데, 맹장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2군에서 23경기 동안 2할 2푼 치고 있다. 현재까지 1군에 콜업된 적이 아예 없으며 7월 18일 출장을 끝으로 2군 기록도 없다.
확장 엔트리 때에도 콜업되지 못했으며, 은퇴설이 조금씩 도는 중이었다가 9월 3일자로 '''은퇴 의사를 밝혔음이 확인되었다.''' 은퇴식은 9월 9일에 있을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열렸으며, 은퇴 후 코칭스태프로 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사 박재상의 경우 2001년 SK 와이번스에서 데뷔한 뒤 17년 동안 이적 없이 한 팀에서만 쭉 뛰다가 은퇴하게 되며 SK 구단 최초의 원 클럽 플레이어가 되었다.
9월 9일 은퇴식 날 SK 선수들 모두가 박재상의 이름과 그의 등번호인 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으며, 스캇 다이아몬드가 8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제이미 로맥이 시원한 끝내기 홈런[16] 으로 끝내면서 은퇴하는 박재상에게 멋진 선물을 안겨줬다. 경기 후에 은퇴식을 갖고 공식 은퇴하였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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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SK의 1군 1루 베이스 코치 겸 외야 수비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1루 코치로 시즌을 시작한 뒤, 동갑내기 정근우가 2018시즌 한화에서 1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하고, 역시 동갑내기 김강민이 안타를치자 왕조시절 82년생 3명이 경기중에 한자리에모이는 오묘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코치 생활 1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그 후 2019년 4월 19일부터 부진하던 김무관, 백재호코치 대신 박경완수석코치가 타격코치를 겸업하면서 보조코치를 맡게 되었다. 현역시절 박경완코치가 파워있는 모습인 반면 박재상코치는 컨택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둘에 조화가 기대된다는 평. 첫 경기부터 팀은 패했으나 김무관 코치시절 한 경기 최다 득점인 8점을 하루만에 갱신해버렸다(...)
세대교체 자원으로 임재현, 최상민, 채현우를 뽑았다.
2020년 11월 8일 SK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20년만에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서동환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박재상이 2021시즌부터 경기도독립야구연맹리그에 참가하는 시흥 울브스의 홍보팀 부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4. 플레이 스타일
깔끔하면서 빠르고 부드러운 스윙과 몸쪽 공을 제대로 받아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 특유의 스윙 때문에 '''아트 스윙'''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반면 실전에서는 선구안이 나쁘고 수싸움에 약하며[17] 바깥쪽 공에 약하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볼삼비도 나쁜 편. 박재상이 타석에 있으면 상대팀 배터리는 어떻게든 바깥쪽 공을 이용해서 박재상을 낚으려고 하는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덕분에 실력면에서 현장과 팬들의 괴리가 심한 선수로 유명하다. 현장에서는 조금만 가다듬으면 김현수급이라고 평가하는데 팬들이 보기에는 저 양반들이 단체로 돌았나 싶을 정도로 괴리가 크다. 박동희, 이순철, 김재박 등 이해관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대단히 높다는 것이 특징. 특히 김재박이 높게 평가하는데 현역 좌익수중 최고의 수비라고 한다.[18] 2009 시즌에는 '''전경기 선발출장'''하면서도 포구 후 추가진루를 한 차례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기본기는 뛰어나다. 다만 데뷔 때부터 유리몸 기질이 있어 재활군에서 보낸 시간이 많고, 데뷔 후 풀타임으로 시즌을 소화한 해는 2009년 딱 한 해밖에 없다.[19]
5. 여담
- 특유의 아름다운 스윙 폼에서 나온 별명은 Art Swing. 응원가 가사에도 아트스윙이 들어가며 인천SK행복드림구장 3루측 가로 전광판에도 나오는 별명으로 박재상의 별명 중 가장 유명한 별명이다.
- 동명이인인 가수가 있어 속칭 싸이라고 불린다.[20] 하지만 2010년의 부진에 따라 솩갤에선 싸레기로 자리매김.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잘 나오지 않거나, 부진했으나 그 정도가 미약했을 때는 싸미미[21] 라고 불린다. 아들 범준이 때문에 범준애비라고도 불린다.
-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비춰진 모습에 따르면 대단히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 플라이볼을 놓쳤을 때도 "나니까 쫓아가기라도 했지" 하는 등 수비에서 실책을 했을 때면 일각에서 그 마인드를 문제삼아 폭풍처럼 깐다. 동료이자 친구인 김강민의 어머니는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김강민에게 박재상, 정근우를 집에 데리고 오게 하여 식사를 대접했는데, 박재상을 아들처럼 생각한다고 했다가 이내 사위로도 삼고 싶다고 하며[22] 어머니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박재상의 긍정적인 기운을 칭찬하며 매우 좋아하시는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김강민의 모친은 박재상을 진짜 딸과 연결을 시켜주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여자친구가 있냐고 묻기도 했고, 박재상이 식사하는 동안 김강민의 여동생을 촬영중인 본가에 오게 하였다.
- 같은 입단 동기이자 2군 생활을 오래 함께 한 친구들인 조동화[23] , 김강민과 가장 친했고, 역시 동기인 채병용, 정상호 등과도 친했으며 1군~1.5군 생활이 시작된 왕조시절 정근우, 박정권 등과도 친하게 지냈다. 쌍박기사단, 쌍박사기단으로 불리던 박정권과는 입단시기에 비해 의외로 늦게 친해진게, 입단 후 군복무 시기가 절묘하게 교대가 돼서(박재상 0304시즌 상무, 박정권 0506시즌 상무) 팀 생활을 같이 못하다가, 07시즌부터 함께하게 되어 그때부터 어울렸기 때문.[24]
- 되도 않는 개드립을 치기도 했다. 박재상이 나온 에피소드 때 제작진이 나주환이 같은 회차에 나온다고 제작진이 얘기하면서 "나주환이랑 분당 시청률 경쟁에서 누가 앞설 것 같으냐"고 묻자 "분당 시청률은 분당 사는 사람들이 보는 시청률이냐"(...)고 드립을 시전했지만, 당시 숙소 같은 방을 썼기 때문에 옆에 있던 박정권에게 바로 까였다. 사실 정확히는 까인게 아니라, 박정권 본인이 바로 치려고 했던 개드립이었는데 박재상이 먼저해서 아쉬워하며 핀잔을 준 것.
- 집 경제 형편도 좋은 것으로 보였고 가족관계도 전체적으로 매우 좋은 것으로 보이는데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제작진이 박재상의 집에 방문한 장면에서 어머니와 함께 박재상이 평소 제작진에게 잘생겼다고 자랑했었던 친형[26] 이 함께 출연했었고, 박재상은 그전부터 가족들에게 본인의 형과 본인이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원빈과 같은 관계라고 주장한 적이 많이 있다고 했다(?). 박재상의 홍보로 그 영화가 개봉한 뒤에 가족들도 모두 그 영화를 보게 되어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 집안의 가족영화가 되었다고..
- 성격 자체가 워낙 긍정적이라 박정권, 정근우 등과 함께 팀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듯하다. 여담이지만 노래실력도 미미하다. 자기 응원가[27][28][29] 도 못 부른다. 또 다른 응원가로 싸이의 예술이야를 개사, "날려라 와~이번~스의 박~재상 (X2) 스윙이 미친 듯이 예술이야 우에오 우에오 우에오~"로 부른다. 참고로 싸이의 본명은 박재상. 게다가 2012시즌에는 등장곡마저 싸이의 예술이야로 바뀌었다. 본격 응원가와 등장곡이 같은 노래인 야구선수. [30]
- 결혼 후 2012년 4월 첫 아들 범준을 얻었는데, 이 아들이 워낙 귀여워서 솩갤러들의 사랑을 차지하였다. 아들 짤방이 올라오면 서로 자기 아들이라며 우기는 댓글이 대다수.
- SK 와이번스 갤러리에 박재상 극성팬 한 명이 종종 오는데, 올 때마다 박재상 옹호글에 개념글 조작을 하고 가 미미했던 박재상이 욕을 먹고 있다.
- 야갤에서는 비슷한 처지인 이성열과 허구한 날 비교당한다. 재상충 vs 뽕열충의 피튀기는 토론을 구경할 수 있으니 종종 떡밥을 투척해 보자(...)
- 현역시절때나 코치가 된 지금도 팬서비스도 상당히 좋은편이며 자신의 전성기 였던 등번호 1번으로 싸인요청을 해주면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
5.1. 싸몰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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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짤방. 짤만 보면 도대체 왜 옥상에서 속옷 하나 달랑 입고 저런 사진을 찍었나 싶지만 해당 장소는 건물 옥상에 위치한 수영장으로 추정되며 입고 있는 것도 하늘색 빛이 도는 삼각 수영복이다. 오른손에 물안경을 쥐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구도로 찍은 김강민과 정근우의 사진도 존재한다. 박재상 김강민 버전, 정근우 버전
초기에는 솩갤에서 평범한 버전의 짤에다가 끈적한 분위기의 WHAM의 Careless Whisper 음짤 파일을 붙여 꾸준글 용도로 사용되다가 마해영의 마몰레드 짤이 유행하면서 우리도 질 수 없다고 싸몰레드 짤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결국 불암콩콩코믹스에 출연했다.
디시인사이드 허슬리란제리 갤러리에서 '''헌팬티 보여주면, 새팬티 줄께'''라는 이벤트을 하게 되었는데 솩갤러 한 명이 '''싸몰레드'''로 유명한 박재상의 속옷 사진을 올려서 응모,[31]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박재상 본인이 구단을 통해 속옷을 전달받았다.[32] 보러가기
6. 연도별 주요 성적
7. 관련 문서
[1] 성남서고에서 전학[2] 2021년에 창단된 경기도독립야구연맹리그 소속 독립야구단이다.[3] La-da-da-da-dahh It's the motherfuckin '''(아트스윙 박재상!)'''D-O-double-G (SNOOP DOGG!) La-da-da-da-dahh You know I'm mobbin with the D.R.E.'''(아트스윙 박재상!)'' (YEAH YEAH YEAH) You know who's back up in this MOTHERFUCKER!) '''(박재상!)'''[4] 등장송 가사에 대놓고 'Motherfucker'가 들어가서 가끔 방송에서 마더퍼커가 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5] SK 박재상~ SK 박재상~ 오오오 오오~ 오오오오~ x2[6] 날려라 와이번스의 박재상~ 날려라 와이번스의 박재상~ 스윙이 미친 듯이 예술이야~ 오에오 오에오 오에오~ x2 예술이야![7] SK에서 은퇴한 유명 프랜차이즈 선수로는 박경완, 박재홍, 조웅천, 김원형 같은 대형 선수들도 있으나, 이들 모두 다른 팀에서 뛴 경력이 있다. 즉 2000년 창단 직후 입단(2001년)하여 15년 넘게 뛰고 은퇴한 선수는 사실상 박재상이 처음이다. 시간이 지나면 조동화, 김강민, 박정권, 박희수, 채병용 같은 선수들도 이러한 반열에 오르게 되나 박재상이 이들보다 먼저 은퇴를 하면서 원 클럽 맨+프랜차이즈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참고로 최초라는 말에 취소선이 쳐진 이유는 그다지 많이 뛰지도 못했고 기여도도 그리 높지 않았지만 어쨌건 SK의 창단 멤버로서 합류해서 SK에서만 십 년을 넘게 뛰고 은퇴한 엄정욱의 존재가 있기 때문.[8] 성남서고에 입학하였다가 전학했다.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한서고등학교 야구부 선발투수 채병용과 맞대결한 적이 있다.[9] 경기 중반 교체되거나 플래툰 덕후인 김성근 감독에 의해 좌투수가 선발 등판하면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는 경우가 잦았다.[10] 2008년 4월 23일~6월 10일[11] 전 경기 출장 역시 박재상이 유일하다.[12] 하지만 용병 시스템이 적용된 이후에는 '솩랜차이즈' 라고 불릴만큼 배리 본즈 를 SK 올스타 주전 좌익수로 쓰고, 박재상은 스페버전을 쓰는 유저가 많다. 거기에 유망주 시스템, 조원우 레전드까지 추가되면서 결국 마구마구에서도 완전히 주전 자리를 잃고 말았다.[13] 송구는 비교적 정확했으나, 허웅이 공을 놓쳐 정성훈이 홈에서 살아 그게 끝내기 점수가 되었다. 참고로 안타를 친 주인공은 채은성.[14] 비록 FA 일수는 다 채웠지만 부진한 성적이 지속된다면 보상 선수 없이 FA 영입이 가능한 KT 위즈에게도 외면받을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FA 재수를 선택하거나 지난 시즌 나주환의 사례처럼 헐값에 계약을 하는 수밖에 없다.[15] 박정권과 채병용은 SK 와이번스에 잔류했으며, 윤길현은 롯데 자이언츠, 정상호는 LG 트윈스, 정우람은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되었다.[16] 게다가 이 홈런타구는 박재상의 수비 위치였던 좌익수 쪽으로 날아가 그의 은퇴식 현수막에 착륙했다.[17] 이 때문에 삼진도 잘 당한다. 절친 김강민과의 공통점.[18] 이 말은 약간 가려들어야 하는 게, 어디까지나 '''좌익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익수가 외야 3포지션 중 가장 수비를 못하는 선수가 들어간다는 걸 생각하면 단순히 SK의 외야 수준이 높다는 걸 돌려 말한 것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19] 위에도 써있다시피 2009년 '''전 경기 '선발 출장'.''' 별로 신기할 것도 없지만, 감독이 플래툰의 대명사 김성근임을 생각해 봤을때 당시 그의 위치는 당시엔 꽤 단단했던 듯. [20] 그래서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가수 싸이로 나오는데, 자기 얼굴로 나오지 못하는 몇 안되는 선수이다. 얼굴 돌려주긴 했는데… 싸몰레드로(…) #[21] 근데 문제는 싸미미가 거의 박재상 본인의 특성이 되었다. 요즘은 잘해도 금방 묻힌다.[22] 실제로 방송에서도 박재상이 김강민의 모친을 '어머니'라고 불렀고, 그녀는 "재상아, 엄마는 재상이가 우리 사위했으면 좋겠는데.." 라고 했다.[23] 박재상의 1년 선배지만 1년 늦게 입단. 대신 팀2군 외에 상무 생활까지 같은 시기에 해서 정이 가장 많이 들었던 사이.[24] 처음 만난 거 자체는 박재상의 제대 직전 마지막 휴가였던 2004년말에 고등학교때부터 박정권과 아는 사이였던 조동화(둘다 전북 출신)의 소개로 3명이 인천 용현동에서 만나서 식사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직후 박정권이 바로 며칠만에 입대를 하면서, 그가 훈련소에 있는 동안 제대한 박재상과는 제대할때까지 사적으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제대 후부터인 2007년부터 친해져서 81년생 82년생들끼리 많이 놀았다고. 인천의 인하대학교 후문에 있는 분식집에서 김강민, 박정권, 박재상, 조동화가 모여 거기서 파는 오뎅을 전부 다 먹었던게 서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25] 2009년 정규리그 막판 SK 와이번스가 극강의 연승을 달리던 시절 김성근 감독이 "남은 시즌을 전승으로 끝내서 페넌트레이스 3연패에 성공하면 이만수 코치처럼 팬티 차림으로 인천시내를 뛰겠다"고 공약한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김강민과 박재상이 최정에게도 같이 뛰라고 말했다. 김강민이 "이왕에 너는 팬티를 벗고 뛰라"라고 하자 박재상이 "근데 (팬티 벗어도) 사람들은 (최정이 팬티를) 입은 줄 알아 ㅋㅋㅋㅋㅋㅋ"(...)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유는 각자 알아서 이해를...[26] 실제로 잘생긴 편이어서 허풍은 아니었다.[27] 박재상 응원가는 야구팬들도 인정한 'KBO에서 가장 따라 부르기도 외우기도 쉬운 응원가'다. 가사는 SK박재상~ SK박재상~ 오오오오오~ 오오오오~.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조승목 선수의 응원가와 같다. 참고로 박재상 쪽이 원조.[28] 참고로 응원가의 원곡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민요 'Pokarekare Ana'(연가) 이다.(우리나라 노래 중 하나와 가사가 같다.그 '비바람이 치던 바다~) 후렴부는 박진만이 삼성 시절에 사용했다. 일명 박진만을 사랑해요.[29] 이 응원가를 만든 사람이 SK에서 단 1년간만 응원하고 원래 팀으로 컴백한 대한민국에서 최고 행복한 남자. [30] 하지만 2013년 최진행도 응원가와 등장곡을 모두 Merry you를 사용한다.[31] 더 가관인건 닉네임이 이블성근이다...[32] 참고로 구단 게시판의 구단측 답변이 더 가관이다. "박재상 선수에게 잘 전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