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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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태권도 선수이자 現 배우다.
2. 태권도 선수 경력
태권도 7단으로, 1979년부터 국가대표로 활동을 해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계선수권[2] 에서미들급 금메달을 차지한 태권도계의 스타 선수였다. 참고로 이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이동준 하면 가장 유명한 무용담인 술집에서의 11대 1 싸움이 대표적이다. '''백퍼센트 실화'''다. 특수부대 출신 군인들이 술이 떡이되어서 나이트클럽을 깽판치며 완전히 뒤집어 놓는 상황에서 혼자 나서서 1분만에 다 털어버렸다고 한다.[3][4][5] 태권도에 대해서 과소평가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대로 맞으면 발차기 한방에 뇌출혈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동준은 태권도 세계챔피언이었고, 얼굴은 단련이 불가능한 부위라는걸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파이터인 셈이다.
이동준의 모습을 본 주점 여주인의 부탁으로 주점의 문지기를 잠깐 맡았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최불암 등 연예인을 통해 얼굴도 남부럽지 않게 잘 생기고 몸도 다부진데다 무술 유단자라는 것까지 알려지면서 연예계로 진출했다. 오직 싸움실력 하나만으로 최불암의 눈에 띄어 액션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3. 배우 활동
단계적인 연기수업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에 모델일을 좀 하다가 영화 외적인 이유로 알려진 유명한 영화 서울 무지개에서 높으신 분의 밤일 알선 전문 정보요원 Q 역으로 영화계에 데뷔, 꽤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연기경력도 없고 당시는 액션물이 다소 쇠퇴기던 시기다보니 액션보다는 에로 영화[7] 를 많이 찍었으며 TV에서는 1990년 유인촌이 나온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박근형의 아들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나온 작품들이 모두 망하는 바람에 탤런트 쪽으로는 그다지 성공하진 못했다.
성격이 괄괄한데다가 본인 말로는 연기 이외에 다른 일(아마도 밤무대 행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출연제의를 거절하는 바람에 방송국의 높으신 분들에게 찍혀서라고 한다. 그리고 2000년에는 트로트 앨범을 내고 밤무대 가수일도 병행하는 등, TV활동보다는 밤무대 행사를 더 선호하는 듯 하다. 여러모로 스티븐 시걸과 비슷하게 액션 이미지만 빠르게 소모되어버린 케이스다.
그렇게 활동하던 2004년 그의 일생을 바꾼 사건을 맞으니 바로 클레멘타인. 2004년 자비로 제작한 영화 클레멘타인에 52억이라는 사재를 털어서 스티븐 시걸까지 비싼 돈 주고 특별출연 시켜 '''한국 태권도 홍보영화'''[8] 라고 만들어 놨는데 그게 그냥 흑역사 수준도 아니고 '''대한민국 영화상 최악의 졸작'''이라는 평을 받고 쫄딱 망하는 바람에 연예계 활동에 직격탄을 맞고 부산으로 내려가 밤무대를 뛰면서 돈을 모아야할 상황이 되었다. 후술한 똥꼬쇼 사건도 이때 있던 일이다.
연예계에 발을 내딛게 만든 것도 유흥가였고 영화 제작 실패 후 빚을 갚기 위해 나선 곳도 유흥가였다. 노래 실력도 뛰어나고 남자다운 마초 기질도 충만해서 유흥가에서만큼은 몸좋고 노래 잘하고 호쾌한 중년 미남 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게 2~3년동안 부산에서 밤무대를 뛰면서 빚을 청산한 뒤 2007년 임성한 작가의 아현동 마님으로 TV드라마에 복귀 후, 인기를 누렸다. 그 후 임성한 사단으로 들어갔는지 2011년 신기생뎐까지 출연했다.
2014년에는 아침 드라마 나만의 당신에 출연했고, 그 이후에는 간간히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얼굴을 비추고 있다.
3.1. 똥꼬쇼 사건
4. 수상 기록
5. 기타
- 탤런트로 활동 중인 아들 이일민이 있으며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같이 출연해 여자 보는 눈이 같다고 말한 일화가 있다. 이일민은 2013년 10월 해병대에 입대하여 군 복무했다가 2015년 7월에 제대했다.
- 만능크리너의 표지 모델이다. 2016년 생산분부터는 다른 사진으로 교체되었다.
- 클레멘타인의 제작 후 인터뷰 당시 블랙 로터스라는 할리우드 영화에 주조연급으로 출연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언론에선 박중훈의 뒤를 이을 한국의 두 번째 할리우드 스타라고 설레발을 쳤지만 영화가 무산되어버린 듯하다.[9] IMDB에서조차 자료를 찾을 수 없다.
- 전술했듯 힘들게 살아왔지만, 그도 단점이 있다. 태권도 관련해서 허세를 푼 것이 그것인데,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국민학교 시절에 반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싸움잘하는 애한테 맞고 가방을 들어주는 굴욕을 당한 적이 있어서[10] 라고 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태권도를 익히고 나서도 졌다고 하는 점이다. 빨간띠를 따고 자신감이 생겨서 덤볐는데 힘 차이가 나서 도저히 안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친구 4명을 동원해서 5대 1 다구리를 했다. 복수에 성공했고, 그날 이후 두들겨 맞은 싸움꾼 친구는 그때부터 결국 찍소리도 못하고 기가 죽어 다녔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이 기억에 남아서 그 시절부터 태권도를 통해 강자와의 싸움에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결국에는 태권도 "만" 으로 이긴게 아니라 태권도로도 힘드니까 친구들 도움 받아서 이긴건데 "이게 전부 태권도 덕분입니다"라는 사실과는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 방송에서 허세로 보일 만큼 자신의 싸움 실력에 대해 자랑인냥 얘기해서 이슈가 되긴 했지만, 이 사람은 전술했듯 연예계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 중에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애초에 이동준은 주먹 좀 휘두르다 연예인이 된 일반인이 아니라, 진짜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에 태권도계에서 세계대회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에 선수 은퇴 후에도 최소한 태권도 관장[11] 정도는 할 계획이 있던 진짜 무도인이었다. 연예계 데뷔 자체도 술집에서 행패부리는 불한당들을 제압하고 연예인들을 구해주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데뷔한 것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싸움경력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부분을 볼 때 청소년기의 싸움에 대한 실전감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데뷔 이후에도 밤무대 생활을 적지 않게 해왔는데, 사실 TV에 꾸준히 출연하는 톱스타가 아닌 수준의 B급 배우나 가수들이 돈만 보면 방송출연보다 밤무대 출연이 금전적으로 더 이득됨에도 밤무대를 기피했던 이유는, 지금도 그렇지만 밤무대가 애초에 무법지대에 가까워서 취객, 깡패, 사기꾼 등 온갖 더러운 인간들이 꼬이기 마련인데 이동준은 애초에 그런 불한당을 상대로 수 년동안 해오면서 다져진 싸움실력이 있었기에 자진해서 저런 일을 한 것이다.[12] [13] 태권도 경기 중계를 보면 헤드기어를 하고 있으며, 맞는 것에도 단련이 된 선수들도 발차기를 머리에 맞으면 그대로 기절한다. 웬만한 일반인들은 선수들 발차기와 주먹은 보이지도 않는다. 눈앞이 번쩍 하면 그 다음은 바닥에 누워 있다가 깨어나는 자신을 느낄 것이다. 당연 가볍게 제압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애초부터 격투기를 배운 사람과 일반인의 차이는 상당하다.
- 2015년 30년 만에 시범경기를 치렀다.
- 복면가왕 77차 경연에서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스승의 날'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했다.
- 가수 휘성의 팬이라고 한다.
6. 관련 문서
6.1. 작품
[1] 종파는 조계종인 듯 하며 링크의 기사에서 좀 내리다 보면 이 사람의 이름 석 자가 나온다.[2] 아쉽긴 해도 1990년대 중반까진 엄밀한 의미의 세계선수권이라고 보긴 힘들다. 국제대회를 열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절까진 태권도계에선 외국인 선수층이 얇았다. 그때 당시에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다면 금메달 0순위 후보였다. 1960년대 유도 세계선수권 때와 비슷하다.[3] 지금의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된 후 스포츠화의 길을 가게 되면서 선수층 대부분이 경기에 특화된 발차기 위주의 태권도를 하지만, 70년대나 80년대 초까지도 태권도는 정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무술에 가까웠고 도장 분위기도 유치원, 어린이 놀이방 역할까지 하는 지금보다 훨씬 깐깐했다. 대야망이나 바람의 파이터에 나오는 도장 분위기가 그 때까지는 있었다.[4] 거의 모든 운동에 구타가 난무하던 시절이며, 격투기는 훈련, 대련이라는 명목으로 합법적(?)으로 두들겨 팰수 있었다.[5] 이동준은 60이 가까운 시점에 라디오스타에 "싸움의 달인" 컨셉으로 출연했을 당시 자기보다 12살이 어리고 184cm 김구라와 팔씨름을 했을 때 "뭐야? ㅎㅎ"하며 우습게 넘겼다. 아무리 상대가 일반인이지만 체격과 나이차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힘이다. 이후 이제윤에게 졌지만 (죽을 힘을 다해) 꽤 오래 버티긴 했다.[6] 사진 좌측은 최민식이다. 이때가 바로 최민식이 인기를 얻은 꾸숑때다. 1990년에 방영한 드라마인데, 최민식은 재벌의 망나니 사생아로, 이동준은 재벌의 적자로 나온다. 여기서 이동준이 최민식에게 두들겨 맞는다.[7] 애마부인4는 물론 안개에 젖은 리오의 밤은 깊어, 머나먼 사이공과 같은 멜로를 위장한 에로 영화들.[8] 실제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다.[9] 준 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것도 이 영화 때문이라고 한다.[10] 당시 이동준이 "내가 그때는 약간 앞에 앉았거든"이라는 말을 한 걸로 보아, 그 시절에는 이동준의 체격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듯하다. 키가 작은 친구들이 앞에 앉으니까.[11] 실제로 아직도 지인들 중에 태권도 관장들이나 태권도 협회 관계자들이 꽤 많이 있다고 한다.[12] 사실, 국가대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라는 명성만 들어도 함부로 못 한다. 게다가 체격만으로도 위압적이다. 요즘 기준으로는 아주 큰 것 같지 않지만, 2018년 기준 환갑인 나이에 키 180cm는 어마어마한 장신이다. 그 나이 대 남성 평균 키는 167-168cm 정도에 불과하다.[13] 라디오스타에서 싸움 잘하는 스타들 특집으로 출연했을 때 엄청난 자뻑과 허세를 보였는데 막상 팔씨름 대결을 해보라하니 꽁무니를 빼다가 레이먼 킴이 김구라에게 맥없이 지자 자신감을 얻고 김구라와 붙어 쉽게 넘겼다. 본인 왈, (레이먼 킴이) 무지하게 쎈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레이먼 킴은 이동준보다 훨씬 젊은데다 실제로 나이트클럽 기도 출신인만큼 덩치도 크고 인상도 강하다. 그런데 뒤이어 이재윤과 붙게 되자 눈에 띄게 당황하고, 오만상을 다 써가며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결국 넘어갔다. 물론, 당시 이미 환갑을 바라보던 나이였단 것을 감안해도 굉장한 힘이긴 하다.[14] 여담으로 현빈도 이동준과 같이 개띠이다.